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4장 한가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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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내 동뚝길에 울긋불긋한 행렬이 쭉 늘어섰다. 느리고도 위엄있는 행렬은 지금 명학소를 향해 가고있다. 앞뒤에 창대를 멘 군졸들을 줄느런히 거느린 화려한 사인교 한채와 몇필의 말이 보였다. 사인교에는 백가신이가 탔고 그뒤의 검은 비단같이 윤기흐르는 가라말에는 백태가 타고있다. 백가신이가 제빠뜸히 앉은 사인교에는 서늘한 가을이건만 위풍을 돋구느라 일산을 받쳤다. 요람처럼 가락맞게 흔들리는 사인교에 올라앉은 백가신은 끄덕끄덕 졸고있으나 공주에서 예까지 60리길을 줄창 그것을 메고온 노복들의 얼굴에는 기름같은 줄땀이 흘렀다.

백태의 얼굴에도 지루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가슴후련히 달렸으면 좋으련만 아비와 걸음을 맞추려니 속이 여간 요글거리지 않았다.

그들이 동구길에 들어서자 마을은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창구멍으로 불안에 찬 눈들이 이 요란한 행차를 내다볼뿐이였다.

백가신이네가 촌정네 안뜰에 들어간지 얼마 아니되여 온 부락사람들은 빠짐없이 모이라는 촌정네 하인 어펑돌이의 징소리가 골목길에 울려퍼졌다.

격구(말타고 공치는 경기)장처럼 넓은 촌정네 대문밖 마당에는 부락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하루 근심과 걱정거리가 가실 날 없는 그들은 이처럼 불시에 사람들을 모이란데는 무슨 불길한 일이 있으리라는것을 본능적으로 예감하고있었다.

웅기중기 모여선 사람들은 불안스럽게 눈들을 두릿거렸다. 다만 멋모르는 어린것들만이 가댁질을 하느라 어른들 틈새를 누비며 다녔고 한쪽가녁에 오종종 모여앉은 처녀들속에서 가끔 음성을 죽여 소곤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올뿐이였다.

방금 온 술막주인 도치는 마당 한구석에 쭈그리고앉아서 망쇠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는 망이를 발견하자 그에게 작은 눈을 갑삭거리며 알은체를 했다. 돈밖에 모르는 놈이라고 마을사람들한테서 따돌림을 받고있는 도치는 망이에게 잘 보이려고 은근히 눈맞춤을 해오지만 웬일인지 그마저 자기를 쓴외보듯 하는것이 여간 불만스럽지 않았다. 몇번 집으로 이끌려고 했지만 망이는 번마다 돈이 없노라고, 공으로 남의 신세를 지고싶지 않노라고 잡아떼군 했었다.

지금 경우만 해도 그랬다.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망쇠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망이가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금비도 오셨소?》하고 알은체를 했으니까 도치, 자기를 못보았을리도 없고 등을 돌리고앉았던 망쇠까지 뒤를 힐끗 돌아볼만치 크게 울린 제 목소리를 못들었다고도 할수 없겠는데 뿌리를 박은 바위들처럼 움쩍 대척이 없으니 인사를 해놓고도 무색하기가 그지없었다.

이때 마침 오치연이가 그들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들이갈 때처럼 풀발이 선 옷을 입고 고쳐튼듯 한 큰 상투를 흰두건으로 정히 감싸고있었다.

《이자 오시우.》

망이가 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치연은 자기가 나타나자 속이 뒤틀리는지 고개를 돌려버린 망쇠를 잠간 흘겨본 후 망이에게 말을 건넸다.

《일찍들 오셨군. 그런데 무슨 일로 모이란다오?》

《글쎄요. 읍에서 상호장이랑 나온것 같은데…》

망이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때마침 촌정네 대문이 쩡 열리더니 화려한 비단옷을 떨쳐입은 상호장 백가신이의 가량가량한 몸집이 나타났다.

부락사람들은 황급히 땅에 꿇어앉아 머리를 숙였다.

담찬 사람들만이 수그린 이마너머로 대문가에 나타난 사람들을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백가신이와 함께 그의 아들인 별공사 백태, 부호장 채언 그리고도 여러명의 벼슬아치들과 구실아치들이 나왔다. 그뒤로 창을 든 군졸들이 보였다.

