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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회

제 2 편

제 2 장

5


쓰디쓴 환멸과 번뇌를 안고 분연히 서울을 등지고 고향인 전라도 담양으로 내려간 리승기는 거기서 두번째 여름을 맞기 시작했다.

승기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두살 우인데다 기력이 쇠진해져 꼼짝을 못했다. 일흔다섯의 아버지도 그전날 할아버지가 차지했던 방에 노상 누웠다가 이따금 마당출입이나 하는 정도였다. 딸들을 다 날려보내고 늘그막에 고적하게 된 로부모는 아들네 가족을 서울로 보낼 때에도 7살짜리 손자애를 떨궈두게 했었다.

22년만에 고향에 영 돌아와 부모를 가까이 모시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리승기자신은 물론 부모들도 차라리 다행스럽고 기쁘기까지 했으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는 서로의 심정이였다. 리승기가 가족과 함께 들어와 짐짝을 풀어놓을 때 그들은 이런 엇갈린 마음들을 숨기지 못했었다.

그날 저녁 마을의 몇몇 로인이 모여와 막걸리를 나누며 가문의 기둥인 종가의 종손이 귀향한것을 축하해주었다. 병직삼촌이 취한김에 더 너스레를 부리며 《우리 조카가 금의환향을 했지요.》하면서 어리손을 쳤다.

그러자 로인들은 저마끔 떠들어댔다.

《자네가 헌병대에 갇혀서 왜놈들과 맞섰다는 소릴 듣구 거 참 장하다구 우린 무릎을 쳤네.》

《돌에서 실을 뽑는 일은 그래 이제 어떻게 할셈인가.》

《아따, 번개불에 콩닦아먹을 소리, 그런 일이란게 그리 빨리 되나 뭐.》

《하긴 몸부터 추세워야지. 집안에만 있지 말구 바람두 쐬이면서 헐한 일손을 잡아야 하느니. 그래야 밥맛두 나구.》

《서울이란데는 본시부터 소란스러운데야. 자고로 학문은 초야에 묻힌 뜻있는 사람들속에서 나오느니.》

《그럼 이 집 종손이 아주 내려왔단 말인가?》

리승기는 아주 내려왔다고 대답해버렸다. 이때 그의 귀는 부엌에서 들리는 칼도마소리에 가있었다. 그가 칼제비를 좋아한다고 어머니가 두드려대듯 따각거리는 칼도마소리… 처음에는 기쁘고 즐거운 장단처럼 잦은 가락으로 울리더니 차츰 떠지면서 나중에는 기운을 잃고 멈춰진것만 같았다. 아들을 만나 한동안이나마 같이 있게 되리라는 반가움 뒤끝에 따르는 어머니의 서글픈 마음이 그대로 칼도마소리에서 울리고있었다. 저 칼도마소리가 다시금 잦은 가락으로 울리도록 지금에라도 다시 학문의 언덕에로 치달아오를수 있다면… 그래서 이날의 그 칼도마소리가 일생토록 기억에 뚜렷이 남게 된것이다.

조카의 귀향을 금의환향이라고 로인들앞에서 자랑스레 말하던 리병직이 그들이 다 가버리자 남은 술을 꿀꺽꿀꺽 놋대접들이로 마시고는 한바탕 푸념을 해댔다.

《병성형님… 아들은 도리깨아들이구 며느리는 쥐며느리구 손자는 강건너 간 막대기라 하지만 그래두 보시우, 아들이 곁에 오니 얼마나 좋수… 그전때 내가 뭐라구 했습디까. 고보를 마쳤을 때 아예 고향에 눌러앉혀 붓대나 놀리게 하자구 그만큼 말했는데… 종가의 종손을 외바람치기로 내놓구 그래 잘된게 뭐요? 박사란게 뭐 말라빠진거요? 개도 먹지 않을 박사이름은 해서 뭘해.》

《그만두지 못할가!》

그때까지 아무 말 없던 리병성이 대노해서 소리를 질렀다. 리병직은 취한김에 잘못했노라고 사죄하듯 무언의 동작으로, 절하듯 앉은채로 두손을 앞에 내짚고 엎드리며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형님.》 그는 머리를 들지 않은채 말했다. 《동생이니 이런 말두 하는게지요.》 그리고는 방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잇대였다.

