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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회


제5장 검은 가을

2


혜명은 극락전옆의 풀밭에서 융대를 찾아냈다.

《헤헤, 난 또 누구라구.》

융대는 얼굴의 긴장을 풀며 잔디우에 덮어놓았던 붉은 가사를 들쳤다. 그러자 맑은 술이 담겨있는 커다란 바리대(나무그릇)가 나졌다.

《아니, 그게 술 아니우? 훔쳤소그려.》

놀라움에 잠긴 혜명은 두눈이 꼬부장해졌다.

《왜? 후… 훔쳤다. 너두 좀 마셔보련?》

융대는 능청스럽게 벙글거리며 혜명의 반들거리는 머리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고나서 목기를 들어 랭수마시듯 들이켰다.

혜명은 아연실색하여 술바리를 기울이는 융대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술을 먹지 못하는것은 승의를 입은 중들은 말할것 없고 속세에 살면서 부처를 섬기는 일반 신자들까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계률의 하나인데 절간에서, 그것도 시퍼런 대낮에 파계의 짓을 하고있는 융대가 놀랍기만 하였다.

《이거 안, 안주없이 가, 강술을 마실려니…》

얼굴이 불쾌해져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휘휘 둘러보던 융대는 벌쭉 웃으며 극락전쪽으로 허청허청 걸어갔다. 어디선가 사다리를 가져다 세워놓은 그는 극락전의 추녀끝으로 슬금슬금 올라갔다.

잠시후에 다시 풀밭으로 돌아온 융대는 혜명의 눈앞에 줌을 쥐였던 손을 펴보였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서는 털도 나지 않은 새빨간 참새새끼 몇마리가 팔딱거리였다.

혜명은 너무 끔찍스러워 눈살을 찌프렸다.

《헤헤, 부, 불에 구웠음 좋겠는데… 나무아미타불.》

흥감스럽게 중얼거린 융대는 참새새끼 한마리를 산채로 입안에 던져넣고 어적어적 씹었다.

혜명은 눈을 꽉 감았다. 속이 메슥거리고 구역질이 나올것 같았다. 이윽고 눈을 뜬 혜명은 되알지게 쏘아붙였다.

《이게 무슨짓이유?》

《무슨짓이긴… 마시고 시, 싶은걸 마시고 머, 먹고싶은걸 먹는다, 왜?…》

《그럴것 같으면 속세에 내려가 속인이 되고말지 뭣때문에 승의를 입었수?》

《승의?… 헤헤… 승의를 거, 걸치면 놀고 먹을수 있으니께.》하고 이죽거린 융대는 혜명의 볼을 꼬집으며 더욱 빈정거렸다.

《네…네깐놈들, 삼, 삼천만년 계률을 지켜보렴. 극락에 가나. 흐… 흙덩이에 금박칠한 그까짓 부처가 너희들을 극… 극락으로 데려다준다든?》

혜명은 어처구니없어 말도 나가지 않았다. 이런 술난봉, 이런 파계승을 무엇때문에 내쫓지 않고 절간에 그냥 둬두는지 알수 없었다. 아니 내쫓기는커녕 주지스님은 그를 다른 승려들보다 더 위해주지 않던가. 무릇 생명가진 모든것을 아끼라는것이 불가에서 제일 신성시하는 계률이건만 융대는 도리여 그것을 괴롭히는데서 무상의 희열과 만족을 느끼는것이였다.

뿐더러 그는 불가의 다른 계률도 어느것 하나 지키는것이 없었다. 그는 도대체 계률같은것은 인정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그것을 공공연하고 파렴치하게 어기는것을 오히려 자기의 장끼로 생각했다. 하기에 승적에 오른 중이라면 반드시 엄수해야 하는 《십중계》나 《십선계》는 말할것 없고 속세에 살면서 부처를 섬기는 일반신도들도 지켜야 한다는 《팔관재계》까지 그는 혹독하게 무시하였다. 이를테면 생물을 죽이지 말며 싸우거나 도적질하지 말며 음란한짓을 하지 말며 거짓말하지 말며 술을 마시지 말며 높은 자리에 앉지 말며 사치하지 말며 절제없이 먹지 말라는 계률따위는 불깐 소가 되라는 공념불로밖에 치부하지 않았다.

