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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제 1 편

제 2 장

4


김용진은 리승기의 연구보문철을 제 가죽가방에 넣어 운전칸에 건사하였다.

책을 실은 자동차적재함에 방수포를 씌우고 나무가지들을 바줄짬에 끼워 제법 위장이 되게 하였다. 차들은 자정이 넘어서 떠났다.

낮에 적기의 공습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애먹는 일은 목탄차의 김이 잘 오르지 않는것이였다. 참숯인데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운전사들이 푸념을 하며 땀을 뺐다.

한태호가 운전사를 도와 걸싸게 풍구질을 해대였다. 다른 협조원들이 입을 딱 벌릴 정도로 냅다 10분정도는 쉬지도 않고 돌렸다. 검은 연기가 흰 연기로 꾸역꾸역 솟구치게 돼야 웃뚜껑을 닫고 김을 올려볼판이다. 그때까지 한태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손잡이를 휘두른다.

리승기는 그의 꽁무니에서 토목수건을 빼내여 이마의 땀을 훔쳐주군 하였다.

김용진은 어데서 가져왔는지 이가 시리게 찬 샘물을 고뿌에 떠다간 한태호의 입에 넣어주며 껄껄 웃었다.

고토를 지나 비학고치에서 적비행기를 만났을 때였다.

다른 사람들은 가까이의 웅뎅이나 돌바위뒤에 대피하는데 한태호는 무엇을 가슴에 부둥켜안은채 제잡담 산으로 올리뛰는것이였다.

《엎디라! 태호! 엎디라!》하고 김용진이 소리쳤으나 한태호는 막무가내로 정신없이 달리였다. 그러나 그를 나무라거나 탓할수는 없다. 적기의 공습에 대한 철저한 대피가 비겁성으로 되지는 않기때문이다. 한태호의 날쌘 동작이 천진스런 장난같기도 하여 유쾌한 생각과 함께 지어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일이 네번째 반복되였을 때 사람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느꼈던지 한태호는 가슴에 안고 갔다오는 무거운 쇠단지 같은것을 들어올려보이면서 말했다.

《이게 뭔지 알아요? 수소봄베란 말입니다.》

김용진이 무릎의 흙을 탁탁 털며 별로 시답지 않게 물었다.

《그걸 왜 가지고 가?…》

《수소로 동판을 용접할 일이 있겠는지 알게 뭐예요?》

《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김용진이보다 실상 속으로 더 감탄을 한 사람은 리승기였다.

《그런데 왜 안구뛰여다니는가?》

김용진의 물음이였다.

《야참, 용진아저씨두 답답하네. 이 수소봄베가 기총탄이나 기관포알에 맞아 튀면 이 자동차구 책이구 다 날아나요. 폭탄같은건 여기다 대면 아무것두 아니란 말예요.》

《뭐라구?… 아니, 수소봄베를 어떻게 기총탄이 뚫는다구, 내 원 참.》

《그래두 알게 뭐예요, 튀면 다지.》

《튀지 않아.》

《튈수 있어요.》

《일없다는데두.》

《일없을게 뭐예요.》

두사람은 서로 지지 않겠다고 유쾌한 말다툼을 하다가 옆에서들 웃는 바람에 같이 웃으면서 그만두고말았다.

저만치 걸어가는 한태호를 보며 김용진이 눈을 끔쩍이며 리승기에게 말했다.

《괜찮은 친구지요?》

리승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청년입니다.》

여전히 감탄에 못이기는 김용진의 목소리였다.

리승기는 김용진의 음성과 얼굴빛에서 흐르는 부드러운 온정이 한태호의 가슴속에 스며들었다가 자기의 가슴에도 옮겨와 따뜻이 덥혀주는것만 같았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그것을 칭찬하고 내세워주는 사람이 더 훌륭해질수 있다는것을 난생처음 겪어보는 리승기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불과 5년동안에 사람들이 어떻게 이리두 달라졌을가.… 모두 그래, 송복섭이두 그렇구…)

다음순간 그와는 정반대로 공장회의실에서 울리던 서필규부상의 랭랭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언뜻 들리는것도 같았으나 그것은 이내 귀전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는 눈앞의 현실에, 바로 김용진이와 한태호의 밝은 미소를 걸탐스레 빨아들이듯 눈여겨보며 따뜻한 정을 자꾸만 느껴보는것이였다.

