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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2장 학바위전설

4


《망쇠오빠 아니우?》

풀밭에 누워있던 망쇠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비였다. 망쇠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온 고비는 허리를 굽히며 다심하게 물었다.

《예서 뭘하우?》

《꿈을 꾼다.》

망쇠는 신풍스레 대꾸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말투는 불퉁그러졌어도 그는 내심으로 고비가 나타난것이 무척 기쁘고 반가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자못 궁금스럽기도 했다.

《아유― 술냄새… 약주 잡쉈수?》

《흥, 약주? 약주도 잘사는 놈들 편이지 어디 우리같은 하치상놈한테 정을 준다든?》

고비는 망쇠곁에 쪼그리고앉았다. 그는 상처입은 망쇠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더듬고싶었다. 오죽 속상했으면 술을 마시고 또 이렇게 젖은 풀밭에 누워있을가.

《젖은 풀밭에 그냥 누워있음 어쩌우. 고뿔들게스리.》

《…》

《어서 일어나우.》

고비는 애원조로 말했다.

《그러찮음 울고말겠수.》

아닌게아니라 그는 까닭모를 격정이 가슴속에서 뭉클 치솟으며 눈굽이 뜨끔해졌다. 고비의 눈에서 반짝이는 물기를 본 망쇠가 부시시 일어나앉으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니?》

고비는 얼른 눈굽을 찍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어줍고 죄스러운 웃음이였다.

그는 좀전에 집에서 피죽 한바가지를 퍼들고 망쇠네 집으로 갔었다. 동정심이 깊은 고비는 머리를 다쳐 누워있을 망쇠며 근심에 잠긴 서경로인의 가긍한 정상이 자꾸만 눈앞에 밟혀 그대로 있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집에는 망쇠가 없었다. 서경로인의 한숨소리를 등뒤에 남기고 그 집을 나선 고비는 곧바로 술막까지 찾아갔었다. 기어이 망쇠를 만나 그에게 저로서도 알수 없는 용서를 빌고싶었던것이다.

술막에서도 망쇠를 만나지 못한 고비는 불안에 싸여 강녘으로 허둥지둥 나오다가 풀밭에 누워있는 그를 발견했다.

《너 정말 어떻게 여기로 나왔니?》

망쇠는 정색해서 물었다.

《그저…》

고비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망쇠도 따라일어났다.

고비는 잠간 머밋거리더니 《나 저기 학바위께로 가려우.》하고 수집게 강웃녘을 가리켰다.

웬일인지 천진스럽던 시절의 추억이 간직된 그곳으로 가고싶었다.

《거긴 왜?》

망쇠는 의아쩍게 되물었다.

《그저…》

《쩍하면 그저야?》

《싫음 그만두.》

고비는 짐짓 토라진듯 먼저 발길을 돌렸다. 망쇠는 고개를 한번 기웃거리고나서 그를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머리가 상기 아프잖우?》

고비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살뜰하게 물었다.

《일없어.》

한동안 고개를 소곳하고 걷던 고비가 다시 얼굴을 들었다.

《근데 우리가 홍경원의 방축을 쌓아주면 중들이 가만 있을가?》

《쌓아주긴 왜 쌓아줘?》

《그럼 어쩌우. 또 우리 방축을 허물겠다고 할걸.》

《어따 대구 허물어. 너죽고 나죽고 해볼 판이지.》

《일없을가요?》

《일있어두 할수 없지. 이러나저러나 굶어죽긴 매한가지니께. 우리두 창자있는 사람들이란걸 뵈줘야지.》

망쇠의 숨결은 거칠었다.

고비는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망쇠의 심정이 리해되면서도 그가 망이오빠의 말을 거역하지 말기를 바랐다.

《망이오빤 지금 홍경원의 전장에 가있겠지.》

고비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을님이네 아버지를 위해 그 먼 유성에 가서 약물을 길어다주고도 또 밤길을 걷고있을 그가 못내 걱정스러웠다.

《참 고비야, 너희 집에 웬 량반이 들리지 않았던?》

망쇠가 불현듯 좀전에 만났던 젊은 량반이 생각나서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아니… 량반이 무얼하려 우리 집에 들려?》

고비도 걸음을 멈추고 놀라서 되물었다.

