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회


제8장 물은 불을 이긴다

3


망이가 인솔한 농민군은 60리길을 단숨에 내질러 사정(오전 10시)에 공주앞산인 월성산에 이르렀다.

산행병마사 망이는 수천명의 농민군을 공주성에서 보이지 않는 월성산 뒤릉선에 잠복시켰다. 그는 농민군들에게 잠시 몸들을 쉬고 다음령을 기다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불을 피우거나 기치창검을 보이거나 공주성에서 눈치챌수 있는 서뿌른짓은 일체 삼가하라는 령도 내렸다. 그는 일격에 공주성을 타고앉을 심산이였다.

명학소에서 여기까지 줄창 달려온 농민군들은 헉헉 단김을 내뿜었다. 열기로 번들거리는 그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쁨, 엄숙한 기쁨이라고 할 그런 표정들이 어려있었다.

망이는 지팽이를 짚으며 공주성이 바라보이는 산마루로 오르기 시작했다.

가늘고 성긴 눈발이 멈출듯말듯 내렸다. 해는 비치지 않아도 눈덮인 산속은 설광으로 밝고 청신했다. 소나무에도 바위돌에도 묵은 풀대에도 마지막눈일지 모를 흰눈이 소북이 쌓였다.

진눈이 덮인 산탁은 미끈거렸다. 망이는 아직도 무릎마디가 띠끔거리는 다리로 힘겹게 산정에 올랐다. 쌀쌀한 바람이 눈가루를 날리며 휙 마주 불어왔다.

소나무우듬지너머로 백설천지로 변한 공주읍이 바라보인다. 눈아래로 월성산과 련이어 작은 야산이 솟아있고 그 기슭에는 명학소와 별반 다름없는 움막같은 초가집들이 오종종 들어앉았다. 그앞으로 넓은 논벌이 펼쳐졌는데 벌이 끝나는 곳에 바로 공주성곽이 둘러서있었다. 남문이 틀림없는 성문의 루각지붕이며 망루지붕에 눈쌓인것조차 가려볼수 있다. 원쑤의 아성은 지척에 있었다.

망이의 눈굽에는 날카로운 빛이 서렸다.

저 높은 돌담을 두른 성벽안에 철천의 원쑤인 백가신이며 량반토호놈들이 도사리고있을것이고 그놈들의 손발노릇을 하는 아전이며 관군놈들, 하인놈들이 득시글거릴것이다. 그리고 저 성곽안에서 을님이가 눈물을 흘리며 한많은 세상을 원망했을것이다.

을님의 아련한 자태를 생각하자 불시에 뜨겁고 부드러운 그 무엇이 온몸을 휩싸면서 격정이 솟구쳤다.

(을님이, 지금 어디에 있소? 이제야 온 나를 용서하오.)

마음속으로 조용히 뇌이는 망이의 눈굽은 뜨거웠다.

그러나 망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큰 싸움을 앞두고 마음이 유약해서는 안되였다.

성안은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망이는 지금 성안에서 타오를 불길을 기다리고있었다. 어제밤 달령성은 계룡산사람들을 데리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오늘아침 영문의 군기고에 불을 지르기로 되여있었다. 그 불길을 신호로 망이가 성을 공격하면 이때 성안에서 달령성이가 내응하기로 약정하였다.

그런데 아직까지 불길이 보이지 않는것은 무슨 까닭인가. 혹시 실책을 저지르지 않았을가. 아니 그럴수 없다. 달령성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달령성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필승은 필사에 있다고 죽기로 싸우는 사람은 반드시 이기는 법이다. 달령성은 해낼것이다.

망이는 데리고 올라온 어펑돌이에게 성안에서 불길이 치솟거든 자기에게 알리라고 이른 후 몸을 돌렸다. 그는 산마루를 내리면서 설사 달령성이 불가피한 일로 군기고에 불을 지르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공주성에 대한 공격을 낮까지는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사람들 있는데로 내려오니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망쇠가 마주 달려왔다.

《왜 무슨 일이 생겼나?》

망이의 침착한 물음에 망쇠는 격해서 대답했다.

