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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 회


제 5 장

5


공장의 방송선전차가 아침결에는 김기룡이네 로의 전기로공들의 영웅적인 투쟁소식을 알리여 공장을 들썩하게 만들어놓더니 오후부터는 그들의 투쟁에 고무되여 온 공장 도처에서 창조되고있는 새 기록, 새 기적들을 알리여 공장을 흥성거리게 하였다.

《슬라크를 사전에 만들어 투입하는 용해법이 성공했다누만.》

《박기사가?… 정말이요?》

《주강직장에 좀 가보우. 부글부글 끓고있소.》

공무실에서는 설계원들과 지령원들이 떠들어대고있었다. 기사들은 이야기에 팔리여 누구도 선희가 주먹으로 턱을 받쳐들고 앉아있는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선희는 박철산당비서한테서 남편이 어제 새날공작기계공장에까지 갔다왔다는 이야기며 부장에게 자기가 연구한 새 주조법에 대한 성과를 부정하고 그것을 다른 공장들에 받아들이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희의 눈앞에는 새로운 주조법을 탐구하기 위해서 흘려보낸 시련의 나날이 자꾸 떠올랐다.

서학산에 철쭉이 한창일 때도, 대동강유보도의 버들에서 매미가 서늘하게 울 때에도 남들처럼 아이를 앞세우고 함께 거닐어보지 못하고 탐구해오던 창조물이였다. 책상을 안고앉아 졸 때 바로 누우라고 깨우면 세면장에 달려나가 머리를 적시고 들어와 물방울을 뚝뚝 떨구며 책을 붙들고 밤을 지새던 남편이였다. 그래서 남편의 친구는 언제인가 진오의 맏아들은 인철이가 아니라 새 주조법이라고 했었다.

《정말 모르겠어!》

지난날을 더듬던 선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녀자는 근 10년동안 부부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남편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놀라왔다. 모를것이 그것만이 아닐수도 있다. 영원한 미지, 거기에 인간의 매력이 있는지.

《선희동무, 왜 그러구 앉았소? 어서 집에 돌아가시우.》

실장이 하는 말이였다.

그제야 선희는 퇴근하기 전에 고철압착기의 최종조립에서 걸릴것이 없겠는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상을 거두었다. 래일 저녁에는 시운전을 할 계획이였다.

선희가 자리를 일어서는데 전화가 왔다고 알리였다.

《기사동지, 나예요.》

《누구라구?》

선희는 은하의 목소리를 가려들었지만 반가와서 엉겁결에 그렇게 말이 나갔다.

《은하예요. 오전에 왔어요.…》

화도 나고 반갑기도 하여 나직이 소리쳤다.

《다 안다. 병원에 있니?》

《네.》

《무슨 반찬에 손을 대드냐?》

수화기는 잠잠했다. 목이 메여 말을 못하고있을것이였다.

《알아야 들고가지.》

《기사동지, 난 어쩜 좋아요. 글쎄 당비서동진 나더러 간호를 하라고 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자꾸 찾아오는데 말이예요.》

《아직도 숨박곡질할테냐?》

《그래도…》

《좀 차도가 있니?》

《네, 방금 잠들었어요.》

《내 밤에 가겠어.》

선희는 책상을 거두고 밖에 나갔다. 자동차며 구내운반용뜨락또르가 분주히 지나간다. 선희가 도로를 횡단하려고 잠시 걸음을 멈춘 사이에 그림자가 여러번 좌우로 선회하였다. 그사이에 종합청사쪽에서 주태섭부기사장이 뒤쫓아왔다.

《어딜 가우. 집에 가지 않구.》

《주강에 갑니다.》

선희는 그와 함께 보도를 횡단하며 말을 이었다.

《박기사동무한테서 다 들었어요. 그의 연구사업을 크게 도와주셨다고들 하더군요.》

주태섭부기사장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주강직장 상공에 피여난 밤노을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물었다.

