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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 회


제7장 칼날아래 죽을지언정

6



《우야 어허 억술레―》

《어야 허훠 억술레―》

떠들썩한 아이들의 호기소리가 동살이 퍼지기 전부터 부락의 골목들을 메웠다. 무슨 일에서든 아이들은 신명을 내기마련이다. 그들은 굶기를 밥먹듯 하여 눈들이 부엉이눈이 되여가지고도 요즘 날마다 버드내의 모래불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에 정신이 팔려 뛰여다녔다.

《애기줄당기기》로부터 시작된 부락간의 줄다리기승부가 이마즉에 와선 어른들의 승벽으로 번져져 명학소뿐만아니라 린근의 모든 천민부락들이 여기에 왼심을 쓰고있었다. 그도그럴것이 농군들은 줄다리기에서의 승패에 한해농사의 흉풍이 달려있다고 믿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승부를 가르는 오늘의 줄다리기는 단순한 세속풍속놀이만이 아니였으니 흥에 겨워 들뛰는것은 아이들뿐이고 어른들은 그 어떤 생활의 변화를 기대하며 긴장한 흥분속에 이날을 맞이하고있었다. 그들은 한많은 세상에 대한 누를길 없는 울분과 량반토호들에 대한 끝없는 분노를 이 줄다리기에 쏟아붓는듯싶었다. 출로를 찾지 못해 모대기는 이들의 항거의 힘을 이제 공주성으로 향하게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물이 되고 불이 될것이였다.

망이는 바로 이것을 노리고 정월대보름의 명절놀이였으나 근래에 와서 흐지부지해진 줄다리기놀이를 이해 정초부터 다시 벌려놓았던것이다.

날씨가 한결 풀리긴 했으나 계절로 치면 상기 겨울이여서 쌀쌀한 기운은 몸을 옹송그리게 했다.

머리에 수건을 동지고 누런 노루털등거리를 껴입은 망이는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며 버드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을 옮길 때마다 상한 다리가 몹시 저렸다. 그는 오늘 그곳에서 각 부락의 거사준비를 알아보고 미흡한것을 의논할 심산이였다. 또 그곳에서 엊그제 공주성내에 렴탐을 갔다온 달령성이와도 만나기로 약정하였었다.

애초에 정한 거사날도 이제는 며칠밖에 남지 않아 그는 무척 긴장하고 다망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풀무령감네 야장간에서는 오늘도 병쟁기를 벼리는 마치질소리가 귀따갑게 울렸다. 얼마전에 풀무령감은 망이의 장검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가 아이들 장난감같다고 던져버렸더니 칼날에 《산행병마사》란 글까지 새겨넣은 무게가 열근은 실히 될 큼직한 환도를 새로 벼려왔다. 풀무령감은 그 무거운 환도를 어떻게 휘두르겠느냐고 귀등을 긁었지만 망이는 그제야 마음이 흡족하였다.

《어이구, 오늘은 행수어른두 출도하시는군.》

지팽이에 몸을 싣고 상한 다리를 끌며 걷던 망이는 고개를 쳐들었다. 저쯤앞에 웬 아낙네가 커다란 솔가리단을 머리에 이고 섰는데 얼굴은 솔가리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나외다.》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것이 민망스러웠던지 나무단아래서 범잔녀의 걸걸한 목소리가 튕겨나왔다.

《허어… 무슨 나무를 이렇게 많이…》

《미리미리 장만해둬야 할게 아니우?》

범잔녀는 망이가 꾸미는 일의 속내를 다 안다는듯이 능청스럽게 말하고나서 서둘러 덧붙였다.

《내 가기 전에 풍물을 올리지 못하게 하시우.》

《아주머니없이 일이 되나요. 어서 빨리 나오시오.》

망이도 흥그럽게 응대했다.

범잔녀는 급해맞아 자리를 떴다.

