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6장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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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이 원쑤를 어떻게 갚아야 좋겠소? 예?!》
눈을 감고 누워있는 망이의 머리맡에서 부르짖는 망쇠는 얼굴이며 눈이 벌겋게 상혈이 되였다. 손과 옷은 온통 검뎅이판이다.
《왜 말이 없소?》
망쇠는 눈을 지릅떴다.
《내 오늘밤 그놈들을 요정내고야말겠수.》
잠자코 눈을 감고있던 망이가 눈을 뜨고 망쇠를 쳐다보았다. 피기없는 얼굴은 아직도 병색이 완연했고 두눈에는 뻘건 피발이 서있었다.
그는 망쇠의 얼굴을 마주보기 괴로와 고개를 돌렸다. 좀전에 들것에 실려 다시 집에 돌아온 망이는 지금껏 말 한마디 없었다. 그는 을님이가 백태한테 끌려갔다는 말도 들었다. 너무도 가슴저린 슬픔에 잠긴 망이는 망쇠한테 위로의 말을 고를수가 없었다.
이윽하여 그는 망쇠쪽에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나직이 말했다.
《참게.》
《참다니? 제정신 가지고 하는 소리요?》
망쇠는 눈을 부라렸다.
그 눈을 마주보며 망이는 탄식같은 한숨을 내쉬였다.
실책은 새로운 일깨움을 주는 법이니 망이는 머리속에서 줄곧 번뜩이는 생각을 쫓았다. 그것은 백가신이나 백태와 같은 량반토호놈들과는 절대로 흥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였다. 그놈들은 사람의 가죽을 썼을지언정 결코 사람은 아니였다. 사람이 아닌 짐승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도 짐승으로 보일것이다. 짐승으로 보았기에 사람에게 할수 없는 갖은 잔혹한짓을 다하지 않는가. 짐승에게 쫓기우고 뜯기우고 먹히운다는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였다. 짐승에게 먹히우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이 짐승을 잡아야 했다. 짐승중에서도 악독한 짐승인 백가신의 부자와 같은 놈들을.
그놈들은 개였고 개중에도 미친개였다. 미친개를 살려두면 사람이 화를 입기마련이였다. 그러니 미친개를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했다. 깨닫고보면 너무도 단순한 이 리치를 예전에는 왜 생각치 못했던가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몽둥이를 마련하는것이였다. 미친개한테 맨손으로 접어들수야 없지 않는가.
이 생각들은 물론 지금 비로소 그의 머리에 떠오른것이 아니였다. 이마즘에 와서 그는 생각하는 품이 많아졌다. 더우기 백태한테 다리를 상하여 노상 누워있게 된 이후로는 생각하는것이 그의 유일한 일이였다. 맹목적인
망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망쇠에게 은근하게 물었다.
《자네 혼자 맨손으로 그놈들을 요정낼상싶은가?》
《맨손은 왜 맨손이요. 낫가락이라두 들고가지.》
《그래 낫가락 하나로 그 숱한 관병놈들을 당해낼상싶은가?》
말문이 막힌 망쇠는 버럭 역증을 냈다.
《그럼 어쩌자는거요. 형님은?》
망이는 대꾸없이 눈을 감았다. 눈을 자주 감는것도 요즘 그에게서 새롭게 생겨난 버릇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고 생각하고있지 않나.》
망이가 이렇게 대답하자 지금껏 딸을 잃은 슬픔으로 상심해 앉아있던 오치연이가 고개를 돌렸다.
《내 금년초에 개경에서 왔다는 한 벼슬아치의 병을 보아준 일이 있는데 그가 하는 말이 지금 서북지역에서 백성들이 들구일어나 큰 란리가 벌어졌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아, 그런 일이 있소이까?》
성미 급한 망쇠가 오치연의 말허리를 끊으며 다가들었고 망이 역시 목마른 사람이 물소리를 듣는듯 한 긴장을 느꼈다.
