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1 회

제 2 편

제 2 장

6


명륜동 누이네 집에 리승기가 도착하자 어느새 알고 학생들이 밀려왔다. 학생들의 말이 리과대학 학장 지태규는 예견보다 일찌기 미국으로 학술려행을 떠났다고 했다. 그를 만나지 않게 된것이 차라리 다행으로 생각되였다.

공과대학 학장 김동일은 리승기한테 이렇게 말했다.

《무척 기다렸소.》

허나 말과 얼굴빛은 달랐으니 당황한 속에서 제딴의 자존심과 공식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부질없이 애쓴다.

리승기는 그러거나말거나 그한테 말했다.

《한가지 조건이 있소.》

지태규의 편지에 대한 반발과 분격 그리고 신성한 교단을 그르치는 김동일의 처사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청원에 의해 서울에 올라온것만큼 리승기는 서울시내에 있지 않고 신공덕에 비여있는 고바야시광업전문자리 단층집에 화학과학생들만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좋도록 하오.》

김동일은 차라리 기뻐하는 눈치였다.

몇달이 지났다. 리승기는 신공덕에 하숙을 정하고 강의안을 짜고 학생들의 도움으로 실험기구들을 얻어왔다. 메타놀과 휘발유조차 없는 형편이였다.

어쨌든 13명의 첫 화학과졸업생들을 내게 되였다. 그중에서 섬유강좌에 둘 졸업생으로 옥지문, 신현석 등 몇 학생을 점찍어두었다.

그런데 하루는 한 학생이 달려와서 리승기에게 말했다.

《선생님, 리공과교사를 낸답니다. 미군히스테리병원을 다른데로 옮기는것 같습니다. 북에서 쏘련군대가 철수하니 미군은 체면에 못이겨 학교교사라두 내놓는가봅니다. 한데 말입니다. 태릉에 있는 〈국군〉사관학교가 그 교사를 차지하려 한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사실인것 같습니다. 이거 야단났습니다.》

《뭐라구?》

리승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새로 입학한 학생들까지 모두 단층집교사앞에 모여왔다. 리승기는 그들앞에 나섰다. 연설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흥분에 겨워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수 없었다.

《여러분, 우선 그 교사를 차지해야 합니다. 한데 당국에서는 우리한테다 그걸 줄것 같지 않습니다. 제군들이 주동이 돼야 합니다. 미군정신병자들이 한쪽에서는 나가고 다른켠에는 남아있다는데 나가는 족족 학생들이 책걸상을 아무것이나 걸머지고 들어가서 거기서 자면서 지키는수밖에 딴 도리가 없습니다.》

《옳습니다!》

학생들이 호응해서 웨치면서 저희들끼리 법석 떠들었다.

《시내에 가서 공과계통 친구들을 다 불러내자구.》

《이게 마지막이다. 그걸 놓치면 다다.》

《사관학교에서 달려오면 어찐다?》

《야, 이 겁쟁이 나서라. 내 친구들중에서 유도선수들을 데리구 올테다. 맞서봐야 할게 아니냐?》

서울시내에서 공과학생들이 쓸어나오고 교사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다. 본래 일본놈들이 리공학부교사로 쓰려던것인것만큼 다시 그 집을 공과대학청사로 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되여야 했으나 사관학교가 옮겨올수 있다는 바람에 이런 교사쟁취투쟁이라는것이 벌어진것이다. 학생들은 기세가 등등해서 밥을 날라다먹으면서 밤에도 교사를 지켰다.

교사를 차지하고나서 얼마후에 진보적인 학생들과 교원들의 강력한 제기로 학장선거가 있게 되였다. 결국 립후보로서 리승기와 김동일 두사람이 나선셈이다.

서울대총장인 장가가 신공덕에 나왔다.

그는 리승기가 교수협의회에서 학장으로 선거된것이 마음에 언짢은 모양 교수들앞에서 (남반부에서는 대학교원이면 모두 교수라고 부른다.) 이렇게 말했다.

