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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회

제 1 편

제 4 장

7


다까스끼에 《합성1》호를 위한 중간공장이 세워지고있었으나 리승기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실험과 탐구에 몰두할 때면 몰라도 집에 돌아오면 막막한 심정을 어찌할수 없었다.

어느날 도모나리 쯔구모가 찾아왔다.

이 사람은 후에 다까스끼중간공장 기사장으로 되였는데 사꾸라다 이찌로와 도이췰란드류학시기의 동기동창으로 일본에서 닛뽄방직과 나란히 쌍벽을 이루면서 경쟁을 하는 구라시끼방직의 중견기술자였다.

《여보게 리군, 이거 야단났네. 연구보문들을 자네 이름으로 내니까 형편없이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있네.》

리승기는 대뜸 짐작이 갔다. 별치 않게 생각하던것이 크게 성공되자 기다 겡이쯔도, 사꾸라다 이찌로도 어리둥절해져 급기야 월계관의 높이를 보고 그것을 같이 차지하려는 욕심이 생긴것이다.

도모나리가 말했다.

《딴은 그럼직해. 사꾸라다가 자넬 제자처럼 대하려는것은 저분자설을 고분자설로 제 태도를 바꾸기 위한 전술이란거야 동년배들만 아니라 세상이 다 알지 않았나. 기다와 사꾸라다는 누구의 제자가 발명했는가 하는것으로 암투가 벌어진거네. 〈합성1〉호가 이렇게 센세이숀을 일으킬줄은 그들도 몰랐거던. 어찌겠나, 앞으로의 일을 위해 두루두루 조절해야겠네.》

다섯번째 연구보문에서 아예 리승기라는 이름을 빼버리자 놀래여 물어보는 도모나리에게 승기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끄러워 그랬네. 앞으로 공장건설특허를 얻기 위해 맨 회사사람들의 이름만 넣겠다고 말했네.》

종당에는 중간공정단계의 연구보문들은 《리쑈기, 가와가미, 기다, 사꾸라다》로 이름을 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문제가 곤난하고 복잡해진다는 도모나리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는 심정이야말로 울며 겨자먹기라는 말그대로였다.

중간공장 설계안을 제기할 때는 이름순서를 《기다, 사꾸라다, 리쑈기》라는 순서로 써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리승기한테는 이 섬나라생활이 탁류처럼 느껴졌다. 암투와 질투, 수모와 질시가 흙탕물처럼 흐르는데 오로지 의지라는 배로써만 그 사납고도 어지러운 흐름을 거슬러 오를수 있었다. 자칫하면 배가 뒤집힐수 있다. 힘차게 노를 저어라! 배는 맑은 물줄기를 찾아 기어이 상류를 향해 흐름을 거슬러올라가야 하는듯싶다.

사꾸라다자신은 후날에 자기의 수필에서 (그는 신문기자인 삼촌의 영향을 받은탓인지 화학자이면서 일생에 여러편의 문학수필을 남기였다.)《…일부 사람들은 내가 비닐론(※우리 나라의 비날론을 일본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발명하는데서 중심인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리승기박사의 공로에 속하는것이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바가 있다.

중간공정의 연구가 태평양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되였다.

리승기의 제자인 가와가미 히로시는 자기는 일찌기 리승기의 곁에서 일하게 되는 행운을 가졌다고 하면서 일본잡지 《고분자화학》1969년 4호, 5호, 6호에서 쓰기를 1939년 10월 4일에 오사까면업회관에서 리승기선생에 의하여 합성섬유의 연구보고가 처음으로 발표되였다고 회상하고나서 그뒤의 연구정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40년 10월 8일 〈〈합성1〉호에 관한 그후의 연구성과〉가 오사까면업회관에서 리승기선생에 의하여 보고되였다. 〈합성1〉호가 뛰여난 합성섬유의 하나로서 장래발전의 가능성을 가지고있다는것으로…》

《1941년 6월에 끓는 물에 견딘다는것이 발견되고 동년 10월 13일에… 보고되였다. 오늘에는 열연신, 열처리가 상식적인것이지만 당시는 전혀 새로운것이다. 열처리의 본격적인 연구는 40년 1월부터 시작되였다.》

《40년 6월~다음해 6월까지는 약 1년간 착색방지에 관한 연구기간이다.》

…섬유의 열처리는 놀라운 발명이였다. 모든 섬유는 105℃이면 타버리는것으로 알고있었던 때였다.

