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8 회

제 1 편

제 4 장

5


…지독히도 온몸이 끈끈해지는 습하고 무더운 교또지방의 여름철이였다.

황급히 도망쳐나오듯 승기와 그의 안해는 지태규네 집에서 부랴부랴 나와버리고말았다.

일요일이라 오랜만에 지태규네 집에 갔던 승기부부는 태규의 안해가 일본녀성들처럼 차려입은 하오리바람으로 례배에서 돌아오면서부터 기분이 잡쳤던것이다.

태규의 안해가 제 남동생을 굳이 일본부자집 녀성과 결혼시키겠다고 해서 승기의 안해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값이면 조선처녀두 괜찮은 대상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그 말에 태규 안해가 의외로 호들갑스레 웃어대며 말했다.

《아이참, 가쨩, 앞으로는 다 그렇게 되고말겠는데 뭘 그러나요.》

하오리바람으로 무릎을 꿇고앉은 이 안경쟁이녀성은 숫제 일본녀자와 다름없어보였다.

태규 안해가 하는 예상외의 대답에 승기부부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 순간 리승기는 자기가 이 녀자와 같은 안경쟁이라는것이 웬일인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코등의 안경을 손가락끝으로 단호히 올리밀고나서 말했다.

《아니요. 앞으로 그렇게는 안될거요.》

그때 지태규는 아닌보살하고앉아 차를 마시고있었다. 그가 학문얘기로 말머리를 돌리려고 했으나 승기부부는 적당히 구실을 붙이며 서로 눈짓을 하고는 그 집을 나서버리고말았던것이다.…

지나가는 일본녀자들이 단정하게 차린 분이의 옷차림을 뒤돌아보았다. 다른 때같으면 일종의 자부와 긍지를 느꼈을 그들이였다.

원체 리승기는 안해가 조선옷을 입게 하는 철칙만은 한번도 양보해본적이 없다. 어쩌다 안해와 같이 나설 때면 그는 안해가 치마저고리도 제일 좋은것으로 입게 하였으며 완고할 정도로 흰색만을 택하게 하였다. 사실 그런 차림새는 일본녀성들의 옷차림속에서 두드러져보였으며 산뜻하면서도 우아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무게를 잃지 않는 그 품위로 하여 지나가는 일본사람들이 다 다시 뒤돌아보는것이였다. 누가 감히 센징이라고 말할수 있게 놔두랴. 그런 산보길에서 돌아오면 매 행동거지를 조심하느라고 긴장했던 나머지 몹시 피로해하면서도 안해의 기분은 무겁지 않았다. 치마저고리는 옷이기 전에 여기 섬나라에서 그들이 잃지 않는 고향의 체취였고 민족의 혼이 어린 그런것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옷차림에서 오는 일종의 자부와 긍지는 다 잊어버리고있었다.

리승기는 지태규의 안해가 《앞으로는 다 그렇게 되고말겠는데 뭘 그러세요.》하던 말이 그냥 귀가에 매달려오는것 같아 떨어버릴수가 없었다.

남편과 함께 걷는 분이는 분이대로 제가 입은 흰 모시치마저고리를 일본녀성들이 경탄해마지 않으며 돌아보는것을 느꼈다 해도 도리여 거기엔 지태규네 집에서 그 어떤 얼룩이 묻어왔다고 생각되였을것이다.

리승기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안해더러 말했다.

《여보, 이대로는 집에 그냥 가지 못하겠소. 우리 가다가 우장춘네 댁에 좀 들렸다 가지 않겠소?》

안해는 별로 내키지 않아했다.

《그 집에 들리면 또 일본녀자와 마주앉게 되겠는데…》

안해는 방금 일본녀자와 마주앉고 오기라도 한것처럼 이렇게 말하는것이다.

《아니, 그 일본녀성을 내 좀 만나구나야 속이 풀릴것 같소.》

안해는 놀라서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전차에 올라 자리에 앉아 전차안의 승객들이 듣지 못하게 안해한테로 약간 고개를 기울이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여보, 내 아직 그 집 래력을 얘기해주지 않았지. 한두번 같이 들리긴 했어두.》

두사람은 가마사끼정류소에서 내렸다.

승기는 농사시험장포전과 그 한쪽에 우장춘네 집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며 얘기를 계속했다.…

우장춘의 아버지 우극인은 일찌기 김옥균의 《갑신정변》에 참가한 사람이였다.

현대문명의 려명기를 지향한 그 《갑신정변》이라는 거사가 실패하자 급히 동료들과 함께 인천항에서 배에 오른 우극인이 바다를 건너가다가 내린 곳이 일본땅이였다. 그는 어촌에 숨었다가 다시 도회지로, 그러다가 농촌에 몸을 숨기였다.

