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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회


제5장 검은 가을

4


넓은 대청마루의 붉은 모직안석에 비스듬히 기대인 백가신은 반쯤 열려진 미닫이짬으로 뜰아래에 꿇어앉은 망이와 오치연을 찌프린 눈길로 굽어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귀찮아하는 그리고 혐오스러운 기색이 력력했다.

《웬놈들이냐?》

이윽하여 그의 입에서 체증기어린 말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는 첫눈에 벌써 망이네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도 모른체 하는것이 이들 권력배의 처세술이였다. 그는 자주 상대하는 사람도 《자네 누구더라?》 하기가 일쑤였는데 이런 경우 아래사람들의 당황하고 송구스러워하는 태도는 그의 심기를 자못 만족시켜주군 했다. 또 그렇게 대해야만 아래사람들이 상전의 안중에 들기 위해 갖은 아첨과 비굴한짓을 하게 된다는것도 알고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백씨문중의 웃어른되는 수염허연 로인이 찾아왔었는데 그와 인사를 하는 마당에서 백가신이 《로인장은 저기 약점사의 의원이던가?》하고 묻는 바람에 온 집안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든적도 있었다. 큰애비벌되는 그 로인한테서 젊어 한때 글도 배운 백가신이 설마 그를 잊었겠는가. 그시로 표표해서 떠나간 로인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조상도 몰라보는 천하에 무도한 놈》이라고 그를 두고두고 욕을 했지만 그런 소리에 띠끔해할 백가신이 아니였다.

《어디서 온것들이라구?》

명학소에서 왔다고 하는 말을 분명 들었으나 백가신은 시들하게 다시 물었다.

망이가 고개를 쳐들었다.

《거듭 말씀드리겠소이다. 공주 명학소의 농군 망이라고 아뢰오.》

태연하고 침착한 그의 틀거지며 말투에 백가신은 주걱턱을 쳐들며 안석에서 몸을 약간 일으켰다. 권태에 잠긴듯 한 무표정한 낯색이 변했다. 얇은 입술은 잔인하게 일그러지고 신경질적으로 쪼프린 눈까풀속에서 눈알이 좀 갈팡거렸다.

홍경원의 숲속에서 아예 산귀신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했던 놈이 아직 살아있을뿐아니라 오늘은 버젓이 제앞에 나타나지 않았는가.

망이를 다시 굽어보던 백가신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못볼것을 봤을 때처럼 얼른 오치연에게 눈길을 돌렸다.

《곁의 너는?》

《예, 소인도 명학소에 살고있는 오치연이라고 하오이다.》

오치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공손히 대답했다.

그제야 마음이 좀 누그러진 백가신은 다시 안석에 몸을 기대며 섬돌우에 읍을 하고 서있는 서사에게 물었다.

《저 깨끼부락놈들이 뭣하러 왔느냐?》

화로에 손을 쪼이던 백태가 이야기에 끼여들었다.

《뭐, 등장을 하러 왔나봅니다.》

《등장질?》

백가신은 아들쪽에 마뜩잖은 눈길을 치떴다. 그런줄 알면서도 천민들을 집에 끌어들였느냐는 질책이 담긴 눈길이였다.

백태는 아비의 눈을 뻔히 마주보았다.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합시다.)

백태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백태는 좀전에 젖어멈인 그믐녀로부터 명학소에서 농군들이 상소문을 가지고왔는데 꼭 만나봐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그 농군들중에 바로 자기가 내심으로 점을 찍어둔 을님이의 아버지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순순히 응해주었다. 을님이의 미모에 탐을 내고있던 그는 을님이의 아비가 제발로 찾아온것을 절호의 기회로 여겼던것이다. 그를 적당히 구슬려놓으면 말썽없이 잘 익은 열매를 딸것 같았다.

《그래 무엇을 등장허자는거냐?》

백가신이도 어디 한번 들어보자는투로 물었다.

《어서 아뢰여라.》

섬돌우에 서있는 서사가 되뇌였다.

망이가 입을 열었다.

《금년 가물에 명학소가 전답이 다 페농되고 다만 새로 일군 논에서만 얼마간의 소출이 있을줄로 아뢰오.》

《그래서?》

《신풀이논은 사지(개인소유토지)인 경우 한해분의 조세를 면제하고 공지(국유지)는 3년간 조세를 면제하읍기로 나라의 법전에도 밝혀있는줄로 아뢰오.》

《흥, 그눔들 나라의 법전을 보기나 했느냐.》

《법전에도 그렇게 밝혀있거니와 관아에서도 3년간은 조세를 받지 않겠으니 논으로 풀라하읍기에 우리 소민이 죽기로 힘을 써 겨우 첫해 소출을 보게 됐사온데 그 첫해 소출마저 조세로 바치라함은 부당한 조처인줄로 아뢰오.》

《이누움!―》

별안간 백가신이 안석에서 벌떡 일어서며 째지게 고함을 질렀다.

