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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34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제 와서 설계를 의뢰하자는건가? 어째서 포기하자는건가 말이야!》

책상을 두드리는 태수의 두눈은 노기를 띠다못해 벌겋게 상혈돼있었으나 그를 마주 바라보는 진호의 표정은 사뭇 침착했다.

《포기라니? 누가 뭐 포기하자는건가?》

《설계를 집어던지는데도 포기가 아니야? 해야 할 일을 도중에서 그만두는데도 포기가 아닌가 말야!》

태수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기만 했다. 이때까지 하나의 기술안을 위해 일심동체가 되여 일해오기는 고사하고 도리여 원한을 품어온 두사람이 마침내 어떤 계기로 서로 열을 올리면서 상대를 몰아대는것 같았다.

이들의 론쟁은 취입공정설계때문이였다. 그 설계를 맡고있는 태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들이 마지막까지 설계를 완성해야 한다는것이고 진호는 반대로 당장 설계실이나 연구소에 의뢰하자는것이였다. 두사람의 상반되는 견해에 비해 정아는 어느쪽에도 편승하지 않고 책상우에 펴놓은 태수의 미완성도면만 내려다보고있었다.

《문제는 새 연료를 하루라도 빨리 취입해야 한다는데 있는게 아니겠나. 만약 우리가 이 설계에 파묻혀있어보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텐가! 동무도 말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점들이 얼마나 많나!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게! 난 동무가 설계를 맡은것이 미타해서 하는 말이 아니네. 다만 다른데 의뢰하면 더 좋은 안이 제기될수도 있고 빨리 완성될수도 있기때문이네.》

《그렇다고 해서 다 익혀온 열매를 이제 와서 남에게 줘야겠나? 땀흘려 가꾼 열매를 이제 와서 남들이 따먹게 해야 하나 말일세. 난 그럴수 없네! 절대로 찬성할수 없단 말이네!》

태수가 내려치는 주먹에 책상우에 놓여있던 양철재털이가 빙글빙글 춤을 추며 돌아갔다.

《그래도 새 연료야 우리가 만들어놓지 않았나.》

《새 연료? 원, 이렇게도 답답하다구야. 그까짓게 뭐 큰건줄 아나? 문제는 그걸 만든데 있는것이 아니라 공정으로 도입하는데 있단 말일세. 기술안의 의의란 어디까지나 공업화에 있지 않나, 공업화에!》

태수는 옆에 있는 정아가 긍정해주기를 바라는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정아는 여전히 잠자코 앉아있기만 했다. 그는 아직도 진호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가늠이 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설사 그렇다 해도 난 의뢰해야겠네.》

《나참! 보다보다 이런 바보는 처음이군! 이젠 아예 머리가 돌아버린게 아니야?》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선 태수는 더는 대상하지 않겠다는듯이 문쪽으로 걸어갔으나 이내 다시 돌아서는것이였다.

그의 험악한 기상을 지켜보던 정아는 얼른 책상우에 있는 재털이를 집어 원탁우에 옮겨놓았다. 이번 타격에는 틀림없이 그것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낼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의자를 당겨놓으며 앉는 태수의 목소리는 의외에도 조용했다.

《어디 말해보게! 그래 동문 분하지도 않아? 억울하지도 않는가 말이야! 설계를 다른데 맡겨 이제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되는건 둘째로 치세. 그까짓건 뒤로 미루잔 말이야. 내가 참을수 없는건 이 기술안때문에 동무가 받은 수모야. 얼마나 억울한 의심과 조소를 받았나. 진심을 유린당했지, 처녀의 사랑을 잃었지, 거기다가 집단을 희롱한다는 소리까지 듣지 않았나 말야. 그래 이게 분하지도 않아? 억울하지도 않느냐 말이야! 그래도 언젠 뭐 량심을 증명해보이겠다구? 누구한테 진리가 있는가 하는걸 똑똑히 보여주겠노라구? 이제야말로 봐라 하고 소리치며 그 량심과 진리를 보여줄 때란 말일세. 그런데 이제 와선 뭐? 이거야 어디 속에 천불이 나서 제길!》

태수의 목소리는 분노와 안타까움에 떨고있었다.