이때로 말하면 불도가 어지간히 문란해진 때여서 남들의 눈을 피하여 가람의 법도를 어기는 《파계승》들이 나타나 엄정하고 거룩하기로 신비의 경지에 영원토록 있어야 할 불가의 지체를 훼상시키는 일이 있었지만 융대란자는 이런 《파계승》과도 같이 볼수 없는 인간이였다.

그러나 융대가 주지 무광대사와 각근한 사이이고 그의 비호를 받는 심복이라는것을 알고있는 홍경원의 뭇중들은 그가 하는 파계의 행위들을 못본체 하거나 혹은 눈이 더러워질가봐 피하기가 일쑤였다.

언젠가 혜명은 법무승과 주지가 융대의 일을 두고 긴 시간을 마주앉아 상론을 하는것을 본적이 있었다.

《주지스님, 소승이 생각컨대 속세의 희로애락과 천만가지 유혹을 버리고 한생을 불가에 기탁한다는것은 그 용단이 바이 어려운 일이고 또 그로 하여 그 뜻이 높고도 장한줄로 아옵니다. 대자대비하신 세존님께서 입도의 문을 열어놓으시고 그들을 언제나 기꺼이 맞아주시는것은 그 뜻을 가상히 여기시여 극락으로 인도하자하심일진대 그 은덕도 모르고 우리가 받들어온 법도를 어기기를 능사로 하여 세존님을 욕되게 하고 불도를 어지럽히는 융대와 같은 사람은 가람에서 내보내심이 마땅할줄 아옵니다.》

법무승의 말을 듣고난 무광대사는 이렇게 대답하는것이였다.

《누구나 다 간다면 그것이 무슨 극락이며 누구나 다 행할수 있다면 불도의 신비함과 오묘함이 어디에 있겠소. 불타께서 교리를 펴실 때 금욕과 고행으로 근본을 삼으시면서도 제자들에게 밥먹는것만은 금하지 않으셨으니 그것은 중들도 사람인 이상 속인들과 마찬가지로 밥을 먹어야 생계를 도모하고 수양도 할수 있기때문이요. 그런데 법무승께서 말씀하는대로 융대를 내보내면 우리 절의 숱한 전장을 누가 맡아보겠소. 또 그가 우리처럼 계률을 착실히 지키고서야 어떻게 속인 농군들을 거느리고 지장의 소임을 거행하겠소. 융대는 극락으로 갈 때 내가 데리고가겠으니 법무스님은 과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줄로 아오.》

이러한 상담이 있은 다음부터는 법무승도 융대의 일에 더는 마음을 쓰지 않게 되였고 융대는 자신을 속세에서나 불가에서나 꺼릴것이 하나도 없는 특수한 존재로 여기게 되였다.

아무튼 융대는 자신이 승려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굳이 머리를 깎고 거치장스러운 장삼을 두르고 다니는것은 제 말마따나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을수 있기때문인 모양이였다.

《한데 무… 무슨 일루 왔냐?》

융대의 묻는 소리에 혜명은 소스라쳐 놀라며 입을 열었다.

《이를 어쩌나. 주지스님께서 찾으시는데…》

《누굴?… 나, 나를?… 이런 매, 맹꽁이 지, 진작 말할게지. 왜 부르든?》

《몰라유, 빨리!》

목기에 남은 술을 마저 들이킨 융대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벌써 저쯤 앞서 달리는 혜명이를 따라 숨가삐 뛰여갔다.

《왜 이리 늦었나?》

섬돌아래에 읍을 하고 선 융대를 무광의 가시같은 눈초리가 눈거죽밑으로 싸늘하게 내다보았다.

《저…》

융대는 공연히 곁의 혜명이에게 눈을 부라렸다.

《자네 상호장어른께 수박솜씨를 좀 보여드려야겠네.》

《예?!… 누구와?…》

융대는 놀란 눈길을 쳐들었다. 느닷없이 수박을 하라는것도 의아쩍었지만 상대할 사람도 보이지 않기때문이였다.

