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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35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로 하여 진호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의 새 연료안을 료해하기 위해 부에서 부장을 비롯한 심사원들이 제철소에 내려온것이였다. 흔히 심사라면 공장심의를 몇차례 겪어야만, 그래서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될 때라야 부에 제기되는 법인데 이번에는 거꾸로 부에서 직접, 그것도 아무런 통고도 없이 내려온것이였다.

(도대체 지금단계에서 내가 뭘 증명할수 있단 말인가! 아직 과학적으로 론증할만 한 확신은 못 가지고있는 형편인데!)

심사라면 진절머리부터 느끼는 그여서 혹시 이번 심사를 통해 자기 기술안에 대한 어떤 수습할 길없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가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심사성원의 한사람으로 내려온 기술국장 문규의 말을 듣고나니 다소 안심이 되기도 했다.

《부에서도 취입과정에 나타나고있는 부족점들을 알고있소. 기술적으로뿐만아니라 다른 측면으로도 복잡하다는것을 알고. 그래서 실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방도를 세우자고 내려온거요.》

그의 말에 의하면 이번 심사는 부장자신이 발기했고 또 그가 직접 심사성원들까지 선발했다는것이다. 하긴 이젠 취입공정안까지 확정되였으니 부에서 서두를것도 당연한 일이였다.

그사이 제철소에서는 진호의 요구에 따라 취입공정안에 대한 설계를 현상응모했다. 결과 여러건이 제기되였는데 그중 태수가 제기한 《원판식취입기》와 기철이의 《기류식취입기》 두 안이 부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원판식취입기》는 기계적복잡성과 설비제작의 불합리성으로 기각되고 구조가 간편하면서도 실용적인 기철이의 《기류식취입기》가 채택되였던것이다. 이로 하여 이젠 새 연료만 담보되면 그것을 취입할 공정은 마련돼있는것이나 다를바 없게 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취입공정안이 제기됨으로 하여 새 연료안의 결정적인 국면이 열린것으로 보기까지 했는데 실상 그렇게 떠들만 한 가치가 있는 혁신안이였다. 진호는 불과 한주일사이에 그런 취입공정을 착안해준 기철이를 진심으로 고마와했으나 태수는 반대로 불만을 품고있었고 정아는 정아대로 웬일인지 그에 대한 아무런 견해표명이 없었다.

(과연 내가 어떻게 이 사람들, 이 야금계의 거장들을 만족시킬수 있단 말인가?)

진호는 대충 준비한 자기 기술안에 대한 개요를 뒤적거리면서 지배인실의 커다란 탁자두리에 둘러앉아있는 심사성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머리가 희슥희슥한 로학자들이였다.

분명 이들이 이제 기술안의 착상동기로부터 시험과정의 탐색과 내면적인 심리에 이르기까지 꼬치꼬치 캐고들건 뻔한노릇인데 뭐라고 한단 말인가! 더우기 아직 과학적인 담보가 명백치 않다는것을 알고는 내심 조소와 경멸을 품을수도 있을텐데 그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그는 해놓은 일에 비해 판이 지내 요란해서 걱정스러웠고 그것이 마치도 자기가 성과를 과장한데로부터 이런 사달이 벌어진것 같아 두렵기까지 했다.

심사석에는 명식이도 앉아있었다. 그를 대하는 순간 먼저 떠오르는것은 언젠가 그의 사무실에 뛰여들어 기염을 토하던 일과 그때 자기를 랭소를 띤 눈길로 바라보던 그의 모습이였다. 자기가 입원하고있은 사이 투사기를 심사하러 왔다가 새 연료안에 대해 아니, 자기에 대해 내린 그의 가혹한 결론도 상기됐다. 그러면서 때없이 눈앞에 나타나 자기를 괴롭히군 하던 현옥이의 모습도 되새겨졌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어쩐지 그에게 품었던 전날의 고까운 감정이 한갖 유치하고 하찮은것으로만 여겨지는것이였다.

