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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 회


제 5 장

1


승용차는 먼지를 보얗게 말아올리며 평양으로 달리고있었다. 제대군인운전사는 전속력을 놓아서 속도계의 바늘이 70계선에서 바르르 떨고있었지만 리진오는 성에 차지 않았다.

오늘 아침 평양에 도착한 그는 갑자기 당중앙위원회에서 부장을 찾는 바람에 저녁녘에야 만날수 있게 되여 그사이 새날공작기계공장에서 기술혁신돌격대원들이 연구하는 새 주조법을 보고와야겠다고 결심하고 거기에 갔다오는 길이였다.

서기가 오후에 만나자고 했는데 벌써 해가 져가고있었다.

《좀 더 빨리 가자구.》

《힘껏 밟았습니다.》

가을을 끝낸 논에는 벼단을 실어나르는 뜨락또르들이 여기저기 사방에 널렸다. 가로수그림자가 어느새 큰길을 가로질러 길게 드러누웠다.

리진오는 단조로운 차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고있었다.

제대군인운전사는 아래사람들과 사이두지 않고 지내던 기사장이 오늘은 말을 붙여볼라치면 단마디로 대답하고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는 바람에 필경 공장에 갔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것을 눈치채고 긴장해서 차를 몰고있었다. 그러나 천성이 명랑한 제대군인운전사는 입이 가려워 참다못해서 다시 말을 꺼냈다.

《곧바로 부에 들어가시겠습니까? 배가 고픈데 가다가 식사나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럴가.》

기사장은 기계적으로 대답하고 혀아래소리로 물었다.

《휘발유가 좀 남아있소?》

《평양까지는 가겠지요.》

그것으로 다시 이야기가 끝났다.

리진오는 도중에 보려던 《기계공학》 최근호들이 옆좌석 여기저기 흩어져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노을속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눈여겨 바라보고있었다. 얼마후 새들은 노을속에서 타버린듯 까맣게 보이더니 이윽고 숯검뎅이같은 그 까만것들마저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디 편치 않습니까?》 하고 운전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 괜찮소.》

리진오는 새날공작기계공장에 가서 커다란 충격을 받고 오는 길이였다. 그는 그 공장에 갔다오기를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았을번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는 아침에 기술처에서 지도원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먼길을 떠날 결심을 내리지 않았을것이다. 창가에 앉아있는 지도원이 새날공작기계 기사장은 되지도 않을 돌격대원들의 연구사업때문에 주물생산에 지장을 받는다고 우는소리를 하더라고 말하자 다른 지도원이 박교수가 그런 태도니까 돌격대원들은 기세가 올랐을거라고 맞장구를 쳤다.

《아니, 그 늙은이는 우리 기술집단을 얕잡아보아도 분수가 있지 왜 남의 일에 뛰여들어 헤살을 놓는거요?》

《산토끼 잡으려다가 집토끼 놓친답데.》

《그래서 부부장동지가 월요일에는 뜨락또르공장에 떠나라구 하는거요.》

리진오는 온몸의 피가 역행하는듯 했다. 자기의 연구사업의 결과가 새 방법을 탐구하고있는 기술혁신돌격대원들의 연구사업을 반대하거나 조소하는데 리용되고있구나 하는 놀라운 예감이 들어 먼길을 떠날 결심을 내린것이다.

한낮이 거반 되였을 때 공장에 닿았다. 그가 연구정형을 이야기해달라고 말했을 때 돌격대책임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기네 연구사업을 부정하였고 리진오처럼 참고할것이 있다고 요구한 자료들이 연구사업을 비방하는 자료로 리용되였기때문에 대답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때 대학시절의 친구가 나타나서 사태가 수습되여 리진오는 그들의 고심어린 연구흔적을 볼수 있었다.

마침 시험이 진행되여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험과정을 목격하였다.

시험은 비록 실패했지만 그는 시험장을 떠나지 못하고 오작이 되여버린 소재를 보고보고 또 보았다. 시험장을 정리하던 돌격대원이 좀 비켜달라고 말하는것도 듣지 못하고 그것을 바라보고있었다.

리진오는 그들이 연구하고있는 주조법은 자기가 새롭게 창조하였다고 생각하고있던 주조법까지 포함한 현존하는 모든 주조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법이며 특히 이 방법이 성공하기만 하면 주물로동을 힘들고 유해로운 로동에서 해방하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철저히 관철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연구한 방법을 주물에서 혁신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주물에서의 혁명이며 자기 방법이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해보려고 시도한데 불과하다면 그들의 방법은 수령님의 교시를 완전무결하게 관철할수 있는 방법이다.

그는 기술혁신돌격대원들이 지금은 시험에 성공하지 못하고있지만 그리고 만약에 그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 발견한 그 방법으로 주물에서 혁명을 일으키리라는것을 10여년간 새 주조법을 탐구하기 위해서 모대긴 사람의 경험과 륙감으로 느끼였다.

순간 그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들이 성공하게 되면 자기가 창조한 주조법은 그 창조적가치와 인민경제적의의를 상실하게 될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자기가 낳아 키운 아이의 죽음처럼 도저히 생각하기조차 괴로운 일이였다. 이것은 너무나도 지꿎은 운명의 희롱이였다.

그의 눈앞에는 동무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기숙사의 복도에 나와 세계의 주물추세가 실린 잡지를 탐독하던 대학시절의 나날이며 실패의 쓴맛을 보면서도 시험현장의 구석에서 쪽잠이 들군 하던 탐구의 나날이 서글프게 떠올랐다.