《이건 그저 선거해보는거요. 우에서 결론을 받아야 하거던.》

리승기는 학장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으나 대학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몇가지 조건을 내놓았다. 선진교수복직, 좌익학생퇴학중지, 부정입학근절 등이였다. 총장은 그런 말을 못 들은것처럼 아무 대답없이 가버렸다.

리승기는 늪가에 있는 4호동(아주 작은 건물)에 섬유강좌를 꾸리였고 실험실을 차리려고 작정하였다.

리승기는 당장 입학시험에서부터 자기의 결심을 실현시켜보려고 했다. 어떤 유력한 소개신을 받아가지고 와도 다 잘라버렸다. 리승만이한테서 전화가 와도 그때 그로서는 실력본위로 해야 한다고 말했을만큼 결심이 굳어있었다. 그런데 교수로 그냥 남아있게 된 김동일이 뒤에서 자꾸 작간질을 한다는것을 눈치채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꿈에 넉두리로만 여기고 개의치 않았다.

어느날 시험을 종합하면서 인물심사를 하던 때였다. 한쪽귀퉁이에 번호만 쓰고 그것을 꿰매도록 한 시험지를 테서 종합한 점수들을 내려다보며 몇마디 질문을 하군 하였다.

다른 학생들과 상당한 차이의 높은 점수를 가진 한 학생이 리승기앞에 앉아있었다. 부정점수가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여서 리승기는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어떤 질문에도 막히지 않는것이였다.

리승기는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마음이 즐거워지고 흐뭇해지기까지 했다. 제가 이런 특출한 학생을 발견해서 여기에 데려오기라도 한듯 자랑스런 마음으로 량쪽에 앉은 교수들을 둘러보며 질문을 해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 난데없이 문이 벌컥 열리고 검은 제복을 입고 손에 곤봉을 든 두명의 경찰이 방안에 들어섰다. 그중 한자가 제법 경례까지 붙이며 말했다.

《학장선생님, 시험도중에 실례합니다.》

리승기는 그자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이건 대체 뭐요?》

《성내지 마십시오. 상부의 지시입니다. 불온분자를 입학시킬가봐 이렇게 뛰여온것이니 리해하십시오.》

그자도 방안의 분위기에 약간 위압되였던지 될수록 공식적인 어조를 지어내려고 한다.

《안되오. 나가 기다리시오. 날 만나겠으면 좀 있다가 만나시오.》

《아닙니다. 기다릴수 없습니다.》

마침내 그자는 조폭스레 나왔다.

리승기는 참을수 없어 어성을 높였다.

《뭐라구? 신성한 학원에 감히… 지금 한창 시험을 치는 때에… 물러가시오.》

《물러갈수 없소. 이거 학장이면 다요?》

그자는 말투도 반말에 가까와지면서 리승기와 마주앉은 바로 그 학생곁에 와 서서 그를 가리키며 뇌까렸다.

《바로 이자가 좌익학생들 두목중의 한놈이요. 체포하라는 명령이요.… 입학결과를 발표한 다음이면 학장선생립장이 더 곤난할텐데요.》

뒤에 선 다른 경찰놈이 이기죽거렸다.

《수험번호 152번, 일어나! 류치장입학시험에나 가자. 감방에서 네 번호는 그대로 152번으로 해줄수 있어. 가자.》

리승기는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곁에 앉은 교수들이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이런 무례한짓이 어데 있는가, 당국에 고발하겠다, 죄라는것이 기껏해야 《5.10단선》을 반대한것이겠는데 그까짓 《5.10단선》은 나도 반대했다, 나도 묶어가라 하면서 량쪽에서 펄펄 뛰였다.

경찰놈들이 학생을 체포해가자 리승기는 맥없이 일어나 나가면서 《오늘시험은 이것으로 끝냅시다.》하고는 제 방으로 가버렸다.

