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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제 2 장

12


국제상품전람회에 참가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상품전시회가 오늘 개막되는데 가볼 의향이 없는가고 물어오는 지그프리트의 전화를 받은 서상록은 시간을 내보지요 하는것으로 얼버무려버렸다.

에쎈회사가 평양에서 체결한 계약의 첫 단계 사업이라는것을 아는 그였지만 자기 전문분야와는 거리가 멀어서인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좌왕우왕하던 그는 30분도 못되여 결심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였다. 바클리가 무슨 리유에선지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는것이였다.

전시회가 열리는 도시에 이른 상록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개막을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그속에는 조선의 민족의상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무슨 의식이라도 하려는지 화려하게 떨쳐입었다는것이 알렸다.

북이나 장고를 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새납과 징 같은것도 들고있다.

분명 조선사람들이였다. 그러니 저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구경하자고 모여들었단 말인가.

서상록으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광경이였다. 개막행사에는 정부의 관리들과 관계부문 인사들, 여러 나라들에서 온 무역관계자들, 기업체들의 전문가들이 참가하였다.

전시회장에 전시된 조선의 이름난 도자기들, 인삼을 비롯한 각종 천연약재로 제조한 고려약제품들과 가정용품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필필이 드리운 양단, 모본단, 다색단, 약산단, 구룡단, 공단 등만이 아니라 항라, 갑사, 진주사, 은초사 같은 눈부신 비단천들이 칠색령롱한 빛을 뿌리는 전시장은 말그대로 아름다움의 황홀경이였다.

만져보고 쓸어보며 마음에 드는 천을 골라 사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도 찍었다. 소박하면서도 매혹적인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은 처녀봉사원들이 성의를 다하여 친절히 안내를 해주었다.

흥분된 사람들의 물결속에서 상록은 노대를 잃은 쪽배처럼 이리저리 밀리며 흘러갔다. 무엇에 위압되기라도 한듯 숨이 차서 이속에서 빨리 빠져나가고싶지만 겹겹이 막아나서는 사람들로 하여 걸음조차 제대로 가누기 어려웠다. 성황리에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지금의 성황을 리해할수 없어 쫓기듯 걷다가 종시 멎어서지 않을수 없었다.

앞쪽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지그프리트와 명현의 모습이 보였던것이다. 돌아설수도 옆으로 빠져나갈수도 없게 된 정황이였다.

《명선생, 선생과 함께 전시회를 돌아보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소.》

지그프리트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명현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전에 상품전시회를 준비한 조국의 일군들과도 만났으며 경제학자인 자기가 한몫 담당하겠다고 약속까지 한바 있었던것이다.

《사장님, 저는 에쎈의 조선진출을 적극 지지한다고 이미전에 소신을 표명한바 있습니다.》

《참, 기억나오. 경제학박사인 명선생과 이렇게 자리를 같이했으니 나의 리해의 폭을 넓혀주길 바랍니다.》

명현은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으며 인파속에 잠겨 자기 몸을 숨기다싶이 하고있는 서상록에게 들으라는듯이 대답했다.

《사장님은 왜 서상록을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도 조선사람이며 이 훌륭한 상품전시회를 참관할 시간쯤은 낼수 있는 인재가 아닙니까.》

서상록은 명현의 말을 똑똑히 듣고있었다. 자그마한 악의도 없지만 심장을 비틀어대는 비난같았다. 가슴 한복판에서는 불만이 솟구치지만 지금의 처지에서는 나설수도 없었다.

《상록선생은 대단히 분망한 사람입니다.》

친구에게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줄듯 지그프리트는 아량을 보여 말했다. 그는 상품전시회에 대한 서상록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오히려 그편이 리롭다고 여기고있는것이였다.