오치연은 망쇠와 망이가 자기 말에 대뜸 흥분하는것을 보더니 저도 자세를 고쳐앉았다.
《사람이 참는것도 한도가 있는 법이지 목숨이 경각에 이르면 무슨짓인들 못하겠소. 일인즉은 작년 9월에 서경의 백성들과 군사들이 들고일어나는것으로부터 부르터졌다는데 워낙 그 고장 사람들의 살림이 궁칩한데다 무신란이후루 개경에서 내려오는 무신량반놈들의 학정에 더는 살수 없어 싸움을 벌렸다는구려.》
《서경이면 큰 도회진데 아무렴 도회지 량민들의 살림이 여기 우리 깨끼부락의 천민들보다야 못하겠소.》
이번에도 망쇠가 또 오치연의 말중간에 끼여들었다.
《이야기를 마저 들으세나그려.》
망이가 오치연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망쇠를 나무람했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망쇠의 말이 옳다고, 정작 들고일어나야 할 사람들은 자기들과 같은 천민들이라고 자탄하고있었다.
오치연이도 자기 말에 그 어떤 충동을 느꼈는지 눈빛이 날카로와졌다.
《서경에서 이렇게 백성들이 들구일어나자 이 소식을 들은 서북지역의 근 마흔개나 되는 성에서도 호응해서 그 기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오. 그들은 개경으로 통하는 절령을 막아치운 후 도처에서 개경량반놈들과 그곳 토호놈들을 쳐죽이고 창사를 터쳐서는 쌀과 피륙들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구려. 그래 그곳 백성들은 살판이 났다구 희희락락하는 소리가 그치지를 않았다지 않소. 바빠맞은 개경에서는 관군들을 무수히 내려보냈지만 아직도 평정하지 못해 쩔쩔맨다는구려. 그 량반 말이 지금 개경은 텅텅 비여 도적떼가 궁궐을 털어가도 막아낼 군사 하나 없다질 않소.》
오치연의 말이 끝나자 망이가 《아!―》 하고 황소의 영각소리와 같은 비탄의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쳤다.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었던
《그런 얘기를 왜 이제야 하시우.》
가슴속격정을 누를길없어 매눈을 번뜩거리던 망쇠는 별안간 망이의 몸우에 어푸러지더니 그의 어깨를 두손으로 꽉 잡아흔들며 부르짖었다.
《들었소 형님, 우리가 이게 어디 사람이요!》
오치연이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망쇠의 팔을 잡으며 운신 못하는 병자의 몸을 그렇게 마구 흔들면 어쩌는가고 핀잔했다.
망쇠는 망이의 어깨를 놓고 돌아앉더니 《헉―》하고 고개를 떨구며 울음소리를 냈다.
망이의 눈에도 물기가 번들거렸다. 그도 망쇠의 심정과 다를바가 없었다. 남들은 량반놈들과 큰 전쟁판을 벌리고 몇해째 싸우고있는데 자기는 이제야 고작 백가신이와 같은 놈을 가만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는 너무도 용렬한
(그렇다. 공주성을 치자. 공주성에 도사리고앉은 백가신이와 같은 량반토호놈들을 치자. 그것도 일격에 타고앉아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의 힘이 커야 하고 또 시기를 잘 택해야 할것이다.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것이고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것이다.)
오치연이가 전해준 서북농민군의 싸움에 대한 소식은 마치도 물곬을 찾지 못해 출렁이는 물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은것과 같이 망이의 사색을 줄달음치게 하였다.
《형님!》
망쇠가 걸그렁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우리두 당장 거사를 합시다.》
《덤비지 말게.》
망이의 눈에서는 범상치 않은 빛이 번뜩거렸다.
《그놈들과 우리는 물과 불처럼 어울려 살수 없는 법일세. 그러니 자네 말대루 그놈들과는 생사의 결판을 내야 하네. 앉아죽을수는 없는노릇 아닌가. 허나 매사에 때가 있는것인즉 함부로 덤빌 일이 아닐세.》
《그것이 언제요?》
저으기 긴장되고 아울러 침착해진 망쇠의 물음이였다.
