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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 3 장

불길처럼 타오르라

10


(여기가 지령실이던가?)

현장을 한바퀴 돌아본 진호는 5호로옆에 있는 산뜻한 2층건물, 용해장을 환히 내다볼수 있게 한면이 온통 유리로 되여있어 마치 1등선박의 조타실을 련상시키는 웃층을 쳐다보다가 그리로 올라갔다.

태엽에 감겨진 기계처럼 그는 한동작이 끝나면 서슴없이 다른 동작으로 넘어가군 했다.

초록색주단이 깔려있는 정갈한 방안, 문을 닫고 들어서자마자 외계의 소음은 들리지 않아 갑자기 물속에라도 잠긴듯 한 정적을 느낄 때에야, 특히 벽을 따라 주런이 놓인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자기를 쳐다볼 때에야 그는 자기가 다소 덤비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저-》

무슨 말을 해야 하며 어떻게 처신해야 자연스러울것인가를 미처 생각할 사이도 없었던 그는 자기의 마음속에서 일고있는 흥분으로 하여 그만 미소를, 그것도 퍽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우고말았는데 이 헤식은 미소가 사람들을 더욱 아연케 만들었다는것을 통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건 어디서 굴러온 얼뜨기야!)

모두의 시선이 이러는것 같아 창피했으나 그 부끄러움으로 하여 한결 대담해진 그는 지령탁을 향해 서슴없이 걸어갔다.

모르긴 해도 여러대의 전화기와 산업텔레비죤화면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머리가 멋있게 벗어져올라간 사람이 필경 직장장이 아니면 그쯤되는 사람이라고 확신해마지 않았던것이다.

《직장에 새로 배치돼왔습니다. 리진호라고 합니다. 앞으로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줄곧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마주 쳐다보던 그였으나 진호가 허리를 굽석하고 숙이자 갑자기 풍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두손을 황급히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내가 아닙니다.》

입을 싸쥐고 웃는 킥킥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에야 진호는 자기가 또 하나의 망측한 실수를 저질렀다는것을 알았다.

(넨장! 머리는 왜 벗어져가지고…)

그는 모든 원인이 상대의 벗어진 이마에 있기라도 한것처럼 그의 대머리를 힐끔 쏘아보았다.

《전 그저 지령원에 불과하지요. 예, 저기 저 동무가 바로 우리 책임기삽니다.》

그가 가리키는쪽으로 고개를 돌린 진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의 행동은 마치 자기가 제때에 일어나지 않으면 진호가 또 실수를 하리라고 여겨 그 망신을 사전에 면하게 해주려는것 같았다.

《제가 책임기삽니다.》

《?》

그에게 다가선 진호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자기의 직속상관일 사람이 겨우 자기 나이와 비슷할 새파란 청년이였기때문이였다.

(이렇게도 젊은 친구가 책임기사라니? 보통이 아닌걸!)

유순한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 시선이 마주칠 때면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수태를 머금은 순박한 처녀같았으나 가끔씩 어덴지 모르게 나타나군 하는 긴장한 표정은 어떤 일도 허술히 하지 않는 영민한 사람의 자신심이 어려있었다. 분명 평시엔 얌전하다가도 일단 전투에 돌입하기만 하면 남다른 투지를 나타낼 그런 부류의 젊은이라는것이 알렸다.

《방금 간부과에 들렸다가 오는 길입니다.》

자기 소개를 하면서도 진호는 책임기사를 유심히 살폈다.

소금기가 내밴 뻣뻣한 작업복을 입고있는 모습이며 얼굴전체에 느껴지는 진지한 표정은 늘 무거운 부담을 이겨내려고 모든것을 다 바쳐 일하는 사람의 열정과 헌신과 피곤이 한데 어려있었다.

대뜸 그에게서 어떤 호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게 된 진호는 이런 책임기사와의 상면이 마치도 자기 연구사업에 대한 성과를 담보해주는 계시처럼 여겨져 흐뭇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괜찮아! 마음이 맞을것 같애!)

