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2장 학바위전설

2


발길질로 짚신짝을 벗어던진 망쇠는 거적을 들치고 방에 들어섰다.

굴왕신같이 컴컴하고 랭기가 풍기는 방에서 부시럭대는 소리가 나더니

《웨 이리 늦었노?》

아버지 서눌의 쉬지근한 목소리가 울렸다.

망쇠는 아무 대꾸없이 털썩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어둠속의 두억시니처럼 어적어적 부엌으로 내려간 서눌은 아궁에서 재속에 파묻어놓은 불씨를 끄집어내였다. 부저가락으로 불씨를 집어든 그는 거기에 광솔개피를 가져다대고 한참동안 푸푸 불어댔다.

불씨가 빨갛게 살아날 때마다 수염이 거푸시한 입언저리며 꺼먼 살가죽이 보기 흉하게 이그러진 이마가 불그스름하게 드러나군 했다. 《서적》(서경역적)이란 락인이 찍힌 그 이마의 흉터는 서눌의 불우한 인생을 말없이 보여주는 증표와 같은것이였다. 젊었을적에는 불도장으로 찍은 그 락인이 너무도 뚜렷하여 머리수건으로 늘 가리우고 다녔으나 수십년세월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마치 이끼낀 비석의 새김글처럼 거밋한 상처자욱으로 남아있을뿐이였다.

얼마뒤 그는 광솔불을 들고 올라와 벽에 꽂아놓았다.

서까래가 까맣게 그슬린 천반으로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는 고콜불은 군데군데 흙벽이 떨어져 수수산자가 엿보이는 어수선한 방안을 밝히기를 주저하듯 가는 불꼬리를 흔들거렸다.

《시장하겠구나.》

서눌은 아들의 머리맡에 죽바가지를 놓았다.

삼실로 성글성글 꿰맨 짜개진 죽바가지며 꺼멓게 손때가 오른 나무숟갈에서는 가난한 홀아비살림의 궁상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나보였다.

《아니 머리는 웨 이렇게 되였노?》

서눌은 헝겊으로 동여맨 아들의 머리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피딱지가 말라붙은 이마며 꺼멓게 피자국이 내밴 헝겊은 보기도 끔찍스러웠다.

망쇠는 대답하기 귀찮다는듯 눈을 감아버렸다.

서눌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들어보나마나 권세있는 놈들한테 매를 맞은게 뻔했다. 벽쪽으로 물러나 쭈그리고앉은 서눌은 앙상한 두무릎이 꺼꺼부정한 어깨우로 비쭉 솟아올랐다. 불도장이 찍힌 거밋거밋한 이마밑의 우묵한 두눈확에서 고뇌와 비애와 시름으로 흐리멍텅해진 눈이 한곳을 물끄러미 응시하고있었다.

고역과 학대로 심신에 멍이 든 로인은 이처럼 얼나간 사람마냥 멍청해있는적이 드문했다. 그는 채머리를 흔들고나서 아들쪽에 눈길을 돌렸다.

뒤머리를 손바닥으로 고이고 드러누운 망쇠는 천정을 멀뚱히 쳐다보고있었다.

아들의 눈길에서 타번지는 번뇌의 표정을 읽은 서눌은 가슴 꺼지는듯 한 한숨을 소리죽여 내쉬였다. 애오라지 아들의 성장만을 일구월심 바라며 강심살이를 해왔으나 정작 아들이 자라난 지금 더 큰 마음의 고통을 당하고있는 서눌이였다. 모진 목숨이라 죽지 못해 헤쳐온 가시덤불길이 그대로 아들의 앞길에도 펼쳐져있었다. 자기는 모든것을 참고 견디며 한생을 지탱했지만 참나무숯불같은 아들의 성미가 그것을 묵새기지 못하리라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그때문에 권세있는 놈들한테 매도 수태 맞았지만 그것이 도리여 아들의 성미를 모질고 강인하게 벼려주게 될줄은 몰랐다. 서눌은 아들의 그런 성미가 못내 걱정스러웠다. 모난 돌이 정을 맞고 곧은 나무가 먼저 찍힌다고 하지 않는가.

번열을 이새로 토하며 망쇠가 끙 옆으로 돌아누웠다.