어느날 가와가미가 리승기에게 시험관을 가리켜보였다.

《선생님, 이것 보십시오. 제가 잘못해서 그만 이렇게… 누렇게 태워버렸습니다.》

가와가미는 당장에 그 누렇게 된 섬유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질 잡도리였다.

리승기는 그것을 보다가 불현듯 가와가미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가만, 버리지 마오.… 그안의 온도를 지금 곧 측정해보기요.》

가와가미가 온도를 재여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눈금은 150도를 가리켰다.

《이럴수 없겠는데.》

가와가미의 중얼거림.

리승기는 그를 밀어내고 제가 직접 들여다보았다. 틀림없는 150도이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150도인데 누렇게만 되고 왜 타지 않았을가. 그는 부랴부랴 누렇게 된 섬유를 꺼내다가 여러모로 측정해보기 시작했다. 끓는 물에 넣고 당겨도 보고 막 헝클어뜨려보기도 하였다. 손색이 없는 섬유가 아닌가. 누렇게 된 색갈은 그것대로 방지할수 있을것 같았다.

리승기는 온도를 높여보았다. 180도, 190도, 200도까지 올렸다. 200도의 공기속에서 구워내고 포르말린처리를 하였다.

이것이 합성섬유열처리법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적인 발명으로 되리라고는 그때 리승기자신은 물론 누구도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숨막히는 섬나라의 질박한 환경을 오로지 탐구의 의지로써만 잊을수 있었던 리승기는 높이 나래치는 창조의 넋에만 이끌리여 그것이 합성섬유분야에서 차지할 가치나 화학사적인 의의따위를 가늠해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던것이다.

별치 않은 현상에서 얻어내는 거대한 발견도 번개처럼 한순간에 이루어질수 있는 법, 만일 그때 리승기가 가와가미의 손목을 잡고 제지시키지 않았더라면 섬유의 열처리법이라는 발명은 썩 뒤로 미루어졌을수도 있었다. 사소한것 아니, 오히려 실패한것에서 무엇을 더 놓치지 않는 예리하고도 특수한 관찰력만이 두뇌에 이러한 충동을 불러일으킬수 있는것이다.

…전쟁에 혈안이 된 일본이 다까스끼중간공장에 관심을 돌리지 못하게 된것은 당연하였다.

자기의 연구성과가 일본재벌들한테 도용되리라는 생각에 빠져 이미전부터 모순된 심리속에서 허덕이던 리승기로서는 차라리 다행한 일이라 여겼다.

물론 학자로서 중간공정연구를 완성하고싶은 욕망은 버릴수 없었으나 어쩔수가 없었다.

일본이 점점 불리해지자 오히려 놈들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천황페하를 위해 싸우겠다고 으릉대며 본토에 군사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다까스끼에도 무슨 굉장한 굴을 파고있었다. 조선인《보국대》가 노예처럼 헌병들의 채찍밑에서 고역에 시달리고있었다. 일본의 해안선 연연 수천리에 군사시설이 축성되고 거기에 조선동포들이 끌려나와 하루 두끼 콩깨묵밥을 씹으며 소나 말처럼 혹사당했다.

(수많은 애어린 조선녀성들이 놈들에게 치욕을 당한 사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조선인 고학생들은 학병으로 끌려갔다. 놈들이 대륙침략의 리속에 써먹으려고 남겨둔 공과계통학생들도 반항심과 불안속에 살았다.

(일제는 중일전쟁이후 각 대학들에 제2공학부를 설치하고 《대동아공영권》을 위한 기술인재들을 양성하려고 많은 조선인학생들을 받았었다.)

1944년 9월 어느날이였다. 바로 그 제2공학부를 졸업한 리재업이 찾아왔다. 그해 2월에 26살나이로 18살의 처녀인 리승기의 맏딸과 결혼한 리재업은 당시 교또대학 조선인류학생회 회장이였다. 조선의 과학도로서의 전망, 특히 그의 반일감정을 귀중히 여긴 리승기는 그들의 결혼을 지지했던것이다.

리재업이 앉기도 전에 급히 말했다.

