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6장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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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추위가 닥쳐왔다.

먹을것이 떨어진 집들에서 무우라도 삶아먹어야겠다고 김장무우를 뽑았는데 밑이 둥글지 않고 길쭉한게 금년겨울은 여간만 춥지 않겠다고 걱정들을 했다. 먹을것, 입을것, 땔것이 없는 그 기나긴 동삼의 추위앞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래도 겨울은 아직 래일의 일이다. 당장은 가을이 남아있지 않는가.

신답의 벼는 논에 선채로 벌써 첫서리를 맞았다. 숨넘어가는 날새처럼 축 처진 누렇게 바랜 벼를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은 가슴이 쓰렸다. 목숨같은 낟알을 다 버린다고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끝까지 버틸 배짱이였다. 관가에서 양보하지 않는 한 그들도 굴복할수 없었다. 설령 벼들이 눈속에 파묻히는 한이 있어도 수확하지 않을 심산이였다.

관가의 행패도 극성스러워졌다. 어제도 관영에서 쓸어나온 군졸놈들이 집집을 돌아치며 당장 벼가을을 하라고 야료를 부렸다. 그랬어도 어느 한 집도 낫을 들고 나서지 않았다.

유난스레 음산하고 어수선한 계절이였다.

불안과 긴장속에 하루해도 저물어갈무렵 또다시 군졸놈들이 한무리 부락에 달려들었다. 그속에는 거드름스럽게 가라말등에 올라앉은 백태도 있었다.

그는 며칠전에 개경에서 보내온 상장군 송유인의 서신을 받았다. 그것은 질책과 협박으로 가득찬 독촉장이였다.

《…국정을 살피건대 서북지방 폭도들이 점점 승세하여 절령이북지역은 거의나 그네들의 수중에 떨어질 형편이며 그에 편승한 도적들이 사처에서 벌떼처럼 성하고 물산은 핍박하여 병마와 군량을 충당할 길 묘연하니 국사의 다난다사를 그대스스로 료량해보라.》고 시국정세를 먼저 알려준 서신은 계속하여 《국난을 타개코저 열린 중방회의에서 문하시중(정중부)이 5도량계에 특파한 별공사들의 실적에 대한 고시가 있었는바 공주에 내려간 별공사는 무얼 하고있느냐고 크게 노하셨으니 그대를 공주별공사로 천거한 본관의 립장이 어떠했으리오.》라는 질책과 함께 《조속한 기일안에 공적을 이루지 않으면 부득불 신임별공사를 선정할수밖에 없다.》는 위협이 적혀있었다.

송유인은 서신끝에 덧붙여쓰기를 《공주에는 경국지색들이 다재하다니 그대 혼자 미인들속에 파묻혀 친우의 의리를 잊고있다면 그대의 앞날에 지대한 호의와 관심을 가진 본관으로서는 심히 유감천만이라》고 은근한 암시를 하였다.

백태는 그 암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결국 자기에게 고운 처녀들을 뽑아 올려보내라는 강박이였다.

그는 생각이 복잡했다. 송유인의 서신이 단순히 위협에만 그치지 않는다는것을 백태는 알고있었다. 심술궂고 변덕이 심한 송유인의 눈밖에 나는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탐욕의 화신인 늙다리 정중부의 배척을 받는것은 더욱 무서운 일이였다.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송유인이 언제 신임별공사를 천거할지도 모르거니와 국권을 좌지우지하는 정중부가 또 언제 신관을 내려보낼지도 모를 일이였다. 아첨과 뢰물의 무게에 따라 목이 붙고 떨어지는판에 무슨 변인들 없겠는가. 장군방(장군들의 집회소)이나 랑장방(중랑장, 랑장들의 집회소)에는 자기 자리를 노리는자들이 득시글거리니 그 건달들이 얼마나 자기를 시기하고 모해하려고 날뛸것인가. 아무튼 공주별공사로 신관이 내려오는 날은 자기 백태에게 있어 파멸의 날이요 매장의 날로 될것이다.

백태는 커다란 위기를 느꼈다. 마치 벼랑끝에 선듯 한 아슬아슬한감이 들었다. 송유인의 독촉대로 공적을 세워야만 이 위기를 모면할수 있다는것을 그는 절박하게 깨달았다.

그는 무신란을 일으키던 경인년때와 같은 피의 충동을 느꼈다.

그는 곡식을 모조리 빼앗고 공물은 닥치는대로 걷어들이라는 령을 내렸다. 개미집을 터뜨려놓은것처럼 공주관내의 모든 읍과 부락에 흩어져나간 군졸들과 아전들은 집집을 뒤지고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냈다. 그런데 관가에서 유독 천민부락인 명학소에서만은 낟알 한톨도 거두기 어렵다고 고해왔다. 조세를 면제하기 전엔 절대로 신풀이논의 벼를 가을하지 않겠다고 뻗친다는것이였다.

