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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제2장 학바위전설

1


《형님 있소?》

부엌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것은 망쇠였다.

어둑시그레한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던 고비는 시쁜듯이 그를 쳐다보고 고개를 돌렸다.

《형님 어데 갔니?》

재차 묻는 망쇠의 숨결은 몹시 거칠었다.

《유성에.》

고비도 대답소리가 온곱지 않게 나갔다.

《거긴 왜?》

《약물 길러.》

《약물?!… 무슨 약물말이냐?》

《웃마을 을님언니네 약물이지 뭐유.》

《웃마을 을님이란 또 누구냐? 도대체 네 말을 듣구야 무슨 소린지 어디 알겠니?》

망쇠는 울뚝거리기 잘하는 성미그대로 따지듯 앞으로 다가섰다.

고비는 얼결에 흠칫 뒤로 물러났다. 그는 망이가 을님이 대신 유성온천에 약물 길러간 사연이며 아침일찍 떠났으니 이젠 돌아올 때가 되였다는것을 좀 토라진 소리로 대충 이야기했다.

고비의 말을 들은 망쇠는 코웃음을 쳤다.

《환장을 했나. 배로 건늬여주다 못해 이젠 제가 물길러 다녀?》

망쇠의 빈정대는 소리에 고비는 눈살을 꼿꼿이 세우고 종알거렸다.

《무슨 상관이유, 물을 긷던말던…》

망쇠는 갑자기 그 커다란 매눈을 뚝 부릅떴다.

《한데 넌 왜 노상 성난 상이냐? 웃진 못할망정…》

《무에 그리 좋아서 웃을고.》

《싫은건 또 뭐게?》

《…》

말문이 막힌 고비는 눈길을 내리깔고 입술을 비쭉거렸다.

그도 망쇠를 대하면 왜 제 심정이 류별스러워지는지 알수 없었다. 친오빠 한가지로 스스럼없던 망쇠가 근래에 와선 별스레 대하기가 서먹하고 또 두려워지는지 참말 모를 일이였다. 그리고 저도 몰래 새침을 부리고 앵돌아지는것은 또 무슨 까닭일가. 이것을 그 또래의 어린 처녀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응석이나 변덕이라고 여길수도 없었다. 고비는 응석이라는것을 모르고 자라났고 변덕스러운 성미는 더욱 아니였던것이다.

《에― 너하구 기다랗게 얘기할새두 없다.》

망쇠는 역정스럽게 내뱉고나서 몸을 돌렸다.

《무에 급해서 그래요?》

고비의 말소리도 좀 차분해졌다.

《홍경원의 지장이란놈이 우리 방축을 허물겠대서 이러지 않니.》

《방축은 왜?》

고비는 대바람에 눈이 동그래졌다.

《공주성에서 상호장까지 나왔는데 에참―》

망쇠는 묻는 말엔 대답없이 혼자 두덜거리더니 들어올 때처럼 홱 나가버렸다.

(상호장까지?…)

고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방축을 허문다는 망쇠의 말이 무슨 소린지 알수 없으나 아무튼 그가 저처럼 정신없이 뛰여다닐적에는 무슨 큰일이 벌어진것이 분명했다. 더우기 그 일로 이 진날에 상호장 백가신이까지 나왔다니 여간만 엄청난 일이 아닌 모양이였다.

그런데 하필 오늘같은 날에 오빠가 물길러 갈게 뭐람…

그는 설겆이를 서둘러 해치운 후 밖으로 뛰여나갔다.

비발은 어느결에 그쳤는지 재빛구름장이 한결 높이 들렸다. 선들선들한 바람이 불었다.

고비는 망쇠네 윤두소가 풀을 뜯고있는 방축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새끼를 배여 배가 불룩한 암소의 잔등에는 벼짚으로 엮은 덕석이 씌워있었다. 고비는 소를 끌고나온 망쇠가 여기서 방목을 하다가 중들과 맞다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여느때같았으면 제집소처럼 아끼는 망쇠네 윤두소곁에서 즐거움에 잠겨보련만 지금은 그럴 경황이 없었다.

버들방천우에는 벌써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서 웅성거리고있었다.

대두리싸움판이 벌어진 모양 고래고래 지르는 성난 목청이 들렸다.

고비는 사람들쪽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버렸다. 거기서도 긴장한 그는 사람들의 말소리며 표정까지 가려볼수 있었다.

