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3장 장마비가 그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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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를 둘러멘 망이와 망쇠는 앞에 보이는 돌박산을 향해 걸음을 다그쳤다.
비는 멎었으나 언제 또 쏟아질지 모르는 장마철하늘은 찌뿌둥하게 흐려있었다. 나무는 없이 바위만 우죽삐죽 내솟은 산탁에는 어른아이 할것없이 온 부락사람들이 하얗게 덮였다. 자기들의 명줄이 방축쌓는 일에 달려있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그들은 하나의 돌이라도 더 빨리 캐내려고 죽기로 힘쓰고있었다.
《와― 와―》
돌을 한가득 실은 소발구를 절뚝거리며 끌고오던 망쇠의 아버지 서눌이 망이네를 보고 발구를 세웠다.
망쇠가 어깨에 메고오던 정대묶음을 풀밭에 내던지고 아버지에게로 뛰여갔다.
《새끼밴 윤두소를 이렇게 부리면 어떻게 해요?》
그는 땀기가 내밴 윤두소의 멱미레를 쓸어만지며 아버지를 나무랐다.
《그렇잖음. 저 숱한 돌을 언제 나르겠니.》
서눌은 아들의 핀잔이 무안스러운듯 머리를 동진 베수건을 풀어 불도장자리가 시꺼먼 이마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망이가 아버지에게 고분스럽지 못한 망쇠에게 언짢은 눈길을 던지고나서 서눌로인에게 말을 건넸다.
《발구가 더 잘 끌리는가요?》
《진창길에 달구지바퀴가 빠져 애를 먹이더라니…》
서눌이 어줍게 대꾸했다.
미끌거리는 진창길에는 사실 달구지보다 발구가 더 잘 끌릴것이라고 생각되여 망이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망쇠가 누그러진 태도로 소고삐를 잡으며 말했다.
《발구는 내가 끌테니 아버진 다른 일을 보슈.》
자기의 불편한 다리를 념려하고 또 윤두소도 아끼는 아들의 극진한 태도가 헤아려진 서눌은 말없이 풀밭으로 걸어가 정대묶음을 어깨에 메였다.
소발구를 끌고 걸음을 옮기는 망쇠를 잠시 바라보던 망이는 이어 메질군들이 바위를 까내고있는 산탁으로 올라갔다. 웃옷을 벗어던지고 머리에 수건만 질끈 동진 메질군들은 헉헉 단숨을 톺으며 메를 휘두르고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줄땀이 흘렀다.
《우역싸!》
메질군들이 선소리를 먹이며 메를 내리치나 커다란 청바위는 쇠소리를 내며 정대를 탕탕 튕기기만 하였다.
《젠장, 무슨 놈의 바위가 이리 굳어.》
망이네 옆집에 사는 키꺽두룩한 달보가 메를 내던지며 풍덩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기운이 빠진 메질군들이 하나둘 땅바닥에 퍼더버리고앉았다.
망이는 그들곁으로 다가가 정대묶음을 내려놓았다.
《행수, 이거 무슨 마련이 있어야겠소.》
달보가 두팔을 등뒤로 뻗치고앉은채 말했다.
《쌀밥이 뼈밥이라지만 우리 입엔 들어가지도 않을 논벼때문에 생죽을 고생이 아니요?》
망이는 그 말에는 대꾸없이 촌정네 머슴인 어펑돌이에게 새로 벼려온 정대를 잡으라고 이른 후 손바닥에 침을 뱉고나서 달보가 내던진 메자루를 집어들었다. 그는 윽 하고 힘을 주며 어펑돌이가 잔뜩 팔을 뻗치고 잡고있는 정머리를 내리쳤다.《짱―》 하며 정대가 튕겨나면서 메자루를 잡은 손바닥이 얼얼해났다. 그는 연거퍼 메를 휘둘러쳤다. 그러나 여전히 돌가루만 날릴뿐 정대는 좀체로 바위를 쪼개지 못했다. 한다하는 힘장사인 망이조차 어쩌지 못하는것을 보고 사람들은 재삼 실망의 한숨들을 내쉬였다.
메를 떨군 망이는 바위우에 걸터앉았다. 이렇게 해서는 그식이 장식으로 일을 축낼것 같지 못했다.
《어떻게 했음 좋겠소?》
달보가 긴 목을 뽑아들고 재촉하듯 물었다.
망이는 문득 언젠가 다인철소에 갔을 때 일이 떠올랐다. 천민부락인 그곳 철쟁이들이 쇠돌을 캐내던 광경이 불현듯 눈앞에 삼삼히 펼쳐졌던것이다. 그들은 쇠돌을 캐는 굴안에 장작을 한가득 쌓고 불을 지핀 후 장작불에 쇠돌벽이 화끈 달아올랐을 때 거기에 찬물을 끼얹어 쇠돌벽이 쩍쩍 금이 가게 하는 식으로 쇠돌을 뜯어내군 하였다. 이 바위돌도 그런 식으로 한다면 얼마든지 잘게 쪼갤수 있을것이 아닌가.