지난날의 온갖 불쾌한 추억을 마음속깊이 억누르고 그저 의견상으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극히 허심하고 천연스런 태도로 그를 대할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간직되여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였다. 하지만 이제 와선 확실히 그런 힘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만은 궁금했는데 그것은 새 연료의 취입이 승산을 내다보고있는 이제 와서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아직도 부인할가 아니면 긍정할가? 긍정한다면 어떤 근거로 긍정해나설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 명식의 표정이 여느때없이 긴장돼있는것 같았다.

《자― 준비됐소?》

방안에 들어선 부장은 딱딱한 분위기를 무시해치우려는듯 미소를 띠운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몸집은 체소했으나 단단하게 다듬어진 턱이며 안경속에서 반짝이는 두눈은 대뜸 류다른 결패와 강단을 암시하고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론문심사가 아니니까 목적이요 개요요 하는건 약하기요. 이미 모두 현장에서 취입되는걸 직접 보았으니만치 필요없는 설명도 피하고… 어떻소?》

부장은 량옆에 앉아있는 제철소지배인과 문규를 번갈아보았으나 대답을 바라는 물음은 아니였다.

오늘심사는 극히 필요한 사람들만 망라된 소범위의 심사였다. 심사성원들외에는 기술안을 같이 추진하고있는 태수와 정아 그리고 취입기를 설계한 기철이 세사람뿐이였다. 정식심사가 아니라는데도 있었지만 보다는 실천적인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호는 은연중 문규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변론을 담당한 교수가 제자를 마주볼 때와 같은 그런 고무를 느낀 진호는 저으기 마음이 안정됐다. 이미 그로부터 어떤 방향에서 준비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언을 받았던것이다.

《그럼 새 연료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먼저 말씀드리지 않을수 없는것은 여러 동지들이 기대하는만큼 충분한 답변을 드릴만 한 준비가 못돼있다는것입니다. 그것은 취입이 아직 시험단계에 있기때문이고 또 제자신의 수준이 어리기때문입니다.》

(쳇! 저따위 소리는 무엇때문에 해!)

정아와 함께 창가에 앉아있던 태수는 벌써 주눅이 들어버린것 같은 진호의 태도에 코를 킁킁거리며 눈알을 부라렸다.

《알고있소. 시험단계에 있다, 부족점이 많다, 이런건 우리도 다 알고있단 말이요. 시험과정에 나타나고있는 실태에 대해서나 말해보오.》

무뚝뚝하게 들리는 부장의 말이였으나 진호에게는 용기를 돋구어주었다.

새 연료취입의 가능성을 찾게 된데로부터 연료와 중유의 차이, 연료의 난점에 대해 그리고 그 난점을 보충하기 위해 첨가제를 도입한것을 언급한 그는 첫 시험의 실패원인과 현재 취입시험과정에 나타나고있는 현상들을 상세히 밝혔다.

《우선 중유에 비한 새 연료의 우점이 뭔지 그것부터 얘기하오.》

진호가 제 곬을 못 찾는것이 못마땅했던지, 아니면 그만큼 강조했는데도 중요한 대목을 그냥 스쳐버리는것이 불만스러웠던지 문규가 불쑥 한마디 했다.

《새 연료의 우점은 이렇습니다. 열량을 따질 때에는 아직도 중유와의 차이가 일정하게 있지만 첨가제와 보충연료의 합리적인 배합을 전제로 할 땐 거의 온도차이가 없다는것입니다. 이젠 1 800도의 온도는 담보하고있습니다. 특히 새 연료의 우점은 화염이 로공간에 뜨지 않기때문에 강욕중심에 포복현상을 이루며 미치게 되므로 중유취입때처럼 화염이 천정을 마모시키지 않을뿐더러 짧은 시간에 쇠물온도를 높일수 있습니다. 이것은 로수명을 연장시키는데서나 제강시간을 단축시키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작용을 할수 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음―》

한손우에 다른 손을 포개얹은 부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첨가제의 역할이 생성물을 슬라크화하는데도 있다는게 옳소?… 옳다! 그건 어느 정도 처리하오?》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진호는 말꼬리를 흐리였다.

