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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회

제 7 장

우리는 젊은 세대

32


정아는 강아래쪽에서 진희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느라고 야단이였다.

《팔을 이렇게, 숨은 들이쉬고.》

《이렇게?》

《아니, 이렇게 크게.》

《이렇게?》

그들이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바로 옆에서처럼 들려왔다.

《얼마나 아름다운 처년가?》

진호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자기에게 있어서 정아는 깨끗한 시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시련에 찬 길을 허덕이며 걷는 사람이 목을 추기고 얼굴을 담글수 있는 시내물, 이제까지의 피곤을 가셔주고 새로운 힘을 북돋아주는 그런 맑은 시내물이였다. 아니, 어찌 시내물에만 비기랴! 암초에 걸려 모지름을 쓸 땐 뒤에서 떠밀어주는 강물이였고 맥을 놓고 방향을 찾지 못할 땐 목적지를 향해 더 빨리 닿을수 있게 해준 힘찬 격류이기도 했다. 그저 고맙다고 하기에는 표현이 너무도 범속한 그런 감사의 정이 자기 가슴속에 고여있다는것을 그는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그가 없었다면 내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할수 있었단 말인가!)

정아를 대할 때마다 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처녀야말로 자기가 표현하는것보다 얼마나 더 소박하고 진실하며 그래서 또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되면서 은연중 현옥이는 어째서 이렇지 못할가? 이 처녀가 현옥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부질없는 상념에 젖어드는것이였다.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라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자주 정아의 자리에 현옥이를 세워놓고 여러가지 일들을 상상해보는것이였다. 한눈금의 분석수치를 놓고 같이 고민해보는가 하면 심사결론을 두고는 자기보다 더 가슴아파하는 현옥이의 모습도…

그러나 좀처럼 자기와 일치시킬수 없는 현옥이였다.

《전 정말 얼굴도 맘씨도 그렇게 고운 처녀는 첨 봤어요. 어쩐지 옆에 있기가 막 부끄럽지 않겠어요.》

평양에서 돌아와서 하던 그의 말이였다.

《됐소, 내가 뭐 그런 부탁을 한거야 아니지 않소.》

맘속으로는 현옥이에 대한 말을 듣고싶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 동무도 자기의 고통을 동무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자기도 이젠 동무를 잊었노라고, 이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요. 그렇지만 전 그렇게 말하는 그의 가슴속에 어떤 새롭고도 귀중한 그 무엇이 잠재해있다는것을, 그것이 이제야 결정적으로 눈을 떴다는것을 알게 됐어요. 만약 동무가 그것조차 리해하지 못한다면…》

《솔직히 말해 난 어느때건 그가 자기의 잘못을 알고 그런 고통을 느낄 때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소. 언제든지 그런 날이 오리라는걸 믿었단 말이요.》

자기를 괴롭힌 현옥이가 고통스러워한다는 말은 진호에게 어떤 야릇한 만족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응당하다는건가요? 자기를 괴롭힌데 대한 마땅한 대가라는건가요?》

《이제 와서 그런걸 계산하자는건 아니요. 하지만 난 지금도 그에 대한 태도에서 내자신이 시정해야 할 일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너무해요. 그건 진심으로 뉘우치고있는 그에 대한 지나친 처사가 아닐수 없어요. 어쩌면 동문 그렇게도…》

자기를 마주보는 정아의 시선에 어딘가 혐오스런 빛이 어려있었다.

《제발 더는 그의 상처를 다치지 마세요. 본인도 그것으로 해서 괴로와하고있는 상처를 애써 더듬으려 하지 말아요. 동무의 믿음에 그가 본의아니게 불성실했을수도 있다는걸 왜 생각하지 못해요. 전 현옥동무가 하던 말을 잊을수가 없어요. 그 목소리와 눈길의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를 가지였던가를 이제 와선 더 통절히 느끼게 돼요. 거기에는 용서를 비는 간절한 념원이 깃들어있었고 동무에 대한 신뢰의 정이 담겨있었어요. 그리고 그의 소심한 태도에는 희망과 맹세가, 동무에 대한 누를길 없는 애정이 깃들어있었어요. 전 그 희망을 믿지 않을수 없어요. 그 애정을 믿지 않을수 없단 말이예요.》

자기를 붙들고 눈물을 머금던 현옥이의 모습이 떠올랐으나 진호는 얼른 화제를 돌려 그동안 그가 평양에서 얻어온 자료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실로 정아가 고심을 들여 얻어낸 자료는 더없이 귀중한것이였다. 무엇보다 자기가 그토록 애써 찾으려고 했던 보충연료들의 배합원칙, 즉 가스와 산소와 공기의 배합비에 따르는 열량의 변화가 명백하게 산출돼있었던것이다.

