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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제1장 명학소

5


비뿌리는 밤길은 한치앞도 분간할수 없게 캄캄하였다.

이따금 지쳐버린듯 한 번개불이 벙긋 가냘픈 빛으로 마을의 오불고불한 고샅길을 비치긴 했으나 그것은 너무도 린색한 짧은 순간이였고 맥빠진 천둥소리에 뒤따르는 어둠만이 짙게 드리워있었다.

그래도 망이는 발에 익은 길이여서 덤비지 않았다.

마을을 벗어난 망이와 고비는 웃마을로 뻗은 길에 들어섰다. 넓은 공지에 나서니 비풍이 더욱 세차게 몰려왔다. 얼음처럼 차거운 비방울은 얼굴이며 목덜미며 장딴지를 때렸다.

앞서 걷던 고비가 걸음을 주춤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 집에서 벌써 자면 어쩌누?》

걱정때문인지 추위때문인지 고비의 음성은 약간 떨렸다.

망이도 걸음발이 좀 떠졌다. 공연한 객기를 부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잡았다.

사실 낯선 집을 밤중에 찾아간다는것은 동기는 어떻든 실례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모름지기 다른 때 같았으면 망이는 발길을 돌리고말았을것이다. 성질이 고지식한 그는 도리에 어긋나는 처사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망이는 밤길을 내처 걸었다. 고집이 아니였다. 그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을님이한테 마음이 쏠리고있었다.

망이와 고비는 자기네 부락에서 나지막한 고개 하나를 넘어 초간히 떨어져있는 웃마을어귀에 들어섰다. 을님이네 집은 제일 막바지 산탁에 있다니 상기도 한참 골목길을 누벼야 했다.

사람사는 동네건만 움막집들에선 희미한 불빛조차 새여나오지 않았다. 어느 집에선가 낑낑거리는 강아지의 흐느낌소리가 울릴뿐 지겨운 장마비와 어둠과 추위에 묻힌 부락에는 마치 무덤터와 같은 괴괴하고 으스산한 적막이 서려있었다.

아래마을과 다름없이 우불구불한 골목길을 빠져 언덕바지에 올라서니 비발이 드리운 저만치 앞에 희미한 불빛이 어른거렸다.

《저 집이 아니냐?》

망이가 마을의 유일한 불빛을 가리키며 물었다.

《예.… 다행이네.》

불빛을 보고 고비도 기쁜듯 대답끝에 안도의 숨을 호 내쉬였다.

언덕길은 여간 미끄럽지 않았다. 고비가 비칠거리는 망이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언틀먼틀하긴 했어도 꽤 짚고올라갈만 한 돌계단이 나졌다.

번개불이 벙긋거릴 때마다 금시 쓰러질듯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낡고 초라한 초가집이 볼꼴없는 모양을 드러내군 하였다.

락수물소리가 주룩주룩하는 뜨락에 서서 잠간 숨을 돌린 고비가 조심스럽게 주인을 찾았다.

고비의 음성이 낮아서인지 아니면 비소리에 잦아버려서인지 집안에서는 응대가 없었다. 쿨럭거리는 사내의 기침소리가 밖에서도 들리건만…

《을님언니 계시와요?》

고비는 좀 큰소리로 재차 불렀다.

그제야 부엌문이 문귀가 잘 맞지 않는지 몇번 덜컥거리던 끝에 열렸다.

《뉘시우?》

중년의 체소한 녀인이 문을 반쯤 열고 밖을 주시했다. 불빛을 등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저… 나예요. 아래마을 고비와요.》

고비는 열린 문쪽으로 다가섰다.

《고비?…》

놀란 소리로 되뇌이던 녀인은 덤비며 밖으로 뛰여나와 고비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 밤중에 웬 일이냐? 어서…》

《저…》

고비가 머밋거리자 녀인은 다짜고짜로 고비의 잔등을 떠밀었다.

《저, 울 오빠두…》

《응?》

녀인은 어리둥절한 모양이였다.