자동차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해빛이 따스한 한낮에는 책마대속에 우묵한 자리를 파고들어 거기에 앉는것이 더 나았다.

리승기와 김용진 그리고 한태호가 한차우에 앉아 함께 갈 때가 좋았다. 한태호가 노래를 부르면 김용진이도 따라불렀다.

리승기는 북에서 부르는 새 노래는 별로 아는것이 없어서 옛날 고향에서 할아버지네들이 부르던 전라도륙자배기를 불렀는데 일부러 가성을 뽑는 목소리에 한태호가 배를 끌어안고 웃었고 김용진이도 유쾌하게 웃어댔다.

초산땅을 지나는 어느 하루였다.

늘쌍 그러는것처럼 산꼭대기로 넘어오는 적기들이 제일 위험했는데 이때도 미처 멀리 피할새가 없었다. 자동차에서 뛰여내린 사람들이 가까운 산기슭의 나무숲에 바삐 몸을 숨기였다.

그것은 너무도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귀청을 따갑게 하는 기총사격소리가 머리우에서 울리고 폭탄이 가까이에서 터지며 땅이 움씰움씰 뒤흔들렸다. 흙기둥과 연기가 솟구쳤다. 파편이 공중에서 윙윙거리고 돌부스레기들이 쏟아져내리며 땅을 두드리였다.

《불이다!》

누군가 무섭게 고함을 쳤다.

리승기는 펀뜩 머리를 쳐들었다.

흙먼지가 자욱하여 도무지 앞을 가려볼수 없었다. 곁에 엎디였던 김용진이 땅을 차고 일어나면서 《리선생! 선생은 여기에 엎디시오, 움직이지 말구. 이건 명령이요!》하고 소리치면서 뛰여나가는 바람에 리승기는 곁따라 일어나긴 했으나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태호! 앞차를 보라!》

김용진이 이렇게 웨치면서 연기에 휩싸인 뒤자동차의 적재함으로 뛰여오르는것이 보였다. 그 자동차의 방수포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소이탄의 불찌들이 덮씌워진것이다. 방수포밑의 책마대에 불이 달렸을지도 모른다.

김용진이 불붙는 방수포를 걷어서 적재함밖으로 내던지려는 모양이였다. 그것을 가까스로 걷어내리고 뛰여내리려던 김용진이 그만 걷잡을수 없는 타격을 받은듯 뒤로 넘어지고마는것이였다.

리승기는 《용진동무!》하고 애타게 부르며 그리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어느새 적기들이 물러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다른 차들의 적재함우에도 방수포를 뚫으며 기총탄은 박혔으나 불이 달리지는 않았다.

김용진은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급히 붕대를 싸매 응급대책을 취했다.

가까스로 의식을 가무리면서 김용진은 손짓으로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한다. 그를 땅바닥에 내려놓을수도, 운전칸에 앉힐수도 없었다. 책마대 몇개를 앞차에 옮기고 그 자리에 불이 붙다만 방수포를 접어서 깔아놓았다. 책마대들이 기총탄에 구멍이 뚫리고 김용진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책과 마대에 점점이 묻어있었다.

의식을 잃은 김용진의 곁에 쭈그리고앉아 리승기는 그저 얼없이 중얼거리기만 하였다.

《이 책이 뭐라고 글쎄… 왜 제 몸을 그렇게 우둔하게 내대는거요? 네?》

그는 웨치고싶었다.

(이 책 다라도 동무의 몸과 바꿀수 없단 말이요!… 이 책들속엔 사이비학자들이 써낸 시시한 글도 있구 때가 지난 쓸모없는 책들두 많소. 이따위것들때문에… 여보 용진동무, 북에서는 5년간에 이 책들의 지식수준을 릉가하고도 남았소! 뭣때메, 뭣때메…)

후일에도 이 순간의 넉두리가 결코 어이없는것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사정없이 덮쳐들면서 리승기의 마음속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헝클어놓은것이였다.

