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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제 1 편

제 2 장

1


리승기는 산기슭의 단층집에 꾸리는 실험실에서 파괴된 공장구내로 하루에도 몇번 오고갔다.

유리기구며 자그마한 시약병따위를 들고왔는데 한번에 가져올것도 두번세번 걸음을 했다.

얼핏 보면 박사는 실험실을 꾸리려고 열중하는 사람처럼 보일수도 있었다. 뒤에 방공호가 있어 적기의 공습도 이내 피할수 있는 그 조촐한 실험실에서나마 무슨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같기도 하였다.

허나 그의 마음은 순편치 않았다. 새빨간 적십자표식을 단 국제의료단위생차가 송복섭이를 신의주쪽으로 후송해간지도 얼마간 지났으나 소식에 의하면 병세의 차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것이다. 송복섭자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해도 리승기는 그의 병이 어떤 몰인정과 잔혹한 처사에 의해 다시 도져난것 같은 억울한 심정은 물론 자기의 연구보문철로 하여 그를 경원시하려고 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의 마음을 여전히 버릴수가 없었다.

그런데 공장과 연구소에서는 귀중한 기술문건을 송복섭이 적들한테 넘겨준듯이 말하는 소문이 한동안 즘즉해졌다가 또다시 나돌기 시작했다.

리승기는 김용진이 기다려졌다. 돌이켜보면 김용진이 평양으로 올라가자 박사는 마음속의 공허감이 그가 왔다가기 전보다 훨씬 더 참을수 없는것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허전감과 울적함은 일찌기 어린시절에 아버지의 친구인 목포큰아버지 서경조가 집에 와 며칠 묵다가 간 뒤에 맛보군 하던 그 애잡짤한 심정과 비슷한것이였다.

리승기는 공장실험실에서 분할해준대로 약간의 비카와 후라스코, 유리관과 유리기구들, 실험용소형뽐프 두개를 갖다놓게 하였다.

박사의 눈에는 숫제 그것이 화학을 애호하는 어느 중학생의 자작실험실처럼 보일뿐 실상은 그안이 그저 텅 빈 방이나 다름없이 여겨지는것이였다.

어느날 다시 수업을 시작한 화학전문학교에서 연구소에 특강을 초청해왔다. 그것을 알게 된 리승기는 남들이 놀라리만큼 기꺼이 거기에 응해나섰다.

그것은 마음의 질정을 찾지 못하는 학자의 자기위안이나 안타까운 몸부림일수도 있었다.

또한 처녀교원인 리금진의 요청을 실행하지 못한 송복섭이를 대신하는 심정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강의내용이 송복섭의 초산합성과 관련되여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리승기였다.

특강내용을 종이장에 세세히 적을 필요는 없었다. 별로 준비가 없이도 나갈수 있는 전문학교강의였다.

학교는 폭격때문에 3층교사를 비워놓고 산기슭에 작은 집으로 흩어져있었다. 리승기는 그런 교실에 들어섰다.

대부분 녀학생들이다. 어제도 두명의 남학생이 나이를 속이고 군대에 탄원했다고 한다.

량쪽에 말뚝을 박고 그우에 널판자를 가로지른 책상앞에 앉은 녀학생들중 쇠필통이나 나무필통이 땅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낼가봐 그것을 손으로 잡고있었다. 녀교원이 미리 주의를 준것 같았다.

리승기는 여라문명 학생들앞에 서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초산과 알콜의 합성, 유기화학과 고분자화학의 일반적인 개괄에 대한 강의였다. 처녀교원인 리금진이 학생처럼 맨뒤에 앉아 듣고있었다.

사실에 있어서 이날의 강의는 박사의 내면독백과도 같은것이였다. 살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탐구의 난점에 부닥쳤을 때일수록 간혹 그는 그것을 떠나 가장 통속적인 학문과의 사랑어린 독백을 하는데 이러느라면 마음이 정화되고 정신이 더욱 앙양되는것을 체험하군 하였다. 마음이 울적할 때에 책부터 찾아쥐는 그의 습관도 이런데서 생긴것이였다.

초산합성에 앞서 카바이드부터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한 리승기는 강의요점으로 적어간 종이장을 보지 않은채 두손으로 뒤짐을 지고 다섯발작도 되나마나한 눅눅하고 차분한 흙바닥을 왔다갔다하며 말을 시작하였다.

