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2 편

제 2 장

3


…1945년 10월 초순.

어지간히 덩지가 큰 낡은 화물선에는 선창과 갑판에 사람들이 가득찼다.

언제나 사람의 애간장을 긁어내리던 그 배고동소리도 이때는 구슬프지가 않았다. 오히려 분명히 그 소리는 승기의 인생이 새로운 항로에 들어섰음을 예고하는듯싶었다.

리승기가 갑판에 나서 제 몸이 원한의 바다 현해탄우에 떴다고 생각했을 때 그의 머리속에는 아버지의 친우인 잊을수 없는 목포큰아버지 서경조가 한시첩에 적어주던 전해산의 시가 떠올랐다. 비분도 감격도 아닌 까닭모를 눈물이 북받치였다.


…고향땅을 어찌 잊으리오

내 두견새 되여 피를 물고 돌아가리라…


설음도 원한도 배전에서 철썩이는 물결과 함께 영영 뒤로 물러나버린다.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한것 같기도 했다. 부두나 배칸에서 일본놈들이 더는 조선사람을 수모 못하고 취체도 못한다. 조선사람, 조선이라는 국적을 가진 민족을 누가 감히 건드린단 말인가.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이런 감정이 리승기의 가슴에 물밀듯이 흘러든다.

부산항에 내리자 첫발을 디딘 조국땅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일행은 지태규박사네 가족까지 다섯이였다. 리승기는 혼자몸이였다. 일본고등계형사가 없는 자유로운 땅을 아무 꺼리낌없이 활보할수 있어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리승기는 집에 들릴 경황이 없다고 생각하며 전보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가족들이 별의별 걱정을 다하며 기다릴것이나 그들과의 상봉은 후로 미루어야만 했다. 지금 국내에 있는 학자들과 일본에서 먼저 건너온 학자들이 손을 잡고 벌써 대학을 연다, 연구실을 꾸린다면서 동분서주할것이고 이미 많은 일을 해놨을게 아닌가.…

리승기는 부산역에서 지태규네와 같이 기차를 탔다. 기차는 목메인 기적소리를 내지르며 헐레벌떡 달려가는데 리승기는 평생 처음 기차를 타보는 사람처럼 기분이 들떠있었다.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딱딱한 나무의자의 한쪽귀퉁이라도 빨리 차지하려고 서두르는것은 마치나 해방된 땅에서 당당하게 자유와 권리를 빨리 향유하려는것처럼 보였다. 불과 두달전만 해도 그 귀퉁이자리나마 차례지지 못해서 온갖 수모만 받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리승기는 지태규네 일행만 아니더라면 가방 하나를 든 홀몸이다. 한데 지태규네가 어린 아이들 셋과 영 어쩌지 못하는 안해 그리고 보따리가 몇개나 되여 마치 그네들의 후행군이나 시중군처럼 아이를 승강대에 들어올려주고 짐을 선반에 올리고 어린애의 코밑까지 종이로 닦아주어야만 했다. 지태규내외가 줄곧 미안해했으나 리승기한테는 그것이 다 이제껏 있어보지 못한 생활의 즐거움으로 여겨졌다.

리승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쩐지 깊은 숨이 후― 나가면서 기쁨과 안도감에 저절로 찬탄의 목소리가 가슴속에서 울리였다.

(우리 조선사람들의 눈동자가 저렇게 별처럼 빛나는걸 보게 되다니. 저 처녀들을 좀 보라! 눈에는 별빛이 어리고 볼에는 홍조가 피는구나. 녀자들은 나라의 얼굴인데 거기서 해방의 기쁨이 맨먼저 피여나는것 같구나.)

기차가 영동역에 멎었을 때 리승기는 급히 승강대에서 내려 어느 한 역원에게 고향에 치는 전보를 부탁했다. 그 종이장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집에 들리지 못하고 서울로 감. 차후 소식을 알리겠음. 승기.》

리승기는 일본놈들이 경성제국대학안에 리공과대학을 세우려 하다가(그것은 전적으로 대륙침략을 위해서였다.)그저 그러고말았다는것을 알고 어떻게 하나 그것을 모체로 하여 공과대학을 세울 결심이였다. 이제는 제 나라, 제 땅에서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못하겠는가. 공과대학에 섬유강좌를 꾸리고 《합성1》호 중간시험을 하고 장차 공업화까지 완성하리라는 생각에 마음은 그저 다급해지기만 했다.