《진호동무! 이젠 여기 와앉아요.》

은심이의 목소리에 돌아보니 어느새 음식을 가운데 놓은 친구들이 주런이 마주앉아 자기가 앉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아니, 여기요! 이 자리에 앉아야 해요. 오늘의 주인공이니까요.》

주부의 임무를 수행하는 은심이가 주석단처럼 따로 만들어놓은 자리를 가리키는것이였다.

《어서 앉게.》

맞은켠자리에 앉아있던 로장도 자못 흡족한 표정이였다.

《좋습니다, 앉지요. 자리가 좋으니 돌아오는 몫도 많을테니까요.》

그는 서슴없이 가운데자리에 앉았다.

《자― 한마디 하시구려.》

비서가 이렇게 권하자 로장은 대뜸 《어험!》하고 기침을 깇으며 근엄한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에― 그간 새 연료안때문에 수고들이 많았네. 우리가 시험을 성과적으로 했다는건 대단히 자랑스런 일이 아닐수 없네. 그건 무엇보다 우리 2호로의 영예를 계속 빛내이는것으로 되니꺼니. 안 그런가?》

표현해야 할 말마디를 고르기가 힘이 드는지 그는 미간을 찌프리고 한참 침묵을 지켰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한 수고보다 앞으로의 고생이 더하다는걸 알아야 하네. 문제는 뭔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새 연료취입을 완성해야 한다는것이고 그래서 기어이 승리의 보골 올려야 한다는걸세. 알겠나? 자―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드세.》

일시에 박수갈채가 일었다.

《제때에 도와주지 못했다고 욕하지 마오. 대신 이제부터 봉창하지.》

잔을 든 비서가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별치 않은 그 한마디에 진호는 가슴이 찌르르했다.

취입공정안설계를 어떤 일이 있어도 제 기일에 완성하겠다는 태수의 결의에 이어 래빈으로 참가한 진희의 격려사가 각별한 이채를 띠였다.

《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오빠가 고심하던 기술안이 성공하게 되였다는데 있지만 보다는 우리 수령님께서 한시름 놓으시게 된다는 그 사실이 더 기뻐요. 중유를 쓰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으시면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가요. 고맙습니다, 로장아부님이랑 용해공오빠들 정말 고마와요.》

그러면서 그는 정말 공손히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이들이 부글부글 끓는 어죽가마를 가운데 놓고 술잔을 주고받을 때 미역을 감은탓으로 온몸이 나른해진 정아는 커다란 소나무가 던져주는 그늘아래 수영복차림채로 조용히 누워있었다.

온몸을 따뜻이 어루만져주는 훈향의 부드러운 촉감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눈을 감긴 했으나 모든것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해빛에 반짝이는 강물이며 알뜰히 가꾸어진 나무들, 저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주변을 핥는 물결의 철썩거림 그리고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이 모든것이 더없이 새삼스럽고 이상야릇했다. 하지만 이 모든것들이 오늘따라 어째선지 거대한 아름다움과 끝없는 행복을 의미하는것 같았다. 희망으로 가득찬 그 행복의 노래는 물결소리와 함께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강변의 무성한 수풀들도 마음의 꿈을 대신하는듯 했고 멀리에서 파도에 흔들거리며 서로 부딪치는 뽀트들도 마음속에 떠도는 무수한 생각들을 나타내고있는것 같았다.

《맴 맴―》

눈을 뜨고있을 때보다 한결 더 소란스레 들리는 매미의 울음소리였다.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날개에서 날가? 아무리 새겨들어도 그것이 날개를 비벼대는 소리가 아니라 더위에 바싹 갈린 목에서 터져나오는 울음같았다.

《호―》

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기 가슴에 우울한 빛이 서리는것을 그리고 마치 무엇에 질겁한 사람처럼 가끔 심장이 때없이 활랑거리는것을 느꼈던것이다. 어째선지 저로서도 알수 없었다.

(그도 오늘 여기 와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불시에 우울한 기색을 짓고있는 기철이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째서 그처럼 새것에 대한 열망이 남다른 그가 진호동무의 기술안만은 인정하지 못하는것일가? 진호동무에 대한 원한때문일가, 아니면 자기 기술안을 버린 나에 대한 원망때문일가? 자기의 과실을 인정할만 한 용기가 부족해설가, 아니면 내심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따름일가? 어째서 출장을 떠날 때조차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렸을가?)