《초산과 알콜을 알기 전에 카바이드부터 먼저 알아야 할것입니다. 석탄과 석회석으로부터 얻어지는 카바이드는 무기물과 유기물의 계선을 보여주는 아주 흥미있는 물질입니다.

여러분, 화학이 그다지 발전되지 못했을 시기에는 무기물과 유기물간에는 도저히 넘을수 없는 장벽이 있는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828년에 사람의 오줌에 있는 유기물질인 뇨소라는것이 화학의 힘에 의해서 인공적으로 무기물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생명력에 의해서만 유기물이 얻어질수 있다고만 여기고있던 사람들에게서 이것은 큰 놀라움이였습니다. 웰러라는 학자는 시안산암모늄이라는 무기물질을 가열하면 이것이 곧 뇨소로 변화한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근대에 와서는 카바이드를 만들어내고 거기서 얻은 아세찔렌으로부터 출발하여 각종 유기물을 얻을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알아야 할것은 화학은 무엇보다 성실하고 꾸준한 실험,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완강한 실험으로써만 법칙들을 발견하고 새로운 물질을 얻게 된다는것입니다.》

리승기는 스스로 강의에 심취된듯 여기서 학생들에게 한가지 실례를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계속하였다.

…화학적연구에서는 실험이 유일한 수단으로 되고있다. 한때 어떤 사람이 공업적으로 칼시움을 생산해내려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그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생석회와 탄을 섞어 그것을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작업을 하였다. 그는 기초실험을 통하여 칼시움제조의 원리와 방법을 옳게 파악하지 못한채 그것을 구워내기만 하면 생석회에 있는 산소가 탄소에 의해 쉽게 떨어져나오면서 금속칼시움이 얻어지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구워낸것은 색갈이 그가 바라던 흰색이 아니라 재빛이였고 시약을 뿌려보아도 칼시움이 나타내는 특징적인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이 꾸준한 사람은 실험방법과 조작에 오유가 있는것으로만 생각하고 실험에 실험만을 거듭했다. 이리하여 어느덧 그가 구워낸 《칼시움》덩어리들은 공장뒤뜰안에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였다.

보슬비가 내리는 어느날 공장의 한 로동자가 점심을 먹은 뒤에 맛스레 피우던 담배의 꽁초를 무심결에 그 거짓칼시움더미우에 던졌다. 한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칼시움》더미에 불이 붙었는데 자못 그 불길이 활화산처럼 무시무시하였다. 모두들 달라붙어 천신만고해서 불을 끄기는 했으나 금속칼시움을 만들려고 시도한 연구자는 락심천만으로 머리를 싸쥐였다.

얼마 지나서야 《칼시움》더미의 화재사고의 원인이 밝혀졌다. 그가 구워낸것은 다름아닌 카바이드라는 새 물질이였고 그것이 비물에 의해 아세찔렌가스를 발생시키고 담배꽁초에 의해 불이 달렸던것이다.

리승기는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 바로 이 뜻하지 않은 사고가 실험자로 하여금 카바이드발견의 행운아로 되게 한것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찾아볼수 있습니까? 어쨌든 기초실험을 깐지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찾게 되는것입니다. 화학은 실험의 학문입니다. 화학자의 손은 그의 머리보다 더 많은것을 가져다줄 때가 있습니다. 수천톤의 광석에서 단 몇그람의 우라늄을 얻어낸 큐리부인의 노력도 결국은 실험작업의 결과라고도 말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리승기는 문득 말을 멈추었다. 분명 학생들속에서 이상한 흐느낌소리가 들렸던것이다. 한 녀학생이 책상대용의 널판자우에 머리를 파묻고 울고있었다. 금진교원이 황급히 일어나서 그 학생 가까이로 다가갔고 리승기는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 녀학생을 진정시키고나서 허리를 펴며 금진이 눈물이 글썽해서 말하는것이였다.