《날세, 면목이 있군 그래.》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백태의 문금포자락을 백가신이가 슬며시 잡아당기였다.

아들을 도로 자리에 눌러앉힌 백가신은 뜰에 대고 소리쳤다.

《게, 명학소에서 온 눔들 계하에 있느냐?》

《있소이다.》

망이네들의 대답을 들은 백가신은 일어서라고 또 소리질렀다.

주춤거리며 일어선 그들을 훑어보던 백가신은 단박 망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저 스님과 한번 겨뤄봐라.》

백가신은 십중팔구 망이가 융대의 주먹에 숨통을 끊기리라고 단정했다. 배나 부리고 농사나 짓던 녀석이 한다하는 수박군을 어찌 당하랴.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그뒤의 일은 백가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애비의 속내를 알만 하다는듯 히물히물 웃으며 망이와 망쇠를 번갈아보던 백태가 망이대신 망쇠를 선택했던것이다. 부곡놈을 먼저 미끼로 던질바치고는 날파람스러워보이는 망쇠쪽이 더 탐탁해보였기때문이였다. 그는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언젠가 초적들속에서 자기를 구해준 망이한테 신세갚음을 한다는 위안을 스스로 얻을수 있었다.

《가만, 수염난 놈 말고 너곁의 너부터 웃동을 벗어라.》

백태는 아비가 찍어준 망이대신 망쇠를 가리켰다.

백태의 말을 듣고 옷고름으로 손을 가져가는 망쇠의 소매자락을 꾹 잡아당기며 망이가 허리를 펴고 한걸음 나섰다.

목숨까지 위태로울지 모를 위험한 수박치기에 고역을 치른데다 굶기까지 한 망쇠를 내세울수 없었다.

망이는 허기진 사람들을 심심풀이감으로 내세워 구경가마리로 삼으려는 승방의 백가신이에 대한 분격을 느꼈으나 이 자리를 피할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침울하게 말했다.

《소인이 해보겠소이다.》

《이놈들, 시키는대로 하지 못해! 네가 벗으란 말이다.》

백태는 망쇠를 재차 가리키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백가신은 대뜸 낯색을 변하며 아들한테 눈총을 쏘았다. 그 눈은 《아비의 계책을 쥐뿔도 모르는 소갈머리없는 자식, 이게 놀음거린줄 아느냐.》하고 꾸짖고있었다.

백가신은 제세상이나 만난듯 거들거리면서 매사에 중뿔나게 구는 아들의 행동거지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언제건 한번 단단히 혼뜨검을 내주어야겠다고 속으로 윽별렀다.

수박치기란 말만 들었지 별로 해본적이 없는 망쇠는 자못 긴장하여 웃옷을 벗었다. 웃도리를 벗고나선 망쇠는 구리로 부어낸듯 앞가슴이며 팔뚝이며가 여간 다부지고 단단해보이지 않았다.

앞가슴에 검은 털이 부시시한 융대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한동안 망쇠를 살기찬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는 할짓이 없어 몸이 근질거리던차에, 게다가 술기운이 올라 한바탕 날뛰고싶던차에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되니 벌써부터 쩌릿한 쾌감을 느꼈다.

이윽고 융대는 두주먹을 뭉그려쥐더니 《우얏》하고 기분나쁜 소리를 지르며 먹이감에 당장 덤벼들려는 맹수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망쇠도 본능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했지만 그것은 매우 서툴고 어색한 몸가짐새였다.

망쇠를 긴장한 눈길로 지켜보던 망이는 억울하고 분한 생각에 주먹을 꾹 틀어쥐였다. 실컷 부려먹고 점심도 굶긴 사람을 또 이런 싸움놀이감으로 내세우다니.…

그는 망쇠가 못내 걱정스러웠다. 차라리 자기가 뽑혔더라면 이다지도 마음이 조이지 않으련만.

겁에 질린 어펑돌이는 망이의 팔을 꽉 잡았다.