《아, 글쎄 저 도치란 놈이…》

망쇠는 명학소를 떠날 때부터 도치의 거동이 수상쩍어서 달보더러 잘 살피라고 신칙했었는데 저놈이 여기 와서 몰래 빠져달아나는것을 붙잡았다고 하였다. 좀 닥달을 시키니 저 죽일놈이 별공사로 내려온 백가신의 아들놈의 렴탐군이라는것이였다.

《그래서 형님이 내려오면 목을 칠려고 기다리던중이우. 다른 사람들한테두 징계가 되게스리.》

망이는 예견하고있던 일이라 별로 놀라운 기색도 아니였다.

바로 이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놈이 달아난다!―》

모두 그쪽으로 황급히 머리를 돌렸다. 소나무들사이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키 작달만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망이는 첫눈에 도치란것을 직감했다.

《저놈을!―》

망이는 진대통을 훌쩍 뛰여넘어 그놈을 다쫓아 달려갔다. 하지만 따라잡으려면 거리가 멀었다. 도치는 보기와는 달리 족제비처럼 빨랐다.

망이는 긴장했다. 저놈을 놓치면 야단이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도치가 푹 꼬꾸라졌다. 옳지, 어데 걸렸구나.

그런데 도치는 다시 일어났다. 재차 달려가는 놈의 왼쪽다리 허벅지에서 화살대가 흔들거렸다.

그제야 망이는 마음에 짚이는것이 있어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장바 한기장되는 곳의 큰 참나무밑에서 활줄을 당기고있는 고비가 눈에 띄였다. 고비는 사내들무리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맞았다.》

《어, 누군지 과시 명궁이군!》

여기저기서 찬탄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망이도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렴탐군인 도치가 맞았다는것보다 아녀자인 고비가 그를 맞혔다는것이 더없이 기뻤다. 게다가 죽이지는 않고 달아나지 못하게 다리를 쏘지 않았는가. 고비가 저런 재간을 가지고있다니?… 우리 고비가 녀장수가 됐는걸. 망이는 어렸을 때처럼 고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잔등을 두드려주고싶었다.

사람들이 도치의 두팔을 량쪽에서 하나씩 갈라잡고 눈우로 질질 끌고왔다.

눈우에 꿇어앉아 허둥거리는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보던 도치는 망이를 보자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여오며 애걸했다.

《행수님, 한부락서 살던 정리를 생각해서 한번만 용서해주시우.》

사색이 된 도치는 찬눈우에 두손을 박고 연방 머리를 조아렸다. 벌써 주먹찜질을 당한 모양 도치의 주제는 말이 아니였다. 코에서 흐르는 피가 흰눈우에 뚝뚝 붉은 점을 찍어놓았다.

망이는 그가 밉다는 생각보다 가련하고 지어 처량한 느낌이 앞섰다. 무엇때문에 이런짓을 하려고 했는가. 저도 부곡민으로 량반놈들한테 천대받기는 우리와 다를바 없지 않았는가. 자기도 천대하던 바로 그놈들을 치려온 부락사람들이 목숨을 내대고 나섰는데 그 사람들을 해치려고 하다니.

그래도 한가닥 량심이란것이 있지 않겠는가.

《네 피나 묻히자고 우리가 칼을 든게 아니니 안심해라. 하되 우리가 어떻게 원쑤를 갚는가를 똑똑히 보아라.》

망이가 말했다.

제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쳐든 도치는 측은해하는 빛이 어린 망이의 눈에서 그의 말이 진담이라는것을 읽었다. 감읍한 도치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는 훌쩍이며 눈과 코를 비볐다. 가뜩이나 잔망스럽게 생긴 도치의 상판은 코피범벅, 눈물범벅으로 흡사 도깨비상통같았다.

보기가 끔찍스러워 고비는 눈살을 찌프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런 놈을 살려둬?》

망쇠는 직성이 풀리지 않아 날카로운 매눈을 부릅뜨고 씨근거렸다. 둘러선 다른 농민군들도 욕설을 퍼부으며 침을 뱉았다.

