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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제4장 한가위날

7


침침한 하늘이 누리에 내려앉은듯 사위가 캄캄한 어둠속에 묻혔다. 불빛 한점 보이지 않는 컴컴한 집들에서 이따금 가냘픈 흐느낌소리가 슴새여나올뿐 마을은 무덤속처럼 괴괴하였다.

집에 돌아온 망이는 웃방에 들어박힌채 점도록 기척이 없었다.

아래방에서는 누리나가 한숨을 톺았다. 불도 없는 방에서 울리는 어머니의 한숨소리는 망이의 가슴을 몹시도 저리게 했다. 이럴때 고비라도 있으면 어머니를 위로해드리련만 요즘은 고비가 망쇠네 집에 시집가고보니 빈집처럼 한산하고 적적해보였다.

망이는 팔베개를 베고 옆으로 누웠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갈마들었다. 촌정네 마당에서 벌어졌던 광경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캄캄한 방속처럼 가슴속이 답답해났다.

래일아침이면 촌정이 머리칼을 거두러 올것이다.

부엌문이 가만히 여닫기는 소리가 났다.

《고비냐?》

《예.》

누리나의 말소리도 기운없었지만 고비의 대답은 거의나 입안소리였다.

《방안에 불 좀 켜려무나.》

광솔이 타는 빠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아래방이 밝아졌다.

다시 부엌으로 내려간 고비는 그릇을 달가닥거렸다. 그는 두 집을 오가면서 부엌동자질을 도맡아하였다.

누리나가 시집일이나 착실히 하라고 말려도 고비는 막무가내였다.

《뉘집저녁은 끓였니?》

《예.》

《그래 뉘집사람들은 어쩌구 있던?》

《그저 우뚤거리지우. 아버님은 한숨만 쉬시구…》

누리나도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고비더러 저녁은 이따 하구 방에 올라오라고 일렀다.

물젖은 손을 치마말기에 훔치며 근심스럽게 방에 들어온 고비는 누리나의 곁에 공손히 앉았다.

《아가, 네가 내 머리를 좀 잘라주려무나.》

구들바닥에 놓이는 가위소리가 절카닥 울렸다. 그 소리는 비수처럼 망이의 가슴을 허볐다.

《어매, 웬일이시우?》

고비는 한무릎 나앉으며 울상이 되여 되물었다.

《어차피 깎아야 할 머린데 우물쭈물할게 있느냐?》

《이러지 마시와유, 어매.》

고비는 목메인 소리로 만류했다.

망이도 참을수 없어 아래방으로 내려왔다.

《어머니!… 그만두시우. 어머님앞에서 제 머리도 감히 깎을수 없거늘 어찌 어머님께서…》

망이의 얼굴은 울분과 원망과 애원으로 일그러졌다.

《일없다. 머리칼을 아끼다가 목숨을 잃겠니. 글쎄, 부모한테서 받은 신체를 터럭 하나라도 상하지 않는것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자식의 도리로 효성의 근본인것이야 천민이라구 해서 다를바가 있겠느냐만 어디 우리 처지에 그것을 가리게 됐느냐. 내가 깎지 않으면 너두 깎지 않을테니 나부터 자르자는거다.》

누리나는 서글서글한 성품그대로 태연히 고비의 손에 가위를 쥐여주었다. 안색은 짐짓 흔연했으나 손길은 가볍게 떨렸다.

《어매―》

고비가 누리나의 무릎에 쓰러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년때메… 이년때메 어매도 부락사람들도 이런 변을…》

누리나는 사내처럼 마디진 손으로 흐느끼는 고비의 애잔한 어깨를 다심하게 쓰다듬었다.

《그쳐라. 왜 너때문이겠니.》

《아니와요. 이년때메 온 부락이 이런 화를 당하게 됐어요.》

《그치지 못하겠니. 운다구 우리 팔자가 고쳐지지 않는다. 자, 어서!》

가위질을 재촉하는 누리나의 주름진 눈갓이 불그레 물들었다.

망이도 눈굽이 뜨끔했다. 늙은 어머니가 죄인처럼 머리칼도 없이 맨머리바람으로 다니며 사람들의 수모를 받을것을 생각하니 온몸의 피가 끓어올랐다. 어머니의 머리칼만 보존할수 있다면 자기 한몸을 불속에 던져도 아까울것이 없었다. 아들 하나를 믿고 한생을 고생한 어머니를 늘그막에 머리칼마저 온전히 보존해드리지 못하는 자신이 한스럽고 원망스러웠다.

망이는 참고 견딜수가 없어 어머니앞을 물러났다. 웃방벽에 걸어둔 그물을 벗겨들고 밖으로 나섰다. 어두운 골목길을 벗어나 버드내쪽으로 향했다. 백마리의 잉어를 잡으려면 오늘밤부터 줄곧 강에 붙어있어야만 했다.

도치네 술막앞을 지나치던 망이는 방문에 빨갛게 비친 불빛에 눈길이 갔다. 긴 장대끝에 매달린 술등이 바람에 흔들렸다. 이런 경황에도 도치는 술등에까지 불을 켜놓는것을 잊지 않았다.

망이는 불현듯 술생각이 울컥 치밀었다. 가슴속에 엉키고 서린 울분때문이리라.

방문앞까지 다가간 그는 방안에서 울리는 청높은 소리에 잠시 머밋거렸다.

《여보, 밥 안해?》

도치의 역증어린 소리.

《밥은 해서 뭘해.》

앵돌아진 방순의 대답.

《뭘하다니? 먹구 살아야지.》

《살아선 뭘해.》

《저런 민충이, 그럼 죽었음 좋겠구먼?》

《그게 되려 낫지.》

도치가 선웃음을 웃었다.

《헛헛… 왜 머리를 깎이워서?… 아따, 그까짓 터럭오리 없으니 이도 안끓이구 좋지 뭐야.》

방순은 도치가 제 정신없는 소리를 한다고 여겼는지 대척하지 않았다.

《눈살이 꼿꼿해선 보긴… 량반이면 어떻구 상놈이면 어때. 돈이 있어야지.》

《돈이면 똑 제일인가.》

《암, 젤이구말구. 돈만 있으면 개도 멍멍이님으로 불리우는 법일세.》

《그럼 어디 멍멍이님이 밥을 하시구려.》

발끈 달아오르기 잘하는 성미그대로 방순이 팩 내쏘았다.

망이는 깔끔한 방순이가 도치와 같은 치기스러운 사람과 한생을 살아가자니 억울하고 분한 심정이 부글부글 괴여오를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치의 코웃음치는 소리가 들렸다.

부락에서는 방순이를 도치가 굶어죽어가는 어느 집에서 돈을 주고 데려온 녀자라고 했다. 그런데도 방순은 도치를 업신여겨 매일같이 다툼질이라는것이였다. 그러기에 도치는 자기 아니면 굶어죽은지도 오랬을 년이 배은망덕하게 군다고 늘 게두덜거리면서도 인물이 깨끗한 그가 어느 건달잡놈과 난질이라도 칠가봐 마음을 놓지 못한다고 수군거렸다.

망이는 이런 집에 들어가 술을 청한댔자 술맛이 구릴것 같아 발길을 돌리고말았다.

참으로 세상은 천층만층, 구만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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