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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회

제 2 편

제 1 장

3


이틀후에 연구사들이 바로 그 장소에서 저녁총화모임을 갖게 되였을 때에도 활성탄문제가 론의되였다.

사실 20세기화학을 19세기화학과 갈라놓는 기본특징의 하나는 촉매의 작용이다. 현대의 화학에서 촉매를 적용하기 시작한것은 본질에서 화학의 새 세기를 의미한다. 화학을 촉매의 학문이라 할만큼 그 위력이 비상히 높아졌다. 초산비닐합성에서도 촉매문제가 첫 고리로서 제기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활성탄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것인가?

리승기는 이틀동안에 줄곧 문헌을 뒤지며 사색해온 그 탐구의 총화를 내놓으려고 했다. 그는 어쨌든 목질성분으로 된 물체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확신하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톱밥이.… 흔한 그 톱밥으로 한번 해보는것이?》

불현듯 김용석이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섭아래 두눈에서 불꽃이 튕겨올랐으나 입으로는 의아쩍은듯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톱밥을요?》

그는 마치 자기로 하여 모든게 뒤죽박죽될번 하다가 급기야 구원의 손을 잡은듯 제일먼저 흥분에 떴다. 그가 재차 묻는다.

《그걸 압착해서 말입니까?》

리승기는 여전히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듯 낮은 음성으로 천천히 뇌이였다.

《하여튼 무슨 방법으로든지 톱밥을 덩어리로 만들어 일정한 기공을 얻을수 있지 않겠나 하는건데…》

그 말에 현석실장이 응답해나섰다.

《압착이 아니라 약물처리로 덩어리를 만들수 없겠습니까?》

아닌게아니라 약물처리법을 밀고나가던 현석실장의 말대로 톱밥을 약물로 녹여 엉겨붙이고나서 그 약물을 뽑아내면 될법도 하다.

여직껏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았던 림창직이 비로소 머리를 들었다. 항상 유쾌히 반짝이던 그 눈에는 깊은 생각이 비끼여있어 시선이 무거워보였다. 그는 다소 게면쩍어하면서 말했다.

《약물처리로 덩어리가 가능할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나서 같은 년배의 연구사들을 둘러보는 그의 눈빛에는 찬성의 뜻과 함께 이틀전에 있은 자기의 처사를 너그러이 용서해준 그들에 대한 감사의 정이 어린듯싶었다.

《그렇다면 덩어리를 무엇으로 엉겨붙이겠는가… 문제는 이렇습니다.》

리승기는 젊은 연구사들을 둘러보았다. 누구도 얼른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말없는 그들은 제가끔 서로 마주보면서 어떤 론의를 벌리고있는것만 같았다. 때로는 순간에 타오르는 학자의 눈빛이 그 어떤 지루한 론쟁이나 책보다 훨씬 더 많은것을 암시해줄 때가 있다. 그것은 서로의 지혜를 믿고 존중할 때만이 생기는 일종의 전기적현상으로서 번개와도 같은것이다.

리승기는 연구사들의 얼굴을 번갈아바라보다가 사색을 이어나가듯 천천히 말했다.

《목질화학을 더듬어봅시다. 나무의 물리적, 화학적성질을 파고들어야 할것 같습니다.… 어떤 물질이 톱밥을 녹여서 엉키게 만들수 있겠느냐 하는걸 알아야 합니다.… 헌데 톱밥을 덩어리로 만들어서만 안됩니다. 톱밥덩이에서 촉매를 뽑아내게끔 거기에 숯처럼 기공들이 생겨야 하거던요.…》

언뜻 보면 몹시도 실무적인 어조 같기도 했으나 그것은 탐구의 모대김에서 오는 독백이 분명하다.

그렇게 말하고나서 리승기는 마치나 김용석의 동의를 구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뭐니뭐니해도 이 일에서 자기를 제때에 일깨워준 김용석이 고마운것이다. 그의 사람됨도 새삼스러워보였다.

신혼부부로서 안해와 헤여져 전선에 나갔던 김용석이였다. 제대되여 곧바로 여기 와서는 송복섭의 안해와 아이를 데리고 나갔을 때 집에 들렸을뿐 그는 청수로 따라나서는 안해를 끝내 거기다 남겨놓고 왔다.

송복섭의 안해가 북청의 흥남공대에 입학하면서 아이를 함흥의 친정에 맡겼는데 김용석은 바로 이 아이를 제 안해가 가까이에서 돌보게 한것이다. 송복섭의 처가에서 늙은 장모가 혼자서 바쁘다는것이였다. 그렇게 하고 와서는 합숙에 들거나 다른 하숙을 정하지 않고 저기 실험실옆에 달린 작은 방에서 림창직이와 같이 자취를 하고있다. 림창직이처럼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기 위해서노라고, 또 그와는 같은 군인출신이여서 배짱이 맞노라고 하였다. 리승기는 김용석이 굳이 림창직이와 함께 있으려고 한 리유를 그때는 미처 다 몰랐으며 썩 후에야 그 깊은 속심을 알게 되였다.