다음순간 그는 불현듯 자기의 주조법을 옹호하기 위해서 그 동무들의 방법이 성공하게 되리라는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것은 한정빈국장이 정상화의 우월성을 인정하면서도 당면한 생산때문에 인해전술을 강요하는것보다 더 치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일어나십시오.》

뒤일을 거두는 젊은 돌격대원이 재차 이렇게 말하였을 때 리진오는 진심으로 그를 축하하였다.

《동무, 축하합니다.》

외부에서 보러 온 주물학자들과 기사들 그리고 부의 일군들에게서 지지를 받아본적이 없었기때문에 젊은 돌격대원은 축하를 받고도 무표정한 얼굴로 우두커니 쳐다보고있었다.

리진오는 새날공작기계공장에서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운전사에게 말을 건넸다.

《출출하지 않소?》

《속이 텅 비였습니다.》

《그럼 식당에 가자구.》

차가 평양거리에 들어서자 운전사는 식당을 찾아가느라고 차를 보통문쪽으로 몰았다. 인민문화궁전앞을 지날 때 리진오는 피뜩 은하의 얼굴을 보았다. 아마도 밝은 가로등이 없었으면 그 처녀를 알아보지 못했을것이였다.

《차를 좀 세워주오.》

차에서 내린 그는 혹시 사람을 잘못 보았는가 해서 차의 문을 닫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공장에서 눈에 익은 은하의 차림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있어서 자기의 눈을 의심한것이다. 검은 비로도로 달린옷을 지어입었는데 날씬한 몸에 어울려 극장의 무용수를 방불케 하였다.

《아니, 저 동무가 우리 공장 독창가수가 아닌가요?》

제대군인운전사가 탄성을 올려서야 리진오는 자기가 착각하지 않았다는것을 깨닫고 운전사에게 말했다.

《동무가 먼저 가서 식사를 준비해놓소. 그새 난 저 동무하고 이야길 좀 해야겠소.》

리진오는 체육관앞의 분수쪽으로 은하와 함께 걸었다.

하늘에 불기우리하게 남아있던 석양은 몰리여 점점 스러져가고있었다.

《그래 왔던 일이 어떻게 됐소?》

리진오가 이렇게 물었지만 은하는 대답이 없이 공장에서는 신지 않던 뾰족한 신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그는 은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원스럽게 뿜어올리는 분수를 바라보며 은하가 공장을 떠난 후 하루이틀사이에 공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김기룡의 로에서 시험생산이 성공해서 그것을 모든 전기로들에 도입하기 위한 일대 전투가 벌어지고있고 고철압착기도 조립에 착수했으며 박기사가 연구하는것도 불원간 성공할것이라고.

기사장의 이야기도중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던 은하는 고철압착기를 조립하기 시작하였다고 했을 때 《벌써요?》 하고 놀라서 낮게 부르짖었다.

《오선달직장장이 끝내 자기네는 본신사업이 바빠서 부속을 깎지 못하겠다고 하자 그곳 사로청원들이 궐기해서 전투를 벌렸소. 알고보니까 동무가 기능을 높여주기 위해서 애쓴 사로청원들이 단단히 한몫했다고 하더군.》

은하는 마침내 손수건을 눈구석에 가져갔다. 평양으로 떠날 때 무엇인가 려행가방에 밀어넣어주고 정거장에까지 따라나와서 어느날 돌아오느냐고 간절히 묻던 어린 처녀들, 그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육체가 조화롭게 발달된 체육인조각상들이 스러져가는 노을의 진한 역광을 받아 립체적곡선미를 드러내고있었다.

리진오는 그 조각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동무에겐 당비서동지나 국장동지가 아버지나 다름없었기때문에 국장동지를 모욕하는것을 참지 못했겠지. 나는 사랑보다도 그들의 명예를 더 귀중히 생각하는 동무의 그 깨끗한 의리에 정말 감복했소.… 그런데 우리의 의리는 단순한 인간적인 의리가 아니라 계급적인 의리로 되여야 한단 말이요. 은하동무는 바로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소. 우리 생활에선 계급의 리익을 초월한 의리란 하등의 의의가 없을뿐아니라 때로는 생활에서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하오. 은하동무의 경우가 그 례의 하나일거요. 동문 인간적인 의리에 포로되여있어서 다른 동무들이 어려운 전투를 하고있는데도 뒤돌아보지 않구 공장을 떠날수 있었단 말이요. 그렇게 로동계급의 하정을 알려고 하지 않는 동무가 어떻게 로동계급의 예술을 창조할수 있겠소. 공장에선 동무에게서 배우고있는 어린 동무들이 기다리고있고 동무의 노래에 친숙해진 로동자들이 기다리고있는데 평양에선 과연 누가 동무를 기다리고있소?》

은하가 갑자기 얼굴을 싸쥐는 바람에 그는 더 이야기하지 않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자기가 불행할 때면 자기와 같이 불행한 사람을 동정해주고싶어지는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고있는 은하를 앞에 둔 리진오의 마음이 그러했다.

《어떡허겠소, 나와 함께 가겠소?》

《…》

《그치오. 그럼 이왕 평양에 왔던 길인데 조용히 자기 생활을 돌이켜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거요. 곧 뒤따라오우.》

리진오는 은하에게 힘이 될 이야기를 더 해주고싶었으나 그럴 시간도 없고 감상에 젖은 지금 자칫하면 처녀에게 해로운 동정을 표시할것 같아서 그만두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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