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9 회

제 1 편

제 4 장

6


합성섬유―이것은 리승기에 의해 처음으로 생겨난 개념이며 그 이름이다. 종전에 인견 같은것을 두고 하던 화학섬유라는 말과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고 그때마다 실험보고서를 작성할 때면 폴리비닐알콜섬유대신에 다른 이름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했으면 좋을지 몰랐으나 마침내 합성섬유의 첫번째라는 의미로 《합성1》호 라고 달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시로서는 무척 대담하고 경이로운 이름이였다.

《합성1》호 하고 조용히 입속으로 불러보면 세상에 태여나는 자식의 이름을 지어놓은 아버지의 심정도 이같이 대견스럽지 않을것 같았다. 환희에 찬, 희망에 부푸는 마음이였다.

수없는 실험을 거쳐 고분자물질인 폴리비닐알콜로 물에 녹지 않는 섬유를 얻을수 있는 전망이 확고해졌다.

이런 때인 1938년 10월 미국이 나일론연구를 발표하였다.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강한 섬유》라고 미국이 떠들어댔다.

바로 이 거미줄보다 가늘다는것이 일본의 견사공업계를 혼비백산케 하였다. 그것은 일본견사의 생산이 세계견사 총생산량의 80프로를 차지했고(그중의 많은 명주실이 조선에서 략탈해간것이다.) 거기서 80프로가 미국에도 수출되여 녀자양말로 되였는바 일본은 여기서 4억딸라의 리윤을 얻었던것이다. 그러니 미국의 나일론연구의 성공은 4억딸라의 황금을 일본자본가들한테서 영영 빼앗아가는것으로 되였다. 일본의 경제계는 물론 정계까지도 발칵 뒤집혔다. 섬유계통학자들이 모두 화학섬유연구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오사까의 섬유자본가 이도 만스께는 기다의 화학섬유연구소에 막대한 자금을 내놓았고 다른 자본가들도 자금을 내놓으려 했다.

기다 겡이쯔는 자금의 여유를 갖게 되였다.

일본사람들은 리승기의 연구에 갑자기 관심을 집중하였다. 이때 합성법에 의한 화학섬유를 연구해온것은 리승기 혼자뿐이기에 그의 연구결과를 어떻게 하나 저네들이 리용할 심산인것이였다. 리승기는 과학자로서 이미 서광이 보이기 시작한 그 연구에로 줄달음쳤을뿐 이 모든 배경들을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였었다.

…마침내 폴리비닐알콜로 첫 방사를 해서 포르말린처리를 하게 되였다. 한데 방사실험설비가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방사를 교또대학 공학부 공업화학교실에서 하고 포르말린처리는 다까스끼에 가져다 하기로 하였다.

7월의 아침은 개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구질거리는 날씨가 계속되던 교또지방은 이날따라 아침에는 쾌청한듯이 보였다.

스미다교수의 소형방사기를 빌려야만 했다. 유리방사관에 자전거용뽐프로 압을 조성하면서 원액을 노즐로 응고액중에 뿜어내여 응고시켰다. 15데닐의 말린 섬유가 얻어졌다.

리승기와 가와가미는 신기한듯이 섬유를 자꾸만 들여다봤다. 한시바삐 다까스끼에 가져다 포르말린처리를 하고싶었다. 두사람은 신주단지 모시듯 말린 섬유를 담은 그릇을 들고 급히 다까스끼로 향했다. 그런데 전차에서 내리자 뜻밖의 봉변을 당할줄이야. 그처럼 맑게 개였던 날씨가 그새 구름이 밀려와 미처 어쩔수없이 갑작스레 비가 쏟아졌다. 리승기와 가와가미는 날씨에 좀더 주의를 돌려야 했으며 하다못해 우비라도 준비했어야 할것이였다. 그러니 아직 포르말린처리를 하지 않은채 비를 맞은 《섬유》는 무엇이 되였겠는가.

가와가미는 울상이 되여 그것을 들여다보고 리승기는 그 저주맞을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놈의 섬나라에선 날씨까지 훼방을 노는구나.)

그러나 두사람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아무런 불행도 아니였던것이다. 다음날에 새로운 운반방법을 생각해내기로 하였다.

방사기로 다시 뽑아 다까스끼에 온 리승기는 섬유에 포르말린처리를 했다. 그것을 물속에 넣고 시간을 경과시켰다. 물에 녹지 않는다. 물에 녹지 않는 새로운 합성섬유가 발견된것인가? 아, 성공이란 말인가?!

리승기는 눈물이 글썽해서 가와가미의 손을 잡았다. 가와가미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다는듯 손끝으로 섬유오리를 부벼보았다.

《선생님!…》

가와가미는 울먹이며 리승기를 쳐다본다. (그날은 1939년 7월 12일이였다.)

