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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제1장 명학소

1


어느 한해도 재난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적이 없었지만 이해 을미년(1175년)은 유난스럽게 다난다사한 해였다.

벌써 이태동안이나 끌어오는 서북농민군의 폭동으로 고려전국이 흉흉한판에 천재는 또 천재대로 온 강토에 덮씌워졌다.

봄부터 짱짱 메마르던 하늘은 여름이 다 가도록 지글지글 끓기만 했다.

강바닥이 허옇게 배를 드러내는 형편이니 우물에 목추길 물이 한모금인들 남아있을리 없었고 인적없는 산속에선 산불까지 드문히 일군 하였다.

례년에없는 불가물로 논밭은 물론 돌틈을 뚜지고 박아넣은 낟알까지 깡그리 타버렸다.

이 지독한 무더위속에서 사람이 숨쉬고 사는것이 오히려 기이하다고 해야 할 지경이였다.

백성의 도탄은 둘째치고라도 만세토록 누려야 할 부귀와 영화를 위해서라도 이 하늘의 재앙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긴 국왕 명종이 서북농민군과의 싸움으로 전전긍긍한 속에서도 손수 《도우시》를 지어 하늘에 비를 빌었다고 하니 부산한 조정형편을 가히 짐작할만도 하였다.

3성 6부(고려의 중앙통치기구)의 벼슬아치들이 직분의 구별을 잃고 모이기만 하면 비, 비 하며 하늘을 쳐다보는것이 인사인데 평소에는 빛갈도 없던 미관말직의 감후, 사력(기상관측기관인 태사국의 하급관리)들이 때를 만났다고 시중 시랑(최고기관인 중서문하성의 고위관리)들을 젖혀놓고 어전출입을 무시로 하면서 방략을 꼽아대는대로 조정에서는 명산대천을 고루 찾아 제물을 고여놓고 천신과 부처와 룡왕을 위하느라 가뜩이나 거덜이 난 국고를 기울였다.

그러나 임금님을 돕는다는 그들이 그닥 신통력이 없고 갖가지 이름으로 산야에 뿌려던진 숱한 제물들도 효험이 없었던지 무심한 하늘은 여름이 지나 가을철에 접어들도록 비 한방울 떨궈주지 않았다.

무서운 전란과도 같이 국토를 불태우는 이 참혹한 재난속에서도 한구절 풍월을 찾아 빈둥거리던 한가스런 개경의 어느 선비량반이 문득 말을 멈추고 읊었다는 시에


반년가물에 늪이 마르니

개구리울음소리 간데 없고

조정에서 금선령(부채사용의 금지령)을 내리매

송악의 빙고(얼음창고)에는 겨가루만 날리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배부른 개경량반이 시흥을 돋구어줄 청아한 개구리소리와 삼복의 더운 땀을 식혀줄 시원한 빙수를 그리워할 때 당장 먹을것이 없는 가난한 백성들은 시체가 되여 들에 깔리고 산에 널렸다. 참으로 보기 드문 대살년이였다.

하지만 그해 비는 그해에 오고야만다고 립추도 지나 처서를 눈앞에 둔 어느날 천민부락인 여기 명학소에도 드디여 비구름의 징조가 나타났다.

어데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시커먼 먹장구름이 하늘을 서서히 덮으며 밀려오더니 갑자기 미친 바람이 터졌다.

우르르―쏴― 축축한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그 무슨 앙갚음을 하려는듯 천민부락인 명학소를 휩쓸었다. 버들방천의 개버들숲이 태질하듯 몸부림치고 커다란 아지들이 부러져나갔다. 어느 집 고삭은 이영이 바람에 날렸는지 하늘로 짚검부레기가 뽀얗게 떠올랐다.

누런 먼지며 검부레기가 까맣게 떠오른 골목길로 한 처녀가 구는듯이 달려간다.

버섯갓처럼 뒤로 잔뜩 부풀어오른 베치마아래로 매출한 종아리가 나무를 쫏는 딱따구리의 부리마냥 땅바닥을 잽싸고도 세차게 굴렀다.

처녀는 버드내가까이 자리잡은 초가마가리의 사립문을 박차고 뜨락에 들어섰다. 늙수그레한 녀인이 뜨락에 꿇어앉아 하늘을 우러르며 두손바닥을 비비고있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신님, 룡왕님, 제발 비를 주옵소서. 단비를 내려줍소서.…》

처녀는 고비라고 불렀고 비를 비는 늙은 녀인은 그의 양어머니인 누리나였다. 세차게 오르내리는 볼록한 가슴우에 한손을 얹고 잠간 숨을 들인 고비는 앞으로 넘어온 칠칠한 머리채를 어깨를 흔들어 등뒤로 넘기고나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매, 오빠 못봤수?》

누리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지청구부터 앞세웠다.