그의 처사가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쩐지 불안스럽기도 했다.

문득 대학때 일이 떠올랐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되살아나군 하는 추억이였다. 그날은 졸업반모두가 새로 짓게 되는 대학강당의 기초굴착작업에 동원되였는데 정아는 아침부터 기철이와 함께 목고를 멨었다.

《힘들지 않소?》

《일없습니다.》

그러나 기철은 매번 목고줄을 자기쪽으로 당겨놓았고 정아가 고집을 부리면 목고채를 정아쪽으로 내밀군 했다.

휴식시간에 오락회가 벌어졌는데 사회자가 대뜸 정아를 지목했다. 기철선생과 함께 2중창을 부르라는 요구였다.

《선생님이야 사정을 봐줘야잖아요.》

기철이를 편들어주는것으로써 정아는 자기도 난감한 처지에서 모면해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선생님도 오늘은 어쩔수 없습니다. 여긴 교실이 아니라 작업장이니까요. 글쎄 정아동무로서야 강의때마다 늘 각별한 사랑을 받으니까 사정을 봐줬으면 하겠지만 우린 교실에서 받은 박해를 여기서라도 봉창해야겠단 말입니다. 안 그렇소, 동무들!》

《옳소.》

사소한 융화도 있을것 같지 않았다.

기철이가 선선히 일어서는 바람에 정아도 따라일어설수밖에 없었다.

《〈폭풍이 앞을 막아도〉하는 노래 아오?》

《모릅니다.》

《〈공장대학생〉은?》

《그것도 잘 몰라요.》

《그럼 동무가 아는 노래가 뭐요?》

《〈오직 한마음〉밖에 없어요.》

《〈오직 한마음〉?》

《곡목 또한 멋있습니다. 둘이서 부를 노래는 〈오직 한마음〉.》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기 바쁘게 누군가 이렇게 시까슬러댔다.

《아니, 그건 흔히 결혼식때 부르는 노래가 안야.》

옆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였지만 분명 자기들이 들으라는 소리였다.

《혹시 미리 련습해두자는건지 알게 뭔가!》

정아는 대번에 모닥불을 뒤집어쓴것 같았다. 그 노래를 택한 자신을 후회하며 기철이를 훔쳐보는데 그도 어지간히 당황해하는 기색이였다. 노래를 부르기는 했으나 정아는 정말 결혼식날 새색시처럼 한번도 얼굴을 들수가 없었던것이다.

《저걸 보게, 고개를 숙이고있는게 신통하다니까.》

여느땐 우습기도 하고 또 야릇한 즐거움에 휩싸이기도 하던 그 추억이 오늘따라 쓸쓸하게만 느껴지는것이였다.

(그가 돌아오면 이번엔 모든걸 털어놓을테야! 더는 참을수도 견딜수도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앉은 그는 수영복우에 웃옷을 걸쳤다.

그때 그는 자기쪽으로 다가오는 발자국소리를 들었다. 발자국소리가 가까와짐에 따라 왜서인지 긴장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왜 혼자 있소? 모두들 조수는 어데다 버리고 혼자만 먹어대느냐고 야단인데.》

상대가 누구라는것을 알자 불안이 배로 확대되였으나 그는 해빛에 눈이 부시기라도 한것처럼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웠다.

그는 요즘 어째선지 진호를 대하기가 두려웠다. 무엇때문인지 알수 없었지만 그를 마주하기만 하면 은연중 어떤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도 혹시 진희처럼 자기와 진호와의 관계를 곡해하면 어쩌나 하는 위구때문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해받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것이 더욱 그를 불안과 공포속에 몰아넣는것이였다.

《일광욕을 하느라구요.》

그러나 그는 곧 자기의 혀를 깨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늘에 있으면서도 일광욕을 해? 바보같으니!)

옹색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얼른 생각나는대로 한마디 던졌다.

《이젠 일단락지은셈이지요? 시험에서 성공했으니 말이예요.》

《아니, 우리 일은 이제부터나 다름없소. 시험에서 성공했지만 도입하지 못하는것들이 얼마나 많소. 새 연료가 공정으로 취입될 때, 말하자면 공업화될 때래야 우리 일이 끝나는게 아니겠소. 취입장치란 어차피 전기요소가 많을것이 분명한데 그러고보면 이제부터야말로 동무가 더 수고해줘야…》

《수고라고요?》

정아는 곧 스스럼없는 태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무슨 수고를 한게 있다고요.》

《하긴 수고라는 말로는 부족하지. 뭐라고 할가, 사실 동문 생활이상의것을 나한테 주었으니까…》

《제발 그런 롱담은 그만두세요.》

어떻게든 그의 말을 롱으로 받아넘기려고 했으나 자기를 바라보는 진호의 진지한 눈빛이 그런 태도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다잡았다. 그런 감정에 말려드는 자기를 용서할수 없었던것이다.