왜서인지 그는 언제나 첫대면에서 받은 인상으로 상대방을 규정해버리군 했는데 그것이 무척 오래동안 지속되는것이였다. (영 말째겠는걸.) 하고 첨부터 머리를 젓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원시원한게 좋아!) 하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도대체 어떤 짐작도 가지 않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은 적지 않게 자기가 느낀 첫인상과는 반대되는 결론을 내린다는것을 모르지 않는 그였으나 어째선지 아직도 첫인상만은 좋기만을 기대하게 되는것이였다.

《반갑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조금도 과장된 기쁨이라든가 책임기사라는 위치가 요구하는 지어낸 겸손성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자기에 대한 내심을 짐작하기라도 한듯 (난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숭이지요.) 하고 고백하는것 같았는데 이 점이 진호에게는 더 믿음을 자아냈다.

《그래 어떤 과제를 안고 왔습니까?》

《과제래야 아직 뭐…》

첨부터 자기의 의도를 밝히지 않는것이 온당치 못한 일이긴 했으나 진호는 터놓게 되지 않았다. 자기 기술안에 대비한 직장의 구체적인 실정을 검토도 해야겠지만 보다는 처음부터 자기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고싶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리유는 자기 연구사업에 대한 의도를 알면 그가 내심 어떤 위구를 품을수도 있다고 생각되여서였다.

그는 자기 일에 대한 확신이 더없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쉬이 납득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방안에 있는 지령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진호는 그를 따라 다시 현장으로 나왔다.

《나도 대학을 졸업한지 몇해 안됐습니다. 아는것은 물론 경험도 없구요. 더우기 지금은 직장장동무까지 학교에 가고 없어서 그 짐까지 맡자니 여간 베차지 않군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시오.》

가식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이 한마디만 듣고도 그가 얼마나 소박한 사람인가 하는것을 다시금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배합이 얼마요. 아흔둘?》

《대차입환은 확인했소?》

그는 용해장에서 마주치는 매 사람들과 정련이 어떻고 대차가 어떻고 하고 한두마디씩 주고받았는데 진호로서는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확실히 여기서는 이들만이 통하는 언어가 따로 있는상싶었다.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품으로 보아 젊기는 하지만 한결같이 미더운 일군으로 여기고있는게 분명했다.

《부에 있었다지요?》

《녜, 기술국에 있었습니다.》

《그럼 실장을 잘 알겠군요.》

《실장이라니요?》

《현명식실장 말입니다.》

진호는 흠칫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헤집지 말자고 굳게 닫아매두었던 추억의 고리를 그가 너무 불시에 잡아당기는것이여서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프리지 않을수 없었다.

명식이에 대한 생각이 미칠 때마다 그의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은 그날 자기에게 현옥이를 도와주라고, 사랑이란 서로의 뜻을 소중히 여겨줘야 하는게 아닌가고 리면에 본심을 숨기고 하던 그의 말이였다. 그러면서 그 말에 항거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울분이, 또 그런 울분을 터뜨릴수 없게 하는 그에 대한 생리적인 불만이 동시에 솟구쳐오르는것이였다.

《잘 아는 사인가요?》

《새 기술이 제기될 때마다 련계를 가지기마련이니까요, 언젠가는 같이 공동론문을 제기한적도 있구요. 며칠전에는 이번에 새로 만든 투사기에 대한 심사를 의뢰했는데 어떻게 되겠는지…》

따져보면 그가 제철소와 밀접한 관계에 있을수밖에 없지만 여기에 와서까지 그의 이름을 듣고보니 어쩐지 이상한감이 들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 명식이는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아무리 곰곰히 따져봐도 그의 말이, 그의 행동이 자기한테는 하나같이 부당한것이였지만 객관들에게는 지어는 사물에 대해 공정한 사색을 할줄 아는 사람까지도 그를 그르다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한것으로 평가하고있는것이였다. 과연 그에게 어떤 힘이 있어서 자신을 그처럼 정당화하는지, 어째서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것조차 그앞에서는 이렇다할 론거를 세우지 못하고 무력해지는지 그 리유를 알수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즉 그가 어떤 일을 하는 경우 주로 승산이 있는것만 골라할뿐아니라 그것도 철저히 안전수치가 담보돼있는것만 수행한다는것인데 이 점만은 도저히 수긍할수 없었다. 수긍이 아니라 도리여 침을 뱉고싶도록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백가지 일을 한들 무슨 보람이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을 할바엔 차라리 삽자루를 쥐고 땅을 파는게 훨씬 낫지. 어째서 남들이 못한다고 하는 일을 해놓는것이 할수 있는 일의 천가지, 만가지보다 더 가치가 크다는걸 모른단 말인가!)