사람들속에는 가량가량한 몸에 화려한 비단옷을 떨쳐입은 공주상호장 백가신과 그의 서사며 교군들 그리고 몸집이 뚱뚱한 명학소의 촌정까지 섞여있었다.

검은 장삼을 입은 두셋의 중과 함께 여라문명의 낯선 사람들이 망쇠와 대치해있었다. 그런데 목청을 높이는것은 주로 얼굴이 불그데데한 젊은 중이였다.

부처를 섬긴다는 불도치고는 매우 불량해보이는 젊은 중은 굵은 팔목을 휘두르며 고아대는데 그는 말더듬이여서 듣는 사람이 안타까울 지경으로 몹시 힘겹게 말을 번지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입을 벌릴 때마다 술취한 놈처럼 낯에 뻘겋게 피가 번지군 했다.

여느때같았으면 우습강스러워 배를 그러쥐였을 고비도 지금은 사태가 너무도 험악해서 손에 땀을 쥐였다. 그는 오가는 말을 통해 벌어진 일의 진상을 가늠할수 있었다.

명학소에서 버들방천을 따라 5리가량 내려가면 홍경원에서 관할하는 전장이 있었다. 그 전장의 토지는 절간에 매인 농군들인 수원승도들에 의하여 경작되였다.

절간에서는 여기에 지장(전장을 책임진 중)과 여러명의 중들을 보내여 수원승도들을 부려먹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이 명학소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게 된것은 버들방천때문이였다. 명학소에서 놀틀을 논으로 풀면서 방축을 높였기때문에 장마철이면 그리로 빠지던 벌물이 자기네 전장의 방축에 쏠리게 되였으므로 부득불 명학소의 방축을 허물어 자기네 전장의 피해를 미리 막아야겠다는것이였다.

고비는 기가 막혔다. 억지도 이런 강억지가 다시 있을것 같지 않았다. 아직 큰물도 지지 않았는데 방축을 허물겠다는것은 무슨 심보인가. 한창 자라는 신풀이논벼를 없애버리겠다는 잡도리가 아닌가. 하늘로부터 재화를 받을가봐 걱정하는 판국인데 도리여 중들한테서 앙화를 받게 된셈이였다.

고비는 격분으로 숨결이 가빠졌다. 그는 조그마한 종주먹을 몽그라쥐고 말더듬이중을 쏘아보았다.

《비, 비켜!》

말더듬이중이 꽥 소리질렀다.

그앞에 벋디디고선 망쇠는 들은둥만둥 끄떡하지 않았다.

《모, 못비키겠어?!》

다시한번 목청을 돋군 말더듬이중은 자기 뒤에 엉거주춤 서있는 수원승도들에게 호령질했다.

《어서 파, 파헤치지 못해!》

협수룩한 수원승도들은 잠시 어쩔바를 모르다가 삽이며 괭이들을 방축에 대기 시작했다.

《그만들두지 못하겠소!》

망쇠가 그들에게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그보다 더 서리발찬 매눈에 겁이 질린 수원승도들은 찔끔해서 뒤로 물러섰다.

성이 독같이 오른 말더듬이중은 망쇠한테 삿대질하며 고아댔다.

《이, 이놈. 너 정, 정말 모, 못비키겠어!》

《이놈?… 어따대구 이놈이야!》

망쇠도 거슬거슬하게 맞섰다.

《야, 깨, 깨끼부락놈보구 놈이라구 모, 못하면 누굴보고 노, 놈이라구 해!》

《아직두?》

《어랍쇼. 거, 거센체 말어! 지, 짐승같은 놈!》

《뭐 짐승?!》

《그, 그럼 지, 짐승 아니문 깨, 깨끼부락놈두 사람인가.》

약을 올려줄 작정인지 말더듬이중은 히물히물 웃기까지 했다. 이 말더듬이중은 홍경원의 지장으로 수백명 중들속에서도 파계중, 난봉중으로 소문난 융대라는 작자였다.

어느 시골아전의 둘째아들로 태여난 융대는 어려서부터 갖은 못된짓을 다 저지르고 다니다가 몇해전에 싸움질로 애매한 사람을 죽이고는 겁에 질려 절간에 숨어버린 놈이였다. 융대는 중이 되여서도 제 습성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는 지금도 방축보다도 망쇠를 모욕하고 희롱하는데서 더 큰 흥미를 보고있었다.