《이놈 보기두 싫다. 저리 가!》

달보가 아직도 눈우에 꿇어앉아있는 도치의 엉덩짝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망이가 먼저 그 기분잡치는 자리를 피했다. 그는 어펑돌이가 있는 산마루를 바라보며 들것이 놓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초조감을 느꼈다. 정말 달령성이가 일을 그르친게 아닐가. 상기도 기별이 없을 땐 무슨 사달이 생긴게 분명한것 같았다.

망이는 좌, 우군장들인 망쇠와 상두 그리고 각 령의 행수들, 기의 기두들을 자기한테로 불렀다. 그는 방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기다릴수는 없었다. 병쟁기를 가진 수천명의 사람들을 좁은 골안에 오래 숨겨두기가 곤난했다. 더우기 사위가 흰눈천지고보니 그들의 존재는 너무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실제로 성안의 놈들이 기미를 차리는 날엔 싸움이 아주 어려워질수 있었다.

모여온 통군자들은 망이앞에 가로놓인 진대통우에 눈을 털고 앉았다.

《형님, 큰 싸움을 앞두고 도치란 놈을 살려둬서 뭣하려우?》

망쇠가 상기도 못마땅한 투로 두덜거렸다.

《나도 생각이 있어 그랬으니 두말말게.》

망이가 이쯤 망쇠의 분기를 눌러놓고 다음말을 하려는데 어펑돌이가 산정에서 굴듯이 뛰여내려왔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온몸에 눈가루를 뒤집어쓴 어펑돌이가 망이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올라요! 불이, 불길이 솟구쳐요!》

《음!…》

망이는 눈에 정기를 띠우며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고수, 북을 쳐라!》

북채를 잡은 흥도리는 말등에 비끄러맨 북을 힘있게 두드렸다.

둥둥둥둥…

둔중한 북소리가 골짜기를 메웠다.

북소리에 뒤이어 천지를 진감하는듯 한 함성이 터졌다.

《와―아―!》

창을, 칼을, 쇠스랑이를, 몽둥이를 쳐든 농민군들이 숲속을 꿰질러 앞으로 내달렸다. 나무가지에서 떨어진 눈가루가 뽀얗게 흩날렸다.

골짜기를 빠져나온 농민군은 야산을 넘어 눈덮인 논밭을 내달렸다. 기폭이 날렸다. 검은 연기가 타래쳐오르는 눈앞의 공주성은 농민군의 기세를 더욱 돋구었다.

달려가는 들것우에 앉은 망이는 장검을 힘있게 앞으로 내저으며 호령했다.

《용전하라!―》

어펑돌이가 쳐든 《산행병마사》기폭이 연처럼 높이 날렸다. 그 곁에는 북과 징을 등에 얹은 말의 고삐를 잡은 흥도리가 달리고있었다. 북은 돌진이고 징은 후진이다. 흥도리는 승기가 나서 말북을 연방 두드렸다. 어펑돌이가 그를 돌아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들은 석전장에 나선 투석군소년들처럼 신바람이 났다.

창을, 칼을, 쇠스랑을 든 농민군은 마냥 앞으로 기승차게 내달린다. 무엇인가 귀전을 핑핑 스치고지나갔다. 앞에서 사람들이 쓰러졌다. 화살이 날아왔다. 성우에서 쏘아대는 화살은 비발치듯 했다.

적병들은 《산행병마사》기폭이 펄럭이는 망이한테 화살을 집중하는게 분명했다.

《어쿠―》

망이의 들것옆에서 달려가던 수염 덥수룩한 중늙은이가 가슴을 움켜쥐며 엎어졌다.

여기저기서 화살을 맞고 넘어지는 농민군의 수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벌써 슬금슬금 뒤걸음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대로 계속 앞으로 나간다는것은 무모한짓이란것이 어느덧 불을 보듯 뻔해졌다.

망이는 한자리에 잠간 멈추어서서 전장과 성벽을 살펴보았다.

성벽우에 좀전까지 없던 울긋불긋한 기폭들이 꽂혀 바람에 펄럭거리고 기세를 돋구는 북소리와 나팔소리가 울렸다.

성우에서 무수히 날아오는 화살중에 화전도 있는지 벌판의 풀더미들에서 불이 솟구치기도 하였다.

농민군들의 전진은 저절로 멈추어서고말았다.

