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7 회


제 4 장

5


리진오는 김기룡이 설계를 수정보충해서 가져오자 어서 주태섭부기사장에게 먼저 보이라고 그를 돌려세웠다. 그런데 부기사장은 갑자기 평양으로 떠나가버리고 자리가 비여있다는것이다. 리진오는 로를 개조하는 전투의 마감고비에서 자리를 떠버린 부기사장이 못마땅해서 당비서실에 갔다.

《당비서동진 떠난 리유를 알고있습니까?》

박철산당비서는 피발이 선 눈으로 리진오를 쳐다보더니 부기사장의 친구인 공업대학의 교수한테서 온 편지를 보여주었다.


친구, 보고싶네. 마주앉고싶어. 라지에터배관을 두드리며 떠들지 말라고 옆방에서 고함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론쟁을 계속하던 그 대학시절처럼 마주앉아 이야기로 밤을 새우고싶네.

나는 최근 재차 새날공작기계공장에 가서 그곳 기술혁신돌격대원들의 새 주조법의 탐구과정을 다시 관찰할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네. 그런데 그들의 방법을 부정하던 나는 이번에 가서 내 견해를 바꾸지 않을수 없었네.

편지에서 긴 이야기를 할수 없지만 그들이 불원간 성공하리라는것만 강조하고싶네.

그들의 방법의 성공을 믿는 내가 그들의 주조법보다 인민경제적의의가 적은 자네네 기사장의 방법을 전국에 일반화하기 위한 지도소조에 참가해달라는 초청에 응할수 없지 않나.

서운하지만 다른 기회에 만나야겠네.

늙지 말게, 몸도 마음도.


주태섭부기사장은 주조공학계에서 발언권이 있는 친구의 견해는 기필코 학계와 기술계에 파문을 던질것이며 기사장이 거둔 성과에 진한 그늘을 던질수 있다면서 떠났다는것이다.

《왜 말리지 않았습니까?》

리진오는 편지를 든 자기 손이 가늘게 떨리는것을 의식하지 못하고있었다.

《한사람의 경솔한 발언이 기계공업발전에 부정적영향을 줄수 있다구 흥분해서 이야기하지 않겠소.》

부기사장이 평양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할 계획인지 당비서도 모르고있었다. 친구사이의 문제같아서 캐묻지 않았다는것이다. 결국 당비서는 그것을 묻지 않는것으로 부기사장이 떠나는것을 지지한것이다.

리진오는 시계를 보았다. 밤차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서 얼른 자기 방에 돌아온 그는 주태섭부기사장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부기사장이 려행준비때문에 어덴가에 나가고 없어서 방금전에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아무도 송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필경 부인이랑 함께 정거장으로 나갔을것 같아서 리진오는 하던 일을 밀어버리고 부랴부랴 공장을 나섰다. 발차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넉넉하였지만 부기사장을 만나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얻고싶어서 부에서 비판받고 돌아오던 날 밤 걸은 그 지름길에 들어섰다.

날이 어두워졌지만 달이 밝아서 그날처럼 미끄러지지도 않았고 넘어지지도 않았다. 밭두렁옆 내물에 뜬 달이 흔들흔들하며 따라온다.

리진오는 사택마을의 골목길에 들어섰다.

사택마을의 밤은 아이들의 글읽는 소리와 아낙네들의 웃음소리속에서 다정하게 깊어가고있었다.

저 앞집에서 갑자기 서툰 나팔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옆집의 부엌에서 나온 젊은 부인은 그 음악의 수난자인듯 골살을 찌프리고 그 청년쪽을 향해 무어라고 짜증을 내고있었지만 나팔수청년은 그것을 모르고 열심히 불어댄다. 그 집 창턱에 매달린 아이들까지 청년의 본을 따서 주먹나팔을 불고있다.

그 건너편집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고있는 어머니의 감시를 받으며 글을 읽던 애까지 창문을 열었다. 이윽고 어린것은 다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 아름다운 우리 나라

살기 좋은 사회주의나라


리진오는 아이의 글읽는 소리가 이상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앞으로 주물로동을 무해로동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는 이야기를 들은것은 저 아이나이때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다음에야 그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간곡히 교시하신 그 깊은 뜻을 깨달을수 있었다. 그때부터 주물작업을 흥겨운 로동으로 전환시켜보자는 꿈을 꾸기 시작하였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그 꿈을 실현해보려고 달라붙었다.