《글쎄 말이다. 너희 집을 묻지 않겠니.》

고비는 의아스럽기만 했다. 량반이 무슨 일로 자기 집을 찾는단 말인가. 천민부락에 발길을 돌리지 않는 량반들인데 망이오빠를 찾을 까닭이 없었다. 그는 불안스러웠다. 폭풍우를 몰아오는 커다란 매지구름이 서서히 하늘을 가리우며 다가오는듯한 환각이 떠오른다. 그는 소름이 끼쳐 어깨를 떨었다. 끝없는 재난, 끝없는 절망, 이제는 정녕 지긋지긋한 인생이였다.

그는 세상살이의 고난도, 인간세파의 어지러움도 모르던 유년시절의 꿈이 깃든 학바위쪽으로 걸음을 더욱 다그쳤다. 마치 마실수도 숨쉴수도 없는 탁류속의 물고기가 청신한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샘터를 향해 요동치듯이.

학바위는 강가에서 방금 떠오르려고 날개를 편 학처럼 가운데가 둥실하고 량편이 펑퍼짐한 물녘의 바위였다.

학바위의 한쪽 날개에 먼저 올라간 고비는 무릎을 치마로 휩싸고앉으며 망쇠에게 건너편 날개쪽을 가리켰다.

망쇠는 고비의 반대쪽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 그들사이에는 학의 잔등이라고 하는 바위등이 불쑥 솟아있었다.

세운 무릎에 턱을 고이고 달빛이 부서지는 강물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고비가 망쇠를 돌아다보더니 그의 어깨에 눈길을 멈추었다.

《저, 그 저고릴…》 하고 나직이 말한 고비는 숫저운듯 고개를 돌리고 손을 내밀었다.

《저고린 왜?》

얼떠름해서 그를 건너다보던 망쇠는 얼결에 어깨박죽을 만져보았다. 어깨혼솔이 한뽐이나 터졌는데 그리로 강바람이 쌀쌀하게 스며들었다.

《어서 주시와요.》

게면쩍게 웃으며 저고리를 벗어준 망쇠는 맨등거리바람으로 앉아 드러내놓인 어깨며 팔을 슬슬 문다지며 고비를 건너다보았다.

저고리앞섶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든 고비는 밝은 달에 대고 바늘에 실을 꿰고있었다. 눈섭을 모으고 입술을 곱게 오무리며 바늘에 실을 꿰는 그 알뜰하고 정성스러운 모습은 실로 아릿답고 황홀하였다.

밤에는 흔히 녀인들이 더 곱게 보인다고 하지만 푸른 달빛을 함뿍 받은 고비의 어여쁜 자태는 하늘의 선녀에나 비길수 있었지 결코 지상의 인간같지는 않았다. 망쇠는 꿈꾸는듯한 눈길로 푸른 달빛이 흐르는 그의 얼굴을 넋없이 바라보았다.

작년봄 어느날 망이네 집 마당에 들어서던 망쇠는 토방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는 고비를 보았다. 서둘러 반겨맞아줄 고비가 여느날과는 달리 실없이 혼자 발쭉발쭉 웃는것이 하도 이상해서 망쇠는 말없이 곁으로 다가갔다.

고비는 어데서 주었는지 반나마 떨어져나간 구리거울쪼각을 들고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살살 눈웃음도 쳐보고 살짝 보조개도 지어보더니 제풀에 비쭉 입을 내밀기도 했다.

고비의 그러는양을 엿보는 망쇠의 얼굴에도 차츰 그답지 않은 야릇한 빛이 어렸다. 망울을 터친 꽃송이, 정녕 고비는 이슬을 머금고 피여오르는 한송이 꽃이 아닌가. 지금껏 이웃에서 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고비의 어여쁨을 새삼스럽게 발견한 망쇠는 좀 어리둥절한 기색이였다.