《6개월 앞당겨 졸업시키누만요.중국서주의 알루미니움공장에 가라구 합니다. 왜놈들의 더러운 속심을 더 똑똑히 알게 됩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잠시라도 생각지 않고는 상대방의 말을 잘라버리지 않는 리승기였지만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

《뭘 어떻게 할게 있나? 그래 일본놈 앞잡이노릇을 하자구 그리루 간단 말인가?》

리재업이 순간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본듯 리승기는 거의 노여운 어조로 말했다.

《여기 다까스끼연구소에 남도록 주선해보겠네. 후주가와연구실에서 합성고무관계를 연구해보겠다구 하면 거절하지 않을수두 있어.

합성고무두 일본이 노리는 부문이지. 어쨌든 위기는 면하구 봐야지 않겠나? 엉?》

리승기도 어지간히 초조하고 불안하였다.

허나 사위를 결코 일본놈들이 바라는 곳에 보내지 않으려는 결심만은 굳어져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에 륙군성관리가 사꾸라다방에 와서 리승기를 부른다고 하였다.

(륙군성에서?… 사꾸라다와 가와가미한테 군수청탁을 해보더니 인제는 나한테? 조선사람이라고 가릴 형편이 못되는가보군. 아니, 조선사람이기에 내가 그걸 거절하지 못하리라구 타산하는거지. 같은 교수이지만 나로 말하면 기다가 륙군성에까지 가서 겨우 허락을 받은 조선인교수니까. 그 생색을 내대고 요구할건 물론이다. 한데 조선사람이라고 나를 직접 만나지 않고 사꾸라다를 통해서만 만난단 말이지…)

사꾸라다자신은 적당히 피하면서 몸을 사리더니 리승기한테 떠맡기는 판이였다.

놈들은 휘발유를 바다로 운반하는 배가 자꾸 마사지니까 폴리비닐알콜박막주머니를 만들어 거기에 휘발유를 넣고 물우를 끌고다닐 심산이였다.

륙군성관리는 사복쟁이고 고관으로 보였다.

거만한 표정과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 종잡을수없이 얽혀서 (거만은 지난날의것이고 불안은 새로 생긴것인듯싶다.) 그의 얼굴은 미묘한 표정이였다.

《에또, 가와가미군한테 맡겼지만 당신도 아다싶이 그는 아직… 그러니 당신이 폴리비닐알콜박막으로 주머니를 만들어야 하겠소. 거기다 휘발유를 넣어 운반하게끔 새로운 해상수송수단을 만들어내야 적어도 대일본제국의 교수, 박사라고 할수 있지 않겠소?》

리승기는 묵묵히 앉아있었다. 그에는 아랑곳없이 륙군성관리는 말을 계속했다.

《그리구 또 한가지, 방탄유리문제인데 폴리비닐알콜에 부칠알데히드를 반응시켜 폴리비닐부칠알을 만들어야 하겠소.―그자는 화학에 대하여 좀 아는것 같았다.―한데 문제는 투명도를 보장해야 한단 말이요. 미국의 B29의 방탄유리를 보니까 그걸 넣었거던. 어떻소?》

리승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정면으로 맞설수는 없었다.

《좀 생각해보겠소만 그게 그리 쉽게 될것 같지는 않소.》

《깊이 생각해보는게 좋겠소.… 어쨌든 빨리 착수하시오.》

《좀 힘들것 같습니다.》

《그럼 거절이란 말이요? 그럴순 없겠는데. 당신은 우리 륙군성에서 당신의 교수학직까지 승인했다는걸 모른단 말인가? 아무리 조선사람이로서니 의리가 있어야지.》

《…》

《되도록 빨리 착수하는것이 어느 모로 보나 좋겠소.》

리승기는 한바탕 울분을 토설 못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답답해서 벌떡 일어나 나오고말았다. 그따위 연구는 생각하고싶지도 않았다.

(될대로 되라지.… 일본의 패망을 지연시키자구 내가 그런 놀음을 벌려? 어림두 없는 소리…)

리승기는 숫제 거기에는 손도 대지 않을 작정이였다.