《나두 리승기라는 이름이 들썩할 때 얼마나 기뻐했수? 동네방네 다니면서 자랑을 했지요. 한데 오늘은 이게 뭐요. 형님, 자고로 조선이라는 나라에 학문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줄을 그래 모른단 말이요?… 이제 저 족자만은 내 눈에 보이지 않게 좀 떼주시우.》

벽에는 리승기가 현해탄건너까지 가지고갔다가 44년도에 가족을 내보내면서 보따리속에 꿍져넣었던 그 족자가 걸려있었던것이다.

《어리고 성긴 가지… 눈기약 능히 지켜 두세송이 피였구나.》

리승기도 그 족자를 바라보며 서글픈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아들이 돌아온때문인지 어머니는 아예 몸져누워버리고 동자질과 집안일을 며느리한테 맡기고말았다. 바깥일은 여전히 병직삼촌이 돌봐주었고 리승기도 차츰 일손을 거들어 인제는 진짜배기 농사군처럼 되여갔다.…

어느날 해질무렵에 수수밭김을 매고서 리승기는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지게에 콩단을 지였다. 새파란 콩잎과 채 익지 않은 콩꼬투리들이 달린 콩단을 이렇게 솔가리단처럼 대여섯단씩 베여두었다가는 이듬해 봄에 모판자리거름으로 쓰군 하였다. 이것이 이 지방에서 말하는 《콩잎가리》라는것이다. 그런데 보리고개가 되여 먹을것이 딸리면 하는수없이 그 콩잎을 칼도마우에 놓고 보드랍게 두드려 된장과 함께 밥알을 섞어서 콩잎국이라 할지 콩잎죽이라 할지(차라리 콩잎국죽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런것을 만들어먹기도 한다.

리승기가 마당가에서 지게를 내려놓고 작시미를 받쳐놓으려고 하는데 《선생님!》하고 웨치며 마루에서 세 청년이 단꺼번에 뛰여내려왔다. 서울에서 학생들이 또 리승기한테 온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콩단을 맞들어 헛간안에 가져다넣었다. 그리고는 리승기가 벗는 웃도리를 받아든다, 리승기의 목에 걸쳤던 무명수건을 내려 바지가랭이에 묻은 풀검불을 털어준다 하며 야단을 피웠다.

《언제들 왔나?》

《방금 들어서서 댁의 아버님께 인사를 올리는 참입니다.》

마가성을 가진 학생이 대답했다.

《들어들 가세.》

그러면서도 리승기는 집안에 들어갈념을 않고 마루에 걸터앉아 우로 말려올라간 베잠뱅이가랭이를 발목아래로 끄당겨내리고있었다. 키 큰 학생이 리승기의 손잔등에 생긴 긁힌 자리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 어서 올라가십시다. 김동일학장은 신성한 교단을 어지럽히고있습니다. 명예와 출세의 발판으로… 선생님만이 바로잡을수 있습니다.》

김동일은 진보적인 교원들과 학생들을 함부로 내쫓기까지 한다는것이다. 그것은 짐작할만 한 일이였다.

마당에 선 마가성을 가진 학생이 마루우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우리 화학과 13명만이라두 딴 교사로 데리구가서 배워주십시오.》

낡은 학생복차림의 청년이 단단히 잡도리를 했다는듯이 말했다.

《이번엔 그냥 안 돌아가겠습니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선생님의 승낙을 기다리겠습니다.》

리승기는 묵묵히 앉았다가 눈짓으로 방안을 가리켜보이며 조용히 말했다.