망쇠는 분이 머리끝까지 치받쳤다. 그는 볼편이 경련하듯 떨리고 뭉그러진 주먹이 아팠다. 망쇠는 혹독한 육체적고통은 견딜수 있어도 모욕에 대해서는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매일처럼 모멸과 학대를 물먹듯 받아야 되는 천민의 신분을 타고났어도 그는 좀체로 그것을 감수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자기 처지에 쉬 익숙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죽을 때까지 그것에 습관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망쇠도 바로 그런 젊은이였다.

망쇠의 이런 결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고비는 속이 오마조마했다. 꼭 무슨 변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런데 촌정은 물론 상호장 백가신과 그의 하인들까지 모두 구경군들처럼 덤덤히 서있었다.

장작개비처럼 삐쭉 마른 늙은이인 백가신은 고개를 수굿하고 갖신우에 진날에만 덧신는 나막신을 신고 힘겹게 발을 끌며 천천히 방축우로 거닐고있었다. 그의 뒤에서는 비가 멎었는데도 기름먹인 종이우산을 펼쳐든 서사 림가가 백가신의 으리으리한 비단옷에 비방울이 떨어질세라 바싹 따라다녔다.

몸이 뚱뚱한 촌정은 백가신의 앞이라 기가 죽어 허리를 구부정하고 서있었다.

창백한 낯에 주걱턱이 앞으로 쳐들린 백가신을 사람들은 《백면귀》라고들 했다. 낯이 흰 귀신으로 불리울만큼 그는 잔인하고 악착했다.

지금은 백가신이 장마비로 자기 관할지역의 농토가 손실을 입을가보아 부곡촌들을 순시하러 나온 길이였다. 그는 명학소에 굴젓같은 논이 새로 생긴것을 여간만 흡족하게 여기지 않았다. 실상 신답풀이에 대한 관심은 농군들보다 그가 더 크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백가신은 중들의 속심을 뻔히 꿰뚫고있었다. 례년에없는 왕가물에 저들의 전장은 페농하다싶이 되였는데 잘 자라는 놀틀의 벼를 보니 시샘이 나서 심술을 부리는것이 뻔했다. 마음같아서는 생강짜를 부리는 그들에게 톡톡히 면박을 주고싶었지만 자기가 단골절로 섬기는 홍경원의 중들이라 그럴수도 없었다. 게다가 세줄이 개경에까지 뻗어있는 그들과 엇서서 리로울것이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백가신은 그들의 비위도 맞춰주고 또 자기에게도 손해가 없도록 방축문제를 적당히 아퀴지으려고 생각을 고시르는중이였다.

이들의 속심을 알길 없는 고비는 안타깝기만 했다. 당장 무슨 불집이 터질것 같은데 왜서 가만히들 있는지 모를 일이였다. 저러다 망쇠가 중놈들과 주먹싸움이라도 벌리면 어쩌누.…

《저기선 웬 소동들이냐?》

곁에서 울리는 갑작스런 말소리에 고비는 깜짝 놀라 몸을 돌리였다. 뜻밖에도 지게를 진 망이가 자기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방축우에만 정신을 빼앗기고있다보니 그가 어느결에 나타났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것이다. 고비는 애타게 기다리던 참이라 골이 났다.

《왜 인제야 와요?》

《무슨 일이 생겼니?》

망이도 고비의 기색을 보고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다는것을 느꼈다.

고비는 방축우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자기가 보고 들은대로 성급하게 알려주고나서 빨리 가보라고 안타까움에 잠겨 발을 구르며 재촉했다.

망이는 빈 물독을 올려놓은 지게를 벗어놓고 방축우로 올라갔다. 그의 베옷잔등은 물에서 건져낸 빨래처럼 후줄근히 젖어있었다. 그는 방금전에 유성온천에 가서 약물을 길어다 을님이네 집에 주고오는 길이였다. 송구스러워 어쩔줄을 몰라하며 저녁밥을 지을테니 다리쉼을 하고 가라는 을님이 어머니의 간청도 마다하고 그는 웃말에서 내려오는 길에 방축으로 나왔다. 유성온천에 갔다오는 한나절사이에도 방축때문에 도시 마음을 놓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그 방축이 전혀 뜻밖의 일로 사달을 일으키게 될줄은 짐작도 못했다.

