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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제 1 편

제 3 장

3


차광막을 친 방안은 환하게 불이 밝았다.

멀리에 떨어졌던 친형제가 온것만치나 활기에 넘치는 집안이였다.

청수에 도착한 림창직이 연구소행정과 당조직에 인사를 하고나서 신현석과 옥지문 등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는 곧장 리승기네 집으로 온것이였다.

줄곧 미소하고 내내 말을 하고싶어하는 림창직의 왼쪽입귀에선 불빛에 타오르듯 금이발이 자주 보인다.

《사모님, 우린 헤여진지 이태두 못되지요? 한데 10년쯤 되는것 같군요.》

《그러게 말이지. 창직선생은 얼굴이 검실하게 타구 눈에 정기가 돌구 더 젊어졌어요.》

《그러니 이 애들이 후퇴때 사모님을 제일 고생시켰겠구만요.》

림창직은 량쪽무릎에 각기 앉힌 두 계집애를 내려다보며 밝게 웃었다.

호기심에 눈이 올롱해진 한 아이가 림창직의 군관모에서 반짝거리는 모표를 만져보고 다른 아이는 견장에 박힌 별들을 탐내듯 손끝으로 오비작거려본다.

방금까지 림창직은 리승기와 얘기를 나누던 참이였다.

처음에 리승기는 림창직이와 만나자 그의 손을 한참이나 놓지 못하며 말했다.

《그러니 창직동문 벌써 세번째로…》

《뭘 말입니까?》

반가움에 앞서 림창직은 그 말뜻을 미처 가늠치 못하였다.

《나를 찾아온게 벌써 세번째란 말일세. 나를 돕겠다구 일본에서, 남조선에서 그리구 이번 걸음두 그 길이라면… 그러니 우린…》

림창직은 말을 뜻깊게 번지는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운명은 저를 언제나 선생님곁으로 부릅니다.… 벌써 세번째, 옳습니다. 이번엔 아마 영영 떠나게 되지 않겠지요.》

리승기가 그한테 물었다.

《군관학교에서 반화학을 가르쳤다니 어떤 반화학인가?》

《아, 그것말입니까?》

얼른 대답을 못하는 림창직이다.

전연 모르면서도 가장된 대범성으로 자연스러운 물음을 던질줄 아는 그런 학자들과는 달리 상대방이 민망스러워 낯이 붉어질 정도로 무한정 허심해지는 스승의 성품을 아는지라 림창직은 마치 군관학교의 첫 강의에서처럼 조심스레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학전과 세균전에 대한 두차례 세계대전의 자료에서 몇가지 그리고 미국놈들의 새로운 기도와 그것을 짓부시기 위한 반화학에 대하여…

그러자 리승기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니 화학이 화학을 반대한다?》

잠간 얼떠름했던 림창직이 그 말을 긍정했다.

《하긴 그렇습니다. 화학이 화학을 반대하는셈입니다. 한데 량쪽에 다 화학자들이 참가합니다.》

《음…》

리승기는 신음비슷한 소리를 내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가 펀뜻 정신을 차린듯 림창직을 건너다본다.

《대량살륙의 화학무기라… 그러니 그런 화학을 가만둘수 없지 않나.… 산에 알카리를 넣어 중화시키듯 그런건 령으로 만들어야지. 그래 반화학전자료를 가져왔다니 그것 좀 보자구.》

림창직은 메고온 배낭속에서 몇개의 책자를 꺼냈다.

리승기는 제잡담 그것을 앗아들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여태 그들곁에 앉아 말없이 지켜보던 분이는 다행이라는듯 남편이 들어간 웃방문을 눈짓해보이며 안도감에 잠겨 말했다.

《요샌 영 달라지셨어요. 창직선생 먼저 김용석선생이 오신 그날로 장농속에서 연구보문철을 꺼내셨어요. 본래것두, 되살려낸것두… 실험실에 그걸 가지구 나가셨다가는 집에두 가지구 들어오지요. 어제 아침에는 보자기에 싸서 그걸 가지구 가시면서두 점심곽은 빈 곽을 가지구 가시지 않았겠나요. 때늦게야 내가 알구 부랴부랴 점심을 싸가지구 내려갔어요.》

림창직이 소리내여 웃었다.