리승기는 가족들을 일본옷으로 변복시키고 누구한테서 위조증명서를 구해서 조국에 내보내는데 성공했으나 태풍예보를 받지 못한 그 배가 도중에 풍랑을 만나 겨우 무사히 부산에 가닿았다는 소식은 퍽 후에야 알게 되였다. 일본놈들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현해탄을 건너다니는 조선사람들을 엄중단속했다. 일본에 있던 조선사람들을 일체 조선에 내보내지 않았다. 제 가족을 조선에 보내는것은 일본의 《승전》을 믿지 않는 행위로 치부되여 그런 사람은 의례 요시찰대상으로 되였다.

1945년 7월, 며칠째 늘 모이군 하던 조선인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폭격에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교또시내에 들어가 부질없이 찾기도 했다.

리승기는 점심을 먹으러 자그마한 식당에 갔다. 점심이래야 감자와 보리를 섞은 밥이였다.

막 수저를 들었을 때 누군가 헐레벌떡거리며 찾아들어와서는 《승기선생, 헌병이…》하고 말을 잇지 못한다. 륙감이 불길했지만 큰죄도 없는터라 배짱을 부렸다.

《선생, 내 점심먹구 나갈테니 기다리라구 하십시오.》

숟갈로 밥을 떴으나 마음은 평온치 않았고 밥맛이 영 돌지 않았다. 뜨는둥마는둥하고 나가보니 헌병 두놈이 기다리고있었다.

리승기는 짐짓 오연한 자세를 지으며 머리를 쳐들었으나 그들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오사까헌병대에서 왔소.》

두말할것없이 그리로 가자는것이였다.

해질무렵이였다. 차창밖으로는 여름날의 들판이 흘러가고 멀리 섬나라의 하늘가에 저녁노을이 피여오르고있었다.

그의 량옆에는 헌병놈들이 앉아있다. 리승기는 이것이 마지막길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애써 차창밖을 내다보며 먼 하늘가 노을이 피여나는 곳, 조국땅이 있는 그쪽을 하염없이 내다보았다.

문득 몇좌석 앞에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차바퀴소리에 장단맞추듯 구슬프게 들리는 일본민요인데 석쉼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뒤동산에 매미가 우네

더위에 지쳤나

누구를 부르나

목메여 매미가 우네


리승기는 늘 느끼는바이지만 이 섬나라사람들의 노래에 깃든 애조는 그들의 악패듯 하는 기질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으며 상반된다는 생각이 들군 하였다. 이네들의 노래는 그렇듯 감상적인데 그들의 포악성은 한사람의 정신과 육체에 묘하게 같이 깃들어있는것이다. 애조와 포악성은 다 그들의 위기의식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항상 의문스러웠는데 저 노래 역시 그런 느낌을 불러왔다.

옆에 앉은 헌병이 그쪽에 대고 소리를 친다.

《여, 군인이 무슨 그런 노래만 하는가. 대일본제국의 생사존망이 경각에 달린 이 시각에 군인이라면 이런데서도 응당 군가를 불러야지.》

헌병놈의 목소리에는 특전의식과 괴벽한 성미가 함께 깃들어있었다.

아닐세라 그쪽에서 악에 받친 목청이 날아왔다.

《뭐야? 여기에 오라. 맛을 봐야 알겠어?》

그러자 헌병놈이 벌떡 일어서려고 했으나 다른 헌병놈이 급히 리승기의 무릎우로 팔을 뻗쳐 그놈을 쿡 찌르며 제지시켰다.

리승기는 머리를 쳐들고 앞의 등받이너머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팔과 머리를 붕대로 감고 아마 한쪽다리도 쓰지 못하는것 같은 륙군병정이 등받이에 기대여일어나 한손에 시퍼런 칼을 쳐드는것이였다.

《야, 너희들은 본토에서 계집들을 끼구 돌아갈 때 우린 저 남양군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왔다. 사람의 뼈와 고기를 뜯어먹으며 살아났다. 알겠는가. 대일본제국의 팔다리는 이렇게 다 부러지고말았어. 자식들, 여기루 좀 오라. 너 죽고 나 죽고 이 칼로 해보자.》

애달픈 노래소리가 나오던 그 입에서 포악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울려나오는것이다. 두 헌병놈은 앉아서 욕지거리만 할뿐 일어나지 못했다.

《저놈을 그저.》

《가만 놔두라구. 기차칸인데 그러다간…》

리승기는 눈을 감고 앉았다. 이놈들의 세상이 끝장난다는 통쾌감이 다른 모든 감정들을 밀어버렸다.