처녀안내원이 지그프리트에게 조선의 비단생산력사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조선의 비단은 유구한 력사와 전통을 가지고있다. 지금으로부터 아득히 오래전부터 남달리 슬기롭고 문명한 조선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있는 땅과 기후조건의 유리성을 리용하여 일찍부터 고치농사를 시작하였으며 자연섬유를 가지고 천짜는 기술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왔다. 세나라시기에 이르러서는 5색비단을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주변나라들과의 교역을 통하여 이름을 떨치였다. 그로부터 조선비단은 다른 나라 왕실들에서 진귀한 보물처럼 여기게 되였고 왕족들과 고관대작부인들이 지체를 자랑하기 위해 앞을 다투어 옷을 지어 입었다. 바다길을 헤치고 온 외국의 상인들은 조선의 비단을 제일먼저 찾았고 아무리 높이 부르는 값이라도 흥정없이 사갔다. 조선비단은 개성의 고려인삼과 나란히 유명한 무역상품의 품종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오래동안 자기의 지위를 고수하여왔다. …

상록은 인파속에 몸을 웅크려 잠근채 어차피 설명을 들을수밖에 없었다.

명현의 통역을 주의깊게 들으며 지그프리트는 연방 감탄을 터뜨리였다. 그는 조선의 견방직기술과 장비수준, 생산공정에도 깊은 주의를 돌리였으며 필요한 대목은 다시 설명해줄것을 요구했다.

설명이 끝나자 그는 비단천으로 지은 조선옷견본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선녀성들이 입는 치마저고리는 참으로 우아합니다. 대체로 매개 나라들의 민족옷은 오늘 무대의상으로 혹은 명절날에나 입는것으로 보존되여오는데 이 치마저고리들은 어느 나라 녀성이 입어도 잘 어울리고 품격을 높여줄것입니다.》

전시회안내를 맡은 중년녀성이 지그프리트에게 그중 마음에 드는 비단천을 고르게 한 다음 기념으로 주자 그는 깊은 사의를 표시하였다.

《감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바르바라에게 선물하겠습니다.》

명현이 기지있게 화답했다.

《부인님에 대한 사장선생의 사랑이 이 조선의 비단처럼 아름답기만을 바랍니다.》

《우리는 마음이 통하는가 봅니다. 명선생, 조선의 비단천과 관련한 이야기를 더 듣고싶습니다. 직물생산에서 비단천의 지위를 어떻게 봅니까? 경제학자의 안목을 가지고 설명해주시오.》

명현은 이제야말로 자기 차례라고 여긴듯 주저없이 말했다.

올해 세계시장의 경기와 추이를 주시해볼 때 원유가격의 파동이 제일 심했다. 그뒤를 따라선것이 철강재와 유색금속가격이였으며 시종 상승추이를 보이는것은 전자제품으로서 콤퓨터의 부단한 기술갱신이 가장 치렬한 경쟁으로 되고있다고 본다. 물론 일련의 차이점은 가지고있지만 섬유시장에서의 가격변동은 심하지 않았다. 옷은 누구나 입어야 하고 젊은 세대들에 있어서는 류행의 첫째가는 요구로 되기때문일것이다. 화학공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직물생산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있다. 화학섬유의 지위를 누가 무시하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파괴하였으며 현재도 하고있는 환경의 오염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있으며 오늘날 록색이라는 말이 울려나오면서 모든 생산체계들을 여기에 맞게 개조해야 할 문제들이 론의되고있다. 아마 지구상의 모든 굴뚝들을 없애버리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섬유생산도 방향을 달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과 생태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직물생산방법은 어차피 자연섬유를 얻어내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호가 고정불변한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옷문화는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것만큼 쉽게 부정하지는 못할것이다.

명현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아마도 우리 조선비단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더 높아지리라고 확신하고싶습니다.》

지능적으로 상대방을 내려다보는데 습관된 상록은 대학시절 청강실에 앉아있던 모습을 하고있었다. 자기를 명현의 자리에 세워놓으면 입도 열지 못했을것은 뻔했다. 저 사람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이 불쑥 머리를 쳐들었다.

이 순간 상록의 의식은 걷잡을수 없이 기우뚱거렸고 추억의 한토막이 떠올랐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토론회에서 조선과학자대표단 성원들을 만났었다. 그조차 명현이가 나서주어 이루어진 일이였다. 그로서는 돌이키고싶지 않은 추억이나 같았다. 사람이 애써 잊으려고 할 때는 만회할수 없는 자기의 실책이며 그로부터 오는 혐오감때문이라는것을 그는 지금에 와서야 어렴풋이 느끼고있는것이였다.