불빛을 받은 금이발이 입귀에서 반짝이며 그 웃음을 더욱 밝게 해준다.

그러는 림창직을 마주보며 분이도 미소를 지었다.

《요샌 그 〈합성1〉호 연구보문철을 자꾸 들여다보시느라 여념이 없어요. 마치 다른 사람이 써놓은걸 처음 보시는것처럼.》

《그러게 책을 들여다보실 땐 옆에서 벼락이 떨어져두 꿈쩍 안하시니 지금은 나오시란 말 하지 맙시다.》

분이는 웃을 때마다 림창직의 입귀에서 반짝이는 그 금이발이 오늘밤은 도무지 싫지 않았다.

일본땅에서 그리고 서울에서는 그 금이발이 때로는 기분을 거슬리였다는것을 새삼스레 돌이켜보게 되는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천하게 여겨져 시체류행을 따르는 행위로 보였댔으나 어째서 그런 편협한 생각을 했던지 지금은 리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분이는 문득 말머리를 돌리고싶었다.

림창직을 만나 하고픈 얘기가 오죽이나 많은가.

《창직선생, 우리가 일본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요?》

《생각나구말구요. 제가 들어있는 조선사람하숙집 두 부부가 가정싸움을 벌리니까 리선생과 사모님이 지나가시다가 그 집에 들어오셨지요. 조선사람부부가 남의 땅에 와서 다투니까 말입니다.》

《그래요.… 한데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그때는 눈물이 나서 정 싸우겠으면 조선말이 아니라 일본말로 싸우라고 했지요. 남이 듣는데서 조선사람체면이라두 세워볼가 해서 말예요.》

《지금두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한데 사모님, 제가 다까스끼중간공장으로 리선생을 찾아가서 〈선생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저도 조선사람입니다. 선생님을 돕겠습니다.〉하구 말했을 때 왜 리선생이 처음은 반대하셨습니까? 세번째 가서야 응낙을 하셨지요.》

분이는 그랬던가싶어 림창직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그래요.… 생각나요. 저한테두 그 말은 하셨어요.… 그무렵에는 집에 들어오셔두 통 말을 안하셨는데… 창직선생이 처음 찾아온 날 집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 재간있는 청년인데 마음이 괴롭다는거예요. 일본땅에서 학문을 닦자면 갖은 천대와 모멸을 어떻게 이겨내는가구… 자기가 수모받는것만두 가슴이 터지는데 항차 창직선생같은 청년한테까지 어떻게 그걸 참아내게 해야 하는가구 말이예요.》

《그래서 처음에 거절하셨다는 말씀이지요?》

림창직의 입귀에서 수시로 불빛에 드러나던 금이가 사라지고 입술은 꾹 다물려졌다.

《창직선생, 그때는 애아버지가 제일 고통스럽던 시기였어요.… 〈합성1〉호 발명을 세상에 대고 발표했으나 리승기라는 이름은 간 곳 없고 〈대일본〉만이 크게 제 이름을 떠들구… 나라 없는 과학자의 설음에… 그 수모를 다 말해 뭣하겠어요.》

림창직이 올방자를 틀고 머리를 숙인채 앉아 그 말을 듣다가 《참,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다는게 이제는 믿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하고는 어느새 잠에 곯아떨어져 구들에 네활개를 펼친 네살잡이 계집애한테 얇은 포대기를 끄당겨 덮어주는것이였다.

그러던 림창직이 웃방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참, 리선생이 지금 그걸 보시느라구… 그러니 밤두 깊어지는데 전 가야겠군요. 그렇지요?》

《그런 말 마세요. 오늘 밤은 두분이 웃방에서 함께 쉬셔야 해요.》

하면서 분이는 웃방쪽에 가벼이 눈을 흘겼다.

《회포를 풀 생각두 않구 그것부터 안구 앉아서, 늘 저렇다니까요.》

두사람은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허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 자료를 꼼꼼히 다 보고난 리승기가 얼마동안을 꼼짝도 않고 다른 생각에 잠겨 앉아있다는것을.