서눌은 가슴이 옥죄는듯 한 아픔을 느끼며 눈길을 떨어뜨렸다.

《서경집》, 《서경로인》으로 불리우는 서눌은 본시 서경(평양)사람이였다.

40년전인 인종 13년 을묘년(1135년)에 서경에서 묘청의 란이 일어났을 때 대동강가에서 버들고리를 엮어 팔아 살아가던 양수척(고리백정)이였던 그는 개경의 관군과 맞서 1년간이나 싸웠으나 끝내는 성을 무너뜨리고 들어온 관군에게 사로잡히고말았다. 놈들은 그의 이마에 《서경역적》이라는 불도장을 찍어 먼 남쪽지대의 천민부락인 여기 명학소로 집어내던졌다.

불우한 인생은 빨리도 흘렀다. 앞도 안보이고 뒤도 막힌 그믐밤처럼 암담하며 늪에 고인 물처럼 침울한 그의 생애에서 밤하늘의 번개같은 변화가 단 두번 있었다.

정든 고향산천과 서경관영에 관비로 박혔다는 어머니와 어린 안해에 대한 그리움에 모대기던 그는 죽는 한이 있어도 한번 만나보겠다는 일념으로 어느 가을밤 명학소를 뛰쳐났었다. 그러나 번개같은 희망은 벼락같은 불행이 되여 그의 몸에 떨어졌다. 그를 붙잡은 공주관아의 놈들은 다시는 도망하지 못하게 한다고 그의 생다리 하나를 분질러놓고야말았다.

불도장이 찍힌 이마를 수그리고 다리마저 절룩거리며 서눌은 무덤같은 움막에서 십년나마 홀아비로 살았다. 이제는 정든 사람들의 모습도 꿈속에서처럼 희미해졌다.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날아침, 그는 자기 집오래에 쓰러져있는 웬 녀인을 발견했다. 굶어죽고 얼어죽은 시체가 늘 길에 널리던 때라 그는 주인없는 주검을 언땅을 뚜지고 묻어줄 심산으로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것이 젊어서 헤여진 자기 안해일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너무도 꿈같은 일에 서눌은 그만 넋나간 사람마냥 꽁꽁 언 안해를 부둥켜안고 마구 흔들며 울었다. 한참만에야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안해의 가슴을 헤쳐보았다.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안해를 급히 방안으로 옮겨놓은 그는 아궁에 불을 지피고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저녁녘에야 안해는 눈을 떴다. 서눌은 안해의 말을 통해 그도 자기처럼 죽어도 한번 만나보고 죽겠다는 각오로 서경관아를 몰래 도망쳐나왔다는것을 알았다. 녀인의 몸으로 천여리 눈길을 헤맸으려니 그간의 고생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안해의 머리에도 흰 오리가 많았다. 그랬어도 그들은 마치 젊음을 되찾은것만 같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너무도 당연하고 범상한 가족생활이 서눌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다. 행복이란 이처럼 언제나 상대적개념인지 모른다. 건강이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건강이 생의 가장 큰 목적이고 행복인것처럼.

하지만 안해와의 이 생활도 좀더 길고 밝긴 했어도 어쨌든 밤중의 번개에 지나지 않았다. 한해라는 세월이 흐르고 그들사이에 망쇠가 태여났을 때 불행은 또다시 서눌에게 덮쳐들었다.

그의 안해가 서경관영에서 도망한 관비라는것을 알게 된 놈들이 그들의 움막에 달려들었다. 끌려가는 안해를 뒤따라 누데기에 젖먹이 아들애를 싸안고 절뚝거리며 뛰여가던 서눌은 버드내에 이르러 땅에 쓰러지고말았다.

《여보― 그 애를…》

젖먹이를 두고 생리별 당하는 안해의 애절한 울부짖음이 강가에 메아리쳤다.

졸지에 어미를 잃은 망쇠는 깔깔한 타개죽을 내뱉으며 세차게 울어댔다. 그가 울어댈 때면 서눌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젖먹이 있는 집들에 동냥젖 얻으러 다녔다. 가난한 천민부락이고보니 젖어미도 많지 못했다.

