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 회

제 1 편

제 1 장

2


마당에는 산업성 화학공업관리국의 부국장 방하민이 서있었다. 그의 두리두리한 얼굴에는 전시에 퍼그나 적응된듯 한 그 준엄한 낯빛이 변함없었다.

리승기는 평양에서 흥남으로 갈 때 산업성청사에서 그와 얼핏 인사를 나눈 뒤에 여기 와서 한두번 만난적 있었다. 이즈음 방하민은 청수에 자주 와서 공장의 전시생산과 연구소의 군수과제를 지도하였다.

《어서 들어오시오.》

리승기는 웃방으로 방하민을 안내하였다.

방하민은 견장없는 모직군관복차림이였다. 더워서인지 목단추를 끌러놓으며 그는 노전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으려다가 그것이 불편한지 한쪽무릎을 세우고 그우에 한팔을 얹었다. 리승기는 그와 마주앉아보기는 처음이였다. 노전구들우에 앉는 방하민의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보는 순간 리승기는 외국실습을 떠나간 려경구소장이 하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부국장동무의 체취가 좀 달라보이잖습니까?》

그때 리승기는 무심중에 대답했었다.

《글쎄요… 정치가니까…》

그러자 려경구가 껄껄 웃었다.

《아닙니다. 그는 정치가가 아니라 과학자입니다.》

《네?》

리승기는 가까운데를 더 정확히 보려고 애쓸 때의 버릇처럼 안경을 벗어들고 놀라운듯 두눈을 껌벅거리였다. 과학자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는 다시 안경을 바삐 쓰면서 상대방의 말을 기다렸다.

리승기의 의문을 풀어주려는듯 려경구가 말했었다.

《그는 세살때부터 쏘련의 까자흐스딴에서 자라났습니다. 입학하기 힘든 스웨르들롭스크종합대학 화학부에 뛰여난 머리덕분으로 들어갔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연구원을 통해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거기서도 학계에 나설수 있었으나 우리 나라의 과학을 일떠세우겠다고 해방된 조국에 달려나왔는데 당장 간부가 부족하다나니 부국장직책을 맡게 되였지요.》

려경구는 방하민에 대한 리해와 기대를 가진듯싶었다.

《작년에 쏘련에서 과학자대표단이 왔습니다. 그때 그들중에는 방하민부국장을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방하민이 산업건설에만 바삐 돌아치는걸 몹시 아쉬워했습니다. 본인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빨리 연구사업을 계속하게 되기를 바랐는데 전쟁이 일어났지요.》

려경구의 말을 듣고보면 그가 촉망되는 학자임에 틀림이 없다.

허나 리승기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과연 자연과학자가 정치일군이 될수 있으며 또 꼭 그렇게 하여야만 한단 말인가.

그런데도 려경구는 말했다.

《내 보기엔 그도 고분자화학이 전공인것 같은데 그는 화학일반을 포괄해서 보다 리론적인 저술에 몸바치구싶다 하더군요.》

《고분자화학 말입니까?》

그러면서 리승기는 더 묻지를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행정적인 직위에 있는 사람이면 의례 그 어떤 정치가로 생각되던 리승기였다. 새 조국건설에 일군이 부족하던 때라 방하민이 그런 정치적인 위치에 눌러있은것이 리해는 되면서도 어쩐지 정치와 학문이 한사람의 몸에 함께 있는듯싶어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학자이면서 정치에 그렇게 깊이 관련되여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지금 노전구들에 힘들게 앉아있는 방하민을 보자 리승기는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방안에 의자라도 있으면 그한테 권할수 있으련만…

마주앉은 그들사이에는 이젠 절기로 보아 별로 필요없게 된 쇠화로가 싸늘한 재무지를 담은채 그대로 놓여있었다. 아이들이 장난을 했는지 부저가락이 마치 곱하기표처럼 엇갈려 꽂혔고 두 부저가락의 손잡이를 련결한 가느다란 구리사슬이 호를 그리며 드리워져있었다. 방하민이 그 구리사슬을 손끝으로 다쳐놓자 그것은 춤추듯 흔들거리였다.

방하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리선생두 느꼈겠지만 여기 기술자들중엔 재간있는 사람들이 있군요. 종이로 수류탄뢰관을 만든다니 간단한 착상이면서두… 참 전쟁이 사람의 문명과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말두 있지 않습니까? 역설같기는 하지만…》

그 말에 리승기는 긍정하는것인지, 부정하는것인지 알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청수를 포함한 이 삭주지방은 급속히 전시생산의 중요거점으로 되여갔다. 화학공업부문 과학자, 기술자, 기능공들의 집결지로 된 청수화학공장이 더욱 그러했다.