그 연구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한 3개월의 시일이 지나갔다.

리승기는 오사까면업회관에서 열리군 하는 화학섬유연구소의 강연회에서 자기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로 결심하였다. 새로운 합성섬유의 발명이 세상에 선포되자 일대 파문이 일어남과 동시에 일본학계안에서는 경악과 의혹과 시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리승기자신은 성공의 희열이 아니라 도리여 패배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망연자실하게 될줄이야.…


×


아버님께(1939년 10월 ×일)

저는 날이 새도록 잠을 이룰수 없었습니다. 조국이 있는 서쪽밤하늘을 우러러 아버님께 아뢰였습니다. (아버님, 전 래일 오사까로 갑니다. 내 연구성과를 발표하렵니다. 멀리서 아버님도 들어주십시오.)라구요.

저녁무렵에 오사까에 있는 신문기자가 어느새 낌새를 채고 직접 집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벌써 사꾸라다의 방에서 표본을 사진찍었는데 그 사진을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사꾸라다상한테 내가 물었지요, 신문에 내도 좋겠는가고.…》

신문기자는 능청스레 웃으며 교활하게 두눈을 깜박거렸습니다. 저는 이 약삭바른 기자가 사꾸라다한테 한 그 질문의 뜻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뜻이였습니다.

《조선사람인데도 일없겠는가?》또는 《월계관을 함께 쓰지 않겠는가?》

한데 그 기자의 말이 그때까지도 사꾸라다는 어째선지 덤덤히 말이 없더라는것입니다. 기연가미연가해서인지 그저 얼떨떨해 믿지를 못해선지… 그까짓게 저한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런데 마침내 그 사꾸라다 이찌로자신이 나한테 나타났습니다.

그는 주밋거리다가 말했습니다.

《발표하는 경우 무슨 이름으로 발표하려구 하오?》

《무슨 이름이라니?》

나는 퍼그나 놀랐습니다. 리승기라는 내 이름이 있지 않습니까. 그는 당황한 눈길로 나를 보다가 중얼거렸습니다.

《만일 그 발표가 성공하는 경우에…》

그는 확실히 믿지 않으면서 나한테 권고해보는 어조였지만 그 의도는 심상치 않았습니다. 사꾸라다 이찌로는 주저주저 말했습니다.

《승기선생의 성공과 앞날을 더 빛내이자면 이제부터라두 이름을… 물론 그런다 해두 그 명예의 주인이야 어데 갈데가 있겠소? 그래서 내 권고는…》

그는 말꼬리를 얼버무렸습니다. 내가 왜 그 뜻을 모르겠습니까. 앞으로 계속 리승기라는 조선이름으로 발표할수 없지 않는가, 이제라도 일본이름으로 낸다면 일본학자로서 더 큰 세계적인 명성을 벌지도 모른다, 만일에 성공하는 경우에 말이다, 세상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가 없어진것으로 안다는게지요.… 난 하마트면 분격에 못이겨 소리를 칠번 하였습니다. 주먹을 꽉 부르쥐고 참을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가버렸습니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이날 밤 더 잠을 못 이루게 고통을 준 그 점입니다.

이튿날 저는 오사까로 달려갔습니다. 벌써 몇번 출연한적 있는 연단이지만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의 눈앞엔 청중이 아니라 고향의 산천과 부모님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애써 흥분을 누르며 때로는 도표를 짚고 때로는 설명을 하며 처음부터 마감까지 거침없이 말해나갔습니다. 이런 장소에서 있기가 드문 박수소리가 일어났습니다. 나는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성공의 희열이 가슴속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건 잠시뿐, 문득 회관안이 휑뎅그레하고 사막같이 느껴지고 귀가 멍멍해졌습니다.

저는 저에게 너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고 물었습니다. 허공에 선듯 주위엔 아무 사람도 없는듯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는 이름, 아, 조선아!… 감격이 아니라 오열이 가슴에서 터져나오려 하였습니다. 무엇때문인지 알수 없습니다. 나는 혼자소리처럼 나직이 조선말로 연신 중얼거렸습니다.

《이게 답니다. 내 말은 다했습니다. 할말이 더 없습니다.》

열광적인 박수소리에 도리여 무표정한 얼굴이 되여(나는 스스로도 그걸 느끼며) 연단에서 내려왔습니다.…

아버님, 보십시오. 일본은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합성섬유에 대한 선전을 들이댑니다. 미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반격입니다. 일본화학의 위력을 시위하려는것입니다.

동경의 라지오는 세계를 향하여 떠듭니다.