방축우에 올라선 망이는 우선 백가신이쪽으로 다가가 두손을 맞잡고 허리를 굽혀 절하였다. 백가신은 망이를 시들하니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허리를 숙이고 백가신의 앞에서 물러난 망이는 촌정의 곁으로 걸어갔다. 촌정은 이런 절박한 때에 나타난 망이를 보고 침울하던 낯에 화색을 띄였다.

《행수, 마침 잘 왔소.》

촌정은 벌써 한시름놓는 기색이였다. 명색이 촌정이랄뿐 부락의 대소사는 거의나 《산행계》행수인 망이가 주관하였던것이다.

《저 스님들이…》

하고 촌정이 다시 말을 떼자 망이는 가볍게 제지했다.

《알고있소이다.》

《알고있었소?… 그럼 이 일을 어쨌으면 좋겠소?》

말없이 서있는 망이의 얼굴도 어두운 표정이였다. 그도 무슨 변이 부르터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당장은 어쨌으면 좋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망이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망쇠가 언성을 높였다.

《어쩔게 있소? 혼뜨검을 내서 쫓아버려야지.》

《뚝심으로 될 일이 아닐세. 여북하면 상호장나리두 저러구계시겠나?》

하며 촌정은 백가신이쪽에 조심스럽게 눈을 주었다. 지옥의 염라대왕처럼 두려운 백가신의 앞이라 안절부절 못하고있는 그는 지금도 실상 방축보다도 언짢은 기색이 력연한 백가신의 심기를 잡쳐놓을가싶어 더 신경을 쓰는중이였다.

몸이 뚱뚱한 사람들은 대개 배포가 유하다고 하지만 촌정은 체통이 남의 곱절되게 크게 뚱뚱했어도 속대는 여간 무르고 소심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 상호장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마음을 쓸래 부락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왼심을 쓸래 아래우의 눈치를 살피느라 언제한번 마음편히 지낸적이 없었다.

《형님, 그래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관가의 행악질만 해두 견디기 바쁜 판에 이젠 저 중놈들까지… 내 저놈들이 우리 방축에 삽날을 박는 날엔 가만두지 않겠소.》

망쇠는 말더듬이중 융대의 모욕을 받은 뒤라 성이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윽윽했다. 정말 무슨 일을 칠것만 같았다.

험악한 분위기를 눅잦힐양으로 촌정이 얼른 말을 꺼냈다.

《여보게 망쇠, 좀 참으라구.》

망쇠를 달래고나서 촌정은 망이에게 목소리를 죽여 의논조로 물었다.

《저 스님들이 아무래도 신풀이논벼가 탐나서 트집을 거는게 분명한즉 가을한 뒤에 쌀을 얼마간 홍경원에 시주하겠다고 하면 어떨것 같소?》

망쇠가 대뜸 촌정에게 눈을 흘겨붙였다.

《원, 정신 쑥 빠진 소릴 다 합니다. 아, 형님은 가만있지 말구 무슨 말을 하시구려.》

망이는 여전히 아무말도 없었다. 평소에도 생각이 깊고 입이 무겁고 행동거지가 진중한 망이는 지금처럼 긴절한 일이 생기면 더욱 매사를 자중하는 사람이였다. 그 자중이 어떤 때는 좀 답답해보일 정도로 도가 지나치는적이 많았다.

쉽사리 풀릴 일이 아니라는것을 알고있는 망이는 심중이 무거웠다. 홍경원의 중들이 부정한짓을 하려는것이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망쇠의 말처럼 그들을 막무가내로 물리쳐버릴수도 없었다. 홍경원이라면 절간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큰 절간인데 그들이 관권을 등에 업고 장차 무슨짓을 더 크게 벌릴지 모를 일이였다. 하기에 공주관아에서 제노라고 뽐내는 상호장 백가신이도 자기가 관할하는 부곡마을에 와서 홍경원의 지장이 야료를 부리는데도 지금처럼 속수무책으로 있을것이였다. 그리고 만약 중들의 말대로 큰물이 나서 홍경원의 전장이 물에 잠기기라도 한다면 참으로 야단이였다. 그때는 명학소사람들도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중들을 무마하기 위해 가을에 신풀이논에서 거둔 쌀을 얼마간 홍경원에 바친다는것도 리치에 타당치 않은 일이였다. 피땀흘려 지은 곡식을 까닭없이 그들에게 바친다는것부터가 그 량이 많건적건간에 쓸개빠진 노릇이 아닐수 없기때문이였다. 자기의 주장으로 마을사람들이 여러해동안 고생끝에 푼 논이라 이 논에 대해서는 자기가 끝까지 맡아나서야 한다는것을 깊이 자각하고있는 망이였다.