《전 결코 무슨 보답이 있기를 기대한건 아니예요. 그랬으면 애초부터 공감하지도 못했을거구요. 전 다만 동무의 기술안이 옳다는걸 깨달았을뿐이고 따라서 새것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무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을뿐인걸요. 단지 그것뿐이예요.》

《물론 그렇다는건 나도 아오. 그렇지만 동무가 그처럼 단순하게 리해하는 그 진리를 어째서 다른 사람은 리해하지 못하는가 하는걸 난 요즘에야 깨닫게 됐단 말이요.》

진호는 오늘에야말로 진정으로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옆에 앉았다. 옳은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것, 사고와 행동은 물론 지어는 의지까지도 복종시킬줄 아는 담대한 기질과 그것을 위해 서슴없이 내닫는 열정, 그러면서도 꾸민것이 아니라 저절로 넘쳐나는듯 한 발랄한 생기, 더우기 이 모든 자기의 우점을 의식조차 하지 않는데서 나타나는 그의 정신적인 매력.

그러나 자기를 두려워하는듯 웃몸을 겉옷으로 꼼꼼히 싸며 땅바닥만 내려다보고있는 정아를 보느라니 그런 충동보다 자기가 이렇게 혼자 있는 처녀를 찾아온것이 좋은 일인가 어떤가 하는 의문이 먼저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이였다.

(도대체 우물쭈물할게 뭐란 말인가!)

자기가 심중한 기색을 지을 때마다 그런것처럼 혹시 이번에도 정아가 대수롭지 않은 롱이라는듯이 처신하지 않으려나 해서 진호는 그를 흘끔 바라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이번에도 정아는 자기에게서 어떤 심각한 표정을 눈치채고는 얼굴표정뿐아니라 정신상태까지 일변시켰다. 그의 얼굴에는 별안간 본의아닌 웃음이, 그것도 여느때와 같은 티없는 웃음이 아니라 일부러 짓는듯 한 그런 웃음이 퍼졌고 눈길 역시 어딘가 안정성이 없어보였다.

《참! 아까 태수동무가 무슨 얘기를 했어요? 모두들 정신없이 그의 얘길 듣더군요.》

《자신에 대한 얘기였소. 은심동무를 어떻게 사랑하게 됐는가 하는 얘기.》

《그래요? 그럼 같이 들을걸. 저도 언젠가 그들에 대한 얘길 듣긴 했어요.》

화제가 다른데로 번져진것을 다행으로 여긴 정아는 얼른 발앞에 있는 납작한 자갈 하나를 집어들었다.

《전 그들의 사랑이야말로 세상사람들, 특히 우리 세대모두의 열렬한 행복의 축복속에 만발해야 할 그런 사랑이라고 봐요. 그렇지 않아요?》

《옳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난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선 태수와 같은 친구를 동무로 가지고있는 자신에 대한 긍지를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수 없었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란 확실히 참다운 리해를 통해서만 꽃피고 열매맺는다는걸 더욱 절실히 깨달았소. 서로에 대한 진정한 리해가 없다는것은 그야말로 과일나무에 야생목을 접하는것과 같이 어렵고 어이없는 일이란걸 말이요. 난 이렇게 말하고싶소. 진정한 사랑이란 두사람이 주고받는 애정의 량이 서로 같을 때라야 제대로 꽃필수 있다고 말이요.》

《같을 때라구요?》

《그렇소, 같을 때!》

정아는 진호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도 용서할수 없다는건가요?》

《물론 이젠 용서야 할수 있겠지요. 그러나 용서와 사랑은 서로 다른게 아니겠소.》

《그렇다면 그건 용서가 아니지요.》

정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용서를 하려면 깨끗이 해야지요. 진정한 용서란 외면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을 내밀어주고 진정으로 리해해주는게 아니겠어요. 태수동무가 은심동무를 대한것처럼 말이예요. 말하자면 사랑이지요.》

손에 들었던 돌을 던지는 그의 행동에는 진심으로 뭔가 못마땅해하는것이 있었다.

아닌게아니라 정아는 지금 자기가 평시에 진호에게 품고있던 불만을 더는 감춰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함께 특히는 그것을 드러내보임으로써 어떤 온당치 못한 감정에 휘말려드는듯 한 자신을 더는 방임해서는 안된다는 결심이 솟구쳤던것이다. 고개를 든 그는 꼿꼿한 눈으로 진호를 마주보았다.