그는 이 일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어렸을 때 어버이수령님앞에서 《큰 프레스만 있으면 꽝꽝 찍어낼수 있습니다.》하고 대답을 올린 자기가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과업이라고 믿고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때부터 주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얻으려고 대학도서관에 있는 먼지낀 책까지 들추어읽었고 중앙도서관과 과학원도서관의 열성독자로 등록되였다.

2학년에 갓 진급하였을 때 리진오는 어느 교원에겐가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었다. 인류과학은 20세기초에 벌써 텔레비죤을 선물하였고 20세기 중엽에는 우주비행의 길을 개척하였는데 기계문명의 모체인 주조공학은 어째서 근본적인 전환을 일으키지 못하고있는가?

그때 교원은 뜻밖의 질문에 당황해서 한참 말없이 교단을 뚜벅뚜벅 걷다가 그것은 리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과학기술의 기형적발전의 산물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하고 리진오는 도전적이라고 생각할수 있게 책상을 짚으며 다시금 물었다.

《우리 시대에 와서도 주물공학이 과학에서 이붓자식같이 버림을 받고있는 리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우리의 선조들은 벌써 오래전에 거푸집에 쇠물을 부어 주물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도 주물직장들에서는 그 시기의 방법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방법으로 주물제품을 생산하고있지 않습니까?》

《버림을 받고있다는것은 과장된 말이고… 하여간 주물로동에서는 해결하여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소. 그래서 우리 시대는 그 과제를 동무들이 해결할것을 바라고있는거요.》

수업후에 학생들은 선생의 이 대답을 질문에 막혀 옹색한 처지에서 궁여지책으로 한 말이라고 웃어버렸지만 진오는 교원의 대답을 그렇게 심상히 듣지 않았다. 교원이 《동무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한 말을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받은 《동무》가, 주물로동을 해본 바로 《동무》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것으로 받아들이였다.

학습할 시간이 모자랐고 잠이 그리웠다. 학급동무들에게 끌리워 영화관에 가서도 불이 꺼지는 순간까지 기술잡지들을 놓지 않았다.

아이들이 버들꽃이 날리는것을 잡겠다고 따라다니여서 교통보안원이 호각을 요란스럽게 불어대던 봄 어느날이였다. 인내성있게 새로운 주조법을 모색하던 리진오는 드디여 현존조형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결제와 물을 전혀 쓰지 않고 마른 모래만으로 조형을 할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제기하여 학급동무들을 경탄케 만들었다. 점결제를 쓰지 않으면 주물로동은 훨씬 헐하게 될것이며 주물설비도 간편해질것이다. 게다가 생산면적은 줄어들고 로력과 모래의 소비도 대폭 감소될것이다.

대학생들속에서 파문이 일어나 대학신문의 편집부에서 취재까지 해갔다. 그러나 그 얼마후 강좌의 부교수는 그 《발견》에 대해서 환상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리진오에 대해서는 환상적인 두뇌를 가진 학생이라는 린색한 평가를 내렸다.

《왜 환상적이라구 합니까. 진오동무가 그 연구사업을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라도 그 방법은 실현되고야말겁니다. 생활이 그 방법을 요구합니다!》

학급의 몇몇 친구들이 부교수에게 이렇게 항의했지만 그것은 맨머리로 바위를 들이받기였다.

리진오는 그 평가를 받은 날 뜬눈으로 새웠다. 온밤 부스럭거려서 신경이 약한 옆침대의 동무까지 잠을 설쳤다.

그 이튿날저녁, 그는 극장으로 떠났다. 그가 대학에 오기 전에 함께 기대를 잡았고 중학교에서도 한반에서 공부하던 보금이가 공장예술소조에서 소환된 후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다고 공연에 초대하였던것이다. 극장에 간다고 대학을 떠난 그는 대동강유보도를 헤매다가 20시가 지나서야 자기 주머니에 초대장이 묵고있는것을 깨달았다.