다만 사냥군출신의 궁수들이 성벽우를 향해 화살을 날리고있었다.

망이는 생각했던것보다 오늘싸움이 더 어렵다는것을 깨달았다. 굳건한 성벽속에 들어앉은 놈들과 이런 식으로 싸워서는 결코 승산이 없다는것도 알아차렸다. 게다가 밖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지금 성안에서 관군놈들과 싸우고있을 달령성이네들도 곤경에 빠질수 있었다.

망이의 곁으로 달려온 두령들이 어쨌으면 좋겠느냐고 긴장한 눈길로 망이를 바라보았다.

망이가 침묵을 지키자 누군가 조심스럽게 성안의 놈들이 항복할 때까지 성을 둘러싸고있자고 말했다. 그러자 망쇠가 무슨 소릴 하느냐고, 그러는새면 다른 성의 량반놈들이 원병을 보낼게 아닌가고 눈을 부라렸다.

눈을 쪼프리고 기치창검이 펄럭이는 성벽우를 이윽히 쏘아보던 망이의 뇌리에 일순 천지신명의 계시와 같은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망이는 곧 두령들을 자기가까이 모이라고 한 후 그들에게 몇마디 수군거렸다.

《옳소. 그럴듯 한 계략이요.》

망쇠가 누구보다 기뻐하며 《산행병마사》기발을 들고 저쯤에 서있는 어펑돌이에게 빨리 도치란 놈을 끌어오라고 소리쳤다.

절뚝거리며 끌려온 도치는 겁기가 잔뜩 어린 두눈을 두릿거리며 눈이 깔린 맨땅우에 꿇어앉았다.

도치를 흘깃 곁눈질해본 망쇠가 짐짓 언성을 높였다.

《형님, 이대로 있다간 무리죽음을 당해요.》

《이럴 땐 36계줄행랑이 상책이지.》

누군가 망쇠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글쎄, 우리같은 무지렁이농군들이 어떻게 관군들을 당한다구…》

《아따, 오늘만 날인가요? 후날 군세를 더 크게 모아 쳐옵시다.》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소리인즉 관군과 더 맞서지 말고 빨리 달아나자는 수작들이였다.

《고정들 하오.》

망이가 드디여 입을 열었다. 그는 워낙 우리 군사들의 수가 적고 또 병쟁기도 다룰줄 모르니 오늘은 부득불 퇴군해야겠다고 말하고난 후 도치를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였다.

도치는 망이의 발밑까지 엉금엉금 기여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기의 목을 칠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지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도치.》

망이의 호령기있는 소리에 도치는 먹이를 바라는 개처럼 고개를 잔뜩 제쳤다.

《오늘 우리는 사세 막부득해서 물러가지만 너는 이제 저 성에 들어가 내 말을 전해라.》

《예, 예.》

당장은 목숨이 붙어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직 도치의 표정은 의혹과 기대로 긴장해졌다.

《오늘중으로 각 고을에서 징수해온 량곡을 농군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며칠후에 다시 쳐들어오겠다고 말이다. 알아들었느냐?》

《예예, 알았소이다.》

도치는 연방 머리를 조아렸다.

《자, 퇴군이다.》

망이가 누구에게라없이 말했다.

이어 흥도리가 때리는 퇴군을 알리는 징소리가 농민군들의 머리우로 울려퍼졌다. 그들은 느닷없는 퇴군령에 고개를 기웃거리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들사이로 두령들이 뛰여다니면서 저 징소리는 거짓퇴군령이니 이제 관군놈들이 성안에서 쫓아나오거든 맞받아 족쳐야 한다고 깨우쳐주었다. 자기들의 퇴군이 성안의 놈들을 끌어내여 족치기 위한 계책이란것을 알게 된 농민군들은 그럼 그렇겠지 하고 싱글벙글하였다. 농민군이 거짓퇴군령에 따라 성벽가까이에서 물러나는척 하고있을 때, 그러니 도치가 저만이 아는 통로를 따라 성안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성문우에서 북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그 북소리에 뒤따라 성문이 쩡 열리며 관군놈들이 새까맣게 쓸어나왔다. 놈들이 망이의 계책에 걸려든것이였다.

