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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제 1 편

제 3 장

4


지하실로 된 려관이 그들의 류숙장소였다.

내각사무국일군들이 나와 학자들의 숙식을 보살펴주었다.

리승기는 토론준비자들중에 제가 예정되지 않았다는것을 알게 되자 퍽 다행스럽게도 생각했으나 한편 그것이 자못 서운하기도 했다.

허나 청수에서 예상했던것처럼 방청이나 손님격이 아니라 자기가 당당한 대표라는 말에 놀라면서도 평상시의 그 걸음걸이대로 훤칠한 키를 곧바로 세우고 침착하게 모란봉지하극장입구에까지 당도하였다. 리승기는 지하층계의 마지막단을 내려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쟁중에… 이런 희한하고 놀라운 일이 어디 있어?)

그는 땅속이 아니라 동화속의 어떤 불빛찬란한 궁전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는 휴계실에서 해방전과 해방후에 서로 갈라졌던 면식있는 여러 학자들과 손도 잡아보고 얼싸안기도 하면서 반가움을 나누었다.

길게 회포를 풀새는 없었다.

그들은 회의장에 들어갔다.

대회가 시작되여 주석단성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일어서서 열렬히 박수를 친다.

이런 회합에 난생처음 참가해보는 리승기는 곁의 사람들이 하는대로 일어났고 박수를 쳤다.

처음에는 주석단에 누구누구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박수소리가 더 세차졌다.

곁에서 김용석이 리승기의 귀에 바투 대고 말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나오셨습니다!》

그 순간과 때를 같이하여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주석단중심에서 웃으시며 참가자들을 향하여 마주 박수를 치시는분이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이심을 알아보았다. 순간 끓어오르는 감격과 흥분으로 가슴은 세차게 설레였다.

(아! 이분이시구나! 그리도 만나뵈옵고싶던…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립던 그분이시구나!)

다음순간에는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전선형편이 어려운 이때에 그이께서 이런 회의에 참석하시리라고는 예상이나 할수 있는 일인가.

리승기는 남들이 앉는것도 모르고 그냥 박수를 치다가 급기야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앉아서도 주석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노상 웃으시는 얼굴이였다.

백두산의 령장으로 기상이 아주 엄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보는 순간에 친근감부터 앞서는분이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쟁중에 과학자들이 이룩한 연구성과가 보고에 소개될 때마다 만족해하시며 박수를 치신다.

리승기는 박수를 치다가 문득 제가 북에 들어온지도 2년이 가까와오는데 그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지냈다는 생각에 그만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과거의 발명따위는 지나간 추억으로만 남은것 같았다.

그게 벌써 어느때 일인가.

그동안 간혹 누가 그의 발명의 의의에 대하여 말하면 지어 그것이 도리여 자기에 대한 값싼 동정과 위안으로 리해되면서 불쾌해지기도 했었다.

그 발명으로만 사람들이 자기를 안다는것이 이제와서는 그리 즐겁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전시의 어려운 환경에서 소집된 이 회의의 보고에서 《합성1》호와 그 연구전망이 언급되지 않은것을 차라리 다행으로 여겼다.

보고가 끝나고 휴식이 선포되였다.

휴계실에서는 모여서기 바쁘게 이런 말들이 오갔다.

《그 바쁘신중에 이렇게 나와주시리라고는…》

《그러기 말입니다. 전선형편때문에 밤잠도 주무시지 못한다는데…》

저쪽에 서서 누군가와 만나던 김용석이 바삐 걸어와 곁의 빈 의자에 앉더니 리승기한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이 회의는 장군님께서 직접 발기하셨다구 합니다.》

리승기는 여직껏 계속 흥분속에 있다가 다시 이런 놀라운 말을 듣고는 김용석을 그저 뻔히 마주보기만 하였다.

그런데 이때 인민군 대좌견장을 단 사람이 가까이에서 《용석동무!》하고 불렀다.

김용석은 일어나 그리로 다가간다.

《아니, 대좌동지는 어떻게…》

《여보, 나두 군의로서 의학자요. 이 친구 사복을 입었다구 벌써 상급을 몰라보누만. 동문 연구사지만 우리한테서는 포조준수로서 일개 중사였거던. 나한테서 아찔하게 낮은 하급이지 않았나?》

대좌는 유쾌히 웃었다.

두사람은 두손을 맞잡고 밀기내기라도 하듯 밀치락닥치락 하였다.

리승기는 그들의 그 즐거운 담소에도 불구하고 혼자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이런 때에조차 그저 숭엄한 기분에 젖어 그들을 바라보는것이였다.

그는 일어나 회의장을 향하였다.

토론들이 진행되였다.

공업부문의 한 기술자가 작년부터 수많은 곳에 큰 기계공장들이 건설되고있는데 이것이 준공되면 여기 모인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모든것을 공업화할수 있는 자립적인 토대가 축성된다고 하자 이번에는 교육상이 나와서 토론을 하였다.

1951년부터 각 대학이 적들의 폭격속에서도 전부 교육사업을 다시 진행하고있다는것, 군대에서 소환된 동무들이 훌륭한 인재로 자라나 이제 우리 나라의 과학발전과 전후복구건설에 훌륭히 이바지하리라는것을 말하였다.

어찌보면 그들의 토론이 전쟁이라는 현실을 떠난 공담같기도 했다.

꼭 전쟁이 끝난 다음날에 하는 토론들 같았다.

그런데도 장내는 박수소리로 떠나갈듯 하다.

리승기는 종시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첫날회의가 끝나 숙소에 돌아와 누워보았으나 잠이 오지 않아서 리승기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보다 늦게 들어와 막 옷을 벗고 누우려는 김용석의 팔을 잡았다.