망이는 그냥 서있기가 멋적어서 가벼운 기침소리를 냈다.

《아니, 오라버니까지… 주책머리두 없지. 이 비속에 그냥 세워두다니…》

녀인은 고비를 나무람하는 소린지 자신을 탓하는 소린지 모를 말을 웅얼거리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밤중에 안됐소이다.》

망이의 인사말에 을님이 어머니는 더욱 당황해했다.

《어서 방으로 들어갑시오.》

망이와 고비는 막상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몸주제가 남보기가 사나와 망설였다. 비록 도롱이는 걸쳤어도 온몸이 후줄근히 젖은데다 맨발로 진창속을 걸어오다보니 정갱이까지 흙탕투성이였다.

《얘 을님아, 거 대야에 물 좀 떠오너라.》

을님이 어머니가 집안에 대고 소리치기바쁘게 부엌문이 열리며 대야를 든 을님이가 고개를 수그리고 나왔다.

망이가 처마밑 토방에 걸터앉아 발을 씻고나자 이번에도 고개를 외로 돌린 을님이가 수건을 내밀었다.

망이도 외면한채 수건을 받았다. 웬일인지 마주보게 되지 않았다.

망이가 방에 들어서니 이불을 덮고 누워있던 강가에서 보았던 병자인 중늙은이가 웃몸을 일으켰다.

《그냥 누워계시오.》

망이는 웃목에 앉으며 인사했다.

《인사가 늦었소이다. 내 을님이 애비 오치연이외다.》

오치연은 좀 갈릴듯 해진 탁한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하고나서 망이의 이름을 물었다.

《망이라고 하외다.》

《선성은?…》

《하치상놈에게 웬 성이 있겠소.》

오치연은 추연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병약한 그는 늙고 파리하긴 했어도 용모가 단정했다.

《밤길에 오죽 욕보셨겠수? 이리루 내리앉으시오.》

을님이 어머니가 망이에게 수선스럽게 방아래목을 권하자 오치연이도 부엌에 있는 을님에게 군불을 좀 때라고 일렀다. 뜻밖에 반가운 손님을 맞이한 집들에서 흔히 감촉하게 되는 일부러스러움이 없지 않았지만 생소한 고장에서 인정에 주려사는 이집 사람들의 외로움이 속속들이 느껴져 망이도 가슴이 별스레 뜨끔해졌다.

망이는 고개를 돌려 등잔불이 비친 방안을 슬며시 살펴보았다. 남이 살다가 버린 빈집을 대충 거두고 거접한듯 방안은 여간 어설프지 않았다. 뙤창에는 섬거적을 드리우고 흙벽은 수수산자가 군데군데 드러나보이는데 무슨 걸레같은것으로 틀어막아놓았다. 그리고 갈살을 깔아놓은 방바닥에는 천정에서 떨어지는 비물을 받느라고 함지며 바가지가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가산이라고는 구석쪽에 보따리 몇개가 보일뿐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거칠것없이 반반하였다.

말없이 망이의 얼굴을 찬찬히 여겨보던 오치연은 좀 작을사한 눈이 커지면서 랑패스러운 표정을 띄웠다.

《허, 난 부락의 행수라기에 내 나이는 되신줄 알았더니 아직 젊은분이시구려. 그래 처자는 계시오?》

《없소이다.》

《없다니? 그럼…》

오치연의 작을사한 눈이 더욱 커졌다.

《허허…》

망이는 초면의 사람들에게 처자식이 죽었다는 소리를 하기 거북스러워 그저 가볍게 웃기만 했다. 오치연이도 더 따지고들려 하지 않았다.

나이는 비록 젊어도 호걸스러운 웃음소리며 진중한 몸가짐새, 번쩍거리는 눈빛에서 범상찮은 기풍이 풍기는 망이가 어느 모로 보던지 거물스럽게 느껴져 오치연은 은연중 고개를 끄덕거렸다.

