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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제1장 명학소

2



비수같은 번개가 하늘을 쭉 가르며 지나가자 《짱!―》 하는 아츠러운 소리에 뒤이어 《꽈르릉》 하고 천지가 무너져내리는듯 한 우뢰소리가 비발속에 잠긴 마을을 뒤흔들었다.

우우 쏴아― 바람에 몰리는 비발소리, 콸콸 골목을 메우는 물마소리… 장마비는 한대중 퍼붓기만 한다.

어제저녁엔 앞벌 등성이에 서있던 아름드리고목이 벼락을 맞아 삽시에 숯등걸로 변했는데 그밑에서 비를 긋던 길손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고들 했다.

봄내여름내 지속된 불가물이 곡식을 깡그리 태워버리더니 이제는 장마비가 마을을 휩쓸어버릴것만 같았다.

충청도땅을 적시며 흐르는 고마강(금강)의 지류인 버드내가에 자리잡은 명학소는 수백호를 헤아리는 큰 마을이였다. 동쪽으로 계속 매봉산들이 막아섰고 서쪽으로는 버드내건너 유성촌뒤에 우산, 도덕, 백운의 련봉이 병풍치듯 중중첩첩히 둘러섰는데 그 너머로 명산이라 일컫는 계룡산의 삐죽한 주봉이 허리에 구름을 두르고 솟아있었다. 마을앞을 흐르는 버드내가 갑내와 합쳐 고마강으로 흘러드는 지점까지는 기름진 벌이 꽤 넓다랗게 펼쳐졌다.

마을은 백학이 날아예는 수려한 산천이라고 어느 풍류객의 식자를 덕입어 명학소라는 이채로운 이름을 얻었지만 그 이름조차 관청의 호적에나 올랐을뿐 항간에서는 그저 《깨끼부락》이라고만 불렀다. 이를테면 머리를 깎이운 천민들의 부락이라는 말이였다.

명학소말고도 여기 공주아근에는 복수소요, 촌개소요 또 무슨 향이요, 부곡이요 하는 이런 천민부락들이 수두룩했다.

천민부락이 생긴것은 전조인 신라때부터라고 하는데 왕조가 뒤집히고 또 고려의 시조 왕건으로부터 지금 임금인 명종에 이르기까지 십여번 왕대가 바뀌였어도 나서부터 천민으로 인박혀 한뉘 천대받고 차별을 당하고 마소처럼 부림을 당해야 하는 이들의 신세는 달라질줄 몰랐다.

이 세상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해도 그를 벌하는데는 한목숨 빼앗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는데 세기와 세기를 이어 대를 물려가면서 영원한 징벌을 받아도 갚지 못할 이들의 죄는 과연 무엇이였던가.

이들의 조상들이 범한 죄란 순종을 본분으로 삼아야 하는 백성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다는것이였으니 봉건통치배들의 정복전쟁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것이며 억압과 수탈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인내와 굴종의 정신이 부족한것뿐이였다.

사람으로 태여나 사람답게 살려는 그들의 의거가 결코 죄로 될수 없을진대 그 후손들까지 억울하게 한생을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그 원통함이 만일 형체로 굳어지고 기운으로 서릴수 있다면 장마비며 천둥번개따위가 감히 범할수 없을상도 싶지만 마을은 오히려 고달픈 운명에 이미 체념해버린듯 맹위를 휘두르는 자연의 횡포앞에 묵묵히 엎드려있었다.

추녀와 추녀가 이마를 맞대고 혹은 담벽과 담벽이 서로 비집으며 총총히 들어앉은 초가마가리들의 고삭은 띠풀이영마다 잡초까지 듬성듬성 돋아나서 마을이라기보다 청명, 추석을 외롭게 겪은 무주총들의 어울림같은 마을길로 노대를 둘러멘 망이가 걸음을 다그치고있었다.

그가 진창속에 발목까지 빠지는 골목길을 벗어나자 한손에 새끼를 둘둘 감은 낫자루를 쥔 이웃의 망쇠가 절벅거리며 뛰여왔다.