《저 애 아버진 카바이드전로공이였습니다. 며칠전인데… 적기의 공습을 피하느라구 산꼭대기로 뽑아올린 굴뚝의 도중연도가 폭격에 구멍이 뚫리게 되자 글쎄 아버진 몸으루 그 구멍을 막고 엎디였다가 그만… 적기의 기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도 거기서 물러나지 않구… 사람들이 달려갔을 때는 이미…》

밖에서 폭탄깍지를 두드리는 《댕댕댕…》하는 종소리가 났다. 리승기는 그것을 못 들었는지 교탁앞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마치 눈앞에 수많은 청중들이 있고 그들이 그냥 앉아있는듯 그는 교탁모서리에 량손을 짚고 서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옆에 놓인 나무의자에 잠시 주저앉았다. 학생들이 나가고 리금진이 다가왔으나 리승기는 저 혼자 있고싶어 처녀교원을 보지 않은채 《잠간만…》하고 중얼거리며 극히 온화한 동작으로 먼저 나가봐달라고 손짓을 하였다.

교실의 한쪽토벽우를 따라 주런이 달린 뙤창들에서 오후의 볕이 흘러들어 땅바닥과 널판자에 아롱이는 해빛문양을 그리였다.

리승기는 아무 뜻없이 그걸 바라보며 망연자실해지는 자기를 다잡으려 애썼다. 전쟁이라는 사나운 폭풍은 자기를 조국의 북쪽변두리 압록강가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치고 자기한테서 마지막위안거리마저 빼앗아가버린것만 같았다.

(어느때이기에… 괜한짓이였어. 곰팽이냄새나는 화학사의 페지들을 들추다니.)

리승기는 흡사 마지막까지 의지하던 정신적인 지탱점이 허물어진듯 걸상에서 얼른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나니 밖에서 나는 말소리도 그는 미처 듣지 못했다.

《여기에 혼자 계신단 말이요? 혹시 다음강의준비를?》

《아니예요, 잠간 혼자 계시구싶다구.》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릴가보군.》

《그렇잖아두 이젠 들어가 모셔내오려 하던 참인데…》

리승기는 마감에야 귀에 익은 목청을 피뜩 가려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자를 켜서 갓 만들어 달아놓아 아직 생나무냄새가 풍기는 그 출입문이 삐꺽 열리더니 거기로 다름아닌 김용진이 들어서는것이였다.

무거운 기분은 삽시에 사라지고 리승기는 반가운 심정에 무중 김용진의 두손을 움켜쥐였다. 김용진이도 리승기의 손을 잡은채 말을 못했다.

리승기가 말했다.

《기다렸습니다.》

《저두 인차 온다는게 좀 늦었습니다. 한데 저기 앉아서 얘기합시다.》하고 김용진이 리승기의 두손을 부여잡은채 그를 학생들이 앉는 낮은 널판자의자로 끌어갔다. 그는 만나는 반가움보다 어떤 다른 흥분에 떠있는것 같았다.

《제 이번에 신의주로 오지 못하구 삭주쪽으로 오다나니 송복섭선생한테 직접 들리지는 못했습니다만 제 얘기 좀 들어보십시오.》

평양에 올라간 김용진이 여기에 왔다간 제 사업정형과 함께 (거기에 대해선 리승기한테 아직 말하지 않았다.) 당중앙위원회에 송복섭의 사상적동요라는 과오와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새로운 자료라는것까지 그 실태를 보고하고 시급히 대책을 취하려고 하였다.

홍명희부수상이 알고 김용진을 불러 그가 현지에서 알게 된 정형을 들어보고는 이제 김일성장군님께서 전선시찰에서 돌아오시면 그이께 어떻게 보고해야 하는가, 사태가 그렇게 험악하게 번질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한데 그 이튿날에 홍명희가 다시 김용진을 불렀다.

《용진동무, 마침 어제 밤에 장군님께서 전선에서 돌아오시였습니다. 그이께서 오히려 먼저 용진동무가 청수에 갔다온 정형을 알고싶어하시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동무가 하던 송복섭동무의 얘기를 했더니 즉시 심의위원회를 조직하여 내려보내라고 하시였습니다.》

이런 전달에 이어 김용진은 숙연한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흥분에 겨워 이번에는 제 말을 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선 늘 이런 일에 참지 못하시고 지체하지도 않으십니다. 한번 가지신 믿음이 계실 때엔 더욱 그렇지요.》

그렇게 말하는 김용진의 얼굴을 리승기는 눈을 슴뻑이며 바라보기만 하였다. 김용진이 리승기의 한손을 꽉 잡아쥐며 말했다.