《…》

잠자코 있던 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랬네, 사실 그게 내 심정이였고 결심이였지.》

그는 회오에 젖은 어조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건 사실이네. 어떻게 하든지 새 연료안을 완성하는것으로써 자기를 증명하려고 했고 또 나를 의심한 모든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려고 했지. 그렇지만 이제 와선 그런 생각이 어쩐지 하찮은것이라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네.

물론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없진 않네. 그러나 그때마다 그런 옹졸한 생각을 이겨내야 한다고 맘먹군 하네. 이전에는 오직 자기라는 하나의 충동에 사로잡혀있었지만 지금에 와선 그렇게 생각한 자신이 가소롭고 혐오스럽단 말일세. 난 어떤 계기로 이것을 느끼게 됐는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동무나 정아동무의 덕분이라고 여기고있네. 뒤늦게나마 이걸 깨달은걸 난 다행으로 생각하네.》

《…》

정아도 그제야 고개를 들고 진호를 바라보았다.

사실 자기를 증명해보일수 있는 순간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진호였다. 바로 그 순간이 자기의 희망과 량심은 물론 여태까지 가슴속에 고여있던 온갖 설음과 원한을 보상하리라고 여겨오던 그였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이루어지게 된 이 마당에 와서는 애초의 결심이 흔들리는것이였고 나아가서는 그 결심자체에 의혹을 품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등산길에 오른 사람이 도중에 있는 정각에 이르면 다리를 뻗치고 푹 쉬리라 마음먹었다가 정작 거기에 다달으자 바로 눈앞에 쳐다보이는 산봉우리의 황홀한 경치에 매혹되여 쉬기는커녕 더 씩씩한 기분으로 치닫게 되는것과 같다고 할가. 아니, 그보다 산봉우리에 올라서서 일만정경을 굽어보게 된 사람이 방금 지나온 정각을 내려다보며 어쩌면 자기가 저렇게도 낮고 답답한데서 맥을 놓고 쉬려고 했던가를 허구프게 돌이켜보는 때와 같다고 해야 할것이다.

(내가 과연 그것을 위해 일해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의 포부와 열정이란 너무나도 보잘것 없는것이 아닌가! 여태까진 그런 맘으로 일해왔다 해도 이제부턴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해! 그런 자신을 초월해야 해. 그래야 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갱생할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점점 그의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던것이다. 특히 신념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숭고한 목적을 위해 간직해야 하며 그것을 투쟁으로 고수해야 한다는 비서의 말은 온갖 유혹에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억센 암석처럼 가슴을 굳건히 해주었다. 그는 자기가 태수의 권고를 받아들인다면 거기에 아무리 자기를 만족시켜주는 달콤한것이 있다 해도 그것은 한갖 유치하고 저속하며 나아가서는 배은망덕한 일이라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뭐 어떤 푼수없는 도량을 시위한다고는 생각지 말게. 다만 이제라도 이전보다는 조금이나마 낫게 살아야겠다는 희망에서일따름이네. 자기자신이 아니라 생활을 위해, 고상한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희망 말일세.》

《그래도 우린 누구나 자기가 일한것만큼 평가를 받을 권리가 있는게 아니겠어요.》

침묵을 지키고있던 정아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남의 성과를 자기의것으로 해서도 안되지만 자기의 성과를 남의것으로 할 필요도 없지 않아요.》

진호가 바라는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어떤 고상한 감정에 휩싸인 정아였으나 그의 견해가 지나치게 자기희생적이라는데는 의견이 없지 않았다.