영동역에 렬차는 예상외로 오래 서있었다. 마주오는 기차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리승기는 언젠가 옛날엔 그렇듯 어마어마하고 커다랗게 보이던 역사가 너무도 작고 초라하게 보여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학교입학시험을 치러 16살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가면서 일생 처음으로 기차를 타보던 잊을수 없는 영동역이다. 그때 고향에서 여기까지 몇밤을 자면서 걸어왔던 일이 어제런듯 눈앞에 어린다. 첫날은 누이네 집에서, 마지막밤은 무주의 외가집에서 자고 여기까지 왔었다. 어느날은 객주집에서 자려는데 왜놈순사놈이 나타나서 《여긴 밥만 먹는데지 자지는 못해.》하고 쫓아내서 아버지와 함께 어느 행랑방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었다. 그 왜놈순사놈이 제 관할구역 객주집에서 낯선 사람들을 재우지 않는 고약한 방법으로 시끄러운 책임을 모면했다는것을 그때는 미처 알수가 없었다. 하루는 어느 왜놈장사치한테서 개누깔사탕을 사먹으려고 돈을 냈는데 그 돈이 위조화페라고 하면서 왜놈이 다짜고짜로 뺨을 치는 바람에 아버지와 장사군이 대들이판 싸움이 벌어지다말았었다.

지금 자기가 이 영동역에서 차를 타고 서울에서 지내던 그 하숙방으로 다시 가는것만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참말이지 바퀴와 설설이와 쥐며느리가 돌아치던 그 습기찬 방에서부터 자기의 인생과 학문이 시작되던것이 아니던가.…

…서울역앞 광장은 때이른 락엽들이 흩날리고있었다. 가을바람이 불고 아직 푸른기가 그대로 남은 나무잎사귀들조차 마구 떨어졌다. 그것들은 이리저리 헤매면서 굴러다니다가 갑작스런 돌개바람에 하늘중천에 떠올랐다가는 어느 건물의 옥상으로 날려가버린다.

리승기의 누이네가 사는 명륜동은 북악산근처 창경원과 경복궁자리가 각기 다 바라보이는 곳이였다. 지태규 역시 북악산기슭으로 가야 했다. 그네는 가회동에 있는 약공장경영주인 전가네 집에 림시거처를 정하려는것이였다. 두사람은 래일 만나 서로 앞으로 할바를 의논하기로 하고 헤여졌다.

명륜동누이네 집 좁다란 마당안에 들어선 리승기는 누이의 손목을 잡고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다가 목이 메여 말했다.

《누이, 그동안 혼자몸에 아이들을 데리구 얼마나 고생하셨수?》

《아이구 승기야… 네 마음고생이 내 고생에다 비길수 있었겠니? 왜놈들두 꿈쩍 못하게 이름을 날리자니 오죽했겠어…》

《그래 어떻게 살아가슈?》

《그럭저럭 품팔이두 하구 탄장사두 하구.》

누이는 동생의 손을 놓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요새는 품팔이도 못하고 뭐가 뭔지 통 모르겠다면서 자기는 어제 하마트면 미군찦차에 치워 오늘 네가 오는것도 못 보고 죽을번 했다는것이였다.

기차안에서 눈 한번 붙이지 못한 승기는 저녁끼를 대수 치르고 누워서 누이의 그런 말을 듣다가 아예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잠결에 누이가 웃도리와 바지를 벗기고 이불을 덮어주는것도 어렴풋이 느꼈을 따름이다.

조국땅에서 자는 첫날밤이다! 만사를 잊고 잘수 있는 자유로운 밤, 아마도 어머니의 배속에서도 이렇게는 세상모르게 잠자지는 못했을것이다. 이국땅에서 근 20년간 겪은 그 모든 정신적고뇌와 육체적인 피로가 일시에 풀릴것만 같은 깊은 잠이였다.

