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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회

제 1 편

제 4 장

1


몇십년전의 일도 이밤엔 어제런듯 눈앞에 삼삼하다. 그때 방학에 내려올적마다 고향은 빛이 바래고 변색하는것만 같았다. 고향에 아주 돌아와야 할 우울한 심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산천이여서 유정한 모습을 잃어버리는지 모른다. 4년동안 몇번 내려와보지 못한 고향이여서 때없이 그리움이 잦아들더니 막상 이제 졸업기의 마지막방학이 와서 끝내 영영 고향에 묻혀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자 갈수록 황페해가는 마을의 모습이 더더욱 가슴을 허비는것이였다.

하지만 어쨌든 고향은 고향이였다.

승기는 집앞에 이르러 뒤돌아서서 정든 고향의 산천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훤히 트인 벌을 젖줄기마냥 적시여 흐르는 앞내는 푸른 띠처럼 아득히 뻗어 영산강에 이르고 더 시선을 보내면 젖빛내굴안개속에 노가리재가 보이는데 그뒤에는 광주의 무등산이 아슴푸레 바라보인다.

뒤동산기슭에는 대숲이 우거졌고 련련히 뻗어 지리산줄기로 흘러갔다. 봄날이면 황새들이 푸른 소나무우를 흰구름덩이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고장이다.

느닷없이 정월 열나흘과 대보름날이 생각났다.

정월 열나흘 밤이면 줄다리기도 재미있지만 밭머리와 산에 불지르는 놀이가 그럴듯하다. 《버레구이》라 하여 밭머리에 불을 지르면 농사에 해되는 버러지가 타죽어 대풍작을 이룬다는 소박한 농민들의 소원이 깃들어있다. 조무래기패는 홰불을 들고 소리를 치면서 뛰여다닌다. 들판의 논귀와 밭머리마다 불길이 오른다. 아직은 달뜨기 전이라 캄캄한 들판의 여기저기에 피여오르는 불점들은 흡사 별들이 땅에 내려와앉은것 같기도 했다.

달이 삐죽이 내밀자 조무래기들은 더욱 신명이 나서 빠른 걸음으로 뛰여다니며 불을 놓는다.

《삐비야, 빨리 나오라. 삐비야, 빨리 나오라.》

이런 소리들이 아이들 입에서 터져나온다. 불을 지른 밭귀에서 삐비라고 하는 연하고 맛있는 풀이 더 빨리 돋는다고 아이들의 마음은 벌써 그 삐비에로 달리는것이였다.

《삐비야, 빨리 나오라!》

스무살나이의 승기였지만 아이들 때처럼 이렇게 소리쳐보고싶어 그 동요시절의 추억이 깃든 들판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대청을 지나 작은 방에 들어가 할아버지한테 무릎을 꿇고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장죽을 입에서 떼고 말했다.

《네 왔느냐. 그러지 않아두 네 애비가 기다리더니.》

승기가 16살에 서울중앙고보로 공부를 떠날 때 누구보다도 반대하던 할아버지였다. 외독자의 대를 끊는다고 노발대발하다가 정 가겠으면 장가를 들어야 한다고 하던 그 할아버지가 4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손자의 기색만 살피며 《이젠 아주 왔을테지.》하는듯 머리만 주억거린다.

어머니는 그저 어쩔줄을 모르고 대청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부엌으로 들락날락하며 아들의 눈치만 살핀다.

《내 이제 네 좋아하는 칼제비국을 끓일게.》

어머니는 칼도마를 부뚜막에 놓으며 웃는다. 우로 딸 셋, 아래로 딸 셋, 그 짬에 귀동자를 낳았으니 이제 아들이 영영 다시 집을 떠나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 누구보다 간절했으나 당금이라도 남편이 들어와 엄한 눈길로 자기의 속심을 눌러버릴가봐 힐끔힐끔 밖을 살피기도 하는 어머니였다.

《아버진 나가신지 오랬어요?》

《며칠째 너를 장참 기다리시더니 오늘은 간다온다 말없이 아침에 나가신게 글쎄 여태…》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딘가 불안에 떨고있었다.

승기는 집안의 분위기를 눈치채고도 남았다.

아버지는 편지에 썼었다.

《승기야, 가세가 점점 말이 아니다.… 하여튼 인차 내려온다니 의논해보자.…》

아버지는 집안에 남은 땅마지기까지 팔아서라도 아들을 더 공부시키려고 할것이다. 그러면 숱한 집식구들의 생계는 어떻게 될것인가.