한데 문제는 진정한 일의 가치를 알고 거기에 모든것을 바치려는 자기는 걸음마다 암초요 시비지만 명식이처럼 아무 보람도 없는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제나 일 잘한다는 찬사를 받는다는데 있었다.

(모르겠다니, 정말 모를 일이야.)

부에서 떠나올 땐 그와 이젠 아무런 인연도 없으며 먼거리에 있는것이라고 여겼던것이나 생활은 또다시 자기들을 한고리에 이어놓는것이였다.

(그러니까 나의 새 연료안도 앞으로는 그의 심사를 거치지 않을수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자 방금전까지만 해도 그처럼 우람차고 광대한것으로 느껴지던 생활이 삽시에 외진 오솔길처럼 여겨지면서 서글픈 한숨이 터졌다. 그러나 그는 곧 저로서도 알수 없는 어떤 충동에 몸을 떨었다.

(좋다! 어디 겨뤄보자! 누가 옳고그른가 하는것은 이 엄혹한 생활이 심판을 설테니까.)

그는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얼음판에 나설 때면 그랬던것처럼 온 근육에 힘을 주면서 힘껏 심호흡을 했다.

《책임기사동무!》

이때 뒤에서 책임기사를 찾는 챙챙한 녀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몇번이나 찾아야 해요. 정말!》

도면말이를 내미는 처녀의 두눈에는 웃음인지 노여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기색이 어려있었다. 보매 무슨 의견이 있어서라기보다 언제나 그런 태도에 습관돼있는 처녀같았다.

《벌써 다 고쳤소?》

《고치지 않구요.》

《주오, 내 인차 볼테니.》

《언제까지요.》

《래일은 설비점검이 있으니까 모레까지 보도록 하지!》

《모레요? 안돼요! 래일까지 꼭 봐줘야 해요.》

《래일?》

응당 자기는 그런 요구를 할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처녀의 행동에 비해 조금도 탓하는 기색이 없는 책임기사였다. 그러고보면 이들의 관계는 이미부터 이렇게 지내는데 버릇된것 같았다.

《할수 없지.》

그제야 처녀는 방긋 웃었다.

《그럼 부탁하겠어요. 꼭!》

《참! 정아동무!》

뒤로 돌아서는 처녀를 불러세운 책임기사는 진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사하오, 우리 직장에 새로 배치돼온 기사동무요.》

《그래요? 전 또…》

무슨 말인가 하려던 처녀였으나 곧 고개를 숙이며 정색을 했다.

《윤정압니다.》

그는 살그머니 진호를 쳐다보다가 눈을 깜빡했는데 그 눈은 마치 스위치를 켰을 때의 전등처럼 반짝하고 빛을 뿜는것이였다.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책임기사가 말했다.

《작년에 공장대학을 졸업했는데 전기부문을 담당한 공정기사지요. 얼마나 극성인지… 그만하면 능력도 있구요. 잠간 저쪽으로 갑시다.》

그는 갑자기 현장을 가로질러 2호로옆에 세워놓은 커다란 설비앞으로 진호를 이끌었다.

《이게 바로 이번에 새로 만든 투사깁니다.》

그의 태도로 보아 진호는 그가 아까부터 이 기계를 자기한테 소개하려고 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삽질을 대신하는 기곈데 이 투사기로 해서 이젠 용해장에서 삽이 없어졌지요. 실로 커다란 혁신이 아닐수 없지요. 현실장한테 심사를 의뢰한것이 바로 이 기곕니다.》

(그래서 삽질하는데가 없었구나.)

