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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1장 명학소

4


누리나의 남편 어금바우는 명학소를 관할하고있는 공주상호장 백가신의 가노였다. 백가신은 자기 집 종인 어금바우를 명학소앞을 흐르는 버드내의 진척(사공)으로 내보냈다.

유성촌에서 회덕현쪽으로 가자고 해도 이 버드내를 건너야 했고 반대로 회덕현에서 공주쪽으로 가자고 해도 역시 이 강을 건느지 않으면 안되였다. 따라서 자연히 배를 타고 버드내를 건느는 길손들이 많았는데 백가신은 이 길손들한테서 배삯전을 거둬들이면 적지 않은 돈냥을 손에 넣을수 있으리라 타산했던것이다.

어금바우가 명학소의 진척이 된 이듬해에 천민의 딸인 누리나는 그와 살림을 시작했다.

그 시절의 누리나네는 한끼 죽물도 먹기 힘든 어려운 살림을 부지하면서도 가냘픈 기쁨이나마 맛볼수 있었다. 그들에게 걱정거리는 큰 애가 사족이 변변치 못한것이였다. 젖먹이때 되게 앓고난 첫째는 자라면서 바른팔이 가드라들고 다리를 절었다. 다행히 둘째로 태여난 망이는 튼튼했다.

그런데 망이가 네살잡히던 해 겨울에 공주상호장 백가신은 어금바우를 도로 제 집으로 끌어갔다. 자기가 기대했던것만큼 돈을 잡을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대바르고 인정있는 어금바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배값을 받지 않고 강을 건늬여주었던것이다.

어금바우는 어떻게 해서든 주인한테 잘 말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누리나는 아이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아글타글 풀뿌리를 캐고 도토리를 줏느라 손톱발톱이 다 모지라지는 고생속에서도 남편이 돌아올 날만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어금바우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말았다. 백가신의 집에서 기와를 손질하느라고 지붕에 올라가 일하다 떨어져 죽었다는것이였다.

봄에 그 기별을 받았을 때 누리나도 하마트면 남편의 뒤를 따를번 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 금시 눈앞이 캄캄해져 기절해 넘어진 그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되찾았다. 아비없는 애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자기는 죽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잉히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워낙 기운도 성미도 드센 그는 장정들 못지 않게 일을 해제꼈다. 하지만 무정한 세월은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한재나 수재로 늘 시달림을 당했지만 그해 신미년(1151년)의 재변은 례년에 달리 우심했다.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가까스로 보리고개를 넘기니 지옥같은 장마가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입에 풀칠도 못하고 쓰러져있는 자식들을 볼 때마다 누리나는 눈에서 피가 흐르는것 같았다.

할수만 있다면 제 살점이라도 베여먹이고싶었다. 그런데 장마비가 뿌리는 어느날 밤에 갑자기 우지직하며 물먹은 바람벽이 방안으로 무너지면서 그들을 콱 덮쳐눌렀다.

바람벽에 깔리웠던 누리나는 흙덩어리며 수수산자를 헤집고 웃몸을 일으킨 후 부랴부랴 젖은 흙더미속에서 불에 덴것처럼 울어대는 아이들을 끄집어냈다.

한지나 다름없이 한쪽벽이 휑해진 방안으로 비바람과 함께 황토물이 그대로 몰려들었다. 눈우에 서리친다고 거듭되는 재변에 누리나는 억이 막혀 눈물도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흙더미속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윽하여 정신을 수습한 누리나는 애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너진 집안에, 이제는 집이라고도 할수, 없는 물이 고여 출렁이는 움막에 그대로 있을수 없었다.

《얘들아, 이리 온.》

그의 목소리는 섬찍할 정도로 낮고 서늘했다.

아이들은 울면서 어머니한테로 물을 저벅거리며 기여왔다.

누리나는 아래도리를 벗은 망이를 누데기에 싸업고 몸을 일으켰다. 눈앞이 어질거리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무너진 바람벽으로 해서 가까스로 밖에 나서니 물에 잠긴 사위는 캄캄한데 얼음같은 찬비와 찬바람이 일시에 온몸을 엄습하였다. 무턱대고 밖으로 나오긴 했으나 갈 곳을 몰라 잠시 어둠속을 두리번거리던 누리나는 다시금 억이 꽉 막혀버렸다. 갈데도 없고 오란데도 없었다. 이 광막한 천지간에는 그들의 굶주림에 허덕이는 창자를 채워줄 한끼의 밥이나 추위에 떠는 헐벗은 몸을 녹여줄 안식처가 그 어데도 없었다.