리승기와 한태호, 행정부소장이 중상자의 곁에 앉아있었다.

차는 조심스레 움직여갔다. 가까이에 어디 병원이 있을지 몰랐으며 군대들의 위생차를 만날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냥 여기에 차를 세우고있을수는 없었다.

김용진이 의식을 약간 차리는것 같아 세사람은 저마끔 불러본다.

《조직원동지!》

《아저씨!》

《용진동무!》

김용진은 힘들게 눈을 뜨고 미소를 지으려고 애쓴다.

《사람들은… 다… 무사한지.》

그는 자기가 불붙는 차에 뛰여오른것이 책이 아니라 사람들때문인것 같았다.

《책까지 다 제대루 살아있습니다.》

리승기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늘 철색이 돌던 김용진의 낯색은 하얗게 빛이 바래면서 창백해졌다. 입술에 떠도는 가느다란 미소조차 그의것이 아닌듯이 느껴졌다.

눈물이 글썽해서 들여다보는 한태호를 쳐다보며 도리여 그를 위안하듯 아니, 그보다도 푸르른 하늘을 우러르며 말하듯 김용진이 조용히 중얼거리였으나 자동차의 동음때문에 잘 들리지 않고 입술의 움직임으로 그 뜻을 알게 되는것만 같았다.

《일없소… 괜찮소… 이 많은 책더미우에… 누워있으니 들추지두 않구…》

그리고는 또 정신을 잃고만다.

리승기는 안타까왔다. 차가 더디게만 가는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산발들만 보일뿐 인가도 얼른 나지지 않고 마주오는 자동차도 없었다.

그는 락심천만해서 책마대우에 펄쩍 앉아버렸다. 기총탄에 한쪽이 뭉청 떨어져나간 잡지책 하나를 무심결에 손에 들었다. 1853년이라는 년도아래 5라는 코찌크식활자로 찍힌 작은 수자는 월인지 호수일것이다. 도이췰란드어로 《고분자화학》이라고 씌여졌고 라이프찌히라는 잡지를 편집한 지명이 밝혀져있었다. 피얼룩밑에 씌여진 글자들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편집인이나 발행인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리승기는 느닷없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100년전에 이 잡지를 편집하고 발행한 사람들이여, 그리고 이속에 글을 남긴 유명무명의 학자들이여… 그대들은 이게 미국놈비행사의 총탄에 이렇게 찢어질줄을 상상이나 했는가?… 그대들의 사색과 탐구와 창조의 넋을 피로써 지키려고 한 사람이 누군지 알기나 하는가?…)

두말할것도 없이 뜻밖의 충격으로 정신적인 균형을 잃은 리승기의 갈피없는 생각은 맥락없이 그러면서도 어디론가 자꾸만 이어져갔다.

(※ 지금도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의 수많은 장서가운데에는 그때 적기의 기총탄에 구멍이 난 잡지들과 책들이 그대로 보관되여 열람되고있다.)

리승기는 여전히 잡지를 손에 들고있었다. 김용진의 얼굴과 피가 얼룩진 잡지의 표지를 번갈아보다가 잡지를 찢어진 마대속에 정히 고누어넣었다.

다시금 의식을 차린 김용진이 조용조용 천천히 말을 했다. 이제 책을 몇차나 더 날라야 될것이며 이쪽길보다 리선생네가 후퇴로정으로 택했던 그쪽길이 더 안전하지 않겠는가고 그런 말도 했다.

리승기는 중상자가 말을 많이 하는것이 좋은것인지 불길한것인지 몰랐으며 그저 그가 나아지는가보다 하고 천진한 생각만 했다. 어쨌든 기운이 생기고 생명력이 되살아난것이 아니겠는가.…

문득 김용진이 이런 말을 했다.

《리선생님, 내 선생한테도 당분간 말하지 말자구 했는데… 선생의 조수였던 그 림창직이라구 있지 않습니까.》

《네, 림창직이.》

리승기는 처음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종잡지 못했다. 그러나 숨을 돌리며 마디마디 끊어가면서 하는 김용진의 말뜻을 이어가면 그 내용은 이러했다.