그때 명현은 가슴을 치며 저주를 보냈다.

너는 운명의 기회를 잃었다. 오늘로 하여 반드시 뼈아프게 후회할것이다!

그러나 당시 서상록은 명예의 절정에 올라 자기라는 존재는 인식하여도 그밖의것에 대해서는 알려고조차 안했던 때였다. 사람은 이렇게 거만을 넘어선 오만한 존재로 되기도 하는것이다.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는것 같아서 그는 례절을 차릴새도 없이 사람들을 비집고 도망이나 치듯이 전시장을 나왔다.

전시장밖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장단에 맞춰 난생처음 보는 춤바다가 흥겹게 일렁이고있었다.

전시장안에서는 조선의 비단천필이 아름다운 폭포를 이루었다면 여기에선 그 천으로 아름다운 민족의상을 지어 입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민족률동을 자랑하는것이다.

얼마나 섬세하면서도 우아하고 기백이 넘치는 춤가락인가. 마이크를 든 가수가 조선의 경쾌한 민요가락을 구성지게 뽑아올리고 건드러진 멋을 살리며 옮겨짚는 발걸음, 시원스럽게 휘두르는 팔젓기와 멋들어진 굴신, 장고장단이 흥취를 돋구자 새납이 고유한 맑은 소리를 쟁쟁히 울리고 한층 빨라진 춤가락들이 흥겹게 땅을 차고 솟구치는가 하면 하늘로 날아오르는것만 같다.

원을 이룬 무용대형을 헤치며 상모를 날리는 남자들이 한바탕 기교를 펼친다. 《좋다-아, 좋지-》하며 씩씩하게 먹여대는 소리가 터져나오고 어깨들이 들썩거려댄다.

상록은 안에서 쫓기우고 나와서 또 한번 떠밀리운 기분을 안고 소광장의 그늘진 곳에 놓인 긴의자를 찾아가서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춤판에 눈길이 끌린채 멍청히 바라보았다.

뒤늦게 전시회장에서 나온 명현이 서슴없이 춤판에까지 뛰여드는것이 먼발치에서도 보이였다. 성미 그대로였다. 동포들과 마주섰는데 률동의 조화에는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명현과 짝을 무은 녀인은 머리가 희여가는 늙은이인데도 그와 교감을 이루며 춤을 잘도 췄다.

멍청이가 돼버린듯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록은 눈길을 뚝 멈추었다. 명현과 같이 춤추는 녀인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장모였던것이다. 자그마한 차집을 경영하며 외롭게 살아오지만 사리에 밝고 례의를 갖춘 쉽지 않은 늙은이다. 어느덧 반백이 된 로파의 모습을 눈에 담은 그의 귀전에 가슴치는 옛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아, 임자도 사내일진대 아무리 못 돼먹었어도 제 녀편네 하나 줌안에 걷어쥐지 못한단 말인가.》

딸의 손목을 쥐고 친정집을 찾아온 안해를 문앞에서 돌려세운 장모다.

어미라고 부르며 이 집에 들어설 궁릴랑 가지지도 말거라.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제 서방을 두고 누굴 찾아왔느냐. 인륜을 거역할려거든 내 죽은 다음 무덤앞에도 나서지 못한다는걸 알아라.

딸에게는 이렇게 엄했건만 사위만은 무던히도 귀해한 장모다. 마주할 낯이 없어 찾아도 못 가는데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된 상록은 죄스러운 마음을 주체할길이 없었다.

딸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늙는다는것을 느끼는 내가 아닌가. 저 늙은이가 살면 몇년이겠는가. 바라는 작은 소원에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자신이 지금처럼 못나보이기는 처음이였다.

번뇌에 깊이 잠겼던 그는 자기옆에 어떤 사람이 앉아있다는것을 감촉하고 고개를 돌리다 아연해지고말았다. 비위살이 넉넉한 바클리였던것이다.