《오래진 않을걸세. 그리구 때란 별것이 아닐세. 놈들을 칠 몽둥이만 마련되면 될테니까.》
망쇠는 구레나룻이 더부룩하고 눈확이 우묵해진 망이의 얼굴을 신뢰의 정을 안고 바라보았다.
도량이 넓고 궁냥이 깊은 망이가 그 몽둥이를 마련하리라는 믿음이 가슴속에 든든히 자리잡은것이였다. 그리고 자기도 그 몽둥이를 마련하는데 한몫 하리라는 결심으로 가슴속에 기둥을 세웠다.
고비가 찾아왔다. 너무 울어 두눈이 부은 고비는 방에 들어와 망이와 망쇠를 보더니 폴싹 주저앉으며 또 서럽게 흐느꼈다. 설음이 북받쳐 한참 울던 고비는 눈물을 훔치고 얼굴을 들었다.
망쇠도 눈물이 그렁하여 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 둘 다 집을 비우면 어쩌니?》
고비를 가볍게 나무람하는 망이의 목소리도 물기에 젖어있었다.
《어매랑 동네어른들이 와계시어요.》
울먹이며 대답한 고비는 잠시 우물쭈물했다.
《와그러니?》
《저 우리 집에 렴을 할 베쪼박 하나 있어야죠. 그래서 어매가…》
자기 집 슬픔에만 잠겨있던 고비는 망이를 대하자 을님이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또 목이 메였다.
《어서 가져가렴.》
고비는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농문을 열고 가는 올로 촘촘히 짠 베천을 꺼내였다.
《이건 오라버니옷을 지으려던건데…》
고비는 죄송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는 망이가 장가들 때 새옷을 지어주려고 그간 남몰래 짠 베를 농속에 깊숙이 건사해두었었다. 그런 베천을 자기 집 초상에 쓰려니 미안스러웠다.
그러는 고비를 망이가 탓하였다.
《우리 집에 그런 베천이 있는줄 몰랐구나. 원통하게 세상떠난 늙은이에게 명주로 렴습을 못해줄망정 베천이야 아낄게 있니. 어서…》
《고마와요.》
베필을 품에 안은 고비는 고개를 다소곳하고 눈굽을 훔치며 몸을 일으켰다.
망이는 음울하게 앉아있는 망쇠에게 얼굴을 돌렸다.
《올겨울에 나루배를 수선하려구 널판을 좀 구해둔게 집뒤 처마밑에 있는데 그걸 가져다 관널루 쓰도록 하게. 내 몸만 이렇지 않았으면…》
망이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찌프러졌다.
《알겠수.》
망쇠도 고비를 뒤따라 몸을 일으켰다. 어깨를 처뜨리고 아래방으로 내려가던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망이를 돌아보았다.
《거 을님이는 빼앗아와야겠수.》
《초상치를 걱정이나 하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망이의 가슴은 을님에 대한 생각으로 뭉클해졌다.
악귀같은 놈들이 을님이를 곱게 돌려보내지 않을것은 뻔한 일이였다. 놈들의 손에서 그를 빼앗아오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때까지 을님이의 신상에 변고가 없어야겠는데… 을님이에 대한 불안으로 망이의 가슴도 저려들었다. 을님이를 찾기 위해서도 하루빨리 공주성을 쳐야겠다는 망이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내 초상집을 좀 돌봐주리다.》
오치연이도 자리를 일었다.
《그럼 한결 마음 놓겠소이다.》
망이는 자기 걱정보다 남의 걱정을 앞세우는 오치연이가 정녕 고마왔다.
부락사람들이 망이를 찾아왔다. 모두 침울하고 암담한 기색들이였다. 수염만 쓸어만지고있던 웃말에 사는 사냥군령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사람, 이젠 어쨌으면 좋겠나?》
하루에 말 두마디를 하면 많이 했다는 소리를 듣는 그가 이렇게 가슴답답한 소리를 하는것을 보면 앞일이 난감한게 분명했다.
