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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 회


제 4 장

8


최문렬은 이사한 후 온종일 안팎을 거두다가 피곤해서 자리에 누우려는 안해에게 정색한 어조로 말했다.

《찹쌀을 좀 가져왔다구 했지? 얼마나 돼?》

《갑자기 건 왜 물어요?》

그의 안해는 졸음이 가랑가랑 매달린 눈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래일저녁에 예닐곱사람이 먹으리만큼 차떡 좀 마련할수 없을가?》

그의 안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곱게 눈을 흘기며 웃었다.

《아이참, 이 복새판에 떡은 무슨 떡이예요?》

《쌀은 있겠다, 쇠절구에 찧으면 떡이 되는거지 뭐 그리 신비한 소리를 하우? 그러지 말구 좀 마련해주우. 그리구 시장에 나가서 닭도 두어마리 사오구.》

《호호, 정말 세월없네. 글쎄 내가 시장이 어디 붙어있는지 알기나 해요?》

《이 손바닥만 한 거리에서 시장을 못 찾을가.》

그의 안해는 남편이 시종 정색해서 부탁하는것이 뜻이 있어 그러는것 같아서 타협안을 내놓았다.

《한 2~3일후에 봐요. 기사장동지를 청하려구 그러시는것 같은데…》

《기사장은 무슨 기사장이요? 김기룡동무네가 로를 개조하느라구 몇밤을 자지 못하고 분투하고있단 말이요. 그 동무 얼굴 못봤소? 축간 그 얼굴 보고 가만있을수 없잖소.》

김기룡이라는 말에 그의 안해도 더는 군소리를 못하고 신중해졌다. 자기가 전날 면회를 왔을 때 각근히 대접을 해주던 남편의 전우이고 더우기 남편의 말을 들어보면 대단히 큰일을 한다는데 가만있을수 없는것이다.

《정말 그새 축갔더군요.》하고 그 녀자 역시 동정하며 말을 이었다.

《참, 그 동무 애인이 있다면서 좀 어떻게 돌봐주지 않구 그렇게 되도록…》

《쓸데없는 소릴 하는군. 아직 약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어떻게 도와주구 어쩌구 한단 말이요? 그래 청을 들어주겠소?》

그의 안해는 대답을 받아내고야말겠다는 자세로 틀고앉아있는 남편이 보기가 민망해서 외면하며 웃었다.

《어서 주무세요, 근심말구.》

《정말이지?!》

최문렬은 너무 기뻐서 벌떡 일어서며 그럼 당장 떡쌀을 담그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뭘 하면 되느냐 하며 서둘러댔다.

《호호, 우물곁에 가 숭늉 달라겠네.》

《웃긴 왜 웃소. 그래야 래일아침 출근하기 전에 내가 찧어주지.》

《걱정말아요. 래일저녁에 대접하겠다면서요?》

다음날이였다. 공장에 나갔던 최문렬이 1교대가 끝나고 작업복바람으로 집에 달려왔을 때 그의 안해는 제가 장담한대로 떡과 국을 큰 늄통 두개에 마련해놓았다.

《이래서 제집이 좋다고 하는 모양이지.》하고 최문렬은 기뻐서 입이 째질 지경이였다.

말로는 집이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눈길은 발그레 물든 안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있었다. 이 사랑스러운 안해에게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몰라 잠시 망설이던 그는 굳은살이 배긴 손가락으로 볼우물진 안해의 뺨을 꾹 질렀다.

《무슨 볼우물이 꼭 어린애것 같구만.》

《아이, 망칙해.》

《망칙하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그는 안해와 함께 늄통을 하나씩 들고 집을 나섰는데 공장에까지 온 안해는 정문 못미처 딱 버티고서서 공장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젠 거기서 둘다 들고가요.》

《같이 가자구. 인사도 할겸.》

《아이참, 내가 어떻게 거길 가요?》

농촌에서 나서자란 그의 안해는 숱한 남정들이 쳐다보는 직장에까지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것이다.

할수없이 최문렬이 혼자서 떡과 국통을 량손에 들고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김기룡의 구상대로 로를 개조하면 로가 폭발할수 있다느니, 어쩌느니 하더니 로는 끄떡없이 쇠물을 녹이기 시작하였고 이제 곧 첫 쇠물을 뽑게 된다. 그는 친구가 개조한 로에서 녹인 첫 쇠물을 보려고 급히 걸었다.

