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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회

제 2 편

제 2 장

7


고향에서 어머니의 부고가 날아왔다. 외아들로서 열여섯살에 집을 떠나 언제한번 변변히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쓰라린 비애가 가슴을 헤집었다. 겨우 1년반인가 2년가까이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시여보았을뿐 인간으로서의 가장 초보적인 의무마저 집어던지고 이제껏 그래 무엇을 해왔단 말인고… 어머니의 령전에서마저 할말이 없게 된 자신을 통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머니는 결코 아들이 늘 자기곁에 있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으며 보다 크고 좋은 일을 해놓기를 바라왔건만 오늘의 자기는 어디에 서있는것인가. 어머니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자기가 걸어가는 걸음걸음에서의 삶의 가치를 재인식하는데로 그를 떠밀었다. 아버지의 림종도 한두달 넘기지 못할것 같았다. 아버지의 뜻도 그의 생전에 아들로서 지켜내지 못할것은 뻔하다. 연구를 계속해나갈수 없는 번민이 이제는 자신에 대한 환멸과 혐오감으로 뒤바뀌였다. 38도선이 이제는 마음대로 다닐수 없게 막혀버려 북에서 사람들이 오지 못하며 사위의 소식도 알길이 없었다.

누구의 말이였던가. 그렇지, 지태규의 말이였지. 우리 나라에서 자고로 학문은 어려운것이고 선비는 가난의 대명사, 굴욕과 수모의 상징이라고 하였다.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민족을 떠나 이국으로 가겠다는 지태규의 말이기에 그것은 정당하지 않은것이다! 민족과 과학을 나란히 놓지 않는 그의 말을 인정하다니?…

리승기는 돌아오는 기차칸에서 줄곧 이런 생각에 파묻혀있었다.

그가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 아침에 대학에 나가자 부학장이 기다렸다는듯 그의 방에 따라들어왔다.

《학장선생, 이거 시끄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둘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어머니의 장례에 갔다온 사람에게 부학장이 좀 무례하달만치 급하게 군다고 생각하였으나 듣고보니 이것저것 재여볼 경황이 못된것은 사실이였다.

엊그제 리승만이 태릉에 있는 사관학교졸업식에 나왔다가 그 사관학교 교장을 데리고 여기 와서 대학청사를 돌아보았다는것이다.

《리승만〈대통령〉은 교사관리를 잘 안한다구 하면서 이것저것 시비하면서…》

《그래서?》

《아무래도 사관학교에 넘겨줘야겠다는겁니다.… 교사관리도 변변히 못할바에야 사관학교를 새로 지을 동안이라도 내줘야지… 하는것이였습니다.》

《교사관리를 가지구 트집잡는단 말이지요?》

《네… 교사관리를 쓰게 못한다는건 순전히 곁에서 삽살개처럼 따라다니는 사관학교 교장의 귀에나 듣기 좋은 소리이지 그게 어디 〈국부〉랍시면서 온당한 처사인가요. 교사내부는 보지도 않구 말입니다.》

리승기는 한껏 체념해버린 사람처럼 별로 놀랍지가 않았다. 2호동건물도 그새 아글타글해서 다 완공시켜놓았더니 이젠 두 건물을 통채로 삼키고싶은 모양이지… 얼마전에 여기 와서 괜히 비실비실 돌아가던 사관학교 교장이 밉살스러운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매사에 우유부단한, 피뜩 보기에는 어떤 깊은 생각이나 많은듯이 보이는 리승만의 모상이 떠오르며 우습게 생각되였다. 그런 성미에 용단을 내리지도 못할것이지만 아무튼 명색이 박사이고 《대통령》이라는 감투를 쓴 사람이 학문의 전당을 빼앗으려고 하는것은 정말이지 어불성설이 아닐수 없다.

부학장이 나가자 뒤이어 아닐세라 사방에서 전화가 왔다. 문교부에서…《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한테서…

《〈대통령〉각하께 사과하시오. 후과에 대해서는 우리 문교부가 책임을 못 지겠소.》

《별치 않게 생각하는데 그러지 마오. 청사관리가 어디 작은 문제요? 크게 번질수 있소.… 군부와 상대해서 될것 같소? 〈대통령〉이 누구의 편일것 같소? 고집부리지 말구 찾아가 사죄하시오.》

그러나 리승기는 《중앙청》에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 교사를 차지할 때도 학생들의 힘이 컸지만 이번에도 자기뒤에 숱한 학생들이 서있다는것으로 어지간히 마음이 든든해지는것 같았다.

이튿날에 리승만의 서기한테서 전화가 왔다. 《대통령》의 호출이라는것이였다. 리승기는 아무런 서류가방도 끼지 않은채 맨몸으로 몇년전까지는 일제의 《조선총독부》자리이고 얼마전에는 《미군정청》자리이던 《중앙청》을 향해 떠났다.

그러나 리승기는 서기실에 앉아 오래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나오고 말았다. 서기의 말이 안에서 《서울신문》을 당국의 기관지로 만드는 일이 잘 안되여 리승만이 거의 한시간이나 그 신문의 편집국장과 만나는중이라는것이다.

리승기는 속으로 웃음이 나갔다.

