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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편

제 1 장

4


주위는 어둠에 잠기고 어디나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리승기는 집앞에 서서 차광막을 친 캄캄한 문들을 바라보다가 부엌문을 열었다.

암흑천지에서 광명으로 나서는 순간 그 불빛은 무던히도 밝아보였다.

정지간에 딸애가 앉아 소반우에 책과 학습장을 놓고 숙제를 하는중이였다. 단순히 그가 안경을 썼기때문이 아니라 후퇴의 그 어려운 길에서 12살의 나이에도 맏이의 구실을 한탓이였던지 지금은 아주 숙성해보이기까지 한다.

그 애곁의 노전구들에 두 어린 계집애가 아무렇게나 누워 잠이 들었다. 역시 둘다 안경을 쓴 아들애들이 사이방의 앉은뱅이책상에 같이 앉아있었다. 책을 읽던 큰애가 열려진 문턱에 다가서서 꾸뻑 인사를 하는데 책상의 다른 모서리에 앉은 둘째는 머리를 상우에 박은채 잠이 들어있었다.

리승기는 딸애에게 물었다.

《어디루 갔니? 어머니 말이다.》

《어머닌 소장선생네 어머니랑 부소장선생네 집엘 간댔어요.》

《거긴 왜?》

해놓고보니 멋적은 질문이였다. 리승기는 딸애가 챙겨주는 밥상에 마주앉아 묵묵히 숟갈질을 하였으나 통 음식이 입에 당기지 않았다.

딸애는 단연코 맏이의 구실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공부를 하다말고 어머니를 대신하여 아버지한테 하루동안 집안에 있었던 일, 즉 아이들이 학교에 가 무슨 점수를 맞았으며 집에 와서 무슨 장난질을 하다가 무엇을 깨여먹었으며 하는 이러루한 말을 어른스레 여쭈다가 아버지의 기분에 예민한 그 애는 문득 말을 멈춘다.

밥을 먹으며 그저 머리만 끄덕이느라 하던 리승기는 딸애의 눈길에 당황해지자 딴전을 부리듯 한옆으로 시선을 돌려 뽀야니 살이 오른 버들개지가 돋은 개버들묶음을 한웅큼 쥔채 엎드려 자는 계집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우리 막내를 바로 눕혀놓으렴.》

《그게 막내가 아니예요.》

자식들의 나이까지 자꾸 잊어먹는 아버지가 지금 두 아이를 헛갈린것쯤에는 이미 익숙해진듯 혜연은 별다른 기색이 없이 엎디여 자는 제 동생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 애도 이젠 5살인데요.》

《그래 5살이지.》

리승기는 그 말을 반복할뿐이다. 생각해보면 후퇴의 길에서 그때 2살이던 막내는 혜연의 등에 업혀왔으니 혜연한테는 그 애가 남다른 정을 불러일으킬것이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고생한 아이는 그 어려운 길을 노상 걸어서 온 저 5살짜리였다!

리승기는 아래웃방에 한구들 꽉 차고넘친 아이들을 바라보느라니 그 눈보라치는 험한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당장 이 애들을 깨워 또다시 행군대오를 쫓아가야만 할것 같은 이상한 착각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지나간 50년의 마가을과 겨울… 그때 아이들과 함께 겪은 일들이 오늘저녁따라 류별나게 기억속에 뚜렷이 되살아오른다.

길을 떠날 초기에 일행은 예상과는 달리 활기에 넘쳐있었다. 아이들은 괜히 소리도 질러보고 서로 뜀박질로 따라잡기내기까지 하였다. 허나 두말할것도 없이 제일먼저 맥이 빠진것은 아이들이였다. 일행은 지칠대로 지쳐서 서로가 남을 도와줄 형편이 못되였다. 저마다 제 한몸을 지탱해내는것, 이것이 하나의 원칙처럼 생겨났다.

어느날이던가.

12살난 딸애 혜연이 2살짜리를 업고 탈싹탈싹 걷다가 갑자기 후닥닥 냅다 밭뚝으로 뛰여갔다. 그러자 맥없이 걷던 몇명 아이들이 정신없이 그리로 달려갔다. 밭뚝에 남은 가두배추 한포기를 혜연이 제일먼저 뽑아서 머리우에 쳐들어보였다.

려경구소장이 도당부에서 받아온 신임장으로 일행은 별로 끼니를 번진적이 없건만 아이들은 몹시 허기져서 헉헉하였다. 밭뚝으로 달려간것은 일종의 경쟁심, 그것도 자기 반발적인 그런 심리인지도 모른다.