림창직이를 아는 사람이 내각사무국에 있는데 그가 림창직이의 안해를 알고있다고 한다. 정치공작대로 영등포지구에 나갔던 그는 림창직의 안해가 돌도 되지 못한 애기를 업고 녀맹사업을 나왔다는것, 인천방어전투때 아이를 업은채 부상병들을 손달구지로 후송했다는것, 마지막까지 남아 전투를 지원하다가 포격에 어머니도 아이도 운명했다는것, 최후순간에 남편에 대해서 말했고 이름을 대주면서 만나거들랑 마지막까지 미국놈들과 싸웠음을 알려달라고 했다는것이였다.

리승기도 림창직의 안해가 영등포지구로 나간것을 알고있었다. 비극적인 사태는 그가 서울을 떠난 7월이후에 벌어졌던것이다.

김용진은 어째선지 숨을 한번 크게 내불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림창직이라는 그 동무가 이제 소환돼와두… 당분간 그 말을…》

《소환이라니요?》

《그 동무가 리선생을 도우러 오겠는데.》

《나를요?》

리승기는 김용진이 의식이 흐리마리해서 말을 헛갈린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의외에도 김용진은 리승기의 손을 잡고 고통이 어린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는것이였다.

《리선생, 난 선생의… 그〈합성1〉호… 완성하는 일을 돕자구 했는데…》

리승기는 무턱대고 수긍을 했다.

《그럽시다, 그럽시다. 한데 좀 진정하시우.》

《아닙니다. 이건 말입니다, 내 개인의 소망이 아니라…》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리승기는 김용진을 흥분시키지 말자고 그의 말뜻을 미처 가늠하지 못하면서 손만 꼭 잡아주었다.

김용진은 분명 섭섭해하는 눈빛으로 리승기를 쳐다보다가 눈을 감고서 《이제 알게 될겝니다.》하고 조용히 말했다.

김용진의 입가에는 때아닌 미소가 고즈넉이 떠올랐다. 창백한 얼굴에 떠도는 한가닥의 빛줄기였다. 눈섭이 더 꺼매보이면서 꿈틀거리였다.

《림창직은 올겝니다.… 그가 와두… 안해가 잘못된걸… 말하지 말자구 했는데…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조국이 통일될 때까지… 그게 사실이 아닐수두 있구… 그러니 본인한테 어떻게 말을…》

김용진이 숨이 가빠서 말을 끊는다. 그뒤의 말들은 혼자소리처럼 거의 입속에서 굴려진다.

《아닙니다, 선생님… 이게 틀림이 없다면… 본인한테 알려줘야… 그러다 혹시 그 훌륭한 녀성이… 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영 잊혀질수두 있구… 어쨌든 선생이 더 알아보시구… 내각사무국에 있는 사람의 이름이 내 수첩에 있습니다.…》

림창직한테 안해의 최후를 알려주는가, 마는가 하는것이 이런 고통스런 순간에 자꾸만 뇌이는 그토록 중요한것이란 말인가. 리승기는 얼핏 어느때처럼 이 순간에도 옛글에 나오는 성인이란 이런 사람이 아닌가고 생각하였다. 어쨌든 림창직이 온다는 사실은 명백한것 같다.

그 림창직이 나의 《합성1》호때문에 오다니?… 그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고 그저 헛갈린 의식에서 오는 말처럼 생각되였다.

출혈로 창백해진 김용진은 부은듯이 보이는 눈시울을 간신히 치켜올리였다. 그는 피기없는 입술을 움직이고있었다.

《운전칸에… 가죽가방에… 연구보문철은 무사하겠지요?》

《무사하구말구요.》

《내 수첩에… 송선생문제를 위해… 이름들이… 심의위원회에서 필요합니다.…》

《알구있습니다, 알구있습니다.》

리승기는 한사코 그를 안심시켜보려고 애썼다.

그는 더 말이 나가지 않아 그저 김용진의 싸늘해지는 손만 꽉 잡아주고있었다.