《뻗친다?!… 어디 얼마나 뻗치나 보자.》

백태는 얇은 입술을 악물었다.

백여명에 달하는 관아의 군졸들과 아비의 하인놈들까지 몰아대며 그는 앞장에서 명학소로 달려왔다.

가라말을 탄 백태는 전장에나 나선듯 꼭대기에 술 달린 운두높은 투구를 쓰고 철비늘이 번들거리는 갑옷을 떨쳐입었다. 투구밑의 두눈은 표독스럽게 번뜩이고 입술은 잔인하게 일그러졌다.

집안에 들여박힌 사람들은 꿰여진 창구멍으로 불안스러운 눈들을 굴렸다.

웬일인지 오늘은 놈들이 마을로 들어오지 않고 곧장 신풀이논쪽으로 밀려갔다.

말을 타고 둔덕우에 올라서서 황금물결이 술렁이는 풍요한 신풀이논을 싸늘한 웃음을 띠우고 잠시 관망하던 백태는 자기뒤에 서있는 아비의 집에서 데리고온 불량배의 우두머리를 불렀다.

그에게 당장 오치연의 집으로 가서 딸년을 끌어오라고 령을 준 백태는 이 살벌한 정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뜬 웃음을 벌쭉거렸다. 을님의 고운 자태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즐거워지는것이였다. 그러나 백태는 우두머리하인놈이 멋도 모르는 주제에 마주 웃는것을 보자 인차 웃음을 가무렸다. 무뚝뚝해야 아래놈들에게 위엄있어보이는 법이다. 백태는 엄한 낯색을 지어가지고 오치연이 생각을 달리하지 못하도록 잡도리를 잘하라고 덧붙여 일러주었다.

그가 오늘 명학소로 행차한것은 신풀이논의 벼를 없애버리자는데도 목적이 있었지만 보다는 을님이를 끌어가기 위해서였다.

예닐곱의 하인놈들은 아래마을을 곧추 질러 웃마을의 산자드락에 있는 오치연의 집으로 반달음을 놓았다. 그들뒤에는 자그마한 가마 한채를 멘 교군 두명이 따르고있었다.

오치연의 집에 이른 놈들은 삽짝을 발로 걷어차며 마당에 들어섰다.

《오치연이 이놈, 어서 나와!》

백태가 일러준대로 놈들은 처음부터 위협과 공포를 주느라고 일부러 더 을러멨다.

《왜 대답이 없어! 이놈의 집 기둥뿌리를 뽑아치울가보다.》

《덤비지들 마시오.》

그제야 방에서 나온 오치연은 신발을 꿰고 천천히 마당에 내려섰다. 그는 창황중에 당하는 일이라 당황해지는 심중을 애써 억눌렀다. 우두머리하인놈이 대뜸 눈알을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건방져 이놈, 꿇어앉지 못해!》

오치연은 량반도 아닌, 량반의 하인배에 지나지 않는 놈들한테서까지 이런 수모를 당하는것이 원통하였다. 그는 격분이 치받쳐 채머리를 떨며 발에 뿌리라도 내린듯이 서있었다. 머리를 숙이는 사람을 더 짓밟으려는것이 이들 권력배의 본성인줄 그는 알고있었다.

그의 꿋꿋한 기상에 겁이 질렸는지 우두머리하인놈도 꿇어엎디라는 말은 더 하지 않았다.

《너 이놈, 딸년을 상호장댁에 들여보내겠다고 하구선 왜 상기 거동이 없느냐?》

《… …》

하인놈들이 일제히 《아뢰라!》하고 악청을 질렀다. 량반도 없는데 량반들의 호기와 위엄은 다 부리는판이다.

《나는 노비도, 천민도 아니요.》

오치연이 위엄있게 한마디 내뱉았다.

《이놈, 뻔뻔스러운 놈이로다. 관아를 릉욕하는 네 죄, 치도곤아래 좋이 숨질만 하다. 이놈을 당장 꽁져라!》

우두머리하인놈은 기가 올라 뇌까렸다. 불량스런 하인놈들이 욱 달려들어 오치연의 량쪽팔을 뒤로 비틀었다.

이때 웃방문이 열리면서 낯색이 창백해진 을님이가 밖에 나섰다.

《소녀 대령하였으니 늙은일 너무 구박마옵시오.》

을님은 우두머리하인놈을 싸늘한 눈길로 쏘아보며 못을 박듯 찍어 말했다.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여있는 그의 태도는 침착했다. 그는 부모와 망이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을 위해 자기 한몸을 희생하기로 이미 작정하고있었던것이다.