《바쁘오?》

《아니요.》

《그럼 좀 천천히 걸읍시다.》

박기사의 연구사업을 도와준 주태섭에게는 기쁜 날이겠는데 침울한 어조였다.

《이젠 주강소재가 풀리겠지요?》

《풀리겠지, 풀릴거요.》 하고 주태섭부기사장은 학습총화때 외운것을 반복하듯 아무런 감정도 없이 중얼거렸다.

《동무의 그 고철압착기까지 은을 내면 주강소재는 확고히 가공에 선행할수 있을거요.》

《그새 정말 수고하셨어요.》

《수고했다구?》 부기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사실 창조자가 아니라 월급쟁이였소. 진정한 창조자는 무엇때문에 창조해야 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자기의 창조물을 객관적으로 볼줄도 알아야 하는거요. 기사장이 자기 창조물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하는걸 알겠지요?… 기사장, 그 사람은 훌륭한 창조자요. 하긴 내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이런 인간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르지. 하여간 내가 시대의 기슭에서 생활을 관망하고있는 사이에 새로운 세대, 리진오의 세대가 태여났소. 열정이 꺼질줄 모르는 새로운 세대가 태여났단 말이요. 시대는 시대마다 자기 시대의 인간을 낳는 모양이요.》

주강직장에 간 선희는 압착기조립장에 들리기 전에 혹시 직장장실에 가면 남편이 있지 않을가 해서 주태섭부기사장의 뒤를 쫓았다. 이제 자기앞에 나타날 남편은 그 모습도, 얼굴도, 목소리도 어제의 리진오가 아닌 다른 리진오일것만 같았다.

주태섭부기사장은 직장장실에 들어서며 강봉학직장장에게 언제 출강하겠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4호로에서 박기사의 방법으로 시험생산을 하고있었던것이다.

《한 15분후에 붓겠네. 그런데 이제보니 동갑이 얼굴이 말이 아니로구만.》

강봉학직장장은 웃음절반 걱정절반 말했다.

《사람도 바로보지 못하는 그 안경 뭣하러 끼고다니는가?》

《원참, 누가 할 소리 누가 하는지 모르겠군.》

주태섭부기사장은 안경알을 닦으며 대답했다.

《이번까지 료양소에 안 가면 내가 묶어서라도 후송할테니 그리 알게.》

그들이 즐거운 롱담을 하고있는데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뭐, 평양에서?》

송수화기를 든 강봉학은 부기사장과 선희를 돌아보면서 대답하였다.

《국장한테서?… 누굴 찾아?… 기사장은 전기로의 휴계실에서 눈을 붙이고있어. 자는 사람을 어떻게 깨운다구 그래? 동무나 가서 깨워보우. 난 못 깨우겠어.》

주태섭부기사장이 송수화기를 빼앗았다.

《여보시오 교환, 나 주태섭이요. 기사장동무는 못 깨우오. 내가 받겠으니 어서 평양에 련결시키오.》

선희는 직장장곁으로 가앉으며 나직이 물었다.

《정말 잠들었어요?》

《내 방금 휴계실에서 앉은잠을 자는걸 보고 내려왔다.》

《저녁식사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군요.》

《밥보다 잠이 필요하겠지. 쇠물이나 부으면 집으로 내쫓으련다.》

《쫓는다고 쫓길 사람이예요?》

《아니야. 이젠 버틸 힘도 진했을게다. 벌써 며칠밤째라구…》

부기사장은 국장에게 새 용해시험의 성공을 알리고있었다.

《그렇습니다. 용해시간이 단축되였습니다. 오후에는 4호로에다 시험하고있습니다. 수고는 무슨 수곱니까. 벌써 해야 했을거지요.… 뭐라구요?》

주태섭부기사장은 놀라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반문했다.

《아니, 여보시오 국장동무, 이제야 겨우 2천대증산을 할수 있는 돌파구를 열었을뿐인데 어떻게 계획수행기일을 앞당긴다구 합니까? 부에서두 4월말까지 2천대를 증산하면 대단한 성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급당에서 그걸 요구한다구요? 하여간 국장동무, 부에다가 우리 형편을 잘 말씀해주십시오. 기사장동무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주태섭이 송수화기를 놓기가 바쁘게 강봉학이 물었다.