《어쩔게 있나요. 굶어죽는수밖에…》
달보가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나서 혀아래소리로 웅얼거렸다.
《차라리 관가의 령대로 조세를 바쳤더라면 다문 몇되라도 생기는건데…》
망이는 눈을 꾹 감았다. 벼를 베지 말라고 한
그는 마을사람들앞에서 뼈저린 죄책감을 느꼈다. 놀틀을 논으로 풀자고 추동질해 사람들을 고생시킨것도 자기요, 또 신답의 벼를 베지 말라고 부추겨 쌀을 깡그리 태워버리게 한것도 망이 자기였다. 그러니 결국 부락사람들에게 상상못할 고역을 치르게 하고도 굶어죽을 판국에 몰아넣은 장본인이 바로 자기가 아닌가.
망이는 무서운 동통을 느끼였다. 그것은 온몸을 쑤시는 육신의 통세보다도 더 모진 고통이였다.
《그래, 쌀 몇되 바라고 개, 돼지노릇을 하겠나?》
사냥군령감이 달보에게 격해서 말했다.
《거 엇뜰거리지는 마시우. 나두 하두 답답해서 해본 소리지.》
달보가 시틋하게 말했다.
《거 듣자니까 서경에서랑 들구일어나 벌써 몇해째 량반놈들과 큰 싸움을 한다는데 우리두 한번 들구일어나는게 어떠와요?》
구석에 앉아있던 어펑돌이가 말참녜를 하고나서 눈을 꿈쩍거리며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늘 어리숙해보이던 그가 이런 담대한 소리를 하는것이 놀랍고 신기해서 모두 벙벙해졌다.
《딴은 그래, 벌도 침이 있거늘 죽여줍소 하고있을순 없지.》
달보가 문득 주먹으로 무르팍을 때리며 기를 올렸다. 그는 자기는 왜 미처 이런 궁냥을 못했는가 하는 민망함과 함께 어펑돌이가 꽤 의문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한번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후환이라도…》
누군가 말끝을 흐리며 중얼거렸다.
《아따 명줄이 끊어질 판국에 후환까지 생각할게 있나. 이제는 나라창사라도 털어다 먹구볼판이지.》
《그렇긴 한데… 큰일은 큰일이야.…》
달보의 말에 고개를 기웃거리는것은 야장쟁이 풀무령감이였다.
입풀무령감이 이제야 입을 벌리는것을 보고도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령감 의향은 어떠시우?》
묵묵히 앉아있는 사냥군로인에게 말을 건 달보는 자문자답하였다.
《하긴 령감은 겨울에 사냥을 하겠다, 산간에 뙈기밭도 적잖게 일구었다니 우리처럼 굶을 걱정은 없겠지요만.》
달보의 빈정거리는 소리에 사냥군로인은 수염이 덥수룩한 턱을 추켜들고 한번 코웃음을 쳤다.
《흥, 임자보다 등깝대기가 더 벗기우는건 나야. 임자처럼 땅이나 주무르면 맘성이나 편하지. 공주놈들의 털가죽성화에 정말 내 몸뚱아리에 털이 돋는다면 그거라두 벗겨 바칠판일세.》
《그러게 오늘이라두 공주놈들을 치자는게 아니요.》
《부지깽이 하나 휘두를줄 모르는게 큰소린 탕탕 혼자 치는군. 민란두 병쟁기가 있어야 하구 또 그걸 쓸줄도 알아야 하는게여. 뭐 공주성이 울타리없는 우리 부락만 한줄 아나?》
《좌우간 달보 자넨 셈판이 좀 없군그래.》
풀무령감이 그답지 않은 신중한 기색으로 또 핀잔을 주었다.
그 말에 얼굴이 벌개진 달보가 긴목을 뽑았다.