서사는 물론 백태도 그 소리에 깜짝 놀랐고 오치연은 급히 망이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망이는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었다.

《온 부락 백성들이 명줄을 걸고있는 그 곡식마저 걷어가면 백성은 무엇으로 연명하오리까.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 하읍기로 백성을 굶어죽게 만든다면 그게 무슨 바른 정사라 하겠소이까?》

《저, 저런 때려죽일 놈 봤나.… 여봐라!》

성이 독같이 난 백가신은 삿대질을 하며 호령했다.

《예잇―》

긴 대답소리를 내며 기다린듯 여라문명의 하인들이 우르르 뜨락에 달려나왔다. 백가신이 던져주는 푼돈을 얻어쓰며 그의 손발노릇을 하는 이 건달들은 관가의 군졸들보다 더 불량한 놈들이였다.

처음부터 망이의 도고한 태도에 심기가 편안치 않던 백가신은 어떻게 조처를 해야 속이 풀릴지 몰라 한동안 망이를 독기를 품고 노려보기만 하였다.

《소인들 대령하였소이다.》

불량배들의 우두머리인 키꼴이 후리후리하고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 허리를 굽석이며 아뢰였다.

《무엄한 저눔에게 나라의 법이 어떤것인지 맛을 뵈여줘라.》

성이 독같이 오른 백가신은 주걱턱을 쳐들고 뇌까렸다.

망이를 내려다보는 백태의 낯에는 자못 의아하고 어처구니없어하는 그리고 아니꼬운듯 한 복잡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그가 망이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것은 그와 이상하게도 자주 대면하게 되기때문이였고 그를 어처구니없게 여긴것은 매벌이를 사서 하는 그가 무척 가소로왔기때문이며 또 그를 아니꼽게 본것은 주제넘게 남의 일에 삐치길 잘하는것이 싱겁고 건방져보였기때문이였다. 천민의 신분을 타고났으면 량반들이 시키는 일을 국으로 받아물게지 간하기 좋아하는 신하처럼 오지랖넓게 웬 참견과 시비가 그리 많단 말인가.

명학소에서 부곡놈들의 머리를 삭발하던 날도 그는 부락년의 머리칼을 자르는것을 막아나섰고 홍경원의 주지암자에서 수박겨루기하던 날도 역시 제 부락놈을 비호해나서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늘은 부락놈전부를 대신해서 등장질까지 하려고 오다니.…

그는 망이가 번번히 동네놈들의 앞장에 나서는것이 저으기 얄밉고 괘씸스러웠다.

이런 심경에 잠긴 백태의 뇌리에는 부지중 계룡산에서 초적들한테 봉변을 겪던 날 그가 자기를 두둔해준것도 결국 매사에 나서길 좋아하는 그 중뿔난 습벽이외에 다른것이 아니였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는 망이에 대해 고맙게 여길 하등의 까닭도 없을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망이에게 빚을 진듯 한 부담으로 하여 얼마간 구속당하던 도의감에서 그를 벗어나게 해주었을뿐아니라 도리여 오랜 호족가문의 자손이요, 조정의 한다하는 무관인 자기가 사람값에도 들지 않는 비천한 놈한테 희롱당했다는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 백태는 거름이나 주무르는 천한 부곡놈이 량반을 살려주었다는 자부심에 은근히 차있었을것이라고 생각하니 불현듯 부아가 치밀었다.

백태는 얇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마당으로 내려갔다. 그는 엎드려있는 망이의 옆구리를 발로 건드렸다.

《이놈, 네 잘못을 알겠느냐?》

망이는 아무 대척도 하지 않았다.

《그럼 어디 알게 해주마.》

쓰겁게 뇌까린 백태는 불량배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불량배들이 망이에게 욱 달려들었다. 망이는 그놈들에게 오라줄로 묶이우면서도 아무런 반항도 기척도 내지 않았다.

두놈이 가죽띠로 망이를 내려패기 시작했다. 사정없는 가죽띠는 허공에서 핑핑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살점을 물어뜯고 뼈를 바슬듯이 망이의 몸에 휘감겼다. 망이는 온몸이 기름불에 타는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그러나 눈도 감지 않았고 신음소리는 더욱 내지 않았다. 가죽띠를 휘두르느라 다리에 힘을 주는 놈들의 궁고(통이 좁은 군복바지)가랭이며 백태의 누런 가죽신이 얼핏얼핏 눈에 안겨왔다. 그러자 여태껏 놈들한테 받은 수모와 학대가 일시에 뇌리에 떠올랐다. 그것은 한마디로 짐승같은 생활이였고 짐승같은 취급이였다. 그래도 자기는 얼마나 사람답게 살고싶어했고 사람의 도리를 지키려고 애를 썼던가.

