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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제 2 편

제 2 장

1


북부산간지대의 산골짜기였다. 7월의 한낮은 한소나기 퍼부을듯이 찌물쿠었다. 수레길이나 다름없는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발밑에서는 뜨거운 황토먼지가 풀썩풀썩 일었다.

리승기는 연구조수인 오정해와 함께 후창에 가는 길이였다. 자동차와 마차를 얻어타기도 했으나 후창이 가까와올수록 차들의 왕래가 뜸해져서 줄창 걸어야만 했다. 리승기는 젊은 연구조수와 같이 떠난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리승기의 나이는 마흔일곱, 아직은 먼길에 자신을 잃지 않으나 어쨌든 도중에 차를 세운다든가, 숙식을 마련하는데서 이 스물한살의 총각은 리승기의 더없는 길동무이고 조수로 되였다.

원산농대에 가서 섬유에 관한 강의를 해달라는 교육성의 청탁뒤에는 계응상박사의 개별적인 초청이 숨어있을듯도싶다. 이 이름있는 박사들은 서로 이름은 많이 들었건만 과학자대회에서 처음 만난데 불과하고 섬유학자로서 (한사람은 합성섬유, 다른 한사람은 생물학자로서 자연섬유의 전문가이지만)아직 이렇다 할 과학상의 면담은 없은터였다.

리승기는 너무 더워 나무그늘에 묻힌 돌개울로 내려갔다. 바위에 부딪치며 사품치는 산골물에 발을 잠그면 뼈가 저리도록 시원하다. 전신에 짜릿한 서늘함이 쭉 퍼지는것만 같았다. 무겁던 다리가 일시에 거뿐해진다.

그러나 길에 올라서서 걷느라면 얼마 못 가서 온몸에 땀이 흐른다. 정해의 등에는 몇개의 참고서와 약간의 길량식이 든 배낭이 있었다.

그들은 오면서 얘기란 얘기는 다 해버려서 이제는 다 밑창이 났다. 정해가 더 많은 말을 했음은 물론이다. 리승기가 제 생각의 연장인듯 전혀 동에 닿지 않는 말, 이를테면 다른 부문의 학술상문제나 북부산간지대 사람들이 입는 겨울옷감에 대하여 불쑥 물을 때면 정해는 잠간 벙벙해지다가도 명민한 두뇌로 제꺽 자기딴의 지식과 견해를 말하군 하였다. 별로 주의깊이 듣는것 같지 않으면서도 리승기가 다 듣고있다는것을 아는 정해는 신이 나서 주어대는것이였다.

리승기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쉬고 가야 할가보군.》

산골짜기의 어스름은 걷잡을수없이 내려앉았다. 한낮과는 달리 퍼그나 서늘해지는 저녁무렵이였다. 벌써 깔따구와 모기들이 앵앵거리였다. 지독한 깔따구는 소리도 없이 급습해서 달려들군 하였다.

어디선가 다듬이소리가 들려왔다. 돌개울건너 외딴 집쪽에서였다. 저아래로 몇채의 농가들이 보였으나 웬일인지 리승기는 다듬이소리가 들리는 그 집으로 가서 하루밤 류숙해보자고 하였다.

고향집어머니의 부름소리처럼 정다웁게 들리는 다듬이소리였다. 문득 리승기는 제가 좋아하는 칼제비국을 해주느라고 어머니가 잦은가락으로 울리던 칼도마소리와 함께 그 어머님의 다듬이소리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지도 3년이다.

주인을 찾아 하루밤을 자려고 했을 때 부엌문으로는 그 집 안주인이 베치마자락에 물묻은 손을 훔치며 나오더니 허리굽혀 인사를 받는다. 주인내외는 60이 가까와보였다. 의문스레 웃방쪽 창호지문을 보는 정해의 눈길에 대답하듯 주인령감이 말했다.

《우리 어머님이시우다. 래일모레 90인데두 저렇게 앉아 다듬이질이우다. 귀가 절벽이여서 다른 사람이 다듬이질소리에 귀가 아픈줄은 생각해주지두 않는다우. 내가 어머님 해파람을 하는게 아니라 손님들께 미안해서 하는 말이우다.》

토방에 올라 구름노전을 깐 정지방에 들어선 리승기는 열려진 문으로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할머니가 피뜩 이쪽을 보자 얼결에 리승기는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동네사람을 보듯 고개를 한번 끄덕하며 답례를 표시한다. 방 한구석에는 사람의 앉은키만 한 높이로 겨릅대를 붙인 등불이 켜져있었다.

할머니는 이발이 다 빠지고 머리가 새하얗게 세여 옛말에 나오는 산신령이나 백발도사를 련상케 하였다.

할머니는 다듬이질을 지꿎게 멈출줄 모른다. 어지간히 큰 넙적한 방치돌에 또한 다듬이방치도 아이머리만큼이나 컸다. 이따금 그것을 노전우에 놓고 이번에는 빨래방치같이 가느다란 다른 다듬이채를 량손에 들고서 똑깍 똑깍… 두드린다. 한쪽채를 두번 칠새에 다른 채를 한번 쳤는데 그것은 장단처럼 가락맞게 울리였다.