방하민이 물었다.

《리선생이 절연물연구를 시작했다는게 사실입니까?》

《글쎄 한번 해보느라구 했는데.》

《그것두 아주 필요한 일입니다. 사람을 좀 붙여줄가요?》

《아니, 아직은 이렇다 할 실험결과가… 필요한 참고문헌들두 별로 없구…》

리승기는 그라도 만나면 에나멜수지를 두고 이런저런 론의를 해볼것 같았으나 막상 그를 만나자 그런 마음이 싹 없어지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허심하지 않은탓이라고 내심 꾸짖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방하민이 지루한 장마를 겪을 때처럼 《에 참, 전쟁이 언제 끝나겠는지. 미국놈들이 정전담판을 제기해나온걸 보면 인차 결판은 나겠는데… 이거 지금같애선 과학이야 생각이나 하겠습니까?》하더니 책상우에 얼핏 시선을 던졌다.

《연구보문들을 되살리느라구 그럽니까?… 이걸 하느라고 그새 리선생의 얼굴이 몹시 축간것 같다더니 사실이군요. 쉬염쉬염 하십시오.》

그러면서 방하민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연구보문원본이 송복섭부소장에 의해 분실되였다구 해서 그걸 지나치게 정치적문제로 보는건 반대입니다. 물론 같은 학자로서 의리를 지키지 않은 그에 대해서 리선생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건 저두 짐작합니다.》

리승기는 그 말을 부정하려고 했으나 방하민이 부랴부랴 먼저 이렇게 말한다.

《어쨌든 상부에선 사상적문제로 보니 어찌겠습니까. 기본과오가 있어놓으니 덧붙여지기마련이지요.》

방하민이 제 감정을 숨기려는듯 화로에 꽂힌 두 부저가락사이에 드리운 구리사슬을 다시금 흔들어놓는다. 그 흔들림을 지켜보며 방하민이 말했다.

《서필규부상동지와 삭주까지 〈윌리스〉차를 함께 타구 왔는데 나보구 연구보문철이 나졌는가 묻길래 그게 학술상으로 볼 때는 대부분 이미 공개된 보문들이여서 비밀이 아니라구 했습니다. 물론 보문철에 리선생이 발표하지 않은 귀중한 연구보문들이 있다는걸 알면서두 말입니다. 그러자 대번에 나를 정치성없는 사람이라구 비판하더군요.》

그러자 리승기의 눈앞에는 몇달전 당중앙위원회 3차전원회의 문헌접수토의때 내려왔던 서필규가 후퇴시기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가죽잠바를 입은채 진정할줄 모르는 몸가짐으로 방안을 왔다갔다하던 거동이 떠올랐다. 그때 공장지배인방에 틀고앉은 서필규한테 갔던 리승기는 의자에 앉으면서 말을 꺼냈다.

《제 연구보문철때문에 송복섭군이 아니, 송동무가 화를 당하는데 전 그게 말입니다.…》

서필규가 짐짓 정중성을 잃지 않으려고 한것은 한순간뿐, 그는 대뜸 리승기의 말을 중도에서 잘랐다.

《리선생한테 내 이미 후퇴시기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송복섭이한테 부탁한게 미타하다구. 한데 이젠 직공장마저 피살되였으니 알바가 없게 되였지요.》

리승기는 저도 모르게 손세를 써가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건 말입니다. 너무 생소한 연구보문들이여서 웬간한 사람은 보구두 모를수 있습니다. 그리구…》

그러자 서필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리선생, 제 녀편네의 난산이나 붙안구 돌아가던 송복섭이 연구보문철을 잃었는지, 적들한테 주었는지 하는 그 학자로서의 배신은 둬둔다치구 그래 지금 말하자는게 뭡니까? 도대체…》

《배신이라니요?》

리승기는 급히 중얼거리였다.

서필규가 손을 내저었다.

《됐습니다, 됐습니다. 지금 그 종이장들이 당장 우리한테 필요한건 아닙니다. 중요한건 연구보문이 아닙니다.》

《그럼 어째서?》

리승기는 다시금 말을 떠듬거렸다.

서필규는 전혀 말할 상대가 안된다는듯 불시에 목소리를 낮추며 설복하는 말투로 넘어갔다.

《순진하신 학자선생님한테 뭐라구 설명해야 할지… 그건 그렇습니다. 물론 그때 송복섭이 안해한테 갈수도 있습니다. 그가 적들한테 붙들린것도 피치 못할 사정이라구 칩시다. 한데 문제는 그가 찦차를 타구 공장안을 돌아다니면서 적들이 하자는대로 했다는겁니다.… 적들은 당장 공장을 돌리려고 한건 아닙니다.