《야―앗?》

융대가 갑자기 짐승의 울부짖음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망쇠에게 달려들었다. 드세게 내지르는 융대의 주먹에 단박 눈통을 얻어맞은 망쇠는 목이 뒤로 젖혀지고 눈에서 번개불이 번쩍했다.

그는 몸을 비청거렸다.

《망쇠!》

망이가 얼결에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망쇠는 자못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융대를 노려보았다.

(이놈이 신풀이논의 방천을 허물겠다고 날뛰던 놈이였지.)

처참하던 그날의 광경이 되살아났다. 그러자 온몸의 힘살이 활시위처럼 팽팽해지는것을 감촉했다.

(중의 옷을 걸쳤으면 부처나 잘 섬길게지 네놈이 뚝심을 믿고 못된짓을 도맡아 해. 원쑤를 외나무다리서 만난다더니 잘됐다. 어디 죽기로 겨뤄보자. 난 죽어도 아까울게 없다.)

융대가 다시 덤벼들었다. 망쇠는 날래게 몸을 피했으나 융대의 뒤주먹질에 앞가슴을 얻어맞았다.

수닭싸우듯 하는 두 사내를 내려다보던 백가신이가 무광대사쪽에 얼굴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는 백가신에게 백태가 낮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저 승도가 앞주먹치기와 뒤주먹치기는 괜찮은데 수도(손칼)치기가 능하지 못한것 같소이다.》

단매에 망쇠를 쓰러뜨리려고 덤벼들던 융대는 제 뜻대로 되지 않자 약이 올라 수도치기로 넘어갔다. 그는 망쇠의 목을 노리고 손을 쫙 펴서 내리쳤다.

망쇠는 팔굽을 쳐들어 그것을 막았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헐떡거렸다.

별안간 융대가 몸을 날리며 발길질로 망쇠의 어깨를 걷어찼다. 미처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한 그는 궁둥방아를 찧으며 땅에 넘어지고말았다.

《잘한다, 잘해.》

승방에서 환성을 질렀다.

두손으로 허리를 짚고 발을 벋디디고선 융대는 거드름스러웠다.

(이놈이 이젠 발길질까지 하는구나.)

끙 신음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킨 망쇠는 지릅뜬 눈으로 융대를 노려보았다. 발길질이라면 그도 무섭지 않았다. 산속을 뛰여다니며 자라난 그는 팔힘보다 오히려 다리힘이 더 강했다.

융대한테 달려들며 땅에서 몸을 띄운 망쇠는 번들거리는 대머리를 향해 발을 날렸다. 융대가 머리를 움츠리는 바람에 헛발질을 한 망쇠는 땅에 떨어지는참 다시 몸을 날려 뒤발로 걷어찼다. 머리는 맞지 않았지만 허리를 호되게 걷어채운 융대는 몸을 휘청거렸다. 그는 뒤걸음질쳤다.

이제는 펄펄 날아돌아가는 망쇠를 피하느라 융대가 겁기에 질린 눈을 흡뜨고 쩔쩔맸다. 그러나 끝내 망쇠의 세찬 발길질에 골통을 걷어채운 융대는 밑둥을 잘리운 나무처럼 쿵 소리를 내며 육중한 몸을 땅우에 떨어뜨리였다. 네활개를 펼치고 자빠져 두눈의 흰자위가 뒤집힌 그는 죽은 사람같았다.

승방의 량반들과 승려들은 놀란 눈을 흡뜨고 융대를 내려다보았다.

필승의 비결은 언제나 필사의 각오에 달려있다는 말대로 죽기로서 싸워 융대를 꺼꾸러뜨리고 버티고선 망쇠는 거벽스러웠다.

망이는 기쁨속에서도 걱정이 앞서 융대한테로 달려나갔다. 다행히 숨기는 있었다. 뒤미처 뛰여온 상좌중들과 함께 그는 늘어진 융대를 맞들고 곁의 절간으로 옮겨갔다.

정신을 잃은 융대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냈다. 그의 령혼이 지금 극락에서 헤매는지 지옥에서 헤매는지 어찌 알랴. 아무튼 오늘은 그에게 재수없고 불길한 날인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무아미타불.》

주지 무광이 거적눈을 내리뜨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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