《70고령의 부모들은 둬두고 당장 서울로 갈순 없지 않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속의 고민을 다 털어놓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불원간 열리리라고 믿었던 38도선도 굳게 닫혀버리고있다. 남도 북도 장소를 가림없이 제 나라 땅 어디에서나 과학탐구를 할수 있다고 믿었건만 그것이 이 남쪽에서는 한갖 허상으로 될줄이야. 서울은 자기가 결연히 돌아서버린 곳이다. 어쨌든 말로나마 학생들에게는 20여년만에 모시게 된 늙은 부모님의 곁을 뜰수 없다는 자식된 도리로써 그들을 리해시키는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때 키 큰 학생이 벌써 두번째로 마가성의 학생한테 턱짓을 해보이며 말없이 독촉하는 시늉을 하였다.

그제야 그 학생이 품에서 한통의 편지를 꺼내였으나 얼른 리승기한테 내밀지 못하였다. 흡사 이 편지가 리승기한테 어떤 작용을 하겠는지 아직도 미처 가늠치 못하는듯 한 기색이다.

《선생님… 지태규선생의 서신입니다.》

리승기 역시 얼른 그 편지를 받아들지 않고 주위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래 자네들은 태규선생의 편지까지 들구와야 하겠나?》

지태규의 힘을 빌어 자기를 움직여보려는 학생들의 처사에 노여워하는 어조가 분명했다.

마가성의 학생이 눈길을 떨구는데 다른 학생이 《아닙니다. 그건 지태규선생이 자진해서 편지를 써서 우리한테 부탁한겁니다.》하고 서둘러 변명을 하였다.

리승기는 마지못해하듯 편지의 겉봉을 천천히 뜯었다. 몇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였다.

학생들은 슬금슬금 마루를 지나 방안으로 들어가고 리승기는 혼자 앉아 편지를 읽었다.

리과대학 학장인 지태규는 자기네 대학형편은 일언반구도 없고 처음부터 학문의 벗을 부르는 말로 시작하였다.

고향에 내려와서 썩 지났지만 이제야 처음으로 지태규한테서 받는 편지였다.

지태규는 그렇게 의논도 없이 내려가는 법이 어디 있는가고 방금 며칠전에 내려온 사람보고 하는 소리처럼 새삼스럽게 우정과 의리를 들면서 섭섭하다느니, 그럴수 있느냐느니 하는것이였다. 다음은 본격적으로 공격해오는 내용과 말투였다. 왜 학문을 떠나는가? 학문의 탑을 하루아침에 허물어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세상은 넓다, 리승만의 정치만 있는게 아니다, 장차 나와 같이 미국으로 가자, 미국은 나보다 승기선생을 더 환영할지 모른다, 많은 학자들이 미국에서 명예와 학문을 얻지 않았느냐? 난 근간에 미국에 다녀오련다, 학술려행이면서 앞으로 영주해갈 준비를 위해서다, 승기선생은 우선 대학으로 돌아오라.… 그래놓고 의논해보자.

그러다가 지태규는 자기가 외롭다는 통탄을 했다. 제자의 신의를 저버린 송복섭은 북으로 갔지, 학문의 벗인 승기선생은 너무도 매정스레 곁을 떠나갔으니 왜 내가 고독하지 않겠느냐는것이다.

(철저히 자기 중심의 사고방식이군. 저를 떠나면 그가 누구든 다 신의와 우정을 배반하는것으로 되니 이건 괴상한 륜리철학이지.)

리승기는 그때 문이 열린 방안에서 세 학생이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내다보는것을 몰랐다.

리승기는 지태규의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고는 천천히 찢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락심천만한 표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리승기는 울타리너머 먼 하늘을 바라보며 내심으로 통탄하듯 부르짖었다.