《옷을 입구 좀 같이 밖에 나가 바람을 쐬지 않겠소?》

김용석은 무슨 긴히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뒤미처 따라 나왔다.

그들이 앉은 곳은 대동강쪽 모란봉기슭이였다.

야간폭격이 뜸해진 평양의 밤은 조용하였다.

앞에는 아직 잎새가 돋지 않은 떨기나무덤불이 어둠속에 보이고 그아래 어디선가는 대동강의 물소리가 들려오는듯 싶었다.

리승기는 이 순간에 《김일성장군님은 어떻게 이런 때에 이런 회의에 참가하실수 있는가?》하고 묻고싶었으나 모르는것이 많은 제가 갑자기 부끄러워나서 그렇게 물을수가 없었다.

그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용석동문 김일성장군님을 가까이에서 모신적 있다구 했지?》

《네.… 최사직속 고사포에 있었으니 가까이 모실 때가… 참, 회의휴식시간에 제가 만났던 그 대좌가 있지 않습니까? 군의국에 있는 그 대좌동지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돌보는 임무를 수행하던분입니다. 특히 후퇴때 고산진에서 말입니다. 그때 저두 직속구분대에서 그분이랑 같이.》

《그렇구만. 그래서?》

김용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흥분을 진정시키며 침착하려고 애쓰는것 같았다.

어둠속에서 그의 얼굴빛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렇게 짐작되였다.

김용석이 말했다.

《제가 장군님을 가까이에서 모셨다구 할수 있는 기회는 짧았으나 얘기는 많습니다. 후퇴하시여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농민들의 콩마당질을 도우신 이야기며 수두룩합니다.… 그 대좌동지는 말입니다. 그 당시 최고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돌볼 책임이 있었으니만큼 우선 진찰을 해봐야겠는데 그이께서 얼마나 바삐 지내시는지 틈을 얻을수가 없었단 말입니다. 그이께서는 보통 밤 2시, 3시에 주무시는데 4시면 벌써 깨여나셨습니다. 대좌는 부관과 함께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깨시자 이내 들어가 진찰을 하자는거였지요. 그런데 그날은 웬일로 5시가 되도록 깨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척 기뻤습니다. 오늘은 좀 주무시는게라구 말입니다. 얼마후에 그이의 그림자가 문에 얼씬거렸습니다. 이때라고 생각하며 군의동지와 부관이 들어갔습니다. 그이께서는 일어나 앉으셨으나 그이의 베개밑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펼쳐졌고 거기에는 붉은 줄이 죽죽 그어져있었답니다. 언제 잠을 깨셨는지는 모르나 벌써 그동안 책을 많이도 읽으셨던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폭넓은 학습을, 그것도 매일 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학습을 주요한 혁명과업으로 인정하시였습니다. 그것을 조선실정에 구체화하시여 조선인민이 걸어갈 길을 찾아내기 위한 사색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왜 자지들 않고 이러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도리여 들어온 사람들을 걱정하시였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의 건강진찰을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대좌는 처음으로 그이의 맥박, 체온, 혈압을 알았습니다. 청진과 타진도 하였습니다. 이상이 없으시였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지 모릅니다. 그이의 건강이자 조국의 건강이 아니겠습니까.

〈최고사령관동지, 계속 밤을 새우시는데 건강을 돌보셔야겠습니다.〉

하고 대좌가 의사답게 말씀을 드리였을 때도〈잠이 안 오는걸 어떻게 하오. 벌써 20년동안 붙여온 습관이니 어떻게 고치겠소.〉하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는겝니다.》

고개만 끄덕이며 김용석의 얘기를 듣던 리승기는 불현듯 혼자 생각하였다.

(20년동안! 항일전의 20년세월! 나라를 찾기 위해 산에서… 둬시간밖에 주무시지 못하는것이 습관으로 되시다니…)

그러자 이상한 생각이 가슴을 허비였다.

(그 20년은 내가 일본에 가있던 시기와 맞먹는다. 아버지의 뜻을 좇아 민족의 문명과 개화를 위한다고 청운의 뜻을 품고 떠났다해도 어쨌든 돈냥이나 대줄데가 있어서 간것이 아니더냐. 내가 일본에서 받은 그 온갖 민족적멸시와 수모를 가셔주시려고 장군님께서는 산에서 풍찬로숙하시며 강도 일제를 반대하여 목숨을 내대시고…)

아침에 리승기는 여느때없이 수굿하니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긴듯 곁눈 한번 돌리지 않고 회의장을 향해 걸어갔다.

첫 휴식시간에 리승기는 이번에 여기 와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계응상박사와 얘기를 나누려고 그를 찾아 두리번거리였다.

불빛에 그의 안경알이 번뜩이였다.

그런데 김용석이와 리재업이 각기 다른 문간에서 나타나 그를 띠여보고 동시에 다가왔다.

김용석이 먼저 말했다.

《홍명희부수상동지가 선생을 급히 찾습니다.》

두사람은 리승기를 찾아다니던 중이였다.

홍명희가 리승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홍명희의 가까이에는 방하민부국장이 서있었다.

방하민이 한팔을 뻗쳐 리승기를 홍명희한테로 안내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홍명희는 몇걸음 앞으로 마중나오며 급히 말하였다.

《장군님께서 승기선생을 만나자구 하십니다.》

뜻밖의 일이여서 리승기는 《네?》하고는 말을 못하고 섰다.

홍명희는 리승기의 팔을 가벼이 잡아주었다.

