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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장

4


정원의 숲속길로 아버지와 딸은 나란히 걸었다. 정향나무가지에 내려앉은 작은 새 한마리가 검은색뿔깃을 오똑 쳐든채 바라보더니 시샘이나 부리듯 부리를 쳐들고 울어대고는 포르릉 날아가버린다. 나무잎새들을 가볍게 흔들며 바람결이 스며들 때면 숲의 신선한 향기가 두사람의 옷깃을 살며시 흔들어놓는다.

《아버지, 난 말이예요.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해보군 해요. 사람의 눈을 두고 마음의 창문이라고 하는 말이 옳을가 하고 말이예요. 사람은 누구나 사물을 관찰할수 있는 눈을 가지고있어요. 그런데 모두가 옳게 보는가 하는거예요. 이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지요?》

상록은 자기 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질문하는지 알수 없었으나 묻는바 그대로 가볍게 대꾸할수도 없었다. 그러루하게 여길수 있는 말이지만 어떤 의미를 담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너도 알고있지만 이 아버진 물질을 분해하는 그런 시각만을 가졌을뿐이다.》

대답을 하고나서야 상록은 은근히 후회했다. 지체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빈곤한 자기를 드러낸것 같았던것이다. 아닐세라 딸의 물음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의식반영에서 물질이 전부인가요?》

지연은 살짝살짝 맵시있게 걸음을 옮기면서 질문을 중단하지 않았다. 머리는 좋다지만 철부지로만 여겨온 딸의 입에서 철학적인 질문이 제기되자 상록은 내심 놀라면서도 선웃음을 지었다.

이러다 곤경에 빠질라. 조용조용 말하지만 아버지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자고 잡도리를 하는게 아닌지 모른다.

《넌 이번 일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언젠가도 내가 일렀지. 차를 타기보다 걸어다니는편이 사색에는 더 유리하다고 말이다.》

화제의 방향이 바뀌여서야 지연은 고개를 쳐들고 아버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티 한점 끼지 않은 눈동자에서는 이름할수 없는 불만이 자글거렸다.

상록은 자기가 이 눈빛앞에서도 두려움을 느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어머니가 알리지는 않았을텐데…》

물음이지만 아픈데를 찔러대고있었다. 자식의 말대로 안해는 불상사를 알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무랄수도, 화를 낼수도 없는 자기의 처지를 상록은 알고있었다.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건 네가 이렇게 서있는것이다.》

《보다 중요한건 나도 자립적인 존재가 될수 있다는거예요. 나는 자기를 보고 알기 위한 눈을 가지려고 노력하고있거든요. 이게 중요한게 아닐가요? 아버지, 아버진 자기를 보는 때가 있어요?》

사뭇 조용조용 말하지만 당당하려고 애쓰는것이 알렸고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완곡하게 표현하고있기에 상록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러니까 인간의 눈은 객체만이 아니라 자기를 보는 시각도 가져야 한다는것을 은근히 말하고있지 않는가. 남이 아닌 제 딸의 충고이기에 대답을 해야 하였다.

《너도 어머니를 닮아가는것 같구나. 나에게 자신을 보며 무엇인가를 뉘우치라고 한다면 접수하기 어렵다. 너의 어머니는 이미 나를 거만한 인간으로 규정하였지만 나는 거만해진것을 일종의 자부로 여긴다.》

상록은 어찌 보면 자기가 철없다고 여긴 딸에게 무엇인가를 고백하고있다는 생각을 하며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연은 살레살레 도리머리를 저어댔다.

《사람이 자기를 보는 눈을 가진다는건 피상적인 안목을 의미하는게 아니라고 봐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유리한 방향에서 자기를 볼것이 아니라 무엇을 모르기에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자기 개체를 관찰한다면 분명히 아버지도 어머니도 무엇인가를 찾아낼거예요.》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같이 비난하고있었다.

상록은 지연의 인식에 내재된 공정성을 보았고 그것이 아프도록 충격을 주는것을 감수했다. 파괴된것이나 다름없는 가정의 오늘을 초래하게 한것은 자기였고 안해였음을 부정할수 없었던것이다.

《됐어요. 아버지를 괴롭히고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니예요. 자기를 낳아준 부모에게 짐이 되는 딸은 되지 않을거예요.》

《원, 애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너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지연은 살짝 허리를 굽히더니 숲속에 핀 나리꽃을 꺾어들었다. 수집게 웃는듯 한 노란꽃의 꽃술에 대고 향기를 들이키더니 취한 기분으로 속삭였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요. 나한테 론문지도교원이 선정되였어요. 아주 엄격한 교수선생님이예요.》

상록은 고개만 주억거렸다. 딸의 말이 계속되기만을 기다리는것이다.