허탈감에 잠겨 망연히 서있던 누리나의 눈굽에서, 실성한듯 류다른 광택으로 번득거리는 그의 눈에서 비장한 그 무엇이 번뜩였다. 정녕 갈 곳이 아무데도 없는 사람들에게 갈 곳이 하나 있었다.

(죽자, 이렇게 살아 뭣하랴!)

속으로 부르짖는 누리나의 눈앞에는 물결 거센 버드내가 떠올랐다. 사람은 한생 속아 살아간다고 하지만 속는다는것도 아직 래일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을 때 하는 말이다. 래일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생에 대한 그 어떤 애착도 없을 때, 아니 산다는 그 자체가 끝없는 고통으로 될 때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영원한 안식의 길을 택하게 되는지 모른다.

누리나는 일곱살난 병신자식을 앞세우고 걸음을 내짚었다. 걸음도 자기 걸음같지 않게 비틀거렸다. 찬비가 옷속으로 스며들건만 그는 추위도 느끼지 못하였다.

애들도 어머니의 거동에서 이상한 기미를 눈치챘는지 울음을 그쳤다. 등에 업힌 네살난 망이는 어머니의 잔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매, 추워.》

앞장서 잘룩거리며 걷던 큰것이 걸음을 늦추었다.

어머니가 대척하지 않으니 그애는 다시 바지괴춤에 성한 손을 찌른채 옹송그리고 걸었다. 가드라든 병신팔을 떨면서.…

《어매, 어디 가?》

잠시후에 그애는 애처로운 소리로 다시 물었다.

《응… 저기.》

누리나의 목소리도 떨렸다.

《저기, 어디?》

《아배 있는데… 어서 가자.》

누리나의 음성은 자기 목소리같지 않았다. 그는 아들애의 걸음을 재촉했다. 굶어 기력이 없는 그애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누리나는 한손으로 등에 업은 애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큰 애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비풍이 휘몰아치는 버들방천에 올라서니 검누른 물결이 금시 그들을 삼켜버릴듯이 용을 쓰며 흘렀다.

《무서워, 어매!》

큰애가 겁질린 소리로 부르짖으며 어머니의 허리를 부둥켜안았다.

누리나는 등에 업은 망이를 가슴앞으로 돌려안으며 눈을 감았다.

《천지신령님, 이 불쌍한것들을 제발 보살펴주옵시오. 저승에서나마 배불리 먹게 해주옵시오.》

누리나는 꽉 잠긴 입을 열어 마감으로 기원의 소리를 웅얼거렸다.

어머니의 의도를 알아차린 큰애가 공포에 질려 애원하였다.

《우릴 죽이지 마. 어매! 밥달란 소릴 안할게 죽이지 마!…》

눈을 꽉 감은 누리나는 입술을 피터지게 깨물며 큰아들을 팔굽에 껴안았다. 이미 넋이 허공중에 떠버린 그는 작은아들도 품에 더욱 꽉 붙안으며 강물속으로 풍덩 몸을 던졌다. 선뜩한 찬 느낌, 모진 마음과는 달리 생의 본능적인 충동으로 허우적거렸고 다음에는 모든것이 꿈속처럼 평온해졌다.…

그때 망이네 모자를 뒤따라 강가로 나왔던 망쇠의 아버지 서눌이 아니였다면 그들은 영영 이 세상과 하직하고말았을것이다.

누리나와 그때까지도 그가 품속에 껴안고있던 망이를 물녘에 건져놓은 서눌은 우들우들 떨면서 질책어린 소리로 물었다.

《왜 죽으려고 하우?》

서눌의 말소리에 얼없이 앉아있던 누리나는 펀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소스라쳐 놀라며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아이구, 첫째야!―》

누리나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강물속으로 허둥지둥 뛰여들었다. 실성한것 같은 그를 한쪽다리를 상한 서눌이 절뚝거리며 달려가서 붙잡았다.

《이걸 놓우. 첫째가, 우리 첫째가 저 물속에…》

《뭐유?!… 그럼?…》

또 한애가 물속에 있다는것을 알아차린 서눌은 흠칠 놀라더니 재차 강물속에 뛰여들었다. 그러나 종시 첫째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첫째야!―》

머리가 풀어헤쳐진 누리나는 처절한 통곡을 터뜨리며 비바람치는 강변을 오르내렸다. 결국 자기는 살아났고 애꿎은 아들만 하나 죽이지 않았는가. 그는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내 손으로 아들을 죽이다니?!… 아들을 죽인 년이 살아남아선 뭘해!…)

서눌이 언제까지나 곁에 지켜서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정녕 다시 물속에 빠지고말았을것이다.