《자, 갑시다.》

리승기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면서 이끌리듯 걸음을 옮겨갔다.

그는 흥분을 누르면서 문앞에 다가가 몸가짐을 단정히 하려고 애썼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를 여러번 만나 아시기라도 하신것처럼 반갑게 맞아주시며 리승기의 손을 꼭 쥐고 말씀하시였다.

《리승기선생, 건강이 어떻습니까?》

《전 건강합니다. 장군님께서 건강하신 모습을 뵙게 되니…》

리승기는 목청을 가다듬을수 없어 말이 더 나가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기어이 리승기를 먼저 자리에 앉히신 다음에야 자신께서도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상대편에 담배를 권하시다가 리승기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것을 아시자 《그 참 잘하셨습니다. 난 해방후에 늦게야 배웠는데 일이 복잡해지는 가운데서 잘 끊게 되지 않습니다.》하고 미소를 지으시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그 허물없는 첫 말씀에 리승기는 대뜸 앉은 자리가 퍼그나 편하게 느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째선지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하지 않으시면서 그것을 그냥 손에 드신채 말씀을 하시였다.

《듣자니 남조선에 계실 때 몹시 앓았다구 하던데 해방전에도 건강이 나빴구… 지금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런 몸으로 후퇴때 고생이 참 많았겠습니다. 가족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니옵니다. 남들이 다 겪은 고생인데. 그리구…》

그렇듯 어려운 시기에 폭격에 위험하니 산길로 오라구 소발구를 보내도록 해주신 장군님께서 그때는 무척 가까이 계신다고 생각되여 그 고마움에 한달음 달려올것 같았는데 막상 이렇게 그이의 곁에 앉고보니 어떻게 무슨 말부터 시작해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몰랐다.

불현듯 그때의 일이 새로운 감격으로 눈앞에 떠오른다.…

…그들은 천신만고하여 어느 마을에 도착하였다.

사방에 눈이 지북이 쌓이고 길은 딴딴히 얼어붙어있었다.

상부와의 련락을 취한다고 일행이 더러 먼저 떠나고 리승기네 가족을 비롯한 일부 성원들은 하루쯤 숨을 돌리다가 별다른 련락이 없으면 신파방향으로 떠나기로 하였다.

그다음날 저녁이였다.

도무지 달구지군같지 않은 차림의 웬 중년의 사나이가 소발구를 몰고 마을길에 나타났다.

그때 리승기는 통나무방틀마저 얼음속에 묻힌 우물가에 서서 물을 긷고있었다.

그는 매끄러운 얼음판에 자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미투리를 신은 발에 힘을 주면서 드레박을 우물속에서 춰올리느라고 곁에 사람이 다가온줄도 모르고있었다.

《혹시… 리승기박사선생이 아니십니까?》

하는 말소리를 듣고서야 머리를 돌려 멍하니 낯선 사람을 건너다보았다.

흡사 리승기라는 제 이름조차 다 잊은듯 잠시 대답도 못하다가 엉겁결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사나이는 미끄러지는 발을 내짚어 몸을 가누더니 리승기의 손에서 드레박줄부터 앗아들고는 물동이에 물을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드레박을 팽개치듯 놓고 리승기의 손을 량손으로 그러쥐였다.

《먼길에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제 여기 면인민위원회 지도원입니다. 련락이 와서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리승기는 얼떠름하기만 했다.

《자, 이쪽으루 좀 내려서십시오. 매끄러운 그우에 서시지 말구…》

소발구군은 손을 잡아 조심조심 리승기를 눈무지옆의 평탄한 곳에 이끌어준다.

《저 소발구옆에 갑시다.》

퉁눈의 황소가 방울소리도 요란히 영각을 내지르고 널판자를 깐 발구판우에는 돗자리까지 깔려있었다.

중년의 발구군은 소발구옆에 다가서며 리승기를 향해 돌아섰다.

《이리로 와보십시오.》

리승기는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어디서 오셨다구요?》

발구군은 미소를 지으며 아까 제가 한 소개를 되풀이했다.

《제 여기 면인민위원회에서 일보는 사람올시다.》

그러면서 그는 솜저고리품에 손을 넣었는데 신분증이나 무슨 증명서를 찾는것 같았다.

그 눈치를 알고 리승기는 부랴부랴 그의 팔을 쥐여 그러지 못하게 하였다.

《알겠습니다.… 헌데 어떻게 되여 이렇게…》

발구군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상부에서 보냈다지 않습니까? 여기서 먼저 떠난 사람들한테서 보고를 받구 산업성소개지인 수풍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산업상 김책동지한테서 말입니다.》

리승기는 서울을 떠나 평양에 들렸을 때 김책산업상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그가 자기한테 무척 관심을 가진다는것은 알고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묻지도 못하는데 발구군이 흥분에 겨워 말을 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직접 지시가 계셨다구 합니다. 리선생님이 가족과 함께 길을 떠나 도중에 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구 장군님께서는 자동차보다 달구지나 소발구를 내서 폭격이 위험한 대도로가 아니라 산길로 오게 하라구 하셨답니다.》

《뭐라구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리승기는 떠듬거리였다.

너무도 큰 놀라움이였다.

그러다가 그는 엉겁결에 물었다.

《그래 장군님께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자 발구군도 말을 못하다가 띠염띠염 이렇게 말했다.

《글쎄말입니다. 이 위중한 시기에… 아마 강계쪽에 계신다는 말두있구…》

그러다가 그자신이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장군님은 항상 우리들곁에 계시는것만 같습니다. 우리들 가까이에 말입니다.》

《가까이에… 가까이에…》

리승기는 덩달아 그 말을 뇌이였다.