학생들과 교수들의 말에 의하면 이 모든것은 김동일의 작간이라고 했다. 김동일은 학자나 교육자가 아니라 점점 놈들의 정치적끄나불로 돼가는것 같았다.

리승기는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오래도록 책상앞에 앉아있었다.

섬유강좌의 연구조수로 있는 림창직이 찾아와 《합성1》호 실험장치를 차리는데서 제기되는 몇가지를 의논하려 했으나 리승기는 래일로 미루자고 말하고는 그길로 집에 가버렸다.

갓 이사짐을 풀어놓은 집안은 어수선하였다. 집거두매를 하느라고 며칠째 분주히 돌아치던 안해가 여느때없이 당황히 남편을 맞아들였으나 안해의 얼굴을 한번 스치듯마듯 보고난 리승기는 제 기분에 잡혀 곧추 웃방으로 들어갔다나올뿐이다. 안해는 안해대로 의아쩍게 남편을 바라보았다.

분이는 열살짜리 혜연이한테 무슨 말을 해보다가 남편쪽을 흘끔흘끔 살펴보며 더욱 부질없이 딸애한테 말을 시키려고 애쓴다. 흔히 남편의 기분을 돌려세우려고 할 때나 제자신이 남편한테 숨길수 없는 사연을 안고 바재일 때 그러는것이다.

안해가 저녁밥상을 차리려고 부엌에 나갔을 때 리승기는 책상에서 웬 편지를 보고 손에 들었다. 뜻밖에도 일본에 있는 가와가미한테서 온것이였다.

《여보, 이 편지가 언제 왔소?》

남편에게 저녁을 대접하고나서 그 말을 하려던 분이가 황황히 부엌에서 올라왔다. 그는 주저주저 말했다.

《저… 오늘 인편으루…》

안해는 물론 그 편지겉봉을 뜯지 않았었다. 그러나 촉기빠른 안해는 편지내용이 남편한테 결코 기쁜 마음을 주지는 못하리란걸 예상한듯싶었다.

리승기는 길죽한 봉투를 받아들고 급히 겉봉을 뜯었다.

그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선생님, 선생님과 헤여진지도 어언 3년세월이 지났습니다. 평생에 잊을수 없는 저의 은사인 선생님께 편지를 올리려고 애쓰다가 이제야 인편을 만나 이렇게 글월을 올립니다.

선생님, 사모님도 건강하시고 아이들도 잘 자라는지요. 쯔유꼬(가와가미의 처)는 전보다 더 자주 선생님의 얘기를 합니다. 우리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해주신분은 선생님이기때문이지요.

선생님, 저는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선생님덕분입니다. 사꾸라다 이찌로선생도 보증을 해주면서 이것은 자기가 리승기선생을 대신하는것이며 리승기선생이 하는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유럽에 학술연구를 갔다올수 있게 되였습니다. 중국고사에 〈결초보은〉이라는 말이 있는데 〈풀을 맺어서 은혜를 갚는다.〉는(※제 은인이 위험하게 되였을 때 뒤따라 쫓아오는 놈앞에 좁은 오솔길 량쪽의 풀을 한데 묶어놓아 그놈이 거기에 걸려 넘어지게 했다는 중국고사) 그것보다는 조선속담에 있는 머리칼을 베여 신을 삼아올린다는 말이 더 저의 심정에 가까울것입니다.…

다까스끼중간공장시절이 회고될 때면 오직 저만이 그때의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릴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여러 경영주들이 달려들 때 선생님은 자신의 연구가 일본의 자본가들을 살찌우는것으로 된다고 생각하시게 된것입니다. 선생님한테는 과학기술공정의 연구만이 필요했던것입니다. 〈대동아전쟁〉이 일어나 그것이 중단상태에 들어가자 차라리 잘되였다고 생각하신 선생님이 아니시겠습니까?

그러나 이젠 선생님이 조국에 가셨습니다. 조선을 위하여 한몸 바치려던 그 열망이 이루어질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데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대학도 바로잡히지 않고 연구도 부진상태에 있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의 고충이 헤아려집니다.