망이는 성안의 놈들이 다 쓸어나올 때까지 농민군들로 하여금 얼마간 더 뒤로 물러서도록 하였다. 망이는 자기의 단순한 꾀에조차 속아넘어가는 놈들의 어리석음이 너무도 가소로와 한바탕 치렬한 싸움을 앞두고도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백성들의 등살을 긁을 때나 잔꾀를 부릴줄 알았지 싸움에선 영 숙맥들이 아닌가.

《하하… 하하하…》

고개를 젖히고 폭소를 터뜨리는 망이를 보고 곁의 농민군들은 눈들이 둥그래졌다.

호탕하게 웃던 망이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눈굽에 날카로운 빛을 띠우며 흥도리에게 소리쳤다.

《고수, 북을 쳐라!》

징소리가 뚝 멎더니 이번에는 북소리가, 결전에로 부르는 힘찬 북소리가 눈덮인 벌판에 울려퍼졌다.

《와!―》

되돌아선 농민군들은 뒤쫓아오던 관군놈들을 맞받아 달려나갔다. 그제야 농민군의 계략에 속았다는것을 알아차린 관군놈들은 당황하여 그 자리에들 멈추어섰다. 놈들이 주춤거리는것을 본 농민군들은 더욱 기세가 올라 내달렸다.

들것우에 앉은 망이도 앞으로 내달렸다. 그의 곁에서 달려나가던 망쇠가 장검을 앞으로 내대며 소리쳤다.

《형님은 여기 머무르시우.》

했으나 망이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수가 없었다. 자기가 멈춰서면 그를 따르던 농민군들도 멈춰설것이 아닌가.

벌써 앞선 사람들은 놈들가까이 육박하고있었다. 멈출수도 늦출수도 없는 일기당천의 기세다.

망이는 눈을 쪼프렸다. 먼저번 장마철때 방천돌을 캐다가 돌사태를 일으켰던 일이 때아니게 떠올라서였다. 돌을 캐느라고 돌산에 올랐던 을님이가 그만 무거운 돌 하나를 아래로 굴러떨어뜨렸다. 그 돌이 밑의 돌을 치고 밑의 돌이 또 다음돌을 치면서 아래로 구르기 시작한 돌들은 드디여 온 산마루의 돌들을 골짜기로 사태져 쏟아져내리게 하였다. 그것은 멈출수도 막아낼수도 없는 무서운 힘이였다.

지금 농군들의 사태같은 저 기세, 저 힘이야말로 정녕 무엇으로 막을수 있을것인가. 농군들의 저 거센 힘이 바로 하나의 돌인 자기부터 시작되였다는 자긍심으로 그는 가슴이 뿌듯했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나선 고향사람들, 농군들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눈굽이 뜨거워지고 필승의 예감으로 마음이 설레였다.

(우리는 이긴다! 이겨야 한다!!)

이런 웨침이 마냥 흉벽을 꽝꽝 두드렸다.

량손에 칼을 쥔 망쇠가 성급히 달려나갔다. 긴 머리칼을 짤리워 거푸시하게 날리는 그의 머리는 어딘가 사자갈기같았다.

드디여 농민군과 관군이 맞붙었다.

악에 치받친 관군놈들의 일그러진 상판이 보인다. 공포에 질린 낯짝도… 그런데 저놈들이 환장을 했는가. 병쟁기 든 놈은 얼마 안되고 거개가 말짱이나 널쪽같은것을 들었고 지어 맨손으로 헤덤비는 놈도 있지 않는가.

망이는 별안간 주먹을 쳐들어흔들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아아! 달령성이 고맙소! 군기고를 불질렀으니 저놈들이 맨손뿐인 허재비가 됐구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창백한 소리, 암흑같은 비명소리…

때리고 찌르고 벤다. 몽둥이에 맞아 빠개진 허연 골통, 흘러내린 창자를 부둥켜안고 나자빠지는 놈들…

저 날파람스러운 농군들이 머리를 깎이우고 흐느끼던 《천민》들이란 말인가! 저 용맹스런 농군들이 불타는 곡식을 두고 땅을 치던 《상놈》들이란 말인가!

