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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회

제 4 장

사랑을 꽃에 비김은…

15


자정이 가까와오는 깊은 밤이건만 책임기사 류기철은 오직 한가지 생각에만 옴해있었다.

(세호는 전공이 기계니까 힘에 부칠게고 석규동문 출장중이지? 리현이가 그중 낫긴 한데 그야 당장 급한 과제가 있지 않나!)

그는 지금 자기가 여태껏 애써 추진해오던 중유절약안을 누구에게 맡길것인가를 따져보고있는중이였다.

로문이 열릴 때마다 벌겋게 달아오르군 하는 자기 사무실의 유리창을 바라보며 그는 책상우에 펴놓은 백지우에다 공정기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광일이? 그는 아직 그런 과제를 감당하긴 어렵지.)

그는 방금 쓴 그의 이름옆에도 십자를 그었다.

무슨 사색에 잠길 때마다 그는 종이장에 글을 쓰는 버릇이 있었는데 흡사 진동계수를 표시하는 계기처럼 사색이 심화될수록 그 종이는 점점 알지 못할 부호와 표시로 얼룩지는것이였다. 대학시절 시험공부를 할 때부터 익힌 그 버릇으로 하여 친구들로부터《오씰로그라프》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까지 했다.

불현듯 그의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흘렀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어쩌면 좋을지 몰라 안타까와하던 자기가 오늘은 새로운 푸짐한 식탁에 앉아 이미 손에 들었던 음식을 누구에게 줄것인가를 따져보고있기때문이였다.

(정아한테?)

언제나 생기에 넘쳐있으면서도 무슨 말을 할 때면 무엇때문인지 곧잘 뾰로통해지군 하는 처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학때부터 중유절약안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던 정아였다. 더우기 전기를 전공했다는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만하면 그에게 맡길만도 했으나 아직 현장에 익숙되지 못했다는 점이 머리를 기웃거리게 하는것이였다. 기철은 그의 이름옆에다도 십자를 그었다.

숱한 이름들이 적혀있는 종이장은 무슨 경기대전표같은데 이긴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패배자들뿐이였다.

《음―》

그는 입술을 꾹 다문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한테 맡긴다?)

사람들중에는 자기 느낌이나 생각을 아무에게나 꺼리낌없이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달리 될수록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가 과묵하고 진중한 성격에 기인되지만 성격이 그렇지 않으면서도 의식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사람도 간혹 있는것이다.

원래의 천성을 정신적인 긴장으로 압도해버리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중의 하나가 강철직장 책임기사 류기철이였다.

그의 선량한 표정은 마치《보다싶이 난 그저 일에만 쫓겨사는 사람인걸요.》하는듯 했으나 그를 잘 아는 사람이면 감탄과 존경, 지어는 일종의 두려움까지도 금치 못하는것이였다. 그런데도 그가 말이 없는것이 유순한 성격으로 해서가 아니라 딴 사람에겐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지만 그자신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어떤 내적인 문제로 하여 감정을 토로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기때문이였다.

사실 그의 가슴속에는 남다른 포부가 간직돼있었다.

《기술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재부는 실력이다. 그 실력에 따라 기술자의 가치가 규정되고 그 가치는 어떤 창조물을 내놓는가에 따라 계산된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생활신조였다. 실력이 없는것보다 슬픈 일이 없고 노력을 아끼는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없다고 여기는 그로서는 책임기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하루 취침 세시간이라는 견인불발의 투지로 학습과 탐구를 거듭했다.

그런 노력으로 하여 벌써 적잖은 성과를 거두었고 작년부터는 공장대학 초빙강사로까지 추천되였으나 그는 이에 조금도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해야 할 일에 비해볼 때 자신의 능력이 너무도 부족하다고 느꼈으며 이 부족점들을 시급히 보충하지 않으면 영영 추서지 못할 락오자로 된다고까지 간주하는것이였다. 흔히 이런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도 자기에 대한 평가, 특히 자기 실력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는 몹시 예민했고 더없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군 했다.