정말이지 이 순간 리승기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아주 가까이에서 자기를 기다리시는것만 같아 얼른 뒤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연신 되뇌이였다.

(폭격이 위험한 대도로가 아니라 산길로… 산길로… 그래서 소발구로… 소발구로…)

리승기는 머리우의 하늘과 길옆의 눈무지들이 휘휘 내둘리면서 현기증이 났다.

발구군이 얼른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눈무지에 쓰러졌을수도 있었을것이다.

과로와 긴장으로 이 엄청난 충격에 그가 견디기 힘들게 되였으니 말이다.

집앞에 소발구가 이르렀을 때 만삭의 임신부인 안해는 너무나 감지덕지해서 눈잔등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며 남편과 발구군의 부축을 받아 발구에 올라앉아서는 눈구석의 물기를 보이지 않으려는듯 고개를 외로 돌렸다.

언니의 잔등에서 마침내 풀려나오게 된 두살짜리 계집애가 제 어미의 품에 파고들듯 옹기작거리며 좋아서 캐득거린다.

제일 고생이 많은 4살짜리가 오르고 둘째남자애는 그래도 사내라고 맨 마감으로 점잖게 올라앉더니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돌린다.

발구의 뒤에 리승기와 10살의 맏아들 그리고 12살의 딸애 혜연이 따라섰다.

《끼랴! 쩌쩌… 끼랴!》

면지도원이라는 사람은 평생 발구군으로 늙어온 사람처럼 제법 능숙하고도 흥겹게 소를 몰다가 리승기를 뒤돌아보며 유쾌하게 말했다.

《이제 산에 들어서면 선생님두 발구에 오르십시오. 눈길에 슬슬 미끄는게 그저 그만일겝니다.》

리승기는 끓어오르는 심정에 그저 머리만 끄덕이였다.

제일 고생이 많던 4살짜리가 발구우에서 그래도 제 동생이라고 솜저고리로 꽁꽁 싸주며 혜연에게 말했다.

《언니야, 언니두 여기 타려마.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러자 혜연이 어른스레 대답을 했다.

《내 걱정은 말아. 난 여기서 걸어두 힘들지 않아. 내 등이 가벼워지니 막 날것 같구… 또 어머니가 얼음판에 넘어지지 않겠으니 그게 제일 좋구나.》

산그림자가 걷히고 하얀 눈길은 해빛에 빛났다.

리승기는 두눈을 쪼프리고 앞쪽으로 흘러오는, 눈에 다져진 길을 바라보며 발구를 따라 걸어만 갔다.

저앞에서 뜨거운 손길이 기다리고있어 발구는 더 거침없이 미끄러져가는듯 싶었다.

그렇듯 끝날줄 모르던 길이 이제는 그리 아득해보이지를 않았었다.

…그때의 감격과 뜨거움이 다시금 파도처럼 밀려와 리승기는 급기야 이렇게 말하였다.

《그때 장군님께서 소발구까지 보내주시니 고생은 무슨 고생이겠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머리를 저으시였다.

《아닙니다. 그것조차 너무 늦어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후퇴 초기에 김책동무는 선생네가 어느 방면으로 떠났는지 알지 못해 퍽 안타까와 하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고생을 한 다음에야… 그때는 차라리 산길로 오자면 소발구가 나을것 같아서… 늦어서 미안합니다. 량해하십시오.》

리승기는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얼른 응답을 못하다가 저로서도 놀라리만큼 높은 음성으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소발구는 제일 어려운 때에… 정말 그때 눈길에서 우리한테는 그게 비행기처럼 생각되였습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크게 웃으시였다.

《비행기처럼이라… 그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보였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맙습니다. 난 수송기재가 늦은것이 가슴에서 내려가질 않았댔는데…》

《장군님, 감사합니다. 전 뭐라구 더…》

《됐습니다, 뭘 그러십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왜서인지 손에 들고계시던 담배 한가치를 도로 곽속에 넣고 태울념을 않으시였다.

그때 리승기는 그것이 어째선지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쪽으로 약간 돌아앉으시였다.

리승기도 그이쪽으로 더 돌아앉았다.

리승기는 그이를 스스럼없이 마주보게 되였다.

방안에 가득찬 휘황한 불빛은 분명 그이의 빛나는 안광에서 시작되고 그이의 환한 미소로 하여 방안에 빛발이 충만되는것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리선생의 연구에 대해선 김책동무와 리종옥동무들한테서 들었습니다. 전쟁중이지만 즉시 시작하자구 했는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있었구… 리선생두 아마 김용진동무를 만나보셨겠지요?》

《네?… 네…》

리승기는 황급히 대답했다.

《참, 아까운 동무였습니다. 후퇴에서 돌아오자 우린 그 동무에게 실태료해와 준비사업을 다그칠 과업을 주었는데 도중에… 그러다나니 자연 누구두 돌보는 사람이 없이 되였습니다.》

《장군님, 이 전쟁중에 그걸 해선 뭘하겠습니까? 전쟁이 끝나면…》

《아닙니다. 전쟁이 끝나면 늦습니다. 비록 전쟁이 한두달후에 끝나두 그때는 늦습니다. 지금두 늦었습니다.》

《장군님, 그건…》

《리선생, 전쟁은 전쟁이구 민족의 앞날과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번 대회보고에두 응당 제기됐어야 했는데… 이왕 그렇게 되였으니 여기서는 더 론의하지 못한다 해두 본격적으로 내밀어야 하겠습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아하는 기색을 띠우고앉아 얼른 대답을 못하는 리승기를 마주보시며 호탕히 웃으시였다.