《물론 개인들끼리라면 그럴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지 않소. 생각해보오, 우리가 설계를 붙들고 씨름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중유가 소비되겠소. 우리의 사소한 리익때문에 직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게 되겠는가 말이요. 중유는 둘째치고 우리가 바라는 그 영예의 대가로 지체되는것이 뭐요?》

《…》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의 방에 다른 도표는 없어도 강철생산도표만은 있다고 하시였소. 그 도표를 바라보시며 나날이 부강해지는 조국을 그려보신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말이요. 난 요즘 그 도표를 바라보시며 이젠 우리의 연료로 쇠물을 끓이고있는것으로 하여 한시름 놓으실 수령님의 영상이 떠올라 견딜수 없소. 그 간절한 소망이 우리의 욕심으로 하여 한순간이라도 늦어진다면 우리야말로 어떻게 량심을 가진 인간이라고 할수 있겠소.》

《…》

그제야 정아는 고개를 숙이였다.

다시 태수에게로 시선을 옮긴 진호는 진정에 넘친 목소리로 말했다.

《태수, 난 요즘에야 사람의 량심이 어떤것인가 하는걸 안것 같네. 오늘에야 비로소 어떤 경우에도 최대한 우리 수령님께서 의도하시는대로 사색할줄 알뿐아니라 행동까지 할줄 아는 사람이 가장 참된 량심을 가진 인간이라는걸 깨달았단 말이네.》

《…》

어느덧 방안에는 숭엄한 침묵이 깃들었다.


이들이 취입공정에 대한 설계를 놓고 심각한 론쟁을 하고있을 때 저녁차로 출장지에서 돌아온 기철이도 자기 집에서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동생 인철이는 오늘도 어딜 돌아다니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한번 제시간에 돌아온적이 없는 동생이였다.

담배를 피워물고 창가로 다가선 그는 캄캄한 어둠속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그사이 일에 몰린 피곤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방금 목욕을 한 사람과 같이 상기된 표정이였고 한가지 일에만 사색을 집중하고있는 흥분한 기색이였다.

실상 그도 지금 바로 진호네가 론의하고있는 그 취입안에 대해 생각하고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평양에서 명식이로부터 새 연료가 취입되고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충격을 금할수 없었다. 충격이라기보다 전률이였고 저절로 터져나오는 경탄이였으며 또 진호에 대한 새삼스런 놀라움이기도 했다. 그처럼 막연하다고 여겼던 새 연료안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일로나 불가사의한것으로 느껴지지 않고 도리여 《그 친구가 종내…》 하는 어떤 기대해온 일, 특히 그럴수밖에 없는 결과를 접했을 때와 같은 일종의 감탄까지 품게 되는데는 저로서도 이상한 일이였다.

사실 그는 언젠가부터 자기의 중유절약안과 진호의 새 연료안을 대비해보았고 대비해볼수록 진호가 자기보다 앞섰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보통때 같으면 당장 그보다 더 훌륭한 안을 착상하기 위해 이발을 사려물고 달라붙을 그였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무리 자기가 힘을 들인다 해도 벌써 결승선을 가까이하고있는 진호를 따라잡을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럴수록 그런 처지에 떨어진 자신이 저주롭기만 했었다.

《놀라긴 이르네. 이 자료들을 보면 알겠지만 열량도 문제거니와 공정으로 도입하기는 불가능하거던. 공업화할수 없는 기술안, 그게 무슨 필요가 있겠나?》

명식은 취입시험에서 나타나고있는 부족점들, 즉 열의 파동이며 연도에 미치는 후과에 대해서 하나하나 지적해나갔으나 기철은 그의 말을 납득할수가 없었다. 명식의 말이라면 늘 철칙으로 받아들이던 그였지만 진호의 새 연료안에 대한 평가에는 의견을 달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건 실장이 아직 진호를 잘 모르기때문이야.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는데 있지. 확실히 진호는 여느 사람들과 달라!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그런 점이 있거던, 그게 어떤건지는 알수 없지만. 바로 그것이 시험을 성공케 했고 앞으로도 기어이 완성케 할 비결이야!)