(아, 지태규… 일본에서 종종 의가 상할 때는 있었어도 그래도 둘도 없는 벗이였지. 한데 제 나라 땅에 와서 이렇듯 영 결별의 계선에 서있게 되다니…)

편지의 겉봉을 보는 첫 순간에는 지태규의 힘을 얻어내여 그런 편지를 들고온것 같은 학생들의 처사가 못마땅해났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지태규의 편지를 찢는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 어떤 반발심이 걷잡을수없이 치밀어올라 견딜수 없었다.

그날 밤 그들은 밤늦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이 말하고 리승기는 들었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였다. 미쏘공동위원회며 《5.10단선》반대투쟁이며 《국대안》문제며 그 누구의 테로사건이며… 그들은 한방에서 같이 잠을 잤다.

이튿날 오후가 되자 열흘이고 보름이고 기다리겠다던 학생들이 서로 무슨 의논이 있었는지 리승기한테 하직인사를 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너무 괴롭혀 미안합니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을뿐이다. 리승기는 그들을 붙잡지도, 대문밖으로 바래우지도 않았다. 안해가 나갔을뿐이였다.

그런데 저녁에 아버지가 아들을 제 방으로 불렀다.

리병성은 누워있다가 일어나앉았다. 나이 40이 지나도록 아직 리승기는 아버지앞에서 두무릎을 꿇고 앉는데 리병성이 이렇게 말했다.

《편안히 앉거라.》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리병성은 서울에서 학생들이 무엇때문에 왔다갔는지를 알고있는듯 싶었다. 아까 낮에 동생을 불러다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리병성은 칠순을 훨씬 넘기고도 올곧은 성미를 잃지 않고 만사를 여유있게 처리할줄 알았으며 그렇다고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지도 않았다. 역시 마음만은 별로 늙지 않은 어제날의 리병성이다.

아버지가 예상치 않았던 말을 시작하는가싶었다.

《내 젊었을 때 지리산정에 올라가본적이 있었다. 지리산이야 이남도지방에서 제일 높은 산이 아니냐? 젊은 사람치고 거기에 호기심이 쏠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 난 그때 서경조군과 같이 갔댔는데…》

역시 로쇠는 어쩔수 없어 일상시에 생각했던바를 섞어놓으며 주의력이 흐트러지는 아버지였다.

《그 서경조군은 어디 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마 해방이 되여 간도에서 나와 북에 있을지도 몰라. 이제 38도선이 없어지면 만나게 되겠는지… 그 서경조군과 같이 지리산에 올라갔는데 그 맨 꼭대기에 사는 나무들이 어쨌는지 아느냐?… 높은 산정이라 바람이 세니까 모두 나무들이 누워서 자라드란 말이다. 서서 자라는것이 나무인데 글쎄 나무들이 줄기를 뉘인채 이파리들만 하늘을 향해 자라지 않겠니.… 우린 그 나무들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의지를 굽히지 말자구 약속을 했지.… 내가 너한테 말하고싶은건 그 나무들처럼 의지를 굽히지 말구 살아야 한다는거다. 불어닥치는 광풍이 너무 심해서 비록 누워서는 자라지만 그저 마음이 곧바로 서있으면 된다.…》

여기서 리병성은 잠간 숨을 톺고나서 아들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암만 봐야 백성을 위한 정치는 북에 있는것 같구나. 백성을 떠난 학문을 해서 뭘하겠니.… 한데 38도선은 이미 꽉 닫혔구… 그렇다구 멍청히 앉아만 있겠니? 비뚤어지는 교단이라두 바로잡아야 할게 아니냐.…

난 네가 이미 서울로 올라갈 결심이 되여있을줄로 안다.》

《아버님!…》

리승기는 어쩐지 목이 꽉 잠겨 말이 나가지 않았다. 급기야 조용히 권고했다.

《아버님, 괴로우신데 누우십시오.》

《오냐, 눕겠다.》

로인은 시름을 놓은듯 베개우에 머리를 얹으며 말했다.

《그만 나가보거라.》

보름후 리승기는 홀몸으로 서울을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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