《리선생, 걱정마십시오. 전쟁은 최고사령관이 할테니 선생은 과학을 하십시오.… 선생이 큰일을 하셨는데 그게 남조선에서두 빛을 못내지 않았습니까? 선생의 일생소원이 꼭 풀려야 할게 아닙니까?》

그이께서는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뒤를 이으시였다.

《돌에서 실을 뽑는다는것이 신기한 옛말같아서만 아닙니다. 석회석과 무연탄으로 합성섬유를 뽑을수 있다니 이게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나라에는 그 원료인 석회석과 무연탄이 무진장하지 않습니까? 리선생도 아다싶이 우리 나라는 경지면적이 제한되고 목화가 잘되지 않으니 앞으로 옷감문제는 화학섬유나 합성섬유로 해결해야 할것입니다. 선생님같은분들이 있으니 이건 걱정할게 없다구 난 믿습니다.》

《장군님, 저희들이 어떻게…》

《물론 우린 과학기술의 기초가 남들보다 약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갓 쓰고 하늘소 타고 다니던 선조들한테서 우리가 물려받은거란 고작해서 뭐겠습니까?… 삐거덕거리는 수레바퀴, 량반들의 음풍영월… 이런거였습니다. 진보와 문명에서 뒤떨어지다나니 국력이 쇠퇴하구, 그래서 일본놈들한테 먹히웠고 오늘은 미국놈들이 우릴 업수이보구 덤벼들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학자들이 할일이 참 많습니다. 해방후에 벌써 많은 학자진이 꾸려졌지만 해방초기만 해도 어떠했습니까.… 흥남에선 학자들이 무슨 일부터 했겠습니까. 기막힌 일이지만 비누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던겁니다.》

그때 공장지구에서는 당장 필요한 생활필수품도 없어 쩔쩔 매였다.

왜놈들은 조선사람들한테 비누만드는 법조차 가르쳐주지 않아 1만톤짜리 탕크에 가득찬 콩기름을 두고도 비누조차 없었다.

강영창, 김두삼, 리재업 등 과학자, 기술자들은 비누부터 만들어놓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하였다.

비누에 찍을 목각도장을 새기자고 모여앉은 그들은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이겠는가고 오래 토론을 하였다.

결국 그들은 거기에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인민》이라는 자호를 찍자고 락착을 보았다.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상기시키며 천천히 말씀을 이으셨다.

《〈인민〉비누… 내가 함흥에 갔을 때 녀인들은 그 비누를 받아들고 기뻐서 막 눈물을 흘렸습니다. 벼짚재물을 우려내서 옷을 빨던 그들이니 왜 안 그러겠습니까. 비누신세를 북반부각지에서 지게 된것은 물론이고 한흥식동무가 남반부에 나갈 때에도 그 비누를 배에다 싣고나가 남조선인민들에게도 나눠줬댔습니다.… 인민이 기뻐한다고 과학자들이 긍지를 느꼈습니다. 과학자들이 〈인민〉이라는 이 이름을 귀중히 여기는 그 지향점이 귀중한것입니다.

과학도 정치도 다 인민을 위한것이고 민족을 빛내이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과학자들이 그 소박한 제품의 자호에 처음으로 〈인민〉이라구 찍겠다고 하였을 때 난 정말 기뻤습니다.… 리선생, 우리 학자들이 할일이 많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민족을 빛내일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이깁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두 과학기술에 힘을 넣지 않는다면 어떻게 민족의 장래를 담보할수 있겠습니까? 이제 다시 우리 나라가 꺼꾸러지면 누가 우릴 일으켜세워주겠습니까? 리선생, 과학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저의 결심이니 리해해주십시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목소리는 흥분에 겨워 갈리였다.

그이께서는 전쟁의 운명이 아니라 줄곧 민족의 장래를 두고 심려하신다.

과학만이, 과학자들만이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을수 있으며 그 장래를 빛내일수 있듯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흥분을 늦추지 않으시며 오른손으로 리승기의 팔소매를 다치시였다.

《보십시오, 해방직후에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이 〈인민〉비누만 만들었겠습니까. 그뒤엔 우리 손으로 카바이드에서 알콜과 초산을 합성해냈단 말입니다. 48년도에 초산직장에 갔을 때 난 얼마나 힘이 생겼는지 모릅니다. 한데 그 초산을 합성한 송복섭동무를 그때 만나지 못했더랬는데 글쎄 그 동무가 후에…》

김일성동지께서는 잠간 동안을 두시며 아까 한가치의 담배를 다시 끼워넣은 그 곽을 매만져 뒤적여놓으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는 리선생의 사위인 재업동무가 남반부에서 데려온 동무가 아닙니까? 그런 동무가 어떻게 조국과 인민앞에 죄되는 일을 할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본의아닌 그의 과오를 두고 편협한 일부 일군들이 그렇게도 모질게 굴었으니 정치적으로 봐두 그렇구 인간도리로 봐두 그렇구 안됐습니다. 난 후에 홍명희부수상동무로부터 그 얘길 듣구서 몹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일을 바로잡아놓구보니 송복섭동무는 병이 심해진 뒤였구… 전쟁통에 미처 살피지 못하는 일이 많지만 이런 일이야 어떻게 놓쳐야 했겠습니까.… 그가 합성한 초산이 리선생의 연구에서 기초로 된다는것두 압니다. 그가 앞으로 많은 일을 할수 있었다는것두 두말할것 없습니다.… 아닙니다. 난 그것때문에 아쉬워하는게 아닙니다. 단순히 큰 인재를 잃었다는 그런 아쉬움때문이 아닙니다.