《파악이 없단 말이요?》

《처음부터 시험기구를 준비하지 못한데다가 새 연료를 조업도중에 취입했기때문에 정확한 량을 추산하지 못하고있습니다. 하지만 명백한것은 많은 량의 생성물이 슬라크화되고있다는것입니다.》

《그건 어떻게 아오?》

《연재의 분석을 통해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슬라크염기도가 그것을 실증하고있지요.》

《음―》

이번에도 똑같은 소리를 냈으나 아까와는 달리 어딘가 미심쩍어하는 기색이였다.

《새 연료에 의한 제강시간에 대해 알고싶은데요.》

과학기술위원회에서 온 처장이 마치 지내 까다로운 질문이나 아니냐는듯 조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그에 대해 대답하자 이번엔 그옆에 앉아있는 머리가 벗어진 연구소장이 강질의 변화에 대해 묻는것이였다. 탈탄속도와 규소성분에 대해, 분출구구조와 축열실에 대해서도 질문이 연방 제기되였다.

대답을 하면서도 진호가 놀라지 않을수 없는것은 심사성원들이 자기를 허술히 대하지 않을뿐아니라 마치 대단한 과학자라도 되는것처럼 신중하게 대해주는 점이였다.

《알겠습니다.》하고 경어를 쓰는가 하면 별치 않은 현상에 대한 설명에도 《아!― 그렇군요! 옳습니다, 훌륭합니다.》하는 찬사까지 보내는것이였다. 직급과 나이의 한계를 초월한 이들의 처사에 진호는 면구스럽기도 했고 옹색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자기 역시 그들처럼 고상해진듯 한감을 느끼였다.

질문은 계속되였다.

묻는 내용이 심화됨에 따라 대답하기도 점점 어려웠다. 모두가 현장에서 취입상태를 구체적으로 관찰한 뒤여서 사소한 의혹도 보통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한가지 묻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명식이였다.

누구를 어떻게 대할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일일수도 있지만 자기에게는 그런것쯤 익숙돼있다는것을 암시하려는듯 그의 태도는 자못 자신만만했다.

《제가 알고싶은것은 우선 연료취입량에 대한 기준입니다. 최적량을 어떻게 정하고있는가 하는것이지요. 전 이것이 새 연료취입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

진호는 대답할 말을 찾을수 없었다.

실상 취입량에 대한 기준은 새 연료안에서 핵으로 되는 문제였다. 매 공정별에 따르는 취입량, 특히 열조건에 따르는 취입량에 대한 기준은 새 연료안에 대한 과학성을 담보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일뿐아니라 나아가서는 취입을 공업화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과도 련관되여있었다. 그래서 각별히 애를 써왔지만 아직까지 그 일관성을 도출해낼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렇지만 그로선 그 원인이 다른데 있지 않고 단지 아직은 시험회수가 적은탓으로 하여 산출자료가 부족한데 있다고 믿고있었다.

《거기에 대해서도 아직 기준을 찾지 못하고있습니다. 어떨 땐 적은 량의 취입이 해당한 온도를 담보하는가 하면 또 어떨 땐 턱없이 많은 량을 취입해도 온도가 오르지 않습니다. 저로선 이런 현상을 로조건과 보충연료의 변화에 따르는 차이로 보고있고 또 아직 시험회수가 적기때문에…》

알만 하다는듯이 명식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나 더 묻겠는데 슬라크염기도가 어떻기때문에 생성물을 슬라크화한다는것입니까?》

《염기도에 산성이 강하기때문이지요.》

《산성은 부원료배합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나타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료해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에 장입되는 광석과 생석회는 산성이 강한것들입니다. 바로 그때문에 염기도가 오르고있다는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는 거기에 해당되는 자료를 언급했다. 그는 자료를 정확히 써먹을줄 아는 능력이 있을뿐아니라 거기에 자기의 사업을 안받침할줄 아는 수완도 가지고있었다. 수자들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의도를 나타낼줄 알았고 수자들을 외곡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주장을 강조할줄 알았다.