《야, 이년아. 저 하늘을 못보니? 어서 꿇어앉아 비를 빌어라.》

《야참, 오빠 어데 갔수?》

고비는 발을 굴렀다.

그제야 누리나는 얼기설기 얽힌 주름살우에 불안과 기대가 어려있는 너부죽한 얼굴을 돌렸다.

《초상집에 불났느냐?… 이런 때 들렌 년처럼 뛰여다니는건 너밖에 없겠다.》

《아이 속상해.》

홱 몸을 돌린 고비는 치마바람을 일구며 다시 사립문밖으로 뛰여나갔다.

《룡왕굿터에 가봐라.》

고비의 등뒤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따랐다.

바람은 더욱 세차지고 사위는 점점 컴컴해졌다.

처녀는 달음치면서도 겁에 질린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금시 자기를 덮치려는 그 무슨 괴물같은 먹장구름에 쫓기듯 그의 흙물오른 맨발은 더 빨리 움직였다.

동구앞의 널직한 곳에 마련한 룡왕굿터에는 오늘도 숱한 부락사람들이 나와있었다.

땅에 꿇어엎드린 사람들의 가운데에는 길다란 《룡》이 광풍을 타고 방금 하늘로 날아오를듯이 대가리를 쳐들고있었다.

버들가지를 엮고 그우에 흙을 발라 만든 《룡》이건만 고비는 그앞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마다 무섭고 스산해서 몸을 오싹 떨군 하였는데 높이가 사람 키 한길이나 되고 벌린 팔로 열발이나 되게 긴 이 괴물이 지금은 별로 더 무시무시했다.

고비는 사람들을 일별했으나 모두 머리를 숙이고있어 자기 오라비 망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수 없었다.

그는 땅을 짚은 두손등에 이마를 조아리는 젊은 녀인에게 자기 오빠를 보지 못했는가고 물어보았다.

녀인은 고개를 흔들며 목소리를 죽여가며 대꾸했다.

《쉬, 굿터에서 떠들면 룡왕님이 부정탄다우.》

고비는 입을 비쭉하며 잠자코있었다. 안타까움으로 속이 바질거려도 굿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원체 담이 크기가 총각 찜쪄먹을 고비는 이런 놀음을 별로 신통치 않게 여겼다. 이깟 흙덩어리로 빚어만든 괴물이 무슨 용을 쓰겠다구. 그런데도 사람들이 참말로 룡왕이라는 이 괴물이 자기들에게 비를 주고 복을 주기라도 할것처럼 진심으로 치성을 드리는것을 보면 우습다기보다 어쩐지 괴이쩍은 느낌이 들었다.

입을 쫙 벌린 커다란 《룡》머리앞의 제단에 보리밥과 시래기국을 담은 사발들과 어물이며 과일을 담은 목기들을 벌려놓고 자칭 무당노릇하는 범잔녀로친이 푸닥거리를 하고있었다.

량인들이 사는 다른 고을이나 마을들에서는 기우제때마다 울긋불긋하게 치장한 무당들이 굿을 하지만 여기 명학소에서는 무당들을 불러들일수 없었다. 죄인취급을 당하는 천민부락이라고 하여 무당들은 발길을 돌리지 않았고 설사 그들이 온다 해도 부락에서는 굿값으로 줄 돈을 마련할수 없었기때문이다.

그래 지금도 때국이 흐르는 베치마저고리차림그대로인 범잔녀가 맨발바람에 안장다리를 재게 놀려가며 무당노릇을 하는것이였다.


룡왕님이 등천하신다

엇쇠, 가물귀신아 물러가라

인제 가면 언제 올고

불에 타서 오지 말아

춘삼월에 다시 올가

물에 빠져 오지 말아

엇쇠, 가물귀신아

썩썩 물러가라 엣퉤…


흡사 신령이 접한 무당처럼 광기어린 푸닥거리를 한 범잔녀는 앞에 놓인 물동이에서 물 한바가지를 퍼내여 한모금씩 입에 물고는 바람에 저고리가 젖혀져 불그레한 잔등을 드러내고 엎드린 사람들의 앞으로 걸어가며 푸푸 뿜었다. 그러면 머리며 잔등에 물을 맞은 사람들이 손을 비비며 룡왕을 우러러 기원했다.

《룡왕님이시여, 비를 주시옵소서.…》

비를 애타게 갈구하는 사람들의 그 공경스러운 모습에 고비는 가슴이 아릿해졌다. 하늘을 덮으며 몰려오는 비구름이 혹여 마른 우뢰나 울리고 그냥 지나쳐버릴 헛구름이나 아닐가 하는 불안과 기우로 조바심치는 그들의 멍든 가슴이 흙으로 빚어만든 룡왕의 령험에 더욱 의지케 하는것이리라.

