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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 회


제7장 칼날아래 죽을지언정

7


노루를 쫓는 사냥개마냥 백태가 자기뒤를 다시금 추적한다는 불안으로 승방에만 들어박혀있던 무련은 며칠후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서다가 마치 봄빛처럼 눈부시게 밝고 따뜻한 빛발을 감득하였다. 바람도 한결 부드러웠다.

그는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해빛에 얼굴이며 목덜미며 손등을 내여맡긴채 토방우에 시름없이 앉아버렸다. 아지랑이 피여오르는 하늘도 봄날처럼 아롱다롱하였다.

심신을 노곤하게 만드는 해볕과 바람과 훈향에 취해버린듯 무련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하염없이 생각을 좇았다.

누군가 꽃피는 봄철은 처녀같은 계절이라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하다면 록음방초 우거진 무더운 여름은 누구와 같다고 할가? 녀인으로 치면 아마도 자식을 품에 안아 키우는 어머니와 같은 계절이라고 해야 옳을것이다. 그리고 소슬한 바람에 락엽이 지고 기러기의 울음소리가 처량한 가을은 지아비를 잃고 슬픔에 잠긴 과부와 같은 계절일것이고 인정머리없는 이붓어미와 같은 계절이라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계절도 륜회하고 인생도 륜회하지만 무련이 자기만은 처녀시절도 없고 지어미시절도 없는 녀인아닌 녀인으로 한생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레 마음이 애달파진다.

지금 몸에 걸치고있는 희뿌연 회색장삼처럼 자기 한생은 아무런 빛갈도 향기도 없는 칙칙한 재빛일것이다.

《예서 뭐… 뭘해?》

느닷없는 소리에 흠칫 놀란 무련은 고개를 쳐들었다.

보기에도 징그러운 융대가 히물거리고있었다.

그가 온것도 모르고있었던 무련은 외면한채 몸을 일으켰다.

《앉으라구. 무, 물어볼 말두 있으니께.》

융대는 비위살좋게 곁에 털썩 앉았다.

무련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무슨 오물이 곁에 놓인것 같아 자리를 피하고만싶었다. 융대는 보기만 해도 뱀을 밟았을 때나 송충이가 옷에 묻었을 때처럼 진저리가 쳐졌다. 지옥에 있다는 죽음의 사자들이 아마 이놈처럼 생겼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헤, 그렇게 고운 상, 상판을 가지고 기생노릇이나 할게지 하필이면 사, 산속에서 구, 궁상을 떨어…》

무련은 흉물스럽게 이죽거리는 융대를 쏘아보고나서 몸을 돌렸다.

《가… 가만.》

융대는 자기를 피하려는 무련을 급히 만류했다. 그리고는 의연히 히물거리면서 속세에서 부르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융대의 묻는 말에 무련은 걸음을 주춤거렸다. 그가 자기 이름을 알려고 하는것이 께름직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혜명이의 말을 들은 이후로 늘 융대를 경계해오던터였다.

융대는 얼마전 명학소근처의 전장을 돌아보고 오던 길에 공주성에 들렸을 때 별공사 백태한테서 홍경원의 비구니나 잡승들중에 명학소에서 탈가한 을님이란 계집이 있는가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찾아만주면 상금을 후하게 주겠다는 말에 헤벌쭉해진 융대는 선뜻 응해나섰다. 그는 내심으로 벌써 짚이는 녀인이 있었다. 백태와 같은 량반이 안달이 나 찾을 때엔 범상한 녀인이 아닐것이며 분명 인물이 뛰여난 절색일텐데 그런 녀인으로는 무련이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절간의 중들은 무련이같이 예쁜 녀자가 한생을 산속에서 중노릇하려는것을 괴이쩍게 여기고 꽃다운 젊음을 버리는것이 아까와 한숨을 쉬며 수군거리군 했다.

《아따, 이름 석자가 뭐 천냥금이야? 저, 집소식을 대줄려는데…》

집소식이란 말에 무련은 경계하던 마음이 허물어지고말았다.