《제가 이것을 언급하는것은 생성물처리 역시 새 연료도입에서 다른 하나의 기본문제로 되기때문입니다. 우리 심사실에서도 취입량과 생성물, 이 두가지에 대한 일관한 법칙성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어려웠습니다. 결국 이것은 어떻게 해야 온도를 요구대로 조절하며 어떻게 해야 생성물을 없애는가에 대한 비결을 찾지 못하고있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앞으로도 여기에 대한 비결을 찾고 대책을 세울수 있겠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나섭니다. 저로선 반복시험을 한다 해도 어렵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로상태가 부단히 변화될뿐아니라 현재보다 더 나빠지기마련이며 보충연료의 편차도 더 증대되기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매 차지 새로운 조건이 조성되기때문입니다.》

명식은 어느새 진호가 아니라 부장을 보면서 말하고있었다.

《그러니 실장동무 의견은 뭐요?》

《나타난 현상은 새 연료안이 아직 어떤 과학적인 타당성도 없다는것을 증명하고있으며 앞으로도 증명하기 어렵다는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과학탐구에서 과학적인 담보가 없다는것 즉 객관적인 합법칙성이 무시돼있다는것은 과학이 아니라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다시말하면 우연이기때문에 과학적으로 론증되지 않는것이지요.》

《?》

의혹과 놀라움이 비낀 시선들이 맞부딪쳤으나 명식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기실 지금 속으로는 더없이 조마조마한 심정이였다. 등골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새 연료안의 자료들을 분석해보는 과정에 그는 최근에야 비로소 명백한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는데 그것은 진호의 성과가 자기가 그처럼 확신해마지않던 어떤 우연이 아니라 부족점이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틀림없이 성공하게 되리라는 그것이였다. 너무도 아연한 사실앞에서 그는 미처 정신상태를 수습할수가 없었다. 자기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여 자기가 믿는것이 혹시 무의미한것이나 아닐가 하는 의심을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그였지만 이번만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어째서 매사에 그처럼 정확한 자기가 이런 처지에 굴러떨어진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리해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의혹보다 먼저 가슴을 압박하는것은 자기에게 닥쳐오는 절망의 검은 그림자였다. 난생처음 그는 자기앞에 무서운 절벽이 나타났다는것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가 안심하고 걸어가던 곳이 땅인줄 알았는데 금시 쩍 갈라지면서 물우에 뜨게 된 얼음이라는것을 안 사람의 심정이라고 할가? 한데 그 얼음장은 자기를 싣고 점점 아래로, 한번 구겨박히면 다시 솟아나지 못할 그런 아득한 낭떠러지로 다가가고있는것이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모면할수 있단 말인가?)

오직 이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새 연료안을 긍정해나설수는 없는노릇이였다. 그러기에는 자신이 취한 태도가 너무나도 지나쳤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태도야말로 자신의 파멸을 촉진시키는 행동외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곧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이런 경울수록 자기의 주장을 계속 고집하는것이 상책이라는 그것이였다.

(내가 애초의 주장을 고집한다고 해서 새 연료안의 부족점이 없지 않는 한 함부로 시비하진 못할것이 아닌가. 불만을 품는다 해도 어디까지나 그건 기술안에 대한 견해상차이로밖에 해석되지 않을테니까.)

특히 새 연료안을 심사할 가치가 없다는것을 이미 부당이며 상급당에 제기했다는것을 알면서도 다시 심사를 조직한 부장에게도 자기의 주장을 그대로 고집해보이는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던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제법 자기의 견해에는 사소한 잘못도 있을수 없다는듯이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모든 사실은 이와 같이 무모한 모험은 일시적인 우연을 낳게 할수는 있어도 참다운 과학으로는 될수 없다는것을 증명하고있습니다.》

《?》

진호는 갑자기 목구멍에서 무엇인가 치받치는것을 느꼈다. 마치 우박이 비발치는 모진 소나기를 맞은 사람의 기분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아직도?)