《아, 그래 내 말이 틀렸소?》
《글쎄 덤비지 말라는데. 불상사를 당하구두 참고있는 망쇠를 보란 말이여. 덤빈다구 될 일이여?…》
《그 사람 망쇠를 건드리진 말게.》
사냥군로인이 망쇠를 두둔해나섰다.
《망쇠는 우리속에 갇힌 범일세.》
그의 말을 그럴듯하게 여긴 어펑돌이가 벙싯 웃고나서 눈을 감고 누워있는 망이를 눈길질하며 물었다.
《그럼 이 형님은 무어요.》
《그 사람이야 보는것처럼 잠자는 사자지.》
《그러니 잠자던 사자가 깨여나고 우리속에 갇혔던 범이 놓여나면 굉장하겠구려.》
《암, 여부있나.》
방안의 사람들은 저희끼리 떠들었다.
사이벽아래에 누워 눈을 감고있는 망이는 그들의 말에 귀를 강구었다. 이대로는 못참겠다는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요, 공주성의 량반들을 치자는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였다. 망이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민의가 이렇게 하나의 흐름으로 몰리는이상 물곬만 잘 잡아주면 거침없이 흘러가 무엇이든 휩쓸어버릴것은 명백한 일이였다. 무릇 매사에 뜻을 합하는것이 제일 어렵고 또 가장 기본되는 일임을 망이는 자기의 체험을 통해 굳게 믿고있었다. 비록 헛일이 되고 또 그 일때문에 지금 이런 궁냥도 하게 되였지만 작년가을에 놀틀의 묵은 땅을 신풀이할 때도 역시 그랬다. 더러 고개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온 부락이 하자고 달라붙으니 결국 수수천년 황페지로 묵여오던 땅을 옥답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번 거사도 (그렇다, 거사다. 내 일생일대의 대거사다!) 기본은 풀린셈이다.
그는 눈을 떴다. 크지 않은 그의 눈, 슬기와 예지가 깃든 밝은 그의 눈빛은 류다른 광채로 번쩍거렸다. 그는 신답을 풀 때와 같은 그런 환희, 성공의 예감으로 설레는 마음속흥분을 감득하였다. 눈앞만이 아니라 썩 앞일까지 내다볼줄 아는 눈만이 그렇게 빛날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웅심깊은 망이는
망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여보서 행수, 자는가?… 하긴 저 얼굴 좀 보지, 죽일 놈들…》
달보가 망이를 굽어보며 혀를 찼다.
망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왜들 그러시우?》
방금 잠에서 깨여난듯 한 흐린 눈빛에 잠내나는 목소리였다.
《자댔군.》
달보가 랑패스러워하며 망이쪽에 한무릎 다가앉았다.
《우린말일세, 저 백가신이를, 공주성을 치자는거네. 이대로야 살수 없는게 아닌가?》
《어떻게요?》
망이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떻게라니?… 치면 치는게지.》
《달보형님, 닭알루 바위를 깔수 있소?》
《… …》
대답이 막힌 달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별안간 풀무령감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웃었다.
《이 사람들이…》
멋적게 앉아있던 달보는 괜스레 눈을 찔 흘겨붙였다.
아래방문이 열리며 언제 망쇠네 집에서 왔는지 누리나가 머리를 디밀고 지청구를 했다.
《부락에 초상이 났는데 뭣들 좋아 이러시우.》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골난다고 바위를 차면 발부리만 아픈 법이니 벌쐰 사람처럼 덤비질 말고 앞일을 찬찬히 궁냥해봅시다. 당장은 망쇠네를 잘 도와야겠소. 우리 〈산행계〉가 이럴 때 한몫 막자는게 아니겠소?》
망이의 사리정연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 침착하고 여유있는 음조에서 망이가 벌써 그 어떤 큰일을 주도하고있다는것을 감득한 그들은 의지의 지탱점을 발견한듯 한결 마음이 개운해져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