《아이참, 오빠두, 뭘 보우?》

깜짝 놀라 부르짖는 고비의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망쇠는 열적은 웃음을 띠였다. 순간 고비의 낯색은 복숭아꽃잎처럼 활딱 붉어졌다. 이어 귀밑까지 빨개진 얼굴을 푹 수그리고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고비는 이미 나어린 소녀가 아니였다.

그때부터 망쇠는 고비를 스스럼없이 볼수가 없었다. 남의 물건을 훔칠 때와 같은 그런 불편한 심기를 느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도, 고비에 대해서도 까닭모를 화가 치밀었다. 그것은 자기를 대하는 고비의 태도가 이전과 달리 매정스러워진데도 원인이 있었다. 고비는 망쇠를 만나면 늘 경계하는듯한 눈초리였고 또 말투도 매몰스럽게 톡톡 내쏘는것이였다. 맹랑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쁨속의 고통이였다.

저고리를 무릎에 놓고 한뜸한뜸 호아나가던 고비는 고개를 숙인채 애틋하게 말했다.

《학바위옛말을 하셔요.》

그들이 어렸을적에 여기로 놀러나오면 망쇠는 학바위등을 타고앉아 다리를 흔들흔들하며 학바위전설을 곧잘 이야기하군 했었다.

《그건 뭘 싱겁게, 다 아는걸…》

《그래두.》

《나참.》

《어서.》

《그럼 하지.》

망쇠는 어렸을 때처럼 한다리를 흔들거렸다.

《옛날옛적에 버드내 물귀신할미가 한 가시나를 얼려서 물속으로 끌고들어가려 할 때 때마침 날아가던 백학이 그 가시나를 구원하려구 물녘에 내렸는데 물귀신할미가 학을 바위로 만들었다지 뭐야.》

《호호, 그게 다예요. 다른거 또…》

망쇠의 학바위옛말은 할 때마다 조금씩조금씩 달라졌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왕청같은 다른 이야기로 변해버리군 했다. 그래서 어느것이 본래의 전설이고 어느것이 그 변형인지 망쇠자신도 알지 못할 지경이였다.

《새빠지게 옛말은 왜 자꾸… 그럼 하나만 더 하지.》 하며 망쇠는 어느덧 감회에 잠기였다.

《언제적인지 나두 모르겠지만 버드내가에 고을나라고 하는 가시나와 부을라란 총각애가 살았다누만. 고을나가 없이는 부을라가 살수 없고 부을라가 없이는 고을나가 살수 없게 서로 정이 깊이 들어 막 성례를 하자던 날에 버드내의 룡왕이란 놈이 앓는 제 어미의 몸종으로 고을나가 한해만 일해주면 그들이 한생을 잘살아갈 금은보화를 주겠다고 고을나를 꼬여갔지. 부을라는 한해를 십년맞잡이로 기다렸다누만. 그런데 한해가 지났어도 고을나는 돌아오지 않았지. 겁이 덜컥 난 부을라는 물녘을 떠나지 않고 애타게 고을나를 소리쳐부르며 기다렸지만 1년이 10년이 되고 10년이 20년이 되였지만 고을나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거야. 그제야 룡왕한테 속은것을 알고 부을라는 소리쳐울다가 그만 학이 되였다는데 학이 되여서도 이 버드내가를 날아돌며 울었다누만. 그래서 우리 부락이름도 학이 우는 곳이라고 명학소라 한다는거야. 어쨌든 그 학이 다시 이 물가에서 바위로 변했다는것을 보면 정말 룡왕한테 속은 원통함이 하늘에 사무쳤던 모양이야.》

말을 마친 망쇠는 동안을 두었다가 결기있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쨌든 부을라가 바보지. 그따위 룡왕한테 속을게 뭔가 말이야. 재물있고 권세있는 놈치고 남을 속이지 않는 놈이 어데 있다구. 나라면 물속의 룡궁에 함께 빠지더라도 절대로 고을나를 내주지 않을테야.》

그리고나서 고비를 돌아다보던 망쇠는 눈이 커졌다.