집은 요란하게 큰데 퇴락한 량반가문의 마지막을 말해주듯 기와장에는 풀이 돋고 건듯 쳐들렸던 한쪽 추녀가 물앉았으며 기둥에서는 나무벌레가 갉아먹은 부스레기들이 가루처럼 떨어졌다. 아버지는 땅을 팔아 아들의 학비를 마련할 궁냥으로 어디 나갔을것이 분명하다.

삐꺽― 하고 안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획 뒤돌아섰으나 거기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술에 취한 삼촌이 서있었다.

《승기야, 너 왔느냐.… 왔구나, 왔어.》하고는 할아버지가 무서워 감히 본채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사랑채의 방에 들어가 네활개를 펴고 누웠다.

어머니가 사랑채로 달려나왔다.

《아이구 적은이, 무슨 술을 이렇게.》

《아, 내 좀 마셨수다. 어제 밤 형님과 다투고… 나 랭수 좀…》

찬물을 벌떡벌떡 들이킨 삼촌은 누워서 승기의 손을 놓지 않는다.

《형수님은 들어가보시우. 내 이 승기하구 좀…》

그러더니 넉두리 절반, 푸념 절반 승기에게 말한다.

《야, 나라가 망하구 집안이 망하는데 공부는 무슨 공부야. 너는 우리 가문의 종손이다. 우리 가문이 무슨 가문인지 아니? 대대로 량반도 이만저만한 량반가문인줄 아니? 야, 걷어치워라.… 네 처가집에서두 반대다. 나두 반대야.… 차라리 면서기라두 해서 가세를 돌보구 가문을 유지해라. 너희네는 종가이고 너는 종손이다.》

삼촌은 끝없이 중얼거리다가 문득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페허에 설은 회포를 말하여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여왔는가


(《황성옛터》가 나온지 한달도 되지 못했는데 여기까지 퍼졌구나!)

서울의 단청사에서 극단의 막간가수가 처음으로 불렀던 노래, 연극이 더 계속되지 못하고 장내를 울음판으로 만들었던 노래, 순식간에 서울장안에 퍼졌고 올 때도 기차칸에서 그 노래뿐이였다.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노래여서 승기는 참다못해 와락 밖으로 나오고말았다. 삼촌의 노래가 검질기게도 뒤따라와 승기는 사랑채밖의 담장밑에 나가섰다.

담밑에는 탱자나무가 늘어섰고 마당에는 로송이 두그루 다정스레 머리를 맞대고 섰는데 그밑에는 큰 암석이 있었다. 어려서 그 바위에 앉아 한시를 읊군 하던 승기였다.

소나무와 암석을 두고 할아버지는 호를 송석이라 하였고 아버지는 이송이라고 하였다.

일찌기 계몽활동을 벌리던 아버지가 창평에 가서 조선사람들끼리 창흥학교를 설립하고 교감노릇을 하다가 《한일합병》이 되자 그만두고 집에 와서 《시일야방성대곡》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것이 어제일같다. 그때 승기는 6살이였지만 아버지가 눈물 흘리는것을 처음 보아서인지 그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헌병보조원이 늘 아버지를 따라다니였고 조금만 어데 가도 행방을 승기한테 묻군 했었다.

승기는 저물어가는 석양이 비낀 로송아래 바위에 앉아 그리 크지 않은 련못에 피여난 꽃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문득 서울의 하숙집 벽에 걸어놓은 족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아버지가 손수 우리 글로 쓴 그 시구절이 생각났다.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고 키웠더니…


나라잃은 백성의 혼을 담아 아들의 장래에서 민족의 미래를 그려보려고 한 아버지의 가긍한 뜻이 가슴에 저려와 승기는 머리를 들지 못한채 바위우에 앉아있었다.

(《이송》… 두그루의 소나무라… 왜 아버지는 자기의 호를 이송이라구 했을가?)

처음으로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이제껏 그 뜻을 묻지 못했었다.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그 해묵은 소나무가 가문의 상징처럼 생각돼서? 아니면 소나무의 푸르른 기개가 마음에 들어서?

승기는 아버지의 둘도 없는 벗인 목포사람, 서경조가 생각났다. 승기가 여라문살때까지 서경조라는 목포큰아버지는 지나가다가 자주 들리군 하였다. 지나가던 길이 아니라 광주에서 그리 가깝지도 않은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들어왔다가는 서울로 올라가고 목포로 내려갔다. 서울만 아니라 평양에도 간다고 했다. 그 서경조와 아버지가 두그루의 소나무처럼 생각되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호를 그렇게 지은것이 아니였을가.

