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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회


제 4 장

4


아침에 출근한 박철산이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때 한정빈국장한테서 시간이 없겠는가고 전화가 왔다. 어제저녁때부터 찾았다는것이다.

《지금 말인가?》

《당장이면 더 좋구.》

박철산 역시 오늘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던터였지만 잠시 주저하였다. 박철산은 어제 시당회의에 갔다가 밤이 깊어 돌아와서야 개조한 로의 시험생산이 실패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모름지기 그것을 계기로 한정빈은 자기 주장을 내밀어보자고 할것이다.

그렇게 되면 심각한 론쟁을 면치 못할것이며 둘사이는 더욱 벗버듬해질것이다.

박철산은 마음을 다잡으며 대답했다.

《어떡헌다, 현장에 나가려던 길인데… 점심때 만나자구.》

《뭐, 점심때 만나자구?》

한정빈은 공연히 짜증을 냈다.

《자네가 현장에 안 나간들 누가 뭐라겠다구 그 몸 가지구 부득부득 나가는가?》

《허허… 참 자네두, 바람쏘이러 나가지 어디 일하러 나가나. 그럴것없이 자네도 작업복 걸치고 현장에 나오게. 거기서 삽질이나 하며 이야기하자구.》

주강직장에 나간 박철산은 국장과 함께 혼사작업반에 가서 일이 힘들고 어지러운 낡은 모래처리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전후의 어려운 나날에 그렇게 하였던것처럼 작업복차림에 수건으로 목을 동여매고 삽질을 하였는데 얼마 가지 않아 얼굴은 온통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여 눈만 반짝거렸다.

《두어두십시오, 우리가 하겠습니다. 기사동무들이 하는 저 조형이나 좀 도와주십시오.》

중년의 작업반장은 그들이 자기네를 도와주는것이 송구해서 조형작업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강직장 부직장장은 국장이 현장에 나와 로동을 한다고 무언가 들크무레한것을 섞은 더운물을 끓여가지고 현장에 나왔다.

한정빈은 낡은 모래우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입김으로 후후 불며 더운물을 마시였다. 이윽고 그는 부직장장을 쳐다보며 나무랐다.

《이런 일이야 왜 자동화하지 못하우. 현대적인 공장에 이런 어두운 구석이 있다는건 얼마나 창피스러운 일이요?》

낡은 모래를 벨트에 실어 밖으로 날라가게 되여있는데 기계화가 부실해서 이렇게 사람의 손이 가고있는것이다.

《곧 대책을 취하겠습니다.》

부직장장은 곧 대책을 세우겠다고 하였지만 한정빈은 장갑을 끼고 일어서며 다시금 또 여기에 나오겠다고 부직장장에게 오금박아 말했다.

《엎어진김에 쉬여간다는데 좀 휴식하자구.》하고 박철산이 아픈 다리를 두드리였다.

《원, 그 다리 가지구 뭘하겠다구. 구경이나 하라구.》

한정빈은 세면수건을 목에 동여매고 삽질을 시작하였다.

박철산은 친구의 일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삽을 잡았다.

《왜 일어서는가?》

《구경만 하고있을수 없잖아.》

한정빈이 어찌나 세차게 삽질을 하는지 무둑하던 모래가 푹푹 줄어들었다. 박철산은 다리가 말째서 자꾸 허리를 폈지만 한정빈의 삽은 쉬임없이 그믐반달모양의 곡선을 그렸다.

삽에 의지해 선 박철산은 욕심스럽게 일을 하던 제대군인시절의 친구가 회상되여 《여전하군.》하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뭐가 여전해?》

《일하는 모양 말일세.》

박철산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한정빈은 모래에 삽을 박고 주저앉으며 대답했다.

《예나제나 한정빈이 그 한정빈이지 박정빈으로 되겠나?》

《정말 그 옛날의 정빈으로 있기를 바라네.》

박철산은 그의 옆에 앉으며 대답하였다.

《뭐라구?》

저쪽 조형장에서 로동에 나온 기사들이 오락회를 벌려놓더니 무엇때문인지 천정이 날아나게 웃음을 터쳤다.

《그건 내가 자네에게 하고싶었던 이야길세.》

한정빈이 랭랭한 어조로 말했다.