실로 상상도 못했던 타격이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일어서려는 문규를 제지시킨 부장은 명식이를 바라보며 여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옳소. 언젠가도 동문 그렇게 주장했소. 새 연료안을 인정할수 없다고 말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말이요?》

《그렇습니다.》

명식은 부장의 태도에 어떤 불만이 있다는것을 간파하고는 가슴이 섬찍했으나 그런것을 느끼지 못한 사람처럼 범상하게 마주보았다.

《그러니까 동문 여태까지 어느 일 하나도 제대로 할수 없었다는걸 말해주오.》

《?》

명식은 아연한 표정을 지은채 부장을 쳐다보았다.

어째서 명석한 두뇌와 판단력을 지닌 부장이 자기를 그런 인간으로 여기는지 리해할수 없다는듯이 그는 격분하여 말했다.

《전 여태까지 어떤 일도 잘못 처리한적이 없습니다. 그건 부에서 일한 10년과정이 증명해준다고 봅니다. 그래, 제가 한번이라도 사고를 낸적이 있습니까? 단 한번이라도 심사를 망친 일이 있나 말입니다. 전 다만 모든 일을 정확히…》

그는 스스로 꾸며낸 감정의 발작에 못이겨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자 정말 목이 메는것이였다. 그 격정이 자기에 대한 공정치 못한 대접에서 온것인지 아니면 사면초가의 궁지에 빠진 지금의 극도의 긴장된 분위기에서 온것인지 저로서도 분간할수 없게 되였다.

《정확히?》

별로 크지 않는 부장의 목소리였으나 방안을 쩌렁하니 울리였다.

《동무가 정확히 수행했다는건 뭔지 아오? 어떤 일이 제기되면 이모저모 따져보고 그래도 실수가 없겠는가, 혹시 자기한테 어떤 피해가 없겠는가를 타산해본 다음에야 했다는것외에 아무것도 아니요. 한마디로 말해 의의가 있는 일은 빠짐없이 묵살해왔다는 그거란 말이요. 어떤 일도 그것이 새것일 경우에는 사소한 모험이 동반되는거요. 흔히 가치가 큰것일수록 그 모험의 농도도 짙은 법이요. 그래, 동무가 한 일중에 그런 일이 하나라도 있소? 직접 하지 않았다 해도 심사라도 맡아보았는가 말이요. 그런 일은 다 외면하고 하기 쉬운것들만 골라해왔으니까 진호동무의 이런 혁신안을 리해할수 있을게 뭐요!》

명식은 한풀 꺾인듯 어깨만 처뜨리고있었다.

《동무야 할수 있는 일들만 골라했지만 진호동문 남들이 안된다고 하는 일을 해왔단 말이요. 왜? 당에서 요구하기때문에! 생활이 요구하기때문에! 동무가 해놓은 일 백가지가 진호동무의 한가지 일에 비교되지 않는것처럼 동무 같은 사람 백을 주고도 진호동무 같은 사람 하나 구하기 어렵단 말이요.》

수치와 모멸감으로 하여 얼굴이 달아올랐으나 그럴수록 어떤 반감에 사로잡힌 명식은 그저 이 순간만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고있었다.

《어디 말해보오.》

《…》

명식은 침묵으로 대했다.

이럴 때 대꾸하면 말이 길어질뿐더러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자기의 보다 엄중한 과오로 하여 문제가 복잡해질 우려가 있다는것을 알기때문이였다.

《제가 좀 말하겠습니다.》

문규가 자리에서 일어나는것을 본 명식은 가슴이 덜컹했다. 언젠가부터 자기를 대할 때마다 고까운 눈길을 감추지 않던 문규였다. 그때마다 은연중 늙은 국장에 대한 본능적인 불만과 함께 어떤 두려움도 함께 체험하게 되였던것이다.