실상 삽질은 용해공들에게 있어서 그중 힘든 육체로동일뿐아니라 고열작업이였다. 쇠물에 침식된 로벽을 보강하는것이 무척 까다롭고도 세밀한 작업이여서 여러차례 기계화를 시도했댔으나 빈번히 성과가 없었다는것을 진호도 이미부터 알고있었다.

(대단한걸?)

평로에 새 력사를 불러온 기계, 언젠가 자기를 그토록 망신시킨 그 삽질을 대신하는 기계를 진호는 놀라운 눈길로 살펴보았다.

원료장입실에서 흘러내리는 보수재가 여러개의 완충장치들과 교반이바퀴의 조절에 의해 압축공기로 투사될수 있게 만들어진 매우 정교한 설비였다. 육중한 설비이긴 했으나 아무때나 손쉽게 이동시킬수 있게 밑에는 고무바퀴까지 달려있어 얼핏 보면 멋진 기동포를 련상시켰다.

《도기술경연에선 1등을 했는데 부에선 뭐라겠는지… 아마 부에서도 괜찮은 평일겝니다. 우선 용해공들이 다 좋아하니까요.》

《그러니 이건 집체작인가요?》

《웬걸요, 태수라고 기술부에 있는 동문데 숱한 고생을 했지요.》

《태수요?》

진호는 대번에 두눈을 흡떴다.

(아니 태수가? 그래! 편지에 분명 1등을 했다고 했댔어! 그럼 정말 이걸 그가?)

《태수동물 압니까?》

진호의 태도에 책임기사도 반색을 지으며 물었다.

《알다마다, 서로 막역한 사이지요. 대학때부터 말입니다. 원래 이리로 같이 오려고 했댔는데 내가 그만 한발 늦었지요. 한데 이게 정말 태수의 창안품이란 말입니까? 편지를 받긴 했지만 이런 훌륭한 설비일줄은 미처…》

《두달을 꼬박 현장에서 밝혔습니다. 밤낮 〈제길, 제길〉 하면서 말입니다.》

진호는 큰소리로 웃지 않을수 없었다.

《제길》이라는건 불만스러울 때는 물론 즐거울 때까지도 태수가 버릇처럼 입에 붙이고다니는 말이였던것이다.

(이 친구가 정말 대단한걸 제꼈는걸… 왜 그처럼 우쭐해하는가 했더니… 하긴 이쯤한것이면 백번이라도 자랑할수 있지. 어쨌든 내가 단단히 한꼴 먹었어.)

내심 더없이 기쁘고 놀라왔으나 책임기사앞에서 환성을 지른다는것이 어딘가 자존심이 꺾이는 노릇같았고 그렇다고 짐짓 입을 다물고있자니 또 친구의 성과에 지내 랭담한것처럼 여겨져 어떤 태도를 취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진호는 투사기의 구조며 작용원리들을 구체적으로 뜯어보기 시작했다.

(흠! 그렇지! 그래! 그 덜렁바우가 이런 기발한 착상을 다하다니?)

《그러니까 그 친구가 이것때문에 현장에 나와있었는가요?》

《…》

고개를 들고보니 책임기사는 벌써 옆에 없었다.

어느새 로앞에 가있는 그가 용해공들과 이쪽을 보며 뭐라고 하는데 분명 자기에 대한 얘기를 하고있는것 같았다. 그들에게서 태수에 대한 얘기를 더 듣고싶었으나 진호는 그리로 다가갈수가 없었다.

온 용해장을 망질하듯 돌아가는 장입기가 불안스러워서였다. 어떤 구간을 왕복하거나 가락맞게 움직이는것이 아니라 방향을 잡을수 없이 마구 휩쓸며 돌아가는것이여서 잠간만 눈을 팔아도 어느새 포신같이 어마어마한 팔이 뒤통수를 겨누고 스르르 다가서는것이였다. 그러나 책임기사나 용해공들은 불안은커녕 자기들 얘기에만 정신이 없다가도 그 육중한 동체가 다가설 때면 보지 않고도 한발씩 옮겨 그 위험을 쉽사리 극복하는것이였다. 마치 그들의 몸에는 예민한 촉수가 뻗어있어 이런 위험을 미리 다 예감하는것 같았다.