《이름은 싼타나라고 해요. 우리 대학에 여러번 와서 강의도 했거든요. 지성과 인격을 갖춘 녀성이여서 은근히 존경해왔는데 지도교원으로 나서줄줄이야. 이런걸 두고 행운이라고 해야 할거예요.》

《네가 만족하다니 잘됐구나.》

상록은 속심이 내비칠가봐 조심하면서 긍정했다. 자기의 전도에 대한 희망을 안고 딸이 밝은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왜 내 론문에 대해서 묻지 않아요?》

《아, 그거야 비밀이 아니냐. 아무리 딸이래도 과학적인 발명은 개인의 명예에 속하는거지. 내가 훔치면 어쩔테냐.》

상록이 자못 신중한 표정을 짓자 지연은 재미있다고 웃기만 했다.

《아무렴 아버지 같으신 대가가 햇병아리를 해치겠어요. 호호.》

《천진하구나. 세상엔 별일이 다 있다. 명성이 자자한 사람들속에도 도적놈들이 있단다. 뻔뻔스러우면서도 아주 교묘한 수법을 활용하기때문에 샬로크 홈즈가 있다 해도 적발해내기 어려울게다.》

지연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지의 말이 어딘가 두려움을 자아냈던것이다. 그만큼 순진하기도 한 딸이였다.

《그러나 네 일은 안전하게 잘될테니 걱정하지 말아.》

《어떻게 아세요, 그걸?》

《우리야 과학의 동업자가 아니니. 독특한 륙감을 가진 사람들이거던.》

과학자들에게도 륙감이 형성된다. 실험과정을 통하여 수값을 얻어낼 때 성공을 예감한다는 말을 들어온 지연이였다.

《한번 맞춰보세요. 내가 차사고를 쳤을 때 구원해준 사람이 남자였는지 녀자였는지…》

속심을 감추려고 륙감소리를 했다가 실험대에 올랐다고 생각한 상록은 머리를 기웃한채 궁리를 하는척 하다가 대답해치웠다.

《남자다, 남자!》

《틀렸어요. 아버지의 륙감이라는것도 그저 그렇군요. 호호호.》

틀리든말든 딸이 웃으니 마음은 편해나는 상록이다.

《녀자예요. 그것도 아주 멋진… 처녀시절엔 발레무용수였어요. 어때요? 막 흥미가 동하시지요?》

상록은 어깨춤까지 춰대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며 내심 놀랐다. 쌍드의 이름까지 듣고나서는 머리가 핑 돌 지경이였다. 자기가 잘 안다고 해야 할 녀자가 아닌가. 병원에 여러번 면회까지 왔다면 내가 아버지라는것을 알았을텐데 에쎈구락부에서 만났을 땐 일언반구도 없었다. 자기의 소행을 입에 올리지 않은 쌍드라는 한 녀성의 품성이 안겨오자 마음은 이상야릇한 고마움으로 조용히 설레였다.


대학도서관 사서들이 하는 일은 여간만 분주하고 바쁘지 않다. 단조로운것 같으면서도 복잡한데다가 또 많은 열람자들의 편리를 돌본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정동녀는 이 일을 10년이 넘도록 해온다.

며칠후엔 지연이가 퇴원을 하게 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마트면 큰 변을 빚어낼번 했다. 어떻게 키운 딸인가. 8살이 돼서부터 엄마가 힘들어한다고 제손으로 빨래를 했고 밥도 지었다. 공부에 지장을 주는것이 안타깝지만 생활은 랭정했으며 살아가자니 모성애로 대신해줄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남편과 헤여진 해에는 어머니를 찾아갔었다. 의지하면 딸애걱정을 덜것 같았고 자기가 일하면 생활을 꾸려나가리라고 타산했지만 친정집문턱도 넘어서지 못했다. 무던하게만 여겨온 어머닌데 무정하기 이를데없었다.

내곁에 돌아올 생각일랑 말아. 조선녀자들은 한 지아비만 섬긴다. 이건 대대로 전해오는 법도나 같다. 내가 너를 들여놓으면 조상들앞에 죄를 짓는다는걸 알아라. 그러니 네 서방이 있는 시집을 찾아가 그 집문턱을 베고 죽어야 한다.

태줄을 끊어준 어머니건만 조금도 사정을 들어주지 않으며 돌려세웠다. 그때부터 모녀의 고행은 시작되였다. 의지할건 철도 들지 않은 딸뿐이고 헤쳐나가야 할 생활고는 이루 형언할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지연은 속태우는 일없이 자랐고 공부도 잘하여 제힘으로 대학에 입학하였다. 딸이 기숙사생활을 하면서부터 부담은 덜렸으며 지금도 정동녀는 대학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있다.