《난 여기에 올 때 제대군인시절에 련인 만나러 가던 마음으로 달려왔네.》

《우리 역시 동무를 그렇게 기다렸지.》

《진오동무한테서 다 들었네. 날 기다렸다는걸. 그런데 날 기다린건 제관공 박철산이 아니라 당비서 박철산이더군.》

박철산은 친구의 섭섭한 소리가 가슴에 맺혀서 손을 뒤로 뻗쳐짚고 네모난 창문을 내다보았다. 맑은 하늘이였다. 아니, 네모나게 내다보이는 하늘만이 맑아보일지도 모른다.

《우리 생활에서는 종종 그렇게 보는 경우가 있는 법이지.》

다음순간 박철산은 자신을 스스로 비호하는것 같아서 어서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말했다.

《듣자니까 기사장이 부에 가서 비판받은것이 나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더군.》

《난 듣다 처음인걸.》

《대단히 섭섭하네, 섭섭해.》

《별거 가지구 신경을 쓰는군. 그거야 우리가 계획을 못했으니까 응당 받아야 할 비판을 받은건데 뭘 그러나?》

《뭐, 응당 받아야 할 비판이라구?》

한정빈은 코웃음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왜 아직 정상화소리만 외우고들 있는가?》

《계획을 수행하지 못한것과 정상화냐 인해전술이냐 하는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구 생각하네.》

《모르겠는걸, 정말 모르겠어. 상기시켜 안됐네만 상급당의 신호까지 받았다면서 왜 아직도 자넨 젊은 사람의 분별없는 행동을 묵인하고있는지 모르겠다니까!》

《묵인이 아니라 그를 적극 지지하고있네. 난 상급당에 기사장의 사업을 잘 도와주지 못했다는것과 함께 기사장을 적극 도와주지 못한건 내가 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정상화하는 문제에서 확고한 립장을 가지지 못했기때문이였다고 자기비판을 했네.》

《뭐, 자기비판을?…》

《그러이, 앞으로 다른 기회에도 거듭 자기비판을 할 생각일세.》

한정빈은 놀라움과 실망이 섞인 눈으로 당비서를 쳐다보고나서 손톱우에 담배로 천천히 공이질을 하였다. 이윽고 그는 성냥을 빌려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에게 성냥을 주던 박철산은 한정빈의 가운데손가락의 손톱이 이지러지여 제대로 나오지 않은것이 눈에 띄우자 고통을 참는듯 한 가벼운 파동이 얼굴에 지나갔다. 제대후 파괴된 공장을 복구하다가 벽돌장에 상해 그렇게 된 손가락이였다. 한정빈은 그 손가락치료를 제때에 하지 않아 오래동안 앓았는데 그 손가락을 쓰지 못하는 동안 그는 늘 약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만 담배를 쥐였다. 그때부터 그것이 습관되여 지금도 그는 엄지손가락과 약손가락으로 담배를 쥔다.

지난날을 추억하던 박철산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여보게 정빈이, 난 요즈음 우리의 총각시절을 자꾸 회상하군 한다네. 자네는 어느날인가 그 상점판매원처녀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현장을 떠나려다가 신입공이 볼반을 고치느라 애쓰는걸 보고 고쳐주지 않았나?》

《청승맞은 소리 하는군.》

한정빈은 골살을 찌프렸지만 박철산이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때는 아직 우리 형편이 어려웠지. 그날 자네는 내가 잔치할 때 입었던 옷을 빌려입고 떠났다가 볼반을 고치느라고 새옷에 온통 기름투성이를 만들었구 그 처녀와 만날 시간을 어기게 됐지. 물론 그것이 원인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그것이 동기가 되여 그 처녀는 돌아서고 말았지.》

《듣기 싫다니까.》

《듣기 싫어도 들어보라구. 난 그날 안해가 해준 그 옷을 집에 들고들어갈수 없어서 저 진오동무의 어머니에게 감쪽같이 빨아달라고 부탁했댔지.》

한정빈은 그제야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외웠다.

《좋은 시절이였지.》

박철산은 무엇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는데 불현듯 우정의 좋은 시절은 어데로 가고 둘이 숨막히게 마주하고있는가싶어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한정빈이 옆에 있으면 어떤 일에서나 마음이 든든하였고 그가 없이는 살수 없을것 같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는 담배연기를 깊숙이 빨고나서 말했다.