융대도 아무말없이 흘끔흘끔 망이의 동정만 살폈다.

망이가 나타나자 부락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의뢰하는것으로 보아 그가 범상찮은 인물임을 알아차린 모양이였다.

비록 흙물이 오른 베옷차림에 머리에는 수건을 동졌어도 름름한 체구며 눈확에서 유난스런 영채가 풍기는 망이의 기상에 그들은 다소 주눅이 들었다. 하긴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긴 했어도 결패스러운 망쇠의 태도에 아까부터 은근히 속이 켕겨있던 융대였다.

이윽하여 고개를 쳐든 망이는 촌정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홍경원의 방축이 터져도 안될 일이니 그쪽의 방축을 든든하게 쌓아야 할것 같소이다.》

《어떻게?…》

촌정은 의혹이 실린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쳐들었다. 군턱이 지였던 그의 턱아래가 목없는 개구리의 턱처럼 평평하게 보였다.

《우리 방축때문에 홍경원의 방축에 물이 쏠린다니 우리 부락사람들이 그쪽 방축을 쌓아주잔 말이외다. 그럼 뭐 별탈이 없을것 같소이다.》

시리죽은상을 하고있던 촌정은 그제야 망이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주름살을 폈다.

《참, 그럴법한 소리요.》

촌정은 흡족해서 비단바지자락을 추켜올리고 백가신한테로 나막신 신은 발을 옮겼다.

그의 말을 듣고난 백가신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망이쪽에 눈길을 주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홍경원의 중들도 할 말이 없을것이였다. 신통한 궁냥이란 생각이 들면서 천한 부곡놈이 생각해내는 궁냥을 자기는 왜 하지 못했는가 하는 불쾌한 느낌과 함께 까닭모를 부아가 치밀었다. 그는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에 대해서는 천성적으로 증오를 느끼는 위인이였다. 자기보다 땅이나 재물이나 권세가 더 많은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고 머리가 명민하거나 재주있는 사람, 지어 고운 녀편네를 데리고사는 사람들까지 그는 미워했다. 하기에 그는 이 순간도 좋은 궁냥을 했다는 단지 그것만으로 망이에 대해 아니꼽게 여겼다.

그러나 아무튼 저로서도 시끄럽게 생각되던 문제를 아퀴지은것이 시원하였다.

《그렇게 하게.》

그는 얇은 입술을 벌린듯만듯 촌정에게 한마디 뇌까렸다.

촌정은 만세라도 부를듯이 희색이 만면해서 망이에게 이번 일도 주관해달라고 당부하였다.

망이는 홍경원의 방축을 쌓는 일이 하루이틀에 될 쉬운 일이 아니라는것을 짐작하고있었다. 그러나 놀틀의 신풀이논을 살리자면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었다. 기왕 일을 시작할바엔 소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우물쭈물하지 말아야 했다. 그는 내친김에 아예 홍경원의 방축을 보고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망이는 생각은 깊이하지만 일단 결심한 일에 대해서는 결코 변경시키거나 뒤로 미루는 법이 없었다.

《촌정어른, 저 스님들이 가하다면 이제 홍경원의 방축을 돌아보고 오겠소이다.》

촌정에게 이렇게 말한 망이는 머리수건을 풀어 다시 썼다.

《먼길을 갔다온 모양인데 이제 또… 가부간 행수만 없으면 우리 부락은 한지가 될 판이요.》

촌정은 후줄근히 젖은 망이의 차림새를 걱정스럽게 훑어보며 감사에 겨워 중얼거렸다.

망이는 망쇠더러 함께 가자고 했다.

《싫소.》

망쇠는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망이의 말이라면 소금섬을 물로 끌고가라고 해도 끌고갈 정도로 잘 따르는 망쇠도 이번 처사만은 순응하고싶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남의 방축까지 쌓아준단 말인가. 그는 설사 신답의 쌀을 먹지 못하면 못했지 중놈들의 비위를 맞춰주고싶지는 않았다.

《그럼 저 방축아래에 있는 지게나 우리 집에 가져다주게.》

이렇게 망쇠에게 당부한 망이는 융대한테로 다가갔다.