《상록선생이 알고싶어하는 사람의 신상자료는 가까운 시일안에 도착합니다. 나로서는 어지간히 정력을 바쳤다는데 대해서 알아주길 바랍니다.》

바클리다운 말솜씨가 시작되는것이다. 세상에 사람을 찾는 일보다 어려운노릇은 없다는걸 알았다면서 섬겨대는데 이젠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문제는 다음 단계입니다. 생존여부가 확인된다면 선생은 어떤 행동계획을 세울텐데 참고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조선은 특수한 사회정치구조를 갖춘 나라라는것을 아셔야 하거든요. 우려되는것은 당신이 그 나라에 있어서 환영할만 한 인물이 되는가 하는겁니다.》

상록은 자기라는 존재가 간상배를 방불케 하는 사람의 손에서 되는대로 주물림을 당하는듯 한 모욕감을 받아안았다.

사람이 이렇게 값이 없어질수도 있는가. 내가 누군데 감히 놀려대려 드는가.

그는 화가 치밀어올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클리씨, 당신이 요구하는것을 수일내로 알려주시오.》

《아, 상록선생…》

한손을 쳐든 바클리는 등을 돌려대고 걸어가는 상록을 바라보며 의아한 낯색을 지으면서도 회심의 웃음을 흘리고있었다.


바람은 무던히도 세차게 불어댔다. 서상록은 어찌되여 자기가 옛집에 찾아왔는지 알수 없었다. 불과 며칠전에 안해와 이곳에서 만났다. 집이 아니라 계곡을 따라 흐르는 벽계수기슭에서…

목조건물은 주인의 손길이 오래동안 가지 않은탓에 출입문이 금시 날아나버릴것처럼 덜컹거렸고 틈새많은 곳으로 새여들어가는 바람소리가 날카로운 음향을 날릴 때면 집안에서 짐승들의 괴상한 울음소리까지 들려나왔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산짐승들이 웅거한것이다.

바람을 등진 상록은 문을 열었다가는 닫아낼것 같지 못해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사람보다 먼저 돌입한 바람이 방안을 휘저어대자 이구석, 저구석에서 네발가진것들이 자기들의 령지를 지켜내기라도 할듯 사납게 찍찍거려댄다.

집안에서는 곰팡이냄새가 코를 메울것처럼 풍겨나왔다. 어둠에 익숙하려고 잠시 서서 들여다보던 상록은 마침내 들어섰다.

출입문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기고 소란스럽게 굴던 짐승들도 어느 구석에 숨어버렸는지 바스락거리기만 할뿐이다. 이제야 주인이 왔다는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한손으로 거미줄들을 걷어낸 상록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마루바닥에는 먼지가 발목이 잠기도록 깔렸다. 응접실로 리용되였던 넓은 방안의 가구들은 짐승들의 날카로운 이발에 물어뜯기웠는지 바로 놓인것들이 하나도 없다.

좁은 복도를 따라 몇걸음 옮기니 부엌으로 리용되였던 곳에 아직도 가마가 걸린채로다. 옆간은 온돌방이였다. 시렁우에 놓인 반짇고리가 그대로 있다.

상록은 먼지를 털고 선반에 걸터앉았다.

이곳에는 상록의 원망과 수치가 잠들어있었으며 초불의 잔광과도 같았던 행복이였다고 해야 할 숨진 생활이 깃들어있었고 죽음과 리별이 환영처럼 너울거리는 악몽 같은것이 존재한다고만 여겨왔다.

유럽으로 옮겨온 후 중학교를 졸업할무렵이였다. 아버지는 혼신을 모아 작은 음식점을 차려놓고 일했다. 아마도 아버지의 음식솜씨가 없었더라면 아들에겐 배불러본 날이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일찍부터 외로움에 시달리며 고독하게 생활해온 상록은 애들과 사귀기를 무척 두려워했으며 친한 동무도 없었다. 매일과 같이 학교로 오가는 길에서도 그에게 벗이 있다면 그림자뿐이였다. 어린 마음은 자기를 보는 눈길들을 피하게 되였고 작은 몸을 어디엔가 숨기고싶었다. 이처럼 소심하고 위축된 심리는 엄마라는 말을 배우지 못하며 자란데 기인되는것일수도 있었다.

유일한 의지인 아버지는 먹여주고 입혀줄뿐 자랑으로 되여주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부모자랑으로 우쭐거리며 자란다지만 상록은 해진 바지를 입고 나선것처럼 제 몸의 허물을 가리려고만 하는 아이였다. 그는 아버지가 음식점에서 일한다는것을 말하기를 제일 부끄러워했다.