흥남에 있다가 좀 늦게 일본으로 돌아온 여러 화학자와 기술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북조선에서는 자기의 힘으로 과학과 공업을 발전시킬 열의에 차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카바이드공장조차 없는 남조선에서 폴리비닐알콜의 기초물질들을 어디서 찾을수 있겠습니까?…

우리 일본의 화학섬유공업은 마땅히 선생님께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우린 다까스끼의 중간공장을 확대해서 〈합성1〉호를 본격적으로 내밀려고 합니다. 선생님도 아다싶이 초산비닐은 도이췰란드에서 사오지 않았습니까. 그 중간공장도 이제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배워주신 과학탐구의 그 열정과 투지를 그대로 본받아나가겠습니다. 멀지 않아 공업화가 실현될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이미 다 해놓으신 연구성과들인 방사 후처리 열처리는 그대로 도입하면 될것이고 그 앞단계인 폴리비닐알콜공업을 우리는 새로 창설해야만 하는데 선생님의 지도와 편달이 있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선생님이 미처 가지고 못 간 책과 귀중품들, 특히 다까스끼에서 처음으로 뽑은 〈합성1〉호 섬유로 짠 천을 귀중히 보관하고있습니다. 이제 기회를 보아 선생님한테 보내드리겠습니다.…》

편지는 길었으나 리승기는 더 읽을수가 없었다. 눈앞이 아물아물하고 현기증이 생기면서 머리가 휘휘 돌아갔다. 편지의 충격을 걷잡을수 없었다. (멀지 않아 공업화를… 멀지 않아 공업화를… 조선사람이 해놓은것을 일본이 앞서도록 나는 무엇을 하고있느냐?…)

가슴속에서 통곡과 절규가 터질듯 하여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안해가 소반을 들고 올라왔다. 놋대접에 담은 국수는 맛스레 양념빛이 돌았으나 리승기는 영 구미가 돌지 않아 저가락을 들수 없었다.

안해의 조심스러운 목소리… 《어서요.…》

그런데 느닷없이 남편이 말했다.

《여보, 그 식초병을!》

여느때에는 안해가 해놓은대로 먹으면서 별로 더 식초를 찾지 않던 남편이다.

리승기는 식초병을 들어 줄줄이 내리붓더니 그것을 상우에 놓고는 투명한 병속의 맑은 액체를 정신없이 들여다보고있었다.

안해는 속이 한줌만 해졌다. 저렇게 식초를 많이 쳐놓았으니 국수는 다 자신셈이다.

북의 식초가 서울에 나타난지 얼마 안되는 때였다. 상우에 놓인 식초병을 보고는 그 초산을 북에 가서 합성해낸 송복섭이를 두고 한마디라도 꼭꼭 찬사를 하던 남편이였다.

그러니 지금 남편이 식초병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식초가 아니라 송복섭이를 생각할것이 틀림이 없다.

리승기는 저가락으로 국수를 휘저어만 놓았을뿐 밥상을 물리였다.

리승기는 온종일 힘에 부친 일을 한 사람처럼 이내 맥을 버리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올리가 만무하다. 안해보고 불을 켜라고 했다. 그러다가 다시 죽이라고 했다. 그것이 몇번이나 반복되였다.

그도 안해도 이밤 꼬박 밝히고말았다.

그다음날은 대학에 나갈수가 없었다. 그다음날도… 사흘밤을 밝히며 잠을 자지 못했다. 미칠것만 같았다. 약국에서 수면제를 사다가 먹어도 한시간정도밖에 더 자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신경증을 만난 그 불우한 밤들이였다.

학교를 설립해서 교육을 하면서 연구사업을 계속하자고 섬유강좌를 꾸리려고 했지만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이 과학의 불모지에서 과연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수 있으며 거기서 무엇을 바랄수 있으랴.…

불면증에 시달리는 밤들이 계속되기 시작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