《이제 심의위원회가 그 기술문건문제까지 다 해명할겁니다.》

그제야 리승기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송복섭이때문에 그렇게… 이건 정말 뜻밖이올시다.…》

아직 한번도 만나뵙지 못한 장군님이시지만 남조선에 있던 때부터 열의인, 정의인이라는 말은 들었었다. 그분의 크고도 뜨거운 사랑을 송복섭이 아니라 곧바로 제가 받은듯 리승기는 불시에 눈시울이 뜨거워오른다. 폭탄이 무시로 터지는 전선길을 아랑곳없이 나다니시면서도 여기 깊은 후방의 안전지대에 누워있는 한 지식인의 신상에 벌어진 일을 한시도 지체할수 없는 문제로 보시는 그 인간애가 참으로 놀라왔다.

평생 이런 감격을 처음으로 체험하는 리승기는 그저 목구멍으로 치받치는 뜨거움을 삼키느라 아무 말도 더 물을수가 없었다. 백번 만나도 정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어찌하여 한번 만나보지도 못한 김일성장군님한테서는 이런 인간애의 뜨거움이 대번에 쏟아져내리는것인가.

문득 그한테는 폭격에 위험한 대도로보다 보다 안전할수 있는 산길로 오게 하느라고 장군님께서 자기들한테 친히 소발구를 보내주시던 그 가슴뜨거운 사연이 돌이켜졌다.

그때 자기는 남조선에서 들어온 한 학자가 북을 향해 떠난것을 다행으로 여겨서 보내는 고마운 인정의 손길로만 느꼈지 오늘처럼 그것을 숭고한 사랑으로는 느끼지 못했었다.

어째선지 이젠 송복섭한테 들씌워지는 그 보충자료라는것까지 아무 의미가 없는것으로 보이고 모든게 바로잡히리라는 희망만이 가슴속에 피여오르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자기와 송복섭이는 후퇴의 길에서 처음으로 그 소발구를 함께 타고온듯이 불현듯 착각되기도 하는것이였다.

리승기는 자기곁에 앉은 김용진을 매혹된 마음으로 새삼스레 자꾸 바라보았다. 한 인간을 위하여 청수에서 도소재지로, 거기서 중앙으로 밤잠도 못 자고 뛰여다니는 그가 꼭 옛말에 나오는 성인같기만 하였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장군님의 전사라는 그 의미로 생각되며 가슴이 자꾸 뜨거워졌다. 리승기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김용진은 처음부터 송복섭의 본심을 믿고 의심치 않고있으나 자기는 지난날의 깊은 연고에도 불구하고 제 연구보문철때문에 그를 고깝게 여기고 원망의 감정을 품었었다.

그런가 하면 이즈음에는 고작해서 동정의 마음이나 갖고있었을뿐 송복섭이를 두고 어떤 주위사람들이 너무 하다고, 너무나 무자비하고 몰인정하다고 그들을 속으로 타매하는 정도였다. 한데 김용진이는?… 여기서 리승기는 인간을 사랑하는 새로운 풍토에 제가 몸을 잠그기 시작했다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희열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곁에서 김용진이 약간 팔굽을 다쳐서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

《리선생, 밖에 나가 얘길 나눕시다.》하는 김용진의 말에 리승기는 교실안이 몹시 답답하게 느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밖에 나와 누런 풀덤불에 앉았다.

앞에는 다박솔사이로 새로 닦은 경사진 황토길이 내려다보였다.

김용진이 말했다.

《참, 한가지 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리재업동무가 불원간 외국에서 돌아온다구 합니다.》

《그렇습니까?》

《퍽 달라졌을겝니다.… 재업동문 여기서 전쟁이 한창인 때에 달려나오는군요. 제가 하는 합성고무연구가 당장에 필요하다구 그래서 나온다구 합니다. 사실 말해서 전쟁의 장기화에 대처해볼 때 그게 여간 필요한게 아니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리승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였다. 사위가 돌아온다는 반가움도, 그가 할 일의 중요성도 리승기를 별로 놀래우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는 아까부터 지속되여오는 충격의 파동속에 묻혀있음이 분명하였다.