망이의 엄한 눈빛이며 과묵한 성미에 주눅이 든 을님이 어머니가 바재이던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어려운 걸음을 해주어서 고마운 말씀 이루 여쭐바 없소이다. 저이 몸만 상하지 않았어두 먼저 찾아가뵐텐데… 우린 정말 고비오라버닐 은인으루 생각하오이다. 그리구 저애가(녀인은 부엌에서 불을 지피며 고비와 오손오손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을님이를 눈짓했다.) 약물을 길러 장마비속에 강을 건너다니며 번마다 행수의 신세를 진다고 하더구먼이요.》

을님이 어머니의 눈매에는 따뜻한 감사의 정이 흘렀다.

《별루…》

망이는 그의 치사에 게면쩍게 응대했다. 하면서도 그는 이런 치사나 하려고 자기를 부르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벽에 기대앉은 오치연을 슬며시 건너다보았다.

그런데 오치연은 우울한 기색으로 입을 다물고있었고 이번에도 을님이 어머니가 말을 가로맡아나섰다. 내주장이 센 집안같지 않으나 주인이 병자고보니 자연 안사람이 집안일을 주관하게 된 모양이였다.

《초면에 구차스런 소리를 해서 안됐소만 행수께서 우릴 좀 도와줍시사고…》

망이는 을님이 어머니를 묻는듯 한 눈매로 쳐다보았다.

체소한 녀인은 면구스러워 눈길을 떨어뜨리며 《후유―》 하고 탄식같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 소리는 생생한 풀잎을 시들어버리게 하는 마가을의 서리처럼 방안의 분위기를 대번에 침울하게 만들었다. 부엌바닥에서 도란거리던 처녀들도 입을 다물었다.

을님이 어머니는 한숨을 쉬고나서 말을 이었다.

《묵은가난보다 햇가난이 더 어렵다구 여기까지 오고보니 우린 정말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먼이요.》

그는 금시 울어버릴것처럼 얼굴이 이그러졌다.

《본시 어디서 살으셨게요?》

그가 측은해진 망이는 위안조로 물었다.

《례산현서 살았지유.》

녀인은 믿음직스럽고 인정있어보이는 망이에게 마음속의 설음을 털어놓았다.

《그곳서 대대루 약점을 꾸리고 살았지요. 저이가 의술이 고명해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보니 그래도 조반석죽은 떨구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만 집안이 풍지박산이 되지 않았겠나요. 우리 을님이를 언제 봤던지 현령이 저애를 제 첩으로 달라는게로구려.…》

《어머니!…》

을님이가 부엌에서 낮은 소리로 어머니의 말을 밀막았다.

《뭐라느냐. 속상한 일을 가슴속에 꿍져두고있으면 팔자가 펴인다던.》

녀인은 딸한테 면박을 주고나서 다시 망이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 량반은 우리 상민의 집안에 큰 선심이나 쓰는듯이 장히 거드름스럽게 굴지 않겠나요. 매파를 보내고 비단필따위를 가져오고… 우린 애초에 마음도 없던 혼사라 저애가 아직 미거하다는 말로 좋게 물리쳤지유.

아무리 짝이 기우는 혼사일지언정 외동딸로 애지중지 키운 딸애를 그런 개가죽같은 량반의 첩으룬 주고싶지 않더구먼이요. 우리 저애도 그 량반의 낯짝만 생각해두 구역질이 난다구 진저리를 쳤지유. 소문에 들으니 그 량반은 포악무도한 제 애비를 닮아 갖은 몹쓸짓을 다하는데 첩이라구 끌어갔다가 며칠밤을 채우지않구 내쫓은 시악씨만두 수두룩하다지 않나요.

그러니 말만 들어도 소름끼치는 그런 량반에게 어떻게 저애를 맡겨버리겠나요. 이구실저구실로 세월을 끌며 버텼으나 찰거마리같이 물러서야지요. 포달스러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생각같아서는 어디 다른데로 훌 시집보내버렸으면 좋으련만 현령의 서슬이 무서워 통혼해오는 집도 없더구먼이요.