이튿날 리승기는 아침일찍부터 여기저기로 돌아다녔다. 조금이라도 면식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그들은 거의가 일본에서 만난적 있는 고학생출신들이다.) 말을 나누려고 하였다.

그런데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던 한 친구는 만나자바람으로 한탄과 푸념부터 앞세우는것이였다.

《왜 벌써 왔나? 좀 있다가 건너올거지. 이런 판에 대학설립이 다 뭔가. 경성제대라는것두 뒤죽박죽이야.》

《그래 신공덕에 있는 리공과대학건물은 어떻게 되였나?》

《거긴 미군히스테리병원이 들어앉았네.》

《뭐라구?》

리승기는 놀래여 그의 팔소매를 다시 잡았으나 그는 어디론가 바삐 가야 한다면서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리승기는 친구의 팔소매를 놓친 그 손을 내리질 못한채 멍하니 서있었다. 이거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이다.

일제는 대륙침략과 식민지통치의 체면을 위해 서울가까이 양주군 신공덕리(지금의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에 리공과대학을 내오려고 했다.

두동의 3층짜리건물을 념두에 두었고 그 동은 화학계통을 예견했었다. 놈들은 《물리청사》는 완성하고 《화학청사》는 채 완성못한채 망하고말았다. 그런데 그 건물을 미군히스테리병원으로 하고(태평양전쟁에서 히스테리를 만난 놈들을 거의나 거기다 몰아넣었다는것을 후에 알게 되였다.) 그 주변의 단층부속건물들은 미군장교들의 주택으로, 병졸들의 막사로 만들었던것이다.

리승기는 그 건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지태규한테 달려가 그를 데리고 가볼가도 생각했으나 그의 걸음은 벌써 신공덕방향으로 정신없이 내달려지고있었다.

전차를 타고 갔는데 고장이 나서 한참이나 멎어섰다.

승기는 거기서 뛰여내려 걷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생각은 신공덕으로만 달리였다. 다시 전차를 탔다. 전차안에서 동경대학 화학부를 나온 김동일을 만나 도중에서 그가 내리지 못하게 무작정 끌고 신공덕까지 같이 갔다.

조선사람청소부들이 비자루로 마당을 쓸고있었다. 그런데 3층청사가 온통 떠나갈듯 어찌나 소란스러운지 마당에 미처 들어서기 전에 전률과 혐오감에 몸을 떨며 주춤 멈춰서지 않을수 없었다.

창문이 찰싹 열리면서 유리 깨지는 왱가당쟁가당하는 소리, 고래고래 목대를 세우고 내지르는 소리, 영어로 연설비슷하게 높은 목청으로 지껄이는 소리, 분명 군사용어인듯 한 말로 명령과 강박을 하는 목소리… 단테의 지옥도 이렇지는 않을것 같았다.

저 멀리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태평양상의 섬들에서 모아온 전쟁히스테리들이 여기 다 와있는것 같았다. 차라리 부상병들이라면 약간의 동정이라도 생기련만 이 정신착란증미치광이들은 끔찍하기만 해서 리승기는 마당안에 더 들어서고도싶지 않았다.

마당 한쪽에 선 리승기의 가까이에는 쓰레기무지가 있었다. 여태 거기에 시선이 미칠 여유가 없었던것이다.

거기에는 깨여진 실험기구들과 기자재들 그리고 막 찢어놓거나 불에 태우다만 반검댕이투성이의 잡지들, 책들이 헝클어져있었다.

리승기는 몇걸음 황황히 거기로 다가갔다. 그는 김동일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여기 좀 와보오!》

김동일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다가 마지못해 리승기한테로 걸어왔다.

청소부의 말이 지하실에도 책들이 처넣어져있는데 습기에 다 못쓰게 될것이라고 했다.

《이럴수가 있나, 엉?》

리승기는 책 하나를 손에 들고 울분에 차서 김동일을 바라보았다.

김동일은 우울하게 내려다보다가 공포에 질려 무서운 소음이 들리는 청사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이 펼쳐진 영문잡지를 가리켜보였다.