기철은 무슨 일에서나 상대방, 특히 경쟁자로 치부하는 사람에게서 그가 가지고있는 우점에 대해 무시하거나 결함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될수록 우점을 찾고 그것을 몇배로 확대하여 받아들이는 사람이였다.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을 실제보다 더 위력한 존재로 보기가 일쑤였다. 이것은 그의 겸손한 성품에서 출발되는것이기도 했으나 보다는 그만큼 경쟁자를 눌러놓고 앞서야 한다는 자기에 대한 요구성때문이였다.

《어째서 공정도입이 어렵다는겁니까?》

기철은 의아한 눈길로 명식이를 쳐다보았다.

《이걸 보게, 만약 새 연료를 취입한다고 가정하세. 그러나 연료의 가공으로부터 예열, 첨가제의 배합, 이런 설비가 빈틈없이 갖추어진 조건에서도 한순간의 변화도 없이 균등한 량의 연료가 매개 로에 쉼없이 공급되여야만 하네. 이런 설비를 꾸리자면 한개 직장의 부대설비가 있어야 할거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설비를 따로가 아니라 현장에 꾸려놓되 정밀한 기계나 전기장치로 해서는 안된다는데 있거던. 진동이 심한 용해장에 정밀기계가 통할리 없고 온통 쇠붙이로 된 곳에 전기가설을 할수야 없지 않나! 그래 이런 불합리한 점을 타개한 취입공정을 설계한다는것이 가능할것 같나? 어림도 없는 일이지! 만약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야금계의 콜롬부스지.》

(확실히 그 취입공정이 문제야. 이젠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로 나서지 않을수 없지. 만약 그것만 완성해놓는다면 새 연료안 성과의 절반은 저절로 차지하는셈이 아닌가! 야금계의 콜롬부스? 하긴 일리가 있는 말이야.)

그때부터 기철이의 머리속에는 오직 취입공정에 대한 생각만 맴돌이칠뿐이였다. 그런데는 틀림없이 취입시험이 성공하리라는 예감으로부터 앞으로는 부득불 취입공정문제가 제기되지 않을수 없으리라는 확신때문이였고 더우기는 이번 출장에서 이렇다할 성과가 없기때문에 더 강한 의욕을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새로운 산소강욕취입안을 추진하는 과정에 한가지 난문제에 부딪쳤는데 그것으로 하여 해당 부문과 몇가지 기술합의를 해야 했고 그것도 결과가 좋기 전에는 다시 시작할수가 없게 되였던것이다. 그러고보면 자기의 처지란 진호에 비해선 너무나도 뒤떨어진것이 아닐수 없었다. 바로 그 모멸감이 그를 참을수 없게 했다.

(취입공정이라…)

어느새 담배불은 꺼져있었다.

새 가치에 불을 갈아댄 그는 캄캄한 창밖으로 연기를 내뿜으면서 파란 연기가 자취를 감추는 모양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어떤 장치래야 가장 적합하고 간편한 장치겠는가? 류전현상을 방지할수 있으면서도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 설비! 과연 그런걸 착안할수 없단 말인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언제나처럼 말쑥한 차림을 하고있는 동생이 방안으로 들어서고있었다.

《아니, 형 언제 왔수?》

오늘따라 무엇때문인지 그의 얼굴에는 퍽 흡족해하는, 그것도 세상에 자기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없을거라고 자부하는 사람만이 짓는 그런 미소가 어려있었다.

《넌 늘 밤늦게까지 어딜 싸다니니?》

기철은 동생이 늦게 돌아와서라기보다 사색을 분산시킨것이 언짢아 한마디 했다.

《나야 뻔하지요. 뭐, 몰라서 물어요?》

아닌게아니라 기철은 동생의 몸에서 여느때없이 어떤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것을 감촉하지 않을수 없었다. 무슨 각별히 좋은 일이 있었던게 분명했다.