망이 어머니 누리나가 그들을 보살펴주지 않았더라면 망쇠는 그대로 시들어버리고말았을지 모른다. 얼굴이 넓둥글하고 무던하게 생긴 누리나는 눈물이 글썽하여 망쇠를 받아 얼른 제 가슴을 헤치고 젖을 물려주었다. 그때부터 망쇠는 그 집에서 망이와 함께 누리나의 젖을 먹으며 자라게 되였다. 각박한 세상이라해서 인정마저 메말라버리는것은 아니였다.

누리나는 한쪽 젖꼭지는 두돌이 지난 자기 아들 망이의 입에 물리고 다른 한쪽은 갓난 망쇠에게 물려주었다. 그의 젖도 끝없는 샘물은 아니였으니 젖꼭지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두 젖먹이사이에 종종 벌어지군 하였다. 그는 훌쭉해진 젖통을 주물러 망쇠의 입에 젖을 짜넣어주군 했다. 두돌이 지난 망이가 젖을 시큰둥하게 여길만큼 누리나의 젖샘은 마르고있던 때였다.

이미 젖을 끊고 죽을 먹던 망이도 엉뚱한 망쇠가 제 어머니젖을 먹는것을 보더니 샘이 난 모양 다시 젖에 달라붙었다. 그래도 영악스러운것은 기여다니지도 못하는 망쇠였다. 그 애는 암팡지게도 두 젖꼭지를 제가 독차지하려고 앙탈을 부렸다. 한 젖꼭지는 입에 물고 다른 하나는 앙증스러운 손으로 꼭 쥐고 놓지 않을라치면 망이는 울음을 터뜨리군 했다.

《이녀석,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더니…》

누리나의 시름겨운 얼굴에는 너그러운 웃음이 흐르군 했다.

서눌은 자기 아들에게 생명의 젖줄기를 부어주는 누리나에 대한 고마움으로 줄창 눈물을 흘렸다. 그는 밤마다 누리나네 밭김을 매주었다. 누리나는 극력 말렸지만 서눌은 그렇게라도 신세갚음을 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다. 하긴 이때로 말하면 남편인 어금바우가 백가신의 집으로 끌려간 뒤여서 누리나는 손포가 여간만 딸리지 않던 시기였다.

거친 들에 떨어져 뿌리내리지 못하고 굴러다니는 씨앗같던 망쇠는 살아났고 자라났다. 그도 누리나의 은혜를 잊을수 없었다. 열살에 잡히면서 지게를 지고 산에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망이네 나무부터 한짐 져다주었다.

어려서부터 강기있고 날파람스럽던 망쇠는 산속에 들어가면 더 펄펄 뛰여다녔다. 하긴 언젠가는 그의 이런 날랜 모습이 사냥놀이 나왔던 어떤 량반의 눈에 띄여 사냥개노릇도 하게 됐지만 어쨌든 산림은 그에게 정다운 집이였고 따뜻한 어머니품이였다. 산속에만 들어가면 굶을 걱정도 추위에 떨 걱정도 없었던것이다.

인정이 무른 누리나는 제 젖을 먹여 키운 망쇠를 친아들마냥 살뜰히 대해주었다. 간혹 색다른 음식이 생길라치면 꼭 망쇠를 불러왔고 덞은 옷가지도 제손으로 빨아입히군 했다.

망이와 망쇠의 우애도 자별했다. 그들은 어려서도 구순하게 잘 놀았지만 자라서도 친형제나 다름없이 지냈다. 한가마밥을 먹어도 형제라고 하거늘 하물며 한어머니젖을 빨며 자라난 그들사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원래 세돌이란 아명으로 불리우던 망쇠는 형제간에는 이름도 비슷해야 한다면서 스스로 자기 이름을 망쇠라고 고쳐불렀다. 아래우 망돌을 떨어지지 않게 하는 요긴한 망쇠처럼 자기도 망이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는 뜻에서였다. 이름처럼 그들은 무슨 일에서든 늘 의합을 맞추며 살아왔다.

한동안 번뇌에 시달리던 망쇠는 봉당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거적을 들치고 밖으로 나섰다.

갈퀴같은 손으로 슬한증에 걸려 저려드는 무릎을 문다지던 서눌이 고개를 쳐들었다.

《밤중에 또 어딜 가노?》

등뒤에서 아버지의 풀죽은 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렸으나 망쇠는 긴 장대끝에 술등이 매달려 흔들거리는 도치네 술막으로 어정어정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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