《에, 다들 들으시우… 오늘 상호장나으리께서…》

나이지숙한 촌정이 떠듬떠듬 입을 벌렸다. 비록 촌정으로 땅마지기나 가지고있어도 부곡민이라는 천인신분으로 하여 량반들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그는 오늘도 죽은 상이였다.

하인이 가져다놓은 교자에 앉은 백가신은 촌정의 뚱뚱한 몸집과 유들유들한 볼편을 찌프린 눈길로 쏘아보았다. 그는 내심으로 저놈은 무엇을 얼마나 처먹었기에 볼따귀가 저렇게 늘어졌을가 하는 심술궂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무위도식하는 량반토호들이 대개가 그렇듯이 백가신이도 대식가에 미식가였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매일아침 잠자리에서 먹는 해장거리로부터 시작하여 아침밥, 아침중참, 점심, 점심중참, 저녁밥, 밤참 등 하루에 일곱번이상을 먹어댔다. 식도락을 사는 재미로 치부하고있는 그를 집안사람들조차 게걸병에 걸렸다고 흉질했다.

또한 몸통이 퉁퉁해야 위풍있어보인다고 생각한 백가신은 젊어서부터 양기에 좋다는 보약은 다 써보았다. 엄지배속에 있는 송아지새끼가 약이라는 말을 듣고 새끼밴 암소를 잡아죽인것만도 수십마리는 잘되였다.

이처럼 그는 갖은 보약을 다 쓰고 령험하다는 명산대찰을 다 찾아다니며 시주했으나 늙도록 언제한번 몸이 부해본적없이 노상 장대기처럼 꼬장꼬장 메말라있기에 몸이 뚱뚱한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멸시하고 미워하는것이였다. 그는 곁에 두고 부리는 심복들이나 하인들까지도 전부 자기처럼 비쭉 마른 뼈강다리만을 골라두었다.

그러다보니 괴벽스러운 그의 비위를 맞추느라 일부러 생콩을 먹고 설사를 해서 몸을 축내는 역어빠진 심복들까지 있었다.

《에…》

《됐어.》

촌정의 말을 중둥무이시킨 백가신은 삽날처럼 삐죽한 주걱턱을 쳐들었다.

《늙은것, 젊은것에 계집은 말할것 없구 아이새끼까지 한마리 남기지 않고 다 끌어왔겠지?》

《예예.》

촌정은 송구스럽게 허리를 굽신거렸다.

《여기 명학소눔들이 근래에 방자해졌단 말이다. 머리를 깎고 다녀야 하는 부곡놈들이 제멋대로 머리를 기르고 량인시늉을 허지 않나. 게다가 언감생감, 량반앞에 말대꾸질허는 앙큼한 계집이 없나. 어 무도한 눔들… 그래, 그 계집의 오래비눔이 여기에 왔느냐? 나루치노릇 한다는 놈말이다.》

백가신은 가시돋친 눈길을 마당의 여기저기에 던지였다.

《여기 있소이다.》

뒤켠에 꿇어엎드려있던 망이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망이의 거쿨진 체대며 침착한 태도에 다소 예기가 눌린 백가신은 아니꼽살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백가신이와 마찬가지로 찌프린 눈길로 멸시에 차서 망이를 노려보던 백태는 흠칫 놀라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니 저놈이?!)

백태는 눈을 쪼프리며 두손을 맞잡고 고개를 수굿하고 서있는 망이를 다시금 천천히 살펴보았다.

틀림없었다. 검실한 살결의 둥그런 얼굴이며 량볼에 꺼밋하게 돋은 구레나룻의 인상적인 모색을 그가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그런데 계룡산의 초적들속에 있던 놈이 어떻게 여기 천민부락에 왔는지 모를 일이였다. 그러니 본시 여기 부락놈이였는가. 초적두목놈과 형님, 동생 하던 놈이 뻔뻔스럽게 진척행세를 하려들다니…

백태는 이발을 사려물며 허리춤의 칼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칼자루를 잡았을뿐 선뜻 뽑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의 손은 잠시후에 도로 아래로 내리워지고말았다. 공연히 불집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부지중 뇌리에 떠올랐던것이다. 도적을 잡는 일은 쇠쇠한 순검군들이나 할노릇이지 별공사가 할 소임은 아니였다. 그가 불집을 일으키지 않기로 작정한 또 한가지는 량순해보이는 이 구레나룻의 농군이 결코 도적이나 초적질을 할 위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것은 그때 계룡산에서도 느낀 생각이지만 지금은 거의 확정적으로 머리속에 자리잡는 느낌이였다.

