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2장 학바위전설

3


《카―》

소리를 내며 망쇠는 입에서 뗀 빈 술보시기를 삿자리우에 떨어뜨렸다.

삿자리에서 뿌연 먼지가 연기처럼 피여올랐다.

등대에서 가물거리며 타는 광솔불빛은 어수선한 방안이며 머리에 헝겊을 처맨 울기가 오른 망쇠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치고있었다. 술내, 음식내, 땀내에 섞여 술어미노릇하는 방순의 머리기름내까지 엉켜 떠도는 술청안의 공기는 여간 타분하고 구지럽지 않았다.

따뜻한 아래목에 놓인 각상에는 명주저의를 입은 백가신의 집 서사 림가와 먹베장삼에 붉은 가사를 어깨에 걸친 홍경원의 지장 융대가 앉아서 대작을 하고있었다. 불그데데한 그의 낯에서 주독이 올라 새빨개진 코등이 유표하게 보였는데 마치도 수수떡에 붉은 고추를 박아놓은것 같았다.

그들사이에는 술막주인 도치의 젊은 안해인 방순이가 끼여앉아있었다. 그는 사내들의 술잔을 억지에 못이겨 받아먹었는지 발그레 혈색이 오른 얼굴이 제법 예쁘장하게 보였다.

지게에 술방구리나 지고다니며 들병장수질하던 도치가 오늘 이만큼이나 주막을 차리고 살게 된데는 실상 방순의 도움이 컸었다. 술어미가 이쁘다는 소문에 린근에 있는 회덕현이나 버드내건너 유성촌은 말할것 없고 멀리 경천역말이나 공주읍에서까지 우정 찾아오는 술난봉들이 적지 않았던것이다.

갑자기 방순이가 《아갸갸―》 하고 숨죽인 비명을 질렀다. 어느 녀석이 술상밑으로 그의 무릎을 꼬집었거나 못된 장난을 한 모양이다.

그랬어도 웃목에 놓인 빈상을 어정어정 걸레질하는 도치는 숫제 못본체했다. 안해를 기왕 술어미로 바친 이상 그만한것에는 눈을 감아두자고 작정했는지 모른다.

발끈해서 자리에서 일어난 방순은 부엌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상도 없이 웃목의 맨 삿자리우에 술보시기와 절임오이 몇쪼박을 놓고 앉은 망쇠는 그들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좀전에 술청으로 들어서던 망쇠는 아래목에 앉아있는 융대를 보고 발을 돌리려고 했었다. 밉다니까 따라다니며 깨꼬한다고 이 돌중놈을 술막에서 또 만나게 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망이와 함께 자기네 전장으로 가던 놈이 어떻게 이 술막에 있는지 모를 노릇이였다. 그러나 자기가 이놈들을 피한다면 더 숙보일것 같아 그대로 웃목에 틀고앉았다. 일종의 반발심이였다.

융대와 림가도 그를 경멸에 찬 눈으로 치떠보았지만 모른체 하는것이였다.

그들은 망쇠따위는 안중에도 없는듯 권커니작커니 하며 떠들썩하니 술들을 마셨다. 참새가 방아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술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융대는 망이와 함께 자기네 방축으로 내려가던 길에 도치네 술막을 지나게 되자 슬그머니 혼자 떨어졌었다. 그리고 림가는 방축문제로 뒤탈이 생기지 않도록 명학소의 천민들을 잘 신칙하라는 백가신의 말을 듣고 마을에 남았던것이다. 참새도 굴레씌울 정도로 약아빠진 림가는 자기 누이동생을 백가신에게 섬겨바치고 그의 집에서 서사노릇을 하는 작자인데 상전의 등을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였다.

그들의 지껄이는 소리가 가끔 망쇠의 귀에 마쳐왔다. 방축이며 놀틀에 대해서 주고받는 소리가 더욱 부아를 치밀게 했다. 이래저래 심경이 착잡해진 망쇠는 오로지 취해서 이 모든것을 잊으려고 했다. 그런데 취하지를 아니한다. 취하기는커녕 도리여 정신이 맨숭맨숭해지는것만 같아 짜증이 나고 역증이 났다. 기어이 취해서 가슴속울분을 풀지 않고는 그대로 넘길수 없는 밤이였다.

