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5장 검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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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복의 잔등에 업혀가는 백가신은 땀내가 난다고 그의 머리를 연방 쥐여박았다. 무거운 백가신이를 업고 고개까지 쳐들지 못하고 가팔진 산길을 오르는 노복의 얼굴에서는 줄땀이 흘렀다.
그러나 더 어깨숨을 쉬는것은 잉어가 들어있는 물독을 지고가는 망이네들이였다. 지게우에 아름드리 물독을 삼바로 동여매고 고샅길을 톺아오르는 그들은 다리를 몹시 휘청거렸다.
입안으로 흘러드는 쩝절한 땀을 푸푸 뱉아버리며 무릎노리까지 오는 너설바위우에 힘주어 올라선 망이는 뒤에서 가쁜숨을 헐떡이는 어펑돌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잡고 바위우에 올라서던 어펑돌이는 몸을 기우뚱거렸다. 출렁 넘쳐난 독안의 물이 그의 온몸을 화락하니 적셔놓았다. 그를 바싹 뒤따르던 망쇠가 제때에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끝내 물독을 깨쳐버리고말았을것이다. 어펑돌이는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망이는 지게의 멜끈이 어깨를 파고들어 견디기 어려웠다. 지게와 잔등사이에 등태로 끼워놓은 마른 풀꾸레미는 땀에 죽처럼 풀어져 너들너들 흘러내렸다. 눈이 쓰리고 귀에서는 벌떼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중들은… 비린것을… 헉… 안먹는다는데… 뭣하러 가져가오?》
망쇠가 가까스로 말을 토했다.
《글쎄…》
대답하는 망이도 숨결이 높았다.
이틀밤 낮을 온 부락사람들과 함께 그물질도 하고 낚시질도 하여 백마리의 잉어를 잡느라 꼬박 밝혔고 그 고기를 찬물을 갈아주며 공주읍까지 60리길을 날랐고 또 공주에서 여기 홍경원의 절간까지 져날라오는 길이다.
망이는 이발을 악물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겨놓았다.
불현듯 서글픈 미소를 띠운 을님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물거렸다.
(을님이, 이만것에 비칠거리는 내가 불쌍하지 않소?)
(아니와요, 아니와요.)
(그럼 왜 우오, 왜 우는거요?… 옳지. 이젠 웃는구만. 왜 웃소? 나를 비웃는거요.)
(아니와요, 그저 쓰러지지만 마시와요. 이보다 더 힘든 일도 하지 않았나요. 소금에 전 사람은 간장에 절지 않는다나봐요.)
이상스럽게도 전신에 힘이 욱 뻗친다. 망이는 눈을 감았다뜨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턱끝에 맺히는 땀방울을 털어버렸다. 잊자고 애쓰는 을님이가 이런 때 문득 생각나는것이 이상스럽기도 했다.
펑퍼짐한 풀밭이 나졌다. 걸음걸이가 한결 쉬워졌다. 모두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몹시도 숨을 헐썩거렸다.
그들앞에는 《련화암》이란 현판이 붙은 커다란 암자가 있었다. 산중턱을 깎아내고 지은 주지의 암자는 말이 암자지 실상 산밑의 법당들 못지 않게 크고 화려하였다.
큰 로송이 서늘한 그늘을 던지고있는 암자의 마당에 금실로 수놓은 화려한 검은 운수라 장삼에 붉은 비단가사를 왼쪽어깨에 걸친 홍경원의 주지 무광대사가 두손을 합장한채 머리를 가볍게 숙이고 서서 백가신이네를 맞이하였다. 한발 뒤에는 역시 화려한 비단장삼을 입은 지전(례식을 맡은 중)스님과 법무(계률을 맡은 중)스님이 두손을 합장하고 서있었다. 그들의 머리는 엎어놓은 놋대접처럼 해빛에 번들거렸다.
《왕생극락하소서.(극락으로 가소서.)》
《왕생극락하소서.》
웃두리중들의 인사에 백가신이도 읍을 한 자세로 마주 인사했다.
잠시후에 그들은 섬돌계단으로 올라가 주지의 방에 들어갔다. 만자형의 무늬가 새겨진 창살미닫이를 열어놓은 방안으로 선들선들한 산바람이 흘러들고 울긋불긋하게 단풍든 수려한 산천이 눈아래로 굽어보였다. 암자옆의 골짜기에서 폭포떨어지는 소리가 먼 우뢰소리처럼 은은하게 울렸다.