그 집이 우장춘의 어머니네 집이였다. 일본처녀는 제 나라를 위한 거사에서 실패한 우극인의 처지를 동정했으며 그의 인품에 끌리여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우극인은 갈데도 없었다. 처녀는 그의 은인이였다. 그들은 결혼했다. 우극인은 일시 안전하게 살아갈수 있게 되였다.

결혼식날 남이 다 자는 밤중에 일본처녀는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우극인은 두루마기차림으로 (사모관대가 없었으니 어찌하랴.) 두 사람만 방안에 서서 조선식혼례를 했다고 한다. 그때 입었던 조선옷을 우부인은 (그 녀자는 일본식대로 남편의 성인 우극인의 성을 따랐다.) 몇십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옷장속에 고이 간수하고있었다.

조선봉건정부의 간악한 통치배들은 일본에까지 따라가 우극인을 해치려고 하였다. 자객의 칼에 우극인이 무참히 참살되였을 때 그의 아들들인 우장춘은 세살이고 그아래는 겨우 돌이 지났었다.

우부인의 앞길은 막막하였다. 허나 그는 아들들을 제 아버지의 뜻을 이어갈 조선사람으로 기어이 키우려고 자신이 조선말을 배웠고 아이들의 이름도 조선이름을 그냥 달았다. 창씨를 하는 요즈음에 와서도 일본녀성인 그자신이 조선성을 가지고있는것이다.

우장춘은 어려서부터 두뇌가 뛰여났었다. 한사코 외면하던 우부인의 친정켠에서도 학비를 보태줄 정도로 우장춘의 머리는 비상했다. 세월은 흘러 마침내 우장춘은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육종학에서 일본의 권위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그를 교또근방의 이 농사시험장의 장장의 자리에 둘만큼 학문에서의 그의 권위는 뚜렷한것이였다. 일본놈들은 그가 육종한 새로운 무우, 배추종자들을 저들의 이름으로 외국에 팔아 많은 리윤을 얻고있었다.

우부인은 장차 아들을 앞세우고 남편의 고향으로 가서 아들이 연구한 종자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을 보는것,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조선땅에 꽃피우는것이 평생소원이라고 한다.

어느덧 우부인은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이 특이한 존재의 일본녀성은 조선이 독립될 날을 간절히 바라는 유일한 일본사람일지도 모른다. 요즘 그는 그날을 생전에 볼것 같지 못하다고 하면서 한숨을 짓는 때가 많지만 그래도 그 희망을 잃지는 않는다.

지태규네 집에서 돌아오는 남편이 우부인을 만나고싶어하는 그 심정을 리해하기에 앞서 분이는 그만 한 일본녀성의 운명에 감동해서 저고리고름을 들어 눈굽을 찍어내며 말했다.

《왜 그 얘기를 이제야 하세요? 두번인가 만나면서도 그저 덤덤히 일본녀자로만 보았으니, 그런 부인인줄을 몰랐군요. 어서 앞서세요.》

우부인은 방안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 참이였다.

손자들한테 신길 버선이라는것이다. 일본에는 버선이라는게 없으니 그것 또한 신기하였다.

승기의 안해는 들어가자 넙죽 엎드리며 큰절을 드리고는 어깨를 조용히 떨면서 얼른 일어나지를 못했다.

어지간히 놀란 우부인은 분이의 량어깨를 잡아일으키려고 하면서 승기를 쳐다보았다.

《별일 아닙니다. 둬두십시오. 그럴만한 일이 있어서…》

《그럴만한 일이라니 혹시 조선에서들 무슨 불길한 소식이라두?》

《아니란데두요. 이제 내 말씀드립니다. 괜히 그저 저러지요.》

승기는 그를 진심으로 어머니라 부르고싶었다. 고향에 두고온 어머니를 부르듯 그렇게 부르는것이다.

《이제 제가 다 말씀드립니다.》

승기는 일부러 유쾌하고 헌헌한 어조로 말하면서 안해를 가벼이 나무람했다.

《여보, 어서 머리를 드오.》

분이는 고개를 쳐들고 우부인의 유순하고 부드러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그만 실례했어요.》

우부인은 여전히 눈을 깜빡이며 승기를 쳐다보았다. 승기는 말했다.

《글쎄 이 집 래력을 좀 얘기했더니…》

《온 참, 난 또 무슨 일인가 했구만. 별걸 다 가지구.》

그러다가 그는 벽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곧 우리 우선생이―그는 아들이 없는데서 이렇게 불렀다.― 들어올거네. 모두들 편안히들 앉으라구.》

아닌게아니라 얼마후에 우장춘이 시험포전에서 돌아왔다.

《무슨 바람이 불었어? 두분이 동부인해서… 어머니, 명절같지요?》

《그렇네. 난 그저 우리 집에 조선사람이 찾아오는 날은 명절이야.》

우부인이 손님들을 위해 차린 밥상에 둘러앉았다. 며느리는 두 손자를 데리고 친정에 다니러 갔다는것이다.