동남쪽에서 몰려오던 매지구름장들은 서로 엉키고 뒤설레더니 어느새 버드내건너 저 멀리 계룡산마루까지 덮어버렸다. 사위는 더욱 캄캄해지고 물기를 머금은 눅눅한 바람이 모든것을 금시 어데론가 날려버릴듯이 기승차게 불었다. 마른 번개가 벙긋하고 뒤미처 먼 우뢰소리가 울려왔다.

사람들은 무릎이며 팔굽에 묻은 흙을 조심스럽게 털며 자리에서들 일어나 불안스런 기쁨이 어린 표정으로 비구름이 몰키는 하늘이며 바람에 몸부림치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갈망하던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이 항용 그렇듯이 그들은 자기들의 기쁜 심정을 서뿔리 드러냈다가 하늘의 노염이라도 살가봐 겁을 먹고있는듯싶었다.

《어머, 내 정신 봐.》

굿터로 달려온 사정을 까맣게 잊고있던 고비는 사람들속을 마구 헤집고나가며 소리쳤다.

《오빠!―》

둥그런 얼굴에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건장한 사나이가 고비를 맞았다. 그는 고비의 오라비인 망이였다.

《어서 나루터로 가요.》

《왜?》

고비에게 한팔을 잡혀 끌려가는 망이의 걸음은 소처럼 느렸다.

고비는 속상한듯 골살을 찌프렸다.

《나루터에 웬 길손들이 나타났수. 빨리 건늬여달라구 어찌 사정하는지…》

《그럼 건늬여줄게지.》

《바람이 불구 물살이 세서 원, 내 힘으로 어림있수?》

과묵한 망이는 별말없이 고비를 따라 버드내가로 나왔다.

바람세찬 강건너편에 아닌게아니라 몇사람의 길손들이 보였다.

그들이 버들방천우에 올라서자 강건너편의 사람들은 무척 애타게 기다린모양 손을 흔들며 소리들을 질러댔다.

치마폭이 펄럭이는것으로 보아 손짓하는 두사람은 녀인이 분명한데 그들곁의 또 한사람은 강변에 누워있었다.

망이는 진척(사공)노릇을 하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농사여가에 고기잡이도 하고 또 가끔 길손들도 건늬여주군 하던 나루배를 물녘으로 끌어냈다. 크지 않은 나루배는 거센 바람과 물결에 몹시도 흔들거렸다.

배가 물녘에 닿자 보따리를 인 두 녀인이 나이지숙한 사나이를 부축하여 끌고나왔다.

《고맙수.》

임을 인채로 망이에게 인사한 나이지숙한 녀인이 딸인듯싶은 곁의 젊은 녀인에게 재촉했다.

《어서 건너가자.》

옷차림이나 얼굴모색을 봐서는 밥술이나 뜨는 사람들같은데 무엇에 쫓기는 모양으로 초조와 불안으로 안절부절못하고있는것이 무척 수상쩍게 보였다.

젊은 녀인이 머리에 이였던 임을 내려놓고 병색이 짙고 운신조차 제대로 못하는 중늙은이의 겨드랑이를 부축해 일으키자 그는 《어구구―》 하는 신음소리를 질렀다. 망이는 배에서 뛰여내려 얼른 병자를 부축하여 배안에 끌어들였다.

그를 뒤따라 배에 오른 두 녀인은 머리에 이였던 보따리들을 내려놓고 병자를 거기에 눕혔다.

병자는 보따리를 베고 배밑창에 드러눕자 눈을 감았다. 이물쪽에 등을 돌려대고 앉은 젊은 녀인(등뒤로 삼단같은 머리가 칠칠한것이 처녀가 분명했다.)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나이지숙한 녀인만이 겁기어린 눈으로 금시 비가 퍼부을듯 한 하늘이며 광풍에 나무들이 뒤설레는 강변이며를 두리번거렸다.

배가 강복판에 들어섰을 때 망이는 그들의 정상이 측은하여 어디로 가는 길인가고 나이지숙한 녀인에게 한마디 물어보았다.

《저…》

녀인은 죄스러운 미소가 어린 얼굴을 쳐들었을뿐 대답하지 못했다.

망이는 이들에게 무슨 말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모양이라고 여겨져 더 묻지 않고 노만 부지런히 저었다.

그런데 이때 그들이 떠나온 강녘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놈들, 섰거라!》

그 소리를 듣자 나이지숙한 녀인과 처녀의 낯색은 금시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고 지금껏 기신없이 누워있던 중늙은이도 보따리에서 머리를 쳐들었다.

《야, 나루치(사공), 당장 배를 돌리지 못할가!》

언제 나타났는지 물가에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네댓명의 관군들이 창대를 들고서서 이쪽을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창졸간에 당하는 일이라 영문을 알길 없는 망이는 잠시 노젓던 손을 멈추고서서 강녘의 관군들과 배에 탄 사람들을 갈마보았다.