그는 촌정네 집에서 가져다 먹이는 윤두소의 꼴도 벨겸 방축도 돌아볼겸 겸사겸사해서 버드내가로 나가던 길이였다.

《강으루 가시우?》

망쇠는 망이의 차림새를 훑어보며 의아쩍게 물었다. 참대갓에 도롱이를 걸치고 또 짧은 베바지를 입은것으로 보아, 더우기 노대를 멘것으로 보아 나루가로 가는 길임에 틀림없었으나 그가 이상하게 여긴 까닭은 바로 그 노대때문이였다.

이런 궂은날에 배를 띄울려나?… 망쇠는 의문을 풀어보려는 생각으로 다우쳐물었다.

《배를 띄울려우?》

망이는 고개를 끄덕거렸으나 커다란 참대갓에 가리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참대갓에서는 락수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망쇠는 턱끝에 맺히는 비물을 손으로 털어버린 후 망이와 걸음을 맞추었다.

그는 아무런 우장도 없이 긴 머리칼을 베수건속에 되는대로 밀어넣은것이 첫눈에도 무척 성급하고 결패스러워보였다. 그런 성미는 툭 삐여진 이마며 그 이마밑에 깊숙이 자리잡은, 어딘가 매눈을 련상시키는 감때사나운 눈초리에서도 느껴졌다.

그에 비하면 망이는 진중하고 온화한 편이였다. 구레나룻이 덮인 둥그런 얼굴에 총명해보이는 부드러운 눈빛, 한마디로 덕스러운 모색에 인정미가 풍기는 젊은이였다.

이처럼 얼굴모색은 판판 달랐어도 어금버금한 키며 나이, 엇비슷한 이름이며 늘 단짝으로 붙어다니는탓으로 부락에서는 그들을 형제로 여겼다. 아닌게아니라 그들은 친형제나 다름없이 자별한 사이였다.

《형님.》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망쇠가 입안으로 흘러드는 비물을 뱉아버리고나서 망이쪽에 고개를 돌렸다.

《장마비속에 웬 시럽의 아들이 강을 건느겠다고 노를 메고 나섰소?》

그는 종시 의혹이 가셔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있으니 말이지.》

락수물이 떨어지는 참대갓아래서 웅글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누구요?》

《웬 큰애기일세.》

《큰애기?… 아는 사이우?》

이것봐라! 하는 식으로 망쇠의 음성은 대뜸 긴장해졌다.

《아니.》

《그래요.…》

망쇠의 목소리는 좀 풀어졌다. 그랬어도 망쇠는 실망하지 않고 끈끈스럽게 따져물었다.

《어디 산답니까?》

《모르네.》

《모루?… 몇살이나 났습디까?》

《스물이 지난 과년한 처녈세.》

《이쁩디까?》

호기심이 동한 망쇠는 비물이 흘러드는데도 입을 다물지 못했고 눈빛마저 번뜩번뜩해졌다.

《글쎄.… 아, 이 사람, 거 실없는 소리 자꾸 묻지 말게.》

망이는 별안간 역증을 냈다.

《흥, 실없긴 누가 실없소? 생판 알지두 못하는 가시나를 찾아가는 형님이 실없지.》

퉁을 맞고 무참해진 망쇠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둘은 시무룩해서 진창만 저벅거렸다.

망쇠의 핀잔을 받고보니 망이도 낯이 뜨끈해났다. 어머니한텐 방축을 보러간다고 집을 나섰지만 실상 한 처녀때문에 버드내로 가는 길이 아닌가.

엊그제 관군들한테 쫓겨 강을 건넌 처녀와 그의 부모들의 종적을 잃고 속이 허전해있던 망이는 어제아침 방축을 돌아보려 강으로 나왔다가 뜻밖에도 동이를 안고 강가에 우두커니 서있는 그 처녀를 발견하였을 때 놀람과 함께 기쁨을 느꼈다. 처녀도 알은체를 하며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병자때문에 유성온천에 약물길러가는 모양이라고 짐작한 망이는 묻지도 않고 처녀를 건늬여주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처녀가 오늘도 강가에 나올것 같아 이렇게 나루터로 가는 길이였다.