그는 잔등에 떨어지는 매보다는 가슴속의 자책이 더 아팠다.

《아흔…일곱.》

매를 치는 놈들의 씨근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셈세는 소리가 입밖에 새여나왔다.

망이는 온몸의 살가죽이 마비되여버린듯 아픔도 고통도 깨닫지 못했다. 백번째로 몸에 감기는 가죽띠와 함께 《그만.》 하는 백태의 소리가 먼곳에서처럼 아슴푸레하게 들렸다.

《그래 어떠냐? 아직 숨이 붙어있느냐?》

백가신이 매몰차게 씨벌였다. 백태가 형틀끝으로 다가가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망이는 고개를 쳐들었다. 불길이 황황 이는 무서운 눈… 랭소를 머금고 굽어보던 백태의 눈이 커졌다.

눈과 눈의 싸움, 정신과 정신의 대결이였다.

허공중에서 부딪치는 그들의 시선은 소리없는 번개처럼 번쩍거렸다. 그것은 서로가 영원히 용서치 않을 그런 무언의 격투였다.

끝내 백태가 먼저 눈길을 돌리고말았다. 무한한 심연속에서 끝없이 뿜어져나오는듯싶은 불타는 눈빛, 백태는 여직껏 그런 강렬한 눈빛은 보지 못했다. 경인년의 무신란때나 재작년 계사년의 문신참살때에 그의 칼에 목을 잘리운 문신량반들이 많았다. 대개가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걸복걸하였지만 개중에는 죽는 순간까지 눈을 딱 부릅뜨고 자기를 노려보는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중 어느 하나도 천민인 망이의 눈빛과는 비슷하지도 않았다. 그 눈빛을 다시 상기하자 백태는 저도모르게 몸을 떨었다. 자기가 사람으로 치부하지도 않는 천민들속에 망이와 같은 강인한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좀체로 믿을수 없었다.

무거운 걸음으로 섬돌을 짚고 대청에 올라간 백태는 아비의 곁에 앉으며 눈을 감았다. 마치도 자기가 매를 맞은듯 온몸이 나른해왔다.

불길을 뿜던 망이의 눈이 망막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눈, 그 증오로 이글거리는 눈은 자꾸자꾸 커지더니 지옥에 있다는 불가마로 변한다. 그 불가마에 자기가 빠져들어간다.…

환각에 사로잡혔던 백태는 소스라쳐 눈을 떴다. 그리고는 광기가 뻗쳐 소리질렀다.

《저놈의 주리를 틀어라!》

하인놈들이 피얼룩이 꺼멓게 묻은 형틀을 마당에 가져다놓았다.

《아니, 어쩌자구 저러우.》

사이담장너머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들은 천민부락인 촌개소에서 백가신네 집 뒤뜨락에 새로 정원을 꾸리고 련못을 파려 끌려온 농군들이였다. 추수철이여서 부역을 빨리 끝내고 부락으로 돌아가려고 일을 다그치던 그들은 명학소에서 등장하러 온 사람이 백가신이네 하인놈들한테 곤장을 맞는다는 말을 듣고 여기로 모여온것이였다. 그들은 발돋움하여 사이담장너머 안뜨락을 엿보며 수군거렸다.

《여보게 상두행수, 저 문초를 당허는 사람이 누군구?》

상두라고 불리운 사십대의 다부지게 생긴 장정은 자기에게 묻는 수염허연 로인에게 눈을 흘겨붙였다.

《아저씬 저 사람두 모르시우?》

《누군지 모르겠구먼. 눈이 어두워서…》

《명학소에서 〈산행계〉 행수하는 망이라는 사람 아니요.》

《오, 금비라는 젊은이… 헌데 법없이두 살 저 사람이 웬 일루 형벌을 당허누?》

《명학소에서 버드내에 논을 새로 풀지 않었나요.》

《그 신답두 저 사람이 주장해서 풀었다며. 그래서…》

《신답풀이야 워낙 3년간 조세를 받지 않기루 돼있는데도 저 상호장이 강짜로 조세를 내라고 하니 나라법대루 하자고 등장을 왔는데 글쎄 저 죽일 놈들이…》

《우리 부락은 굶어죽어두 그 부락에선 신풀이논신세를 좀 지는가부다 했더니… 깨끼부락사람들이야 그저 죽을 팔자지.… 망헐놈의 세상…》

수염허연 로인은 혼자소리로 개탄했다. 그러는사이 안뜨락에서는 하인놈들이 망이를 형틀에 비끄러매고있었다.