새 주조법에 대한 그의 연구사업은 공장에 와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여 올해 초에야 완성하였는데 먼저 주강직장에 도입하였다.

시험이 성공한 날, 밖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있었다.

그렇게 애를 먹이던 백선부분도 가스구멍도 없는 깨끗한 주물품이 생산되였다. 그의 시험을 돕던 동무들이 환성을 올렸지만 그는 그 성공이 믿어지지 않아 다른 형태의 주물품을 시험해보았다. 역시 성공이였다.

누군가 성공이라고 고함치며 로동자들이 일하는쪽으로 달려갔다. 용해공들이며 조형공들이 달려와서 그의 주위를 겹겹이 둘러쌌고 공중의 천정기중기운전공은 기중기를 시험장소우에 세워놓고 구경했다.

언제 소문이 퍼졌는지 그가 시험장소를 거두고 밖에 나서자 사람들은 손을 잡고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리진오는 그 축하보다도 안해의 기뻐하는 얼굴이 보고싶어서 여느때는 발길을 옮기지 않던 공무실에 들리였다. 선희는 방금전에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하기는 벌써 퇴근시간이 넘은지가 오랬다.

그는 집으로 곧추 가려다가 자기가 창조한 주물품이 다시 보고싶어서 되돌아섰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이였다. 눈송이는 무수한 수직선을 그으며 떨어지고있었다.

리진오는 새 주조법을 탐구하기 시작해서 이렇게 눈을 맞으며 이 길을 걷다가 다시 비를 맞고 한것이 몇번이나 거듭하였던가 하고 더듬으며 걸었다.

그가 연구사업을 진행하던 2주물직장의 현장안은 교대후여서 조용했다. 현장의 한쪽구석 시험장근방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촉수낮은 조명등이 비치고있었지만 리진오는 눈에 익은 길이여서 더듬지 않고 걸었다.

시험장에 가까이 가서야 그는 웬 녀인이 새로 부어낸 주물품곁에 앉아있는것을 발견하였다. 그의 안해 선희였다.

새로 태여난 주물품우의 먼지를 손수건으로 털어내고 손바닥으로 쓸어내더니 주물품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 손길은 장난꾸러기아들애의 옷에 묻은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주던 그 손길이였다.

《여보!》

리진오는 안해가 놀랄것만 같아서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가까이 가서야 안해의 눈에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것을 보았다.

《인기척이라두 내지 않구.》

눈구석을 찍으며 하는 말이였다.

《어두운데 보이우?》

《아이참, 그럼 사람들이 보는 대낮에 오겠어요?》

밖에서는 함박눈이 고요히 내리고있었다.

리진오가 역에 닿은것은 발차시간 40분전이였다. 그는 표파는데도 가보았고 기다림칸과 매점, 지어 도서열람실까지 돌아보았지만 주태섭부기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관념이 철저한 부기사장이니까 어덴가에 들렸다가 시간이 박두해서 나오리라고 생각하고 기다림칸에 들어갔다.

그러고보니 공장안에서 입던 옷을 그냥 입고 나왔다. 그대신 주머니에 늘 찌르고다니는 《기계공학》잡지가 있어서 공시간을 보내지 않게 되였다. 그는 잡지를 한페지 읽고는 혹시나 해서 사방에 눈을 주군 하였다. 그렇게 잡지를 읽던 그는 자기뒤 의자에서 젊은 부부가 주고받는 목소리에 신경이 가서 책을 놓았다.

《새로 짓는다는 아빠트는 언제나 다 짓는대요?》

젊은 녀인의 목소리였다.

《글쎄 모르겠다니까.》

《그러니까 언제나 집이 생기겠는지 막연하군요.》

젊은 녀인의 목소리에는 불만과 실망이 섞여있었다.

《내 편지에다 뭐랬소. 집이 되면 알리겠다구 했는데 공연히 힘들게 와가지구 무거운 걸음으로 돌아갈건 뭐요.》

멀리 찾아온 안해를 달래는 말치고는 너무나 주변머리없는 대답이였다.