그러나 이 모든것보다 그를 망설이고 주저케 한 기본적인 동기는 바로 이 농군이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는 사실을 그가 모른체 할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자기야말로 이 농군이 아니였다면 자기는 인적없는 계룡산속에서 무주고혼이 된지 오랬을것이였다. 그러니 어찌 천민이라 한들 은혜를 원쑤로 갚을수 있겠는가. 이는 호협과 관용을 의기로 삼는 무인으로서 심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착잡한 심경에 잠겨있던 백태는 아비의 독기서린 말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이놈, 네 누이년의 소행으로 봐서는 네놈을 죽여 마땅하나 오늘은 불살생의 재계일이니 명줄만은 붙여둔다. 하되 이틀안으루 살진 잉어 백마리를 잡아올려라. 산채로말이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망이도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도그럴것이 약으로 한두마리 잡자고 해도 어려운 잉어를 이틀새에 백마리나 잡아 바치라니 하늘의 별을 따오라는 소리나 다를바 없었던것이다.

《그건 그렇구…》

백가신은 주걱턱을 쓸어만지더니 곁의 군졸들을 굽어보았다.

《뭐 길게 말할게 없다. 어서 시작해라.》

백가신의 호령에 뒤이어 군졸들이 우루루 꿇어엎딘 부락사람들속으로 쓸어들었다. 놈들은 머리채가 길다란 처녀들부터 끌어내였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도대체 어쩔려는셈인가.

군졸들은 끌어내온 처녀들을 가위를 들고 서있는 다른 군졸들에게 던져버렸다. 그러자 놈들은 처녀들의 칠칠한 머리태를 휘감아쥐고 커다란 가위로 썩둑썩둑 자르기 시작했다.

《어매!―》

불시에 처녀들의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아니! 백주에 이게 무슨짓이요!》

《아이구, 웃방네야!―》

처녀들의 가슴허비는 울음소리에 뒤이어 그 어머니들의 통곡이 일어났다.

끌려나가는족족 거푸시한 더벅머리가 되여버리는 처녀들은 그자리에 풀썩 쓰러져 곡성을 터뜨린다. 수치심과 분함을 못이겨 땅바닥에 쭐 늘어지는 처녀들도 있었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예로부터 잘 자란 탐스런 머리칼은 처녀들의 기쁨이고 자랑이였다. 하기에 처녀들은 그것을 정조처럼, 생명처럼 귀중히 여겼던것이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그 모습을 두고 사람들은 너무도 무정하고 악착한 세상을 저주하며 땅을 치고 가슴을 쳤다.

군졸놈들은 처녀들뿐아니라 마을사람들을 마구다지로 끌어내다가 가위를 쥔 군졸들에게 넘겨주었다.

《여보게, 날세, 나야.》

한 젊은 군졸놈에게 상투끄뎅이를 잡히운 도치가 겁에 질려 사정했다. 자기 주막에서 공술깨나 얻어먹은 놈이기에 알은체를 한것이다.

《나면 나.》

군졸놈은 알던 정, 보던 정없이 도치의 상투를 썩둑 잘라버린 후 정수리를 찰싹 때리며 히히거렸다.

군졸들이 땅에 떨어진 처녀들의 긴 머리채며 사내들의 머리칼을 이삭주어담듯 마대자루에 쓸어넣었다.

백가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들 백태로부터 명학소에서 나루치노릇하는 집의 계집년이 덜되게 놀기에 머리채를 잘라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문득 좋은 수가 떠올랐다. 그것은 재계일을 맞아 며칠후에 홍경원으로 불공드리러갈 때 산잉어를 가지고가서 방생불사(불교의식)를 해야겠는데 그 잉어를 명학소의 진척놈더러 잡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였다. 또 한가지는 부곡놈들의 머리칼을 깎아버려야겠다는 생각이였다.

공주관하의 부곡들에서 그렇게 깎은 머리칼을 거둬들이면 상당한 량이 될것이며 그 머리칼로 권문세가집 부인네들이 즐겨 쓰는 달비를 만들어 팔면 약차한 돈이 생길것이니 얼마나 꾀바른 궁냥인가.