《대일본섬유과학이 세계섬유과학사에 세운 금자탑!》, 《대일본섬유과학은 단연 세계의 첨단을 걷고있다!》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대일본! 대일본! 모든것이 대일본으로 되고말았구나. 조선사람 리승기는 어디로 갔는가. 이름은 조선이름으로 버젓이 발표했는데… 조선은 간 곳 없구나. 나하고 대일본이 무슨 상관이냐? 대일본과학을 빛내이는데 내가 리용되였구나. 이 용렬한것아, 조선은 어데 있느냐? 아버지의 뜻은 어디에 있느냐?)

가슴을 사정없이 허비는건 비통함, 쓸쓸함, 공허감만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강렬한 멸시감에 못이겨 나는 특호활자로 찍혀진 신문을 좍좍 찢어버렸습니다. 나의 량볼에 줄줄이 흐르는 눈물을 처음 보고 안해는 젖먹이를 안고 돌아앉아 고개를 숙이며 흐느낍니다.

나는 이 섬나라땅에서 오직 안해의 곁에서만 목놓아울수 있었습니다.

나는 가을비 내리는 바깥을 헤매입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는 조국이 있는쪽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웁니다.

(아버님, 외롭습니다. 왜 이리도 외롭습니까.)

나는 얼굴을 적시는 비방울을 눈물과 함께 훔쳐 쥐여뿌리며 속으로 웨칩니다.

(나라가 없으니 내 이름도 소용이 없구나. 조선아, 어디로 갔느냐. 돌아오너라. 내 돌로 천을 짜는 법을 가지고 돌아가 네 헐벗은 몸을 칭칭 감아주려 했건만… 조선아, 듣느냐. 이역땅에서 네 아들이 울고있는 이 흐느낌소리를…)

아버님, 아버님의 뜻은 무엇이였던가요.… 우리 민족이 재생되자면 문명을 받고 학문을 키우고 공과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허나 제땅, 제 나라가 없는데 학문은 해서 무얼 하며 문명 또한 어떻게 있으리란 말입니까? 나의 탐구도 허망하고 내 이름 석자마저 이 섬나라땅의 흙탕물속에 짓밟히고맙니다. 나는 이밤 비내리는 골목길을 철버덕철버덕 디디며 정신없이 방황합니다. 아, 나라를 찾게 될 날은 과연 언제일것입니까. 아버님, 가슴만 답답하고 울울한 심사를 어찌할수가 없어 아버님마저 심뇌케 하는 이 불효한 자식을 부디 용서해주옵소서…

밤에 승기는 헛소리를 쳤다.

《없애라… 태워버려라… 〈합성1〉호가 다 뭐냐? 리쑈기란 이름은 해서 뭘하나 말이다.…》

그 첫마디에 놀라서 깨여난 분이는 가슴이 우든우든 뛰여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섬찍한 생각만 들었다. 그 연구론문들을, 오사까에 들고갔던 그 론문을 통채로 태워버리는 불길이 눈앞에 막 얼른거려 새벽같이 집을 나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기숙하는 가와가미한테 달려갔다. 가와가미는 자다가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연구소 실험실 어디에 연구보문이 있는가는 그만이 알고있다.

리승기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와가미는 황황히 실험실에 달려나갔다가 이것저것 연구보문철들을 감추어놓고는 그달음에 리승기네 집으로 왔다.

리승기는 내의바람으로 앉아 들어오는 가와가미를 본체도 안했다. 이때에 처한 승기의 심경에서는 일본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사람으로 보이질 않았다는걸 가와가미가 어찌 알수 있었으랴.

바로 그것을 리해할수 없었던 가와가미였기에 스승의 손을 덥석 잡고 《선생님!》하고 불렀다.

가와가미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늘 조선이 독립될 날이 꼭 올것이라구 하셨지요? 그러면서 그 학문의 터전에 묻을 밑거름을 마련하겠다구 하셨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실심하시여… 그러시다 무슨 일을…》

그는 피끗 분이의 눈길과 마주치며 입을 다물었다. 리승기가 (그것 또한 섬찍할 정도로) 천연스레 가와가미를 돌아보았다.

《내가 어쨌다는건가?》

가와가미는 여전히 안타깝게 리승기를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지금 자신을 잃구있는것 같습니다.》

그때 리승기는 천천히 도리머리를 하였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왜 내 피땀으로 이루어놓은걸 대일본제국에 바치기만 하겠나.… 내가 왜 그걸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단 말인가. 난 내 연구를 끝까지 완성하겠어. 이 심장속에 간직하겠어.…

그리구 그걸 안구서 조국에 가겠어. 내 못 돌아가면 가슴에 품구서 죽더라두… 내 죽어서 두견새 되여 피를 물고 돌아가리라.…》

그는 마치도 가슴속의 원한을 내뿜듯 천천히 그것을 읊조리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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