그들이 버드내의 나루가로 나오자 비바람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다몰아치는 비풍에 강녘의 개버들숲이 금시 쓰러질듯이 몸부림쳤다. 망이는 벗겨지려는 참대갓을 한손으로 꾹 잡고 물먹은 잔디가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버들방천으로 올라섰다.

턱없이 불어난 황토물이 모든것을 삼켜버릴듯이 사품치며 흘렀다. 비발이 드리운 강물은 무수한 조약돌을 휘뿌렸을 때처럼 뽀얀 물보라가 일었다. 벌써 물속에 잠긴 집들이 있는지 나무토막이며 독같은것이 떠내려오고 허우적거리는 짐승도 가끔 보였다.

《이거 방축만 넘으면 신답이 야단인데…》

망쇠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따라 방축아래쪽 신풀이논을 바라보는 망이의 이마에는 늙은이처럼 깊은 주름살이 패웠다. 물창이 된 논배미들에서 벼들이 웃초리들만 애처롭게 휘젓고있었다.

금년에 새로 푼 논이였다. 해마다 장마가 지면 건너편 산을 돌아나오는 급한 물살이 이쪽 방축으로 곧바로 쏠리였다. 콸콸 넘쳐난 벌물은 방축아래의 버들숲을 지나 놀틀 한가운데로 꿰질러 빠지군 하여 장마통이면 강물은 두갈래로 되였다. 하지만 여느때는 바위가 넌즈러진 바닥에 잡풀만 무성했다. 그래서 버린 땅, 노는 땅이라 하여 이름도 놀틀이라고 불렀다.

망이는 수수백년 버림받던 그 놀틀을 개간하기로 작정했다. 실상 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방축만 높인다면 꽤 씀즉한 넓은 땅을 공으로 얻는셈이 아닌가. 그는 부락사람들을 휘동해서 작년부터 그것을 논으로 풀기 시작했다.

공주에 도사리고앉아 여기 명학소를 관할하고있는 상호장(지방토호의 우두머리) 백가신이도 나라법대로 3년간은 조세를 받지 않을테니 개간하라고 은근히 부추겼다. 하지만 웅뎅이를 메우고 돌들을 추어내는 일이 결코 수월치는 않았다. 억척같은 망이가 아니였다면 그 일을 성사하지도 못했을것이다.

망이는 일을 다그치기 위해 《산행계》라는 두레를 무었다. 부락사람들은 두레의 도장수격인 행수로 망이를 선출했고 도감으로 망쇠를 뽑았다.

이전부터 내려오는 관습대로 행수를 뽑을 때 주먹다짐으로 힘을 겨루었는데 장사소리를 듣는 망쇠도 망이의 힘을 당하지는 못했다. 참으로 망이는 넘쳐나는 힘이 산을 뽑을듯싶었다. 부락사람들은 힘도 장사인데다 도량이 깊고 아량이 넓은 망이가 주관하는 일이기에 놀틀을 논으로 푸는 일이 랑패가 없으리라 믿고 달라붙었다.

망이는 놀틀에서 살다싶이 했고 망쇠 또한 그의 손발처럼 뛰여다녔다. 늙은이나 젊은 남정네는 말할것 없고 녀인들까지 이 일에 죽기로 힘을 썼다.

어쨌든 모지락스럽게 일군 논에 금년봄 벼씨를 뿌렸다. 이때도 의논이 분분했다. 나라에서 농사군들은 쌀밥과 맑은 술을 먹지 말라는 법까지 내왔는데 조나 보리같은 밭곡식을 심자는것이였다. 그래도 망이는 논을 풀자고 고집했다. 논중에서도 상등논이 될 그 기름진 놀틀에 하필이면 밭곡식을 심을게 무엇인가, 설령 쌀은 우리가 먹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조나 기장을 바꿀수 있지 않는가.