망이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가만, 이렇게 하는게 어떻겠소?》
《어서 말하시우.》
모두 기대어린 눈으로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망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철소들에서 쇠돌을 캐낼 때 하듯이 말이요. 이 바위돌에 나무를 쌓고 불을 지펴 바위돌이 달았을 때 찬물을 끼얹으면 아무리 굳은 바위라도 갈라터질게 아니겠소.》
사람들은 잠시 덤덤히 서로 얼굴들만 마주보았다.
《그래서 될가?》
누군가 미타한 소리를 한마디 하자 달보가 저뻐듬히 제치고있던 허리를 벌떡 일으켜 앉으며 무릎을 철썩 갈겼다.
《아따, 쇠도 녹이는 불이 이깟 바위를 부스지 못할라구.》
《머리가 아둔하면 손발이 고생한다구 공연한 역사질에 에, 손바닥만 얼얼하군.》
달보의 말에 어펑돌이가 이렇게 맞장구를 치며 손을 털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찬탄의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참, 그럴법한 궁냥이요.》
《좌우간 행수가 있어야 일이 된다니께.》
그들의 말을 들으며 느슨한 웃음을 띠우고있던 망이는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한숨을 쉬였다가 저 건넌 산에서 마른 나무들을 찍어오우.》
이때 물바가지를 두손에 받쳐들고 사내들속으로 조촘조촘 걸어온 고비가 그것을 망이앞에 내밀었다.
《오빠, 샘물이예요.》
바가지에서는 보기에도 시원스런 맑은 물이 찰랑거리고있었다.
《너는 제 오라비밖에 모르는구나. 우리가 땀 뽑을 땐 얼씬하지도 않더니.》
달보가 흥에 겨워 고비를 시까슬렀다.
《아이참. 을님언니가 떠온거예요.》
고비는 마마자국이 얼금솜솜한 이마우에 달라붙은 땀에 젖은 자분치를 쓸어올리며 새초롬해서 대꾸했다.
을님이가 떠온 물이라는 소리에 망이는 왜서인지 그것을 선뜻 받기가 거북스러웠다.
《어여, 벌써 그런 사인가?》
달보는 짐짓 놀라는 시늉을 했다.
《실없이 굴지 마오.》
그에게 퉁을 준 망이는 바가지를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이마가 쩡 저려났다. 새벽부터 땀을 뽑은 몸이 대번에 거뿐해지는듯싶었다.
고비에게 바가지를 넘겨준 망이는 그를 따라 녀인들이 돌을 나르고있는 산마루로 가보았다. 연약한 녀인들이 무거운 돌을 안고 금시 쓰러질듯 비틀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참새무리속의 제비라 할가 두드러지게 뛰여난 을님의 자태는 먼발치에서도 제꺽 알렸다. 커다란 돌을 굴리느라고 허리를 굽히고 안깐힘을 쓰고있는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여있었다. 망이는 그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제잡담 그 무거운 돌을 안아들고 돌무지에 가져다놓았다.
느닷없이 나타난 망이에게 돌을 빼앗긴 을님은 두손을 맞잡은채 면구스러워 어쩔바를 몰라했다. 저만치에서 걸음을 멈춘 고비는 입에 웃음을 물고 을님이를 지켜보았다.
을님이에게로 다시 돌아온 망이는 그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험한 일이 처음일텐데 잔돌이나 나르시우.》
을님은 말없이 고개만 다소곳이 숙이고 섰다.
망이는 마음씨 착하고 인물고운 그가 죄없이 천민들속에 섞여 고생하는것이 가엽게 여겨져 한마디 더했다.
《래일부턴 여기에 나오지 말구 집에서 아버지 병구완이나 잘하시우. 내 촌정에게두 단단히 말해놨으니 별일 없을게요. 설마 산 사람입에 거미줄이야 칠라구.》
을님은 다숙인 이마너머로 고마움에 잠긴 눈길을 쳐들어 망이를 잠간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망이는 갑자기 가슴이 찌르르 저려났다. 살포시 쳐든 을님의 눈길이 네해전에 죽은 안해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기때문이였다. 그러자 망이는 어쩐지 을님이가 죽은 시월녀처럼 측은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이런 녀인이 시월녀처럼 또다시 자기를 위해 밥도 지어주고 옷도 기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그러면 시월녀한테 못다준 정까지 합쳐 끔찍이도 위해주고 아껴줄것 같았다. 느닷없이 떠오른 이런 상념으로 하여 망이는 가슴이 뭉클하면서 온몸이 후더워졌다. 젊음이 넘치는 그도 언제까지나 죽은 처자식만 생각하고있을수는 없었던것이다.