《전 하나 물어보고싶습니다. 정말 실장동무가 아직도 새 연료안을 우연이라고 보는지, 과학적인 타당성이 없다고 보는지 하는겁니다.》

《…》

《전 결코 실장동무가 그걸 분간하지 못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첨엔 그럴수 있었다 해도 일반 심사원들도 다 리해하는 그걸 왜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압니다. 알고도 남지요. 그런데 어째서 이 자리에서까지도 계속 그런 주장을 하는가 하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문규의 꼿꼿한 시선은 명식의 정수리를 면바로 노려보고있었다.

《혹시 그렇게 해야 자기 결함이 감추어지리라고 여기는게 아니요? 그렇게 우겨야 여태껏 당의 요구를 외면한것이 아니라 기술안에 대한 의견때문이라는것이 증명된다고 여기는게 아닌가 말이요.

실장동문 지금 어떻게든 자길 위장해보려고 하지만 바로 그런 너절한 추태가 여태껏 당의 의도보다 자기 속심만 채워왔다는걸 증명하고있단 말이요. 바로 그 비겁성이 여느땐 원칙이 있는것처럼 떠들던 사람이 일단 처지가 위태로와지면 더없이 교활해진다는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소. 실장동무! 제발 그런 가장된 미욱은 부리지 마시오. 인간다운 량심을 가지란 말이요.》

명식은 그제야 자기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현실적으로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부끄럽다거나 수치스럽다는 감정은 이미 초월하여 에라, 될대로 되라 하는 자포자기의 느낌뿐이였다.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했다.

부장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꾹 다문 입술과 우묵한 안확속에 단단히 박힌 눈, 흥분을 누르느라고 꽉 틀어쥔 손, 이 모든 인상은 현상을 분별있게 또 확신성있게 처리하는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그런 준엄성과 엄격성으로 가득차있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이요. 오늘 우리 현실에서 제일 무서운건 바로 저 실장동무와 같이 뜨거운 심장이 아니라 타산된 수치만 가지고 그것도 충실한척 가장하면서 일하는 그런 일군이 자리를 차지하고있는거요. 됐소, 앉으시오. 오늘은 새 연료안에 대해 알아보자고 왔지 동무때문에 온건 아니니까. 동무문젠 따로 토론하겠소.》

굳어진듯이 한자리에 서있던 명식은 앉으라는 소리를 나가라는 말로 들었는지 아니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던지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진호는 그런 명식이를 보느라니 여태껏 품었던 반감은 사라지고 어쩐지 그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는 감상적인 사람이 버림받는 사람을 바라볼 때와 같은 그런 동정어린 눈길로 명식이를 지켜보았다.

《계속합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있었다 해도 그건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듯이 흔연한 표정으로 돌아선 부장은 곧 출입문옆에 앉아있는 기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책임기사동무던가?》

옆에 있던 지배인이 옳다고 귀띔하자 부장은 곧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취입공정안을 설계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사실 새 연료의 취입과 관련된 과학적인 가치나 성과를 따짐에 있어서 연료자체가 가지는 의의도 의의지만 기류식취입기의 착안, 여기에도 적지 않은 의의를 부여하지 않을수 없소. 결국 동무들 두사람이 일심동체가 된것으로 해서 새 연료의 취입이 가능하게 된것이 아니겠소. 얼마나 큰 일이요. 새로운 연료로 강철을 쫄인다는게 어딘가 말이요.

이 성과는 나타난 사실에 몇곱을 해도 모자라오. 왜냐하면 일년에 수만톤의 중유를 절약하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라 보다는 이젠 우리의 무진장한 연료를 쓰게 된데 더 큰 의의가 있단 말이요. 난 중유를 대신하는 우리 나라의 연료가 곧 취입된다는데 대해 또 동무들의 노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당에 보고하려고 하오.》

《…》

기철은 뭐라고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대답도 대답이지만 얼굴이 달아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지나간 모든 일을 상기시키며 량심에 꺼리끼는 일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앉아있는 자기의 비렬성을 자인할것을 요구하고있었으나 어떤 다른 힘이 이 충동을 억제해버리는것이였다.