그 달비의 일부를 진상봉물로 바치더라도 별공사인 아들은 말할것 없고 자기 낯도 어지간히 설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 머리칼은 깨끼부락놈들의것이니 말썽이 생길 일도 없었다. 잉어도 잡고 달비도 생기고, 그러니 이야말로 돌팔매 한번에 두마리의 새를 잡는셈이였다.

《놔요, 안돼요!》

험상궂게 생긴 군졸놈에게 질질 끌려나가던 을님이가 자기 머리채를 휘감아쥔 그놈의 팔을 잡고 부르짖었다.

《을님아!―》

을님이 어머니가 군졸놈에게 끌려가는 딸의 허리에 매달렸다.

놈은 그를 발길질로 차버리고는 다시 을님을 끌어냈다. 땅에 쓰러진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우악스런 군졸놈은 앙버티는 을님이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창끝같은 돌이 삐죽삐죽 박힌 맨땅우로 무슨 짐짝을 끌듯 마구다지로 잡아끌었다. 고름끈이 풀어진 치마가 흘러내리고 할퀴고 터진 종아리에서 피가 흘렀다.

불이 펄펄이는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망이는 주먹으로 땅을 쳤다.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어매!―》

애절한 을님의 비명에 망이는 심장이 윽죄고 숨이 막혔다. 그는 분노로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삼단같던 고비의 머리를 검불처럼 만들더니 오늘은 을님이마저… 안된다! 을님이의 머리카락 한오리라도 건드려선 안된다!)

숯불튀듯 자리에서 뛰쳐일어난 망이는 을님이를 끌고가는 군졸놈에게 사납게 달려들었다. 을님의 머리채를 거머쥔 놈의 팔목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놔라!》

을님이의 머리태를 놓쳐버리고 잠시 어안이 벙벙해 서있던 군졸놈은 창대를 꼬나들었다. 하지만 놈은 망이의 지릅뜬 눈에서 내뿜는 증오의 불길을 보고는 무르춤해졌다.

《가만.》

백태가 손을 쳐들어 군졸놈을 제지시킨 후 그들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망이며 군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땅바닥에 쭈그리고앉은채 떨리는 손으로 옷을 바로잡고있는 을님이에게 놀란 눈길을 멈추었다.

그 눈에서 광택이 번쩍거렸다.

(아니, 이 계집이 언젠가 장마지던 날 버드내가에서 보았던 그 계집이 아닌가? 틀림없이 그 계집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계집이 천민부락에 와있는가.)

백태는 아쉬움을 품고 늘 생각하던 을님이를 이렇게 쉽게 찾아낸것이 못내 기뻤다. 다시금 을님이를 뚫어지게 지켜보는 백태의 얼굴에는 탐욕스런 웃음이 벌쭉 떠올랐다. 자기가 잘못보지 않았다는, 확실히 삐여지게 이쁜 계집이라는 기쁨의 웃음이였다. 이 계집을 찾아낸것만으로도 자기가 별공사의 소임을 맡고 공주에 내려온것이 헛일이 아니였다는 생각으로 가슴속이 뿌듯했다. 백태는 개경장안의 한다하는 미녀들은 물론 경국지색들만 뽑아모은 궁성안의 궁녀들까지 수태 보았지만 아직까지 을님이와 같이 아름다운 녀인은 본적이 없었다.

머리칼은 헝클어지고 얼굴에는 겁기가 어렸어도 해를 마주 볼수 없듯이 선뜻 바라보기가 어려운 그런 황홀미가 처녀의 얼굴에서 뿜어나오는듯싶었다.

《이 계집은 그만두라.》

군졸놈에게 짤막하게 이른 백태는 을님이를 다시한번 돌아보고나서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을님이 어머니가 허둥지둥 뛰여가 딸을 품에 껴안았다.

《저런 륙실헐 놈 봤나! 관령에 감히 항거를 해?… 저놈을 묶어라.》

별안간 백가신이 망이를 손가락질하며 악청을 질러댔다.

여러명의 군졸놈들이 망이에게 욱 달려들었다. 군졸놈들에게 량팔을 붙잡힌 망이는 의외에도 태연자약했다. 을님이를 구했으니 자기 몸은 대수로울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백가신은 망이의 강건한 자세에서 범상치 않은 기품을 느꼈다.

