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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 회


제 4 장

운명의 갈림길


1


한겨울에 제강소의 로동계급은 엄동추위도 무릅쓰고 어려운 전투를 벌렸었다.

ㄱ철의 완성을 위한 중추적인 부분이라고도 할수 있는 성구장건설을 시작하여 지배인, 당비서가 앞장에 서고 온 공장이 달라붙어 건물을 짓고 시설을 꾸리며 계통을 완성했던것이다.

생산공정의 뚜렷한 변화에 따라 여태까지는 림시로 조직되였던 구단광을 빚는 부분에 직장도 하나 새로 내오고 성구직장이라고 불렀다.

원료예비처리공정이 뚜렷한 면모를 갖추고 일떠선것과 관련하여 야금행정도 이제 와선 1기로에서 진행하던 ㄱ철생산을 4기로에서 동시에 벌리게 되여 일은 더욱 활기를 띠고 방대해졌다.

시험생산에서는 의연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에서 2배이상을 확고히 담보할수 있다는 전제에 근거하여 이러한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졌던것이다.

제강소에서는 생산의 전망을 보아서 성구기 몇대를 더 제작할 필요가 생겼는데 그 일로 하여 기석이를 ㄹ기계공장에 파견했다.

생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점들이 나타났으므로 수정되고 완성된 설계도면의 요구를 관철하자면 일속을 아는 사람을 보내야 했던것이다.

출장을 떠날 때 기석은 박성국이로부터 한가지 부탁을 받았다. 가는 길에 평성에 들려서 자기 딸에게 자그마한 기념품을 전달해달라는것이였다.

박성국은 요즘 연진을 회수하여 리용할 방법을 연구하고있었다, 박성국이 그것을 연구과제로 삼은것은 진동식성구기의 경험을 리용하여 연진을 알로 빚어 로에 먹일수 있다는 착상에서였다.

새 사업에 달라붙은 때로부터 박성국이 무엇보다 마음을 쓴것은 대기온도의 극심한 변화속에서도 지속되는 생산을 보장할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였다.

생산현장의 실정에 맞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그는 동지로부터 대한에 이르는 엄동기간에 현지에서 연구실험을 계속했다.

그러노라니 설쇠러도 가지 못했으므로 딸에게 보낼 기념품을 마련했다가 인편이 생겨 부탁했던것이다.

그때 박성국은 미안한 부탁을 하게 된것을 변명이라도 하듯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로 일하기도 헐치 않소. 눈에 뜨이게 해놓는건 없으면서도 남들이 다 즐겁게 지내는 설명절도 아이와 함께 쇠지 못하고…》

강기석은 그를 위로했다.

《아버지의 기념품을 받으면 은하도 몹시 기뻐할겁니다. 저도 그렇게 힘쓰겠습니다.》

《정말이지 명절당일에는 그 애 생각에 잠이 오지 않더구만. 철없는것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 애비를 생각하는것 같아서…》

강기석은 그의 심정에 동정을 품고 이렇게 말했다.

《그건 무척 괴로운 일이긴 하지만 두려워할 일은 아닙니다. 설음은 한때이고 아이는 자라나면서 철이 들겠지요. 철이 들면서 자기 아버지가 오로지 국가적으로 제기되는 중요한 사업에 몸바쳐 일하느라고 자기를 돌보지 못했다는것을 알게 된다면 그건 아이의 일생을 두고 귀중한 추억으로, 자랑으로 될겁니다.》

박성국은 그 말에 감동되여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고맙소. 강동무, 지금 내가 하는 작은 일이 그만한 보람을 나타내겠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힘이 생기오.》

그렇게 그들은 헤여졌었다. 떠나면서 나눈 그 짤막한 대화는 강기석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박성국의 일을 어떻게든 더 도와주고싶어 마음을 써왔지만 그의 생활에 너무나도 등한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했던것이다.

하여 그는 떠나는 걸음에도 기차안에서도 자기로서 할수 있는 보탬을 이것저것 더하여가지고 평성에 도착했던것이다.

역에서 내려 눈이 얼어붙은 길을 따라 은하가 있다는 유치원으로 찾아갈 때 그는 아이에게 기념품을 전해주고 떠나는 시간까지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집형편을 두루 알아볼 작정이였다. 다음렬차는 세시간후에 지나가므로 아이와 더불어 인상깊게 지낼만 한 여유시간은 있었다.