《아니, 또 우는게 아니여?》

그제야 자기가 그동안 울고있었다는것을 깨달은 고비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천진하던 어린시절이 즐겁게 회상될것 같았으나 정작 그 옛말을 듣고나니 또 눈굽이 뜨거워났다. 옛적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그지없이 착하건만 왜서 불행을 그림자처럼 달고다녀야 하는지 모를 일이였다. 더우기 자기들의 앞날에 대해서 무슨 암시를 하는듯싶은 망쇠의 마지막말은 그의 가슴을 울려놓고야말았다. 그러나 눈물을 보여서 안될 이밤에, 무언지 까닭은 알수 없어도 망쇠에게 잘못을 빌고싶고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싶은 이밤에 저도 어쩔수없이 자꾸 울게 되는 자신을 민망하게 여겼다. 그는 다 손질한 저고리를 들어 실을 물어 끊고나서 망쇠에게 내밀었다.

망쇠는 저고리를 받아입으며 벙싯 웃음을 띠였다.

《원, 이전 어렸을 때처럼 다시 울래미가 되는게 아니야?》

고비의 심정을 알길 없는 망쇠는 귀동냥해들은, 처녀시절엔 웃음많고 울음많다던 말이 되살아나 우스개소리를 했다.

이래선 안되겠다고, 정말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고비는 때마침 보내주는 그 웃음의 꽃을 얼른 받아쥐고 자기도 그에게 마주 웃음의 꽃을 보냈다.

《내가 울래미면 자긴 개똥쇤가, 호호.》

고비의 어릴적별명이자 아명이 울래미였고 망쇠는 개똥쇠라고 했다.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랜 이 친근한 부름은 서로 사이를 서먹하게 했던 이성의 장벽을 대번에 허물어버리고 무지개처럼 아롱다롱하던 소꿉시절에로 그들을 이끌어갔다.

《울래미, 울래미, 질라래비 훨훨.》

망쇠가 불쑥 데설궂던 소년시절에 고비를 골려주던 모양새로 읊조렸다. 그러자 고비도 지지 않고 발쌍스런 소녀시절 그때처럼 고개를 까닥거렸다.

《개똥쇠, 개똥쇠, 땍때그르 땍땍.》

《허허허…》

《호호호…》

참으로 오래간만에 가슴후련히 웃어보는 천진한 웃음이였다.

고비는 웃음뒤끝에 또 눈물이 솟을것 같아 얼른 입을 열었다.

《나 여기서 물에 빠졌던것 생각나우?》

《응.》

《뚝바우같이 남은 죽는다는데 먼데 멍청히 있겠지.》

《흥, 네가 멱감을 땐 가까이 있지 말구 먼데 있으라구 하구선.》

《그럼 가시나가 목욕하는데 커다란 총각이 곁에 있을가.》

고비는 곱게 눈을 할기죽거렸다.

그 모습, 그 눈매가 깜찍하고 복성스럽던 어렸을 때와 너무도 방불하여 망쇠는 홀린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는 망쇠의 눈은 웃는 눈이 아니였다.

그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 그리고 그것에 몹시도 시달리는 하소하는듯싶고 성난듯싶은 눈빛이였다. 웃음발이 피였던 고비의 얼굴도 차츰 정색해졌다. 까닭모를 무섬증이 덜컥 가슴속에 자리잡는다.

망쇠는 몸을 일으켜 바위등을 훌떡 뛰여넘어왔다. 유난스레 번뜩이는 눈빛이며 거친 숨소리를 들은 고비는 소름끼치듯 몸이 오싹해서 재빨리 학바위에서 뛰여내렸다.

고비는 축축한 모래의 감촉을 받으며 물결이 간단없이 철썩거리는 강변을 따라 걸었다. 뒤에서 스적스적 따라오는 망쇠의 무거운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어느덧 그들의 어깨가 가지런해졌을 때 망쇠는 점직한듯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젠장, 또 비가 오는군 그래.》

아닌게아니라 흐린 하늘에서 다시 장마비가 부실부실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비가 오네요.》

고비도 부드럽게 대척했다. 또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할가보아 마음을 조였는데 마음을 용케 억제한 그가 여간 고맙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잠겨보았던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름없던 동경의 세계를 너무도 빨리 깨뜨린것이 못내 아쉽고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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