림창직의 도착이 불시에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킨것이다.

안해인 분이한테도 아직 말하지 못한 림창직의 안해에 대한 소식을 이제 어느때 어떤 기회에 전해야 하겠는지, 그것이 너무도 아름찬 일로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건만 림창직이 오자 그것이 아주 헛된 기대인것처럼 느껴지는것을 어찌하랴.…


×


4월 23일 아침, 라지오에서는 최고사령부의 보도가 나오기 전에 국가학위수여위원회에서 35명의 대학교원들에게 교수, 부교수학직을 수여한다는 정령이 발표되였다.

뒤미처 최고사령부의 보도는 최근 10여일동안 적 1 598명을 살상했으며 다수의 전투기재를 파괴했다고 전하였다.

바로 그날 아침에 연구소에 나간 리승기박사는 평양에서 소집되는 전국과학자대회에 참가해달라는 초청장을 받고 어리둥절해지였다. 《과학자대회》라는 처음 듣는 말의 의미를 우선 리해할수가 없었다. 그는 어김없이 입는 실험복도 미처 못 걸친채 좁다란 실험실안을 서성거리기만 하였다. 어쨌든 학자들의 회합일테지. 거기서 무슨 일이 있을는지 알수 없다. 당장 전선에서 새로운 공세를 취한다고 하는 때에 소집되는 모임이니 분명 중요한 문제들이 취급될것은 명백하다.

불현듯 그한테는 자기가 대표라고는 해도 실제로 방청이나 손님격으로밖에 되지 않을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김용석이 찾아왔다. 그 시커멓고 길다란 눈섭을 꿈틀거리며 다소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 행정부소장동무두 저와 동감인데 앞으로의 〈합성1〉호 연구방향에 대하여 토론준비를 해가지구 가자는겁니다. 선생님께서 말입니다.… 일이 어떻게 될지 알겠습니까? 연구보문철까지는 필요없겠지만 중요한건 〈합성1〉호를 뽑는 폴리비닐알콜연구를 장차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전망적인 문제를 가지구 갑시다. 다른 부문에서두 전망문제를 요구한다는데…》

《가만, 가만.》

리승기는 그의 말을 밀막았다.

그러면서 김용석이 제 형의 모색을 닮은 반면에 성미는 퍽 다른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용진의 침착성대신에 흥분이 곧잘 앞서는 그의 동생이라고…

《용석동무, 말 좀 듣소. 그건 당장 중요치 않소.… 폴리비닐알콜로 말한다면… 그 연구방향은 지금 형편에서 곤난하단 말이요.》

그러자 김용석이 제풀에 털썩 의자에 앉아버렸다.

《선생님, 어쨌든 전 선생님을 도우러 온줄로 아는데 이거 어떻게 된겁니까?》

《아까 방부국장동무의 말이 우선 합성고무연구부터… 그래서 재업동무의 토론준비를 도와주라구 했소.》

김용석은 리승기의 말을 급히 막으려 했다.

《물론 그것두 중요하지요. 하지만 난 당에서 받은 과업이 그렇지만 않다구 봅니다.》

김용석은 마지막말을 하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보다 엄숙한 자세를 취하려고 애쓰는것만 같았다.

《당에서…》

리승기는 조용히 그 말을 받아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김용석의 엄숙해지는 어조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떤 정치적인 요인으로 제 말의 정당성을 확인시키려드는듯 한 그의 몸가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리승기는 대답했다.

《하여튼 생각해봅시다. 하루동안 시간이 있으니까. 그럼 알데히드합성, 중합, 방사에 이르는 (리승기는 힘들게 천천히, 생판 처음 외우는 말들처럼 그 공정들을 실무적으로만 불렀다.) 실험계획두 생각해봅시다.》

…그 이튿날 밤에 자동차는 청수를 떠났다.

리승기는 화물자동차의 운전칸에 앉았다.

4월의 밤, 어딘가 저기 캄캄한 밤하늘로 포탄이 아닌 별찌가 류달리 길게 꼬리를 끌며 날아가다가 스러질듯이 떨어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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