《고비오라버님, 전…》
젊은 사내와 함께 오래 서있는것이 면구스러웠던지 을님이가 먼저 자리를 피하였다. 녀인들속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을님이의 뒤모습을 좇던 망이는 저도 낯이 뜨끈해짐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두 말랬다구 저런 처녀를 꿈꾸다니…)
망이는 허거픈듯 그러나 까닭모를 애달픔이 슴배인 한숨을 무겁게 내쉬였다.
한편 을님은 자기를 정겹게 바라보던 망이의 그 그윽한 눈빛이 자꾸만 어른거려 제대로 걸을수가 없었다. 지금껏 을님은 자기의 미모를 탐내는 사내들의 지싯지싯한 눈길을 많이 받아왔지만 그런 눈빛은 아직 한번도 대한적이 없었다. 그는
녀인들속으로 온 을님은 깊숙이 뿌리를 박은 바위돌을 들추어내느라고 끙끙 갑자르는 범잔녀의 곁으로 얼른 다가가 저도 바위밑에 손을 디밀었다.
《그만두라구. 가시내들 힘으룬 안되겠어.》
범잔녀가 만류하며 허리를 폈다. 힘을 쓰려던 을님이도 하는수없이 바위밑에서 손을 빼냈다.
부락사람들속에서 치마두른 호랑이라고 불리우는 범잔녀는 쉰고개에 들어선 안늙은이였다. 그는 늙은 녀인답지 않게 힘이 세고 입심이 사나와 그의 왕드살에 견디는 사람이 없었다. 지어 부락의 촌정조차 그와 맞서기 싫어 슬슬 피해다니는 형편이였다. 그러나 가족도 없이 독신으로 살아가는 불쌍한 범잔녀는 실상 지내놓고보면 여간 인정이 헤픈 녀인이 아니라는것을 을님이도 알고있었다.
범잔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때마침 골짜기아래로 내려가는 어펑돌이를 띄여보고 소리쳤다.
《이녀석, 빈둥거리지 말구 여기 와서 돌캐는걸 거들어다구.》
그 소리에 어펑돌이는 고개를 홱 돌리며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코웃음을 쳤다.
《그런 잔돌은 녀인들끼리 하라구요.》
《뭐라구? 허허… 주제에 수캐라구 다리 들고 오줌싸겠구만.》하고 빈정거린 범잔녀는 안짱다리를 떡 벌려선채 허리에 손을 얹고 다시 호령질했다.
《말뚝을 삶아 먹었느냐? 썩 이리 오지 못해!》
《나참.》
어펑돌이는 기막히다는 표정이였다.
《행수가 시켜서 나무 찍으러 가니 훼방놓지 마시우.》
이렇게 대꾸한 어펑돌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냥 내려갔다.
《쌍눔으루 태여난 죄에 치마두른 죄로 코흘리개한테서까지 업심을 받아야 하니… 한데 행수가 나무를 찍으라구 한다는건 또 무슨 소리야?》
푸념하듯 중얼거리던 범잔녀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는 밭은 목을 뽑아들고 남정들이 일하고있는쪽을 건너다보더니 다시 을님이한테로 고개를 돌렸다.
《참, 이자 망이행수와 무슨 얘기를 깨쏟아지게 하댔수?》
《아이참, 무슨 얘긴요?》
을님은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다.
《저걸 보지. 배꽃같던 얼굴이 복사꽃빛이 되는걸. 하하…》
범잔녀는 사내처럼 큰소리로 웃었다. 여느때같았으면 부끄럽고 또 노엽기도 했을지 모를 범잔녀의 웃음소리가 지금은 왜선지 싫지 않았다. 눈을 쪼프리고 가식없이 웃고있는 범잔녀를 보는 을님의 눈굽에는 까닭모를 눈물이 핑 돌았다. 망이도 그렇지만 이 범잔녀는 또 얼마나 좋은 늙은이인가. 헐벗고 굶주리고 천대받는 이들은 겉보기에는 매우 거친것 같지만 마음들은 하나같이 옥돌같고 비단결같은 사람들이였다. 을님은 골방속에 갇혀서 량반들이 무서워 부들부들 떨기만 하던 지난날에 비하면 지금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또 즐거운지 몰랐다. 비록 천민부락이라고는 하지만 새 고장에 와서 새 사람들속에서 살게 된것이 화가 복이 된듯 한 생각도 들었다.
《저런, 의원집 아기 우는게 아니요? 실없이 한 소리를 가지구 원…》
범잔녀가 민망스러운듯 혀를 찼다.