상록이 매일 학교로 오가는 길옆에는 경찰이 보초를 서는 건물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말을 들으니 남조선령사관이라고 했다. 그것을 안 뒤부터 그는 한번도 그앞을 지나지 않고 멀어도 에돌아 다녔다. 멀어진 등교길로 해서 주먹을 쥐고 급하게 달릴 때 마음속에서 차오르는것은 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우릴 내쫓았어, 저 집에서 사는것들은 다 나쁜 놈들이야 하는 철부지의 증오였다.

하건만 아들이 그토록 미워하는 사람들을 아버지가 찾아갈줄은 몰랐다.

서상록은 지금도 그날 본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한다. 허름한 두루마기… 아버지는 외출을 할 때면 노상 그 옷만 입었다. 색이 날고 때가 오른… 이른봄 마른 풀같은 아버지의 수염은 보기만 해도 서글퍼났다.

그런 차림으로 무슨 청원이라는것을 하겠다고 그 집앞에 서있는것을 보고 상록은 어린 마음의 울분을 터치였다.

여기가 어딘지나 알아요? 아버지와 나를 제땅에서 살지 못하게 내쫓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예요!…

아들의 눈물어린 웨침을 들은 다음 실신한 사람처럼 서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상록은 지금도 보고있었다. 무력하고 암둔했던 아버지…

난 미처 몰랐구나. 조선사람들이 일을 보는데라구 해서 왔댔다.

가슴 꺼져내리는 아버지의 그 목소리마저 진저리를 치게 했다. 부끄러운 아버지였다. 어린 아들의 손목을 잡고 지구를 한바퀴 돌다싶이 하고도 모자라 어디로 데려가려는가. 안 갈테다. 우리에겐 제 나라라는 말이 이미 없어졌다. 있다면 우릴 무정하게 버린 사람들이 사는 저주로운 땅만이 존재하고있을뿐이다.

그날 상록은 가슴속에 이런 말을 새겨넣었다.

상록은 지금 무덤속에서 울리는 아버지의 숨결을 듣고있었다. 오늘도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있다.

과연 무엇이 모자랐는가. 아들은 자기의 포부를 실현했으며 가정이라는 생활터전은 물질적으로 담보되여있었다. 당당하게 국적을 소유하였으며 아버지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구걸하며 살지 않아도 되였다. 그것이 만족이 아니였단 말인가.

그후 서상록은 대학시절에 알고지내던 처녀와 결혼했다. 그들은 언어와 피부색의 공통성으로 하여, 다같이 가지고있는 남다른 실력과 탐구자적인 열정, 미래에 대한 지향의 일치성으로 하여 사랑하였다.

상록은 고개를 돌려 출입문옆의 문설주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거기에 못을 박고 메주를 매달아 띄우군 하였다. 장모될 녀인이 딸을 앞세우고 이 집으로 처음 찾아온 날이 삼삼히 떠올랐다.

이날까지 초라한 음식점을 차리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오는 손님, 가는 손님에게 허리를 굽혀온 아버지의 모습이 아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있어 상록은 은근히 걱정했다. 아닐세라 집안을 이리저리 살펴본 장모될 녀인이 뭐가 마깝지 않은지 혀를 끌끌 차대여 마음을 놓을수 없게 하였다.

온돌방에서 녀인과 반나절 가깝게 이야기를 나눈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밖을 나서더니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것이였다.

상록의 집은 높은 산의 동쪽 비탈면릉선에 위치하고있었는데 골짜기로 올라가면 계곡에서 시작되는 벽계수가 흘렀다.

아버지는 시간이 생기면 그 물가에 앉아서 이 물이 동쪽으로 흐른다는 념불같은 소리를 듣기 싫을만큼 하였다. 그러니 녀인을 데리고 가서 그 말을 하자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쳐들어 상록은 눈을 감아버렸다. 부끄럽기 짝이 없이 생각되였던것이다.

벽계수가에서도 두사람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계속되였고 정오가 되여올무렵에야 내려왔는데 녀인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만족한 웃음이 흘렀던것이다.