안해는 국을 담은 통을 넘겨주면서 조심해서 들고가라고 당부했지만 길을 너무 다우쳐서 국물이 길바닥에 흘러내렸다. 구수한 닭고기내가 풍기여 퇴근길에 오른 로동자들이 그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기계바다옆 운동장에서는 오늘도 배구경기가 한창이다. 련일 진행해오던 경기는 준준결승단계에 이르러 구경군들이 많아져서 오늘저녁은 보도에까지 사람들이 널렸다.

그는 경기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을 피해 조심해서 걷느라고 했지만 종내 일을 치고말았다. 웬 처녀가 뒤걸음을 치다가 국그릇을 건드리여 국물이 쏟아졌다.

《동무, 좀 보고 다니오.》

최문렬은 쏟아진 국물이 아까와 소리쳤는데 저편 처녀는 처녀대로 양말과 신발에 국물이 묻었다고 화를 냈다.

《아이참, 눈이 없어요 뭐?》

눈을 할긋이 흘기며 쳐다보는것은 전날 무대를 통해서 낯을 익힌 기룡이가 사랑하는 독창가수였다. 최문렬은 한상 차려놓고 초대하자던 처녀와의 첫 상봉이 너절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며 어색하게 사과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은하 역시 숙어지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아까운것이 쏟아졌군요. 어데로 가져가세요?》

《저, 주강의 전기로개조전투장에 가져갑니다.》

《…》

이쯤 말했으면 은하가 알아먹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녀자는 전혀 반응이 없다.

(이 친구들이 금이 가도 크게 금이 갔군.)

오늘 낮에 기룡이한테서 국장을 비판한것때문에 그가 이 처녀와 대판 언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것이다. 최문렬은 이들을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소개를 했다.

《은하동무지요? 난 기룡동무와 한 중대에 있던 최문렬입니다.》

그래도 처녀는 외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래요?》하고 기계적인 대답을 할뿐이였다.

《저기 좀 앉지 않겠습니까?》

《전 바빠요.》

두부모베듯 하는 대답이다.

《꼭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최문렬이 무거운걸 들고 앞장서자 은하는 마지못해 뒤를 따라왔다.

《국이 식지 않겠어요?》

《식으면 슬라크에다 데우지요.》

지금 최문렬에게는 국이나 떡이 문제가 아니였다. 그는 기룡이가 이 처녀와 언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랑하는 사이에 흔히 있을수 있는 다툼이려니만 생각하였지 이렇게 랭전상태로 발전하였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최문렬은 이런 경우에 어떤 말을 해야 좋을는지 처음 당해보아서 한참 갑자르다가 《요즈음 기룡동무는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합니다.》하고 말재간없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큰일 하니까 바쁘겠지요.》

손이 시릴만큼 랭담한 대답이였다.

《내 생각엔 바빠서만 그런게 아닌것 같습니다.》

배구경기장에서는 환성과 함께 웃음이 터지였다.

은하는 무릎우에 올려놓은 가방을 만지작거리다가 환성이 오르는 배구경기장에 눈을 주고있었다. 나는 할 말이 없는데 왜 남을 이렇게 붙들고있는가,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빨리 이야기하라는 태도이다.

최문렬은 화가 났지만 화를 내서 될 일도 아니고 또 화를 낼 끄트머리도 없어서 마음을 눅잦히며 다시 말을 건넸다.

《나는 기룡동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친구로서 확언합니다. 그도 역시 국장동지에게 말이 지나쳤다는걸 후회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국장동지의 사업작풍이 념려가 되여 그런 말을 하였던겁니다. 그것을 리해해주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전 리해할 아량을 가지고있지 못해요. 동문 만약 동무 아버지가 남에게 부당한 모욕을 당했다면 참을수 있겠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의 비판은 근거가 없는것이 아니였습니다.》

은하는 눈이 꼿꼿해서 쳐다보며 물었다.