《우리가 그쪽의 전장에 피해가 없도록 방축을 쌓아줄테니 함께 가봅시다.》

트집을 걸 언터구가 없어진 융대는 뻐꾹소리도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이미 걸음을 뗀 망이의 뒤를 슬금슬금 따라갔다.

망이와 함께 융대가 방축우에서 떠나가자 백가신은 문득 자신의 존재가 무시된듯 한 까닭모를 모멸감을 느끼였다. 이제는 방축우에 더 있을 리유도 없었지만 그냥 자리를 뜨자니 아무래도 속이 편안치 않았다. 무슨 화풀이든 하지 않고서는 불쾌한 심기를 삭일것 같지 않았다.

먹이감을 노리는 독수리의 눈처럼 두눈을 지릅뜨고 사람들을 흘겨보던 백가신의 눈에 아까 융대와 아귀다툼질을 하던 불손해보이는 망쇠가 걸려들었다.

《야 이놈, 너 이리 오너라!》

백가신의 느닷없는 고함질에 헤벌쭉해있던 촌정은 누구를 보고 소리치는지 몰라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지옥귀신같이 두눈이 우묵한 네놈말이다.》

백가신은 윤기가 반들거리는 노가지지팽이를 들어 망쇠를 가리켰다.

《이 불칙한 놈, 네놈이 감히 부처를 섬기는 스님들에게 야료를 부려!… 어, 이런 불법무도한 놈이 어디 있나.》

백가신은 지팽이를 들어 다짜고짜로 망쇠의 잔등을 마구 짓모으기 시작했다.

《소인이 무엇을 잘못했소이까?》

사정없는 매질속에서도 망쇠는 숙어들지 않았다. 그는 까닭없는 매질에 반발심이 치받쳤다.

그러나 이 광경을 바라보는 고비는 자기가 매를 맞는것처럼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옥죄였다.

《이놈, 아직두 속이 살아서 아갈질이야!》

망쇠의 도담한 태도에 부아통이 터진 백가신은 지팽이를 쳐들어 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망쇠는 정신이 아찔하여 머리를 두손으로 움켜잡은채 모로 퍽 쓰러지고말았다. 손가락짬으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와 땅을 적시였다.

고비는 백가신의 앞이라는것도 잊어버린듯 망쇠한테로 달려갔다.

《망쇠오빠!―》

고비는 울부짖으며 쓰러진 망쇠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그리고는 치마자락을 북 찢어 피흐르는 망쇠의 머리를 싸주었다.

피를 보고야 직성이 풀린 백가신은 거드름스럽게 사인교속으로 들어갔다.

네명의 교군들이 사인교를 들고 움직이는것을 본 촌정은 망쇠의 곁에서 어물거리다가 저도 화를 당할가싶어 고비에게 망쇠를 어서 집으로 데려가라고 눈짓을 하고는 황황히 백가신이 탄 가마를 따라갔다.

호젓한 강반에 정신잃고 쓰러진 망쇠와 단둘이 남은 고비는 원망과 설음에 휩싸여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망이오빠만 자리를 뜨지 않고 여기에 있었어도 망쇠를 매맞게 놔두지 않았을것이다. 그는 망쇠가 참으로 불쌍해서 견딜수 없었다. 그는 좀전까지 망쇠에게 푸접없이 군것이 몹시 후회스러웠다. 한뉘 고생하고 업신받는 사람을 자기까지 친절하게 대해주지 못했으니 자기는 얼마나 소가지가 못된 얄미운 년인가.

뜨거운 자책의 눈물은 망쇠의 얼굴에 뚝뚝 떨어졌다.

얼마뒤 망쇠는 정신을 차렸다.

그가 눈을 뜨자 눈물이 고인 고비의 눈에는 기쁨이 피여났다. 고비는 작고 따뜻한 손으로 망쇠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오빠, 몹시 아푸?》

흐느낌섞인 고비의 살뜰한 물음에 망쇠는 고개를 저었다.

《어서 집으로 가시와요. 그러다 비가 또 오면 어쩔라우.》

고비는 걱정스럽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망쇠는 골살을 찌프리며 일어나앉았다. 잠시후 신음소리를 내며 우뚝 일어선 그는 눈앞이 어질거려 몸을 휘청거렸다. 고비는 얼른 그를 부축해주었다.

입술을 깨물고 눈앞을 쏘아보는 망쇠의 눈길은 보기조차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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