《아니, 그런게 아니와요.》
때없이 보인 눈물로 하여 쑥스러움에 잠겨 범잔녀의 곁에서 황황히 물러난 을님은 얼결에 길둥그런 돌 하나를 안아들고 돌무지쪽으로 뛰여갔다. 일찌기 겪어보지 못한 야릇한 충동으로 저도모르게 흥분한 을님은 가슴이 하냥 높뛰기만 하였다. 망이의 눈빛, 범잔녀의 웃음소리…
《딱.》하고 돌부딪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을님은 막혔던 숨이라도 내뿜듯 가슴을 폈다.
그러나 을님은 자기가 무심히 던진 돌 하나가 커다란 사달을 빚어내게 될줄은 미처 몰랐다. 돌무지꼭대기에 떨어진 돌은 거기에 위태롭게 놓여있던 큰돌을 때려 아래로 굴렸다. 그 돌이 아래로 굴러내려가며 다른 돌들과 부딪쳐 부딪친 돌들이 또 구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돌무지가 와르르 무너져내려 산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내려갔다. 구르던 돌들은 아래에 있던 돌무데기들도 허물어뜨렸다. 이렇게 돌무지들에 쌓여있던 숱한 돌들이 무너져 산비탈로 무서운 기세로 굴러내려가며 온 산의 돌들을 다 굴리였다. 그런데 산기슭에서는 여기저기에 널려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있었다.
《어마나!―》
을님은 너무도 창졸간에 당하는 급변이여서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범잔녀가 이 광경을 띄여보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돌사태다! 피해라!―》
《호미동아!―》
《옆으로 뛰여라!》
꽝당거리며 쏟아지는 돌사태소리, 울고불며 야단치는 사람들의 아우성소리… 온 산마루는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였다.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굴러내려오는 돌들을 보고 황급히 옆으로 피해 달아났다. 그런데 더러 산아래로 내려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 저런 민충이, 밑으루 뛰지 말구 옆으로 빠져라!》
학춤을 추며 밑으로 달리던 사람들이 커다란 누게바위아래로 뛰여들어가는것이 보였다. 그제야 을님은 그들도 다 생각이 있어 산아래로 뛰였다는것을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온몸에 소름이 끼쳐 눈을 감았던 을님은 누군가 또 기급하여 소리지르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다.
《아이구, 저 소, 저 윤두소를 어쩌누?!…》
다행히도 사람들은 다 피했으나 언제 나타났는지 망쇠네 윤두소가 산아래골짜기에서 한가스레 풀을 뜯고있었다. 그냥두면 영낙없이 구르는 돌에 치워 죽을것이였다.
《아유, 저 새끼밴 암소를!》
《저 미물이 피하지두 않고…》
산우의 사람들은 애가 타서 발을 굴렀다. 이때 누군가 윤두소가 있는 골짜기를 향해 내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저, 저건 또 누구요?》
《아니, 저게 망이행수 아니요? 저 사람이 어쩌자구?!…》
그는 망이가 분명했다. 을님은 그가 망이라는것을 눈으로 보기에 앞서 가슴으로 느끼였다. 쏜살같이 달리는 망이는 발이 땅에 닿는것 같지도 않았다. 그의 등뒤로는 사태져 쏟아지는 돌들이 금시 그를 덮칠듯이 맹렬한 기세로 굴렀다. 하지만 망이는 그런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듯 비호같이 달리기만 했다.
정녕 사람이 먼저냐 돌이 먼저냐 하는 판가리 경주와도 같았다. 모두 얼이 빠진듯 간이 한줌만 해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필사의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드디여 골짜기에 다달은 망이가 대바람으로 소잔등에 올라타고 소를 건너편 산탁으로 때려모는것이 보였다. 그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사태를 일으킨 돌들이 와당탕거리며 골짜기에 굴러떨어졌다. 실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였다.
《후유―》
비로소 마음을 놓은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에이, 십년감수했군.》
범잔녀의 말을 듣고서야 여직껏 경악실색하여 넋나간 사람처럼 서있던 을님이도 눈을 감으며 풀썩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행수가 아니였으면 새끼밴 소 한마리를 때려잡을번 했군.》
《어디 소뿐이였소. 사람들두 극락에 갈번 했지.》
긴장이 풀려 바위며 땅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은 사람들은 어데 갔다 뒤늦게야 달려온 망쇠에게 소고삐를 넘겨주는 망이를 선망이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여, 누게바위밑에서들 나오라구.》
달보가 아래에 대고 소리쳤다.
《학춤추던 꼴들이라니. 하하…》
그의 웃음소리에 뒤따라 온 산판에 웃음소리가 함뿍 넌즈러졌다. 돌사태로 하여 조였던 가슴들을 웃음으로 헤치려는듯 서로 잔등을 두드리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