《참, 선경이로소이다. 바람도 시원하고…》
가부좌를 하고 앉은 백가신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그러게 옛적부터 우리 절을 명산대찰로 일러오지 않소이까?》
거적눈을 들어올리며 느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응대한 무광대사는 다시 거적눈을 내리떴다. 그가 거적눈을 내리뜨고 안존히 앉아있을 때면 부처와 너무도 흡사하여 마치 살아있는 부처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무광대사옆에 앉아있던 광대뼈가 두드러지고 볼이 우무러든 계사스님(절간의 불도들은 그가 개뼈다귀를 먹다가 이발을 부러뜨려 호물때기가 됐다고 뒤에서 비양했다.)이 백가신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상호장께선 오늘 무슨 일루 우리 가람(절)에 왕림하셨소이까?》
《예, 오늘이 6재계일의 마감날이 아니오니까. 그래서 방생불사를 할겸 해서…》
이 말에 방안의 로승들은 일시에 머리를 끄덕이며 감동을 표시했다.
《아, 상호장께선 참으로 독실한 불도이시오. 분명 성불하시여 왕생극락하겠소이다.》
《고맙소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백가신이와 로승들은 사뭇 경건한 태도로 두손을 합장하여 턱밑에 가져다대고 눈들을 감았다.
홍경원같은 큰 절에 더우기 주지의 방에 처음 와보는 백태는 호화로운 방안의 가구들을 놀란 눈으로 둘러보았다.
《호불항마》(부처를 지키고 마귀를 쫓는다.)라고 쓴 커다란 족자가 걸린 맞은쪽 벽에 꽉 차서 천정까지 쌓아놓은 자개박이장농들, 그 장농에서 번쩍거리는 쇠문양들이 어쩌면 금이나 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장농에 련이어 세워진 까만 옻칠이 반들거리는 책장에는 금박올린 불경책들이 빼곡이 차있었다. 웃벽쪽으로 치우쳐 세워진 여섯폭짜리 커다란 병풍에는 극락도가 금실과 은실로 수놓아져있었다. 서탁우에 놓인 자그마한 금불상이나 불탑은 물론이고 들깨기름과 콩물을 먹인 노란 장판에 놓인 은주전자며 은차잔, 청동화로며 붉은모직안석 어느것이나 값비싼것들뿐이였다. 주지의 방은 개경장안의 한다하는 재상집들보다 실로 더 으리으리하고 호사스러웠다. 절간의 승려들이 부자도 이만저만한 부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한편 암자의 섬돌아래에 쭈그리고앉은 망이네들은 시장기와 피곤에 시달리고있었다. 온몸이 개나른한게 어디 가서든 한술 먹고 한잠 푹 자고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주지방쪽에 귀를 기울이던 어펑돌이가 망이한테 고개를 쳐들었다.
《저 나무아미타불이요, 관세음보살이요 하는 소리는 무슨 소리우?》
《별소리가 아닐세. 래세를 주관한다는 아미타부처와 자비하신 보살인 관세음에게 명복을 비는 소리지.》
피곤이 몰린 망이는 눈을 감은채 석쉼해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형님은 아는게 많소그려.》
《세상이 다 아는걸 임자만 모를뿐이지.》
망쇠는 따뜻한 볕을 받으며 끄덕끄덕 졸고있었다.
상심해 앉아있던 어펑돌이가 혼자소리로 볼이 부어 두덜거렸다.
《그러니 살아 생전에도 잘살고 또 죽어 저승에 가서도 잘 살겠다는게로구먼. 공것 바라는 무당의 서방처럼 욕심두… 이승에서 개팔자인 나두 저승에서나 팔자를 고치게 아미타불을 불러볼가.》
어펑돌이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게 우스워 망이는 피곤한 낯에 빙긋이 웃음을 띠웠다.
얼마후에 주지의 방에서 백가신이네와 로승들이 나왔다. 어펑돌이는 졸고있는 망쇠를 황급히 흔들어깨우며 무릎을 꿇었다.
《잉어를 저 못가로 가져가거라.》
섬돌로 내려서던 백가신이가 망이네들에게 이르고는 승려들의 뒤를 따라 법당으로 걸어갔다. 침침한 법당에 들어선 그들은 부처앞에 향불을 피우고 념불을 시작했다.