립춘을 앞둔 절기의 겨울해가 따뜻하게 내리비치는 아침나절이였다. 유치원마당에서 교양원인듯 한 녀성을 만나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그러자 곧 반가운 손님이 되여 방으로 안내되였다.

미구하여 통통한 몸매에 얼굴이 둥그스름한 젊은 녀인이 인형처럼 곱게 차려입힌 다섯살쯤 되여보이는 처녀애를 이끌고 나타났다.

처녀애는 날씬한 몸매에 이쁘장하게 생겼는데 낯설은 아저씨를 동그랗게 쳐다보며 내미는 물건을 서름서름하게 받았다.

어머니없이 자라는 정상을 생각하니 가엾은 생각이 들었으나 쾌활하게 웃으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눈을 내려깔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던 그 애는 《아버지한테서 온 아저씨다.》 하고 웃으며 말하자 무슨 생각이 났는지 말똥말똥 쳐다보는것이였다.

기석은 교양원들에게 은하의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으며 또 지금 어떤 일을 하는가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설에 오지 못한 사정을 말하면서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은하는 먹기도 하고 놀이감을 들고 굴려보기도 하다가는 곁에 다가와서 아버지한테서 왔다는 아저씨를 빠끔히 들여다보군 했다.

교양원은 은하에 대해서는 자기들뿐아니라 애아버지의 연구실성원들도 모두 도와주기때문에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것이였다.

그럭저럭 시간이 되여 점심식사를 하고가라는 권고를 사양하면서 떠나오려는 때에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서름서름하게 대하던 모습으로 보면 전혀 그럴것 같지 않던 은하가 현관으로 따라나오면서 아버지한테로 가겠다는것이였다.

교양원이 부둥켜안자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어서 가보세요. 차시간이 늦겠는데…》

눈물범벅이 되여 기석이를 쳐다보며 울고있는 아이를 안은채 교양원은 재촉했다.

그는 현관문을 나섰으나 걸음을 뗄수 없었다. 어린것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가슴을 찢는것 같았다. 뜨거운 야금로에서 일하며 의지를 단련해온 그였으나 이 연약한 감정의 실오리를 끊어버릴수가 없었다.

《철없는것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 애비를 원망하는것 같아서…》 하던 박성국의 말이 생각나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손을 내밀었더니 은하는 달려와 안기면서 눈물과 코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그의 품에 묻었다. 기석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고있었으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것이였다.

아이를 달래여놓고 떠나겠다고 하니 교양원들도 어쩔수 없는듯 웃고말았다.

은하는 유치원 주일반에서 생활하는데 토요일이 되여 다른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집으로 돌아갈 때면 몹시도 쓸쓸해하는 모양이였다.

담당하고있는 교양원이 자기 집에 데려가도 그 집 애들의 눈치를 보며 좀처럼 명랑해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나이는 어려도 생각은 빤해요. 어린 마음에도 다른 애들과 처지를 비교하는 모양이지요.》 하고 녀인은 기특하다는듯 웃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기석은 은하를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기 어머니한테 맡기면 어떻겠느냐고 의향을 물었다.

《어머니가 잘 돌봐주실겁니다. 박성국선생은 아직도 쉽게 돌아올 형편이 못되니.》

《은하에게만 좋다면 그래도 무방하지요. 그렇지만 거기 가서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면 수고스러운대로 다시 데려오세요.》

그렇게 약속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유치원을 나섰다.

정작 떠나는 마당에서는 정든 선생님들한테서 떨어지기 아쉬워했으나 아버지한테로 가는줄로 알았던지 업히지도 않고 앞장서서 달랑달랑 걷는것이였다.

은하의 손목을 이끌고 거리중심부에 온 기석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섰다.

홀안은 썰렁했다.

아이를 생각해서 미닫이로 간을 막은 온돌방으로 들어서던 기석은 문을 여는 순간 뜻하지 않은 일에 놀라 우뚝 굳어져버렸다. 지나가다 들린 낯선 도시에서 그리도 낯익은 사람들을 만났던것이다.

최병기지배인과 혜영이가 방금 식사를 끝낸 상을 가운데 놓고 앉아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진 최병기는 기석이와 그의 곁에 서있는 어린 처녀애를 번갈아보다가 《어서 들어오우, 어서.》 하고 문가에까지 나와서 이끌었다.