만약 누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나갈 여지가 있다는것을 느끼게 되면 그의 두눈은 대번에 시뻘겋게 충혈졌고 그날부터 그 대상자를 멀리 떨구어놓기 위해 이발을 사려물고 달라붙는것이였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 비한 자기 실력의 확고한 우위, 이것이 바로 그의 생활철칙이였고 확고부동한 신념이였다.

이런 그여서 제 나이라면 이젠 응당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사랑이니, 결혼이니, 행복이니 하는것에 대해서도 남들과는 전혀 다른 견해를 품고있었다.

인생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즉 총각시절과 그 이후시기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그는 총각시절은 응당 그 이후 가정생활을 담보할수 있는 행복의 온상이 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가정생활은 부득불 총각시절과 련결되기마련인데 그것은 무엇보다 청춘시절에 어느 정도의 위훈을 세웠는가 하는데 따라 행복의 크기가 결정되기때문에 사랑도 이에 기초해야만 참다운 생활로 련결된다는것이였다. 만약 이런 확고한 기여가 없이는 누구를 사랑할 자격이 없는것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설사 사랑을 한다 해도 메마른 땅에 심어놓은 화초와 같이 이내 시들어버리지 않을수 없다는것이였다.

말하자면 그는 청춘시절을 인생의 봄, 파종하는 계절로만 여기는것이 아니라 무르녹은 가을, 수확의 계절로까지 돼야 한다고 믿는터여서 그 푸짐한 수확물이 있을 때라야 진정한 행복도 있을수 있다는것이였다. 때문에 시대가 바라는 문제에 대한 특출한 기여, 어떤 시련과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을 놀래운 시대의 영웅들과 같은 비상한 헌신, 오직 이것만이 사랑의 전제며 결혼의 촉매일뿐아니라 또 행복의 비옥한 토양이라는것이였다.

이런 그의 속심을 알길 없는 부모들은 드러내놓고 아들을 불효막심한녀석이라고 지청구를 해댔다.

《그래 장가는 안 가겠니?》

《가야지요, 그렇지만 아직은 이른걸요.》

《이르다니? 나이 스물여덟이 적어서? 그리구 네가 가야 동생도 갈게 아니냐.》

《저도 애인은 있습니다.》

《있어? 도대체 어떤 처녀게?》

《저의 애인은 야금이지요.》

《망할녀석! 어디 평생 실컷 쇠붙이나 끼고 살아라!》

이렇듯 오직 자기 임무인 야금에 대해서와 세상을 놀래울 기술안에 대해서만 모색하는 그였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작년에 그처럼 바라마지 않던 그런 혁신안을 찾아냈던것이다. 그것은 가스의 연소효률을 높임으로써 중유취입량을 절반이상으로 감소시키는 중유절약안이였다.

늘 중유에 지장을 받고있을뿐아니라 마침 명식이네의 연료연구까지 수포로 돌아간 때여서 대번에 그의 안은 커다란 지지를 받았었다. 공장에서는 물론 연구소며 부에서까지도 그의 중유절약안에 커다란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비상한 열정으로 기술안추진에 돌입했다. 중간시험로에서 기초시험을 끝내고 넉달만에는 도입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이 순조로이 또 그렇게 확신성있게 전진되던 일이 그만 암초에 부딪칠줄이야.

그것은 이미의 전기장치와는 다른 고열에서도 정밀하게 작용하는 새형의 자동기구의 제작을 필요로 하는데 있었다.

그는 이 난관도 서슴없이 맞받아나갔다. 보통암초가 아니라는것을 깨닫고는 더욱 과감히 돌진했다. 하지만 그것은 좀처럼 움쩍도 하지 않았다. 세번, 네번을 거퍼 덤볐으나 매번 격파당하고말았다.

일시 주저와 동요를 느꼈으나 뭇사람들의 기대에 다시 전신의 힘을 모아 육박해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이렇다할 전진이 없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과연 내 힘으로 타개할수 없는 장애란 말인가!

그사이 몰린 피로와 좌절감으로 하여 그는 며칠동안 앓아눕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 그는 우연하게도, 그야말로 우연하게도 하나의 놀라운 령감에 부딪쳤던것이다. 그것은 중유절약안과는 거리가 먼것이였지만 그만한 아니, 그보다 확실히 더 의의가 있는 그런 거대한 새 기술안에 대한 착상이였다.