헌병대류치장에 들어갈 때 간단한 수속을 하는데 한놈이 《고등관이야. 교수래.》하고 말하자 다른 놈이 《무조건 거기 넣으라.》하고 지시했다.

강보리밥 한덩이에 다꾸앙 한쪼각으로 저녁밥을 먹고나자 점검시간이 되였다.

번호를 부를 때 대답하는 목소리를 듣고 며칠째 보이지 않던 렴성근이며 여러 조선인학생들이 이미 여기에 붙잡혀왔다는것을 알았다.

나흘째되던 날부터 심문이 시작되였다. 심문에 끌려나가면서 리승기는 생각했다.

(누구한테라두 책장에서 내 연구보문철을 꺼내 따로 건사해달라구 부탁할걸.)

리승기와 헌병오장사이에는 담배불흠집투성이의 나무탁자가 놓였을뿐 자그마한 심문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헌병오장놈은 앉아있고 리승기는 서있었다.

《륙군성에서 받은 군수청탁을 거절한 증빙문건은 여기 다 있으니…

우선 일본이 패전한다고 했는데 그걸 과학적으로 론증하라.》

《난 그런 말 한적이 없소.》

리승기는 뻗대였다.

《뭐야?》하고 칠것처럼 손을 쳐들던 헌병오장은 오히려 기가 나서 이번에는 23가지 죄목을 질문식으로 들이댔다.

《관부련락선에서 조선인취체에 대한 불평이 있다지?》

《조선인에게 일본말을 시키고 일본옷을 입히는데 대한 불만이 있다지?》

《다까스끼 굴뚫는데서 조선인을 우마처럼 부린다고 격분했다지?》

《조선에 대한 일본의 통치가 영국이 인디아에 대한 그것과 같다고 했다지?》

《귀족원에 들어온 조선인을 쓸개빠진 놈이라고 했다지?》

어데서 했는지 딱히 기억나진 않아도 어쨌든 한 말이지만 모두 거부해버렸다.

《그런 말 한 일이 없소.》

《그럼 왜 가족들을 조선에 내보냈는가? 이거야 일본이 망한다고 생각했기때문에 그런것이 아닌가! 교또대학 조선인박사 지태규는 그러지 않았단 말이다.》

여러날이 흘렀다.

헌병놈이 신문 한장을 가지고와서 승기의 턱앞에 불쑥 내밀며 악의에 찬 눈으로 노려보는것이였다.

쏘련이 대일선전포고를 했다는 보도였다.

(옳지, 이젠 네놈들두 망조가 들었다는걸 아는구나.)

놈들은 한달동안 세면을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줄창 무릎을 꿇고 앉히였다. 양치질과 세면을 시키지 않는것은 고문 못지 않은 고통이였다. 아침저녁 주는것이란 감자와 보리로 된 쉰 밥덩이 한개, 찬물 반공기, 다꾸앙 한쪼각이였다.

겨릅대처럼 몸이 말라가는 그것보다 정신적인 번민과 고통이 더했다. 과학연구가 일본놈들에게 리용당하고 마침내는 놈들의 단두대에서 이슬로 되고만다는 생각에 분하고, 애닲고, 견딜수가 없었다.

(그 연구보문철을 안해한테 전해달라구 믿을만 한 조선학생한테 부탁할걸, 미처 생각지 못했어.)

후회와 비통함이 컸지만 비굴하게 처신해서 살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버지, 이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아버지가 바라던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마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헌병놈이 들어와 조서를 펴놓자 리승기는 말했다.

《23가지 항목을 다 인정하오.》

《륙군성 군수청탁을 거부한것은 어찌고?》

《그러나 일본은 망하고 조선은 독립될것인데 이것을 믿는것은 진리이지 죄로는 될수 없소.》

헌병놈은 승기가 인정한다는 말에 무척 기뻤던 모양 벌쭉 웃기까지 했다.

《그까짓… 자, 여기다 지장만 찍으면 돼.》

승기는 엄지손가락에 인즙을 묻혀 조서에 꾹 박아눌렀다. (일본은 망한다.) 이 순간에 그는 속으로 웨치며 조선사람이라는 긍지를 가슴뿌듯이 느끼였다.