집안을 돌아보면서는 생각이 많았는데 사돈이 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은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는통에 상록은 눈이 떼꾼해지고말았다.

《한피줄을 만나 짝을 뭇게 된것도 하늘이 주는 복이 아니겠나요. 난 이애의 앞날을 두고 속을 무던히 썩였답니다. 이젠 시름이 다 풀립니다.》

아버지는 한뉘 해오는 음식솜씨를 보이려는지 마당에 자리를 깐 다음 조선밥상을 내다놓고 차림을 하였는데 어머니와 딸은 너무 놀라와 어쩔줄을 몰라했다. 상우에 민족음식들이 하나씩 오를 때면 혀를 차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세상 어디 가도 내 민족의 음식이 제일이라고 말하는것이였다. 이렇게 두사람의 사랑은 성취되고 가정이라는것을 이루었다.

아버지의 한숨소리마저 잦아들었고 시아버지와 며느리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정은 아들로서도 놀라운것이였다.

드디여 상록의 집 처마밑에도 행복이 찾아드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생활은 바라는대로 흘러가는것이 아닌듯싶었다.

아버지가 하염없이 주장하던 사람은 제 피줄을 찾아 살아야 한다는 념불이 마침내 안해라는 녀자에게 전염병처럼 옮겨갔으며 집안에서는 민족과 조국이라는 한층 심화되고 높아진 곡조가 울려나오기 시작하였다.

생물공학을 배운탓인지 안해는 아버지의 《몽매한 념불》(상록은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는 그렇게 표현하군 하였다.)을 하나의 학설로 정립하기라도 할듯 지겹도록 남편을 설복하기 시작했다. 딸이 태여나고 8살을 먹도록 한가정의 의견상이는 그치지 않았다.

지나간 사연에 짓눌린 서상록은 내버린것이나 같은 집을 착잡한 눈길로 둘러보았다. 허물어져내릴것 같은 천정으로 하여 금시 숨이 막혀났고 뒤이어 죄의식 같은것이 덮쳐들었다.

딸이 8살 잡히던 해에 그는 성공의 문어구에 들어섰다. 가치있는 발명권을 소유하게 된 상록은 학계와 대기업들이 관심을 돌리는 신진세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던것이다.

명예와 함께 물질적만족이 찾아들자 그는 무엇보다 자기 가정의 환경을 바꾸는것이 필요하다는 결심을 내리고 도시중심부의 위치가 좋은 곳에 살림집을 갖추기로 마음먹었다.

정원까지 갖춘 독립가옥을 마련한 그는 성공의 만족에 완전히 도취해버렸다. 끝끝내 불우한 인생살이의 낡은 터전을 들어내고 자기의 새 집을 세웠던것이다. 천하가 바둑판처럼 내려다보였다. 두려운것도, 못해낼 일도 있을상싶지 않았다.

이제는 한껏 허리를 펴고 살아볼테다. 고개를 높이 쳐들고 말이다.

이렇게 기분이 잔뜩 들떠서 집에 들어와 안해가 차려주는 밥상을 마주하고는 한잔 마시고 온지라 자기나름의 생활설계를 펼치며 열변을 토했다.

안해는 말없이 듣기만 하였다. 제 흥에 겨워 떠들어대는 남편의 기염앞에서 낯색조차 달리하지 않았다. 이윽고 일언반구없던 녀자가 입을 여는데 그것은 남편의 흥분과는 거리가 너무도 먼 말들이였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였는가, 사랑하였다. 그러나 나를 더 감동시킨것은 훌륭한 시아버님을 모시게 된것이다. 당신이 무지하다고 여기는 아버님은 나에게 민족과 피줄기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분이다. 나에겐 그것이 없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마저 우리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은 일깨워주었지만 아버님과 같이 민족의 체취는 물려주지 못했다. 한것은 그 어머니마저 고국을 떠나 이역에서 태여났기때문이다.

민족의 피줄기에서 분리된 사람은 자기를 알수 없고 종당에는 존재자체를 잃고만다는것을 아버님을 통해서 나는 깨달았다. 동화되여버린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그 원인은 몰랐다.