(《국부》랍시면서 신문사 하나 틀어쥐지 못해서 그러니…)

리승기는 돌아온 즉시로 서울대총장한테 학장직을 사임하는 사표를 냈다. 그러나 사표에 대한 정식결론은 차일피일 미루어지면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러한 때에 미국에 갔다온 지태규가 이 소식을 듣자 몇집 건너에 있는 리승기네 집에 왔다.

《사표를 냈다지? 차라리 잘됐네. 나두 사표를 내려네. 미국영주권도 이내 될것 같애.… 승기선생, 나도 미국에 가려는건 장차 발전된 미국의 과학에 의거하여 우리 〈남한〉땅에서 과학을 추켜세워보려는거네. 우리 민족의 과학을 말이네.》

《우리 민족의 과학을?》

리승기의 목소리에는 랭소가 어린듯싶었다.

그런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태규는 말했다.

《그렇네. 승기선생, 미국에 한번 가보구오지 않겠나? 결심은 그때 가서 하기루 하구.》

리승기는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이 체소한 사나이가 키가 큰 서양사람들사이를 어떻게 돌아칠가 하는 왕청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침착한 동작으로 안경을 벗어들고는 손수건으로 부질없이 그것을 닦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집에 있는 그 좋은 테블(책상)두 가지구가겠나?》

《뭐?》

지태규는 퍼그나 놀라 입을 벌리였다.

《우리한테 주지 않겠나? 보다싶이 우리 집엔 책상 하나 변변한게 없구만.》

《건 뭣하러?》

지태규는 여전히 두눈이 떼꾼해졌다.

리승기는 갑자기 껄껄 웃었다.

《유럽사람들의 풍습이긴 하지만 학자들은 자결을 해도 꼭 책상밑에 들어가 죽는다더군.… 그러니 몸이 들어갈만큼 큰 책상이야 있어야 하지 않겠나?》

《뭐뭐? 승기선생, 미치지 않았소?》

《미쳤지, 미치구말구… 이 〈남한〉땅에선 미치지 않은 사람이 다 미친 사람이네.》

리승기는 또다시 짐짓 웃음을 터뜨리였다.

지태규는 황황히 물러가버리였다.

리승기는 대학에 나가서는 따로 떨어진 단층집의 섬유강좌에 가있군하였다. 모든것을 부학장에게 맡겨버리고말았다. 그러다가 6월 25일 아침의 전쟁발발과 6월 28일의 서울해방을 맞게 되였다.

서울이 해방되였을 때 리승기는 악몽에서 깨여난 기분이였다. 밤새 악몽에서 허덕이던 사람이 간신히 거기서 깨여났을 때처럼 그 악몽을 다시 돌이켜보고싶은 생각조차 없었다.


×


리승기는 이렇게 나라의 북변 후창땅의 자그마한 교실안에서 특강아닌 특강을 하였다. 이튿날부터 이 학급 저 학급에서 이 특강을 요청해왔다. 그다음부터는 기본강의가 끝난 과외에 이 류다른 강의가 진행되군 하였다.

한달반동안의 초청강의에서 돌아온 리승기는 거기에서 받은 충격의 연장인듯 즉시에 오정해를 종합대학 화학부에 보내여 공부시킬 결심을 내리고 최삼열에게 편지를 썼다.

《최삼열선생에게.

…오정해동무를 보내오니 대학 화학부에 편입시켜주기를 바랍니다.

본인은 이번에 군복입은채로 전선에서 소환되여온 대학생들앞에 서고보니 생각이 깊었습니다.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군인들까지 불러 공부시키시는 장군님의 그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본인의 미거함을 심심히 돌이켜보게 되였습니다.

제 욕심만 부리면서 한 젊은 재사의 발전을 더디게 할번 하였습니다. 난 그저 나한테 적합한 유능한 조수로만 생각하였지 그를 민족과학의 장래와 결부시켜보지 못했습니다.

한 민족의 두 현실을 전쟁의 엄혹한 환경에서 더욱 절실히 페부로 체감하면서도 나라의 장래를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뜻을 천분의, 만분의 일도 따르지 못하고있다는 솔직한 심정입니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합성1〉호의 장래공업화에서 기둥감으로 키웠으면 하는 욕심에서 그러하오니 잘 가르쳐주기를 바랍니다.…》

오정해는 연구소의 추천서와 함께 그 편지를 가지고 대학으로 떠났다.

…1952년 10월 9일 내각결정 183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의 조직을 선포하였다.

원사로는 사회과학에서 홍명희, 박시형, 백남운 등 4명, 자연과학에서 리승기, 최삼열 등 4명, 농학, 의학은 계응상 등 2명이였고 후보원사로는 각 부문을 합치여 15명이였다.

과학원 원장에 홍명희, 부원장에 최삼열… 자연 및 기술과학부문위원장으로 리승기가 되였다.

12월 초순에 과학원개원식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로 미국《대통령》감투를 쓴 아이젠하워가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기 위해 남조선에 기여들려 하고있고 반당반혁명세력의 준동을 물리치기 위한 력사적인 당 제5차전원회의가 준비되던 시기였다.

준엄한 겨울이 다가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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