만약 다른 환경이였다면 최병기가 이러한 친절을 베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강기석이를 잘못 알고있다는것을 깨닫게 된 그 합평회 이후에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자기의 뉘우침이나 호감을 나타낸적은 없었던것이다.

칭찬에 린색하고 자기의 부드러운 심정조차 거치른 말로 표현하는데 버릇된 최병기의 성미로써는 그렇게밖에 될수 없었다.

허나 지금은 자기 고장도 아닌 외지의 생활적인 환경인데다 딸까지 있었던것이다.

《어떻게 여기로 왔소? 누구네 아이요?》 강기석이 사유를 이야기하는 동안 지배인은 담배를 피우며 지그시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범상하게 말하는 짤막한 사연에도 새 야금법의 완성을 위해 마음을 쓰는 사람들의 풍모가 력력히 어리여있다.

그것은 지배인이 매일같이 받군 하는 생산실적이나 사업보고에 밝혀지지 않는 사실들이였지만 생산이나 사업을 힘있게 안받침하는 무시할수 없는 생활이였다.

《흐음- 그렇게 된 일이군.》 하고 그는 못내 감동하여 중얼거렸다.

혜영은 다리를 가드라뜨리고 비스듬히 앉은채 담담한 표정이였다.

《난 정무원에서 회의를 하고 가는 길에 과학원에 들렸다가 마침 보고자료를 가지고 올라온 이 애를 만나서 지금 점심먹으러 온 참이요.》

접대원이 들어와서 식탁을 치우며 새로 온 손님에게 무얼 요구하시느냐고 물었다.

《밥과 국이면 됩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고추를 치지 말아주십시오.》 하고 강기석이 대답했다. 나가는 접대원을 보고 지배인이 한마디 보탰다.

《솜씨를 좀 내보시우. 이래뵈두 귀중한 손님이요.》

그것은 접대원에게보다도 자기 딸더러 들으라고 하는 말인상싶었다.

이런 자리를 빌어서나마 강기석에 대한 달라진 자기 태도를 딸에게 굳이 보이고싶었던 모양이다.

혜영은 그 자리에 앉아있기가 난처한듯 일어섰다.

《아버지, 전 먼저 나가보겠어요.》

《왜, 아직 시간이 많은데 앉았다 같이 나가지.》

최병기는 못마땅해서 나무랐다.

《떠나기 전에 들려볼데도 있고…》

그것은 속이 빤한 구실에 불과했지만 최병기는 더 만류하지 않았다.

《그럼 나가있다가 강동무랑 같이 가거라.》

그것은 두시간후에 타고갈 렬차를 두고 한 말이였으나 보다 깊은 뜻이 담겨진 아버지로서의 훈계처럼 들렸다.

혜영은 대답없이 나가버렸다.

그 녀자가 나가고보니 한동안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늦은 점심때여서 들어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기석이가 은하와 식사하는 동안 최병기는 또다시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 무슨 생각에 잠겨있었다.

심신의 여유가 있는 이런 환경에서 기석이와 더불어 생활적인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지만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고있던 딸의 태도가 마음에 걸려 기분이 나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ㄱ철의 질을 제고하는 문제가 절박하다고 하면서 제강소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걱정을 하는것이였다.

최병기는 평성에서 며칠간 더 일을 보다가 가겠노라고 했다.

기석의 출장일정을 물어보던 그는 《아버지는 아직 ㄷ제철소에서 일하시지?》 하고 느닷없이 물었다.

그리고는 출장일정이 늦어지는것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이를 잘 안착시키라고 하면서 들렸던 길에 부모님들의 생활도 돌보아주고 떠나라고 일렀다.

《도면을 문건으로 발송했다니 아직 이삼일 있어야 저쪽에 가닿을거요.》

기석에게는 그 말이 못내 고마왔다. 그러지 않아도 도중에서 지체되는것을 은근히 걱정하던 참이다.

강기석이 나간 뒤에도 최병기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일에만 파묻혀 지내던 그에게는 방금전에 목격한 생활적인 정경이 새삼스러운 생각을 자아내는것이였다.

일하는 과정에 서로 알게 된 처지에서 남모르는 그의 생활까지 돌보아주고있는 청년을 생각하느라니 기업소의 책임자라고 자처하는 자기자신이 더 용렬하게 느껴졌다. 그의 아버지가 이전날 제강소에서 지배인으로 일했었다는 사실을 보아서도 그로서는 결코 등한히 대할수가 없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그를 생각해주기는커녕 푸접없이만 대했으니…

그런데도 그 청년은 괴로와하며 하소연하는 일은 조금도 없이 오로지 당의 뜻을 받들고 관철하기에만 마음을 쓰며 살고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

그야말로 당의 품속에서 자라온 미더운 젊은이지… 하고 그는 강기석에 대해 뜨겁게 생각하는것이였다.