《그 말씀 하려고 불렀어요?》

그것은 불의의 타격이였다. 최문렬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그 이야긴 그만합시다. 그러나 난 기룡의 전우로서만 아니라 주강직장의 로동자로서 말하는겁니다. 기룡동무는 자기네 전기로의 개조를 끝내고는 다른 전기로를 개조하는 전투를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불원간 비상히 어려운 전투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그에게는 그 어느때보다도 마음의 안정이 필요합니다. 그는 2천대증산전투라는 대작전의 돌파구를 여는 전초선에 나선 사람이란 말입니다.》

최문렬은 은하의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어서 이야기를 중단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되겠다고 잠시 다음이야기를 생각하는 사이에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국이 다 식겠어요.》

《그까짓것 식겠으면 식으라지요. 심장이 식어가는데 국물 식는것쯤 대순가요?》

《쇠로 빚은 심장이니까 식을수도 있지요.》

최문렬은 결이 나서 쏘아보았다.

《만약 이제 한 그 말이 진심으로 한 말이라면 동문 기룡이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소.》

그는 이 말을 남기고 획 돌아섰다. 그 바람에 늄통에서 또다시 국물이 흘러내려 바지자락을 적시였다.

그가 현장에 들어섰을 때 공장의 방송선전차에서 방송하는 소리가 드넓은 현장에 찌렁찌렁 울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영광스러운 당중앙에 무한히 충직한 주강직장 1호로의 강철전사들은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전기로의 구조를 개조함으로써 종전에 비해 차지당 용해속도를 한시간이나 앞당기는 위훈을 떨치였습니다.…》

격동된 방송원의 말소리가 끝나기 바쁘게 관악대가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속도전 속도전 기치드높이

총동원 앞으로


(이거 한발 늦었군.)

구경하려고 서둘렀는데 출강이 끝나버렸다. 전기로현장에서는 경제선동대의 처녀들이 달려와서 전기로공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고있다.

《난 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요.》

햇내기전기로공 영진이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서 인차 목걸이를 벗어들었다. 그러자 리진오기사장이 싱긋 웃으며 소리쳤다.

《영진아, 빨리 목에 걸어. 사진찍잖니? 어서! 그건 장가들 때도 걸지 못하는거야.》

걸걸한 목소리들이 흐아 하고 웃어댔다.

어느새 용해장 한복판에는 넓은 종이 여러장을 맞붙여서 쓴 대형속보가 쇠기둥에 나붙었다.


1호로의 강철전사들!

용해시간 한시간 단축

용해량 10프로 증가

본때있는 성과를 축하한다


최문렬이와 헤여진 은하는 거리에 나오는 길로 백화점에 들리여 과자며 사탕이며를 한꾸레미 사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과일을 살가 해서 식료종합상점에 들어가려는데 저편에서 선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여기서 왜 어물거리니?》

이번주에는 은하가 2교대인것을 알고 묻는 말이였다.

《난 휴가 받았어요.》

은하는 시름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휴가?》

선희는 뜻밖이여서 그를 멍히 쳐다보았다. 요즈음 은하는 그가 설계한 고철압착기의 부속의 일부를 깎고있어서 휴가를 받을 형편이 못되는것이였다.

《아니, 휴가를 받다니. 정말?》

《왜 내 말 믿지 않아요?》

선희는 쓸쓸하게 웃는 은하의 얼굴을 보고 그의 팔에 손을 끼였다.

《얘, 좀 걷자. 너 기룡동무의 시험생산이 성공한걸 아니?》

그의 연구사업이 성공하면 그것을 모든 로에 일반화해야 하기때문에 공무직장의 일도 바쁘게 되는것이다.

《알아요.》

《그래도 휴가를 받았다구? 모르겠다. 그래 직장장동지가 휴가를 주던?》

선희는 골목길로 인도하며 물었다.

《주지 않구.》

《바쁘지 않대?》

《난 뭐 휴가를 받을 권리가 없어요?》

《국장동지가 역성을 들어준 덕을 보는 셈이로구나.》

《아무렇게나 생각하세요.》

은하는 구럭을 어깨에 멨다.

《도대체 이 바쁜 때에 휴간 무슨 휴가야?》

《전날은 휴가받으라고 하구서…》

《그때는 그때지. 하여간 어떻게 된거냐? 공장은 바쁘겠으면 바빠라, 나는 내 볼장 보며 가겠다 하는거야?》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달리는 할수 없는걸 어떻게 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굴 믿고 뭘 바라구 여기 살아요. 난 환멸을 느꼈어요.》

《환멸? 누구에게… 기룡동무에게?》

《만약에 기사동지도 기사장동지에게 환멸을 느낀다면 이 공장에서 살수 있을것 같아요?… 난 그 동무가 그렇게 몰인정하구 무례한 사람인줄 몰랐어요. 내가 속았어요. 그는 쇠붙이로 만들어놓은 인간이예요.》

은하는 길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게 울부짖는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녀의 큰눈에는 절망의 빛이 어려있었다.