《여보시오 쥔, 하나 더 주오.》

망쇠는 도치에게 빈 술보시기를 쑥 내밀었다.

《임자 벌써 몇개째인가? 취했네그려. 그만두지.》

도치는 난처한 웃음을 띠우며 그를 마주보았다. 그가 웃을 때면 숙붙은 이마밑의 눈이 실오리처럼 가늘어져 그렇지 않아도 작은 그의 얼굴전체가 더 졸아드는것처럼 잔망스럽게 보였다.

《내가 취해?… 하나 더 주오.》

망쇠는 재촉하듯 빈 보시기를 흔들었다.

《하, 이 사람 외상술도 정도지 무엇으로 갚겠다고 그냥 떼질인가?》

도치는 행주질한 상을 벽에 기대세우며 다시금 난처한 웃음을 띠웠다.

《가을에, 가을하면 갚겠소.》

《가을빚에 소도 잡아먹는다는격일세그려.》

《거짓말이 아니요.》

도치는 못미덥다는듯 대꾸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울적하던 심사에 술막주인의 아니꼬운 태도까지 당하고보니 망쇠는 울컥 분기가 치밀었다.

《못주겠소?》

저도모르는사이에 큰소리가 나갔다.

그러자 아래목에 틀고앉아 흐덕흐덕 웃으며 술들을 마시던 융대와 림가가 그들쪽에 눈길을 보냈다.

《시끄러워 이놈!》

림가가 원숭이상처럼 빨갛게 취기가 오른 낯을 쳐들고 망쇠한테 눈을 부라렸다.

《이놈, 깨 깨끼부락놈이 수, 술청에 왔으면 술이나 고, 곱다라니 처먹을게지 웬 객기야!》

융대도 덩달아 갑자르는 소리로 망쇠를 꾸짖었다. 가까스로 말을 번진 융대는 후 숨을 내쉬였다.

《허허…》

망쇠는 실소를 터뜨렸다. 같잖은것들이 허세를 부리는것이 가소로왔던것이다.

《이노움! 하치상놈이 감히 뉘앞에서 웃어!》

서사가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바락 고함을 질렀다.

《아, 사람같지 않은것하구 상, 상대를 해서 뭐하우. 수, 술이나 드 드, 듭시다요.》 하며 말더듬이 융대는 보시기만한 잔에 백자기 주전자의 술을 따르고나서 떠듬거렸다.

《다, 당초에 도치가 트, 틀렸어. 저런 놈을 우리와 하, 한방에 아, 앉힐게 뭐야.》

잔을 들어 쭉 들이킨 융대는 닭고기를 뜯어 입에 쓸어넣고 게걸스럽게 어작어작 씹어댔다. 흡족해진 그는 기름묻은 손으로 코등을 쓸어만지고나서 또 술을 부어마셨다. 주독코는 사과알처럼 번들거렸다.

눈치를 보며 옹색하게 얻어먹던 공술이라 성이 차지 않던 차에 대작하던 서사가 다른데 정신을 팔고있는사이 배를 채우는 판이였다.

망쇠는 방축에서 매맞은 일까지 되살아나 눈에서 불이 일고 주먹이 아프게 쥐여졌다. 천민이라고 량반들앞에서 기를 못펴는것은 그렇다치고 량반의 하인에 불과한 서사나 돌중놈에게서까지 이런 수모를 받을 때면 통분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저도 어쩔수 없는 힘에 이끌려 욱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놈이…》

망쇠의 걸때 큰 몸집과 감때사나와보이는 눈길에 겁에 질린 서사는 주눅이 들어가지고도 여전히 허세를 부렸다.

때마침 새 사람들이 술청에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무슨 판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였다.

《함께 술을 마시면 형제라는데 여기선 왜들 이리 옥신각신인가?》

인품이 느껴지는 듣기 좋은 목소리가 술청안의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를 대번에 가셔버렸다.