《며, 명학소에 아배, 어매가 이, 있지? 아배는 오치연이구.》

무련은 아버지의 이름을 듣자 불시에 가슴이 꽉 옥죄였다. 한시도 잊지 않은 부모님들이였다. 자기가 집을 떠난 사이 늙은 부모들이 어떻게 살아가셨을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무련은 가슴이 찌르르 저렸다.

그는 얼굴에 간절한 빛을 담고 저도모르게 융대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괴물같은 융대는 히물히물 웃기만 했다. 그는 무련의 태도를 보고 그가 바로 백태가 찾고있는 을님이가 적실하다고 단정했다.

이때 마루밑에서 기여나온 얼룩고양이가 융대의 무릎우를 훌떡 뛰여넘어 마루우로 올라갔다.

《이크.》

융대는 흠칠 놀라 웃몸을 뒤로 젖혔다. 해빛쪼이는 따뜻한 마루우에 쪼그리고앉은 고양이는 노란 눈을 사르르 감고 졸기 시작했다.

《재수없게, 요놈 괘… 괭이가…》

독이 오른 융대는 기다란 팔을 뻗쳐 우악스레 고양이의 덜미를 움켜잡았다.

융대의 갈퀴같은 손에 쳐들리운 얼룩고양이는 애처롭게 야웅거리며 네발을 바둥거렸다.

융대는 왼손으로 고양이의 덜미를 잡은채 바른손으로 장삼자락을 헤치고 괴춤을 뒤지더니 장도칼을 뽑아들었다. 세치는 실히 될 길다란 장도칼을 무릎에 대고 쓱쓱 문댔다.

(어쩔려구 저럴가?)

무련은 은근히 가슴이 떨렸다. 그는 오도가도 못하고 못박아 선채 융대의 거동을 주시했다.

코등이 붉은 융대는 눈에 살의를 띠우고 아래입술을 빼물었다. 그는 고양이를 무릎우에 올려놓고 요동치지 못하게 대가리를 꽉 덮쳐눌렀다. 그리고는 날이 선 장도칼로 고양이의 크고 노란 눈알을 푹 찔렀다. 고양이는 금시 숨넘어가는듯 한 비명을 내지르며 발톱으로 융대의 장삼을 마구 할퀴며 버둥질쳤다. 융대는 장도칼로 고양이의 두눈알을 잔인하게 도려냈다.

《이젠 쇠경노릇이나 해!》하고 씨벌이며 융대는 고양이를 마당으로 훌 집어내던졌다.

땅에 떨어진 눈먼 얼룩고양이는 《야웅, 야웅…》 한자리에서 맴돌았다.

무련은 치를 떨었다. 정녕 못볼것을 봤을 때처럼 가슴이 후둑거리고 속이 메슥했다.

사람의 가죽을 쓰고야 어떻게 저처럼 잔혹한짓을 할수 있을가. 항차 목숨가진 만물에 자비를 베푼다는 사미가…

융대는 사미도 아닌, 속세의 인간치고도 더러운 놈이라고 하던 혜명의 말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정말 융대와 같은 사람들이 웅크리고있는 곳이라면 이 절간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이 사람들속에 있는 나는?…

눈귀로 까닭모를 눈물이 한방울 불쑥 솟아올랐다.

그는 융대와 더이상 마주서고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방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산속에는 밤이 빨리 찾아온다. 더우기 지금처럼 해가 짧은 철에는 석양볕이 나무의 상가지들을 붉게 물들이기바쁘게 어느새 밤새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구구구 꾸꾸거리는 산비둘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고뇌에 잠긴 무련의 마음을 못견디게 헤집어놓았다. 가물거리는 등잔불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일감을 손에 잡아야겠다. 그러지 않고는 속이 괴로와 견딜수 없었다.

무련은 장삼깃에 달 동정감을 다리려고 시렁에서 반짇고리와 함께 인두를 내려놓았다. 인두를 꽂으려고보니 싸늘히 식은 화로에는 재만 모록이 앉았다.