(당에 올리는 보고! 만사람의 격찬! 화려한 명예!)

그래도 대담하게 일어나 《전 사실 이제껏 새 연료안을 외면해온 사람입니다.》 하고 말해야 할것이다. 아니 《의의가 너무도 큰것이기때문에 그 성과에 한몫 끼여들자고 취입공정을 설계한데 불과합니다.》 응당 이렇게 까밝혀야 옳겠으나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이란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에 자기의 량심을 각별히 엄정하게 지켜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때 량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개인적인 행복이 크게 약속될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경계선이라는것이 반드시 뚜렷하고 명백한것이 아니기때문에 자기의 리익을 생각하는 사람에겐 쉽사리 그 경계의 밖에 서게 되는것이다.

기철이도 바로 그런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내심을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정아였다.

정아가 느낀 첫 감정은 경악이였다. 하지만 곧 심장이 터질듯 괴로왔다.

(어쩌면 진호동무가 갖은 고생을 다해 이룩해놓은 성과에 서슴없이 발을 들여놓을수 있을가! 어쩌면 단 한마디나마 자긴 가망이 없는 일로 여겨 소격하게 대해왔노라고 말하지 못하는걸가! 그가 이젠 진정으로 새 연료안을 도와나선다고 믿었던것이 잘못이였단 말인가! 취입안의 설계를 부에 올려보내고도 그가 말하지 않은것이 지나간 일에 대한 부끄러움과 회오때문이라고 여겼던 내가 어리석었단 말인가! 아니야! 그는 결코 그렇게 량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야. 이제 일어나 모든걸 말할거야. 대담하게 자기의 잘못을 털어놓을거야.)

그러나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의 기색으로 봐서는 도저히 일어설상싶지 않았다.

(아, 어쩜 저럴수 있을가?)

《고생은 누구보다 저 처녀동무가 많았지요. 계속 진호동무의 조수의 역할을 했으니 말입니다.》

이런 지배인의 말에 정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처녀동무가 어디 한번 말해보오. 동무들한테 걸린 문제가 뭐요? 당장 해결해주었으면 하는게 뭔가 말이요.》

《전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아는 두손을 맞쥐면서 고개를 숙였다.

《다만 이 자리에서 명백히 밝히고싶은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 연료안과 관련된 성과는 전적으로 진호동무가 이룩해놓았다는것입니다.》

그는 야무진 눈길로 기철이를 돌아본 다음 말을 이었다.

《물론 취입공정도 무시할수야 없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엔 그것이 정당한 의도에서 창안된것이 못된다고 봅니다. 성과가 크다고 어떻게 그 성과에 온당치 못한 의도를 용해시킬수 있겠습니까. 전 우리 기술안이 당에 보고되기때문에 이 사실을 더 밝히지 않을수 없습니다.》

모두들 아연한 눈길로 정아를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놀란것은 진호였다.

(아―니?)

정아가 누구를 사모하고있는가 하는것을 진호도 이젠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러니 이젠 맘이 변했다는건가? 사랑을 품을만 한 사람이 못된다고 단정해버렸는가?)

진호는 기철이를 돌아보았다.

굳은듯이 앉아있는 그는 숨도 쉬지 않는것 같았다. 모멸과 치욕으로 하여 낯색이 창백해질대로 창백해있던 그는 마치 견딜수 없는 중압을 헤치기라도 하듯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옳습니다. 정아동무 말이 옳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말했다.

《전 사실 새 연료안이 가망이 없는것으로만 여겼댔습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성공하리라는것을 알고서야 설계에 달라붙었습니다. 성과가 너무도 커서, 평가에 유혹돼서 말입니다. 전… 전 사실 그렇게도 량심이 없는 놈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의 괴로운 신음이였으나 거기에는 뜨거운 진정이 너울치고있었다.

《…》

부장은 물론 심사원들까지도 저마끔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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