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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회


제6장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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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가 시킨대로 계룡산의 달령성이를 찾아가 을님이네를 다른 곳으로 빼돌릴 의논을 하고 돌아오던 망쇠는 버들방천의 신풀이논쪽에서 때아닌 연기가 나는것을 보고 걸음을 다그쳤다. 그는 집에도 들리지 않고 곧장 망이네 집으로 왔다.

《형님.》

망쇠는 토방우에 올라서며 웃방문을 열고 성급히 물었다.

《저 놀틀의 연기가 웬 연기요?》

숨을 헐썩이는 그의 얼굴은 땀기로 번들거렸다.

《마침 잘 왔네. 나를 좀 데려다주게.》

낯빛이 침통한 망이는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경황없이 동문서답격의 말을 했다. 보매 몹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린 모양이였다.

《… …》

망이의 그답지 않은 태도에 망쇠도 저으기 긴장해졌다.

《무슨 일이 생겼소?》

《관병놈들이… 신풀이논에 불을 질렀다네.》

《불을?!… 곡식밭에 불은 왜 지루?》

망쇠는 가뜩이나 큰 눈이 둥그래서 망이를 쳐다보았다.

《여러말 할새가 없네. 빨리 좀 데려다주게.》 하고 안타깝게 빌듯이 재촉한 망이는 상한 다리를 질질 끌며 문께로 기여왔다.

심상찮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알아차린 망쇠는 성급히 방안으로 들어와 망이에게 잔등을 돌려댔다. 망이는 그의 잔등에 가까스로 업히며 《윽―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아, 이 몸으로 어딜 간다구…》

망쇠는 등뒤로 얼굴을 돌리고 낯을 찡그렸다.

《어서!》

망이는 두말 못하게 독촉했다.

먼길을 갔다온 망쇠는 숨도 돌리지 못한채 망이를 지겹게 업고 신풀이논쪽으로 헐썩헐썩 뛰여갔다. 그들이 개간답에 다달았을 때는 이미 관병놈들이 꼬리를 사리고 꺼멓게 재가 앉은 논에서 마지막연기가 겨울안개처럼 바닥을 핥고있었다.

《엉?!… 이게 웬일이요?》

며칠전까지 시누런 황금색으로 눈이 부시던 논이 졸지에 꺼먼 재가루가 날리는 황량한 땅으로 변해버린것을 목격한 망쇠는 대뜸 눈이 뒤집혔다.

망이를 논뚝에 내려놓은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논판에 뛰여들어 재무지를 마구 헤집고 돌아갔다.

까맣게 타버린 이삭을 손바닥으로 비벼 입에 쓸어넣기도 했다.

열물처럼 쓰디썼다.

《어떤 놈이, 어떤 놈이 이런 악귀같은짓을 했느냐!… 어느 놈인가!》

사납게 웨치며 돌아가던 망쇠는 그때까지 논판에서 울고있는 사람들에게 덤벼들었다.

《너희는 뭘하고있었니? 이 등신같은것들, 논이 이렇게 되도록 보고만 있었어?!》

금시 무슨 일을 저지를것 같은 그 험악한 기상에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렸다. 성깔이 드센줄은 알고있지만 오늘처럼 성난 말마냥 날뛰는 그를 일찌기 본적이 없었기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이제 아버지가 잘못된것을 알면 어쩌랴싶어 사람들은 가슴이 옥죄였다.

분통을 못참아 한참 기광을 부리던 망쇠는 두주먹을 부르쥐고 망이한테로 뛰여오더니 눈을 지릅뜨며 따지고들었다.

《형님이 말해보! 논판이 왜 이렇게 됐소? 그래 이런 놈들과 리치를 따져?! 등장을 해?!》

《아!―》

망이는 괴로움에 못견디여 목을 비틀더니 갑자기 황소의 영각과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것은 비명에 가까운 장탄식이였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끅끅 흐느꼈다. 흐느끼다가는 커다란 주먹으로 논뚝을 때렸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던지 그 큰 주먹이 다져진 흙속으로 쑥 들어갔다. 그 주먹을 뽑아 이번에는 상한 다리를 내리쳤다. 이런 때에 운신할수 없는 다리가 원망스러워 또 어깨를 떨었다.

망이는 지금 일찌기 겪어보지 못한 후회와 자책, 고민과 번뇌의 괴로운 심적체험을 겪고있었다.

그는 놈들이 자기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으리라는것도 각오하고있었지만 이처럼 천인공노할짓을 저지르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그놈들도 낟알 귀한줄은 알진대 어찌 곡식밭에 불까지 지르리라고야 상상할수 있었겠는가. 이럴줄 알았으면 망쇠의 말처럼 벼를 말짱 거둬들였어야 할것이였다.

《망쇠, 나를 때리게! 나를 죽이게!》하고 부르짖는 망이의 얼굴은 절망과 원망 그리고 회오와 증오로 험하게 일그러졌다.

광적인 열기로 번쩍거리는 망이의 눈을 보고 흠칠 놀라 뒤로 물러서던 망쇠는 사람들이 빼곡이 둘러서서 울고있는 곳에서 녀자의 비통한 울부짖음소리가 들리자 그 자리에 못박아섰다.