눈거죽을 늘어뜨린 무광대사는 목탁을 《달각 딱딱》 두드리며 례식때마다 읊조리기마련인 부처앞에 입을 깨끗이 한다는 《정구업진언》을 외웠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백가신은 손을 합장하고 그 념불을 따라외웠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무광은 《정구업진언》에 이어 《개경계》를 외웠다.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구성지고 랑랑한 무광의 념불소리를 백가신은 이번에도 정성스레 받아외웠다. 계속해서 불교경전들인 《반야심경》, 《천수경》을 독송했다.
지루하고 따분한 독송이 끝나자 무광은 목탁을 놓고 일어서서 아미타불을 향해 두손을 모아 절을 했다. 그리고 돌아서며 백가신을 향해 《왕생극락하소서.》 하고 허리를 굽혀 합장을 했다.
백가신이도 똑같은 소리로 합장을 했다.
념불을 끝낸 그들은 법당을 나와 못가로 걸어갔다.
이어 못가에서는 방생불사, 이른바 석가모니의 자비로운 훈계를 받들어 죽게 된 생물에게 명을 누리도록 해준다는 불교의식이 벌어졌다. 불성을 체득하기 위해 고행한다는 승도들은 이 방생불사를 다시없는 적선으로 치부하고있었다.
백가신의 지시로 어펑돌이는 바가지로 물독에서 잉어 한마리를 건져냈다. 넓다란 소매자락을 걷어올린 백가신은 꺽두룩한 몸을 굽히며 잉어에 손을 뻗쳤다.
승려들은 일제히 목탁을 두드리며 소리를 높여 관음주력을 외웠다.
《대자대비 남무관세음보살.》
그런데 잉어가 꼬리를 세차게 치는 바람에 백가신의 상판에 비린물이 튕겼다. 오만상을 잔뜩 찌프린 백가신은 요동치는 잉어를 가까스로 잡아 물속에 놓아주며 《나무아미타불.》하고 념불을 외웠다.
팔뚝같은 잉어는 퍼런 물이끼가 덮인 물속에 들어가자 다시한번 꼬리를 철썩 치고는 유유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이렇게 물속에 놓아주는 물고기가 해마다 몇백몇천마린지 모르는데 씨종자도 남지 않고 깡그리 없어지는것을 보면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중들도 잉어육식만은 례외로 즐기는 모양이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망이는 백가신의 소행이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불성을 닦기 위해 도살장에 들어가는 짐승이나 어물전의 생선을 사서 놓아준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처럼 강에서 물고기를 우정 잡아다가 도로 놓아준다는 말은 듣지 못했던것이다. 그는 흠집을 내지 않고 잉어를 잡느라 애쓰던 일이며 또 그것을 여기까지 지고 오느라 치른 고역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견딜수가 없었다.
《아이구, 저걸…》
백가신이가 잉어 한마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안절부절못하며 돌아쳤다.
땅바닥에 떨어진 잉어는 시퍼런 비늘에 모래를 잔뜩 붙여가지고 펄떡펄떡 자반뒤집기를 하였다.
그랬어도 승려들은 목소리를 높여 《관세음보살》만 불렀다.
뒤전에서 얇은 입술에 비웃음을 삐주름히 띠우고 부친의 거동을 지켜보던 백태가 스적스적 다가가 백가신이가 방금 덮치려고 하는 잉어를 발로 툭 차서 물속에 떨어뜨렸다. 당황한 백가신은 승려들쪽에 얼핏 고개를 돌리더니 아들을 잡아먹을듯이 노려보았다.
백태는 아비의 시선을 태연히 받으며 빈정거렸다.
《이다지도 생물을 위하시려면 애당초 강에선 왜 잡아왔소이까?》
말문이 막힌 백가신은 눈만 흘겼다.
망이네들은 배속에서 꾸럭거리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바가지를 들고선 어펑돌이도 고개를 돌린채 어깨를 가볍게 들먹거렸다.
지루한 방생불사의식은 한낮이 기울어서야 끝을 보았다.
백가신네들은 다시 승방으로 들어가고 망이네들은 섬돌아래에 꿇어앉았다.
공양주(취사를 맡은 중)가 목기에 담은 음식을 부지런히 날라들여가는 방안에서는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간단없이 흘러나왔다.