그 착상이란 현재 제강행정에 도입되고있는 산소의 취입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강욕취입방법이였다. 어려운 점들이 없진 않지만 현 설비상태를 충분히 리용할수 있을뿐아니라 그 방법이 완성되면 지금보다 제강시간을 두세시간은 확고히 더 단축할수 있었다. 또한 산소취입에서 가장 난점인 로벽의 혹사를 결정적으로 방지할수 있다는데도 특별한 우점이 있었다.

그는 이 기술이야말로 야금계가 바라는 새로운 혁신안이라는것을, 자기가 모색해마지 않던 그런 전대미문의 기술안이라는것을 륙감으로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확실히 령감이란 불시에 떠오르기는 하지만 언제나 노리는 사람에게만 찾아드는 모양이였다.

걷잡을수 없는 충동이 그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 기술안에 대한 의욕이 불같았으나 서뿔리 그것을 시작할수가 없었다. 시작은 고사하고 자신의 의도를 남들에게 말할수조차 없었던것이다. 바로 이미부터 하던 중유절약안이 발목을 잡기때문이였다.

《그럼 이젠 중유절약안을 포기한다는건가?》

《그게 기술자의 외도라는거지 뭔가?》

모두가 이러며 자기를 비웃을것 같았다.

(창조적열정이란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타산에 토대하는게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중유절약안을 버리는건 아니니까.)

이렇게 자신을 변호해보기도 했으나 그것이 한갖 구실이라는것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언젠가 기술과에 있던 한 친구가 자기 기술안의 추진전망이 막혔다는것을 간파하고는 거기서부터 벗어나긴 해야겠는데 방도가 없어 고민하던 일이 되살아났다. 그는 그때 묘한 궁리를 해냈는데 그것은 본래의 기술안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하는 기술안(전혀 성격이 다른것이긴 하지만)을 제기했던것이다.

사실 그 기술안이 사람들을 현혹시킬수는 있어도 실현하기는 어려운것이였지만 사람들은 그의 기술안에 찬사를 보냈고 그는 쉽사리 본래의 기술안에서 손을 뗄수 있었던것이다.

그때 기철은 그를 얼마나 질시했는지 몰랐다.

《참다운 기술자가 되려면 우선 참다운 인간이 되여야 합니다.》

공장대학의 강당에 나설 때마다 이 말을 버릇처럼 외워온 그였다.

몇해동안 책임기사로 일하면서 그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수 있은 주요한 특질은 그가 자신에 대해서는 지극히 까다로운 반면에 남들에게는 더없이 관대한것이였고 다른 하나는(이것이 더 중요한것이지만) 어떤 일도 량심적으로 처리한다는 그 점이였다. 누구도 그가 하는 일을 시비하거나 우려하는 일이 없는것은 물론 그가 맡아하는 일은 어떤것도 자기를 위한것이 없으며 틀림없이 정당하리라는것을 믿어마지 않는것이였다.

(아무래도 중유절약안을 결속하지 않고는 새 기술안을 시작할수 없어!)

그는 당장 먹고싶은것을 눈앞에 놓고도 이미 입에 넣은것으로 하여 먹지 못하는 사람의 안타까운 심정에 처해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일었던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으로 얼마전부터 제철소에 중유가 우선적으로 공급되게 된것으로 하여 앞으로 더는 생산에 지장받을 일이 없게 된 사실이였다. 이 새로운 사태는 대번에 그에게 이제껏 강압적으로 눌러오던 강욕취입안에 대한 의욕을 한껏 부풀어오르게 했다.

(중유가 풀리여 생산이 정상화되는 이런 정황에서야말로 무엇보다 더욱 생산을 높일수 있는 기술안이 요구되는것이 아닐가!)

아닌게아니라 제철소에서는 생산에 대한 요구를 부쩍 높이였다. 수령님의 은정에 더 많은 증산으로 보답하기 위한 총돌격전에로 로동자들을 추동했다. 증산대책들을 위한 토론이 매일처럼 벌어졌다.