장정의 지게짐으로도 한짐은 잘될 커다란 나무단을 이고 짚신은 손에 벗어든채 맨발로 언땅을 홰홰 활개짓하며 걸어가는 촌아낙네의 억세고 담찬 모습은 망이로 하여금 눈물겨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버들방천에서는 코등이 빨갛게 언 애녀석들이 묵은 풀에 쥐불을 놓느라고 배꼽을 드러내고 뛰여다녔다. 땅을 핥으며 퍼져나가는 빨간 불길뒤로 얼룩소잔등처럼 꺼밋꺼밋한 재터가 드러나군 했다. 파아란 연기가 풍기는 쌉쌀한 내내가 불현듯 망이의 가슴속에 봄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아직도 봄은 먼 저쪽에 있었다.

버들방천우에 올라서니 이마가 선뜩하고 겨드랑이가 축축했다. 그는 선채로 잠시 땀을 들였다. 다리를 상한 뒤로 노상 방에 누워있다보니 기력이 약해진것이 확실했다. 이런 몸으로 풀무령감이 벼려준 그 무거운 환도를 휘두를수 있겠는지 자못 념려스럽기도 했다.

뚝우에 앉아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여든 모래불쪽을 바라보던 망이는 난데없는 말울음소리를 듣고 그리로 시선을 옮겼다. 뚝아래 펑퍼짐한 공지에서 흥도리가 어펑돌이에게 말타는 련습을 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흥도리가 나타난것을 보니 달령성이도 벌써 와있는게 분명한데 그의 모습은 어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데 잠간 자리를 뜬 모양이라고 생각한 망이는 흥도리네가 하는양을 흥미있게 바라보았다. 늘씬한 밤색피말은 흥도리가 안장에 올라타면 고분고분 말 잘 듣다가도 어펑돌이한테는 곁에 다가서지도 못하게 사납게 굴었다.

주눅이 들어버린 어펑돌이는 흥심을 잃고 심드렁한 기색이였다.

《버새같이… 어서!》

말머리쪽에서 자갈을 틀어쥐고선 흥도리는 어펑돌이를 연송 재촉했다.

바지괴춤을 추슬러올린 어펑돌이는 겁기가 어린 눈으로 흥도리와 피말을 갈마보며 주춤주춤 다가섰다. 그러더니 두손으로 안장을 잡고 짚신발을 가까스로 말등자에 꿰였다.

그런데 갑자기 피말이 호용소리를 지르며 뒤발을 쳐들었다. 그 사품에 어펑돌이는 벌렁 뒤로 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도리는 허리를 꼬부리고 돌아갔고 웬 처녀애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망이도 빙그레 웃으며 처녀애의 웃음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뚝아래의 구새먹은 버드나무밑에서 조그마한 처녀가 그렇게 여무진 웃음을 뿜어던지고있었다. 웃음소리처럼 동그란 얼굴에 무척 오달져보이는 처녀는 어딘가 낯이 익었다. 한참 웃던 처녀는 웬일인지 버드나무줄기에 몸을 숨겼다. 아마 총각들의 말타기를 몰래 훔쳐보는 모양이였다.

흥도리는 엉뎅이를 툭툭 털며 일어나는 어펑돌이에게 다시 타보라고 했다.

어펑돌이는 실쭉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쳇, 사내라는게 말한테 쩔쩔매?》

흥도리의 핀잔에 어펑돌이는 시무룩해서 대꾸했다.

《내가 쩔쩔매? 말새끼가 못돼서 그렇지.》

《첨엔 다 그렇다니까.》

《아니야, 이것두 날 깨끼부락놈이라구 깔보는게지.》

《에, 못난소리두… 그러지 말구 다시 타봐. 짐승두 어리숙해보이는 사람한텐 더 사납게 굴거든. 그러니 겁먹지 말구 닁큼 올라앉아 고삐를 잡아야 해.》

《싫다.》

《언젠 배워달라구 성화를 먹이더니…》

《난 말탈 팔자가 아니야.》

《생뚱같이 팔자타령은…》

《나라법에 천민은 말을 타지 못한다구 하지 않았니.》

《나라법?… 에― 쓸개빠진 소리 작작해라. 네 이담 개경으로 쳐들어갈 때두 걸어가겠니?》

《뭐 개경?… 공주로 가지 누가 개경간다든?》

어펑돌이는 갑자기 정색해서 따지고들었다.