복두를 쓰고 참상관(왕을 수시로 만날수 있는 권한을 가진 관리)들만이 입는 자색공복으로 호화롭게 차린 젊은 량반이 싱글거리는 얼굴로 서있었다.

그곁에는 말구종군인듯싶은 나이지숙한 사람이 험상궂은 눈길로 방안을 두릿거렸다.

그들이 들어서는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술청안의 사람들은 혼겁하여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작달막한 술청주인 도치는 자기 주막에 불시에 나타난 이 귀한 량반을 어떻게 모셨으면 좋을지 몰라 엉거주춤 허리를 굽힌채 례의 그 얼굴이 졸아드는듯 한 웃음만 띠웠다.

젊은 량반은 방안을 잠시 일별한 후 틀진 걸음으로 아래목에 내려가 앉았다. 그 사품에 서사와 말더듬이중은 바람에 풍기는 닭털마냥 벽쪽으로 황급히 물러섰다.

《여보 주인, 따끈한 국밥이나 한그릇 가져오게.》

젊은 량반의 거드름스러운 소리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도치는 황송스럽다는 표정을 띠우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약주도?…》

《아니, 우린 길바쁜 사람이니 술은 소용없어. 그대신 저 사람에게 더 갖다주지. 부족하면 고픈것만 못하다고 아직 주량이 모자란 모양같은데.》

그는 턱질로 망쇠를 가리키고나서 고개를 숙이고 점잖게 앉아있는 방순의 턱을 손끝으로 쳐들어보더니 호기있게 말을 이었다.

《여기두 공주에 속한 부락일텐데 공주란 술을 공으로 준다는 말 아닌가? 허허…》

량반의 말을 진담으로 받아야 할지 롱담으로 넘겨야 할지 가늠할수 없어 입술을 잘근거리던 도치는 이어 방순이를 재촉하여 부엌으로 내려갔다. 량반에게 국밥을 받쳐올린 도치는 망쇠에게도 술상을 갖추어주었다.

망쇠는 웬일인지 술생각이 싹 사라졌다.

량반이 사준 술을 마다하고 밖으로 나온 망쇠는 다리가 조금 비청거렸다.

이마에 찬바람이 부딪치니 머리가 내둘렸다. 장대끝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술등이 대보름달처럼 커도 보이고 별빛처럼 작게도 보였다.

장마구름이 걷혔는지 어느 사이 말갛게 개인 하늘에서 별들이 반짝거렸다.

무엇때문에 술청에 들리고 또 어떻게 술청에서 나왔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모든것이 어제일같고 꿈에 본 사람같다.

《에 시원하다.》

선선한 밤바람이 열기 오른 그의 몸을 살뜰하게 어루만지고 식혀준다.

망쇠는 캄캄한 밤길을 허전거리며 걸었다. 그는 아무리해도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소슬한 바람에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만 발밑에서 불안스럽게 바스락거릴뿐 사위는 괴괴한 정적과 어둠에 묻혀있었다. 지상의 이 어둠과 이 정적을 비웃듯 하늘에서는 뭇별들이 더욱 밝게 더욱 찬란히 반짝거렸다.

그는 길옆의 풀섶에 깍지낀 두손을 머리밑에 고인채 벌렁 드러누웠다.

은하수가 쏟아져내릴듯 흐르고있었다.

저 은하수에서 칠월칠석이면 신틀아비(견우)와 베틀어미(직녀)가 만난다고 했지. 그의 뇌리에는 불현듯 고비가 어렸을적에 저 은하수를 쳐다보며 자기한테 옛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하늘임금의 공주 베틀어미는 부왕의 어명을 거역한 죄로 정든 신틀아비와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다. 베틀어미는 베 삼천륙백자를 짜놓고 신틀아비는 삼신 삼천륙백컬레를 삼아놓아야 칠월칠석날 저녁에 한번 내외가 은하수에서 만나 회포를 나눈다는 옛말이였다.

《근데 오빠, 왜 하늘임금이 베틀어미와 신틀아비를 갈라놨을가?》

옛말끝에 고비가 눈섭을 쫑긋하고 물었다.