《그게 제 정신이 있어서 하는 소리냐?》

《기사동진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말 해요. 아무것도 모르고있어요. 글쎄 어쩜 그럴수 있어요.》

은하는 주강직장에 찾아간 국장에게 김기룡이 모욕적인 이야기를 한 내용을 내리엮었다.

《혹시 국장동지에게 결함이 있다 쳐요. 그렇더래도 그 동무가 진실로 날 사랑한다면 그앞에서 어떻게 당장 가라구 말할수 있어요. 네, 기사동지? 철면피거나 천치가 아닌 다음에야 국장동지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입밖에 낼수 있냐 말이예요.》

선희도 그의 흥분이 옮겨온듯 가슴이 후두두해서 잠시 말을 못했다. 그 녀자는 은하가 기룡이를 진실로 사랑하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런 경우에 보통 처녀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편을 들고 그의 립장을 지지하기마련이지만 은하는 사랑하는 사람보다도 자기를 돌봐주고있는 사람에 대한 도리를 지키고있는것이다.

선희는 그 마음이 기특해서 은하를 새삼스럽게 쳐다보다가 급히 오르내리는 그 동그란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네가 목격한건 아니겠지? 아마 잘못 들었을거야.》

《나도 첨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국장동지가 내게 그 말을 하였을 때 난 기를 쓰고 국장동지의 말을 부정했어요. 기룡동문 그런 사람이 아니라구 말이예요. 그 말을 듣고난 내가 모욕을 당한것 같아서 아닌밤에 렴치불구하고 합숙의 남자호실문을 두드려서 기룡동무를 만났어요.》

《그래서?》

은하의 눈에는 맑은것이 고여 반짝였다.

《그 동무가 뭐라고 했는줄 알아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글쎄 그는 국장동지에게 한 말보다 더 혹독한 말을 하고싶은걸 국장동지의 체면을 생각해서 참았다는거예요.》

은하는 마침내 눈구석을 훔치였다.

《그래서 기룡동무와 헤여졌다는거야?》

선희는 한참후에 랭랭한 어조로 물었다.

은하는 방금전에 흥분해서 소리치던 사람같지 않게 놀라며 선희를 쳐다보았다.

《네가 이제껏 그를 사랑했다는게 그렇게 헌신짝 내버리듯 할수 있는 하치 않은 감정이였니? 응? 난 기룡동무가 한 말의 내용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고싶지 않다. 혹시 기룡동무의 평가가 잘못된것일수도 있지. 그러나 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할 때는 국장이든 자기의 은인이든 가리지 않구 말을 하고야마는 그 성격적미 하나만으로도 기룡동무는 뜻있는 처녀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될수 있다고 생각해. 너는 기룡동무를 쇠붙이로 만든 인간이라구 했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심장을 지니였기에 자기 신념을 지키려 했을거야. 너는 기룡동무가 의리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난 그가 누구보다도 의리가 있을뿐아니라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여서 그런 말을 했을거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의리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같으면 뒤에서나 욕을 하면 했지 맞대면해서 이야기하려 하지도 않아!》

《아니예요. 기사동진 제 맘을 몰라요. 난 당비서동지나 국장동지를 아버지처럼 알고 살았어요. 기사동진 그 맘을 리해하지 못해요.》

《너만 아버지없는 설음을 겪은줄 알어?!》

선희는 이렇게 소리쳤지만 아버지없는 설음을 체험한 지난날이 떠올라 목이 메여 이야기를 계속할수 없었다.

11월 중순치고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있었다. 아이들은 땅바닥에 펄썩 주저앉아 모래장난을 하고 보도의 잔디밭에는 철모르는 새싹들이 파릇파릇 자라나고있었다.

갈림길이 가까왔을 때 선희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래 휴가를 받고 어떻게 할테야?》

《평양에 가보겠어요.》

《다른데 취직하러 가겠단 말이지?》

《더 묻지 말아요. 날 건드리지 말아주어요.》

《언제 가겠니?》

《아침차에.》

《가라!》하고 선희는 맵짠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러나 어디 가든 우리 뜨락또르공장에 있었다는 소리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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