《동무의 태도를 보면 어쨌든 자기를 믿고있는 한 처녀앞에 지닌 남자의 의무에 대한 저의 생각과는 달라요.》

《?!》

《동문 자기 요구에 맞는 대상을 고르는것을 응당한 일로, 그런 사람을 찾는것을 행복으로 여기지요. 그러나 그게 사랑일가요? 진실한 사랑이고 행복일가요? 전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봐요. 사랑이라고 해도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랑이라고요.》

진호는 어리둥절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아직 저로서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것을 사랑에 대한 아무런 체험도 없는 처녀가 확신에 넘쳐 말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세상에 일생의 동반자로 삼을 대상에게서 자기의 요구와 지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누구며 또 그걸 바란다고 해서 나쁠게 뭐란 말인가 하는 생각만은 머리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가끔 전 이런 생각을 해요. 진호동무가 자기 사업, 연구사업에서처럼 사랑에도 그렇게 주의를 집중한다면 틀림없이 남다른 행복을 누릴수 있을거라구요. 하지만 진호동문 과학은 창조할줄 알아도 사랑은 창조할줄 모르거던요. 아니, 하려고 하지 않지요. 사랑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창조하는것이라고 여기지부터 않으니까요.》

(사랑도 창조해야 한다?)

진호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정아의 두눈은 점점 열기를 띠고 반짝였다.

《그래요, 사랑도 창조해야 하구말구요. 만약 사랑을 동무처럼 생각한다면 꽃들이 만발한 화원이나 열매들이 주렁진 과원에서 제 마음에 드는 꽃을 꺾거나 입에 맞는 열매를 따는거나 다를게 뭐예요?

그래 그걸 사랑이라고 할수 있어요? 전 진실한 사랑이라면 그런 꽃과 열매를 따기 전에 자신의 힘으로 그렇게 아름답고 탐스럽게 가꿔야 한다고 봐요. 태수동무처럼 말이예요. 전 그래서 태수동무를 존경해요.

사람은 누구나 사소한 부족점들은 다 가지고있는 법이예요. 서로의 부족점을 서로가 도와주어 고쳐가는 과정이 곧 진정한 사랑이 아닐가요? 그래서 바로 행복이 창조과정에 있다는 진리가 생겨난게 아닐가요?》

《?!》

어떤 호된 타격을 받기라도 한것처럼 얼떨떨하기만 했다.

(서로의 부족점을 고쳐가는 과정이 참된 사랑이라구? 그래서 행복이 창조과정에 있다구?)

너무도 아름찬 의미가 내포돼있어서 단번에 소화하기는 도저히 어려웠다.

《이런 말 한다고 욕하지 마세요.》

갑자기 고개를 아래로 떨군 정아는 가는 목소리로, 마치 잘못을 비는 사람의 가냘픈 어조로 말했다.

《사실 제가 이런 말 하는건…》

그의 목소리는 더욱 잦아들었다.

《진호동무에 대해서라기보다 제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저 역시… 저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대하지 못하고있으니까요.》

진호는 대번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혹시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나 싶었다.

(설마?)

그러나 모든걸 눈여겨 살피는 일이 덜한 사람이라면, 진정 정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서 각별한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테지만 진호는 그 어떤 새로운것을, 오직 사랑을 두고 고민하는 처녀에게서만 나타나는 그런 표정을 정아의 얼굴에서 발견하지 않을수 없었다. 탐스런 볼과 꼭 다문 입술의 아름다운 륜곽 그리고 두눈에 비낀 고민은 확실히 우수에 젖어있었고 그것은 어쩐지 마음을 아프게 하는것이 있었다.

《…》

진호는 뭐라고 해야 할지 할말을 찾을수가 없었다.

이때 《오빠―》하는 웨침과 함께 이쪽으로 달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리였다.

《아이, 난 또 오빠 혼자 있는줄 알았네.》

못내 송구한 표정을 지은 진희였으나 그것은 순간에 불과했다.

《빨리 오래요. 주패놀이를 하자구요. 짝이 맞지 않는가봐요.》

고개를 숙인채 잠자코 있던 진호는 한참만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동무들이 있는 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저쯤 멀어진 오빠의 뒤모습을 지켜보고나서야 진희는 정아옆에 쪼그리고 앉으며 나직한 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요, 언니.》

《안야, 일없어! 일없어!》

진희의 팔목을 잡아 옆에 앉힌 정아는 저도 모르게 그를 꼭 그러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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