딸의 퇴원준비를 갖추느라고 나왔던 그는 미술품상점앞을 지나다가 호기심이 앞서 들어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채 졸업하지 못한 대학이지만 그 시절엔 미술에 무척 호기심을 가지기도 했던 정동녀다.

유럽의 현대미술가들이 내놓은 추상파작품들이 매대들을 장식하고있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수 없는 선들과 혼탁된 색채들, 명암의 대조를 찾아볼수 없는것으로 해서 직관적인 조형예술이라지만 자기의 형체를 뚜렷이 가려볼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속에도 간혹 눈길이 가는 그림들이 있다.

청동조각 《밭일을 하는 아버지》는 매우 인상적이였다. 밭을 일구는 근면한 농사군의 땀방울을 참으로 생동하게 묘사하고있는것이다. 생김새는 달라도 자기가 늘 보아왔고 오늘까지 마음속에 간직하고있는 늙은이를 만난듯 한 감정이 앞섰다.

그분은 시아버지였던 사람이다. 며느리가 해야 할 일을 도맡아해주었을뿐아니라 손녀가 태여나서부터는 기저귀까지 빨아 몸둘바를 모르게 한분이다.

말없이 한숨을 쉬며 쓸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는것이 전부였다. 그 마음속에 간직된 피맺힌 사연은 얼마나 가슴아픈것이였던가. 소원을 풀어드리지는 못할망정 한을 남긴 자기들이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던 그는 누군가의 손이 어깨를 살며시 건드리기에 놀라서 눈길을 돌리다 탄성을 올렸다.

《쌍드부인! 어떻게 여길?…》

무척 다감한 표정을 갖춘 쌍드는 맞혀봐요 하는 물음을 얼굴에 그려보였다. 정동녀는 자기가 살고있는 도시에 온 귀한 손님이기에 손을 잡아 이끌며 차집에 들어갔다.

《정말 놀라게도 하시는군요. 절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마주앉기 바쁘게 호기심이 어린 물음이 닥쳐들자 쌍드는 웃음을 피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상냥한 녀성의 리지적인 모습을 볼수 있게 하여 정동녀는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우연이예요. 참으로 우연이란 범주는 영원히 흥미있는거예요.》

《그러니까 어딜 가시던 길에 절 봤겠군요. 시간을 지체시키는게 아닌가요?》

《오긴 어제 와서 일을 다 보았고 만나고싶던김에 말한것처럼 우연이 기회를 마련해줬어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은 우연도 돕는가보지요.》

《그랬군요. 잊지 않으셨다니 무슨 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커피가 나오자 두 녀성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모금씩 천천히 마시였다. 쌍드가 지연이 어머닌 나이도 자기보다 우이니 이제부터는 언니라고 부르겠다고 하여 정동녀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다.

쌍드의 언어에는 미사려구나 과신 같은것이 없었으며 그에게는 상대방의 마음에 꼭 드는 말을 골라내는 놀라운 언어구사능력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무엇을, 누구를 믿는다는것은 자기 체험에는 실패의 시작이라고 쌍드는 말하였다.

얼마나 랭철하면서도 교훈적인 말인가. 아마도 그것은 수없이 이어진 상심이 안아다준 진실이라는것을 정동녀는 의심치 않았다. 그런것만큼 앞에 앉은 녀자의 말은 무작정 믿게 되였다. 세상풍파를 다 겪은 녀인이 쌍드라고 여겨졌다. 안 가본 나라가 없다니 그것 또한 놀라왔다. 일본 도꾜에서 그 나라 남자들이 요청하여 가부끼춤까지 추어보았다는 말을 하여 두사람은 즐겁게 웃었다. 자기는 일본의 기업계와 학계의 인물들을 잘 안다는것과 그들은 유럽과는 달리 인재들을 매우 귀중하게 여긴다면서 희망한다면 지연이를 소개해줄수 있다고 하였다.

정동녀로서는 딸의 장래를 놓고 걱정되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유럽의 학계에서는 웬간히 뛰여난 두뇌를 가지지 않고서는 두각을 나타내기가 힘들다. 게다가 학벌이 어느곳에서나 세력다툼을 한다. 대학을 다녀본 그로서는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더구나 딸은 자기와 같은 녀자다. 얼마나 많은 제한성을 가지고있는가. 학계의 천적들이 욱실거리는 속에서 지연의 앞날을 담보하기에는 자기의 힘이 너무도 모자란다는것을 그는 통감하고있었다.