《저놈이 본시 뭘하던 눔이냐?》

백가신은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백가신의 뒤에 붙어서있던 서사가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이 부락에서 행수노릇하는 망이라는 녀석인데 나리님댁에 가노로 있던 어금바우의 아들놈이올시다.》

《어금바우라니 어느 눔말이냐?》

《저, 나리님께서…》

서사는 백가신의 귀에 바투 입을 가져다대고 낮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엉?…》

백가신이 흠칠 놀라 고개를 쳐들고 둥그래진 눈으로 다시금 망이를 뜯어보았다. 정기가 빛발치는 망이의 어글어글한 눈과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그는 까닭모를 전률로 몸을 떨었다.

어금바우, 자기가 죽인 어금바우의 눈이 바로 저랬다. 두귀를 잘리우고 코를 잘리우면서도 부릅뜨고 자기를 쏘아보던 그 불길이 황황 일던 눈, 꿈에라도 나타날가 겁을 내던 그 눈빛이 지금 자기를 지켜보고있지 않는가.

《지금은 네놈이 나를 죽인다만 장차 네놈의 명줄을 끊는 날이 오고야말게다!》

어금바우가 추상같이 부르짖던 절규가 머리속에 쩡 울렸다.

(어금바우의 아들놈이 저렇게 자랐단 말인가? 그눔의 아들이 있는걸 내가 왜 여적 잊고있었을가.)

백가신은 망이한테 커다란 위구를 느꼈다.

(저눔이 제 애비의 일을 아는 날엔?… 깊은 물속에 가라앉은 돌같은 그 내막을 저눔이 알턱이야 없지.… 허지만 세상일이란 알수가 있나. 싸고싼 사향도 냄새를 풍기고 자루속의 송곳은 감추지 못한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백가신은 망이를 그대로 두고서는 발편잠을 잘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화근은 애초에 싹을 잘라버리는것이 상수지.)

살기찬 눈으로 망이를 흘겨보며 머리를 썩이던 백가신은 이윽하여 주걱턱을 쳐들었다.

《이눔, 해괴허기 이를데 없는 네눔의 망동을 봐서는 당장 목을 치구싶으나 귀물인 잉어를 잡아야겠기에 특별히 관용을 베풀터이니 차후엔 조심허두룩 해라.》

백가신은 짐짓 너그러운 표정을 띠우고 말을 계속했다.

《그 잉어는 방생불사에 쓸것이니 정히 잡어야 헌다. 이틀후에 네가 그것을 가지고 홍경원으로 가야 허는데 도중에 한마리라도 잘못되였다간 너두 산채로 돌아오지 못헐줄 알거라.》

망이의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어리는것을 본 백가신은 입가에 비웃음을 띠웠다. 그는 망이를 절간으로 끌고가서 쥐도새도모르게 없애치워야겠다고 이미 내심으로 작정했다. 그랬어도 어쩐셈인지 마음속이 개운치 않았다.

(짐승같은 천한것들이 내앞에서 언감 항거를 해.… 어떻게 해야 이눔들에게 속시원히 설분을 허나. 머리를 깎기 싫다구?… 옳지, 이눔들에게 제 손으로 머리칼을 잘라 바치도록 해야지.)

백가신은 교의에서 일어났다. 뒤짐을 지고 서슬이 딩딩해서 꿇어엎드린 부락사람들의 머리우를 쭉 훑어보고난 그는 입을 열었다.

《아직 머리끄뎅이가 붙어있는 눔들은 제 손으로 깎아서 래일아침까지 촌정헌테 바쳐라. 아이새끼 하나라두 빠졌다간 촌정, 너부터가 목이 무사치 못할테니 그리 알어라.》

백가신은 고개는 돌리지도 않고 팔만 펴서 촌정쪽을 가리켰다.

《예, 예.》

마당의 처절한 광경을 멍청히 보고있던 촌정은 황급히 뚱뚱한 몸을 연신 굽히며 대답했다.

촌정의 거동을 밉살스럽게 보던 백태도 한마디 뇌까렸다.

《너도 깎아야 한다.》

《저, 저두… 말이오니까?》

촌정은 덴겁하여 고개를 쳐들었다.

《너는 딴데 놈이냐?》

《아이구, 나리.》

촌정은 풍덩 주저앉으며 사색이 되였다.

처참한 정경이 무색했던지 해도 구름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회색구름밑으로 불어치는 차거운 가을바람이 나무가지를 흔들어 누렇게 황이 든 잎새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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