을님의 그 뛰여나게 아름다운 용모에, 그 도도한 언행에 은연중 위압당한 우두머리하인놈은 할 말을 잃고 얼벙벙해졌으며 다른 놈들도 맞바로 보기에는 눈이 부신듯 흘끔거렸다.

《아이구 이애야!―》

맨발로 엎어질듯 방에서 뛰쳐나온 을님의 어머니가 딸을 꽉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걱정마세요. 끌어간들 죄없는 사람을 설마 어쩌기야 하겠나요.》

《아이구 이것아, 네가 환장을 했느냐. 네가 어디로 끌려가는줄 알고나 그러느냐!》

《어머니, 부모님을 끝까지 모시지 못하는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시와요.》

을님이도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였다.

멍청히 서있던 우두머리하인놈이 어깨에 내려와앉는 락엽을 털어버리고나서 아까보다는 한결 누그러진 소리로 말했다.

《기왕 갈 길 어서 가자.》

마가을 찬바람이 마당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지럽게 흩날려 떨어지는 락엽은 석양볕을 받아 불그레 물들었다.

어머니의 품에서 풀려나온 을님은 너무도 원통하고 너무도 절통하여 얼없이 서있는 아버지앞에 한쪽무릎을 세우고 단정히 앉아 석별의 절을 하였다.

맨땅에 풍덩 주저앉은 어머니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였다.

땅에서 몸을 일으킨 을님은 마감으로 그리운 부모가 있고 잊지 못할 추억이 간직된 집을 그렁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딸기빛 노을이 불타는 하늘에서 늦은 북행길을 재촉하는 기러기들의 끼룩거리는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들렸다.

한편 아래마을에서는 더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고있었다.

《불이야!―》

《곡식이 타오!―》

비명에 가까운 처절한 웨침소리가 긴장이 드러누운 마을에 울려퍼졌다.

집집의 문짝들이 열어젖혀지고 개들이 기승스럽게 짖어댔다. 이어 분노에 찬 부르짖음이며 애절한 통곡소리가 마을의 골목을 메웠다.

《어데 불이 났소?》

《아이구, 세상에 이런 변두 있소?》

《곡식이 탄다는게 무슨 소리요?》

《저런 불악귀같은 놈들을 그냥 둔단 말이요?》

물음에 물음으로 대답하며 사람들은 모두 경황없이 헤덤볐다.

서경집로인 서눌이 자기 집앞을 헐떡이며 뛰여가는 어평돌이의 소매자락을 붙들었다.

《도대체 웬일인가?》

《저… 저 곡식밭에… 불을》

《곡식밭이라니?…》

《관병들이… 신풀이논에… 불을 질렀어요.》

《엉?!》

서눌의 흐릿하던 안청이 번쩍했다.

바람결에 검은 연기가 마을까지 실려왔다. 연기와 함께 낟알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꺼꺼부정하고 서서 코날개를 벌름거리던 서눌은 별안간 병신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신답쪽으로 뛰여갔다.

그제서야 부락사람들도 정신이 펄쩍 들어 그를 뒤따라 달렸다.

홰불방망이를 든 관병놈들이 메뚜기들처럼 누런 논판을 껑충껑충 꿰질러다니며 여기저기에 불을 싸질러대고있었다.

바싹 마른 벼대들은 불이 당기기 무섭게 솔잎이 탈 때처럼 소리를 내며 파아란 불길을 날렸다. 불길은 혀를 널름거리며 괴물처럼 한배미한배미의 논벼를 순식간에 삼켜버리군 했다.

검은 연기가 온 들에 자욱하니 덮이고 재티가 사방에 날렸다. 서산마루에 걸린 태양도 이 살벌한 암적색의 곡식연기속에서 피빛으로 타고있었다. 연기처럼 까만 가라말의 등자에 가죽신을 든든히 꿰고앉은 백태는 야멸찬 비웃음을 띠우고 불타는 논벌을 굽어보며 이새로 내뱉았다.

《이놈들, 천한 네놈들의 목구멍에 이 쌀이 그대로 넘어갈줄 알았느냐!》

그는 가슴이 후련한듯 칼을 뽑아들고 웨쳤다.

《한톨도 남기지 말라!》

이때 부락사람들이 울며 웨치며 논판으로 달려왔다.

그들의 앞에 군졸놈들이 서슬푸른 창을 내대였다. 가슴을 겨눈 창날에 걸려 더 나가지 못하고 논변두리에 멈춰선 그들은 맨땅에 풍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어떻게 일군 논이고 어떻게 가꾼 곡식인가? 마른 뼈에서 누런 물이 우러나도록 돌을 주어내고 손끝이 다 닳도록 풀을 뽑고 흙을 주물러 가꾼 낟알이 아닌가! 정녕 살로 가다루고 피로 걸군 땅에 애지중지 심고 키운 금싸락같은 곡식이였다. 저 논에, 저 쌀에 온 부락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었다. 그런 쌀을 백주에 불태워버리다니! 세상에 이런 절통한 일도 있는가!