기철은 마침내 그사이 더욱 무르익혀온 강욕취입안을 도면과 함께 제기했다.

대번에 일대 격찬이였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것처럼 모두가 쌍수를 들고 지지해나섰다. 바랐던바보다 몇배 더 큰 격려와 찬사여서 그는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당장 이 기술안을 구체화하오. 우선 도면부터 완성해야겠소. 다소 자재나 돈이 들더라도 빨리 실현할수 있게만 하오! 알겠소?》

기술부기사장의 전에 없는 고무였다.

(중유절약안은 어떡한다?)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그는 곧 새로운 결심에 사로잡혔던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반년동안이나 고심해온, 그래서 이젠 거의 마감단계에 들어선 중유절약안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겠다는것이였다.

(아니, 넘겨주다니? 그게 어떤거라고?)

따져보니 아까왔다. 생각할수록 그 기술안에 바친 노력이, 또 실현을 눈앞에 두었다는 사실이 미련을 품게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는 기술안인가!

하지만 그는 도리를 저었다.

(우리한테야 누가 어떤걸 만들었는가 하는것보다 그것이 현실에 어떻게 쓰이는가가 더 중요한것이 아닌가!)

그는 자기에게 차례진것이 자기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무상의 혜택이라고만 여겨졌고 그 혜택에 어쩐지 자기를 희생시키고싶기까지 한 심정이였다.

(그래! 인계하자! 인계할바엔 송두리채 깨끗이 넘겨주자! 그 정도의 희생이 아니면 무슨 선행이라고 하랴!)

언제나 자기가 남들보다 확고히 앞섰다고 느낄 때에만 품게 되는 그런 아량이 그에게 작용했던것이다.

일단 이렇게 마음을 먹고나자 그는 자기의 결심이 자기 희생에서 출발된다는것으로 하여 자랑스러웠고 그 사실을 알고 기뻐할 사람들의 모습으로 하여 더욱 만족스러웠다.

이리하여 그는 지금 그 무상의 행복자가 될 대상을 고르고있는중이였다.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던 그는 불시에 떠오르는 한사람의 모습에 소스라치듯 놀랐다.

(그렇지!)

어째서 진작 그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알수 없었다.

불같은 열정의 소유자겠다, 또 현실을 감수하는 기민한 판단력은 어떻고? 특히 그가 시도하는 기술안과 중유절약안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것이 아닌가! 언젠가 흥분한 표정으로 중유절약안의 도면을 보여달라고 하던 진호의 얼굴이 상기됐다.

(그래, 그이상 적임자는 없어! 이걸 수행하느라면 그 역시 새로운 눈으로 자기 기술안을 검토해볼수 있고 또 그 과정에 적잖은 도움도 받을테니까!)

그도 진호가 시도하는 기술안이 어떤것인가를 모르지 않았다. 이미의 시도와는 전혀 다른 방법, 즉 완전히 새로운 첨가제를 만들어야 하는 그 일이 얼마나 힘든것인가 하는것도 잘 알고있었다. 아무리 대학때부터 해오던 연구라 해도 첨가제에 대한 확정, 부단한 반복시험과 그를 통한 확률적인 지수의 측정, 이 과정만 해도 간단치 않는데 연료를 가공하고 취입해야 할 장치까지 도입하자면 얼마나 오랜 기일이 걸릴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기철은 그의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째서 그처럼 현실에 대한 정확한 리해를 가지고있는 그가 그런 료원한 과제를 잡았는지 알수 없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기가 그랬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 나온 사람이면 누구나 한땐 그런것처럼 진호 역시 간혹 가다 자기의 지혜로 도달한 어떤 결론의 가치에 지나친 흥분과 열정을 앞세운 나머지 이여의 타산이며 경험은 고려에 두지 않은 상태에 있는것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진호는 확실히 여느 대학졸업생들과는 달랐다.