화로를 안고 밖에 나섰다. 마루에 옹크리고앉은 눈먼 고양이가 울음에 지쳤는지 가르릉 가르릉 담끓는 소리를 냈다. 비록 짐승이라도 어찌나 불쌍한지 모르겠다.

부엌으로 내려간 무련은 화로의 재를 털고 까만 숯덩이를 새로 담아놓고 부채질을 했다. 불땀이 좋은 참나무숯은 잠간새에 이글이글 피여올랐다.

화로를 들고 다시 방에 들어온 무련은 숯불속에 인두를 꽂아놓고 동정감을 펼쳐놓았다.

문득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무련은 혜명이가 오려니 생각하고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띠웠다. 심란한 때는 가까운 사람만 곁에 있어도 마음이 안정되는 법이다.

그런데 저벅거리던 발자국소리가 토방아래서 멎더니 숨죽인 음성으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내들의 목소리였다.

자기의 래력을 꼬치꼬치 캐여묻던 융대로 하여 까닭모를 불안에 잠겨 마음이 뒤숭숭해있던 무련은 불시에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가슴이 후둑거렸다.

누군가 마루에 조심스럽게 올라선다. 인기척을 내지도 않고 문고리부터 더듬어잡는 소리가 났다. 공포에 질린 무련은 얼굴이 해쓱하여 앉은걸음으로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

방문이 소리없이 스륵 열렸다.

《아!―》

무련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외마디 놀란 소리가 가늘게 떨려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탄식에 가까운 안도의 한숨소리였다.

문지방을 넘어선 사람은 다행히 주지 무광대사였던것이다.

무련은 높뛰던 가슴이 진정되는것을 느끼며 앉음새를 고쳤다.

방에 들어온 무광대사는 말없이 무련의 앞에 앉았다. 침묵의 심연이 그들사이에 가로놓였다.

이윽하여 무광은 거적눈을 들어올리며 늙은이의 눈길같지 않게 광택을 뿜는 눈초리를 무련에게 던졌다. 무련은 구름짬으로 비치는 석양볕같은 그 눈길을 피해 아미를 숙였다.

《백태라구 개경량반을 아느냐?》

느리고도 음울한 무광의 물음이였다.

《…》

꿈속에라도 나타날가 겁내던 원쑤의 화상, 그놈의 이름을 들은 무련의 가슴은 다시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량반이 널 잡으러 우리 가람에 와있다.》

무련은 가슴속에서 바위처럼 무거운것이 툭 떨어져내리는감을 느꼈다. 눈앞이 흐리마리해지고 귀속에서 벌레우는 소리같은것이 들렸다.

《뭐 그리 놀랄것 없다.…》

무광은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입술만 움직였다.

《그래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주지스님만… 믿겠사와요.》

무련은 간절한 애원이 깃든 눈길을 쳐들었다.

《나를 믿겠다…》

무광의 거적눈에 조롱기섞인 웃음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마음속으로 회심의 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오늘 융대한테서 백태가 찾고있는 을님이란 처녀가 바로 무련이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무광은 이미 짐작하고있었다. 하기에 그는 융대가 을님이 말을 입에 올린 처음부터 일체 발설하지 말라고 침을 놓았던것이다. 백태따위 풋내기가 감히 내 절의 계집을 노리다니…

무련의 미모에 탐을 내고있던 무광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제는 제손에 들어온 떡인데 어림없는 수작은 하지도 말라는 태도였다. 그리고 이런 기회에 위협하고 구슬리면 별로 공을 들이지 않고도 자기것으로 만들어버릴수 있을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혜명이란 년까지 고분치 않아 속이 요글거리던 때였다. 그러니 꿩대신 닭이라고, 아니 혜명이야 어디 을님이에게 견줄만이나 한가. 이거야 닭대신 봉황을 얻는셈이지.

부처를 등대고 개경의 고관대작들보다 더 호사를 누리는 무광은 자기의 늙어가는 몸이 못내 야속했다. 그런데 아릿다운 젊은 계집이야말로 늙음을 회춘케 하는것이 아니랴.