《난 요사이 자네의 흰머리를 볼 때마다 언제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네.》

《왜 뚱딴지같이 세월타령을 하나.》

《흐르는 세월생각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새 중요한 위치에서 일하고있어서 세월을 생각하는거지. 전쟁과 전후의 어려운 시련의 언덕들을 넘느라고 자네는 머리가 희여지고 내 다리는 더 아프게 되였네. 허지만 우리의 행군길은 아직도 멀구 또 시대는 우리에게 여전히 앞장설걸 바라고있지.

헌데 우리는 대오의 앞장에 서기는 고사하고 젊은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해서 헐떡거리고있단 말일세.》

《우리 세대를 모욕하지 말게. 우리는 시대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네.》

《그건 과거의 일이지.》

《그러니까 헐떡거린다는건 나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군.》

《나도 리진오를 리해하지 못했었네.》

《하여간 흥미있는걸, 헐떡거린다?!》

창밖으로 비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둥 떠흐르는 모양이 내다보인다. 박철산은 그 구름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모든 사업은 결과만 가지고 총화하게 된다는 그 립장이 잘 리해가 안되네.》

《그건 생활의 진실일세.》

《아니야, 생활은 공정하다네.》

박철산이 단호하게 부정하였다.

《여보게 정빈이, 우리는 처음으로 뜨락또르를 조립할 때도 그렇구 락동강도하전투때도 그렇구 준엄한 전투에 참가하면서 전투후에 어떤것이 차례지겠는가 하는것을 타산하지 않았지.》

《그랬는데 지금 나는 명예를 바라고 전투에 림한다는 소린가?》

《좋도록 생각하게. 하여간 자넨 생산을 정상화하는 사업이 옳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니까 겁을 먹고 물러섰기에 하는 말일세.》

《자네 말대로 나는 겁을 먹고 비겁한 길을 택했다고 치세. 그래 자넨 증산계획을 총화하는 마당에서 생산을 정상화하느라고 증산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말할셈인가? 그거 아주 볼만 하겠는걸.》

《아닐세. 생산의 정상화는 높은 속도를 보장하게 될걸세.》

《지난달의 경험이 그걸 조소하는데두? 만약에 내 주장이 잘못된거라면 그것은 벌써 군중의 규탄을 받았을걸세. 그러나 많은 직장장들은 나의 견해를 지지하였고 부의 일군들도 지지하였네.》

《바로 그것이 위험하다는걸세! 혁명적인 구호를 웨치다가 어려운 일이 막아서면 겁을 먹고 물러나 요술을 피우고 겁을 먹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서로 동정하고 지지하고…》

《그만두라구!》

한정빈은 눈이 곤두서며 소리쳤다.

《나는 지금 자네가 한 모욕을 친구가 아니라는 선언으로 새겨두겠네.》

《우정은 선언으로 동강나지 않는걸세.》

한정빈은 훌쩍 일어나서 무섭게 삽질을 시작하였다. 박철산은 친구가 충고를 받아들이고있다는것을 그 삽질하는 모습에서 발견하고 다시 따뜻한 감정이 살아났다. 그가 뿌린 모래를 뒤집어쓴 박철산은 빙긋 웃으며 목에 건 수건으로 털었다.

《여보게, 삽질 좀 바로하게.》

《내가 던지나, 삽이 날라가지.》

《허허… 사람두!》

박철산은 시계를 보았다. 12시가 가까와왔다.

《이젠 그만하세. 오랜만에 일을 했더니 벌써 배가 출출하군. 자, 가서 함께 점심이나 먹읍세. 우리 구내식당 맛을 좀 보게.》

《난 한끼 건느겠네.》하고 한정빈은 이마살을 찌프리며 대답했다.

《건늬다니, 왜?》

《속이 좋질 않아.》

《속이 어떻게 말짼가? 어서 병원으로 가보라구.》

《괜찮네. 자네네 그 외래자합숙 뚱뚱보책임자가 비지를 했다구 어찌나 권하는지 좀더 먹었더니 고장이 났네.》

《허허 사람두, 속이 좋지 않으면 제가 조심해야지 남을 피탈할건 뭔가?》

《자꾸 권하는데 안먹구 견디겠더라구. 구수한 냄새가 어떻게나 구미를 돋구던지, 허참.》

박철산은 허리를 제끼며 껄껄 웃었다.