《야, 이 오줌으로 빚어만든 반편아, 공주를 치고는 개경까지 쳐야 우리가 완전히 이기는거야.》

흥도리는 턱을 쳐들고 쏘아붙였다.

《어쨌든 말은 안타겠다.》

어펑돌이도 볼멘 소리를 했다.

《좋두룩 하렴.》 하고 코를 찡긋거린 흥도리는 버드나무쪽에 대고 소리쳤다.

《꽃메, 이리 나와!… 까투리처럼 머리만 틀어박으면 안보이나? 펄럭이는 치마자락은 어떡허구.》

망이는 꽃메라는 이름을 듣고서야 그가 언젠가 역말에 갔을 때 본 처녀라는것을 알았다. 그 처녀애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의아쩍었다.

버드나무뒤에서 목을 움츠리며 나온 꽃메는 흥도리쪽으로 조촘조촘 걸어갔다.

《너 이 말 타구 한바퀴 돌아라.》

《싫어.》

꽃메는 고개를 외로 꼬았다. 낯선 총각 어펑돌이가 있는 앞이래서 쑥스러워하는양 같았다.

《그럼 역참으로 다시 쫓아보낸다.》

흥도리는 쌍까풀 진한 눈을 부릅뜨고 위협하는 시늉을 했다.

꽃메는 아니꼽다는 투로 흥도리를 흘겨보더니 머리를 흔들어 가슴앞으로 넘어온 머리칼을 어깨뒤로 보냈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없이 말곁으로 걸어가 자그만 손으로 말머리를 몇번 툭툭 건드리고나서 안장우에 사뿐 올라앉았다.

어펑돌이는 눈이 떼꾼해서 어린 처녀의 말타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이상도 한 일이다. 그처럼 갈개던 커다란 준마가 꽃메에겐 아주 고분하게 순종하니말이다. 어펑돌이는 신기한듯이 입이 하 벌어졌다.

꽃메를 태운 피말은 경쾌하게 걷기 시작했다. 하더니 묵은 풀과 너겁들이 깔린 넓은 강변의 공지를 환을 지어 달리였다. 꽃메는 말등에 난딱 엎드렸다.

망이도 꽃메의 말타는 솜씨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린 처녀가 언제 저런 담과 재간을 키웠는지 참으로 놀라왔다. 그러자 문득 고비의 생각이 났다. 모름지기 저 꽃메도 고비만큼 이악스런 처녀애일것이다.

《됐어, 내려.》

마상에 대고 소리친 흥도리는 말등에서 뛰여내려 말고삐를 자기에게 넘겨주는 꽃메더러 녀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꽃메는 또 목을 꼬았다.

《절간에 온 가시나는 중이 하란대로 한다는 말 몰라?》

흥도리의 추궁에 앵돌아진 꽃메는 뾰로통해서 걸음을 옮겼다.

처녀의 뒤모양을 쫓던 어펑돌이는 손바닥에 침을 뱉으며 피말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어린 처녀까지 보란듯이 타는 말을 체통이 그래도 사내라는게 안됐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는 말목을 두세번 툭툭 두드린 다음 등자에 발을 꿰듯마듯 돌연 객기를 부려 말등이 부러지게 안장우에 쿵 올라앉았다.

그의 만용에 깜짝 놀란 말은 또다시 길길이 뛰여올랐다. 당황한 어펑돌이는 말목을 꽉 붙안으며 죽을상을 하였다.

망이는 그 꼴이 하도 우스워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한참 호탕하게 웃던 망이는 문득 정색한 낯빛을 지었다. 좀전에 흥도리가 개경으로 쳐들어가야 한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엉뚱하다고만 할수 없는 무언가 깊은 의미를 담은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때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여보시오. 농군, 말 좀물읍시다.》하고 찾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상념에 잠겨있던 망이는 그 소리에는 응대도 없이 하던 생각을 계속했다.