승기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주던 그 목포큰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가. 물어보면 아버지는 모르는지 아는지 대답이 없군 하였다.

승기가 갖고있던 한시첩을 종종 봐주군 하던 서경조였다. 그 한시첩에는 승기가 7살에 지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한시도 있고 유명한 한시들도 적혀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서경조한테 이 애를 신동이라고 자꾸 칭찬만 말라, 바람부는 밤에 등잔불의 그림자가 벽에서 얼른대는것을 보고도 겁을 낸다고 나무람을 하였다. 그러자 서경조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보게 이송, 걱정말게. 담이 큰 장수들도 닭의 모가지 하나 비틀기 겁나 하는 때가 있네. 어렸을 때의 겁은 겁이 아니란 말두 있구. 문제는 이 애를 어떻게 키우는가에 있지.》

그후부터 아버지는 밤에 어디로 나다닐 때도 우정 승기를 데리고다니며 담을 키워주었다. 한시도 자연풍물이 아니라 차츰 기개와 신념을 담은것으로 짓게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마지막작별이던 그때 서경조는 시 한수를 적어주며 이런 말을 했었다.

《명심하거라.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청국도 로국도 미국도… 어떤 양놈들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우리는 제힘을 키워야 한다.… 기울어지는 국운을 일으켜세우려다 전봉준이도 김옥균이도 갔다. 네가 태여나기 10년전에 두분이 한해 사이를 두고 다 참살을 당했다. 전봉준의 아들 전해산선생(의병장인 그분 말이다.) 그 선생이 지은 한시를 여기에 적어주마.》


서생의 몸으로 군복을 떨쳐입었더니

끝끝내 뜻 못이루고 령어에 매였구나

통분타! 조정의 적신이 나라를 팖이

어찌 참으리오 외적이 조국을 침범함을

백일에 설음이 북받치니 강물이 어둡고

청천에 눈물 뿌리니 비줄기로 나누나

영산 고향땅을 어찌 죽은들 잊으리오

내 두견새되여 피를 물고 돌아가리라


승기는 조용히 입속으로 시를 읊어본다.

서경조는 아버지와 마주앉아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군 하다가 어떤 때는 밤중에, 어떤 날은 새벽에 가군 하였다. 승기가 16살의 때늦은 나이에 공부하러 떠나게 되고 할아버지를 설복시키는데는 서경조의 노력도 컸다고 말할수 있다.

승기의 아버지 리병성은 서경조와 함께 망국의 비운을 통탄하면서도 서로 자식들만은 기어이 공부시켜 어느때인가는 독립될 나라의 인재로 키우자고 약속하였던것이다.

(※ 오랜 세월 리승기는 서경조의 행방을 알길이 없었다. 1949년에 림종을 앞둔 리병성은 그가 북간도로 들어갔다는 말이 있었는데 살았으면 조국에 돌아왔을게 아니냐고 했었다. 서경조와의 기이한 인연에 대해서는 후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아버지가 돌아온 때는 늦은 저녁무렵이였다.

삼촌도 그제야 일어나서 집에 가지 않고 아버지와 겸상을 하고 앉아 저녁밥을 먹었다.

상을 물리자 리병성은 동생과 아들을 데리고 사랑채로 나갔다.

식구들은 하나같이 속이 한줌만 해서 그들이 나가는것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방에서는 자꾸 《어험, 어험.》하는 헛기침소리가 났지만 그것이 무슨 심사를 말함인지 알길이 없었다.

세사람이 마주앉았다. 승기는 좀 비켜 문턱가까이 앉았다. 사실에 있어서 삼촌은 할아버지와 가문의 대변자로 이 자리에 앉은셈이다.

승기는 아버지가 땅을 팔겠다는 말을 인츰 꺼내지 못해서 잠시 삼촌을 유심히 건너다보는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리병성은 삼촌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오늘 리몽재한테 갔댔네.》

《리몽재라니요?》

《아, 거 있지 않나. 모친의 친정켠으로 조카벌된다는.》

《거긴 왜요?》

술기운이 좀 남아있던 삼촌의 목소리가 불시에 청청해진다.

리병성은 동생한테 말하는 형이 아니라 형한테 말하는 동생처럼 주저주저 사연을 설명했다.

리몽재는 제 동생을 승기가 일본으로 데리고가서 공부를 시켜달라는것이다. 그러면 승기의 학비를 절반이상 담당하겠다고, 동생이 머리는 아둔하지 않으나 공부에 직심히 달라붙지 않으니 곁에서 각근히 돌봐준다면 좋겠다고, 그래서 앞으로 장차 법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삼촌이 대뜸 볼부은 소리를 했다.