《나를 믿는다는 말인즉 나한테 의탁한다는것인데…》

무광은 아미를 다소곳이 숙이고앉아 가볍게 어깨를 떨고있는 무련이쪽으로 뚱뚱한 몸을 뭉기적뭉기적 움직였다.

무련이곁으로 바투 다가앉은 무광은 방바닥을 짚고있는 희고 걀쭉한 무련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붓끝같다는 말은 네 손을 두고 한 말인가보구나.》

무련은 흠칫 놀라며 그러나 조심스럽게 자기의 손을 무광의 손바닥에서 뽑았다. 그제야 무련은 거룩한 주지스님이 아닌밤중에 젊은 비구니의 방에 무엇때문에 왔을가 하는 한가닥 의혹을 품었다. 할 말이 있으면 자기 방으로 부르던지 아니면 낮에 올수도 있을것이 아닌가. 경계심으로 몸이 옹송그려졌다.

《무련아.》

무광의 목소리는 좀 떨리는것 같았다.

《너 나 하란대로 할테냐?》

《무슨 말씀이오이까?》

무련은 속눈섭이 길다란 눈길을 들어 무광을 주시했다.

《… …》

무광은 말없이 또 무련의 손을 잡았다.

《이러지 마시와요.》

무련은 낯이 화끈거림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속이 활랑거렸다. 그러자 문득 그의 뇌리에는 거룩해보이는 주지 무광대사도 실은 온갖 못된짓을 다하는 흉물스런 늙데기라고 울음섞인 소리로 하소하던 혜명의 말이 되새겨졌다.

초불빛에 번들거리는 대머리, 이상한 광택으로 번쩍거리는 거적눈, 유들유들한 볼편, 뚱뚱한 몸뚱아리… 무광은 징그럽고 흉물스러웠다. 무련은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불안스러운 긴장으로 몸을 떨었다.

무광은 바람부는 잎새처럼 떨고있는 무련의 마음을 풀어줄양으로 은근하게 말했다.

《온갖 악귀로부터 내 너를 살려줄테다. 부처님의 령험으루… 자, 내 방으루 가자.》

무련은 눈섭을 추켜올렸다. 그는 공포라기보다도 무엇인지 모르게 침통한 의혹의 빛이 어린 표정으로 무광을 응시하였다.

(밤중에 자기 방으로는 왜 가자는것인가? 가서는 어쩌자는것인가? 혜명이한테 했다는짓을 나한테두?!…)

무광의 입술우로 조소하는듯 한 미소가 느릿느릿 밀려나왔다.

《자, 어서 가자.》

그의 음랭한 목소리에는 위협기가 배여있었다.

무련은 눈에 알리게 와들와들 떨면서 비는듯 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지만 입술만 움직거렸을뿐 아무 말도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

그러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무광이 징글스런 웃음을 띠우며 무련이쪽으로 한발자국 다가섰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었다.

무련은 흠칫 놀라 진저리를 치며 기겁하여 일어섰다. 무광은 뚱뚱한 몸을 미미하게 떨며 또 한걸음 다가섰다.

무련은 얼핏 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여차하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내뛸 심산이였다.

《흥, 내가 혼자 왔을것 같으냐?》

무광의 거적눈에 먹이를 노리는 뱀눈같은 차거운 비웃음이 번뜩거렸다. 융대의 흉측스런 상판이 떠오른 순간 무련은 절망과 비애로 가슴이 꺽 막히였다.

무광은 또 가까이 다가섰다.

《오지 말아요!》

황급히 부르짖은 무련은 얼음장같이 퍼렇게 질려서 비칠비칠 뒤걸음쳤다.

그의 등은 차거운 벽에 부딪쳤다. 창백한 얼굴에서 피기잃은 아래입술이 바르르 떨었다.

무광은 그래, 가까이 다가서면 어쩔테냐 하고 조소하는듯 한, 위협하는듯 한 미소를 입술우에 흘리며 또 발걸음을 내짚었다.