《응, 그건 그들이 정분이 나서 일을 안했으니께.》

《정분? 정분이 뭐나?》

《응, 그건…》

말문이 막힌 망쇠는 아무리 갑잘랐어도 자상하게 가르쳐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이런 경우에 늘 하는 식대로 아직 어려서 몰라도 된다는 투로 밀막아치우려고 했다. 그러나 이악스런 고비가 말하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저으기 땀을 뺐었다.

견우와 직녀는 사랑에 빠져 일을 하지 않은 죄로 벌을 받았지만 자기들은 무슨 죄로 늘 개업심을 받아야 하는지 그는 아무래도 알수 없었다. 벌받고 개심한 견우나 직녀가 온 한해 힘겹게 일했어도 자기들처럼 뼈빠지게 일하지는 않았을것이다. 한해에 삼천륙백컬레의 삼신을 삼았대야 하루 고작 열컬레폭이 아닌가. 하루에 삼신이나 열컬레 삼으라면 누워서 해치울것 같았다.

밤추위와 그리고 느닷없이 울리는 말발굽소리에 망쇠는 상념에서 깨여났다.

《여보, 말 좀 물읍시다.》

머리우에서 울리는 어딘가 귀익은 소리에 망쇠는 몸을 일으켰다.

《아래부락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그제야 망쇠는 그 목소리의 임자가 좀전에 술막에서 만났던 량반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자세는 본능적으로 굳어졌다. 그는 얼른 땅에 꿇어앉아 머리를 숙이였다. 축축한 풀잎에 이마가 선뜩하는 순간 그는 지금처럼 캄캄한 밤에 로상에서 만난 량반들에게까지 굽신거리는 저자신이 역겨워지고 화가 치밀었다. 그는 옷에 묻은 이슬기를 털고나서 곧추 가면 된다고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그의 푸접없는 말투에서 이상한 기미를 눈치챘는지 말우의 량반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곳에 금비란 사람이 살고있나?》

《?!…》

(금비? 금비란 망이형님을 이르는 소리가 아닌가. 이 량반이 대체 무슨 일루 망이형님을 찾는거야?)

망쇠는 저으기 긴장해졌다.

량반의 음성이 아닌 탁하고 성급한 음성이 《어, 어》 하고 벙어리시늉을 하더니 갑자기 채찍으로 망쇠의 가슴팍을 내질렀다. 아마 대답을 꾸물거린다고 골이 난 모양이였다.

그것이 량반의 구종군이라는것을 알아차린 망쇠는 대뜸 숨결이 거칠어졌다. 량반이나 량반을 믿고 거드럭거리는 이따위 놈팽이가 다 무엇이냐. 세상살이에 아무런 미련도 없는 망쇠는 정녕 두려운것이 없었다.

이때 량반이 자기의 말구종군을 나직이 꾸짖고나서 망쇠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가 길이 바빠 그러니 마음을 풀게. 그래 금비란이가 있나없나?》

《있소이다.》

망쇠도 좀 누그러진 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집이 먼가?》

량반이 다시 물었다.

《멀지 않소이다.》하고 대답한 망쇠는 이 량반이 아무래도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어 되물었다.

《그런데 왜 찾으시우?》

《그건 자네 알바 아닐세.》

거드름스럽게 잘라말한 량반은 따지듯 다시 물었다.

《거. 자네 적실한가?》

《말아니면 듣지 말고 길아니면 가지 말면 될것이 아니오니까.》

망쇠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량반은 망쇠의 사람됨됨이 진심스러워보였던지 더 묻지 않고 잠시 덤덤해있었다. 이윽하여 망쇠에게 활달하게 말을 던졌다.

《자, 그럼 죽지 말고 또 만나세.》

이어 말발굽이 땅을 구르기 시작하더니 드디여 그 소리마저 어둠속으로 잦아버리고말았다.

망쇠는 우두커니 서서 말발굽소리가 사라진 어둠속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풀밭에 벌렁 드러눕고말았다. 밤의 찬바람과 이슬을 맞으면 가슴속이 풀릴듯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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