《저어, 여기 명학소에 금비란이가 있다던데…》

《응?》

돌아보니 뜻밖에도 머리에 옥색두건을 쓰고 눈처럼 흰 저의를 입은 달령성이 그 사람좋은 웃음을 싱글싱글 띠우고 서있다. 그는 짐짓 어리광대처럼 우습강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익살을 부렸다.

《병마사어른께서 그간 귀체만강하셨소이까?》

《이 사람, 너스레를 그만 떨게. 마침 기다리던참일세.》

망이는 마주 웃으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는 달령성이를 대하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절로 웃음이 떠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망이는 그와 자주 만날수록 더욱더 마음이 끌려 그가 곁에 없으면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빈것 같은 허전한감을 느끼군 하였다.

성미가 변화무쌍한 달령성은 서리처럼 차고 매서운가 하면 또 때에 따라서는 익살도 곧잘 부리는 기지있는 젊은이였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즉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소리인데 아닌게아니라 그는 구름타고 다니는 신선마냥 세상만사를 도통한 사람의 배포유한 자세였다. 그는 적은것도 많은것으로, 슬픔도 기쁨으로 변경시킬줄 아는 재간을 곧잘 부리군 하였다.

가령 술좌석에서 누군가 《이크, 이젠 술이 반동이밖에 안남았군.》하고 낯을 찌프리면 《웬걸, 아직 반동이씩이나 남아있는데.》하고 응수했고 사람들이 무슨 걱정거리에 옴해있으면 《소나기뒤끝엔 무지개가 선다네.》하고 맺힌 마음을 풀어주기도 하였다.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대체로 이러루했다.

망이곁의 마른 풀우에 앉아 사람들이 모여드는 넓은 모래불이며 여느때와 달리 일찍 풀린 강물이며 서기가 어린듯 한 하늘이며를 바라보던 달령성이 문득 감회어린 어조로 물었다.

《형님, 우리가 서로 안지 몇달이나 되오?》

달령성의 느닷없는 물음에 망이는 좀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글쎄, 작년 추석께니 한 댓달 됐을가.》

《세상엔 말요, 평생 함께 지내면서도 사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첫 대면에 속정을 주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소그려.》

《무얼 새삼스럽게…》

《내가 왜 이런 소릴 하는고 하니 형님과 알게 된걸 임금과 사귄것만치나 기뻐서 그러는게요.》

《객적은 소린 그만하고, 그래 성내에 들어갔던 일은 어떻게 되였소.》

망이는 말머리를 돌렸다.

《형님, 내가 어느해생인지 알고있소?》

달령성은 여전히 딴소리만 하였다.

《무진생이던가…》

《잊지 않았군. 무진은 룡의 해라 그래 바람을 일으키고 구름을 몰아오는 룡이 범상할상싶소. 군영이며 무기고, 관청은 물론 고을원이나 상호장의 집 뒤간까지 손금보듯 환히 꿰들었소이다. 그런데…》

활달하던 달령성의 태도가 갑자기 침울한 기색으로 바뀌였다.

《형님, 놀라지 마시우.》

망이도 까닭모를 긴장을 느끼며 달령성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달령성은 망이의 시선을 피하며 띠염띠염 말했다.

《공주성에… 형수될 을님이란 녀인이… 없소이다.》

《으응?!…》

망이의 굵은 눈섭이 꿈틀했다.

《백가신의 집에서 도망친 모양인데 향방은 누구도 모르더이다.》

《음―》

망이는 심중이 복잡해졌다. 공주성만 치면 을님이를 구출할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이제는 그 일도 허사가 아닌가.

《형님, 내 오늘밤 다시 공주성에 들어가 백태란 놈을 아예 요정내고말겠소.》

달령성이 낮으나 서늘한 기운이 풍기는 소리로 말했다.

망이는 그의 손을 꼭 쥐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달령성이가 진정 고맙고 미더웠다. 이런 가슴아픈 소식을 듣고 괴로와할 자기의 마음을 눙쳐줄양으로 그가 좀전에 여느때와 달리 너스레를 떨었다는것이 헤아려졌다. 이런 속깊은 사람앞에서 자기 또한 용렬한 인간으로 보여서는 안될것이다.