리승기는 김용진의 흥분과 약간의 활기를 소생의 힘으로만 알았을뿐 운명직전에 있게 되는 심장의 마지막몸부림임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안깐힘을 써서 가까스로 하는 그 말들이 유언과도 같은 최후의 목소리임을 미처 가려듣지 못했다.

그들이 지나온 도로를 따라 웬 《윌리스》차가 달려오고있었다.

한태호가 운전칸꼭뒤를 두드려 차를 세우고는 급히 적재함에서 뛰여내려 길복판에 다가섰다. 리승기는 차우에 벌떡 일어서서 한태호가 하는것처럼 두팔을 버쩍 쳐들어보였다. 차를 세워달라는것이다. 구원의 손길이 미쳐오기라도 한듯 너무나 반가와 소리를 지를번 하였다.

한태호의 몇발작앞에 와서 차가 급정거를 하였다.

리승기는 거기서 내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운전사가 뛰여내리고 뒤미처 분명히 새로 지은듯 한 보위색닫긴옷을 입은 30대의 남자가 훌쩍 내려섰다. 낯익은 사람같아보였다. 아니, 저게? 사위인 리재업이 아닌가!

리승기는 적재함모서리를 찾아쥐고 차우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한태호와 리재업이 밑에서 거들어주었다. 리승기는 땅에 내려서서도 서있기만 했다. 김용진의 치명상도, 사위와의 상봉도 너무나 뜻밖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장인과 사위는 남조선땅에서 헤여진 이후 뜻밖의 장소에서, 그 몇년동안에 두사람은 너무나 다른 생활경로를 지나 이 길에서 다시 만난것이였다. 하지만 사위는 모두가 경황없어하는 여기서 가족의 안부조차 물을수 없었다. 자신의 일을 두고는 더욱 그랬다. 몇년만에 외국에서 돌아와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인 김두삼이와 함께 (그들 강영창, 김두삼, 리재업 등은 1945년 10월에 첫번째로 북으로 들어온 과학자, 기술자들이다.) 모란봉아래 방공호침대에서 몇밤을 같이 지냈다는것 그리고 《윌리스》안의 트렁크에는 국가에서 특별히 받은 합성고무연구자금 500만원(구화페)이 들어있다는것을 말할 시간은 더욱 없었다.

한태호도 리승기와 마찬가지로 리재업을 만난 반가운 심정은 간데없고 공포와 초조감에 울 가망이 되였다. 한태호는 리재업이와 김용진이 서로 잘 아는 사이라는것도 까맣게 잊고서 《저기 중상자가… 저 차로 무슨 대책이 없겠습니까?》하고 다급히 말했다.

《윌리스》차안에 중상자를 태워 빨리 병원이 있는 곳으로 달리고싶은 마음이였던것이다.

리재업이 장인한테 물었다.

《한데 저 사람이 누굽니까?》

리승기도 리재업이와 김용진의 사이도 잊은채 멍하니 섰다가 이렇게 말했다.

《북에 와서… 아니, 내 인생의 첫 스승이네.》

한태호가 누구라고 말하자 리재업은 화다닥 놀라며 적재함에 올라갔다.

리재업이 목메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여보게 용진동무, 이게 웬일인가!》

김용진이 간신히 눈을 뜨더니 마지막힘을 다해 그를 올려다보는것이였다.

《아, 재업이… 왔구만. 리선생을 도와서 앞으로 많은 일을… 나는 장군님의 뜻을 받들구 더 일하지 못하구…》

《용진이, 이 사람아!》

운전사와 협조원들이 모여와 서로 눈길을 부딪치지 않으려는듯 눈물 머금은 시선들을 딴데로 돌리고있었다. 차우에서 리재업의 흐느낌이 점점 높아가고있었다.

리승기는 얼없이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는듯 머리를 쳐들었다.

련속 들이닥치는 삶과 죽음의 대결, 어진 사람들은 자꾸 쓰러지기만 하고… 이런 전대미문의 희생과 파괴가 언제면 끝나려는가.…

높고 푸르른 하늘에서 수리개 한마리가 천천히 날아돌고있었다. 마치도 지상의 이 모든 슬픔과 전쟁의 비통한 현실을 굽어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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