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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제 3 장

불길처럼 타오르라

13


진호는 그 시각 용해장아래에서 6호로의 소연도뚜껑을 열어제끼느라고 안깐힘을 쓰고있었다. 얼마나 무거운지 힘을 쓸 땐 들리는척 하다가도 이내 제자리에 덜컥하고 내려앉고마는것이였다.

(넨장 무겁기란?)

가쁜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는 이따금씩 주위를 힐끔힐끔 돌아보군 했는데 그때의 눈길은 마치 주인 몰래 참외밭에 뛰여든 장난꾸러기를 방불케 했다.

사실 수리중에 있는 로의 연도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여있었다. 못 들어간다기보다 누구도 그 시뻘겋게 달아있는 불도가니속에, 더우기 넓은 공간이라면 몰라라 엎드려 네발걸음을 해야 하는 캄캄한 굴속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것이였다.

《연도에요? 원 어림도 없수다. 당장 불고기가 되자구요?》

연도에 들어가볼수 없겠는가고 물었을 때 하던 축로공의 대답이였다.

(그래도 아무렴 몇분이야 못견디겠는가!)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연도에 들어갈 결심이였다. 연도에 들어가봐야 연도구조는 물론 연진의 궤적상태며 궤적량을 알수 있었고 중요하게는 앞으로 새 연료취입조건에 맞게 연도를 개조할 가능성도 찾을수 있는것이였다.

기회는 오늘밖에 없었다. 래일이면 6호로가 수리를 끝내고 불을 잡기도 하거니와 이제 언제 또 다른 로가 수리하게 될지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실상 그는 요즘 눈코뜰새 없었다.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지어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겹쌓였으나 조금도 힘든줄 몰랐다.

첨가제의 성분을 새로운 조건에 맞게 개조해야 할뿐아니라 고체연료를 분말상태로 가공해야 했고 그것을 분사할수 있는 취입장치제작도 병행시켜야 했다. 어느것 하나도 쉬운 일이 아니였지만 그는 드팀없이 밀고나갔다.

이중에서도 제일 품이 많이 드는것이 연료의 가공이였다. 직장에 연료가공설비가 없다보니 부득불 연료를 선별장까지 날라야 했고 날라놓고도 선별기부하가 없는 틈을 타서 가공하자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사이에도 짬시간만 생기면 공업시험소에 뛰여가 이미 진행된 시험의 열효률에 대해 따져보았고 혹도와 복사열을 알아보았으며 거기에 기초하여 첨가제의 비례를 다시 새롭게 배합해보는것이였다.

이것만이 아니였다. 이 모든것을 수행하면서도 열공정기사로서의 임무, 매 로의 열관리상태며 열균형을 조사장악하고 그 과정에 나타난 편향들을 바로잡아나가야만 했다.

이처럼 많은 일감으로 하여 잠시도 한자리에 서있을 여유조차 없었지만 그는 도리여 자기가 어쩐지 한가한것 같기만 했다. 더우기 이상한것은 자기가 하는 일이 하루이틀사이에 다 해결돼야 하며 또 자기의 노력에 따라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하게 되는 그것이였다.

피곤할 때도 한시간정도만 엎드려있거나 벽에 기댄채 눈을 감고있어도 피로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왕성한 의욕과 새로운 힘이 다시 온몸에 넘쳐나는것이였다.

그가 이처럼 커다란 흥분을 느끼게 되는데는 이미 현장으로 올 때의 각오도 각오였지만 새로 받아안은 충격때문이였다. 그 충격이란 바로 책임기사의 중유절약안에서 시작된것이였다.

각별한 호기심을 가졌던 중유절약안이였으나 그것이 어떤것이라는것을 안 순간 그는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기발한 착상으로 시도됐을뿐아니라 쉽사리 완성될 여지까지 있는것이긴 했지만 결코 현실이 바라는 그런것이 못된다는것으로 하여 불만스럽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얼마간의 중유를 절약하는데만 목적을 둔 기술안에 불과했다.

(흠, 이거야말로 활활 타번지는 불길을 바가지물로 끄려는것과 같이 쬐쬐한것이 아니고 뭔가!)

《소극적이다― 중유절약안!》

간단한 소감까지 적어놓군 하는 자기의 시험일지에 그는 이렇게 써넣었다.

(그래도 뭐 숱한 사람들의 관심속에 있다구?)

생각같아서는 책임기사에게 의견을 털어놓고싶기도 했으나 그보다 그는 자기의 새 연료안을 하루빨리 실현해야겠다는 촉박감에 휩싸인것이였다.

(불길을 그런 쪽박이 아니라 어떻게 단번에 꺼버리는가를 실질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하루빨리 나의 새 연료안을 완성하는데 있다.)

이런 충동은 대뜸 그에게 중간공정시험단계를 뛰여넘을 대담한 결심을 품게 했다. 말하자면 시험로에서 확정된 새 연료를 직접 로에 취입해볼 생각이였던것이다. 이것은 결국 시험을 석달이나 앞당기는것으로 되는것이였다. 더우기 그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데는 현실에 온 첫 순간부터 그처럼 애써 증명하려고 했던것, 그것만이 유일한 생활의 목표로 되고있었던것, 그것을 증명해보임으로써 현옥이는 물론 자기를 헐뜯던 시비군들이 가슴을 치며 절통해할 그 순간을 단 하루라도 앞당겨야 한다는 아니, 앞당길수 있다는 확고한 신심이 생겼기때문이였다.

이미의 분석을 통해 연재처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단지 얼마만 한 열량을 담보하는가 하는것이 문제지만 그것도 연소속도가 높은 혼합가스가 있고 700도이상으로 예열된 공기, 거기다가 연료의 연소를 촉진시키는 산소까지 분사된다는 조건이 1 800도를 능히 담보할것 같았다.