《흥, 일본놈의 법관으로.》

《그건 상관할바 없네. 어쨌든 리몽재는 여유가 많은 사람이니 둘의 학비쯤은 대줄수 있어. 우리두 영 죽었다구 가만있겠나. 어떻게 보태줄 방도가 있겠지.》

승기는 뜻밖의 사연에 눈만 커다래졌다. 남의 가정교사비용처럼 주는 돈으로 공부를 하다니. 모욕감에 속이 부글거렸으나 (그까짓 아무튼 내 노력의 대가로 될게 아니냐.) 하고 자신을 위안하였다. 그런데도 마음은 즐겁지 않고 서글퍼만졌다.

아버지와 삼촌은 승기의 마음은 숫제 아랑곳없이 궁여지책을 상론하다가 각기 손상당하는 자신들의 존엄때문에 한숨과 통탄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끝내는 그 방도에 도달하고마는것 같았다.

그러나 삼촌은 부르짖듯이 말했다.

《내 외가마을에 갔다가 그 리몽재를 본적 있어요. 사람이 덜되게 놀더군요. 승기의 학비를 언제까지 대줄는지 믿음직하지두 않구.》

삼촌은 그저 땅마지기를 팔지 않게 된것을 다행으로 여기는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가보겠수다. 승기야, 찬은 없지만 래일 아침은 우리 집에 와 먹어라.》

삼촌이 나가자 분위기는 더 이상스레 되였다.

아버지는 등잔불도 켜지 않은 방안에 앉아 희읍스름한 창호지문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승기는 두무릎을 팔로 싸안은채 머리를 그우에 박고 앉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승기야, 이 아비의 비굴한 걸음을 용서해다오.》

승기는 콱 울음을 터치며 소리쳤다.

《아버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승기는 여전히 울먹거린다.

《아버지의 뜻을 명심하구 전…》

《아니다. 내 뜻은 네가 그저 공부를 하라는게 아니야.》

아버지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너두 아다싶이 우리 나라는 옴짝을 못하고 일본한테 먹히웠다. 부국강병을 소홀히 하고 문명하지 못한탓이였다.… 네 삼촌이 쩍하면 우리 가문이 대대로 큰 량반가문이요, 뭐요 하지만 난 오늘에 와서 그걸 자랑으로보다 수치로 생각한다. 력대로 량반사대부들은 사화당쟁과 음풍영월의 세월을 보내다나니 나라가 망했구나.… 승기야, 공부해라. 그래서 성공해라. 그게 무슨 성공이겠는지는 몰라두 어쨌든 일본놈을 이겨야 하는 성공이다. 일본놈을 이겨라. 이건 내 뜻만이 아닌것 같구나. 5천년력사국이 너에게 주는 부탁이고 기대이다. 아, 말은 많아두… 그것만은 명심하거라.》

방안은 캄캄하다. 나라잃은 민족의 비운에 아버지의 목소리는 처절하게 울리였다.

승기는 집안과 문밖의 어둠이 한꺼번에 가슴을 누르는듯 숨을 쉴수 없으리만큼 답답해났다.

어둠속에서 아버지는 말했다.

《그럼 왜 원쑤의 나라인 일본으로 공부를 떠나야 하겠느냐. 일본놈의 문명이란 다 서양의 문명이다. 유럽에 공부하러 갈수 없는 형편이니 일본으로 가는수밖에 없지 않느냐. 적국에 가서 공부해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임진왜란때 일본에 잡혀가서두 애국의 뜻을 굽히지 않구 오히려 적을 알고 자기를 다잡는 기회로 삼아 양병설을 세운 사람두 있지 않느냐. 그 사람이 쓴 기행문집을 줄테니 떠나기 전에 꼭 읽어보아라.》

아버지가 안채로 들어갔으나 승기는 그냥 움직이지 못하고 앉았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둠에 잠긴 벌과 산을 바라보았다. 다시금 고향산천의 울부짖음처럼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전을 쟁쟁히 울린다.

《일본놈을 이겨라, 이건 내 뜻만이 아닌것 같구나. 5천년력사국이 너에게 주는 부탁이고 기대이다.…》

그러자 서경조가 써준 한시구절이 눈앞에 소리치며 떠오른다.

영산 고향땅을 어찌 죽은들 잊으리오

내 두견새되여 피를 물고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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