《창피해서 그냥 있을수가 있어야지요?》

《창피는 무슨 창피요?》

《다른 제대군인들의 집에서들은 다 배치지에 이사를 가는데 나만 혼자 남았으니 창피하지 않게 되였어요?》

《원참, 공장에 오자마자 집부터 달라겠소?》

안해를 달래는것은 주강직장 완성작업반의 최문렬이였다.

리진오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젊은 부부앞으로 갔다.

《아니, 기사장동지가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최문렬은 우울한 빛이 미처 가셔지지 않은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그리고 안해에게 말했다.

《인사하라구. 전날 편지에 쓴 우리 기사장동지야.》

해빛에 탄 타원형의 얼굴에 류행에 뒤늦은 차림새를 한 녀인이 손을 앞에 모두어쥐며 허리를 굽히였다.

《저, 고향에서 면회왔댔습니다.》하고 최문렬이 말했다.

《요새 낟알털기도 끝나구 해서 짬이 있다구…》

최문렬은 안해가 찾아온것이 잘못되기라도 한듯이 서툰 변명을 했다.

리진오는 최문렬부부 옆의자에 앉으며 말을 건넸다.

《식구가 셋이라구 했던가?》

《그렇습니다.》

《아주머니, 제대군인들 가족들이 다 이사한다는데 안됐습니다. 문렬동물 나무라지 말고 날 나무리시오.》하고 리진오는 명랑하게 웃었다.

최문렬의 안해는 기사장이 방금 자기가 한 말을 다 들었다는것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들지 못했다.

《식구가 단출하니까 이사도 간단하겠지요. 문렬동무, 동무가 같이 가서 짐을 꾸려가지고 오도록 하오.》

《아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가리마를 보이고 앉았던 최문렬의 안해 역시 얼굴을 들었다.

《내 직장장동지에게 말할테니 래일 차비해가지고 같이 떠나우.》

《집이 어디 있다구 그런 말씀 하십니까?》

《허허, 집이 있으니 이사를 오라고 하는거지 한데 나앉게 하겠소?》

최문렬은 벌쭉벌쭉 웃으며 안해를 바라보다가 《그럼 좀 있다 이사오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좀 있다라니?》

기사장은 그들의 가정에 그럴만 한 리유가 있지 않는가싶어 젊은 부부를 반반씩 노나보았다.

《요새 전투가 한창인데 어떻게…》

최문렬의 대답이다.

《허허, 동무 하나 며칠 없다구 전투 못하겠소? 이사하고와서 봉창하라구.》

그러자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던 최문렬의 안해가 얼굴을 들며 참견했다.

《저혼자 가도 돼요. 무슨 짐이 많다구요.》

녀인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반짝거렸다.

《그럼 래일 준비해가지고 모레 오후차에 오십시오. 정거장에 자동차를 내보내겠습니다.》

방송에서 표찍기가 시작되였다고 알려서 이야기를 계속할수 없었다.

그제야 리진오는 아직 주태섭부기사장을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표찍는쪽으로 달려갔다.

주태섭부기사장은 언제 표를 사가지고 밖에 나와있었는지 그가 그곳에 갔을 때 부기사장은 벌써 표를 찍고 역구내에 들어서고있었다. 부기사장의 늙은 부인이 불룩한 려행가방을 들고 배웅하러 따라나간다.

나들표가 없는 리진오는 구내에 따라나가지 못하고 표찍는 곳에서 소리쳤다.

《부기사장동지!》

주태섭부기사장은 돌아섰지만 벌써 차가 구내에 들이닥치고있고 또 표찍는 곳에서 혼잡이 벌어져 돌아올수 없었다.

늙은 부기사장은 사람흐름을 거슬러 기사장쪽으로 몇걸음 옮기며 웨치였다.

《기사장동무, 기룡동무에게 시험생산에 들어가기 전에 용접부위를 잘 검토하라고 일러주시오.》

《알겠습니다.》

리진오는 어서 차에 오르라고 손짓을 했지만 주태섭부기사장은 이쪽에서 자기 말을 못 들은줄 알고 한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입에 붙이고 다시 웨쳤다.

《용접부위말이요!》

리진오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안심하고 어서 차에 타라고 손짓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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