나라와 인민을 위해 큰일을 한 그한테 옳은 사람대접을 해주지 못한것 같아서, 바로 그런 공산주의자로서의 자책감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리선생, 시간이 없어 더 긴 얘기를 나누지 못하는것이니 잘 리해해주십시오.》

그 한마디한마디가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씀들이였다.

열풍처럼, 파도처럼 뜨겁고도 세차게 가슴에 밀려드는 인간애, 정의로움, 진심… 바로 그것이였다.

리승기는 자기의 격한 심정을 여기서 미처 눅잦힐수가 없었으며 앉아서 되새겨볼 시간적여유도 없었다.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은 다른 과학자들이 휴계실에 들어왔기때문에 자기만이 그이곁에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와 더 얘기를 나누지 못함을 퍽 아쉬워하시며 그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련사흘 빠짐없이 회의에 참가하시여 매 토론자들의 토론요지를 열심히 적으시면서 이따금 제기된 애로의 타개책을 대주시였고 토론자의 과학연구가 실천성을 떠난 리론을 위한 탐구라고 생각되시면 그것을 바로잡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축산업을 발전시킨다고 해서 외국에서처럼 대규모의 방목지를 념두에 두고 연구사업을 할수는 없습니다. 산이 많은 우리 나라의 먹이조건에 맞게 축산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대회가 결속단계에 이르러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으시며 연단에 오르시였다.

《친애하는 과학자, 기술자여러분!

이번에 열린 과학자대회는 중요한 국가적의의를 가지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허두를 떼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과학자들앞에 과업을 제시하시기 시작했다.

그이께서 사회과학, 자연과학 전역에 걸쳐 전문가적인 지식을 소유하고있는데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고 지어 신비스럽게 생각되였다.

김일성동지의 연설이 화학공업분야에 이를 때 리승기는 온 심신이 그대로 귀가 되여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더욱 주의깊이 들었다.

《우리 공업은 고분자유기합성공업을 발전시킬수 있는 훌륭한 가능성을 가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아직도 전면적으로 리용되지 못하고있습니다. 해방후 우리의 기술자들이 카바이드에서 알콜, 초산을 생산한것은 물론 큰 성공이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그칠것이 아니라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절실히 필요한 여러가지 전기절연재료, 고급도료, 합성수지, 합성고무를 비롯한 고급유기합성제품들을 자체로 생산할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시다가 그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크나작으나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이룩한 업적에 대하여 무원칙하게 깔보며 남의것이라면 덮어놓고 칭찬하는 비굴한 사상경향을 없애지 못하고있습니다.

례를 들면 우리 제약공장에서 생산되는 아스피린이 충분한 효력을 가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이췰란드 바이에르 아스피린만을 존중하며 우리의 포도당주사약이 외국제에 비하여 아무러한 손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덮어놓고 일본제포도당주사약만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리승기는 수첩에 적는것도 잊고 그저 그이를 우러러 감동에 찬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이의 민족정신(그때 리승기는 그렇게 느꼈다.), 그 열렬한 주장에 무한정 끌려들었기때문이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침내 과학자들을 위한 력사적인 선언을 하시였다.

《온 나라의 우수한 과학자들을 모아 과학연구사업을 집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과학원을 조직하도록 할것입니다.》

그이의 말씀을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끝없이 듣고만싶었다.

대회가 끝나고 모란봉지하극장에서 나온 리승기는 발길이 놓이는대로 대동강청류벽에 이르렀다.

강에는 별들이 내려와앉았다.

리승기는 강가에 앉았다.

훈훈한 봄바람이 안겨온다.

하지만 멀리 동평양건너 거기에서는 불기둥이 오르고 폭음이 울린다.

원쑤들의 야간폭격이 그치지 않는것이다.

이런 속에서 군관회의가 아니라 과학자대회가 열리다니… 이런 속에서 최고사령관이 사흘동안이나 과학자대회를 직접 지도하시다니… 민족의 장래가 우려되던 이런 전쟁통에 과학원을 창설하려 하시다니… 이런 엄혹한 때에 전후의 복구건설까지 토의하다니… 가렬처절한 전쟁이 눈앞에 벌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최고사령관이 전쟁을 벌써 이긴것으로 여기시고 전후의 건설을 설계하시다니…

게다가 믿어지지 않는 일은 자신에게서 벌어진것이다.

(장군님께선 내 연구사업이 늦었다고 하신다. 이 전쟁중에… 글쎄 생사존망의 판가리싸움이 벌어지는데. 그리구 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 그 원료가 우리 나라에 풍부하다는것을 제일 기뻐하신다!)

일본놈들이 자기의 발명에 대하여 떠든것은 그때 일본이 미국과의 《섬유전쟁》에서 이겨볼가 하는 야망때문이였다.

때문에 일본인학자들은 일본제국주의가 만주를 강점하고 거기서 다량의 콩을 략탈할수 있게 되자 그 콩단백으로 섬유를 뽑는 연구를 다그치지 않았던가.

그들은 콩단백이든 석회석이든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섬유를 뽑으라! 이것이 그들의 요구이며 목적이였다. 목적만 달성되면 상관없는것이 제국주의과학이였다.

남의 나라를 제 땅처럼 생각하며 만주의 콩을 원료로 그 콩단백에서 섬유를 뽑으려는 일본학자들에 대한 반발에서였는지, 아니면 언제든 조선이 독립될 날을 믿으면서 대학졸업후 취직을 위해 조국땅을 방황하듯 순방하던 그때 그 풍부한 석회석과 무연탄에서 나온 카바이드덩어리를 손에 쥐고 잠재의식처럼 가졌던 소망에서였는지 리승기는 다름아닌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한 폴리비닐알콜섬유를 탐구하기 시작했던것이다.