제대돼와서 얼마까지는 그래도 늦게 돌아올 때면 자기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해하기도 하고 딴전을 피우던 동생이였으나 이젠 처녀와 다닌다는것을 드러내놓고 말하는것은 물론 어떨 땐 일부러 지싯지싯 비위까지 건드리는것이였다.

《형이 장가 안 가는건 좋지만 제발 날 홀애비로 늙게 하진 말아주우.》

이런 불평쯤은 여반장이였다.

《가고프면 갈게지 내가 무슨 상관이냐!》

《어디 아버지가 말을 들어요? 아버지야 장가가는것도 곶감꼭지따듯 순서대로 가야 한다는건데…》

형제간이라고는 하지만 성격은 물론 모색까지도 판 다른 이들이였다. 심중하고 집념이 강한 기철이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면 아무 일이나 대범하게 대하고 또 척척 수월하게 해제끼는 인철이는 아버지편이였다. 노래 한곡 변변히 부르지 못하는 기철이였으나 인철이는 기타를 두드리며 휘파람을 멋지게 불어넘겼고 운동장에 나서면 인기를 독차지하는 직장축구팀 문지기이기도 했다.

《일은 성실하게, 생활은 보람차게! 생활을 위해 일을 희생시켜선 안되지만 일때문에 생활을 즐기지 못하는것도 우둔한노릇이다!》

이런 생활구호를 부르짖는 그는 줄곧 도면과 기술서적에만 파묻혀있는 형을 서글픈 눈길로 바라보는것이였다. 기어이 제일 힘든데서 일을 하겠다고 해서 해탄로 로체공이 되였는데 어떻게 극성을 부렸던지 1년 남짓한 기간에 벌써 작업반장이 되였는가 하면 신문에는 물론 화보에도 곧잘 소개되군 했다. 그의 책상앞에는 화보에서 오려낸 자기의 사진이 벌써 몇장 잘 붙어있었다.

쇠장대를 거머쥐고 탄화실앞에서 일할 땐 갈범처럼 날치는 그였지만 목욕을 하고 옷을 척 갈아입고 나서면 마치 외국출장을 업으로 하는 1등외교관을 련상시키는것이였다. 바로 이런 대조되는 생활의 률조와 랑만을 사랑하는 그였다.

모든 생활이 그에겐 하나같이 즐겁고 보람찼으나 한가지만은 고민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형이 장가갈념을 않는것으로 하여 자기에게 미치는 피해였다. 한번은 아버지한테 이런 불평까지 부렸다.

《확실히 우리 집엔 뭔가 잘못된게 있어요. 공평하지 못하단 말입니다.》

《뭐가 공평치 못해?》

《우리 사회에서는 어딜 가나 혁명에 이바지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우대해주지 않습니까, 영예군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그런 원칙이 무시되고있거던요. 형이야 고스란히 공부를 했지만 저야 그래도 다년간 총을 메고 혁명을 보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 집에도 제대군인우선권제도만이라도 있어야겠다는겁니다.》

《하긴 그 말도 비슷해!》

이런 아버지의 훈수가 청승맞은 수절과부처럼 장가갈 꿈도 안 꾸는 자기가 밉살스럽기때문이라는것을 기철이자신도 모르지 않았다.

《형, 날 좀 보우!》

옷을 벗어던지고 이불단을 내려놓던 인철이가 갑자기 기철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는것이였다.

《여드름이 난게 아니요? 아니, 그것도 아래턱에 났구려.》

무릎을 철썩 갈기며 좋아하는 동생을 기철은 얼떠름해서 바라보았다.