무련은 불꽃인양 확 타오르는 커다란 눈으로 무광을 쏘아보며 벽에서 등을 떼고 구석쪽으로 닁큼 물러섰다. 그리고는 별안간 발곁에 있는 화로에서 이글거리는 숯불과 색갈이 같아진 인두를 쑥 뽑아들었다. 인두날은 야장간 불도가니속의 쇠물처럼 시뻘겋게 달았다. 이제는 공포도 불안도 멀리로 달아나버리고말았다. 공포심은 증오심으로 바뀌였다.

《엉?… 이년이?》

무광은 놀란 눈길을 치뜨며 엉겁결에 뒤로 물러섰다.

무련은 시뻘겋게 단 인두로 무광을 내리치거나 찌르려는듯 사납게 다가섰다. 악을 피해 물러서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악에 맞서 항거를 하는 무련의 눈에서는 불꽃이 튕겼다.

자기를 당장 죽일듯싶은 무련의 기세에 가슴이 섬찍해진 무광은 밖에 대고 황급히 소리쳤다.

《이년이 사, 사람 죽인다!…》

문을 걷어차며 융대가 방안에 뛰여들었다. 그는 살기가 뻗쳐 칼을 뽑아들고 무련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뜨거운 빛을 뿜는 인두를 쳐든 무련은 여전히 사납게 상대방을 쏘아보며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거리기를 날카롭게 지켜보고있었다.

무련의 발작적인 태도에 기가 질렸던 무광도 융대에게 힘을 얻은양 두다리를 벋디디고서서 무련이를 잡아먹을듯이 노려보았다.

쪼프린 두눈에서 야생적이고 표독스러운 빛이 번뜩거렸다.

무련은 그가 자기를 죽일지언정 결코 놓아주지 않으리라는것을 절감했다.

아, 어쩜 좋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절망의 쓰라린 비애로 그의 가슴은 비틀어짜듯 아프게 옥죄였다.

어째서 내 팔자는 이렇게 기구한가. 산천도망은 해도 팔자도망은 못한다는 말이 정녕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비천한 녀자들의 팔자는 다 불우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처럼 각박한 년이야 또 어데 있을가. 속세에서도 불가에서도 제 몸 하나 보존할수 없으니 이렇게 기막힌 일이 또 어데 있을텐가. 무엇때문에, 정녕 무엇때문에…

짧은 순간에 그의 머리속으로 길지 않은 인생의 갈피갈피가 주마등처럼 흘러지나갔다. 그것은 이리나 범같은 량반토호놈들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지름 써온 나날이였다. 현령이며 백태며 무광이며 이 모든 악귀같은 놈들이 자기를 못살게 군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그것은 얼굴때문이였다. 그들이 자기에게서 노린것은 바로 자색이였다. 인물고운것은 녀자의 기쁨이고 자랑이라고 하지만 자기는 남보다 예쁜 그 얼굴때문에 남에 없는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얼굴때문에 자기는 모멸과 수치를 당하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그는 남보다 뛰여난 인물로 태여난것이 한스러웠다. 자기를 이쁘게 낳아준 부모님들마저 원망스러웠다.

《인두를 놔라!》

악에 받쳐 뇌까린 무광은 그것을 빼앗으려는듯 무련이한테 접어들었다.

무련은 인두를 더 높이 쳐들었다. 그는 끝없는 저주와 증오와 분노로 불꽃이 튕기는 눈으로 무광을 쏘아보더니 눈을 꽉 감으며 그 시뻘겋게 단 인두를 자기의 얼굴에, 볼샘이 지군 하던 그 어여쁜 볼에 가져다대고 다림질하듯 우로 쭉 밀었다.

뿌지직, 살타는 소리와 함께 누르끼레한 연기가 얼굴을 확 덮었다.

무광은 악! 소리를 지르며 풍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는 허겁이 들린 놈처럼 벌렁벌렁 문쪽으로 기였다. 문을 떠밀고 밖으로 나간 무광은 혼맹이가 빠진 놈처럼 줄행랑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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