흔히 대학시절 학과에 충실했던 수재라 해도 현장의 복잡한 정황에 부딪치면 어안이 벙벙해지거나 왕청같은 질문을 하기마련인데 진호가 처음부터 느끼는것들은 거의 모두가 현실적이고 여태껏 해결하지 못하고있는것으로 하여 불균형이 조성된 모순점들이였다. 말하자면 교육실습에서만 생산과 접촉해본 그런 유치한 점이라곤 없었다.

기철은 그를 첫눈에 재능형으로 결론내렸었다.

그의 판단에 의하면 기술자들인 경우에는 어쩔수없이 두가지 류형으로 구분되는데 첫 부류는 재능형이고 둘째 부류는 노력형이라는것이였다.

재능형은 잉크방울을 빨아들이는 흡인지처럼 어떤 대상에서 야기되는 문제들과 해당한 방도를 재빨리 포착할줄 아는 사람이라면 노력형은 이와는 달리 물방울을 빨아들이는 종이처럼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그만큼 폭넓고 진진하게 흡수하는 사람이였다.

이 두 부류는 어느쪽이나 우단점이 있는것으로서 영민한 판단과 감수성이 있는 사람은 진지한 태도가 부족하고 꾸준하고 성실한 사람은 부득불 예민하지 못한 약점을 가지게 된다는것이였다. 물론 이 두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제3부류가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가 제일 질시해마지 않는 무맥형으로서 기술자의 셈에조차 넣지 않았다.

그러나 따져보면 진호를 단순히 한가지 류형에만 국한시킬수는 없었다.

언젠가 로에 취입되는 열량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는 현재 로들이 취입되는 열량의 8할도 소모하지 못하고있다고 했다.

《3 500립방의 가스와 4기압의 산소, 거기에 9천카로리의 중유가 취입되면 80톤의 원료를 50분에는 녹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로나 용해시간이 1시간이 넘는군요.》

《형편은 그렇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준수치고 로내의 구체적인 정황이야 다르지 않겠소. 로상태를 고려했소?》

《했지요.》

《열의 파동은?》

《그것도 평균수칩니다.》

《그럼 장입방법도 따져봤소?》

《?》

그제야 그는 생각에 잠기는것이였다. 그쯤으로 리해했으리라고 믿었는데 며칠후에 또다시 그 문제를 들고나오는것이였다.

《확실히 이건 열량의 지나친 랑빕니다. 이걸 보십시오.》

그가 내미는 자료들을 보면서 기철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웬만한 경험을 가진 기사가 아니고서는 해명해내지 못할 그런 문제가 정확히 밝혀져있기때문이였다.

흔히 재능이 있는 사람에겐 노력이 부족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겐 재능이 결핍돼있기 십상이지만 진호에게는 량자가 서로 배합돼있는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끈덕진 노력이 더 우위를 차지하는것 같기도 했다.

(그래, 그 이상 적임자는 없어!)

기철은 그가 중유절약안을 맡으면 틀림없이 지금의 난관을 해결하리라는것을, 또 그것으로 하여 적어도 발명권쯤은 차례지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무수히 써넣은 진호의 이름옆에다 그는 빠짐없이 동그라미를 그려넣었다. 숱한 공정기사들은 다 패배하고 유독 진호 하나만이 승리한 대전표를 내려다보며 그는 또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그는 주춤하지 않을수 없었다. 불시에 그 어떤 힘이 자기의 충동을 다잡는것이였다.

(과연 그에게 중유절약안을 맡기는것이 옳은 일일가?)

이런 의혹이 서리면서 아무리 그의 기술안이 실현하기 어려운것이라고 해도 그걸 위해 지금 모든 심혈을 쏟아붓고있는 진호에게 자기의 기술안을 인계한다는것이 혹시 온당치 못한 일이나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드는것이였다. 며칠전 연도에 들어갔다가 질식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실정을 모르는데서 범한 실수라고 했지만 기철은 애초부터 그가 결심하고 단행한 행동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또 그런 결심은 남다른 목적을 가졌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만 있을수 있는것이여서 그는 진호를 더욱 새삼스런 눈으로 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누구나 자기의 정신적희열에 지배되고있는 순간처럼 자기본위가 되는적은 없는것이고 그런 때에는 자기보다 더 아름답고 더 흥미있는것은 세상에 없는듯이 생각되는 법인데 바로 진호가 지금 그런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우에는 오직 그 유혹에 몸을 맡김으로써만 거기에서 빠져나올수 있다는것도 그는 경험을 통해 알고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맡길수 없어!)