그러자 김용진이 이제야말로 리승기를 놀래울 다른 일을 생각해낸것처럼 그답지 않게 약간 덤비면서 말했다.

《그리구 말입니다, 리선생, 이젠 그걸 실어나를수 있게 됐습니다. 실어올수 있단 말입니다.》

리승기는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그래도 김용진은 부르짖듯이 말했다.

《여기 행정부소장동무의 노력이 컸습니다. 그 자동차를 해결하느라구…》

《무엇 말입니까?》

리승기는 의아쩍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김용진은 성급해진 자기를 뉘우치듯 뒤더수기에 손을 가져갔다.

《참, 내 이거… 다른게 아니구 그 10만권의 도서를 실어올수 있게 됐단 말입니다.》

《뭐라구요?》

리승기는 놀라며 김용진한테 머리를 돌렸다.

김용진이 설명을 했다.

《그 흥남에 있는 10만장서를 실어온단 말입니다.… 목탄차지만 그게 어딥니까, 석대씩이나… 밤새 오면서 타산해보니 40대분은 되겠습니다. 그것만 실어오면야 웬간한 과학기술문헌들을 다 볼수 있잖습니까?!… 사실 이번에 방하민부국장동무도 수고많았습니다. 전시군수과제를 직접 안고있는 부국장으로서 화물자동차를 석대씩이나 내놓았지요. 역시 학자니까 책을 귀중히 생각하구 이 일을 소홀히 대하지 않드구만요.》

리승기는 아직도 얼떠름해있는데 김용진은 말을 계속하였다.

《우리 자동차들을 돌려세워서 탄약을 실어가겠다고 군대친구들이 길을 막을수 있지요. 그래 단단한 신임장을 내 여기 가졌습니다.》

김용진은 손바닥으로 왼쪽가슴의 호주머니우를 두드리였다.

그때 리승기는 당장 떠나기라도 할것처럼 움쭉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두 가겠습니다.》

《아니, 뭐라구요?》

이번에는 김용진이 놀라며 마주 벌떡 일어섰다.

《그건 안됩니다. 절대루 안됩니다.》

김용진은 손을 홰홰 내저었다. 흡사 부모를 따라나서는 어린애를 말리는 때처럼 김용진의 얼굴에는 지어 엄격한 표정이 흘렀다.

허나 학자특유의 순진성에 자신을 내맡기듯 리승기는 말하였다.

《왜 안된다는겁니까? 내가 꼭 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리선생이 꼭 가야 할 리유는 없습니다. 수시로 폭격이 닥치는 그 자동차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나 하십니까?》

《난 이래뵈두 후퇴때 만삭이 된 집사람과 올망졸망한 어린것들을 데리구 그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가슴을 펴보이는 리승기의 목소리는 짜장 자신있게 울리는것 같았다.

김용진은 좀 신중하게 대하려고 애쓴다.

《근데 그 가야 할 일이란 대체 뭡니까? 솔직히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자 리승기는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아니, 아니, 특별한건 없구요.》

그는 지금 내심의 큰 충동에 사로잡혀있었다.

이제껏 다소라도 정신적인 방황과 괴로움에 부질없이 몸을 맡기던 자신에 대한 반발과 함께 결단과 용기를 내여 어떤 적극적인것을 강행해보려는 의지의 몸부림인지 모른다.

마침내 김용진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긴 말입니다, 리선생이 가셔야 선후차를 가려 먼저 봐야 할것부터 실어올수 있지요.… 그렇습니다. 리선생이 꼭 가긴 가야겠습니다.… 한데 가만, 후퇴때 파편에 다쳤던 옆구리가 지금은 마치지 않습니까?》

《아니, 아무렇지두 않습니다. 자, 보시우.》

리승기는 어린애 진배없이 왼쪽주먹으로 바른편옆구리를 자꾸 쳐보이였다.

《됐습니다. 가만계십시오.… 아니, 아니, 하여튼 상급에 전화상으로라두 이 문젤 토론해봐야겠습니다. 아직은 내 혼자 결론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어쨌든 난 가구야말겠습니다.》

《하, 이렇게두 고집을 부리시다니.》

그 순간 김용진은 학자들이란 이런 생활상의 작은 고집들이 있어 그것이 모여서 결국 학문에서 무엇이든 탐구에 탐구를 거듭하여 끝장을 내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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