저게 누군가? 저 펄펄나는 사람이?!… 그렇지, 망쇠로군! 우리에서 놓여난 범 한가지가 아닌가!

관군들의 무리속에 뛰여든 망쇠는 량손에 잡은 칼로써 놈들을 삼단치듯 베여넘기였다. 그가 맹수의 포효성같은 소리를 지르며 길길이 뛰여오를 때마다 영낙없이 두세놈의 관군이 거꾸러지군 했다.

칼로는 성차지 않은지 망쇠는 창을 빼앗아쥐였다.

이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몫이다! 어떻게나 세차게 내질렀는지 관군놈의 등어리를 꿰뚫은 창대를 뽑느라고 갑잘랐다.

이건 불쌍한 아버지몫!… 망쇠의 눈에서는 불이 일고 눈물이 흘렀다.

농민군의 용맹스런 기상에 혼비백산한 관군놈들은 뿔뿔이 줄행랑을 놓았다.

망이농민군은 성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성안에서 말을 탄 한무리의 관군들이 쓸어나와 성안으로 돌입하려는 농민군들의 앞을 막아나섰다. 말을 타고 농민군들속에 뛰여든 관군놈들은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농민군들을 마구 치는것이였다. 놈들의 칼에 찍히고 말발굽에 채인 농민군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기승을 부리는 마군(기마병)들에게 쫓겨 농민군들은 차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창이나 칼로써는 말을 탄 관군놈들을 당해낼수 없다는것이 뻔해졌다.

《활을 쏘라!》

망이는 궁수들에게 호령했다.

그러나 워낙 서툰재기들인데다 잠시도 멈춰있지 않고 날뛰는 놈들을 바로 맞힐수가 없었다. 헛화살만 무수히 날릴뿐이였다.

승기가 오른 마군놈들은 함성을 지르며 더욱 사납게 날뛰였다. 놈들의 기세에 겁을 먹은 농민군들이 더러 창대를 버리고 도망치기도 하였다.

이런 경우를 예상하지 못했던 망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 이긴 싸움이 마군놈들때문에 뒤틀어지게 되지 않았는가. 그는 농민군들의 머리수만 믿고 마군같은것을 미리 준비시키지 않은 자신의 실책을 뼈저리게 느끼였다.

하지만 죽을수가 생기면 살수도 생긴다고 누군가 말을 타고 마군놈들의 배후를 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중에 흑두건을 쓰고 밤빛이 섞인 가라말을 탄 사람은 어찌 날파람스러운지 마치도 옛말에서 나오는 룡마가 달리는것 같았다.

(가만, 저게 달령성이 아닌가?)

망이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계룡산의 초적들이였다.

달령성은 마치 마상재라도 노는듯 달리는 말우에서 온갖 재주를 부리며 마군놈들을 치고 찌르는것이였다. 여러놈의 마군놈들이 한꺼번에 그를 둘러싸고 욱 달려들어 칼로 내리칠 때면 달령성은 어느새 말의 배밑에 난딱 붙어 놈들의 칼날을 피하였다. 놈들이 재차 칼을 쳐들새없이 눈깜짝할 사이에 다시 말등에 뛰여오른 달령성은 금을 긋듯이 칼끝으로 놈들을 쭉 훑었다. 네댓놈이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며 말등에서 나동그라졌다.

《이놈들아, 계룡산의 룡이다. 어디 맛을 봐라! 이놈들!》

달령성은 아예 말등에 발을 짚고 일어서서 놈들을 꿰질러다니며 칼로 마구 후려쳤다. 그의 무쌍한 용력과 재주에 덴겁한 마군놈들은 감히 접어들념을 못내고 엉거주춤거렸다. 이에 힘을 얻은 농민군들은 다시 와 함성을 지르며 놈들을 에워싸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부터 찔러 넘어뜨린 다음 땅에 떨어진 관군놈들을 죽여버리군 하였다. 그러자 공포에 질린 나머지 마군놈들은 말머리를 돌려 흙덩어리를 차던지며 사방으로 달아빼기 시작했다.

망이는 칼을 쳐들고 웨쳤다.

《성내로 진입하라!》

와아― 기세충천한 농민군은 세찬 물결마냥 성문안으로 달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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