허리를 편 그는 다시 창문쪽으로 다가섰다.

출강장의 불빛이 온 용해장을 감빛노을로 물들이고있었다.

(어떻게 한다?)

《따르릉!》

갑자기 울리는 전화종소리에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가까와오는 시간이였다.

송수화기를 드는데 교환수가 부에서 오는 전화라고 일러주는 바람에 그는 대뜸 의자를 당겨놓으며 귀를 강구었다.

《책임기사동무요?》

상대가 누구라는것을 안 그는 곧 반색을 지었다. 명식이였다.

《실장동무군요.》

《역시 밤늦게까지 분투를 하는군. 난 틀림없이 동무가 직장에 있으리라고 믿었소.》

《흠! 실장동무야 뭐 거기 앉아서 축구구경하는 기분일테지만 여긴 어떤줄 압니까? 혀를 빼물고 달리는 선수 맞잡이란 말입니다.》

워낙 롱담이라고는 잘하지 않는 그였지만 오늘은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갔다.

《허허, 하긴 그럴수밖에! 이젠 중유가 풀렸으니까, 그래 쇠물이 좀 나오나― 축구선수?》

《꽝꽝 쏟아지지요, 어느 로나 하루 세차집니다.》

《축하하네, 우리가 제때에 정확한 보고를 올리기 얼마나 잘했나!》

중유를 보장받을수 있게 된것이 자기들때문이라는 일종의 자랑이 그의 목소리에 어려있었다.

《참, 투사기도면을 받았습니까?》

《받았네! 바로 그것때문에 전화를 걸던참이야! 본래는 이달내로 도면을 료해하고 담당심사원을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긴급과제가 제기돼서…》

《녜?》

필경 심사가 늦어지는데 대한 발명이리라는것을 알고 물었으나 명식은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한것으로 여기고 더 큰소리로 곱씹는것이였다.

《외국에 보낼 설비의 심사가 제기됐단 말이네. 당분간 항에 나가있어야 할것 같네. 어쩌겠나? 미안한대로 좀 참아주게.》

그러면서 될수록 최선을 다해 빨리 끝내도록 하겠다는것을 부언했다.

《할수 없지요, 어쨌든 여기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있다는것만 잊지 마십시오.》

《암, 잊지 않겠네! 참! 동무가 하던 그 기술안 있지? 중유절약안 말이야. 그것도 추진시키고있겠지!》

《녜, 곧 대책을 세우지요.》

《놓치지 말게, 중유가 풀린 이런 땔수록 우린 중유를 더 절약해얄게 아닌가! 응?》

《참, 실장동무!》

진호에 대한 생각에 미친 기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실장동무 신세를 너무 지는게 아닙니까?》

《신세라니?》

《도면만 방조받는게 아니라 이젠 사람까지 보내주니 말입니다.》

《사람? 오― 진호 말인가? 그 친구가 동무네 직장에 있다면서? 공정기사로 있다는걸 나도 들었네. 어쨌든 옆에서 좀 잘 도와주게.》

기철은 송수화기를 놓고도 한동안 얼굴에 피여나는 흐뭇한 기색을 지울길 없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적임자는 정아뿐인데… 정아한테 맡겨?!)

책상우에 널려있는 종이장들을 주섬주섬 챙기고 밖으로 나서니 벌써 하늘엔 별들이 총총했다.

그 별들을 쳐다보느라니 어째선지 앞으로는 모든 일을 더욱 버젓한 긍지를 가지고 대할수 있도록 곱절 많은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과 할수 있다는 자신이 새로이 가슴에 맺히는것이였다. 그 많은 일들은 또 무척 실행하기가 유쾌할것 같은 공상의 나래가 훨훨 펼쳐지기도 했다.

그는 희망이 용솟음치는 씩씩한 기분으로 현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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