쌍드는 한 3~4년만 일본에 가있다가 돌아오면 지연으로서는 모든 방면에서 성공할수 있다고 담보했다. 게다가 일본명문대학의 학위는 유럽에서도 인정한다. 그러면 이름있는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할수 있는 충분한 토대를 갖추는것이다.

《꿈같은 일이예요. 하지만 그앤 아직 너무도 어려요. 혼자서 그 먼곳에 가 살게 할수는 없어요. 내가 따라간다면 몰라도…》

쌍드는 그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어머니인데 왜 걱정하지 않겠는가.

《언니도 졸업은 못했지만 수재였다더군요. 지연이가 말했어요. 가능하겠는지 알아보겠지만 함께 가게 해볼가요? 언닌 생물공학을 전공했다지요?》

정동녀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흘러가버린 과거, 실패한 인생의 한숨소리가 가슴속에서 흘러나왔다.

《나에게 실험실이 차례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허황한 생각이지요. 딸의 앞날만이라도 망치지 말아야 할텐데…》

《살아보니 희망을 잃지 않는게 중요해요. 내가 몇번이나 죽으려 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언니, 그럼 내 알아볼가?》

쌍드는 정동녀에게 물으며 눈빛으로 마음놓으세요 하는 위안을 보냈다.

《글쎄… 난 쌍드를 믿고싶어.》

보석반지를 낀 쌍드의 하얀 손이 정동녀의 팔목을 꼭 잡았다.

《이제야 언니같은 말을 하는군요. 그래두 언닌 딸이라도 있지. 난 이 바람세찬 세상살이를 혼자서 해야 해요. 우리 둘이서 지연일 멋있게 내세워보자요. 어때요?》

이렇게 말하는 쌍드의 눈가에는 이슬이 스르르 고여났다. 정동녀는 역에까지 따라나와 바래웠다.

《잘 가요, 쌍드.》

《또 만나요, 언니.》

혈육처럼 친밀해진 두 녀자는 헤여지기 아쉬워하며 손을 저었다.


이 도시의 밤풍경은 도깨비불처럼 껌뻑거려대는 장식등들과 멋없이 꺽두룩한 가로등의 조도가 매우 낮은 누르끼레한 발광체들이 맥없이 굽어보는것으로 하여 어둑침침하였다.

분주히 오가는 차들마다 각이한 세기의 불을 비치며 내달리기에 길가는 사람들에게 시각장애를 주었다. 이런 속에서 밤의 흥행이 벌어지는것이다.

캬바레와 빠들에서 광란하는 음악이 그칠새 없고 거리의 구석구석들에서는 형형색색의 밀월들이 이루어지고있지만 도시의 밤시간은 무사태평하게 흘러가는것 같이 보였다.

택시에서 내린 바클리는 어둠속에서도 자못 엄숙하게 서있는 성당지붕을 바라보며 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그는 지금 웰헬름거리에 있는 형제음식점을 찾아가고있다. 음식을 만들어 봉사하는 곳 치고는 내건 간판의 이름이 특이한것처럼 경영방식도 여느 식당들과는 달랐다. 주인도 료리사도 접대원도 하나같이 남자들이고 서로 찾을 때조차 료리나 음식감들같이 비프스테이크, 삐짜, 쏘스로 부르는것이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던 사내들이 옷을 바꿔입고 접대원으로 나서는가 하면 접대하던 사내들이 주방안으로 숨어버리기도 하는 괴상한 곳이였다. 무엇이 어떻든 서로 형제들로 자처하는 이 사람들의 음식점은 유명했다. 고정된 음식도 있지만 주문을 받아 예약한 료리들을 내는데 이상하게도 인기가 대단했다.

바클리는 오늘 이곳에서 고명한 인물인 서상록과 만나기로 약속하였던것이다. 이 음식점은 머리가 비상하고 돈이 많은 거만한 그 사나이의 단골집이나 다름없다.

노상 입에 값비싼 려송연을 물고 다니는 사람이 음식점에 들어앉아 찾는 료리가 토장국에 불과하다는것까지 알고있는 바클리였다. 소비의 균형조차 갖추지 못한 저명한 인물이 그의 시야에 들고 교제가 이루어진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것으로 하여 남다른 두뇌의 단백질을 지불하고 명예와 재부를 차지한 서상록이라는 인간에게도 고뇌가 있다는것을 알았고 그것을 리용하여 흥정을 기도하는것이 바클리의 목적이였다. 잘만 하면 큰돈을 사례로 받을수 있는 아주 랑만적인 절취행위의 대상이 상록임을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하게 되기에 저녁시간을 아끼는 그였지만 이런 걸음을 하고있었다.