나는 아버님을 모시고 살면서 자기 민족을 떠난것처럼 큰 불행은 없다는것을 깨달았기에 당신의 안해가 된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나에겐 조선사람으로 사는 긍지보다 더 귀중한것이 없다.

서상록은 자기가 안고 온 화려한 장미빛무지개가 서리를 맞고 한순간에 사라지는것을 보며 참을수 없었다.

마침내 들떴던 방금전의 열변과는 다른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당신은 오늘의 내가 아버지가 물려주는 귀틀집이나 다름없는 이 거처지에서 평생을 살라는것인가. 지지리도 버림받으며 굴욕스럽던 생활을 나는 더이상 연장할수는 없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것을 마땅히 누릴 권리를 가지고있다.

이렇게 고함을 지른 상록은 밥상을 두드리며 서슬지게 말했다.

《당신은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따라서면 되오!》

《알겠어요. 나에 대한 당신의 인식이 어떤것인지를 말이예요.》

《인식은 당신이 해야 하오. 안해라는…》

《당신의 그런 안해는 되기 힘들거예요.》

《뭐라구?!…》

그때 온돌방에서 거처하는 아버지가 좀해 들어서지 않는 부부의 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평시에 너무도 많이 들어온 한숨소리가 울려나왔다. 주름발을 이룬 눈가에는 물기 같은것이 번들거렸다. 머리를 푹 수그린 며느리의 모습이 눈에 뜨이자 채머리를 흔들어댔다.

《새 집을 마련했다니 내 걱정은 말구 이사를 가거라. 너희들이 좋다면 난 일없다. 그저 지연이가 보구싶을 때 데리고 와주면 된다.》

아버지와는 상론조차 하지 않았는데 떠드는 소리를 듣고 나타나서 하는 말이였다. 그러니 이 집에 남겠다는 소리인것이다.

서상록은 불만이 치미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지자 안해는 고개를 들지 않은채 서글픈 하소를 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아- 불효막심한 일을 저지르는가봐.》

상록은 그때도 안해의 말 같은것은 들으려고도 안했다.

그로부터 며칠후 아버지는 자리에 누웠다. 상록은 아버지의 로환을 돌볼 생각은 못하고 새 집을 꾸리는 일에만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나돌아치다 집에 들어오니 맞아주는 안해의 낯색은 상심한 정도가 아니였다.

《여보, 이 집에서 아버지를 시중들 맞춤한 나이의 녀자를 물색했소.》

안해는 이상할 정도로 남편을 여겨보았다.

《그게 자식된 도리인가요?》

상록은 일전에 큰소리를 친게 마음에 걸린지라 타협조로 말했다.

《늙은이가 고집을 부리는걸 어쩌겠소. 아버지 좋고 우리도 좋고…》

상록의 말은 안해의 웨침으로 하여 중도에서 동강나버렸다.

《아버님이 몸져누우신걸 알고나 있어요?!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요! 자기를 좀 보란 말이예요. 누구인가? 누구의 아들인가?》

안해의 기상은 지금까지 살면서 보지 못한것으로 두려움까지 자아냈다. …

방안에 정적이 깃들자 집안의 구석구석에서 짐승들이 날치는 소리가 또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상록은 거미줄을 헤치며 밖으로 나왔다. 바람은 잦은듯 하지만 땅거미가 깃드는 수림속은 어수선한 불안을 실어왔다.

이 계절이 오면 강수량이 늘어나는것으로 하여 벽계수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저 작은 강줄기에 유해를 뿌리였다. 동쪽으로 흐르기때문이다.

인생이란 얼마나 허무한것인가. 강물이 흘러 바다를 만나자면 곬을 몇번이나 바꾸는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은 아버지였다.

그는 오늘 이곳에 와서 사라져버린 생활의 숨결과 목소리들을 들었다. 그것은 의심할바 없는것이다.

서상록은 고개를 돌리고 옛집을 바라보았다.

자기로서는 무덤처럼 여겨왔는데 아직까지도 그 어떤 생명체처럼 숨쉬고있었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 되여 이 집을 찾아왔는가.

그는 자기라는 존재가 어떤 외부적인 힘에 의하여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는것 같은감을 느끼였다. 이상할만큼 가슴은 텅 비여났고 의식은 지탱력을 잃어가고있는것이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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