《과히 걱정마오. 이번 거사가 을님이나 하나 구하자고 벌리는 싸움이 아니잖소. 숱한 사람의 생사를 건 싸움을 앞두고 어찌 한두사람의 일로 부심하겠소. 천지간에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언제건 만나게 되겠지. 한데 이 일은 당분간 우리 둘만 알고있기로 합시다. 그 부모나 다른 사람들을 벌써부터 상심하게 할 까닭이야 없지 않소.》

달령성은 이런 웅심깊은 사람을 두고 공연히 걱정을 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그럼 두령들을 불러놓고 의논들 합시다.》

망이는 태연한 어조로 말머리를 돌리고나서 여직껏 피말곁에서 서성거리고있는 어펑돌이를 소리쳐불렀다. 공주성안의 사정을 샅샅이 알게 되였으니 두령들과 마감일을 의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말고삐를 던져버린 어펑돌이는 망이가 앉아있는쪽으로 허겁지겁 뛰여왔다. 말타기신역에 어펑돌이의 낯은 검댕이칠에 땀투성이였다. 요즘 망이의 통인노릇에 흥이 난 어펑돌이는 분부만 떨어지면 제꺽 달려갈 잡도리였다.

《너 저기 모래불에 가서 망쇠형과 또 촌개소의 상두행수와 복수소의 춘길형을 여기루 좀 오시래라.》

《알았수.》하고 몇발자욱 떼여놓던 어펑돌이는 다시 돌아서더니 고개를 기웃거렸다.

《한데 저 부락의 편장들을 다 불러오면 줄다리기는 누가 통솔하우?》

어펑돌이가 념려스러워할만도 하였다. 망쇠며 상두며 춘길은 줄다리기경기에서 세 부락의 우두머리격인 편장들이였던것이다.

《줄다리기할 시간이 없을라구. 어서 오시래라.》

어펑돌이가 뛰여간 후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망이가 있는 곳으로 모여왔다. 마감으로 오치연이까지 오니 이번 거사의 주창자들이 다 모인셈이다.

키가 작달막하고 입이 무거운 촌개소의 행수 상두는 망이가 상한 다리를 가지고 여기까지 나왔다고 혀를 찼다. 그는 오치연이를 내놓고는 그중 나이많은 사람이였다.

《줄다리기를 하기 전에 우리 일부터 의논해야겠기에 찾았소.》

망이의 심중한 말에 빙 둘러앉은 여러 두령들은 숨소리를 죽였다. 어펑돌이는 제법 눈치빠르게 방천우를 오락가락하며 망을 보고있었다.

망이는 각 부락의 거사준비정형부터 알아보았다. 사람들의 기세도 좋았고 또 병쟁기도 대체로 갖추었다. 병쟁기래야 그간 각 부락의 야장간들에서 몰래 벼린 칼이나 창이였고 부족되는것은 쇠스랑이나 몽둥이들을 들고나서면 될것이였다.

이어 달령성이가 공주성안팎의 형편에 대해 자상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는 끝으로 지금 정월대보름명절때라 성안의 벼슬아치들이나 아전놈들, 관군놈들 할것없이 먹자놀이에 미쳐돌아가고있으므로 성을 치는데는 아주 안성맞춤한 시기라고 덧붙여 말했다.

《병마사가 참 적절한 때를 골랐소그려.》

복수소의 춘길이가 망이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아직은 군청으로 부르지 마시우. 혹 듣지 말아야 할 사람이 들어도 안되겠으니 말이외다.》하며 망이는 활달하던 나머지 좀 다사한축이라고 볼수 있는 춘길을 나무람했다. 망이는 《병마사》란 말을 들으면 어쩐지 거북스럽기만 했다. 며칠전밤에 여러 부락의 두령들은 모임을 열고 이번 거사의 주창자요 명학소 《산행계》의 행수인 망이를 농민군의 총두령으로 선출하고 그를 《산행병마사》로 부르기로 약정하였다. 그리고 좌군장으로는 명학소의 망쇠를, 우군장으로는 촌개소의 상두를 선정하고 지유《참모장》으로 계룡산의 달령성이를 선출했다. 또한 좌, 우군에 각각 두개의 령(대오)과 그밑에 여러개의 기(구분대)를 짜놓았는데 령에는 행수, 기에는 기두를 두고 그들이 령과 기를 통솔하도록 하였다.