이렇게 해서 벼씨를 뿌렸는데 그것이 여간 잘 자라지 않았다. 게다가 봄부터 계속된 왕가물로 밭곡식이나 마른삶이한 천봉지기 논벼들은 거의나 타죽었으나 버드내의 물을 가까이에서 댈수 있는 놀틀의 신풀이논벼만은 푸르싱싱 잘도 자랐다. 흉년을 눈앞에 내다보면서도 이 신답에 한가닥 희망을 걸수 있는것은 실로 천만다행스러운 일이였다. 그러니 장마비에 큰물이 져서 온 부락이 애오라지 명줄을 걸고있는 이 신답을 휩쓸어버리는 경우엔 무리죽음이 날 판이였다. 결국 이 신답에, 이 버들방축에 온 부락의 명줄이 달린셈이였다. 봄에 방축을 높이 쌓은 덕에 아직은 넘을 념려가 없었지만 하늘의 조화속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사이 망쇠는 소꼴로 쓸 풀을 한짐되게 베여 새끼로 묶어놓았다.

《형님, 이젠 들어갑시다. 고뿔들겠소.》

흠뻑 젖은 망쇠가 웃몸을 부르르 떨고나서 시퍼렇게 언 입술을 벌렸다.

《먼저 들어가게.》

심드렁하게 대꾸한 망이는 참대갓을 우로 밀어올리고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비풍에 그도 온몸이 후줄근히 젖었다.

《아직 누굴 기다릴려구 그러시오?… 아, 저 강물에 배를 어떻게 띄운다구…》

그랬어도 망이는 움직일념을 안했다.

망쇠는 허거픈 웃음을 띄우며 소꼴을 둘러멨다.

한번 마음먹은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대로 끝장을 보고야마는 망이의 직심스러운 성미를 잘 알고있는 그는 더 권유했댔자 소용없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어디 망두석처럼 기다려보시우.》

시큰둥해서 한마디 내던진 망쇠는 방축아래로 내려갔다.

강녘에 혼자 남은 망이는 바가지로 나루배의 밑창에 고인 비물을 퍼던지며 가끔 방축너머로 눈길을 주군 하였다.

젖은 옷을 입고 썰렁한 강기슭에 있는 망이의 온몸은 오한이 나듯이 떨렸다. 게다가 비발이 뜸해지면서 강녘은 한층 을씨년스러워졌다. 강기슭을 꽉 메우며 흐르는 물소리만 더욱 소연하게 울렸다.

다시금 방축아래를 바라보는 망이의 얼굴에는 분명 초조한 기색이 어렸다.

망쇠의 말대로 정말 오늘은 처녀가 나오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이찬 처녀치고는 내우가 심한 편이였다.

간혹 망이가 말을 걸어도 처녀는 고개를 깊이 숙일뿐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 처음엔 혹시 이 처녀가 벙어리가 아닌가고 의심까지 했었다. 그리고 처녀는 늘쌍 몸을 반쯤 돌리고있기에 얼굴도 마주보기 어려웠다. 망이도 과묵한 편이여서 별로 말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처녀와 그의 부모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지금 어디에 거처하고있는지 모를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가슴속에 커다란 근심거리를 안고있으며 또 마음씨가 착한 처녀라는것만은 느낄수 있었다. 그것은 수심이 어려있는 눈빛이나 송구스러워하는 거동에서도 감촉되였지만 특히는 어제처럼 장마비가 내리는 궂은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으로 나오는것을 보아 짐작할수 있었다.

망이는 이 낯선 처녀에게 은연중 왼심이 씌여졌다. 그것은 호기심이라기보다 동정에 가까운 련민의 감정이였다.

망이가 세번째로 눈길을 주었을 때 비로소 고대하던 처녀의 모습이 방축우에 나타났다. 처녀는 동이를 안고 방축우로 종종걸음쳐 오고있었다.

망이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는 삿대질로 나루배를 강으로 밀어낸 다음 처녀가 오는쪽을 향해 기슭을 따라 몰아갔다. 사이가 가까와지자 처녀는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움직일념을 못했다. 엄청나게 불어난 강물에 불안을 느낀듯싶었다.