혜연은 가두배추를 흐트려 고갱이는 제일 어린 또래들에 나눠주고 겉잎 하나를 제가 씹어먹는다. 떫은 생도토리마저 아작아작 씹어먹는 판이니 차라리 가두배추잎은 고소한 맛이 날수도 있었다. 열살난 큰 아들애는 그래도 사내라고 이 모든것을 못 본척 하면서 자그마한 트렁크를 등에다 지고 수걱수걱 걷기만 한다.

리승기는 고토에서 당한 폭격때 파편이 스친 옆구리의 상처가 뜨끔뜨끔해나서 옆구리를 움켜쥐군 하였다. 어떤 때는 상처때문인지 신열이 났으나 그런 내색을 아이들한테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리승기는 혜연이 헛눈을 팔다가 엎어질가봐 그의 팔을 잡아주었다.

혜연은 아버지를 빠금히 올려다보며 종알거렸다.

《아부지, 소장선생님네 애는 정말 가벼워요.》

《그 앤 계속 설사를 해서 그런다.》

《우리 이 애도 설사를 해서 가벼워졌으면.》

제 등에 업힌 아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리승기는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면박을 줄수가 없었다.

리승기가 남몰래 눈굽을 씻지 않으면 안될 일은 그날 오후에 일어났다.

《항공! 항공!》

자주 울리는 공습경보였으나 습관될수 없는 목소리였다. 반복된다고 해서 다 습관될수 있는것은 아닌것이다.

사람들은 즉시에 산비탈의 바위밑에, 개울가에, 도랑속에 대피를 했다.

한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엎디여 사람들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눈먼 기총사격소리가 머리우에서 귀따갑게 울리고 몇백메터뒤에서 《쾅! 쿵!》하는 폭탄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주위가 잠잠해졌다. 하나둘 머리를 들고 주위를 살피다가 길에 나섰다.

리승기는 습관대로 눈으로 아이들의 수를 헤여보았다. 한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6살짜리 사내애가 없었다. 그는 그 애의 이름을 부르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이 애가 어디 있어?》

안해는 그 뚱뚱한 몸에도 뚱기적거리며 헤덤비였다. 혜연이 와락 공포에 싸여 울음을 터뜨렸다.

첫순간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저기 있다.… 얘야!》

안해가 그 애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리승기도 그쪽을 보았다. 도랑속에 엎디여있는 사내애는 움직일줄 몰랐다. 불길한 예감이 덮쳐들었다.

맨먼저 울음을 터뜨린 혜연이 그리로 달려갔다. 그의 등에 업힌 애는 영문도 모르면서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혜연은 이름을 부르며 도랑창에 뛰여들었다. 6살짜리 사내애는 귀와 눈을 손으로 막은채 엎디여있다가 그제야 움직이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얼혼이 나갔는지 멍하니 서있었다.

혜연은 주먹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을 못했다. 죽은줄 알았던 동생이 살아있으니 그의 눈물은 영영 잊혀지지 않는 눈물일것이였다.

어째서인지 이날의 폭격은 아이들에게 결사의 각오를 불러일으켰다. 4살짜리는 20리를 내처 걸었으니 이것은 길을 떠나서 최고기록인셈이다.

6살짜리 사내애는 제가 맡은 소임대로 주전자를 들고가는 일을 착실히 하였다. 왜 그가 죽어야만 하겠는가? 대오의 생명수를 공급하듯 음료수를 책임진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날 저녁참에 그 애는 20리를 아무 군소리없이 걸어온 4살짜리의 용감성을 표창하듯 맨 먼저 그애의 입에 주전자주둥이를 물려주었다. 계집애는 젖꼭지를 빨듯이 주전자주둥이를 걸탐스레 빨다가 그만 얼굴을 찌프리며 입을 떼고는 퉤퉤 하며 물을 내뱉았다.

리승기는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둘째가 특별히 열성을 부리며 오미자열매를 넣는다는것이 마가목열매를 넣어 결국 차음료를 영 망치게 만들었던것이다. 아이들은 지치고 맥빠졌지만 이때만은 깔깔대고 웃었고 어른들은 허거프게 웃었다.

혜연의 등에 업힌 두살짜리가 내려서 오줌을 누겠다고 벌써 몇번이나 거짓말을 한다. 너무 업히다나니 한번 잔등에서 내려보자는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저한테 한두번은 몰라도 자꾸 속을수는 없다는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반항하듯 팔과 다리 버둥질을 치는것이였다. 그 애가 오줌을 누게 되면 일행이 거의 5리길을 손해본다.

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워하던 안해가 놀랍게도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참을성과 견딜성이 어데서 생겨났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영악하고 용맹스러워보이기도 한다.