우연히도 거기에는 일본말로 창씨를 하지 않던 리승기가 일찌기 연구보문을 낼 때에 영문자로 리승기라는 조선이름을 뜻해서 《S,ℓℓℓ》 라고 한 그 필자명이 보이였다. 리승기의 연구보문이 실린 잡지였다. 거기에는 군화자욱인듯 신발자리가 뚜렷이 찍혀있었다. 군화에 여지없이 짓밟혀진 자기의 연구보문을 보는 순간 그 우연한 일치를 기이하게 여길새도 없이 온몸의 피가 꺼꾸로 쏠리면서 눈앞이 어룽대는것만 같았다. 자기가 비칠하다가 저절로 겨우 몸을 가누며 바로 섰다는것을 깨달은것은 다음순간이였다.

(그까짓 내 한사람의 보문이 문제가 아니다. 이 모든 책과 실험기구들을 이렇게도 사정없이 내던지다니. 하다못해 어데다 인계해줄 생각이라도 못하나? 그것을 인계받을만 한 사람조차 이 서울장안에는 없단 말인가.)

이때에야 비로소 그의 머리에는 미군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군정의 포고아래 이 모든 행위들이 자행되고있는것인가… 그래도 그는 미치광이환자들이 이 건물을 차지하지 않았더라면 이같이는 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서 되돌아나오면서 리승기는 김동일에게 말했다.

《그렇게도 건물이 없단 말인가. 하필이면 대학을 세워야 할 이 청사에 글쎄…》

《림시겠지. 지금은 군정이 아닌가. 히스테리병원이니까 교외에 정하느라구 아마…》

《교외라면 저기 고바야시광업전문 단층건물도 있지 않나 말일세. 저기 고개너머 태릉쪽에도 맨 집인데.》

《기다리는수밖에 없네.》

《기다리는수밖에 없다면… 김군은 지금 어디서 기다리나?… 참, 어디에 취직이라두 했어?》

《김연수의 경성방직에 취직했네. 거기도 화학쟁이가 할일은 좀 있어.》

《김연수? 그 김성수선생의 동생 말인가?》

김성수는 삼남의 지주였고 동생은 경성 인천지구의 공장들을 틀어쥔 매판자본가였다. 일찌기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김성수는 《양영회》라는것을 꾸리고 이른바 민족인재를 육성한다고도 하였다. 김성수자신이 중앙고보를 설립하고 그 재단을 관리하면서 학교에 드나들 때 리승기는 그를 상당히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군 했었다. 중앙고보가 그때만 해도 조선말교육이 많았다는 사정이 리승기의 아버지가 그 학교를 택한 리유로도 되였던것이다.

리승기는 김동일에게 물었다.

《그래 그 김성수씨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미군정청 고문으로 계시네.》

《미군정청?》

리승기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스레 김동일을 바라보았다.

한데 김동일이 리승기에게 말했다.

《우리 김성수선생한테 가볼가?》

리승기는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무슨 대책이 있지 않을가?》

《그래서 나도 하는 말이요. 한번 가보기요.》

이렇게 말하는 김동일의 뒤에 따라나서다가 마침내는 리승기자신이 앞장에 서서 걸었다.

그들은 한시간이나 신고를 해서 군정청에 있는 김성수의 방에 들어갈수 있었다.

허나 거기서 리승기는 제가 헛된 기대에 사로잡혔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김성수의 말이 어찌겠나, 군정하에선 할수 없지 않나, 이제 기다리느라면 제대로 되겠지, 지금 어디 학교를 생각할 땐가? 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오는 전화를 받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참 미국량반들은 현대신사들이란 말이요. 례절이 밝고 생활양식이 문명하고… 글쎄 조선사람인 내가 회의장에 앉아있어도 규격지로 백로지를 시간에 맞춰 몇장씩 딱딱 가져다놓는단 말이요. 미국사람, 조선사람 차별없이 례절을 지킬줄 알거던. 우린 미국사람들의 문명을 배워야 하네. 그건 그거구 그 교사문제는 말이요.…》

김성수는 이미전부터 시정배로 살아온것이 분명하였다.

리승기는 그때 어떻게 거기를 나섰는지 몰랐다. 김동일이가 따라오는지도 돌아보지 않았었다.

김성수가 김동일을 불러 그와 장시간 얘기를 나눴다는것을 리승기는 후에야 알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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