그러다나니 저애가 스물을 넘겼지라오. 가시나나이로 스물을 넘겼으니 그게 어디우. 저애를 갓 낳았을 때 판수한테 사주를 뵈니 팔자가 셀게라구 하더니만 팔자구실을 할려고 그러는지… 하여튼 현령은 우리 애가 끝끝내 제 말을 듣지 않으니 어느날 밤에 불한당을 몇놈 보내여 자루속에 묶어갈려구 접어들지 않겠나요. 기급한 저애는 그만 우물에 뛰여들었다우. 원 세상에…》

부엌에서 을님의 숨죽인 흐느낌소리가 울렸다. 을님이 어머니는 또다시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 소리에 오치연이가 버럭 역증을 내였다.

《한숨을 좀 그만 쉬지 못하겠소? 가뜩이나 답답한 판에…》

녀인의 한숨소리에는 확실히 사람들의 맥을 뽑는 컴컴한 그 무엇이 있었다.

《한숨도 마음대로 못쉬게 하니 기막혀서… 후유―》

녀인은 남편이 그렇게도 듣기 싫어하는 한숨소리를 또 냈다. 그것은 자포자기에 빠진 사람의 어쩔수 없는 탄식이였다. 하지만 그의 남편인 오치연은 병약할뿐 결코 심약한 사람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무엇을 찾아 헤매는듯 한 그의 눈빛에 나타나있었다. 약간 쪼프리고 한곳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고뇌와 번민의 자취가 어려있는 그의 눈에서 가끔 불꽃같은것이 번뜩이군 하였다.

망이는 녀인의 이야기에도, 그 한숨소리에도 가슴이 저려올라 고개를 수굿하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을님이 어머니는 좀전과 달리 문득 분기가 치미는 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저이도 하 억울해서 저러는갑시오. 글쎄 그 량반이 짐승같은 욕심을 채울수 없게 되니 이번엔 관장의 권세루 우릴 음해하지 않겠나요. 몇해전에 제 애비가 풍비증으루 죽었는데 그걸 글쎄 저이가 약을 잘못 지어주어 죽었다는게로구먼이요. 트집을 걸어도 류만부동이지 이런 생사람잡는 수작이야 또 어데 있겠나요. 저이가 의술이 고명하다는건 온 고을이 다 아는배요. 더구나 저이 성미가 부처같이 용하다는것은 하늘이 내려다보는뎁시오. 참한 사람이 뺨을 맞는다구 사람이 지내 용해빠져두 살아가기 어려운거예요. 아 글쎄 죄없는 저이를 옥에 가두고 당장 물고를 내겠다고 야단독장을 부리더구먼이요. 민심이 두려웠던지 후환이 무서웠던지 차마 인명은 해치지 못하구 곤장을 때려 내치긴 했지만서두…

그리군 글쎄 우리 을님이는 며칠안으루 수청들이지 않으면 말하기두 끔찍스럽소만 저이를 끝내 살인죄인으루 참형에 처하고 우리 모녀는 관비로 끌어가겠다지 않나요. 한미한 집안이라 어데 하소할데도 없어 우린 가슴을 쥐여뜯다못해 앉아죽느니 뛰다 죽자고 몰래 성안을 빠져나왔지라오. 집이며 가산을 깔축없이 버리구… 하지만 매맞은 어혈루 제대루 운신도 못하는 저이를 데리고 여드레 팔십리걸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천기마저 심술궂게 굴어 장마통에 더 갈수가 있어야지요. 하긴 뭐 갈데두 없지요만… 그래 할수없이 이 빈집에 거접하게 됐으나 장차 어찌했으면 좋을지 속수무책이구먼요.》

을님이 어머니는 안존한 몸가짐새를 허물어뜨리며 눈굽에 손을 가져갔다.

오치연이가 마른기침을 몇번 깇었다. 화증머리가 난듯이 언짢은 기침이였다.