(할수 있어! 있고말고.)

그는 이제 와선 오히려 자기앞에 더 큰 난관이 있기를,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뚫기 어려운 그런 장애가 나타나길 바랐다. 그래야 일을 수행한 다음에 느끼게 될 보람도 클터인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것 같아 자못 유감스럽기까지 했다.

낑낑거리며 겨우 뚜껑을 열어제끼긴 했으나 연도에서 확 뿜어나오는 열기로 하여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을수 없었다.

수리에 들어간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연도는 아직 무섭게 달아있었다. 열기도 열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느라니 시꺼먼 입구가 흡사 들어서기만 하면 형체도 없이 삼켜버릴 흉악한 괴물의 아가리같아 무시무시하기까지 했다.

(만단의 준비를 하고도 떨다니! 내가 언제부터 이런 시라소니가 됐어.)

두툼한 방열복이며 수갑, 회중전지를 내려다보며 입구로 다가선 그였으나 좀처럼 발을 들여놓을수 없었다. 다가섰다가는 물러서고 다시 다가섰다가는 또 물러서게 되는것이였다.

어릴 때 벼랑우에 올라서서 퍼런 강물을 내려다보며 가슴을 조이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속으로는 얼마나 강심을 먹고 나섰던가.

《바보! 거기서 뛰여내리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해봐. 당장 뒤에서 뱀이 따라온다고 말이야!》

중학생들이 이러며 부추겨댔으나 종내 뛰여내릴수 없었던 자기였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걸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수 있단 말인가!

(사실이 그렇지 않다니?)

불시에 이런 느낌이 뇌리를 쳤다.

여기 들어가지 않으면 그만큼 새 연료취입이 늦어지고 그러면 제철소에 배당되는 중유만큼 다른 부문이 지장을 받을것이 아닌가! 그럼 어버이수령님께선 또다시… 안된다! 조금도 주저해서는 안돼!

이런 절박한 생각과 함께 자기를 비웃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핏 떠오르는것이였다.

《희망이였다구? 그런 희망을 품었던 사람같으면 저렇게 우물쭈물할게 뭐겠소. 워낙 비렬한 사람이니까 비겁할수밖에!》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세상에 행동으로 증명하는것보다 더 명백한 진리가 어데 있니.》

(그렇다! 나의 희망과 포부는 물론 나의 진정 아니, 나의 온 생명이 바로 여기에 달려있다. 그런데도 못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죽는것과 무엇이 다르랴!)

전지며 권척, 연재를 담을 주머니들을 다시 확인한 그는 서슴없이 연도안으로 내려섰다.

바닥에 내려서기 바쁘게 그는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지 않을수 없었다. 당장 내장을 태울것 같은 열기가 입으로 확 쓸어들었기때문이였다. 일시에 수천개의 바늘이 피부를 사정없이 찔러대는것 같았다. 전지불을 켜든 그는 마치 포복전진하는 병사처럼 연도를 따라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이렇게도 연재가 많이 쌓이다니?)

그는 주머니에 넣어둔 자막대기로 연재의 두께를 재려고 했으나 좀처럼 바닥이 드러나지 않았다.

(저긴 왜 저런 턱이 졌어? 그러니 연재가 더 많이 쌓일수밖에? 그래! 새 연료를 취입하는 경우에는 결정적으로 연도의 구조를 변경해야겠군. 최대의 단면을 가지면서도 곡선은 완만하게.)

숨이 막히고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으나 그는 애써 태연하려고 했다. 발목이 뜨끔해서 돌아보니 웬걸 실밥이 처져있던 바지가랭이에 불이 달리고있는것이 아닌가! 벌떡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그만《아이쿠.》 하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싸쥐였다. 천정에 이마를 짓찧은것이였다. 서둘러 발뒤축으로 불을 비벼끈 그는 (흠! 이까짓게 뭐라구!) 하고 악에 받쳐 중얼거리며 더 안으로 기여갔다.

(아니, 어째서 적어져야 할 연재가 여기에 이렇게 궤적된걸가? 새 연료를 취입하면 더 많은 연재가 쌓이겠지? 그럼 혹시 여기다 흡진장치를…)

이런 새로운 느낌에 심장이 쿵 하고 흉곽을 쳤다.

서둘러 권척을 꺼내 주변의 면적을 재던 그는 갑자기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바람에 흠칫하고말았다. 점점 더 역해지는 냄새로 하여 숨을 돌릴수가 없었다.

(가스가?)

돌아서긴 했으나 어쩐지 제대로 기여갈수가 없었다. 벌써 손발이 말을 잘 듣지 않는것이였다. 전지불이 오려낸 동그란 원이 점차 희미하게 변해가는것을 그는 똑똑히 느꼈다.

바로 그 순간이였다.

그는 자기 눈앞에 나타난 어떤 몽환적인 착각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전지불이 나타나고있는 동그란 테두리안에 한 처녀의 모습이 또렷하니 새겨졌기때문이였다.

고개를 숙인채 울고있는것 같기도 하고 안타까이 자기를 부르며 발을 구르는것 같기도 했다. 아니, 야무진 눈길로 자기를 쏘아보고있는것이였다.

《어디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도대체 동무의 기술안이 가능하긴 해요?》

현옥이였다.

불시에 모욕적인 분노가 가슴에 파고들었다.

(실컷 원망해라! 맘껏 저주를 퍼부어라! 이 무뢰한놈한테 기만당한 자신을 가슴치며 원통해해라. 그렇지만, 그렇지만…)

필사의 힘을 다해 밖으로 기여가려고 팔을 움직이자 그 동그란 불빛과 함께 현옥이의 모습도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에겐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깊은 심연의 적막, 오직 그 적막속으로 그는 점점 빠져들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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