이날밤 비통한 누리나의 울음소리가 강녘에서 장밤 울렸다. 그는 세상을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고 자신을 저주하였다.

누리나는 어찌 생각하면 그때 죽지 못한것이 한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망이만이라도 살려놓은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무슨 일에서든 일찍 미립이 튼 망이는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헤아린다고 하여 소시적엔 《백이》라는 아명으로 불리웠고 나이들어서는 《금비》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곧잘 도와주는 망이는 마을에서 가물에 약비와 같은 존재로 받들리웠다. 누리나는 의젓하게 자라나는 아들에게서 기쁨을 느끼며 온갖 고통과 슬픔을 씹어삼켰다.

그러나 모자간에 단출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집안은 외롭고 적적할 때가 많았다. 아마도 그래서 8년전의 어느 여름날에 망이가 열에 떠서 헛소리를 치는 여위고 람루한 어린 계집애를 업고왔을 때 친딸처럼 성큼 안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애가 바로 고비였다.

한여름인데도 덜덜 떠는 불덩이같은 고비를 아들의 잔등에서 받아놓으며 누리나는 혀를 찼다.

《이애가 명을 건질것 같지 않구나.》

《살려야지요.》

열에 떠서 쌕쌕거리는 어린 고비를 지켜보는 망이의 눈에는 련민의 정이 가득 실려있었다.

그날부터 망이는 고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잉어피를 구해 먹인다, 초약을 끓인다 하며 입을 꾹 다물고 돌아치는것이 흡사 고비의 생사에 자기의 명운이 달려있기라도 한듯싶었다. 무슨 일이든 한번 달라붙으면 끝장을 볼 때까지 직심스러운 망이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생판 남인데도 그애의 인명을 그토록 중하게 여기는 아들의 소행에 누리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망이가 어쩌면 성미까지 제 아버지를 빼물게 닮았을가고 혀를 찼다. 인정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웅심깊던 어금바우는 남한테 자기 살점이라도 떼여줄 사람이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도 하겠지만 망이는 결코 제 아버지를 그대로 닮지만은 않았다. 그때 겨우 코밑에 보시시한 수염터가 자리잡기 시작한 망이는 모든것이 어금바우보다 더 대틀이였다. 하긴 푸른 물감도 쪽풀에서 나오지만 쪽풀보다 더 푸르지 않는가.

아무튼 지성이면 돌우에도 꽃을 피운다고 망이와 누리나의 극진한 정성은 염라국에 한발을 들여놓았던 고비를 살려냈다. 그러나 모진 목숨은 부지했지만 차라리 저 세상에 가는것이 나을번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비의 몰골은 처참했다. 가슴뼈가 아롱아롱하고 두다리는 새다리같은데 겁에 질린 우묵한 두눈우의 머리칼은 녀승처럼 훌렁 벗겨졌다. 게다가 눈섭우 이마에는 마마자국까지 얼금솜솜하게 나졌다.

누리나는 그애가 조갈이 나 까슬까슬 마른 입술을 벌려 말할수 있게 됐을 때 부모를 찾아줄 심산에서 어디서 살댔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직은 재롱밖에 모를줄 알았던 어린것한테서 너무도 일찍 당한 가슴저미는 사연을 듣게 될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고비는 명학소에서 15리가량 상거해있는 이웃의 《깨끼부락》인 촌개소에서 살던 천민의 딸이였다.

풀과 나무껍질로 근근히 끼니를 에워가던 그해의 어느 봄날, 고비는 동생들이 뜯어온 나물로 푸레죽을 쑤었다고 했다.

해지기 전부터 조르는 동생들에게 먼저 한그릇씩 먹인 후 밭에서 별을 이고 돌아온 부모에게 제 그릇의것마저 다 덜어준 고비는 가마밑굽에 붙은것을 긁어먹었다. 어린 자식들을 배곯리는것이 너무도 불쌍하고 가슴아파 부모는 딸이 쑨 풀죽을 눈물이 그렁해서 먹더라는것이였다. 그런데 그 푸레죽으로 하여 참혹한 일이 생길줄은 꿈에도 몰랐다.

온 가족은 밤새 심한 배앓이로 모지름을 썼다. 동생들이 뜯은 나물에 독초가 섞인것을 아홉살밖에 나지 않던 어린 고비가 미처 몰랐던것이다.

이튿날 새벽 닭울이때에 두 동생이 흰눈자위를 까뒤집으며 숨기가 끊어지더니 이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마저 싸늘하게 식어졌다. 저녁을 굶다싶이 한 고비만은 목숨을 건질수 있었다.