《자, 그럼…》

망이가 모래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약정한대루 며칠후 스무이튿날 새벽에 여기 버드내 모래불에 모여 거사를 일으키도록 합시다. 이젠 각 부락에서 줄다리기마당에 다 온것 같은데 우리도 내려갑시다. 오늘 저기서 기세를 부쩍 올려야 그 승세를 안구 공주성을 치기두 쉬울거요. 허지만 명심할건 우리 거사를 공주성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거요.》

말을 마친 망이는 먼저 자리에서 움쭉 몸을 일으켰다. 그는 부축해주려는 망쇠를 뿌리치고 지팽이에 의지하여 방축아래로 내려가 절뚝거리며 모래불쪽으로 걸어갔다.

모래불에는 린근부락사람들은 다 모여온양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여기저기서 꽹과리며 징, 북을 때리는 풍물소리가 울렸다.

오늘 줄다리기승부는 명학소와 촌개소간에 벌리기로 됐는데 장바 두기장사이를 두고 벌써 두 부락의 길다란 아름드리줄들이 량켠에 놓여있었다.

몸이 근질거려 씨름판을 벌려놓은 젊은패들, 팔짱을 끼고앉아 이야기판을 벌려놓은 늙은이들,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 어린애를 업고선 아낙네들… 정녕 린근의 모든 부락사람들이 다 떨쳐나선듯 모래불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자, 탁배기요. 얼근한 탁배기 한사발씩 걸치구 힘들 쓰라구요.》

한쪽에서는 작달막한 술막주인 도치가 비린청을 뽑고있었다. 도치의 앞에는 여러개의 술방구리가 놓여있었다.

그는 요즘 줄다리기바람에 술장사가 잘되여 신명이 났다. 그도 처음에는 례년달리 모래불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것을 보고 무슨 작당을 하지 않나 해서 기미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별다른것은 없고 이전에 가끔 하던 부락간의 줄다리기놀이라는것을 안 다음부터는 들병장수질로 리속차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기에 그는 얼마전 공주성에 불리워갔을 때에도 부락에 색다른 기미가 없는가고 묻는 백태의 말에 굶어죽게 된것들이 놀음놀이에 미쳐돌아간다고 말했었다.

《한사발만 걸치면 힘이 갑절로 생기는 탁배기요. 자자, 어서 오십쇼오.》

그러나 도치한테 와서 술사발을 기울이는것은 정작 줄다리기승부에서 힘을 써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린근의 량인마을에서 온 파락호(불량배)나 각설이들과 같은 건달잡놈들뿐이였다. 죽물도 못먹는 천민부락사람들은 술 사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들은 배속에서 술벌레를 꿈틀거리게 하는 도치를 아니꼬운 눈초리로 쏘아볼뿐이였다.

망이는 도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앞을 지나갔다. 망이를 보자 도치의 비린청은 쑥 들어가고말았다.

각 부락의 편장들과 함께 망이까지 나타나자 기다리기에 지친 사람들은 어서 줄다리기를 시작하자고 벅작 떠들었다. 풍물소리도 더 요란스럽게 울렸다.

줄다리기의 승부를 보아줄 도감(심판)을 선정하게 되였을 때 이구동성으로 망이를 지목했다.

《허허, 나야 명학소사람인데 그러다 명학소편역을 들면 어쩌겠소?》

망이가 겸양하게 말하자 《아무렴 금비가 그럴 사람이요.》하고 촌개소의 한 늙은이가 두둔해나섰다.