《그 여드름이 뭘 의미하는지 아우? 사랑을 의미한단 말이요. 그런데 나처럼 이렇게 이마빡에 나는건 틀렸소. 왜냐하면 그건 자기가 처녀를 생각할 때 나는거니까. 그러나 형처럼 아래턱에 나는건 반대로 어떤 처녀가 형을 사랑하고있다는 증거란 말이요. 알겠소? 어디 봅시다. 음― 탱탱하니 약이 오른걸 보니 그 처녀가 형을 몹시 사랑하고있는게 틀림없구려. 하― 이거 정말!》

마치 자기가 당장 어떤 처녀와 선을 보고 혼약이라도 한것처럼 기뻐하는 동생을 기철은 어이없는 눈길로 바라보지 않을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처녀요?》

《잘은 놀구있다!》

《한직장에 있수?》

기철은 더는 대상하기 싫다는듯 돌아앉았다.

《한데 어떤 처녀를 택해야 하는지 아우? 아니, 돌아앉지 말고 한마디만 듣구려. 내 경험에 의하면 말이요…》

어느쪽이 형이고 어느쪽이 동생인지 분간할수 없게 된것으로 하여 기철은 또다시 실소가 샜다.

《처녀가 훌륭한 남자를 택하려면 처녀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 남자들이 좋아하는 그런 남자를 골라야 하고 또 남자가 좋은 처녀를 택하려면 남자들한테 인기가 있는 처녀가 아니라 처녀들속에서 인기가 있는 그런 처녀를 택해야 한다는거요. 알만 하우?》

《원, 복잡하기란…》

《복잡할게 없어요. 양극과 음극은 서로 끌어당기지만 거기에 자극되지 않는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진짜라는거지요.》

(어떤 취입장치래야 가장 적합할것인가!)

기철은 방금 하던 생각으로 사색을 몰아갔다.

사색을 집중시킬 때마다 그런것처럼 그는 책상우에 펴놓은 백지에 어느 경우에나 가장 적합한 공리인 원을 끝없이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복잡한 현장조건에서 기계설비나 전기장치로는 안전성을 담보할수 없어, 정밀성 역시. 그렇다면…)

문득 시료송달기를 창안하던 때의 일이 생각났다. 출강을 앞둔 정련기부터는 쇠물의 성분을 알기 위해 15분에 한번씩 시료를 분석실에 보내야 하고 또 이미의 분석수치를 받아와야 했는데 그건 무척 시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는 이 시료를 송달하는 장치를 기계화하려고 맘먹었다. 그가 생각해낸것은 매 로들과 분석실을 관으로 련결시키고 그안에 시료를 넣고는 압축공기로 쏘게 하는 원리였다. 그것은 쉽사리 도입되였고 아직까지 한번의 고장도 없이 쓰이고있었다.

(만약 그런 원리대로 연료를 쏜다면?)

그는 흠칫했다. 무질서한 환영들이 불시에 떠오르는가 하면 어떤것에 부딪쳐 부서지기도 하고 또다시 눈앞을 어지럽히는것이였다. 점점 숨이 가빠지면서 두눈이 황황 불타올랐다.

연필을 찾아쥔 손은 번개치듯 하였다. 어느새 종이우에는 이러저러한 선들과 몇개의 계산수자가 나왔다.

그는 자기의 모든 사색과 열정이 비상한 힘으로 한곳에 집중되는것을 느꼈다. 오매에도 바라마지 않던 열망, 천추에도 잊을수 없던 간절한 소원이 당장 자기 손에 쥐여질수도 있을것 같은 흥분으로 하여 그의 가슴은 걷잡을수없이 활랑거렸다.

기류식취입공정! 모르긴 해도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여태껏 꿈꿔오던 그렇듯 거대한 위훈, 만사람을 놀래울 그런 대단한 혁신안이 아닐수 없는것 같았다.

(야금계의 콜롬부스!)

명식이가 하던 말이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났다.

그는 자기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결정적인 일이 일어나고있다는것을 감득했는데 그것은 이제껏 바라오던 목적을 달성할수도 있으리라는 기대였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무엇인가 온당치 못한 생각을 하고있지나 않나 하는 의혹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 의혹이 좋지 않은 생각이라는데서 오는 량심의 목소리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니, 가슴속에 끓어번지는 세찬 흥분이 그런 의혹을 일축해버렸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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