하지만 바클리는 서상록이 매우 린색한 사람이라는데 대해서도 알고있다. 타산이 밝고 행동이 신중하여 조심히 상대하여야 할 인물인것이다. 책에 묻혀사는 어수룩한 학자가 아니라는것을 그는 여러 기회를 통하여 내탐하였다.

상전의 지령을 받은 바클리는 에쎈의 구조에 대해서 비교적 품위있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로서는 지그프리트를 타격하는데서 급소는 서상록의 연구소라고 판단하였다. 이 연구집단이 에쎈의 경쟁력을 부단히 높여주고있었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서상록이 이끄는 연구집단이 최신과학기술성과들을 다른 독점체들에 넘겨주도록 한다면 지그프리트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 않을수 없다. 이게 급소가 아니란 말인가. 자기의 상전따위는 감히 생각조차 못할 문제를 제기한것으로 바클리의 마음은 흡족하였다. 급소를 찾아줬으면 타격이야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는 그였다.

그 시각 상록은 형제음식점에서 려송연을 피우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바클리가 만나자고 하는 리유를 그는 잘 알고있다. 인도주의단체 성원이라지만 인간적으로는 거간군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어떤 부탁을 한것이 은근히 후회되기도 하지만 쏟친 물이나 다름없다고 여기고있다. 지금 그의 심경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학계에서는 권위를 자랑하지만 생활에서는 오리무중속을 헤매는 자기를 문득 보게 될 때도 있었다. 지그프리트가 평양을 다녀온 후로는 지금껏 자부해온 자기 정신의 한귀퉁이가 허물어져내리는감까지 느끼군 한다.

분명 그가 다녀온 그 땅 어디엔가 생사여부를 알수 없는 모친이 있을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사람이 분명하지만 바클리 같은 사람에게 어머니의 신상을 알아봐줄것을 부탁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신이 어리석게 생각되였다. 이것은 자기가 저지른 바보짓이나 다름없는 실수라는것을 느끼고있었다.

오래전의 일이다. 명예의 월계관을 쓰고 남들을 내려다보게 되였을무렵 그는 제네바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토론회에 참가하여 명현의 중재로 조선에서 온 과학자대표단 성원들을 만난바 있었다. 그때 면담 비슷한 상봉을 진행하였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둔 과학연구성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학술교류를 제의해왔다.

상록으로서는 은근히 놀랐다. 연구목표와 방향이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데다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이였던것이다. 흥미가 매우 동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교만스럽게 참으로 매정한 대답을 하였다.

나는 연구사업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은 일도 없고 학술교류 같은것을 생각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과학적발명의 성과는 개인의 명예에 속하는것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

서상록은 그때 아무런 가책이나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며 이런 대답을 꺼리낌없이 하였다. 그는 지금도 자기의 발언을 수정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았다. 과학의 정수를 향해 나가는 그였기에 자기의 견해는 전적으로 옳다는 관점에 복종되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동족앞에 내뱉은 오만방자한 이 말로 하여 그는 스스로 자기 마음속의 상처를 가셔낼수 있는 길을 가로막았다고 이따금 후회 비슷한것을 느끼군 하였다.

그 일이 있은 직후 명현이가 한 말이 이따금 마음속귀퉁이를 헤치고 스며들어 절규를 뿜어댔던것이다.

《선생님, 위스키라도 한잔 내올가요?》

려송연을 손에 든채 상념에 빠진 상록에게로 구레나룻수염을 되는대로 기른 사람이 다가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음식점의 주인이며 이곳 종업원들의 맏형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다. 상록은 토장국맛을 잃지 않게 하여주는 이 주인과 이미 잘 아는 사이였다. 이것도 묘한 인연이지만 감상에 빠지기를 좋아하지 않는 상록은 간단하면서도 명백히 거절했다.

《아니, 괜찮소. 난 누굴 기다리는중이요.》

《그렇다면야.》

주인은 씁쓸한 웃음을 남기고 돌아서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다사스러운 바클리가 나타나는건 아닌지요?》

상록은 흠칠 놀라기까지 했다. 자기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눈길을 마주한것이였다.

《그 량반이 나타나는 날에는 영업에서 영낙없이 손해를 보거든요.》라고 말한 주인은 주방안으로 사라졌다.

때를 같이하여 음식점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바클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함께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낯익은 한 녀성의 자태가 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지는것도 가려낼수 있었다. 그것은 모순된 현상의 해석하기 어려운 일치성이였다.

상록은 얼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서 친절한 웃음을 보내며 다가오는 바클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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