역기다림칸에 나온 강기석은 혜영이를 찾아보았으나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기석은 기다렸다.

일부러라도 찾아가리라고 마음먹고있었던만큼 이렇게 만날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싶지 않았다.

혜영은 차시간이 림박해서야 나타났다.

차표를 사들고 나오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손을 잡고 따라다니는 은하가 철을 모르는것이 다행이였다.

혜영은 그가 자기에게로 오는 기미를 느끼고 기다림칸 현관앞에 멈추어섰다.

쪽빛같이 파란 외투며 순백의 머리수건은 선이 뚜렷한 그 녀자의 미모를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냈으나 얼굴에 화색은 없었다.

《혜영동무.》

《…》

《만나게 될 사람은 어디서든지 만나게 되는 모양이구만.》

그는 웃었으나 처녀는 눈을 다소곳이 내려깔고 발앞을 보고있을뿐이였다.

《여긴 언제 왔댔소?》

《어제 왔어요. 사업보고를 가지고…》

말소리는 차분했다.

범상한 말이라면 성실하게 대답하리라는 성의까지도 보이는상싶었다.

《그런데 왜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왔소? 우리한테서 떠나올 때 말이요.》

그도 그렇게밖에 될수 없었다는것을 알고있었으나 이야기는 어쨌든 그렇게 시작하고싶었다.

《나는 그러지 않아도 이번 길에서 돌아올 때엔 꼭 혜영동무를 찾아가려고 작정했댔소. 이렇게 만났으니 다행이지만…》

처녀는 말이 없었다.

여전히 발앞을 굽어보는 그 녀자의 눈에 희미한 광채가 어리였다 사라지자 크고 아름다운 두눈이 괴로운 우수에 잠겨버린다. 그것은 혜영이가 못내 바라던바였고 공상속에서 안타깝게 그려보던 일이였지만 꿈속에서처럼 문득 펼쳐진 이 현실이 어쩐지 두려웠고 믿어지지 않았다.

《나도 물론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일을 잊지 않고있소. 하지만 그것으로 하여 혜영동무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소. 오히려 더 깊이 생각하게 되오.》

혜영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잠자코 있던 은하가 두걸음 다가가더니 고운 장갑을 낀 그 녀자의 손을 건드렸다.

《왜 말 안하니? 말하라요.》

혜영은 무심결에 그 손을 꼭 잡아주었으나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놓아버렸다.

《우린 기차 안 타나요?》 하고 어린것이 재깔거렸다.

이야기는 그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렬차가 들어올 시간이 되여 사람들은 홈으로 나가고있었다.

렬차에 오를 때에도 혜영은 굳이 그를 피하여 다른 객차로 가는것이였다.

그는 따라가지 않았다.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기엔 너무나도 소란한 차칸이였다.

차창밖으로 저물어가는 저녁해살이 어설프게 드리운 눈덮인 들판을 바라보면서 혜영은 무더운 여름날 동해선을 달리던 렬차와 그들이 처음 알게 되였던 그때의 일들을 생각했다.

그때엔 그저 소박하게만 보았던 평범한 청년이 재능있고 진실한 기사였을뿐아니라 높은 리념과 열렬한 심장을 지닌 시대의 선구자였던것이다.

방금전에 그가 한 말은 웅심깊은 그의 사람됨을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말을 듣는것이 혜영에게는 기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었다.

기뻤던것은 공상으로나마 기대했던때문이였고 고통스러웠던것은 자기자신의 옹졸함을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과연 자기는 생활과 행복에 대한 어떤 지향을 가지고있는가.

같은 시대, 같은 세대의 젊은이로서…

혜영은 자기의 사랑도 저물어가는 저 저녁해처럼 서글픈 길을 걸을것만 같은 위구를 느끼고있었다.

그러나 강기석은 차창밖의 눈덮인 들판을 바라보면서 얼어붙은 저 들판에 눈석이가 시작되고 봄이 태동하는 때가 찾아오듯이 자기들의 사랑도 다시 꽃피고 열매맺을 날이 있으리라고 믿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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