처녀가 입은 베치마저고리는 홈빡 젖었고 이마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에서도 비물이 흘렀다.

무안스러움에 잠겨 아미를 깊이 숙이고선 처녀는 몸에 달라붙은 젖은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당기군 하였다.

망이는 처녀가 오르기 쉽게 나루배를 물녘에 바싹 붙여놓았다.

《오늘은 나오지 않는가 했더니…》

말은 없어도 망이의 거동을 보고 그가 비바람치는 강녘에서 자기를 기다리고있었다는것을 안 처녀는 미안스러워 어쩔바를 몰라했다.

《어서 타시우.》

망이의 재촉을 받고서야 처녀는 조심스럽게 짚신신은 발을 배전에 올려놓았다. 그는 동이를 놓은 배밑창에 옹송그리고앉았다. 비물이 들지 못하게 기름종이로 곱게 감싼 팽팽한 동이아구리는 비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마치 손북을 두드리는것처럼 다르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망이쪽에 등을 돌려댄 처녀는 두손으로 동이전을 붙잡고앉아 생각에 잠겼다. 비에 젖은 옷이 착 달라붙어 동그스름한 어깨가 그대로 드러나보였다.

망이는 자기의 어깨에 걸친 도롱이를 벗어 처녀에게 내밀었다.

《이거라두 좀 걸치시우.》

《전 일없사와요.》

처녀는 자못 당황한듯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어서.》

《…》

처녀는 비발과 강바람에 퍼렇게 언 입술을 벌렸으나 말을 잇지는 못했다.

노대를 놓고 처녀곁으로 다가선 망이는 그의 어깨에 도롱이를 씌워주었다.

처녀는 무어라 감사의 말을 할지 몰라 또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러는 처녀의 거동이 가긍하고 측은하게 보여 망이도 마음이 언짢았다. 그는 푸르죽죽하고 번들거리는 강안의 버들숲에 고개를 돌리며 노를 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거센 물결에 나루배는 몹시도 흔들거렸다.

이윽고 건너편 강안에 힘겹게 배를 댄 망이는 뭍에 훌쩍 뛰여내렸다. 처녀는 묵묵히 그를 뒤따라 내렸다.

망이가 방축의 말뚝에 배줄을 비끄러매놓고 허리를 펴자 그때까지 한자리에 서있던 처녀가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저, 이 신세를… 정말 고마와유.…》

고개를 쳐든 처녀의 눈굽에 물기가 맺혔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망이는 저도모르게 흠칠하며 고개를 돌렸다.

처녀의 눈에 눈물이 고여서만이 아니였다. 여직껏 무심하게 대해왔던 처녀의 용모에, 그 류별나게 아름다운 자색에 새삼스러운 충격을 받았기때문이였다.

갸름한 얼굴은 추위로 파르스름한 기운이 돌긴 했어도 살갗이 해맑았고 양의 눈같이 어질고 착해보이는 두눈은 더없이 아름다왔다. 코날개가 방울처럼 동그란 코며 귀여운 입이며가 그저 예쁘다는 범상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독특한 매력을 풍겼다.

좀전에 강으로 나오면서 망이는 처녀가 곱던가고 묻던 망쇠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한것은 실상 처녀의 용모에 대해서 그닥 관심을 돌리지 못했기때문이였다. 미색에 혹하지 않는 망이로서는 그럴법한 일이긴 했어도 아무튼 이제야 비로소 처녀의 아름다움을 느꼈다는것은 저로서도 새삼스럽지 않을수 없었다. 망이의 례사롭지 않은 눈길과 태도에서 부끄러움과 거북스러움을 느낀 처녀는 슬며시 동이를 들더니 고개를 숙이고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돌아올 때는 웃여울에 있다는 다리로 오겠사와요. 그러니…》

망이에게 수고를 끼치기가 미안스러워하는 말이 분명했다.

《장마철에는 다리를 거둬놓으니 곧장 여기루 오시우.》

망이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처녀는 다시금 고개숙여 인사하고는 방축우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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