이번에도 망이는 태연했다. 모든것을 체념하고 감수하는듯싶었다. 어쩐지 하인놈들도 아까처럼 기승스럽지는 못했다. 이런 노릇을 하는것이 업이기에 할수 없다는듯이 꾸물럭거렸고 지어 망이를 동정과 경의의 눈길로 바라보는 놈들도 있었다.

강한 사람에게 경의를 보이는것은 인간의 인정이다. 망이는 비록 재물도 권세도 없는 비천한 몸이였지만 그 강한 정신력으로 뭇인간들의 존경을 받을만 하였다.

《뭣들 꾸물거려! 다리갱이가 부러질 때까지 틀지 못해!》

대청마루에서 울리는 백가신의 악에 받친 강호령에 하인들은 덴겁하여 날치였다. 그놈들은 망이의 다리짬에 네모진 참나무몽둥이 두개를 가위다리치기로 끼웠다. 가새주리를 틀려는것이였다.

그러자 둘레에 서있던 하인놈들이 일제히 《아뢰라!》 하고 벽제소리를 질렀다.

이어 《우얏!》 하며 참나무몽둥이를 잡고서있던 놈들이 그것을 비틀었다.

망이는 골수까지 쩡 마쳐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또다시 《아뢰라!》 하는 소름끼치는 악청이 울렸다.

《우얏!》

참나무몽둥이가 비틀린다.

악청이 울릴 때마다 오치연은 치를 떨었다.

그는 자기가 충동질하여 망이가 이런 졸경을 치르게 되였다고 후회가 막심했다.

그는 무시무시한 악청과 함께 망이의 몸을 비트는 주리가 마치 자기 몸에 가해지는듯 한 아픔을 느꼈다. 아, 세상이 이렇게 무법할수가 있느냐. 이렇게 무도할수가 있느냐!…

오치연은 채머리를 푸들푸들 떨며 고개를 쳐들었다.

《등장하러 온 량순한 백성을 이렇게… 잔혹하게 달구는 법이 … 어데 있소이까!…》

그의 말소리는 격분으로 떨렸다.

독사처럼 살기가 뻗쳐 망이를 지켜보고있던 백가신은 오치연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저, 저놈이… 네놈두 주리맛을 볼려구 앙탈이냐?》

그러자 백태가 아량을 보이듯 아비를 제지했다.

《그깟 늙은 놈의 망발을 가지구…》하고 뇌까린 백태는 하인놈들에게 다시 눈을 부라렸다.

《이놈들, 뭘 멍청히 있느냐.》

하인놈들은 덴겁하여 손에 잡은 참나무몽둥이를 비틀었다.

《음―》

망이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긴 했어도 여전히 두눈을 부릅뜨고있었다. 그는 이미 정갱이의 살가죽이 벗겨지고 장딴지의 살이 터졌다.

네번째로 참나무몽둥이가 비틀렸을 때 뚝하고 무릎뼈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그 어떤 거대한 철방망이가 뒤통수를 때리는듯 한 진통을 느끼면서 망이는 정신을 잃고말았다.

《아이구, 저 악귀같은 놈들이 무고한 사람을…》

사이담장너머에서 엿을 보던 촌개소의 천민들은 망이가 당하는 참경에 분통이 터져 이를 갈았다. 그들은 같은 천민이라는 동류의식으로 마치 자기들이 고통을 받기나 하는것처럼 이마살을 찌프렸다. 촌개소에서 웃사람구실하는 상두행수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하인들이 쓰러진 망이를 중문밖으로 끌어내는것을 보고서야 백가신은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백태는 어쩐지 아직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이때 머리우에서 난데없이 《아뢰라!》하는 굵고 석쉼한 소리가 울렸다.

흠칠 놀라 고개를 쳐든 백태는 새장안에서 눈이 매롱매롱해서 자기를 노려보는 앵무새를 보았다. 백가신이가 송나라상인한테서 비단 다섯필을 주고 샀다고 자랑하던 노란앵무새였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백태를 노려보던 앵무새는 그를 조롱하듯 다시금 《아뢰라!》하고 부리를 놀렸다.

화딱지가 난 백태는 주먹으로 새장을 후려갈겼다. 고리가 끊어진 새장은 섬돌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고 새장에서 날린 노란 깃털이 락화처럼 대청마루며 섬돌우에 흩날렸다.

골살을 찌프리고 자기 처소로 가려던 백태는 문득 돌아서며 섬돌우에 읍을 하고있는 서사에게 오치연이를 자기 방으로 끌어오라고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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