생각하면 그러한 제자를 키워놓고간 송복섭이 고맙기도 하였다. 재능있는 학자의 뒤에는 훌륭한 스승이 있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학자의 행복이 훌륭한 제자를 둔데 있다는 말은 더욱 옳다. 그렇다, 스승은 그러한 제자에게서 배워야 한다! 이것은 생활의 법칙이다.…

이런 상념에 잠겨 리승기는 이윽토록 그 허름한 안락의자에 묻혀 일어나지 못하고있었다.…

…1952년 5월 7일, 라지오에서는 최고사령부의 보도와 함께 과학원창립에 관한 내각결정 제86호가 엄숙히 공포되였다.

리승기는 연구소의 행정부소장과 함께 10만장서가 보관된 굴간으로 갔다. 행정부소장은 그렇듯 힘들게 운반해온 수많은 도서들을 귀중히 보관하느라고 거기다 전문사서는 물론 몇명의 보관관리원까지 두어 굴안의 통풍을 조절하고 습기를 가셔내게 하였다.

지하도서관에서 리승기는 련일 과학문헌들을 찾아보면서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기총탄에 뚫린 그 책들속 어딘가에는 잊지 못할 그 사람 김용진의 피가 스며있다는 생각에 더욱 귀중해지는 책들이였다.

어느 하루는 그안에서 꼬박 밝히고 아침에 굴밖에 나선 리승기가 강한 직사광의 해빛을 갑자기 눈앞에 받는 바람에 그만 현기증으로 쓰러지기까지 하였다. 허나 그날 낮에도 그는 굴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책과 외국문잡지들을 뒤지면서 몇개의 암시와 륜곽을 머리속에 잡기 시작했다.

톱밥을 덩어리로, 그것도 기공을 가진 덩이로 만들수 있는 그런 물질로 돼야 한다. 며칠이 지나 마침내 몇개의 염성물질에 점을 찍고 그것으로 직접 실험을 진행하기로 결심을 한 리승기는 실험실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쥐다말고 뒤에서 누가 부르는 급한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묵직한 배낭 두개를 각기 량쪽어깨에 간신히 둘러멘 오정해가 금시 넘어질듯 휘친거리며 마당에 들어서고있었다.

리승기는 급히 다가서며 배낭을 하나씩 받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배낭천을 꿰지르고 웬 용접봉끄트머리인지 나와있었다. 오정해의 고수머리는 온통 흙먼지투성이이고 얼굴도 땀으로 어지럽게 얼룩이 졌다.

《이거 어떻게 된거요? 왜 혼자 오우?》

《선생님, 태호동문 오다가 부상을 입구 지금 병원에… 자동차에 실려…》

숨을 급히 몰아쉬느라고 정해는 말을 미처 못했다. 리승기는 오정해의 팔소매를 잡았다.

《어떻게 다쳤소?》

《허벅다리에… 뼈는 다치지 않았다는데 출혈이 심해서…》

리승기는 급히 뒤돌아섰다. 문이 열리고 몇사람이 뛰여나왔다.

현석실장이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빨리 행정부소장동무한테 알리시오!》

리승기는 급기야 허둥지둥 사람들의 뒤를 따라섰다. 경황없는 중에도 그는 한태호를 거기로 떠나보낸것이 마치 자기 혼자의 결심인듯이 생각되여 절절히 자신을 꾸짖어 마지않았다.

(괜히 보냈어. 그 보배같은 사람을… 실험기구와 사람을 바꾸려 하다니. 폭격이 점점 심해지는 때에… 내가 제정신 있는 사람인가.…)

한태호는 침대우에 누워 의식을 못 차리면서도 이따금 《가감저항기… 저항기…》하고 가느다랗게 부르짖고있었다.

오정해의 말이 가감저항기를 넣은 퉁구리를 끌어내리다가 한태호가 중상당했고 퉁구리는 폭풍에 날아나 돌바위에 떨어져 그 형체조차 찾을길 없었다는것이다.

《그까짓, 사람만 무사하면 좋겠네.》

이렇게 말하면서 리승기는 중상자를 눕힌 침대머리의 의자에 앉아 오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김용석이도 왔다가더니 그는 며칠이 지나 부랴부랴 다시 평양방면으로 떠났다. 전적으로 한태호의 부상에서 받은 충격때문인것 같았다.

점점 더 심해지는 폭격도 헤아리지 않고 떠나는 그를 누구도 말릴수가 없었다.

한태호와 오정해가 흥남지구의 파괴된 공장구내를 뒤져 몇가지 계기들과 시약들, 얼마간의 특수용접봉을 가져왔을뿐 가장 필요한 기구와 시약들은 못 구하고 돌아왔다는 사실로 하여 김용석은 더 안절부절 하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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