《기일을 앞당기라는거요?》

《그러나보우.》

《원 사람두, 앞당기라면 앞당기는거지 왜 맥빠진 소리를 해?》

강봉학이 부기사장의 잔등을 가볍게 갈기며 전기로현장으로 향했다.

잠시후 그들은 전기로현장에 올라갔다. 박기사의 방법으로 용해시험을 하고있는 4호로에서는 출강준비가 한창이였다. 산화기의 시편검사도 끝나고 쇠물을 받을 남비의 예열처리도 끝냈다.

선희는 멀리서 남편의 모습부터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잠들었다는 1호로휴계실쪽에서 문을 등지고 서있던 젊은 전기로공이 누군가 휴계실에 들어가려고 하자 문을 막아서며 돌려세우고있었다. 휴계실에서 잠든 기사장이 잠을 깰가봐 보초를 서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선희는 전기로공들의 그 마음이 고마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몇분후에 뽑겠소?》

강봉학직장장이 교대장에게 물었다.

《5분후에요. 기사장동질 깨워야지요.》

《5분간 더 눈을 붙이게 놔두오.》

선희가 휴계실 가까이에 가자 출입을 엄금하던 전기로공이 문에서 비켜섰다.

휴계실 긴걸상에 앉은 남편은 벽에 기대여 토끼잠을 자고있었다. 잠이 든것이 아니라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듯 한 얼굴이였다. 선희는 불현듯 새 주조법이 성공한 날 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려고 얼굴을 젖히고 걸었던 일이 회상되였다. 그때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여보, 넘어지겠소.》 하며 붙들어주었다. 그때 그가 얼굴에 짓던 미소, 그런 미소가 잠든 얼굴에 파도쳐지나갔다.

선희는 그 미소를 다시 보고싶어서 그의 얼굴을 지키였다.

근 10년을 같이 살아오는 남편이지만 어찌보면 생소한것 같은 얼굴이다. 이전에는 눈섭이 저렇게 시꺼멓지 않았던것 같기도 했고 어렸을 때 밤나무에 올라갔다가 다쳤다는 저 볼의 상처는 이전에 없었던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니 그의 마음속이야 더더욱 모르고 살았다.

(앞으로도 역시 다는 모를거야.)

미소를 기다리던 남편의 얼굴에는 어째선지 고통을 참는듯 한 빛이 지나갔다. 남이 없는데라면 달려들어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다정한 이야기를 해주고싶었다.

강봉학직장장이 가까이 왔다.

《이젠 깨워야겠다. 출강을 보겠다구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잠이 밀린게지요?》

《잠이야 지난 두달동안 늘 밀렸댔지. 잠이 밀려서가 아니라 시름을 놓아서 잠든 얼굴이다. 우리 주강이 지지리도 속을 태웠지.》

교대장이 전기로공들에게 출강준비구령을 주고있었다. 강봉학은 선희더러 어서 깨우라고 이르고 전기로쪽으로 가버렸다.

선희는 휴계실안으로 들어가 남편을 흔들어깨우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도로 거두었다.

이윽고 가까이 다가서며 조용히 불렀다.

《이봐요!》

리진오는 잠속에서 꿈을 꾸는지 꺼칠한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여보, 출강해요.》

《…》

대답이 없어서 하는수없이 조심스럽게 남편의 팔을 잡아흔들었다.

《정신차려요. 출강해요. 쇠물이 흘러요.》

그제야 리진오는 놀라 깨여났다. 그는 안해의 눈에 맑은것이 고인것을 보고 눈이 둥그래졌다.

《왜 그러우?》

《쇠물이 흘러요.》

《왜 눈물을 흘리는가 말이요?》

리진오는 투박한 손으로 안해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쳐주고 휴계실에서 달려나갔다.

이윽고 선희의 얼굴에 쇠물빛이 빨갛게 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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