《아부님, 눈 뜨세요! 아부님!―》

그것은 고비의 울음소리였다.

(고비가 왜 울어? 그리구 아버지란 또 누구야?…)

망쇠는 무엇인가 불길한것이 가슴을 써늘하게 스치며 지나가는것을 느끼였다.

고비의 애끓는 울음소리가 또다시 귀청을 긁었다.

《아부님, 이렇게 원통하게 세상을 떠나면 어떡해요!…》

《어엉?》

망쇠는 불시에 숨이 꺽 막히여 주춤 뒤로 물러서며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냐고 묻기라도 하듯 사람들을 경황없이 둘러보았다. 비애가 짙게 어린 그들의 얼굴에서, 자기를 외면하는 죄스러운 눈길에서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불행을 직감한 망쇠는 기겁하여 사람들속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사람들을 정신없이 밀어젖히며 앞으로 나갔다.

누군가 뻘건 물이 고인 논판에 누워있었다. 불도장자리가 꺼먼 이마의 흉터가 눈을 아프게 찔렀다. 아버지가 분명했다.

그러나 망쇠는 어째서 아버지가 더러운 논창에 누워있는지 그리고 아버지의 가슴에 매달려 울고있는 고비의 울음소리는 왜서 저리도 비통스러운지 인차 알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곁에 더 바투 다가섰다.

그를 본 고비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더욱 서럽게 울었다.

망쇠는 드디여 쩍 갈라진 아버지의 어깨를 보았다. 주위에 질벅히 고인 뻘건 물도 다름아닌 아버지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란것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부르르 떤 망쇠는 그자리에 풍덩 주저앉았다. 아버지의 몸을 마구 잡아흔들며 부르짖었다.

《어서 일어나시우. 아버지! 예?!》

그가 흔드는대로 눈을 흡뜬채 식어진 서눌의 몸은 마른 나무통처럼 건덩거렸다.

망쇠는 돌연 굳어진 사람처럼 몸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옆에서 울고있는 고비에게 꽥 고함을 질렀다.

《방정맞게 울긴 왜 우는거야?》

우묵한 눈확속에서 매눈이 사납게 희번뜩거렸다.

《빨리 집에 옮겨눕히구 뜨뜻이 불 땔 생각은 않구!》

망쇠는 다시한번 고비에게 소리지르고나서 아버지를 쳐들어 잔등에 업었다. 그는 마을쪽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고개를 수그린 고비가 어깨를 들먹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망쇠가 너무도 큰 불행을 당하고보니 억이 막힌 모양이라고, 그래서 저렇게 실성한 모양이라고 혀를 찼다.

망쇠는 아버지의 시신을 방안에 들여다눕혀놓고나서야 그의 죽음이 현실적으로 안겨와 목을 터놓고 울었다.

울음을 멈춘 그의 눈에서는 시퍼런 살기가 빛발쳤다. 기둥에서 낫가락을 뽑아든 망쇠는 나루터를 향해 비호처럼 달려갔다.

그 나루터에서 또 기막힌 사실을 목격하게 되였다. 보라빛 황혼이 깃드는 강우로 놈들의 마지막배가 건너가고있었다.

놈들을 놓친 분함을 못이겨 버들방천에 주저앉아 주먹으로 땅을 치며 나루배를 쏘아보던 그는 놈들속에 끼여있는 흰옷입은 한 녀인의 모습에 놀란 눈길을 모았다. 어쩐지 을님이같아보였던것이다.

《아니, 저게 을님인가?!…》

버들방천에서 멀어지는 나루배를 처량하게 바라보던 조무래기들중에서 호미동이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앵두집 누나야.》

애들도 봄이 오면 앵두나무울타리에서 탐스러운 앵두를 따주겠다고 하던 그 얼굴 곱고 맘성 무던한 누나가 놈들에게 끌려가는것이 몹시 가슴아팠던 모양이다.

망쇠는 벌떡 뛰쳐일어났다. 화는 쌍으로 온다더니 이건 또 무슨 변인가?!

그는 자기가 한발 늦었다는것을 깨닫고 다시금 땅을 쳤다.

달령성이를 만나 을님이네 피신지를 의논하라는 망이의 당부를 받고 길을 떠난 망쇠는 그간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나 숨어다니는 달령성이를 만난다는것이 조련치 않았다. 변변히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그는 계룡산을 비롯해서 그아근 수백리어간을 헤매다니느라 여러날을 허비하였다. 그런 끝에 다행히 달령성이를 만나 피신지까지 확정하였다. 하지만 공든 탑이 무너진다고 이제는 고생한 보람도 없게 되지 않았는가.

통분감에 못이겨 물가로 달음질쳐 내려간 그는 찬 강물속으로 마구 걸어들어가며 목놓아 소리쳐불렀다.

《을님이, 가지 마오!―》

피타는 그의 부르짖음을 들었는지 나루배안의 을님이가 두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루배는 소리없이 멀어져가고 저녁어둠은 자취없이 깃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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