소리쳐 부르고 울어도 다시는 대답없는 혈육을 한날한시에 다 잃어버린 고비는 홀지에 꼭지 떨어진 애오이같은 처지가 되고말았다.

혈육들을 따라 죽고싶어도 아직 죽을줄조차 모르던 어린 고비는 그때부터 헌 쪽박을 들고 이집저집 문전을 두드리는 가긍한 신세가 되였다. 외로움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이곳저곳으로 방황하던 끝에 명학소에 이른 고비는 그만 몹쓸 역병에 걸렸다. 기갈에 견디다못해 앓는 몸으로 물을 찾아 버드내가로 기여가던 고비는 그만 방축밑에서 정신을 잃고말았던것이다.

그애의 말을 눈물을 머금고 들은 누리나는 성이 뭔가고 물었다.

고비의 겁기가 어린 눈이 올롱해졌다. 자기 병이 다 나았으니 아마도 집에서 내쫓길가싶어 두려웠던 모양이다.

고비는 머리를 흔들었다.

《성이 없니?》

누리나가 거듭 묻는 소리에 고비는 성을 못가진것이 무슨 자기 잘못이기나 한것처럼 주눅이 들어 머리를 끄덕거렸다.

누리나는 자기네처럼 성을 못가진 고비가 더욱 가엾고 측은해졌다.

하긴 자기네 조상들처럼 《상놈》중에서도 《하치상놈》인 고비의 조상들에게 성이 있을리 만무했다. 성씨란 가문의 표적이라 할진대 자손들에게 아무런 재산도, 아무런 문벌도 물려줄것이 없고 있다면 오직 치욕스러운 천민의 멍에만을 넘겨주어야 할 그들이 구태여 불우한 자기 혈통의 표징을 가지자고 할수 없었다.

게다가 심통 바르지 않은 량반들은 백성들이 저들처럼 이름우에 성을 쓰고사는것을 달가와하지도 않았다. 왕은 자기에게 잘 순종하지 않는다 하여 충청도 목천현 사람들에게 짐승성까지 달아주었다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는 우가는 소《우》자, 돈가는 돼지《돈》자, 장가는 누루《장》자를 쓰라고 강박하여 사람들은 소아무개요, 돼지아무개라고 부르게 했다는것이다.

그러니 옛적부터 나라님이나 량반들에겐 백성들이 한갖 짐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였다.

《알고보니 너도 우리처럼 성이 없는 애로구나.》

이윽하여 누리나가 동정에 잠겨 나직이 뇌였다.

그때 곁에서 어머니와 고비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망이가 자기처럼 성이 없는 고비에게 친동생같은 친밀감을 품게 되였는지 말없이 그애의 터진 발바닥을 손뽐으로 재여보고는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고비는 망이가 삼아주는 짚신을, 때로는 신총을 흰피나무껍질로 곱게 감싼 미투리까지 신게 되였다.

망이는 강에서 올 때면 물고기를 잡아다주었고 산에서 올 때면 열매를 따다주었다. 저물녘이 되면 고비는 망이를 기다려 마당에서 서성거렸고 망이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군 했다.

《오빠…》

고비는 반가움에 겨워 나직이 소심하게 불러보고는 방안으로 달려들어가군 했다. 얼마나 인정에 주렸으면 저러랴싶어 누리나도 눈굽을 찍어냈다.

이렇게 여덟해란 세월이 지나갔다. 주접이 들었던 여윈 소녀는 싱싱한 생기가 풍기는 처녀로 자라났다.

귀엽고 아름답고 생기발랄한 그의 얼굴을 볼 때면 뭇사람들의 낯에도 은연중 웃음발이 피여났다. 처녀라는 꽃다운 시절에 이보다 더한 장점이 무엇이겠는가.…

지금도 촌개소사람들은 어엿한 처녀로 자라난 고비를 볼 때마다 놀람을 금치 못했고 자기 부락의 고비를 맡아키워준 누리나와 망이에 대해 루루이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고비에게 누리나와 망이를 친어머니나 친오랍처럼 잘 모시라고 곡진히 타이르군 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악착한 세파속에 부대끼며 세상리치에 일찍 눈을 뜨게 된 고비는 사람들의 의리나 인정을 그 무엇보다 귀중히 여길줄 아는 처녀였다.

누리나는 대바르고 의젓한 망이나 인물곱고 똑똑한 고비를 키운 남다른 자랑과 기쁨을 느끼면서도 천민으로 태여난 그들의 앞날에 대한 근심만은 어쩔수 없었다. 불우한 자기의 한생처럼 앞길이 구만리같은 그들에게 무슨 일인들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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