그놈들은 정치적측면을 많이 노렸지요.

유능한 지식인이 공산치하에서 벗어나 자유세계를 돕기 위해 자진해서 나섰다는겁니다. 적들은 교활하다치구 송복섭이란 사람은 얼마나 비겁했습니까?》

《하지만 그가 적들을 따라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바루 그 소부르죠아적인테리의 이중성이 무서운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리승기선생.》

서필규는 득의만면해서 리승기를 바라보았다.

청원의 마음으로 리해와 동정을 바라던 리승기는 나중에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되면서 슬그머니 분격이 치밀어올랐다.

어린애를 다루듯 하는 서필규의 여유있는 태도에 더욱 화가 났다. 그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어쨌든 너무 지나칩니다. 너무 가혹합니다. 송동무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구… 송동무가 앓구있어서 그러지 내 연구보문두 그가 다시 흥남에 나가기만 하면 찾아낼겁니다. 이제 내가 나가도 그걸 찾아낼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리승기는 후들거리는 손을 그냥 허공에 든채 마치 제것이 아닌듯 그것을 어쩌지 못해하였다.

서필규도 마주 일어서서 두손을 량쪽옆구리에 짚은채 극력 자제하는듯 턱을 버쩍 추켜들고 볼편의 살을 실룩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발 선생은 그릇된 동정심과 인도주의를 버리시오. 아시겠습니까, 정치투쟁에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그 낡은 지식인의 근성은 좋지 않습니다.》

서필규가 무슨 말을 더 했던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리승기는 괜히 거기로 들어갔다고 몇번이나 후회하였을뿐이였다.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는 리승기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방하민이도 한숨쉬듯이 이렇게 말을 했다.

《어쨌든 그 연구보문이 나지면 좋겠는데… 그래야 리선생한테도 좋고… 난 우리들, 말하자면 학자들이 정치적으로 의심을 받는건 질색입니다. 그러니 그런 건덕지가 없이 사는것이 좋습니다. 그래 얼마나 되살려냈습니까?… 좀 봐두 괜찮겠습니까?》

《어서 그러시오.》

방하민은 그 두리두리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두눈을 더욱 쪼프리고 연구보문재생본을 한장한장 넘기며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을 기억해내여 종이장에 옮기느라 끙끙 갑자르며 모지름을 쓰는 리승기의 수고를 충분히 료량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인츰 거기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랬으나 방하민은 중도에서 보다말고 그것을 합쳐서 책상우에 도로 놓았다. 그는 얼굴에 동정하는듯 한 미소를 그리며 턱짓으로 벽가에 놓인 장농을 가리켜보였다. 옻칠을 해서 까맣게 윤기가 나고 번쩍거리는, 불변철로 나비따위의 모양을 오려붙인 고풍의 가구였다. 고마운 이 집 주인이 다른 집으로 옮겨앉으면서 아무 세간도 없이 여기에 온 리승기네를 위해 남겨놓은 장농이였다.

방하민이 말했다.

《이제 이게 다 되면 저 안에 깊숙이 귀중하게 간수해두십시오. 아이들두 손 못 대게 말입니다. 이제 전쟁이 끝나면 그때 가서…》

《그렇게 해야지요.》

리승기의 목소리는 힘없이 울리였다. 그렇다, 적어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것을 저 장농속에 넣어두어야 할것이였다. 더구나 이 연구보문들을 다 재생해놓는다고 해도 송복섭의 운명에 아무러한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는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방하민은 여전히 동정이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더구나 선생이 연구했다는 그 폴리비닐알콜섬유는 초산비닐이 있어야겠는데 그 초산비닐합성이야 쏘련두 일본두 미국두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리선생이 일본에서 연구해낼 때도 그 초산비닐은 도이췰란드에서 수입해온거지요?》

《그렇지요.》

《보십시오. 그러니 전쟁이 끝나도 당장 우리 수준에서는 어림두 없는 일입니다.》

수입재료에 의해서라도 전시에 필요한 에나멜수지나마 만들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울적한 심정에 사로잡혀 고민하던 리승기로서는 이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되면서도 도무지 그대로 새겨들을수가 없었다. 절절히 바라던 그 희망, 그 탐구가 전쟁이 끝난다 해도 얼른 성취될수 없다는것에 생각이 미친것이였다.

방하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하더니 《그 에나멜수지를 계속 추진시켜주십시오.》하고 말했다.

리승기는 알겠다고 대답을 해주면서 방하민의 뒤를 따라 마당에 내려섰다.

리승기와 분이는 손님을 바래우러 수수대로 얽은 울바자너머 밖에까지 나갔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