헌병놈은 시끄러운 조서가 미끈히 꾸며졌다고 히죽비죽 웃으며 나갔다.

이틀후에 예심에 넘긴다고 했는데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15일이였다. 아침마다 기상시키고 꿇어앉히고 하는 질서가 있는데 이날은 까딱하지 않는다. 아침도 먹이지 않았다. 저쪽에서 웨치는 소리가 났다.

《밥달라!》

열두시가 되였다. 헌병 한놈이 어깨가 축 늘어져가지고 들어왔다.

《모두 꿇어앉아!… 중대방송이 있으니 들어.…》

말소리도 김이 빠졌다.

승기는 이상한 예감에 가슴이 후두둑거렸다.

오후 세시였다. 승기는 헌병놈에게 끌리여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예상외로 박군이며 렴성근 등이 나와있었다. 서로 눈인사로 반갑게 만났다.

《당신네는 당신네 말대로 됐으니… 여기 있을 필요가 없게 되였소.》

승기와 옆에서들 서로 얼굴만 마주보며 얼른 움직이지 못했다.

헌병놈은 이지러진 얼굴로 뇌까렸다.

《일본력사에 흠집이 갔소. 일본이 전쟁에서 졌으니 가란 말이요.

천황자신이 전쟁에서 졌다고 하기에 우린 계속 싸울수가 없게 됐소.》

승기는 두팔을 벌려 렴성근이와 또 한사람의 후배를 얼싸안고 한덩어리가 되여 밖으로 나왔다. 금방 훨훨 날것만 같았다. 몇십년의 암흑세계가 끝나고 이젠 식민지노예가 아니란 말인가? 꿈같아 믿어지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


리승기는 하루빨리 제 나라, 제땅에 가 마음껏 과학탐구에 전심할 욕망에 끓어올랐다.

그런데 지태규가 그를 만나자 이렇게 말했다.

《빨리 가야지.… 자리가 잡히는 차제로 우선 미국에 좀 다녀와야겠네.》

흡사 해방은 그한테 다른 의미로 리해되는것 같다. 일본과 미국과의 전쟁으로 몇년동안 그가 미국으로 갈수 있는 길이 끊어졌는데 이제 조선해방은 그한테 그 길을 열어준듯싶었다.

승기는 의아하고 불쾌했으나 언제 그런 생각에 오래 붙어있을수가 없었다. 한시바삐 배편을 잡아 귀국할 조급한 마음만이 앞섰기때문이다.

한달후에야 배편을 잡았다. 마침내 그는 시모노세끼에서 닻을 올린 배의 갑판우에 서있었다.

현해탄을 지날 때마다 가슴속에서 끓던 비분과 원한은 사라지고 감격의 눈물이 치받쳐올랐다. 리승기는 자그마한 가죽가방속에 따로 간수한 연구보문철만은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았다. 누우면 그걸 베고 눕고, 앉으면 품에 안고 배안에서 어디 나다녀도 옆구리에 끼고서 놓지 않았다.

허나 현해탄을 건너 서울에 온 리승기는 눈앞이 캄캄해지였다. 나라를 잃은 왜정때보다 더욱 험악한 형편, 과학적신념이고 뭐고 꼬물도 알아주지 않는 놀라운 현실이였다.

1948년에 리승기한테 보낸 가와가미의 편지…

《선생님, 선생님덕분에 전 박사가 되였습니다. 선생님의 연구에 함께 참가하고 연구보문에 이름까지 찍혔던것이 큰 보증으로 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비닐론의 공업화를 시작합니다.》

리승기의 고질적인 신경증은 이때부터 시작되였다. 제자가 그 공업화의 중심에 서서 활약을 벌리는데 나는 여기서 뭘하고있는가. 학교를 설립하는것으로부터 시작하려던 나의 꿈은 어디로 갔는가. 절망, 울분, 불면증으로 밝히는 밤들… 그런속에서 과학탐구의 의지란 어디에 있을수 있단 말인가? 5년간 줄곧 이런 악몽에 허덕이던 리승기였다. 서울은 그가 바라던 그런 서울이 아니였다.…

…과학자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자동차의 적재함우에 누워 4월의 밤하늘에 흐르는 별들을 바라보며 리승기는 온밤 이렇게 지나온 나날들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다시금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제야 내 학문의 진정한 품을 찾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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