창자가 텅빈 망이는 배가 쓰리다못해 아파났고 기력이 좋던 어펑돌이마저 걸신이 들린 눈길을 자주 승방쪽에 가져갔다.
입맛을 돋구는 갖가지 산나물로 푸짐한 점심을 끝낸 승방에서는 담소들을 나누었다.
《수천명의 승도들이 있는 절간이니 재물이 약차하겠소이다.》
백가신의 말에 무광이 거적눈을 들어올렸다.
《재물까지는 몰라도 계량할 량곡은 있소이다.》
《그걸 어디다 간수하시오.》
《창소(창고)가 빈약해서 지금 창사로 쓸 굴을 새로 뚫고있소이다.》
《그것 생각 잘하셨소. 창사가 든든해야 도적을 막을게 아니오이까.》
《여부있소이까.》
《요즘 사처에서 도적떼가 성하는 판이니 예서두 각별히 조심하셔야겠소이다.》
《예, 하긴 우리 절에도 힘이 항우같은 승도들이 있긴 합니다만…》
《참, 수박치기에 능한 승도들이 절에 있단 말을 들었는데 한번 구경시켜주지 않으시려오.》
《상호장께 보여드린다면 우리두 생광스럽겠소이다.》
백가신은 은근히 쾌재를 불렀다. 힘꼴깨나 쓰는 중을 시켜 망이를 없애치우려던 계략이 의외에도 쉽게 풀린것 같아서였다.
백태의 낯에도 화색이 돌았다. 한적한 절간에 와서 지루하던차에 힘꼴쓰는 중들이 있다는 말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말을 탈수 없는 중들속에는 칼이나 창보다 수박에 능한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이전에도 들은적이 있었다. 이처럼 무료한 한때를 수박치기로 보낸다면 한결 심신이 개운해질것 같았다.
《저, 주지스님, 수박치기에 능한 승도가 정말 있소이까?》
백태는 무릎에 놓은 칼집을 꾹 쥐며 물었다.
아까부터 불가를 시답잖게 여기는 백태를 아니꼽게 보아오던 무광은 이 버릇없는 젊은 벼슬아치의 코대를 한번 꺾어놓고싶어졌다.
《도련님은 무인이라 무예에 제일 구미가 동하시는 모양이시구려. 오늘같은 날을 당하여 한번 재조를 겨루어봄도 뜻깊은 일이라 할수 있지요.》
웃는 법이라고는 모르는것 같던 무광의 거적눈이 한번 벙긋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저리쳐지게 음랭한 웃음이였다. 무광은 거적눈으로 그것을 감추는지 모른다.
경인년의 무신란이후로 조정에 들어앉아 권세를 잡은 무신들이 불가를 홀시하고 경원시하며 지어 불가의 재산까지 침해하는 일이 드문하여 승려들은 은연중 그들에게 반감을 품고있었다. 더우기 왕실을 비롯한 문신들의 비호와 지원밑에서 번영한 불교사원은 문신들을 옹호하여 무신정권의 전복까지 시도하게 되였다. 이러한 적대감과 알륵관계는 드디여 마찰과 충돌을 야기시켰다.
작년정월에 귀법사의 중 100여명이 개경의 북문을 침범하였는데 무신정권의 거두인 상장군 리의방이 천여명의 관군을 끌고나가 중들을 쳐죽였다. 이에 분개한 여러 절간의 중 2천여명이 다시 모여 개경의 승인문을 불질러버린 후 성안에 들어갔으나 리의방의 관군에게 또 패하였다. 리의방은 백여명의 중을 죽인 후 중광, 흥호, 귀법 등 여러 절간을 습격하여 파괴하고 불살라버렸으며 많은 재물을 빼앗아갔다. 리의방은 결국 정균의 꾀임을 받은 종감이란 중한테 죽고말았지만 아직도 무신들에 대한 승려들의 반감은 풀리지 않고있었다.
무광의 속심을 알길없는 백태는 어서 그런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보챘다. 그는 시골에 내려와있는 갑갑한 나날 자기의 젊은 피가 식어지고 걸어지는듯싶었는데 수박치기란 말을 듣고보니 날뛰는 말처럼 끓어번지는 피를 억제할수 없었다.
《얘, 혜명아, 너 거 융대스님을 좀 오시래라.》
《예―》
무광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처녀처럼 곱살하게 생긴 젊은 상좌(심부름하는 중)가 손을 합장하고 뒤걸음질로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