《그럼 내가 도감을 봅시다. 하긴 나는 다리덕에 힘도 쓸수 없으니 도감자리가 마땅하기도 하외다.》

《도감, 이젠 시작해보세나그려. 수십리밖에서 구경온 사람들이 지루해서 견디겠나.》

검은 두건을 쓰고 깨끗한 백저포를 입은 낯선 늙은이가 재촉했다.

《아직은 좀더 기다려야겠소이다. 그리구 풍물두 좀 그쳐주시우.》

망이의 말에 괭창거리던 풍물소리도 뚝 멎었다.

《아니, 해가 중낮이 돼오는데 상기두 더 기다리라니?…》

《원님이 행차하시우 아니면 상호장이라두 출도하시우?》

짜증어린 웅성거림이 일어나는 속을 범잔녀로친이 헐썩이며 뛰여들었다.

《에구, 아직 시작안했구려.》

망이는 빙그레 웃으며 두 편장에게 이제는 시작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속에서 의혹에 찬 소리와 불만스러운 두덜거림이 일어났다.

《아니, 우리가 여적 저 안늙은일 기다렸단 말이요.》

《하두 오래 사니 별일 다 보는군.》

건드러지고 요란스러운 풍물소리가 사람들의 소요를 누르며 울려퍼졌다.

둥둥 두둥둥― 북소리가 울리고 삘리리― 피리며 생황소리에 쿵챙 쿵챙― 징소리, 꽹과리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어느새 명학소와 촌개소 량켠에서 천여명의 사람들이 목고로 아름드리 동아줄을 메였다. 동아줄우에는 편장과 함께 여러명의 장정들이 올라서서 먹임소리를 뽑았다.

《우야―》

그러면 줄을 멘 장정들이 먹임소리에 맞추어 느리고도 우렁찬 소리로 화답하며 경계선을 향해 느릿느릿 나아갔다.

《우야 허휙 억술레!―》

사위를 진동하는 풍물소리에 맞추어 사람들이 지르는 힘찬 호기소리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못 장엄한 기분에 휩싸이게 하였다.

드디여 두 줄은 줄끝의 구멍에 빗장처럼 지른 고딩이나무에 의해 하나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아름드리 원줄량옆으로 지네발처럼 가득 달린 동아줄을 잡고 늘어섰다. 그들은 숨막히는듯 한 긴장속에 망이의 신호를 기다렸다.

이윽고 망이가 커다란 징을 쾅 때렸다.

그러자 풍물소리며 사람들의 웅성거림 등 일체 잡음이 뚝 그치고 《우역싸!―》, 《우역싸!―》하고 힘쓰는 소리만이 강반에 들썩하게 울렸다.

《우역싸!―》, 《우역싸!―》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기내기로 당기지만 원줄은 움직일념을 않는다. 손톱길이만큼 끌어왔다가는 끌려가고.

《우역싸!―》, 《우역싸!―》

애졸이는 광경에 이제는 구경하는 사람들조차 손에 땀을 쥐였다. 지어 술막주인 도치까지 술사발을 손에 든채 자리에서 일어나 《우역싸》소리에 맞추어 왼심을 쓰는판이였다.

줄을 잡고 용을 쓰는 사람들의 목에는 손가락같은 피줄이 뻗치고 뻘겋게 상혈된 얼굴에 비지땀이 흘렀다. 편장들인 망쇠와 상두의 목청은 대번에 쉬여버렸다. 그랬어도 갈린 목청으로 의연 소래기를 질렀다.

《우역싸!》, 《우역싸!》

좀체로 끝나지 않는, 끌려가고 끌려오는 승벽에 흥분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줄다리기마당에 뛰여들었다. 허리굽은 로인이나 손가락빠는 아이들까지 자기 부락의 줄에 들어붙었다. 지어 심심풀이삼아 구경왔던 량인부락의 건달들까지 줄에 엉켜붙어 돌아갔다.

망이는 눈을 쪼프리고 생각에 잠겼다.

줄을 당기는 사람들의 이 하나로 된 마음, 이 의기를 공주성으로 향하게 한다면 얼마나 무서운 힘이 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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