한데 이제껏 이것을 리해해준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자기의 연구성과의 진정한 가치를 처음으로 밝혀내시고 인정하신분은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이시다!

그이께서는 다름아닌 출발물질인 원료가 석회석과 무연탄이라는것을 근본문제로 보신다.

화학자들과 화학의 혜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흔히 출발물질은 생각지 않고 실험실에서 생성되여나온 결과가 희한한 물질일 때 거기에만 현혹되여 만세부르기 쉽다.

그러나 화학은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그 공업화에서 출발물질인 원료가 근본문제로 되여야 하는것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과학일진대 더욱 그러하다.

원료를 생각지 않는다면 그것이 몇백년간 계속되던 중세기 련금술자들의 부질없는짓과 과연 다를것이 무엇이랴…

장군님의 연설과 말씀과 풍모에서 높이 울리는 민족정신, 앉으나서나 오로지 민족의 장래만을 생각하시는 그 리념뿐이시다.

리승기는 나이 50이 가깝도록 그리도 갈구하던 그 희망의 세계를 이제야 장군님의 품에서 확실히 보게 되는 무상의 희열감에 잠겨있었다.

회의기간의 첫날밤에 김용석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해방직후에 평북도의 한 로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군님께서도 공산당을 하십니까? 그럼 나도 공산당을 따르겠습니다.〉하고…》

이름모를 로인이 참으로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승기는 이 순간에 느끼는 심정이 그 로인과 다를바 없다고 여겼다.

그 로인이 공산주의자에 대한 리해를 장군님을 만나뵙고 다시 했듯이 리승기는 저도 지금 장군님을 뵈오면서야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의 세계를 비로소 인식하고 공감하고있는것이였다.

리승기는 생각하였다.

(민족이라는 뜨거운 피줄에 바탕 둔 공산주의―이것이 장군님의 공산주의이니 나는 이 리념을 따르고싶구나.… 이건 나한테서 두번째 해방 아니, 이제야 맞는 진정한 해방으로 된다.…)

불현듯 휴계실에서 장군님을 만나뵈올 때 장군님께서 하시던 그 말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때 수송기재를 늦게야 보내줘서 안되였다고 사과하시듯 하던 그 음성이 뇌리에 떠올라 리승기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강물우에 흐르는 별빛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리승기는 스스로 솔직히 내심을 열어보았다.

자기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소발구를 타고왔어도 분명 공산주의자들의 인간성에 대해서 의혹을 가지였다.

3차전원회의문헌 접수토의때와 그 이후시기에 있은 서필규부상의 발언과 행동들만 크게 보면서 주위를 살벌하고 차디찬 분위기로 감수하면서 스스로 쌓은 고독의 울타리속에서 번민과 정신적인 방황을 했던것이며 일부 사람들의 무자비한 정치적연설들과 비판들에서 랭혹과 질시만을 크게 보았던것이다.

리승기는 제가 장군님앞에서 죄를 지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참으로 용서받을수 없는짓이다.

장군님께서는 그동안 그 소발구가 늦어진것때문에 마음이 내려가지 않으셨다는데 나는 같은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더란 말인가.

일부 사람들의 개별적인 처사를 보고 감히 공산주의자들의 인간성에 의문을 붙이면서 편협하고 옹졸하게만 생각해왔으니 이보다 더한 큰죄는 없을것이였다.

그 이후에 김용진이와 심의위원회의 활동에서 송복섭에 대한 뜨거운 은정을 느끼고 그 인간애에 공감했었지만 오늘 그이를 만나뵙고보니 그야말로 그건 해빛의 한가닥에 불과한것이였다.

리승기는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강안보도우를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그는 깊은 밤중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밤에 평양을 떠나게 되였다.

올 때처럼 자동차로 밤길을 달려야 했다.

화물차적재함우에는 무슨 짐이 알맞춤하게 차있었다.

방수포를 씌운 그우에 두세사람 누울만 한 아주 푹신한 자리를 움푹하게 마련할수 있었다.

그러니 외투만 목까지 끄당겨 덮고 줄곧 별들을 쳐다보며 미처 새기지 못한 며칠간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과거나 래일에로 생각을 달릴수 있을것이다.

차우에는 사위인 리재업이 같이 탔다.

김용석은 중공업성에 남아 실험기자재며 설비들을 알아보느라고 며칠 늦어 떠나기로 하였다.

운전칸에는 삭주지방으로 떠나는 방하민이 타고있었다. (그는 과학원이 창설되면 거기에 옮겨앉겠다지만 지금은 여전히 화학공업관리국의 부국장이다.)

리승기는 그리 춥지 않은 밤이라 적재함우에 누워서 가고싶었기에 자기더러 운전칸에 앉으라는것을 굳이 마다하였다.

장인과 사위가 나란히 누웠다.

그들사이는 옛날과 같이 여전히 스승과 제자간으로 되여있어서 흔히 보는 육친적인 관계가 웬일인지 생겨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리승기는 이밤따라 류다른 정을 느끼며 그와 장밤이라도 얘기를 나누고싶은 심정이였다.

리재업은 이것을 눈치채고 무척 마음이 즐거워했으나 저도 지금 제나름의 숭엄한 생각에 잠기고싶다는것을 보여주려는듯 처음엔 묻는 말에 대답하는 정도이더니만 어느덧 리승기의 감정에 휩쓸려들어왔다.

리승기는 리재업에게 말했다.