절인 고등어 한토막이 어찌나 짠지 두사람은 각기 조밥 한그릇씩을 그것으로 다 먹을수 있었다. 정해는 먹자마자 목침을 베고 할머니의 뒤쪽벽가에 돌아누워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졌다.

리승기는 어쩐지 할머니와 말을 나누고싶었으나 할머니의 귀가 절벽인것이 안타까왔다. 그는 할머니가 다듬이질을 해놓은 베천과 아랑주천을 불빛에 비쳐보았다. 열새, 열두새, 보름새나 되는 가늘고 보드라운 베실이 다듬이질에 짓눌려 실과 실의 짬이 없어져 무슨 얇은 짐승가죽같았다. 어찌나 오래 두드리였던지…

리승기는 삼밭에 서있는 삼대가 이런 베천으로 되기까지의 그 복잡한 공정을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구뎅이를 파고, 불을 때고, 돌덩이들을 놓고 거기다 삼대를 넣고는 나중에 숱한 사람들이 겨끔내기로 물을 길어다 붓는 삼굿으로 삼대를 쪄내는데 그것은 무슨 년례행사처럼 대단한것이다. 겨울날의 긴긴밤에는 아낙네들이 무릎에 썩살이 배기도록 삼을 삼으면서도 밤참이랍시고 움에서 바가지로 김치를 꺼내다 쭉쭉 찢어서 먹군 하던 그 정상… 실을 도투마리에 올리고 둥굴레풀로 풀먹임을 하여서는 베틀에 앉아 삐꺽삐꺽 발대를 엇바꿔디디며 바디질을 하던 이 나라의 녀인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 나라에 무명천이 생기기 그 이전에 조상들은 무엇을 입고 살았던가. 이 삼베천이 아니던가. 흔하지 않은 명주천이야 베틀에 앉아보지도 않은 놀고먹던 년놈들이나 입었을테지.…

할머니는 깔따구가 기여든다고 어느새 이마에 쑥테를 두르고 앉아 여전히 다듬이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할머니는 저렇게 쉬지두 않구 다듬이질을 합니까?》

리승기가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은 엄지손가락으로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담으며 얼른 대답을 안하자 부엌에서 그릇을 부시던 안주인이 구들을 올려다보며 말참녜를 했다.

《그러기말입니다. 만날 저러구 앉아있지요. 망녕이 드셨나보우다.》

《또, 또…》

주인은 찔 눈을 흘기며 안주인을 가로보았으나 그럴수록 부엌의 목청은 더욱 높아진다.

《아 글쎄 선생님들 들어보시우다. 장농속에 두었던걸 볕에 내불리기두 하구 저렇게 구멍이 나도록 다듬이질이지요.》

그제사 주인은 멋적은 웃음을 띠우며 리승기를 쳐다보았다.

《우리 아들 셋이 군대에 나간데다가 열아홉살짜리 딸애까지 군대에 나갔수다. 어머님은 그 손녀가 전선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저 베천들을 대를 물려 바수개(례장감)로 준다나요. 해방후에 장만한 세루천도 얼마든지 있는데… 허허 참.》

참말 그게 망녕된것이겠는가. 그렇게 볼수야 없지 않은가. 자기가 일생을 통해 마련한 가장 값진 재산으로 여기고 이 열새, 보름새 베천들과 아랑주천필을 고스란히 손색없이 전선에서 돌아오는 손녀에게 물려주려는 저 귀먼 할머니의 소원을 어찌 웃음으로 날려보내며 더구나 로망에서 오는 가긍하고 궁색한짓으로 대할수 있으랴.

밤에 리승기는 꿈을 꾸었는데 백발의 그 집 할머니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복입은 손녀를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보았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조반을 치르고 그 집을 나서는데 그때 벌써 뒤에서는 다듬이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똑딱똑딱… 따가닥 따가닥…》 쉬임없이 울리고있었다.

리승기는 점점 멀어지는 그 소리에 귀기울이며 발걸음을 주춤거리였다. 다듬이소리, 다듬이소리, 밤이나 낮이나 가락맞게 끝없이 들리는 저 소리는 고향집어머니가 찾으며 불러주는 다정한 목소리인듯… 먼 전선에서 할머니의 손녀도 저 다듬이소리를 듣고있을듯싶었다. 몇백년인지 몇천년인지 흘러내려오는 저 다듬이소리에 깃든 이 나라 할머니, 어머니들의 소원과 수고가 다시, 또다시 헤아려졌다. 문득 그 다듬이소리를 타고 과학자대회 휴계실에서 하시던 어버이장군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뜨겁게 들려온다.

《전쟁이 끝나면 늦습니다.… 지금도 늦었습니다.》

그 이튿날에야 리승기와 오정해는 후창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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