《아이구!― 저걸 어째, 저걸!…》

그들은 숨지는 자식을 보고도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는 부모와 같은 애끓는 심정으로 모지름을 썼다.

알알이 영근 이삭이 타버리는 빠지직거리는 소리가 더더구나 그들의 가슴을 못견디게 허벼놓았다.

고비가 돌연 창대를 꼬나쥔 군졸놈들의 속을 뚫고 불타는 논판에 씽하니 뛰여들어갔다. 그는 제잡담 키 꺽두룩한 군졸놈에게 달려들어 불방망이를 든 팔에 매여달렸다.

《그만둬요!》

《이년이―》

우악스런 군졸놈은 고비를 떠밀쳤다. 그러나 고비는 물러서지 않고 영악스럽게 계속 매달렸다. 화딱지가 난 군졸놈은 눈알을 부라리며 고비를 논창에 자빠뜨리고 발로 걷어찼다.

《며늘애야!―》

이 광경을 목격한 서눌로인이 절뚝거리며 달려가 고비를 걷어차는 군졸놈을 말렸다.

《이게 무슨짓이우!》

《이건 또 어데서 나불거진 늙데기야?》

군졸놈에게 떠밀치워 뒤로 비칠거리던 서눌은 절름거리며 또 매여달렸다. 흙탕투성이가 된 고비는 어느틈에 일어나 벼대를 한웅큼 뽑아쥐고는 불타는 벼들을 정신없이 두들겨 끄기 시작했다.

서눌은 우들우들 떨며 군졸놈에게 애걸했다.

《제발 그만두슈.》

《비켜!》

우악스런 군졸놈은 홰불을 잡지 않은 손으로 로인의 볼을 쳤다.

서눌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불도장이 찍혀 꺼멓게 흉터가 생긴 이마밑의 눈섭이 푸들푸들 뛰였다. 서눌은 북두갈구리같은 손으로 군졸놈의 두팔을 꽉 잡았다. 한생을 굴욕과 빈궁에 짓눌려온 로인의 원망이 두손에 뻗치듯 군졸놈은 로인의 손에서 팔을 뽑지 못해 쩔쩔맸다.

《이걸 놓지 못해!》

서눌은 치를 떨었다. 그의 입에서는 불시에 추상같은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이놈아, 너는 낟알먹는 즘생이 아니냐? 낟알을 천시하면 천벌을 받는다!》

《이따우 늙은 놈이.》

《무슨 적악으로 우릴 굶겨죽이려는게냐. 이놈아!》

서눌은 악을 쓰며 군졸놈의 손에서 방망이를 빼앗았다. 허우대 큰 군졸놈이 논판에 궁둥방아를 찧으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이 쌍놈의 늙데기가!》

상판을 험상궂게 찌프리며 논판에서 벌떡 일어난 군졸놈은 로인의 성하지 못한 다리를 걷어차며 불방망이를 잡아챘다.

《어쿠.》

서눌은 신음소리를 지르며 풀썩 꺼꾸러졌다. 그러나 허우적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킨 그는 채머리를 떨며 벼대에 불을 지르려는 군졸놈의 팔을 재차 덮쳐잡았다.

《나도 타죽겠다. 이놈, 내 몸에 불질러라!》

흙탕투성이가 된 두사람은 또다시 불방망이를 가지고 엉켜돌아갔다. 머리수건이 벗겨져나간 서눌의 깎이운 머리는 삼거웃처럼 헝클어지고 저고리앞섶이 찢어져 푹 꺼진 앞가슴이 드러났다.

《안된다! 남의 윤두소까지 빼앗은 이 불악귀같은 놈아!―》

서눌은 격분으로 우들우들 떨리는 주먹을 뭉그려쥐고 놈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비명을 지르며 불방망이를 떨어뜨린 놈은 상통을 싸쥐고 뒤걸음질쳤다. 하더니 살기가 뻗쳐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미처 어쩔새도 없이 로인의 왼쪽어깨를 내리찍었다.

성한 한쪽다리에 의지하여 가까스로 서있던 서눌은 팔을 쳐들려고 잠시 헛되이 움짓거리더니 끝없는 원망과 저주가 담긴 눈을 흡뜬채 주저앉듯 논판에 쓰러지고말았다.

《아버지!―》

고비가 비명을 내지르며 논판에 쓰러진 서눌로인한테로 달려갔다.

《아니, 저놈이?!…》

《사람을 죽인다!―》

마을사람들속에서 분격에 찬 피의 절규가 터져나왔다. 그들은 군졸놈들을 밀치며 와― 논판에 뛰여들었다.

그러나 이미 논에 불을 다 질러놓은 놈들은 불방망이를 집어던지고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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