《우리 마누라쟁이의 사설이 워낙 수다스러워서, 허나 과히 나무라지 마시오. 너무도 된 곤경을 겪다보니 머리가 다 세여졌구려. … 그건 그렇구…》 오치연은 눈길을 내리뜨며 기운없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자 마누라도 긴 말을 했지만 우린 숨어살아야 하는 처지라 어떻게 좀 이 부락에 몸을 붙이자는 생각이외다. 여긴 천민부락이라니 관가의 눈길두 타곳보담 덜 미칠것 같기두 하고… 그래 두루 생각던 끝에 행수의 도움을 받을려구 작정했소이다.》

망이는 신중한 태도로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 집의 가긍한 정상이 가슴깊이 안겨와 그도 무거운 심중에서 헤여날길 없었다.

그는 가슴속에서 뜨겁게 고패치는 을님에 대한 류다른 동정과 련민의 감정을 다시금 느끼였다. 그것은 오늘낮에 강가에서 느끼던, 불쌍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매양 느끼군 하던 그런 범상한 동정의 감정이 결코 아니였다. 말을 듣고보니 지조가 굳은 을님이의 인품이 더 돋보였다. 연약한 아녀자의 몸으로 그 서슬푸른 현령의 강박에 맞서 절개를 지켜 싸우려니 그동안의 고심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망이는 을님이며 그의 부모들을 도와주고싶었다. 기왕에도 망이는 불행에 빠진 외롭고 약한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싶은 본능적인 충동을 느끼군 했지만 을님이네를 위해주고싶은 충동은 여느때와 달리 강렬한것이였다. 하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당장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촌정에게 사정을 여쭈어 그가 을님이네를 눈감아주도록 하는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런 차후에 케를 보아 무슨 방책을 취해야겠다고 작정했다. 촌정은 가산은 좀 있어도 워낙 천민이다보니 마음이 모질지도 못했지만 더우기 망이의 말이라면 거의나 들어주는 편이였다. 그는 마을의 인심이 망이에 의해 좌우된다는것을 알고있는 늙은이였다.

얼마후 고개를 쳐든 망이는 나직하나 무게있는 소리로 말했다.

《촌정에게 사정을 말씀드려보겠소이다. 사람 살 곳은 골골마다 있다구 너무 락심들 하지 마시우.》

망이를 주시하던 오치연과 그 안해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우린 그저 행수만 믿겠소이다. 먼저날 강가에서 관군놈들한테서 우릴 구원해준 은혜만 해도 산같은데…》

오치연은 감사에 겨워 거듭 치하를 했다.

《그런게 아니외다. 실은 그날 웬 젊은 량반이 관군들을 쫓아버렸소이다.》

망이의 말에 잠시 의아해있던 오치연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날 말을 타고왔던?…》

망이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럴리가 있소?…》

오치연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기색이였다.

《유각복두를 쓰고 허리에 은어를 찬것으로 보아 장군이나 중랑장벼슬을 하는 한다하는 량반이던데 그런 량반이 우릴 살려주다니… 아무튼 모를 일이군.》

《높은 량반들은 더러 선심도 쓰는지 모르지요. 그건 그렇구…》

다시 입을 연 망이는 부엌쪽에 잠간 눈길을 주고나서 뒤말을 우물거렸다. 을님이를 어떻게 부를지 몰라 망설이였다.

《…래일은 물을 길으러 보내지 마시오. 장마통에 배를 띄울것 같지 못해놔서…》

《글쎄 저애가 공연한 역사질을 하지 않소. 내 병에 그깟 약물이 무슨 효험이 있겠다구.…》

오치연이 하는 말이였다.

이튿날 아침 망이는 고비더러 부엌의 물독을 깨끗이 가셔내라고 일렀다. 그는 아홉말들이 큰 물독을 지게우에 올려놓고 유성온천으로 길을 떠났다. 장마통에 쓸 약물을 자기가 한꺼번에 길어다줄 심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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