《자넨 참 행운아야. 장군님을 벌써 몇번째 만나뵈웠나?》

《세번째입니다.》

리재업의 목소리는 자랑스레 울린다.

《그러니 나보다 세번 더 사람이 달라졌을게 아닌가.》

리재업이 무슨 뜻인지 얼른 대답을 못하자 리승기는 말했다.

《난 말이네, 장군님을 만나뵙구나니 내자신이 어제날의 내가 아닌듯이 느껴진단 말이네.》

《옳습니다.》

리재업은 리승기를 향해 돌아누우며 말했다.

《참말 그렇습니다. 저두 매번 그런 심정입니다. 처음 47년 여름에 첫 류학생들이 떠날 때 그이께서 우릴 직접 만나주셨지요.… 내곁의 동무가 넥타이를 바로 매지 못한것을 보시고 〈나도 오래동안 산에서 싸우다나니 넥타이 맬줄을 몰라서 처음에 애를 먹었댔소. 넥타이는 이렇게 매야 하오.〉하고 먼길로 자식을 공부시키려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말씀하시며 넥타이를 바로잡아주시였습니다.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위하시는 그 뜨거운 심정에 저는 그때…》

《정말 그렇네. 난 나이 마흔일곱에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를 만난 심정이야. 장군님을 만나뵙구나니 이제야 진짜루 인생길에 들어서는것 같애.》

둘은 한참이나 자동차가 들추는대로 흔들리며 누워있었다.

리재업이 추억에 잠겨 말했다.

《그리구 49년도에 레닌그라드 아스또리아려관에서 우리 류학생들을 만나주셨을 때 그이께서는 친히 저한테 귀중한 말씀도 해주시였어요.…

좌중을 둘러보시던 그이께서 애로가 없는가고 물으셨을 때 중뿔나게 한 학생이 외국학생들의 생활수준에 비해 우리가 떨어진다는 얘기를 했지요. 장군님께서는 그저 자식의 응석으로 받아주시며 웃으시다가 새끼황새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한 새끼황새가 다리가 긴 어미황새의 걸음처럼 걷고싶어하다가 그만 다리가 찢어졌다는 얘기 말이지요. 제 분수에 맞지 않게 갑자기 남처럼 되자구 흉내를 내다가는 종당에 자신을 망친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이였습니다.》

《그러구보니 자넨 그동안 장군님의 손길에서 자라왔구만. 낡은 사회잔재두 더 빨리 벗어던졌을거구… 새끼황새라… 참 뜻이 깊은 말씀이시네. 우리두 새끼황새가 되지 말아야겠는데…》

리승기는 온밤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녘에 곁에 누운 리재업이 잠이 들었어도 리승기는 봄밤의 하늘에 무수히 널려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며 하염없는 생각에 잠겼다.

(나의 인생은 어디까지 왔는가?)

전환점에 서있는것도 같고 이제 시작에 불과한것 같기도 했다.

리승기는 잠이 든 리재업의 얼굴을 지켜보며 생각하였다.

(이 사람아, 내가 공부를 시작한것도 실학의 신봉자이며 일제강점을 전후한 시기의 계몽사상가였던 아버지때문이였었네.…

그 아버지도 바랐구 나도 바랐던 그러한 세계에 들어서게 되였다는것을, 나와 나의 아버지를 포함한 온 민족의 어버이를 내가 만나뵈웠다는것을 아버지가 알으셨다면… 그렇다면 아버님은 저세상에서나마 눈을 감을것이네.)

리재업한테서 몸을 돌려 반듯하게 누운 리승기는 솜외투를 턱밑까지 끄당겨덮으며 밤하늘을 곧바로 쳐다보았다.

희읍스름한 은하수의 띠를 가로질러 하나의 큰 별찌가 뚜렷한 선을 그으며 엇비듬히 날아떨어지고있었다.

문득 별무리 흐르는 하늘에서 아득한 그 시절에 아버지가 써주던 족자의 글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거기에 씌여진 시조구절이 아버지의 목소리를 타고 들려온다.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고 키웠더니

눈기약 능히 지켜 두세송이 피였구나


(한데 아버진 그때 왜 안민영의 시조에서 《너를 믿지 않았더니》를 굳이 《너를 믿고 키웠더니》로 고쳐서 써줬을가? 아들한테 믿음을 더 주고싶었기때문일가?)

하지만 리승기는 아버지의 령혼과 얘기를 나누듯 밤하늘을 쳐다보며 속으로 뇌이였다.

(아버님, 아버님은 민족, 민족하시며 나라가 있자면 공과가 있어야 한다구 하셨지만 이 아들을 공부시키는 참뜻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채 모르고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님, 저와 함께 장군님을 만나뵈웠더라면 평북도로인처럼 말했을 아버님이십니다. 장군님의 공산주의가 철저하게 민족애에 기초한 리념이란걸 아버님이 알으셨다면…

아버님, 저는 이제야 내 학문의 진정한 품을 찾았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이밤따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점점 깊어만 갔다.

(아, 아버님은 이런 아들을 못 보구 가셨습니다. 하지만 아버님! 일찌기 아버지의 그런 뜻조차 없었더라면 나는 내가 북에 와서 진정한 품에 안기기 그 훨씬 이미전에 다른데로 흘러가버렸을것임을 잘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시작을 마련해준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뜻을 언제나 잊지 않았던것입니다. 나의 인생항로의 첫 닻을 올려준 아버지의 그 뜻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되는 높은 고개마루에 올라서게 되면 자연히 떠나온 그 기슭을 굽어보기마련이다.

그리하여 리승기는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처음으로 지나간 그 나날들을 돌이켜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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