새생명을 몸에 품은 어머니한테는 의지와 생활력이 새라새롭게 생겨나는것인가. 아아, 인생의 헐치 않은 고개길이여!…

그런데 한번은 문제의 그 4살짜리계집애가 제 어미의 손을 잡지 않고 걷겠다면서 제절로 걸어갔다. 이상한 일이였다. 늘 어른들의 손을 잡고 왔는데 갑자기 웬일인가. 그도 이젠 힘들어하는 어른들의 손에 매달리지 않으려고 그러는지?

그런데 10리쯤 갔을 때였다. 그 애는 울상이 되면서 더는 걷지 못하는것이였다. 안해가 황급히 아이의 아래도리를 벗겨보더니 《에그머니!》하고 헌청난 소리를 했다.

오줌싼것이 얼어서 바지가랭이가 소가죽처럼 꽛꽛해졌는데 그것이 슬쳐서 살이 찢기고 피가 나왔던것이다.

그래서 손 안 잡히겠다고 한 4살짜리, 멈춰서면 욕을 먹을것 같고 자기때문에 온 가족이 떨어질가봐 겁을 낸것이였다. 그때 목구멍이 꽉 메이던 느낌이 리승기의 가슴속에 불시에 살아오른다. 그런가 하면 그 애로 하여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짐을 적게 실은 어느 지나가는 발구에 일행중에서 가장 어린 아이 몇명을 태워가기로 하였다. 캄캄한 밤이였다. 산들은 고요한데 별들은 추위에 오돌오돌 떨었다. 그래도 사방은 눈이 온 뒤로 훤해보였다. 리승기네 가족중에서는 4살짜리가 이 뜻밖의 행운에 선출되였다. 네 아이가 짐을 넣은 가마니우에 앉았다. 처음엔 좋아하던 계집애는 막상 제 혼자 먼저 떠나게 되니 울가망이 되여 두손을 앞으로 쳐들며 내리겠다고 발버둥질했다. 《네 동무들은 울지 않는데…》하고 제 어미가 겨우 타일러놓았다.

아이들한테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각기 이름을 쓴 마분지쪼각을 마치 짐짝의 표쪽처럼 옷에 쇠줄로 꿰매 달아주었다. 발구가 떠난지 얼마후에 일행이 떠났다. 새벽에 약속한 지점인 소비조합분점집까지 당도하였다. 그 집 아래목에서 네 아이가 자고있었다. 리승기는 문득 자기 딸애의 버선발에 손을 가져가며 안해한테 보여주더니 아무 말도 못했다. 안해의 눈에도 대번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계집애의 버선 신긴 발이 발구채쪽으로 나가 버선이 닳고 살이 깎이여서 피가 지절해있었다. 그런 아픔도 모르고 죽은듯이 그 애는 내처 자기만 했던것이다. 그 애는 지금도 자고있다.

(얘야! 네 고생두 막심하구나.…)

리승기는 외면하듯 머리를 돌리고말았었다.

그 애가 깨여나 아파서 발을 디디지 못하게 되여 당장 떠날수가 없었던 안타까운 심정… 11월 초순의 장진땅 밤바람은 매섭고도 사나왔다. 칼바람이 리승기의 낡은 코트자락을 물어뜯었다.

온갖 육체적고초는 일생 처음 겪어보는데도 이미 오래전부터 무척 습관되고 익숙된것만 같았다. 게다가 마음을 괴롭히며 갈수록 커가는 우려는 대오를 따라오지 못한 송복섭의 신상에 불길한 일이 생긴것이 분명했기때문이였다. 추위가 사정없이 몸을 얼쿠어서 손발이 제살같지 않았으나 리승기는 한사코 속으로 자신과 싸웠다.

(가자 북으로… 서울에서 북으로 떠나던 걸음, 북으로 가지 않고 어디루 가겠어?… 한데 지금 송복섭이는? 내 연구보문철은?… 하지만 송복섭이도 나도 남쪽으로 갈수는 없다.… 한데 우린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그때의 그 체험이 혼곤히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는 이 저녁에 다시금 되살아오르는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방금전에 회의에서 돌아온 리승기는 자기가 지금 그때보다 더 험한 길을 가고있는듯 한 착각에 휩싸였다. 당장이라도 아이들을 깨워가지고 그때처럼 먼길을 떠나야 할것만 같았다. 나이가 마흔다섯이 넘도록 아니, 장차로도 내내 이렇게 힘들게 인생로를 걷게 되는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리하여 리승기의 심정은 꺼지도록 우울해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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