승기는 우장춘이와 함께 포전길을 걸으며 육종학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적은 여러번이지만 이 집 밥상에 같이 마주앉아보기는 처음이였다.

밥도 일본식으로 밥공기에 담아 저가락으로 먹는것이 아니라 조선식으로 놋바리에 담아준다. 김치도 어찌나 맛이 잘 들었는지 별미였다.

《어머니, 김치가 참 맛이 있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김칠 담글줄 아직 잘 몰라요. 어머닌 참 음식솜씨가 여간 아니군요.》

《내 김치 담그는 법이야 어디서 배웠겠나. 이 장춘이 아버지한테서 배운거지. 이날이때껏 그대로만 하니 되는구만.》

승기는 머리를 끄덕이며 먹기만 했다.

우부인은 숟가락을 든채 아들과 리승기를 번갈아 대견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 장춘이는 조선땅에 맞는 새 종자들을 만들어내구, 승기선생은 돌에서 뽑은 실로 천을 짜가지고 갈 날이 오겠지.… 이게 우리 장춘이 아버지의 뜻이기두 하지.》

모두들 묵묵히 숟가락질만 하였다.

분이는 자꾸 눈물이 앞서서 고개를 들지 못한채 부지런히 먹는척 하고있었다.

그러는양을 보고있던 우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많이 들라구. 김치는 저기에 따로 움속에 한단지 자네를 위해 담그어두었네. 입덧이 날 때두 되였으니… 일본녀자들은 이런 때 신것으로 우메보시를 찾지만… 그리구 다꾸앙이야 어디 자네들 입에 댈수 있을라구.》

《어머니, 고마와요.》

분이는 더욱 고개를 숙일뿐이다.

승기는 지태규네 집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분위기에 취해 우장춘이나 우부인이 묻는 말을 가끔 듣지 못하고 앉았다가 부랴부랴 대답하군 하였다.

상을 물리자 우장춘은 리승기더러 잠간 뜨락을 산책하자고 하였다. 녀성들은 저들끼리 집안에 남게 된것을 기뻐하는상싶었다.

두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우장춘의 얼굴빛은 대번 굳어진듯 컴컴해보였다. 집안에서는 일부러 즐거운 기색을 띠우려 했던지 지금은 몹시 침중한 낯색이였다. 우장춘이 말했다.

《내 아까 도꾜에서 온 농림성관리를 만나고 집에 들어갔었네.》

두사람은 말없이 육종포의 사이길둔덕에 올라 그 자리에 멈춰섰다. 사방에 무우와 배추밭이 펼쳐졌다. 무우가 어린 잎새로 아기뽐만큼 자랐다. 우장춘은 그 무우잎새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글쎄 승기선생, 들어보게. 무우 새 품종을 육종해내고 환성을 올렸는데 그 이름을 또 〈일본무우〉라고 달아야 하네. 난 이 품종이 우리 아버지네 고향풍토에 맞을거라구 해서 한번 〈조선무우〉라고 이름을 달았으면 했네. 헌데 어림이나 있나. 또 〈일본무우〉몇호라구 달아 조선에 내보내야 하니 이거야. 하긴 뭐 사람이름두 일본식으로 고치라구 하는판이니…》

그는 풀썩 무릎을 꺾고 주저앉더니 애어린 무우잎새를 손으로 쓸어주듯 만지는것이였다.

리승기도 같이 무릎을 꺾고 마주앉아 그 새파란 잎새를 만지며 말을 못하였다. 사람의 이름도 일본이름으로 고쳐야 하고 조선사람이 육종한 품종을 조선에 심으면서도 일본무우라 해야 하니 장차 자기의 연구란게 성공한대도 그것의 이름과 그것을 발명한 사람도 일본이름을 달아야 하는가?… 그 어떤 운명의 암시가 느껴져 마음만 무거웁다.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는 안된다. 승기는 울컥하는 감정에 못이겨 장춘의 손을 덥석 움켜잡은채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닷없이 잊지 못할 그 시조구절이 떠올랐다.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고 키웠더니…)

일본은 어쨌다고 조선사람들의 넋을 이다지도 괴롭히는가. 우리 조상이 언제 이들한테 화살 한번 날린적 있었는가. 오히려 이들의 이 땅에 우리의 문화를 선물한적은 있어도 이들의 다꾸앙 한쪼각 빼앗아간적은 없지 않는가.…

두사람은 헤여지면서도 오래도록 손을 놓지 못하였다. 멀리 헤여지지 않는 사람들의 악수로서는 그것이 너무나 오래고 굳어져 이내 풀리여지지 않았다.

우장춘네 집 마당을 나설 때는 한낮이 기운무렵이다. 분이는 우부인이 보자기에 싸주는 자그만 김치단지를 들었다.

리승기는 뒤돌아보며 우부인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우부인의 머리에 내린 흰서리가 해빛을 받아 유난히도 하얗게 빛나보였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