《우릴 살려줍시오. 우린 나쁜 사람들이 아니와요.》

나많은 녀인이 애원이 깃든 눈길을 쳐들고 간절히 빌었다.

망이는 녀인의 말처럼 그들이 무슨 죄를 지을 사람들같지 않은데 관군들한테 쫓기는것이 괴이쩍게 생각되였으나 어쨌든 배를 돌리면 이들의 신상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길것이 틀림없겠기에 그냥 앞으로 짓쳐몰았다.

배가 물녘에 거의 다달았을 때 망이는 저도모르게 《어?―》 하는 놀란 소리를 질렀다.

뜻밖에도 강둔덕에 또 한패의 량반행차가 지켜서있었던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말을 탔는데 창을 든 군졸곁의 으리으리하게 차려입은 젊은 량반은 첫눈에도 높은 벼슬아치란것이 알렸다.

그들을 띄여보자 배를 탄 두 녀인은 사색이 되여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날씨가 변덕스럽더니 오늘은 별스런 일만 당한다고 망이는 속으로 개탄했다.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그가 잠시 망설이자 방축우의 량반이 어서 오라고 호령질을 했다.

하는수없이 배를 물녘에 붙이자 말을 탄 젊은 량반이 하졸과 함께 방축우에서 내려왔다. 운두높은 까만 유각복두를 쓰고 자색비단공복을 입은, 허리에는 무소뿔띠에 고관의 표적인 은어와 함께 금장식을 한 칼집을 차고 까만 목화를 신은 젊은 량반의 뒤를 따라 배전으로 내려온 하졸이 배에서 먼저 내려 배줄을 쥐고 꿇어앉아있는 망이의 손에서 배줄을 빼앗아쥐더니 나머지사람들더러 배에서 빨리 내리라고 호령했다.

젊은 량반은 망이가 병자를 부축해 내리운 다음 보따리를 든 두 녀인이 기우뚱거리는 배에서 허둥지둥 뭍으로 내려서는양을 유심히 바라보고섰다. 그의 류달리 번뜩이는 눈빛이 머리채 긴 처녀의 자태에서 한동안 떨어질줄 몰랐다.

때마침 컴컴한 하늘에서 마른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소리가 울리더니 먼지와 검부레기를 말아올리며 광풍이 더 세차게 불었다.

젊은 량반이 얼굴에 덮씌여지는 먼지를 피해 고개를 숙이자 그의 하졸이 재빨리 앞에 나서며 말했다.

《로상에서 큰비를 맞을가분데 어서 배에 오르시오이다.》

이 말을 듣고 량반의 행차가 쫓기는 세사람과 하등의 관련이 없다는것을 알아차린 망이는 저으기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량반과 그의 말까지 실은 나루배가 건너편물녘에 가까와지자 망이의 가슴은 긴장과 불안으로 다시금 높뛰였다. 그때까지도 관군들이 물가에 지켜서있었던것이다.

배에 탄 량반을 본 관군놈들은 황급히 머리를 숙여 읍을 하였다.

《웬 일들이냐?》

젊은 량반은 뭍에 내려서는참으로 관군들에게 엄한 소리로 물었다.

《방금 강을 건너간 년놈들을 잡아들이라는 분부를 받사옵고…》

관군들속에서 우두머리인듯 한 허우대 큰 작자가 허리를 굽석이며 아뢰였다.

《그래 무슨 죄목이냐?》

《저…》

량반이 다궂는 말에 관군들은 대답을 못하고 짓숙인 이마너머로 눈길들만 흘깃거렸다.

《이놈들, 죄목두 없이 량민들을 잡으러 다녀?》

눈을 부라리며 을러메는 량반의 호령은 자못 위엄스러웠다.

《저, 소인들은 잡으라는 령만 받았기에…》

《시골놈들이 한다는짓이란… 당장 물러가지 못할가!》

량반의 호령에 관군놈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비실비실 뒤걸음질로 물러갔다.

창대를 끌며 줄행랑을 놓는 그들의 뒤모습을 거드름스럽게 바라보던 량반은 하졸이 끌고온 말을 타더니 배허벅을 뒤축으로 걷어찼다.

망이도 가슴이 후련하여 까닭모를 웃음을 《허허―》 웃었다.

그가 배머리를 돌려 되건너갔을 때에는 이미 세사람의 모습이 자취없이 사라진 뒤였다.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병자를 이끌고 두 녀인이 어데로 갔는지 행방조차 알길 없는 망이는 그들에 대한 걱정으로 속이 좋지 않았다.

얼음같이 찬 비방울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져내렸다.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리고 바라던 비가 드디여 오건만 이 순간 망이는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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