박철산은 점심후에 쉬지 않고 제관직장으로 떠났다.

2천대증산전투가 시작된 후 그는 주강소재를 용접구조물로 전환시켜 긴장한 주강쇠물문제를 풀어보려고 짬만 있으면 제관공들과 마주앉군 하였는데 오후에 마침내 회전축틀의 시험생산을 진행한다는 통보를 받은것이다.

아직 점심시간이여서 종합청사앞 운동장에서는 배구경기가 한창이였다.

열처리직장 굽인돌이를 돌아선 박철산은 청년들 둘이 가공직장들에서 쓰는 쇠밥처리용쇠딸따리에 주강소재를 잔뜩 싣고 앞에서 끌거니 뒤에서 밀거니 하는 눈에 선 풍경을 보았다. 소재류들은 응당 지게차라든가 공중삭도로 운반해주게 되여있는데 어디다 쓰려는 소재인지 모를 일이였다.

그들은 높은 턱을 극복하느라고 다리를 뒤로 뻗치고 끌거니밀거니 하며 애쓰고있었다. 욕심스럽게 많은 짐을 실어 쇠딸따리는 당장 주저앉을것 같았다.

《허 위험한데, 술취한 사람처럼 비뚤비뚤하는군.》

《이거 마사먹으면 빌려준 아주머니한테 종아릴 얻어맞아요.》

이렇게 주고받는것은 주강직장 완성작업반의 제대군인 최문렬이와 기사장의 조카인 영진이다.

박철산은 그들한테로 가까이 가며 그것을 왜 끌고가는가고 물었다.

영진이는 그를 보더니 씩 웃고나서 《하필 당비서동지에게 들킬게 뭐람.》하고 혼자소리로 두덜거렸다.

《이 동무가 좋은 일을 발기했습니다.》

군대에서 몸에 배인 차렷자세로 당비서에게 례의를 표시한 최문렬이 말했다.

《자기 동무가 소재가 모자라서 새 기록을 돌파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 완성반에 와서 이걸 싣지 않겠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였다. 그는 대견해서 영진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어느 직장에서 일하는 동무냐고 물었다.

《예분이라구 기관직장에서 일하는 동창생이예요.》

《예분이?》

그는 잠시후에야 오선달직장장의 딸이라는것을 회상했다.

《올해 중학교를 졸업한 동무가 벌써 기록을 돌파해?》

《올해 졸업한 우린 뭐 내내 꼴찌만 해야 하나요?》

영진이는 입부르튼 소리를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마지막사로청회의에서 주먹으로 교탁을 두드리며 공장에 나가서 새 세대답게 모두들 혁신자가 되자고 맹세했는데 자기네 졸업생들중에서 빨리 혁신자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소재를 끌고간다는것이다.

《새 세대의 명예문제라는겁니다.》

최문렬이 보태여 말했다.

《새 세대의 명예라.》하고 박철산은 받아외웠다.

흐리터분한 공기속에서 헤여나와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듯 신선하게 느껴지는 말이였다.

박철산은 마음이 상쾌해져서 길섶 풀밭에 주저앉은 영진의 곁에 가앉으며 그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그러나 잠시후 한정빈국장과 오전에 다툰 일이 떠올라서 손이 맥없이 풀려버렸다.

자기 세대의 우정도 한때 저렇게 깨끗하였고 포화속에서, 재더미속에서 자기 세대의 그 명예를 지켜냈다. 우정이란 영원해야 삶을 장식하고 세대의 명예란 끝없이 빛내야 시대를 장식하게 된다.

그는 그렇게 귀중한 자기네 세대의 명예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듯이 다시금 영진이의 어깨를 힘있게 그러안으며 한정빈을 생각하였다. 좋은 친구였다. 우정에 충실한 친구였고 명예를 존중할줄 아는 한정빈이였다. 그렇던 그가 세대의 명예에서 자기 몫만을 귀중히 간직하고있다. 세대의 명예는 어데다 잃어버렸는가?

잠시후 최문렬은 끌고 영진이는 밀며 떠났다.

박철산은 그들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랬다. 그는 마치도 고수해야 할 세대의 명예가 자기 생활에서 멀어지는듯 해서 서운하였고 그것이 새 사람들에 의하여 새롭게 이어지고있다는 생각이 서운함을 덜어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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