진호는 책임기사와 마주서서 얘기하는 늙은 용해공에게 시선이 멎었다. 두툼한 보안경이 달린 모자채양을 한껏 제껴쓴 모습이 어딘가 낯익어보여서였다. 이쪽으로 돌아서는 그의 이마에서 깊숙한 상처를 발견한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렇지!)

장입기가 멎기 바쁘게 진호는 그에게로 다가섰다.

《안녕하십니까, 로장아바이.》

장입기운전공에게 무슨 손시늉을 해보이고 돌아서던 로장은 진호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서로 알리 만무라고 여기는 사람의 무관심한 눈길로 일별했다. 그런 태도가 상대방을 무안하게 한다는데 대해서는 전혀 오불관언인듯싶었다.

《절 모르시겠습니까? 실습을 왔다가 로안에 삽을 집어넣던 대학생입니다.》

《?…》

《왜 호케이선수라고…》

《호케이선수?》

그제야 그의 눈에는 생기가 돌았는데 틀림없이 삭막한 기억의 갈피속에서 한오리의 실머리가 잡히는 모양이였다.

《그래그래! 호케이선수! 생각나네, 생각나!》

삽날처럼 뾰족한 턱을 쳐들고 껄껄 웃던 그는 언제 웃었냐싶게 다시 진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왔나. 왜 또하나 날려볼 생각인가? 그렇지만 이젠 늦었쇠. 저 투사기가 이젠 삽질을 대신한단 말일세.》

《아니, 이번엔 아예 눌러앉자고 온걸요.》

《그-래?》

그는 쇠뭉치같이 꽛꽛한 손을 내밀며 다시금 만족스레 웃었다.

로장이 그때 삽질하던 얘기를 해서 책임기사는 물론 옆에 있던 용해공들까지 폭소를 터뜨렸다.

이때였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수 없는 가느다란, 매미같은 목소리가 책임기사를 찾는 바람에 진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철입니다.》

책임기사가 어깨에 메고있는 무선전화기를 입에 갖다댔을 때에야 진호는 그 목소리가 거기에서 흘러나온다는것을 알았다.

《책임기사동무요? 나 태수요. 다른게 아니라 내 친구 하나가 방금 제철소로 왔다는데 혹시 거기 가지 않았나 해서…》

《친구라니?》

그는 진호를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키는 구척이고 얼굴은 시커먼게 꼭… 어쨌든 스산하게 생긴 친구요. 좀 찾아보구려. 강철로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니까 아마 그 어방 어디에서 어스벙댈거요.》

《그래?》

기철은 무선전화기를 벗어주며 한번 놀래워주라고 눈을 끔뻑했다. 그러나 진호는 상대가 태수라는것으로 하여 벌써 제정신이 아니였다.

전화기를 받아들기 바쁘게 그는 그것을 입에 대고 《날세, 나야!》하고 소리쳤으나 웬일인지 태수는 아무 대꾸도 없었다. 책임기사가 옆에 있는 단추를 누르면서 말해야 된다는것을 알려주어서야 그는 자기 말이 통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나란데, 진호란 말이야!》

《뭐 누구? 아-니 이게? 원! 이런 제길!》

흥분할 때면 아무말이나 두서없이 내뱉군 하는 그의 습관이 떠올라 진호는 저절로 웃음이 나갔다.

《가만, 가만! 거기 있겠나? 내 당장 그리로 가지.》

《아니, 아직 직장에 들려 인사도 못했네!》

《그래? 그럼 직장에 들려 인사를 하고 그길로 나한테 오게. 나한테 와서도 인사를 해야지. 아무래도 선배를 찾아보는게 도리가 아닌가! 어때? 아니, 근데 진호가 옳긴 옳아?》

《젠장! 이따 실물확인하게나.》

두 친구의 상봉을 지켜보는 책임기사며 로장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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